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약을 던지는것을 보자 무언가가 몸을 던지는듯이 뛰어들면서 그 폭발을 대신 맞았다. 아마도 그 끌려갔을 가엾은(허나 지금은 방해물에 불과한) 용병이였다. 퍼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터져나갔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천장과 바닥을 향해 뻗어드는 전선들에서 일제히 그 전류를 쏘아날리기 시작했다.
마치 용각류의 목을 모방한듯한 케이블의 목이 주욱 늘어나면서, 기절해버린 그녀를 가까이서 보기 위하여 그 기계는 움직였다. 직후 그것은 안타깝다는 행동을 모방하는듯이 쯧쯧거리며 바라보았다. 몸을 전선들로 둘둘 말아서, 그대로 천천히 끌고 았다. 폭발 물약에 새카맣게 타버린 희생자는 거추장스럽다는듯이 휙 내던지고 비어있는 캡슐에 눕혔다.
우선은 상처의 치료가 우선이다. 설정을 입력해두고 산소마스크라던가 씌운다음에 캡슐을 닫아서는 치료액을 끠얹어들었다. 모처럼 귀한 선민의 '보급' 이거늘 자신에게 배정된 명령을 위해서라면 잘 아껴야할테니 말이다. 물론 자잘한 흉터가 남는것은 어쩔수없지만, 그건 추후에 관리를 잘하면 되는것이라고 그것은 결론을 내린채로 상태의 호전을 지켜보았다.
당장 자신을 만든 창조주와 일원들이 목표로 삼던 '초병사' 의 반열에 들기 위해서는 오히려 이렇게 얌전한 것이 더 괜찮을터였다. 배출구로 치료액을 뽑아낸다음, 온전해진 그녀를 인형뽑기하듯이 집어들어서, 수술대에 눕혀들고 사지를 고정해둔다. 그리고 감염자 여부를 검토하는듯한 스캔을 지이잉- 훑어들면서 결과창을 조회한다.
"마침 좋은 순간에 일어났군요. 당신은.... 꽤나 흥미로운 약물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응용하였죠."
위이잉, 하고 물약 배합기에서 불길한 검은빛의 용액을 주사기에 가득 채워넣으면서 기계는 저항의 움직임을 그만두고 늘어진듯한 그녀를 보며 말하였다. 그것에게는 어떠한 가책이라던가 고민이라던가는 없었다. 말그대로 프레젠테이션을 브리핑하는듯이 말하면서 주사기가 시커먼 액으로 가득 차오를때쯤 녹색 액체가 담긴 주사기도 꺼내보이며 지긋이 시선을 맞췄다.
"기존의 시제품과 실험품의 차이점을 알기 위해서, 몸을 치료하는동안 조금 손을 썼습니다. 좌신에 기존품을, 우신에 실험품을 투여할테니 반응을 제대로 말씀드려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그것은 기존의 약물을 투여하면서 용액을 그 신체 내부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무미건조하게 그것을 뽑아내고 거즈를 꾸욱 눌러주면서 몸의 변화가 어떻게 나오는지 살펴보면서 꺼내드는것이 있었다. 그것은 우르수스 제식군인들이 사용하는 둔기였다. 오래되어서 녹이 슬었지만, 여전히 그 형태는 튼튼하게 잡혀있었다.
"약물이 좌측 신체에 퍼지기까지는 약 3분이 예상됩니다. 3분후, 당신의 왼팔에 이 둔기를 전력으로 내리칩니다. 계산대로라면 약 70% 확률로 아픔을 덜 느끼고 상처도 나지않을겁니다."
그렇게 뭉그러진 팔을 잡고, 각종 기기들로 면밀히 조사하더니 이윽고 검은 주사를 그 망그러진 팔에 투입해넣어들었다. 기계는 그런 상황을 면밀히 기록해두면서도 머리 부근에 약간의 전류자극을 가한다. 아까같이 쓰러지지않도록, 이성을 억지로 붙잡아드는 것이다. 이번만큼은 기절한 상태로는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예상 효과. 파손된 신체내상 및 외상 재생률 300% 향상 및 자연치유률 50% 증대. 부작용 미검출. 투약 이후의 상황을 기록...."
