"환상종들이 있는 곳에, 인간이 오다니! 무대가 아직 마련도 안됐는데 너무 다짜고짜 찾아오신거 아닌가요! 무례하시군요! 신사분?"
배우는 곤란하다구요? 비비안은 쿡쿡, 신랄하기 짝이 없는 말을, 신랄한 미소를 지은 미소를 더욱 진하게 지으며 빙글 몸을 한바퀴 돌려서 다시 인간을 바라봤다. 가늘게 뜬 노을빛 눈동자가 더더욱 가늘어졌다. 어쩔 수 없군요. 정 - 말. 비비안이 다시금 신랄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우아한 제스처와는 전혀 다른 차가운 웃음이였다.
"제가 인간에게 먼저 이름을 밝혀야할 이유는 없는데요, 신 - 사 - 분. 그리고 자고로, 인사는 신사분이 먼저 해주셔야하는 거, 아닌가요?"
존경의 키스도 함께 해주실래요? 비비안의 손바닥 위에서 중절모가 비비안의 한바퀴 돌았던, 우아한 귀부인같은 움직임처럼 부드럽게 묘기를 부리듯 빙그르르 돌았다. 그와 함께, 비비안의 오른손에 들린 지팡이도 같이 한바퀴. 정신없는 행동이였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움직임이나, 과장스러운 제스처는 불편하기 짝이 없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듣기 불편하게 말 중간중간 이상한 부분에서 말끝을 길게 늘이기도 한다.
"좋아요. 무대는 아직 덜 준비됐으니 시-시-하 - 게. 인사라도 해볼까요? 비비안 - 이라고 한답니다. 신사분은?"
손바닥 위에서 빙그르르 돌던 중절모가 비비안의 은색 머리카락 위에 살포시 얹혀졌다. 한발짝 물러나는 행동에, 그녀는 한발짝 상대와 거리를 좁힌다.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비비안은 지팡이의 끝으로 가리키면서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이는 제스처를 곁들였다.
뻥 아니다. 난 이 임무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말 그저 숲을 살피는 것으로 임무를 마치려고 생각했었다. 지금 이 상황들은 예상 외 상황이라는 소리지. 그나저나 저 여자는... 싸우겠다는거야 뭐야?
" 난 잘 나가는 신사와는 동이 떨어진 사람이라서 말이야. 그렇게 잘 봐주면야 고맙지만, 난 그렇게 멋진 인간이 아니야. "
한번 씩 웃고는, 칼을 고쳐잡았다. 이대로면 싸워야 한다는건가. 썩 달가운 얘기는 아니구만. 그나저나 존경의 키스라. 원래라면 사람의 손등에 하는거였나? 하지만 굳이 해줄 생각 없다. 그냥 가볍게 손을 내 입술에 가져다대고, 가볍게 떼면서 키스를 날려주었다.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 아아, 데릭이다. 말투 이상한건 굳이 신경 안쓸게. 신경 쓰이지만 말이야. "
장난스레 말하고 키득키득 제 멋대로 웃기 시작했다.
" 무대 준비가 덜 되었다는건... 아직 싸울 생각이 없다는 걸로 받아들여도 괜찮은거지? "
"우리에게는 여기가 무대인걸요! 신사분! 세 - 상에, 이런 농담을 못알아듣다니, 너무하는데요?"
재미없어라. 비비안은 조금 입술을 삐죽이면서 불만스레 투덜거렸다. 가늘게 뜬 눈 중에 한쪽만 슬쩍 평소대로 돌아가서 노을빛 눈동자가 온전히 한쪽만 드러났다. 칼을 고쳐쥐는 상대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가 꺄르륵 - 하고 이번에는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손바닥 뒤집듯, 성격 참 잘 바뀐다. 비비안은, 키스를 날리는 상대의 모습에, 조금 수줍다는 듯 몸을 베베꼬았다가, 얇은 검은색 실크 장갑을 낀 왼손바닥을 입술에 대고 그와 똑같이 키스를 날려줬다.
"상냥하기도 하셔라. 우리 신사분. 어머 ㅡ 숙녀의 앞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 신사가 되는 법인걸요? 그럼 미스터 라고 불러드릴까요?"
그녀는, 지팡이의 끝으로 바닥을 톡톡 두드리면서, 이제는 과장스러운 제스처, 그리고 아주 과장스러운 한숨을 푹 - 내쉰 뒤 지팡이의 손잡이를 가볍게 돌린다. 칼날이 손잡이의 돌아가는 부분에서 번뜩이며 빛난다.
"아아뇨? 우리 미스터 데릭과 한바탕 즐겁게 춤을 추기에는 한참 모자란 무대지만 -"
싸울 생각이 없다는 말은 안했어요? 비비안은 쿡쿡, 신랄하게 웃음을 터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지팡이 검을 뽑아 양손으로 쥐고 가볍게 횡으로 휘두르려고 한다. 가볍고, 단조로운 행동이였다. 마치, 춤이라도 신청하는 제스처, 그리고 과장스러운 웃음과 목소리는 똑같았다. 횡으로 휘둘러지던 지팡이 검은 우뚝 허공에서 멈췄다. 그녀는 부드럽게 허공에서 멈춘 양손검을 빙글 돌려서 고쳐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