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가끔씩은 이런것도 괜찮겠지. 이 참에 같이 먹을 음료수도 몇개 골라 카운터로 가져갔다. 사람들은 여전히 검은 비를 주제로 대화하고 있었다. 슬쩍 귀를 기울여봤지만, 하는 말들의 대부분이 의문형으로 끝나는 것을 보아 쓸만한 정보는 없어 보였다. 애초에 평범한 시민들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면 안 되겠지. 그는 나중에 뉴스라도 찾아보기로 하면서 카운터에 물건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소란스럽던 사람들의 이목이 유리문 너머로 집중됐다. 그것에 무심한 사람은 오직 알바생과 자신 뿐이었다. 그리고 번개가 친 것일까, 시야가 밝아져 바코드 소리와 함께 유리문 밖을 바라보았다. 번개가 아니었다. 불이 난 것이다. 우리는 침묵하며 유리문 너머의 광경을 바라보기만 바라보기만 했다. 누구도 아까처럼 말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천둥은 마치 재앙의 전조처럼 잠잠히 하지만 확실하게, 사람들의 침묵 속에 파고들었다. 어디에 번개가 떨어진 걸까? 그도 아니면 공장에서 일어난 화재? 어떤 공장이었을까? 머리속에는 조금 전 사람들이 떠들었던 물음이 테이프를 틀어놓은 듯이 반복해서 재생되었다. 그때 누군가의 알림이 울렸다. 고개를 돌리니 학생의 핸드폰에서 울린 알림이었다.
꺼져있던 화면을 비집고 나온 것은 '엄마'라고 쓰여진 글자와, 각각 녹색과 빨간색으로 칠해진 수화기 두 개였다. 학생의 얼굴은 안심의 한 구석을 묘한 불안이 침범한 듯한 모양새였다. 울려퍼지는 착신음 속에서 그는 몇 번이고 엄지손가락을 움찔거렸다.
"...여보세요?" 결국 학생은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댔다. 통화 상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목소리를 낮춘 탓에 학생의 목소리도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는 억지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통화내용을 들어보려다가 관뒀다. 그럴 바엔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뉴스를 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알바생이 계산을 끝내고, 남자는 과자랑 음료수가 들어간 봉투를 들고 편의점을 나왔다. 빗 속에서 잠깐 화재가 난 곳을 바라보았지만, 역시 관두고 집으로 향했다. 지금쯤이면 뉴스에서 검은 비랑 화재의 원인을 다 알아낸 뒤 보도하고 있을 것이다. 그 원인이란 것도 비행기가 운송하던 검은색 잉크를 떨어트렸다거나, 누가 담배꽁초를 불도 안 끄고 버려놨다던가 하는 시덥잖은 것들이리라. 그래도 뭔가 불안해지는것은 어쩔 수 없어서, 남자는 뒤돌아 자신이 나왔던 편의점을 바라봤다. 사람이 없는 거리에서 시야를 방해하는 것은 새까만 색의 빗줄기 뿐이었고, 편의점의 화려한 간판은 그런 빗줄기 속에서도 밝게 빛났다.
잠깐 멈춰서서 편의점을 바라보던 그는,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걸 보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가슴 언저리에서 나타난 찜찜함은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고개를 돌릴수록 더욱 커져만 갔고, 다섯 번째로 고개를 돌릴 즈음에 그는 드디어 편의점에 생긴 이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편의점을 향해 새가 날아들고 있었다. 아니 새였을까... 커다란 날개를 달고 나는것을 나는 알고있는 상식대로 새 라고밖에 표현하지 못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크기가 아니었다. 편의점의 크기에 필적하는 의문의 새는 편의점의 전광판을 향해 날아들었다. 마치 빛을 향해 달려드는 나방 같았다. 그는 걸음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 처럼 열심히 달려 그 자리를 벗어났다. 얼굴을 타고 검은 비가 흐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걸까.
집에 도착한 그는 뉴스를 틀었다. 예상대로 뉴스에서도 검은 비에 대해 보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뉴스에서는 명확한 원인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검은 비가 내린다는 사실만을 보도했으며 알 수 없는 새에 대해서도 다루지 않았기에 그는 홧김에 티비를 꺼버렸다. 조용한 와중에 빗소리만이 선명하게 울려퍼졌다. 그는 바깥을 보기 위해 창문에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창문을 통해 보는 바깥은 뉴스에서 보도하는 것 보다 조금 더 참혹했다. 마치 온 도시 위로 석유가 끼얹어 진 것 같이 검지 않은 곳이 없었다. 군데군데 피어오르는 연기가 아까 편의점에서 목격했던 화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문득 소름이 돋아 화재와 검은 비에 대해 핸드폰에 검색했다. 다급히 두들겨진 핸드폰 위로 턱 끝에 맺힌 검은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뉴스들을 보며 참았던 숨을 작게 내쉬었다.