실시간으로 재생되어가는 것을 클로즈업하듯이 눈의 렌즈가 주시하면서 그렇게 괴로워하는 그녀의 반응도 아랑곳않고 기계는 분석을 시작하였다. 정보를 산출하는 것은 어느정도 되었으나 문제는 알케미스트가 가지고 다니는 약은, 그녀만이 알고 있는다는것.
기계는 자신을 만든 박사의 결과물보다 더욱 진보된 것이 나올 수 있다는 확률의 산출이 들어가지자 공업용 기능의 팔들이 움직이더니 곧 그녀의 목에 회색빛의 초커를 채우고나서 뭔가의 칩을 그 초커 내부에 넣었다. 그리고 지이잉- 하는 기동음과 함께 그녀의 결박을 풀어주면서 팔이 완전히 나았는지 그 팔을 주물러들어갔다. 실로 예의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었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델타팀 휴게실의 문. 여지껏 몇 번이고 드나들었지만,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긴 처음이다.
차마 들어갈 용기가 안 나, 대신 고개를 뒤로 젖혔다. 배선이 조금 드러난 천장에서 옅게 빛나는 전등이 보인다. 검게 광택 처리된 복도를 비추는 LED 전등. 옅지만 일정하게 계속해서 빛나는 모습이 빨리 안 들어가고 뭐하고 있냐 묻는 것 같다.
어휴, 그래. 여기서 백날천날 있어봐야 무얼 할 수 있을까. 마음을 굳게 먹고, 나는 문을 두드렸다.
가벼운 노크 소리에, 들어오라는 차가운 목소리가 회답했다. 나는 쭈뼛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쾅 하고 들어온 문이 닫히고, 방 구석에 있는 CCTV는 보라색으로 점등하며 녹화 종료를 알렸다. 언젠가 겪은 적 있는 모습. 맨 처음, 델타의 성립과 함께 기밀 임무를 전달받았을 때도 이랬다. 혹시나가 역시나다. 시선을 돌리니, 테이블에는 당연하다는 듯 크리스가 앉아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크리스는 옆에 있던 가방에서 종이들을 꺼냈다. 글씨는 깨알같았으나, 같이 들어간 사진들만으로 저게 무슨 종이인지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카시미어에서 있었던 비석의 회수 혹은 파괴 임무. …실패. 로켄 헤시드가 직접 행차하기까지 해, 눈앞에서 탈취당했었다.
용문에서 있었던, 요인 경호 임무. …실패. 경호 대상은 죽지는 않았으나 현재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 하고 있다.
라이타니아에서 있었던, 금발 저격수 티나의 생포, 혹은 사살 임무. …실패. 전용 비석으로 강화된 티나의 아츠는 예상치를 훨씬 상회했다.
실패, 실패, 실패, 실패, 실패. 크리스가 내놓은 것은 우리 델타의 최근 임무 실적. 그 중 성공한 임무, 0건.
"이 자리가 무엇을 위한 자리인지는, 호출될 때부터 알고 있었겠지."
"…너무 잘 알아서 탈이지."
"그래. 최근 델타의 실적은 말 그대로 최악이야. 로도스 내부에서도 작지 않은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그야 당연하지. 임무 실패만 계속되는 팀을 그대로 존속시킬 이유가 없다. 가뜩이나 우리는 기밀 임무 때문에 꼬박꼬박 엘리트 오퍼레이터가 동행하는 처지. 그런데도 실적이 이 따위니 주변의 여론이야 어떨까… 험담은 최근 지겹게 듣고 있다.
"그동안은 내 권한으로 묵살하고 있었지만, 슬슬 한계야. 이제 너희가 실적을 보여줘야 해."
"실적… 말이지.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어떻게 돼?"
그러자, 크리스는 무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임시기동대 델타는 해체 수속을 밟게 될 거야. 따라서 기밀 임무도 거기서 정지, 이후 만들어질 새 기동대가 인계받겠지. 당연하지만, 끝나고 난 뒤에도 발설은 금지고. " "실패 이후에도 임무를 받는 일이 몇 번 있겠지만, 그건 기밀 임무와는 하등 관계없을 거야. 길어야 한 달 내로 델타는 해체될 거고, 해체 이후엔 너희는 다른 팀에 소속되거나 희망할 경우 스탭으로 전향할 수 있어."
"해체인가…."
