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들었다. 내 앞에 서있는 환상종의 말을.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여튼 그는 오해라고 했다. 이 말단녀석의 난청과, 판단미스 때문이라고. 솔직히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만은. 그래도 신빙성은 있는 말이다. 그 말단이 패닉에 빠져 그를 공격했을 확률이 대충 97%. 환상종의 힘은 잘 모르겠지만, 그런 상태의 인간이라면 너무나도 쉬운 표적이 된다.
" 내키진 않지만, 안믿고 싸웠다간 또 그녀석이 이상한 치료법을 들먹이겠지.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머리를 벅벅 긁고는, 그래도 싸울 의사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단도를 다시 후드 속으로 집어넣었다. 지금 이 상황에선, 교회로 돌아가 보고하는게 급선무이려나. 일단 무덤....을 파고있다니, 조금정도는 도와주는것도 나쁘지 않겠고.
" 그나저나 그거......개야? "
아까부터 신경쓰였다. 여기저기이쪽저쪽 다 돌아봐도 그냥 검은 덩어리 같은데.... 또 소리는 개소ㄹ.... 멍멍이 소리를 내고있다. 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거지.
조금은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며 땅을 파는걸 조금 도왔다. 한 사람이 들어가 누울만한 크기가 되자, 파는것을 그만두었다. 이 말단 녀석은... 어떤것에 당했는진 모르겠지만 녹아있었다. 그래. 이게 가장 정확한 표현이겠군. 무덤을 만드는 것 자체가 조금 어색할 정도로. 하지만... 그래도 교회인으로서, 이 정도는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뭐... 돌아가는것 정도야 어떻게든..... "
대충 땅이 파진것을 확인하고 일어나 주변을 돌아보았다. 근데 난 어디서 튀어나왔더라? 난 어디서 여기까지 도달했었지? 말단 때문에 기억이 뒤죽박죽이다. 이대로 돌아가기는 커녕, 숲의 양분이 되어 땅 속으로 돌아가겠지.
정말로 궁금한듯, 자연스럽게 물었다. 여전히 덤덤한, 딱히 억양없는 평온하고 무덤덤한 목소리였다는게 문제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수도 있었을것같다. 뭐, 본인은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너는 단도를 품 안으로 집어넣었다. 싸울 생각은 이제 안하는건가. 그래도, 인간은 신용할수 없다. 쉽게 거짓말을 하고, 언제 저 품에서 날 찌를지 모르는 일이지. 이런데서 죽는건 나도 사양이었다.
"응. 이름은 뽀삐. 귀엽지?" "멍!"
헥헥거리면서 뽀삐는 짖었다. 너무 귀엽잖아, 정말로. 조금 미소짓는것처럼 보이면서, 뽀삐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리고 네가 다가온다. 너는 이상하게도 땅을 파는걸 돕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 그냥, 이 녹아버린것 위에 흙을 덮고 있었는데.
"왜 땅을 파? 그냥 위에 덮으면 되는데. 아, 땅을 파서 흙을 덮기 쉽게 해준거야?"
나야 고맙지. 옆에 쌓인 흙을, 한움큼 쥐곤 시체 위에 뿌리길 몇번 반복했다. 뽀삐도 흙을 차서, 그것 위에 덮기 시작했다. 얼추 흙이 쌓이자, 토닥거리면서 적당히 모양을 잡아주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인간은 인간의 마을로 돌아가는게 제일 좋지. 차라리, 서로 간섭하지 않으면서 살면 좋을텐데."
인간은 인간의 땅에, 우리는 우리의 땅에. 널 빤히 바라보았다.
"인간, 난 널 별로 믿지 않아. 난 인간을 많이 만나본적 있는건 아니지만, 친한 척 하더니 갑자기 날 베려고 한 놈이 있었어. 네가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지. 그러니까, 나란히 걷자. 뒤쳐지지 말고 따라왔으면 좋겠어, 네 보폭에 맞춰서 걸을거니까. 아, 그리고... 이름은 뭐야?"
그냥, 통성명이나 하자고. 가볍고, 무덤덤하게 물으며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입을 떼었다.
"저기, 넌 교회의 사람이지? 알아. 인간은 모두 헬리오스를 믿잖아. 그렇지만 항상 궁금했어. 헬리오스가 정말로 우리를 미워할까? 헬리오스와 에오스, 두명의 각기 다른 신이 서로를 창조했는데, 어째서 같은 신의 피조물끼리 누구는 선이고, 누구는 악이라고 규정하여 전쟁하는걸까? 전쟁을 선포한건 너희 교회 쪽이잖아? 미개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거야?"
>>417 ㅋㅋㅋㅋㅋ 왜 눈을 반짝이는것이지?? 음~ 원래는 막 후배느낌나는 이단 심문관 해보려고 했는데! 인간쪽이 많아서 환상종을 해야할테고... 환상종중에서도 인간과 나름 우호적인 숲 지킴이를 해야할지 엄격 근엄 진지한 두목을 해야할지 아예 자비가 없는 달콤살벌한 망나니를 해야할지 ㅋㅋㅋㅋ... 마구마구 꼬이는 느낌이라서~
>>420 이벤트라 ㅋㅋㅋ 할 수 있을까... 진행하게되면 좋겠다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나 설정도 잘 몰라서~ 조금 느낌 알게되면 진행할지도 모르겠네! 그리구 우리 스레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이벤트 진행 가능하니까! 부담갖지 말고 생각해줘~ 아니, 해주세요 ㅋㅋㅋㅋ 부탁드립니다!!!
다친 어깨를 치료받으려면, 우선 희야한테 가야겠지. 아까 인간에게 총을 맞아서, 많이 아프거나 하지는 않지만 아예 왼팔을 못쓰게 되는건 싫으니까. 물론 부정으로 사람행세를 하고 있긴 하지만, 만약 누군가의 저주가 왼팔에 걸린 저주라면 내가 대신 짊어질수 없게 된다. 우선 고쳐놓기는 해야겠다. 희야가 자주 출몰할만한곳은... 아마 숲 속이겠지? 좀 늦고, 어두운 밤 시간대지만 희야가 있으면 좋겠네. 비적비적거리면서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곧 지쳐버렸다. 귀찮았다. 솔직히 자고 싶었다. 음, 그래도... 나중에 희야에게 혼나는건 싫었다. 지금은 다치면 많이 혼내지는 않고 걱정해주겠지. 근데 말 안하고 숨겨서 덧나아가지고, 끙끙거리면서 찾아가면 완전 혼날게 뻔했다. 그러니까 찾아가자.
"dugante, pasada e'stanto."
나와라 말아. 자신의 키만한 높이를 가진 책상 형태를 띈 검은걸 소환했다. 엉기적거리면서 올라타서는, 그대로 벌러덩 누웠다.
"돌아다니자. 희야를 찾을때까지, 아마... 꽃이 많은곳에 있지 않을까?"
푸르릉. 그래그래, 네가 꽃이 많은곳이 어딘지 어떻게 알겠니. 일단 되는대로 돌아다녀보자. 천천히, 달빛을 쬐며 숲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