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죽어가는 목소리가 머리카락 덩어리(...)에서 삐져나왔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모발이 지나치게 윤기 있게 변한 탓에 엉키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매끄러워 묶이지도 않아 곤혹스러웠던 참이었다. 오른쪽 손을 얼마간 팔딱거리자 엉성하게 묶인 매듭이 풀어졌다. 곧, 빼낸 손으로 즉시 눈을 가린 머리카락을 치운 사이카를 반긴 것은 크고 탄탄한 체격이 인상깊은 검은 개였다.
"..."
뭐지. 사이카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그러니까... 학교에 저렇게 생긴 파수견이 있었던가? 나 보고 있었나? 의문이 채 가시기도 않았지만, 일단 몸부터 빼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굴러온 방향의 반대로 구르는 것만으로도 머리카락은 쉽게 풀려갔다. 하마타면 마리모같은 몰골이 될 뻔했다. 몸을 일으킨 사이카의 시선이 다시 개에게로 돌아간 것은 풀어진 머리를 탈탈 털고 난 다음의 일이었다. 사이카는 침착을 가장하고 천천히 개에게로 다가갔다. 좀 전의 흉물스러운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조금 걸리기는 했으나, 개에게는 보여도 부끄러울 이유도 없겠지. 개의 앞에 선 사이카가 입을 열었다.
"멍멍아, 네가 뭘 봤는지는 신경 쓰지 않도록 할게. 그나저나 너 되게 귀엽다는 거 너도 아니? 내가 멍뭉이 좋아하는 건 알고 있어? 아- 검정이 너 미모가 정말 대박적인데 인사해도 돼?"
그리고 아무말을 하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층 높아진 건 어째서일까. 사이카는 귀여운 생물에게 관대했고, 또 귀여운 개의 앞에서는 뇌의 필터가 사라지는 고질병이 있었다. 사이카는 선 자리에서 연신 주먹을 꽉 지고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귀여운 생물을 보니 몸에서 다시 살아갈 힘이 솟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개에게 귀엽다며 칭찬을 멈추지 않던 사이카가, 이내 진정을 해야한다며 무의식적으로 잔에 담긴 술을 들이켰다. 좀전에 있었던 일은 까맣게 잊은 모양이었다.
.dice 1 8. = 5
1. 멈뭄멈뭄멈뭄미체로만 말하게 되는 술 2. 무지개를 토하게 되는 술(?) 3. 멍뭉이로 변할 수 있는 폴리쥬스 4. 유포리아 묘약(마시면 행복감에 취하게 됩니다. 독특한 진줏빛.) 5. 윤기나는 마법 머리약(feat.엘라스~틴) 6. 펠릭스 펠리시스(행운의 물약. 황금색) 7. 한 가지의 행복한 꿈을 꾸게 해주는 약 8. 그저 평범한 음료수
멈뭄미는 꽤 길게 풀어해쳐진 머리카락 사이에서 빠져나온 여학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눈치챘는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쳐다보는 시늉을 해보였다. 일명 모른척이다. 하지만 이내 멈뭄미가 된 소년은 제 앞으로 다가온 길고 반짝거리며 윤기가 흐르는 푸른색 머리카락을 따라 검은색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멍멍이. 라는 칭호에 그 눈동자가 아주 살짝 흔들리는 건 착각이 아니다. 소년은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저 말을 들으니까 정말로 자신이 개로 변했다는 걸 절실하게 느끼고 말았다.
"ㅡ 멍."
짧게, 여학생의 말에 긍정을 표하듯 개의 긴 주둥이에서 낮고 작고, 짧게 짖었다. 부들부들 떠는 여학생의 모습에 소년은 이 자리를 피해야하지 않을까 하고 여학생을 바라보며 곰곰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1. 멈뭄멈뭄멈뭄미체로만 말하게 되는 술 2. 무지개를 토하게 되는 술(?) 3. 멍뭉이로 변할 수 있는 폴리쥬스 4. 유포리아 묘약(마시면 행복감에 취하게 됩니다. 독특한 진줏빛.) 5. 윤기나는 마법 머리약(feat.엘라스~틴) 6. 펠릭스 펠리시스(행운의 물약. 황금색) 7. 한 가지의 행복한 꿈을 꾸게 해주는 약 8. 그저 평범한 음료수
헉, 잔에 든 술을 원샷하고 나서야 상황을 깨달은 사이카가 멈칫했다. 그러나 술은 이미 식도를 지나 기나긴 소화의 여정을 떠난 지 오래였다. 곧 닥쳐올 상황을 직감한 사이카가 미친듯이 눈을 떨었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으응??"