그래, 그렇게 되겠지. 그래도 좀 씁쓸하다. 기동대의 해체는, 결국 우리가 무능했다는 증거가 될 테니까.
"결국 다음 임무가 마지노선이라 이거지. 이해했어."
"그래, 그리고 다음 임무에서 너희가 유의해야 할 점이 있어."
"유의해야 할 점?"
"다음 임무는, 엘리트 없이 진행될거야."
순간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날 뻔 했다. 크리스의 날카로우면서도 차가운 시선이 아니었다면, 분명 그리 했으리라.
나는 머리를 짚었다. 갑자기 엘리트의 동행이 중단될만한 이유라면, 하나밖에 없지.
"…항의가 들어왔구나. 엘리트가 원래 리더로 있던 팀들에게서."
"그래. 슬슬 한계라고 말했던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야."
엘리트는 아니라고 하나, 그들 또한 충분히 능력있는 오퍼레이터들. 단순히 반감을 가지는 것만 해도 큰 손실이며, 로도스 내에서의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일 테지.
"그래도 말이 안 돼. 여태껏 엘리트가 있었는데도 실패한 임무들인데, 엘리트 없이 어떻게 성공시키란 거야?"
그런 나의 질문에, 크리스는 옆에 있던 커피를 살짝 홀짝였다.
"그 '어떻게'를 찾아내는 게, 너희가 해야 할 일이지."
정말이지, 끔찍할 정도로 무감정한 목소리였다.
내 눈 앞에 있는게, 진정 나랑 똑같은 사람이 맞긴 한 건지. 차라리 라이브러리안이 훨씬 더 사람처럼 보이는 태도에, 나는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이야기는 이걸로 끝. 사흘 내로 다음 임무가 갈 거야. 그 때까지 준비를 철저히 하도록 해."
그 말을 끝으로, 크리스는 문을 열고 방을 나갔다. CCTV는 다시 빨간 불빛을 띄우고, 델타의 휴게실엔 나 혼자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사흘이 지났다. 예고한 대로, 크리스는 단말을 통해 임무의 시작을 알렸다. 특히, 대표자로 선정되었던 나의 단말에는 임무에 대한 상세한 정보까지 추가로 전송되어 있었다.
…대표자를 뽑으라고 했던 게 그냥 대표로 혼날 사람 고르는 게 아니었나. 역시 생각에서 끝내지 말고 진짜 때려주는 거였는데.
슬슬 새삼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한숨이 나오는 와중, 조종석에서 파일럿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착까지 10분, 브리핑 개시할 것."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파일럿의 말에 따라, 나는 수송기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인원들을 불러모았다.
"임무 브리핑할거니까 빨리 앉아. 특히 터스크, 너, 너, 너. 침대에서 빨리 안 일어나?"
"자, 잠깐 누워있기만 한 거거든?!"
수송기 안, 당장 이번 임무로 팀의 존속이 갈린다고 말했는데도 당최 진지해지질 못하는 녀석들을 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어휴… 아무튼 작전구역은 이베리아 외곽의 한 건물이야." "첫 임무는 기억나지? 그 때 호위했던 네프라리아 세셔의 정보를 시작으로 역추적에 역추적을 거듭한 끝에 알아낸 위치고." "평범한 민가처럼 위장했지만, 지하엔 제법 커다란 연구소가 숨어있어. 추측으론, 아마 아츠 유닛을 그 곳에서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고 해."
"아츠 유닛을… 그럼, 내부에 시체같은 게 가득 있다거나…?"
스베노쉬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꼴에 깔끔 떠는 성격인지 뭔지 내부에 소각장으로 추정되는 시설이 있어. 아마 걱정하는 건 없을 거야."
"그래? …다행이다."
좀 더 정확히는 소각장으로 추정되는 시설이 있다고 추정되는 거지만, 줄이는 게 나을 것 같아 말을 아꼈다. 스베노쉬가 고개를 끄덕이고, 이번엔 반대편에서 타케미카즈치가 말을 꺼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위험하다며? 그러니 대충 알아야 할 것만 알고 빨리빨리 가자고. 거기서 뭘 해야 하는데?"
"그러니까… 뭐라도 좋으니, 그 곳에서 로켄 헤시드에 관한 정보를 가져올 것. 디지털 문서든, 서류든 관계 없이. 기대 가능한 리스트 중 최상은 연구 기록이나 수기라는데."
