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가 돌려주는 말의 초점이 유안이 그 전에 한 말과는 관계없는 곳에 맞추어져 있었지만, 그런 언행은 유안 본인도 많이 하는 행동이다. 유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양이처럼 입을 쩍 벌려 하품을 하지만, 머릿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울프의 말을 곱씹어 이내 황당한 기색을 갑자기 드러낸다. 옆눈이 아니라, 이번엔 어느 정도 제대로 고개를 돌리고 울프를 응시한다. 그러니까 뒷북이다.
"고야앙이?"
저번에 크리스마스 파티라는 단어를 말했을 때와 비슷한 어조다. 마치 처음 듣는 외국어를 어설프게 따라하는 것 같은 황당한 말투. 그리고 그는 떠올렸다. 저번에 자신을 고양이인 것마냥 대한 정상. 유안은 불만스럽다는 눈빛으로 울프를 계속 응시했다. 의문이 풀린 사람처럼ㅡ실제로 풀린 듯하지만ㅡ 시원한 미소를 짓는 울프. 고개를 끄덕이는 건 덤이다. 유안은 이에 대해 추궁하는 건 그만두기로 하고 고개를 도로 앞으로 옮겼다.
이윽고 울프가 다른 질문으로 옮겨간다. 아까 연설조로 한 말을 완전히 흘려듣지는 않은 모양이다. 사람을 만나는 게 싫으면 어째서 이 직업을 택했느냐. 볼을 톡톡 건드리는 손에는 관심이 없는 듯 눈을 살짝 밑으로 깔아내리다가 유안은 이번엔 자리에서 완전히 일어난다. 천천히.
"추가 질문 하나당 10만원으로 하죠."
그러고는 아무 말. 왠지 울프를 처음 만났을 때보다 돈에 훨씬 집착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주려는 돈을 사양했으면서. 참, 5만원을 잊은 건 아니겠죠? 라고 덧붙이는 쓸데없는 확인도 무표정하게 한다. 왜 일어났나 싶었더니 평소의 느릿느릿한 발걸음을 옮겨 사무실 냉장고로 간다.
//답레를 올리며 갱신합니다! 그리고 우아아아 해피 뉴 이얼!! 2018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수인화인 AU라고...? 음음..그렇군요... 따로 이 부분은 프롤로그는 쓰지 않겠습니다! 금요일까지 수인 or 화인인 캐릭터.. 즉 평행세계라는 느낌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단.. 이 기간 때 혹시 고백 같은 것이 터진다고 한다면... 현실 세계에서도 비슷한 느낌의 사건이 있었고..그 느낌의 흐름대로 고백이 이뤄졌다는 것으로 처리하겠습니다. (끄덕) 그러니까 혹시 이번주에 고백하려고 준비하신 분이 있다면 마음 편하게 드시고..(그거 아님)
처음 질문 5만원에 추가질문 10만원을 포함한, 울프의 지갑 안에 든 모든 현금이 밖으로 나와 유안의 책상 위에 올려졌다. 냉장고 문을 열려던 유안은 울프의 강한 말에 손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 놀란 것 같은 표정이다. 아무리 금수저라고 해도 설마 지갑 안의 돈을 모두 꺼낼 줄이야. 애초에 냉장고에 중요한 용건은 없었다는 듯 곧바로 몸을 돌려서 도로 자리로 걸어 돌아온다. 의자에 털썩 앉고는 팔짱을 꼈다. 진지한 눈빛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돈을 바라본다. 과연 돈의 노예라고 해야할지.
"좋습니다."
과연 돈의 노예. 울프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모두 견딜 수 있을 것 같이 보인다. 돈만 보장이 되니까. 팔짱을 풀더니 책상 위에 올려진 돈을 모아서 일단 구석으로 밀어넣는 그의 얼굴에는 생기가 평소보다 가득하다. 돈만 있으니까.
"그럼 방금 추가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죠."
도로 팔짱을 끼고선 선명한 목소리로 말한다. 의자를 돌려 울프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별 거 없습니다, 누님. 돈을 많이 주니까요. 제가 아까 다다익선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돈만 많이 주어진다면 사람 좀 더 만나는 것 정도야 참을 수 있습니다. 뭐, 하루에 세 사람이 한계지만..."
돈을 위해서 자존심을 버려야하는 상황. 지금 유안이 그런 상황에 처했다. 유안은 황당한 기색을 무표정에 비추었다. 이걸로 몇 번째지, 이런 표정. 지갑 안 모든 돈을 받는 대신 울프 원하는대로 하기로 했다. 유안은 거기에 응했다. 그런데 설마 다짜고짜 이렇게 무릎 위에 앉으라는 소리가 올 줄은 몰랐다. 아니, 울프다운 걸지도 모른다. 유안은 생각할 때의 버릇인 고개 기울이기를 하다가 어떤 한 생각에 미친다. ㅡ누구도 사랑해서는 안 되고 누구에게서도 사랑 받아서는 안 된다. 더불어서 기분 나쁜 기억까지도 떠올라버렸다. ㅡ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주제를 알아! ...뭐어야. 고작 이 상황만으로 이런 기억까지 떠올려버리고. 그렇네. 자신은 가치가 없다. 미움 받는 것, 그 정도의 가치 밖에는.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다.
"......"