다행히 내 불길한 직감이 맞는 일은 없었다. 곳곳에서 일어난 화재는 검은 비로 인해 시야가 가려져 생긴 교통사고. 혹여 진짜로 저 비가 석유가 아닐까. 그리 생각했던 스스로의 과도한 망상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긴장이 풀린 후에야 핸드폰 위로 떨어진 검은 물방울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조금 찝찝한걸. 그렇게 생각하며 손가락으로 검은 물방울을 벅벅 닦아내며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에서 나오자 핸드폰이 진동을 울리고 있었다. 핸드폰을 들어보니 순간 전화가 끊어졌고 부재중 기록에는 10통이 넘는 전화가 와 있었다. 서둘러 기록을 확인하니 대부분이 부모님에게서, 몇몇은 타 지역의 친구들에게서 온 전화와 문자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내 안부를 걱정하고 있었는데 문자를 자세히 살펴보니, 검은 비가 내린것은 서울 근교의 몇 안되는 지역인것 같았다. 몇몇 뉴스가 섣불리 유독가스 유출의 가능성을 보도해 주변 지인들이 걱정하며 연락을 했던 것이다.
그는 서둘러 문자를 보내며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창문 바깥에서부터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소리없이 문 앞으로 다가가 구멍 틈새로 문 바깥의 것을 마주보았다. 그것과 눈이 마주치자 문이 거세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문 바깥의 저것은 무엇이며 뉴스에서는 어째서 허위 보도를 내보내고 있는걸까.
갑작스레 내리는 비에 편의점 안으로 몸을 피했다. 젖은 우산을 접어보자 검은 물줄기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유리문 너머의 사람들은 금세 당황하며 가까운 가게나 천막 밑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카운터에 서 있던 알바생이 상투적인 인삿말을 내뱉었다. 뭐라도 인사를 돌려주려다가, 알바생이 이 쪽을 보고있지 않다는 걸 깨닫곤 관뒀다. 대신 그는 진열대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트나 편의점 같은 데 발을 들여놓았으면 뭐라도 사야 한다는 기묘한 책임감에서 나온 발로였다.
어느새 편의점 안으로 네 다섯 씩 사람들이 성급히 뛰어들어왔고 알바생은 그제서야 이변을 눈치챈 듯 했다. 유리문 너머로 먹 처럼 쏟아지는 검은 빗줄기를 주시하던 이들 중 한명이 말을 꺼내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 말소리에 귀를 집중한다.
근처 공장에서 화재가 났다는 것 같아요.
불이 났다는 이유만으로 검은 비가 내릴 수 있나? 그는 솟아나는 의구심을 떠올리며 태연한 척 과자 고르는 시늉을 했다. 그들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댔다. 무의식적으로 집은 과자는 크게 좋아하지도 않는 초콜릿 과자였다.
뭐, 가끔씩은 이런것도 괜찮겠지. 이 참에 같이 먹을 음료수도 몇개 골라 카운터로 가져갔다. 사람들은 여전히 검은 비를 주제로 대화하고 있었다. 슬쩍 귀를 기울여봤지만, 하는 말들의 대부분이 의문형으로 끝나는 것을 보아 쓸만한 정보는 없어 보였다. 애초에 평범한 시민들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면 안 되겠지. 그는 나중에 뉴스라도 찾아보기로 하면서 카운터에 물건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갑자기 천둥이 치기 시작했다.
소란스럽던 사람들의 이목이 유리문 너머로 집중됐다. 그것에 무심한 사람은 오직 알바생과 자신 뿐이었다. 그리고 번개가 친 것일까, 시야가 밝아져 바코드 소리와 함께 유리문 밖을 바라보았다. 번개가 아니었다. 불이 난 것이다. 우리는 침묵하며 유리문 너머의 광경을 바라보기만 바라보기만 했다. 누구도 아까처럼 말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천둥은 마치 재앙의 전조처럼 잠잠히 하지만 확실하게,
사람들의 침묵 속에 파고들었다. 어디에 번개가 떨어진 걸까? 그도 아니면 공장에서 일어난 화재? 어떤 공장이었을까? 머리속에는 조금 전 사람들이 떠들었던 물음이 테이프를 틀어놓은 듯이 반복해서 재생되었다. 그때 누군가의 알림이 울렸다. 고개를 돌리니 학생의 핸드폰에서 울린 알림이었다.