"하, 뭐라도 좋다고? 차라리 제대로 된 성과는 생각도 안 한다고 대놓고 말하지 그래?"
"…난 그냥 브리핑을 맡았을 뿐이고, 임무는 내가 내는 게 아니야. 타케미카즈치."
"쯧, 하여간에."
하아, 진짜. 이래서 대표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는데.
"아무튼. 꽤 방치된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뭐가 있을 지 모르니 언제나 긴장을 늦추지 말 것. 종이 문서의 경우 그냥 들고 오면 되고, 디지털 문서의 경우 미리 나눠준 USB에 담아 올 것. 이상이야."
"…어라? 뭔가 더 자세한 정보는 없는 건가요?"
"그래, 블랙. 안타깝게도. 연구소의 넓이, 함정, 경비 시스템, 그 밖에도 다른 모든 정보가 베일에 싸여 있어. …뭐, 임기응변은 우리들 주특기잖아?"
"그렇긴 하지만요…."
블랙이 뭔가 찝찝하다는 얼굴로 물러났다. 하긴, 정보가 부족한 경우야 많이 있었지만, 이번엔 아예 부족한 걸 넘어 없다시피 하니까.
"뭐, 이미 방치된 지 한참 지났다고 하니까. 그 곳의 경비 시스템들도 제 구실을 못 할 확률이 높아. 그러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마."
일단 그렇게 말은 해 봤지만, 블랙은 여전히 표정을 피지 못 했다.
하긴, 그 인간이 있던 곳인데 뭐가 있을 줄 알고. 시간 좀 지났다고 무력화? 웃기는 소리지. 오히려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그 때, 조종석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 봤을 땐 저 사무적인 태도가 시원섭섭했는데, 지금은 고맙기만 하다.
"다들 들었지? 준비해."
모두 익숙하다는 듯 강하 준비를 한다. 뭐, 얼을 타기엔 좀 많이 떨어지긴 했지. 더 볼 것도 없겠다 싶어, 나는 말했다.
"엑스피아토르."
"타이틀 롤백, 3… 2… 1…"
─0, 아크나이츠. 질릴 정도로 들은 목소리와 함께, 팀 델타는 수송기에서 투하되었다.
밑에서부터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 그러고보면 맨 처음 강하할 적엔 온갖 난동을 다 피워댔던가. 다 옛날 일이다. 이제와선 완전히 익숙해져서, 잡생각을 하거나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생겼다. 그리고 익숙해진 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듯, 다들 정돈된 자세로 일사불란하게 떨어지고 있다.
…뭔가, 영화 속 한 장면 같아서 좀 멋지다. 누가 사진 한 번 찍어주면 참 괜찮을텐데, 당연하게도 현실성 없는 생각이겠지. 나는 눈물을 삼키며 강하했다.
슬슬 땅에 가까워지자, 삑- 하는 소리와 함께 아츠 유닛에서 연기가 새어나온다. 연기에 닿자, 낙하하던 몸은 급격히 속력을 잃었다. 순간 두둥실 뜬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날 정도. 로도스의 자랑… 까진 모르겠고, 명물 중 하나인 역분사 안전 착지 장치. 떠오른 몸은 그냥 맨 땅에서 가볍게 점프를 한 것 마냥, 부드럽게 착지한다.
겉을 위장한 것도 모자라 외진 곳에까지 지어놨기 때문에 바로 앞까지 날아와 강하할 수 있었다. 이게 시내 한중간에 있었으면 이런 짓 못 했지. 그날 밤 TV에 나올 일 있으려고.
사전에 브리핑했던 대로, 연구소의 외관은 철저하게 민가처럼 꾸며져 있었다. 방치되었다는 말이 허언은 아닌 듯, 꽤 낡은 모습이었지만.
"좋아, 저기로 들어가면 된다 이거지?"
"응? 아닌데?"
"…응?"
일단 막무가내로 들어가려는 터스크를 멈춰 세웠다. 들어가기에 앞서 '투시'로 살펴본 결과, 저 바깥의 문은 가짜다. 정확히는, 저 문을 열어도 진짜로 평범한 민가밖에 안 나온다.
"진짜는─ 여깄지."