복잡한 감정을 안지만 표정은 그저 불만을 가득 보이고 있을 뿐이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서 오싹하게 웃는 울프를 조용히 응시하다가 한숨을 쉬었다. 체중이 평균 그 바로 아래에도 상주하고 있지 않은 지극히 가벼운 몸이 위에 앉았다. 울프에게는 보일지 모르겠지만, 복잡해진 표정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의 속은 언제나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걸지도 모른다. 그런 내면임에도 시치미를 뚝 떼고 그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상자에서 책을 하나 꺼내고는 다영은 경악하며 혼잣말하였다. 세운 손가락 하나 정도의 두께를 가졌으면서 꽤 정성들여 만들어진 것 같은 책. 다영은 급하게 현관으로 가 그 위의 먼지를 툭툭 털었다. 얼마나 안 건드렸으면 이렇게 심하게 쌓였을까. ...아니지. 건드릴 심정이 아니었겠구나. 다영은 자신의 조심성 없는 생각을 책망했다. 먼지가 떨어지니 표지가 확실하게 드러났다. 20XX년 XX고등학교 2학기 어레인지 북. XX고등학교는 명문고를 표방하며 이런 교지들을 학기말마다 내놓았고, 그건 현재진행형이다. 그나저나 이걸 만든 사람은 네이밍센스가 그닥 없어보인다. 거실로 다시 돌아와 상자 옆에 앉았다. 책을 넘기기 시작했다. 오직 하나의 이름만을 좇으며.
"엇."
페이지를 넘기던 손이 멈추었다. 다영은 눈앞에 보이는 두 개의 면 중 왼쪽 것을 응시하였다. XX고의 자랑스러운 독서위원들. 역시 네이밍센스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영은 사진들 중 하나를 바라보았다. 화려하진 않지만 수수한 것이 매력적인 미소녀. 검은색 머리칼은 어깨를 조금 넘고, 앞머리는 단정하게 눈썹 부분에서 일자로 잘랐다. 조금 쳐진 눈매의 눈이 둥근테 안경 너머 정면을 부끄러운 듯 응시하며, 입에는 수줍은 미소를 띄우고 있다.
"언니..."
다영은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진 밑에는 학년 반 번호와 함깨 석자의 이름이 딱딱한 폰트로 박혀있었다. 2학년 10반 9번...민은서. 그렇다. 다영은 계속 이 이름을 찾고 있었다.
다른 곳에는 없나 싶었는지 다영은 천천히 페이지를 다시 넘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다시 멈칫. 2학기의 성적 우수자들을 학번 순서로 소개하는 코너였다. 다영은 거기서도 민은서의 사진을 찾았다. 그랬지. 공부 잘했지, 이 언니... 다시 회상에 잠기려 하다가 문득 또 하나의 사진도 보고 말았다. 예상치 못했던 사진. 자를 때가 다 되어보이는 검은 머리칼, 뚜렷한 이목구미, 작은 눈물점, 의욕없이 정면을 응시하는 연갈색 삼백안... 1학년 3반 20번. 안유안이다. 다영은 아연실색하였다. 설마 이 이름을 이 책에서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뭐야. 여기 학교였어...?"
○
ㅡ대단해, 후배 씨. 교지에 실렸어. ㅡ교오지? ㅡ하핫, 뭐야 그 황당한 표정. 교지 안 봤어? ㅡ...그런 거엔 관심없거든요, 촌스러운안경 누님. 그런데 교지에 실렸다니...? ㅡ후배 씨 2학기 시험 잘 봤나봐? ㅡ아아, 담임 선생님의 협박으로. ㅡ어디어디, 자세히 들어보자. ㅡ뭐어, 별 거 없는데...1학기 시험을 전부 막 봤더니 2학기 중간고사를 제대로 안 보면 수업시간 내내 괴롭힐 거라는 말을 경멸하듯이 하더라고요. 그래서 중간고사를 평균 97점으로 받아갔고...하하, 그 때 그 표정은 아주 가관이었지. 아무튼, 그걸 일순간의 일로 여긴 건지 기말고사 점수가 더 낮으면 2학년 담임으로도 들어갈 거라는 말을 하더군요. 그래서 그냥 마음먹고 보란 듯이 만점을 맞아간 거죠. 아, 길어졌다. 여튼 보십시요, 별 거 없습니다. ㅡ대, 대단해! 그럼 1학기 때 성적은 일부러...? ㅡ수능 때 한 번에 붙을 수 있는데 굳이 3년을 고생할 이유는 없죠. ㅡ천재구나! ㅡ전혀. 누님은 제가 2학기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를 겁니다. ㅡ어쨌든 너 교지에 실렸다고? 이것봐. 2학기의 성적우수자. ㅡ...... ㅡ왜 그래? 감동 먹었어? ㅡ설마요. 와, 이런 걸 교지에 맨날 실어요? 사진까지? ㅡ응, 이 학교 전통 코너야. ㅡ...최악이군. 다음부턴 절대로 90점 이상 안 맞아. ㅡ응? 이렇게 실리는 게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데. ㅡ안유안은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검지로 둥근테 안경을 고쳐쓰며 소녀는 대답했다.
ㅡ그렇구나아. 에리카 같네.
에리카의 꽃말은 고독이다.
//조금 의외의 독백으로 보이기도 하겠지만 떡밥은 천천히 뿌리고 있었습니다! 꺄꺄 역시 떡밥 독백은 재미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