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마신 것 덕분인지 몰라도 자신이 우연히 얻게 된 오캐미의 알을 기준으로 운이 좋다는 것을 느꼈다.
“아까 마신 게 펠릭스 펠리시스였나 보네요...”
알과 알 위에 올라가있는 아스타를 향해 조곤조곤 말했다. 아스타는 그러거나 말거나 은빛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알에 더 관심이 있는 듯 했지만 말이다.
품 안에 알을 품은 채 축제를 여유롭게 즐기다가 문득 갈증이 나는 것을 느꼈다. 이번에는 다른 잔을 집은 후 몇 모금 들이켰다. 당연하게도 맛은 좋았다.
“음료 맛이 좋네요.”
아스타를 향해 살짝 놀리듯이 말하니 아스타는 치사하다는 듯이 알 위를 펄쩍 뛰다가 그대로 미끄러져 제 품 안에 안착했다. 그걸 보면서 후후 웃다가 무의식적으로 아까 마신 잔이 아닌 다른 잔에 든 음료를 들어 몇 모금 마셔버렸다.
.dice 1 8. = 6
1. 멈뭄멈뭄멈뭄미체로만 말하게 되는 술 2. 무지개를 토하게 되는 술(?) 3. 멍뭉이로 변할 수 있는 폴리쥬스 4. 유포리아 묘약(마시면 행복감에 취하게 됩니다. 독특한 진줏빛.) 5. 윤기나는 마법 머리약(feat.엘라스~틴) 6. 펠릭스 펠리시스(행운의 물약. 황금색) 7. 한 가지의 행복한 꿈을 꾸게 해주는 약 8. 그저 평범한 음료수
엗, 이라는 말이상으로 여학생은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소년은 손에 걸리는 제 머리가 거슬렸다. 어릴때에도 줄곧 짧은 머리를 고수했고, 이제까지 한번도 길러본적이 없기 때문에 소년은 어색함을 감출 수 없었다. 다만 표정은 아무렇지도 않고, 평이하게 차분하고 조용한 표정을 겉으로 보일 뿐이였지만.
"사이카, 라는 이름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만. 그쪽의 풀 네임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성분의 이름은 함부로 친근하게 부르기에는 예의에 어긋나는 발언입니다."
고장난 장난감처럼 버벅거리던, 여학생의 입에서 어딘지 발음이 중간중간 새어나가는 목소리에도 소년은 능숙하게 이야기를 알아들었다. 머리끈이 필요한것 같았다. 소년은 제 바지 주머니에 넣어놓은 반듯하게 접힌 손수건을 꺼내 천천히 접기 시작했다. 머리끈을 가지고 다니지는 않으니, 일단 이걸로라도 묶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손, 말입니까? 어렵지는 않은 부탁이니 거절하진 않겠습니다."
소년은 울것 같은 여학생의 목소리에 제 손을 벌벌 떨리고 있는 손 위에 올렸다가 예의바르게 뒤집어서 여학생의 손이 제 손바닥 위를 향하도록 만들었다. 됐습니까? 라는 질문이 평이하게 소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인간의 3대 욕구는 식욕, 배설욕, 수면욕이라고 했다. 유채헌은 그 중에서도 수면욕에 가장 취약한 유형이었다. 만찬에서도 어김없이 채헌은 졸았고, 다시 일어났을 때는 몽롱한 정신으로 주변의 상황을 미처 살펴보지 못했다. 따끔거리는 목에 앞에 있던 술을 입가로 가져오니 나나가 말리는 듯 손가락을 깨물었다. 의아해하며 잔을 내렸을 때는 이미 술을 넘긴 채였다. 어쩐지 밀려오는 불안한 기분에 채헌은 옷에 청결 마법을 걸었다. 그리고.
웩.
무지개를 토했다. 제 주인을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나나는 종종 걸음으로 채헌의 뒷 편에 섰다. 무지개라 그렇게 더럽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사이카의 상태는 꽤나 처참했다. 정신의 고통을 수치로 환산한다면 아마 운동장을 세 바퀴 돌고 난 직후에 느껴지는 숨가쁨 정도가 될까. 현 상황의 당혹감이 겨우 운동장 세 바퀴 수준으로 치환된다는 것은, 사이카의 절망적인 체력 수치를 고려하여 나온 결과였다. 커다란 손이 손바닥에 닿고, 이내 자연스럽게 뒤집어져 밑으로 위치를 바꾸었다. 그때까지도 혼란하게 증발하던 사이카의 정신이 그 행동을 기점으로 돌아왔다.
"세상, 아니. 기노가 아니라 키노! 키노 사이카라고 하는데요!!!!!"
얼마나 오래 멍하게 있었는지도 알 수 가 없었다. 황급히 아무렇게나 흘러가려는 말을 붙잡은 사이카가 크게 외쳤다. 좀처럼 변색하지 않는 안면이 온통 빨갛게 변해 뜨거운 열을 발산하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을 양쪽으로 당겨 얼굴을 가리고, 이내 손에 쥔 모발에 얼굴을 파묻으며 말했다.
"방금 일은 잊어 주십사...."
본래 사이카는 학생에게 한해 처음 보는 사람에게 존대를 사용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사람의 앞에서는, 왠지 꾸준히 존대를 고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카락은 여전히 윤을 흘리며 손 틈새로 찰랑거렸다.
반갑습니다. 제 손바닥 위에 올라온 사이카의 손을 바라보다가 소년은 진중하고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넸다. 매우 평이한 어조였고 전혀 당황스러워보이지 않았지만 소년은 속으로는 꽤나 혼란스러움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소년의 눈앞에 있는 여학생이 더욱 혼란스럽고 당혹스러움이 가득 묻어나는 새빨간 얼굴을 해보였다가 긴 머리카락을 양쪽으로 당겨 얼굴을 가리는 것에 소년은 여학생의 얼굴이 머리카락으로 인해 사라지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방금 일?
소년은 잠시, 천천히 고개를 기울여서 생각했다. 방금 전 일이라면, 여학생이 자신을 개로 착각해서 손을 달라고 했던 상황을 말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소년을 스쳐지나갔고 소년은 당연하다는 듯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반의 반으로 접어 적당히 얄팍해진 새하얀 손수건을 소년은 여학생을 향해 내밀었다.
"불편해보이십니다만, 쓰시겠습니까?"
잠깐 쓰는 거라면 나쁘지 않을겁니다. 소년은 그렇게 말하며 제 손에 올려진 여학생의 손에 손수건을 올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