뒷마당의 흙을 조금 파헤치자, 숨겨져 있던 문이 드러났다. 나름 숨긴다고 숨긴 것 같지만, 그래봤자 나한텐 안 되지.
근데 얘 문 한번 참 이상하게 짓네. 나무 문에, 테두리는 금으로 둘러싸고. 용의 머리가 동그란 링을 물고 있는 장식품이 손잡이라.
"…묘하게 퀄리티가 높은걸요."
"만화를 어지간히도 봤나 보네. 누가 연구소 비밀문을 이렇게 만들어?"
"그 녀석이니까. 뭔들 안 이상하겠어?"
스베노쉬의 질문에 대꾸하며, 타케미카즈치가 문을 열었다.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흙먼지를 털어내며 열리는 문.
머리 위로 태양이 떠 있음에도 이상하게 어둠이 들이찬 문 안쪽의 모습에, 스베노쉬가 검을 들여 빛을 밝히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화륵거리는 소리가 문 안쪽을 채웠다.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 있던 횃불이 순차적으로 발화했다. 넘실거리나 미약한 불꽃이 통로를 은은하게 비추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레트로 게임 같은 곳에서 자주 나오지 않아?"
스베노쉬의 말대로다. 리소스가 한정되어있던 옛날 픽셀 게임들이 곧잘 채용했던 배경. 벽을 가득 채운 투박한 벽돌과, 결코 충분하지 않은 광원, 그리고 무지막지한 크기. 그 셋이 한 데 모여 만들어진 음산한 분위기가,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밖에 없다.
"…실험실이라며? 웬 던전을 만들어놨어?"
"침입자 대비용… 이 아닐까, 아마도."
누가 경비 시스템이랍시고 이런 짓을 하나 싶었지만, 생각해보니까 그 녀석이라면 아주 말이 안 되는건 아니겠지 싶었다. 그래도 대체 머리에 뭐가 들어야 연구소를 통째로 이렇게 만들 생각을 하는 건지, 원.
"그럼 어디… 한 번 뭐가 있나 보자고."
눈에 미세한 열기가 감돈다. 유닛을 통해 눈을 매개로 발동된 아츠는 내 시야에서 방해물을 철저하게 격리했다.
가장 먼저 칠흑같은 어둠이 자취를 감추었다. 기껏 어중간하게 박아둔 횃불의 악의도 쓸모없이, 던전은 그 미로같은 속내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그 다음은 벽돌이 위에 허공을 덧칠하듯 사라졌다. 투명해진 미로는 정말이지 날카롭고 폭력적인 함정들을 수도 없이 품고 있었다. 나는 아츠를 조금 조정했다. 방해물로 취급되어 사라졌던 것들이 일부분만 다시 세상에 나타났다. 그것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는 건 금방이었다.
너무 멀리 있는 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완벽히 파악하진 못 했으나, 나는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해 아츠를 해제했다. 눈이 다시 푸르게 돌아오며, 시야 위로 다시 현실이 덧씌워진다. 어둠이 다시 아가리를 벌리고 손짓하는 것을 나는 일단 무시했다. 이게 어딜 봐서 연구실인지, 정말 작정하고 꾸며뒀구나. 그리 생각하며 나는 아까 본 것을 모두에게 알렸다.
"알겠지? 그러니까, 잘 보고 따라와야 해. 뭐 하나라도 잘못 만지지 않게 조심하고."
모두가 그럭저럭 납득하는 기색이자,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움직였다. 악랄하게도, 트랩은 첫 번째 계단부터 깔려있었다. 아무리 경계한들 미리 알지 못한다면 그대로 밟을 수 밖에 없도록. 하지만 이걸 어째, 미리 알아버렸네. 나는 그대로 함정을 피해 발을 움직였다.
벽이고 바닥이고 낡은 벽돌로 가득했던 통로는 어디가고, 제법 미래적인 디자인의 검은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 전체에 문양처럼 새겨진 조명에서 하늘색 빛이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촛불 정도의 밝기였지만, 의외로 이 곳을 전부 밝히기엔 충분했다. 재료로 쓰인 검은 금속 때문인 듯 했다. 빛의 반사율이 심상치 않은 것이, 이 정도면 사실상 색만 까만 거울이다. 조명의 빛 때문인지, 내 모습은 가까이 가야 비춰졌지만.