꺼져있던 화면을 비집고 나온 것은 '엄마'라고 쓰여진 글자와, 각각 녹색과 빨간색으로 칠해진 수화기 두 개였다. 학생의 얼굴은 안심의 한 구석을 묘한 불안이 침범한 듯한 모양새였다. 울려퍼지는 착신음 속에서 그는 몇 번이고 엄지손가락을 움찔거렸다.
"...여보세요?" 결국 학생은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댔다. 통화 상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목소리를 낮춘 탓에 학생의 목소리도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는 억지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통화내용을 들어보려다가 관뒀다. 그럴 바엔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뉴스를 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알바생이 계산을 끝내고, 남자는 과자랑 음료수가 들어간 봉투를 들고 편의점을 나왔다. 빗 속에서 잠깐 화재가 난 곳을 바라보았지만, 역시 관두고 집으로 향했다. 지금쯤이면 뉴스에서 검은 비랑 화재의 원인을 다 알아낸 뒤 보도하고 있을 것이다. 그 원인이란 것도 비행기가 운송하던 검은색 잉크를 떨어트렸다거나, 누가 담배꽁초를 불도 안 끄고 버려놨다던가 하는 시덥잖은 것들이리라.
그래도 뭔가 불안해지는것은 어쩔 수 없어서, 남자는 뒤돌아 자신이 나왔던 편의점을 바라봤다. 사람이 없는 거리에서 시야를 방해하는 것은 새까만 색의 빗줄기 뿐이었고, 편의점의 화려한 간판은 그런 빗줄기 속에서도 밝게 빛났다.
잠깐 멈춰서서 편의점을 바라보던 그는,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걸 보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가슴 언저리에서 나타난 찜찜함은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고개를 돌릴수록 더욱 커져만 갔고, 다섯 번째로 고개를 돌릴 즈음에 그는 드디어 편의점에 생긴 이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편의점을 향해 새가 날아들고 있었다. 아니 새였을까... 커다란 날개를 달고 나는것을 나는 알고있는 상식대로 새 라고밖에 표현하지 못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크기가 아니었다. 편의점의 크기에 필적하는 의문의 새는 편의점의 전광판을 향해 날아들었다. 마치 빛을 향해 달려드는 나방 같았다. 그는 걸음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 처럼 열심히 달려 그 자리를 벗어났다. 얼굴을 타고 검은 비가 흐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걸까.
집에 도착한 그는 뉴스를 틀었다. 예상대로 뉴스에서도 검은 비에 대해 보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뉴스에서는 명확한 원인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검은 비가 내린다는 사실만을 보도했으며 알 수 없는 새에 대해서도 다루지 않았기에 그는 홧김에 티비를 꺼버렸다. 조용한 와중에 빗소리만이 선명하게 울려퍼졌다. 그는 바깥을 보기 위해 창문에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창문을 통해 보는 바깥은 뉴스에서 보도하는 것 보다 조금 더 참혹했다. 마치 온 도시 위로 석유가 끼얹어 진 것 같이 검지 않은 곳이 없었다. 군데군데 피어오르는 연기가 아까 편의점에서 목격했던 화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문득 소름이 돋아 화재와 검은 비에 대해 핸드폰에 검색했다. 다급히 두들겨진 핸드폰 위로 턱 끝에 맺힌 검은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뉴스들을 보며 참았던 숨을 작게 내쉬었다.
다행히 내 불길한 직감이 맞는 일은 없었다. 곳곳에서 일어난 화재는 검은 비로 인해 시야가 가려져 생긴 교통사고. 혹여 진짜로 저 비가 석유가 아닐까. 그리 생각했던 스스로의 과도한 망상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긴장이 풀린 후에야 핸드폰 위로 떨어진 검은 물방울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조금 찝찝한걸. 그렇게 생각하며 손가락으로 검은 물방울을 벅벅 닦아내며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에서 나오자 핸드폰이 진동을 울리고 있었다. 핸드폰을 들어보니 순간 전화가 끊어졌고 부재중 기록에는 10통이 넘는 전화가 와 있었다. 서둘러 기록을 확인하니 대부분이 부모님에게서, 몇몇은 타 지역의 친구들에게서 온 전화와 문자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내 안부를 걱정하고 있었는데 문자를 자세히 살펴보니, 검은 비가 내린것은 서울 근교의 몇 안되는 지역인것 같았다. 몇몇 뉴스가 섣불리 유독가스 유출의 가능성을 보도해 주변 지인들이 걱정하며 연락을 했던 것이다.
그는 서둘러 문자를 보내며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 창문 바깥에서부터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소리없이 문 앞으로 다가가 구멍 틈새로 문 바깥의 것을 마주보았다. 그것과 눈이 마주치자 문이 거세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문 바깥의 저것은 무엇이며 뉴스에서는 어째서 허위 보도를 내보내고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