사이카는 침착하게 상황을 점검했다. 일단 무지개색 피자를 만들 기분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발음도 멀쩡하다. 머리카락도 여전히 찰랑거리며 바닥을 쓸고 있었다. ....다 좋은데 이것만은 슬프다. 이건 그냥 멀쩡한 술이었나? 지금 이 상황이 어찌 된 것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사이카는 적당히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사이카의 고질적인 문제인 귀찮음증과, 눈앞에 귀여운 "멍멍이"가 있기 떄문에 내릴 수 있는 판단이었다. 개는 방금 자신이 한 말에 동의라도 하듯 짧게 짖었다. 크으, 역시 멍멍이의 귀여움은 세계 최고. 아저씨스러운 감탄사를 내뱉으며 사이카가 몸을 숙여 개와 눈높이를 맞췄다. 머리카락은 툭 쳐서 저 먼 바닥으로 던져놓은 상태였다.
"그건 그렇고 멍멍아, 넌 어디서 왔어?"
학교의 모든 사항을 꿰뚫고 있는 것이 아니니만큼 정보에 오점이 있을 수도 있으나, 사이카가 기억하기론 학교에 이런 개는 없었던 걸로 알고 있다. 남에게는 무심한 사이카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단순히 개는 귀여우니까, 라는 그녀의 편향적인 덕심 때문이었다. 잠깐동안 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사이카가 문득 손을 내밀며 말했다.
멍뭉이로 변하진 2시간 정도 지났을 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시야가 높아지니 편하다. 그리고 덜 무섭다. 강아지들은 그렇게 큰 사람을 좋아한다는 게 신기하다. 우리 뱅이도 되게 겁이 없는 아이였구나. 괜히 손가락을 움직이다 뱅을 보고 피식 웃었다.
"되게 황당했지?"
그리고 별 생각없이 옆에 있는 음료를 홀짝였다. 바보, 지옥의 음료인줄 모르고.
.dice 1 8. = 1
1. 멈뭄멈뭄멈뭄미체로만 말하게 되는 술 2. 무지개를 토하게 되는 술(?) 3. 멍뭉이로 변할 수 있는 폴리쥬스 4. 유포리아 묘약(마시면 행복감에 취하게 됩니다. 독특한 진줏빛.) 5. 윤기나는 마법 머리약(feat.엘라스~틴) 6. 펠릭스 펠리시스(행운의 물약. 황금색) 7. 한 가지의 행복한 꿈을 꾸게 해주는 약 8. 그저 평범한 음료수
개의 모습으로 혹시나 싶어서, 다시 다른 잔에 혀를 뻗어서 마셨다. 한참 목이 마른 것처럼 허겁지겁 마시고 나서야 소년은 몸의 변화를 느겼다. 아아. 가벼운 목소리를 내봤다. 목소리 변화는 없고, ㅇ의 발음은 그대로. 여학생이 손 이라는 말에 소년은 조용하고 차분한, 평이한 어조로 말하고는 어색한 느낌이 들어서 제 머리로 손을 뻗었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기분에, 소년은 저절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푸른색머리가 예쁘십니다. 정말로 손을 드려야합니까?"
개 취급은 사양입니다만. 소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커다란 손에 엉켜오는 제 검은색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끝도 없이 이어지던 머리카락은, 어깨를 넘어 날개뼈를 지나고 나서야 겨우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나왔다.
1. 멈뭄멈뭄멈뭄미체로만 말하게 되는 술 2. 무지개를 토하게 되는 술(?) 3. 멍뭉이로 변할 수 있는 폴리쥬스 4. 유포리아 묘약(마시면 행복감에 취하게 됩니다. 독특한 진줏빛.) 5. 윤기나는 마법 머리약(feat.엘라스~틴) 6. 펠릭스 펠리시스(행운의 물약. 황금색) 7. 한 가지의 행복한 꿈을 꾸게 해주는 약 8. 그저 평범한 음료수
1. 멈뭄멈뭄멈뭄미체로만 말하게 되는 술 2. 무지개를 토하게 되는 술(?) 3. 멍뭉이로 변할 수 있는 폴리쥬스 4. 유포리아 묘약(마시면 행복감에 취하게 됩니다. 독특한 진줏빛.) 5. 윤기나는 마법 머리약(feat.엘라스~틴) 6. 펠릭스 펠리시스(행운의 물약. 황금색) 7. 한 가지의 행복한 꿈을 꾸게 해주는 약 8. 그저 평범한 음료수
손, 이라는 말에 돌아온 반응은 차분하고 예의바른 남성의 목소리였다. 개가 잔에 담긴 것을 마시려 할 떄 당황해서 막지 못했었는데, 차라리 그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안 그랬다면 끝까지, 개가 아닌 사람에게, 폭포수처럼 아무말을 쏟아낼 뻔했다. 이 상황은 아무리 낯짝이 두꺼운 사이카라 해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경우가 아니었다.
"엗."
엗. 사이카는 그 외의 단어를 내뱉을 만한 언어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고장난 장난감처럼 한참을 버벅거리던 사이카의 언어 능력이 돌아온 것은 아마 꽤, 한참이 지난 다음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