방의 한쪽 벽면에는 홀로그램 패널이 있었다. 벽을 가득 채울 기세로 떠오르는 수많은 화면을 보자니, 아무래도 여긴 기록실이나 그에 준하는 곳인 모양이다. 다행히도, 데이터는 온전히 남아있는 듯 보였다. 아니면 그 녀석이 일부러 남겨뒀을 수도 있고. 어찌됐건 이 쪽엔 좋은 일이지.
패널 밑쪽에는 어떤 기계와 함께 터스크가 있었다. 저게 아마 메인 컴퓨터 비스무리한 무언가인 모양이다. 타케미카즈치가 해킹했는지, 살짝 그슬려있는 기기에 터스크가 USB를 꽂았다. 그와 동시에, 패널엔 데이터 이전 중이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끝나기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아?"
"그러니까, 이전 완료까지 11분…13분…12분…"
"너 컴퓨터 써본 적 없지?"
일단 어림잡아 10분 정도인가. 데이터를 다 옮기고 나면 바깥으로 나가 수송기를 호출하면 될 것이다. 그 때까진 잠깐 쉬어도 되겠지.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엘리트도, 정보도 없어서 걱정했는데. 생각보다는 좀 쉬운걸…."
"어머나, 설마 하던 배틀 정키 타입?"
"전혀 아니거든? 그냥… 너무 순조로워서 뭔가 찜찜하단 말이야."
"과아연, 여자의 감이란 녀석인가. 404 오류, 본 기체에게서 해당 모듈을 찾을 수 없습니다. 삐비빅."
"…이제 와서 로봇 흉내 내기엔 많이 늦었지 않아?"
"저런, 하지만 사실인 걸 어쩌나."
하여간에. 나는 고개를 살짝 젓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별 건 아니고. 우리 임-시 리더에게 작은 조언을 해 주러 왔지."
"…대표자라고 해 줄래?"
"현실에서 눈을 돌린다고 뭔가 바뀌는 건 없─ 어이쿠, 알았어. 대표자님."
…저게 진짜.
"뭐, 그래.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 연구실이 방치되어 있었다고 했던가?"
"그렇지? 건네받은 자료에도 그렇게 나와있었고."
"자알- 생각해 봐. 그런 것 치곤 이상하게 관리가 잘 되어있었지 않아?"
"그건…."
확실히. 어딘가 순식간에 지나가서 놓친 감이 있긴 하지만, 다시 되짚어보니 수상한 점이 많다. 이 방의 전력이야 타케미카즈치가 공급했다 쳐도, 다른 함정들은? 그만한 수의 함정들이, 아무런 관리 없이 부식은 커녕 조금의 녹도 슬지 않고 있을 수 있을까?
거기다, 아까까지 지겹도록 봤던 벽돌. 얼핏 보기엔 그냥 낡은 벽돌로 보였지만… 연금술사인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건 '낡아보이도록' 만든 벽돌이다. 겉을 조금 깎아내고, 약품을 뿌려주면 세월의 흔적을 덧입히는 건 어렵지 않다. 그 벽돌들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애초에, 연구소라며. 연구를 위한 도구들은 어디 있었지? 있었던 건 그저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함정, 그것도 오로지 새 것들로만.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건.
"…애초에, '방치'된 게 아니었던 건가?"
우리가 미리 올 줄 알고, 연구소를 이렇게 개조해 놓은 거라면.
하지만 그러면 새로운 의문이 남는다. 애초에 우리가 오는 건 어떻게 알고? 라이브러리안을 쳐다보자, 그녀는 그저 싱긋 웃었다. 더 알려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데이터 이전이 완료된 모양인걸, 슬슬 돌아갈 준비를 하자고. 대표자님."
라이브러리안이 기기로 다가가, USB를 빼 품에 넣었다. 다른 모두도 슬슬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일단, 이 일은 돌아가서 항의를 해 봐야겠다. 크리스든, 매그에게든. 그렇게 생각하며,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이타니아와 시라쿠사 사이. 재앙에 휩쓸려버리고 만 이동도시의 구제가 바로, 델타팀이 받은 임무의 내용이었다.
"쯧, 이젠 하다하다 자원봉사를 시키는군."
그렇게 말한 타케미카즈치는 흥미 없다는 말을 남기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뭐, 그래. 차라리 저게 낫다. 타케미카즈치의 성격을 생각하면, 구제를 맡겼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어련히 오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타케미카즈치에 대해 신경을 끄고, 임무의 대상이 된 이동도시를 바라봤다.
재앙에 휩쓸렸다는 말이 빈 말은 아닌 듯, 이동도시의 상태는 처참했다. 폐허, 폐허, 폐허. 눈에 보이는 거라곤 온통 폐허 뿐. 바람막이라도 될 법한 무언가조차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처참하게 박살나있다. 그 사이사이에서, 누더기를 입은 사람들이 신음했다.
그나마도,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재앙의 영향을 적게 받은 외곽지역이다. 중심부는 이것보다 훨씬 심각한 광경이겠지. 애초에 재앙을 마주하고서도 이동도시가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기적이나 다름없으니, 그마저도 상당한 행운인 셈이다.
"그나저나 구제라… 뭘 어떻게 해야 좋은지, 원."
"글쎄, 저런 것들을 도와주면 되는 거 아냐?"
스베노쉬가 남의 물건을 훔쳐 달아나고 있는 소매치기를 가리켰다. 물건의 원주인이 소매치기의 뒤를 쫓는다. 그러다 소매치기가 발이 걸려 넘어지고, 물건의 주인은 그런 소매치기를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팬다. 그렇게 맞고도, 일단 살아는 있는지 꿈틀거리는 소매치기.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와, 그의 주머니를 뒤져보곤 혀를 차며 떠나간다.
…옛날 생각이 난다.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폐허 아니랄까봐 치안이 개판이구만, 이거."
"어쩌겠어, 지금 여긴 경찰도 뭣도 없는걸."
"혹시 모르지, 저 안에 경찰이었던 양반이 섞여있을지도."
"…."
"하하, 로봇 조-크."
로봇이라서 그런가, 쟤는 참 한결같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무튼, 흩어지는 게 좋겠지?"
"아무래도? 뭉쳐다니면 효율이 안 좋을 테니까."
"나야 뭐, 상관없지."
"좋아, 블랙은?"
"네, 네?! 아, 저도 괜찮아요!"
명백하게 당황한 모습. 이 이동도시의 모습이 그렇게 충격적이었던 걸까. 얘를 혼자 놔둬도 되는 건지, 갑자기 불안해졌다.
낯선 누군가가 그녀의 주머니를 노렸다. 아까도 보았던, 지금 이 곳에 흔하디 흔할 소매치기.
문득, 블랙 헤븐은 떠올렸다. 스베노쉬가 가리켰던 그 소매치기. 발이 걸려 넘어지고, 죽기 직전까지 처절하게 맞았던 그 소매치기.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그를 돕기는 커녕, 주머니를 뒤지다 침을 뱉고 떠나가는 다른 사람들. 그렇게 방치된 그가, 이 폐허 속을 싸늘하게 굴러다니다, 누군가의 발에 밟히는 모습.
무심코, 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어느새 그녀의 손에 들린 흉악한 배트는, 소매치기의 머리를 날려버리고 있었다.
아직 상황을 판단하지 못한 머리와 다르게, 몸은 착실히 이미 죽어버린 그에게 다음 공격을 가했다. 머리 없는 몸이 세로로 뭉개지며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길고 길었던 척추는 어긋날 새도 없이 단번에 뭉개졌다. 철퍽. 추잡하게 양단된 몸이 방금 만들어진 피웅덩이 위로 넘어졌다.
"…어?"
끼릭, 도쿠로의 고개가 돌아갔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 하고 있는 건지, 이해를 거부하고 있는 건지. 아직 무언가 멍한 상태인 도쿠로의 머리는, 똑같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에메랄드 빛 눈동자를 보고 반사적으로 속삭였다.
목격자라고.
"미안해요."
도쿠로가 날아들었다. 바람을 찢는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배트를 소녀는 피할 수 없었다. 두개골은 연약했다. 차라리 그 풍성한 갈색 머리카락이 조금 더 거슬렸다. 물론, 둘 다 의미 같은 것은 갖지 못했다.
도쿠로 덕에 잔해 밑에서 빠져나왔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도쿠로에게 살해당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행운이 불행이 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