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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천전야◆wxe.t7R5gc
(OI.V6iPaq2 )
2021-08-15 (내일 월요일) 21:4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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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미스트
(9arEJmD3Y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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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9 (거의 끝나감) 22:26:38
밤과 낮의 경계에 위치하여, 그렇기 때문에 저녁(夕)의 태양(陽)이라 불리우는 시간. 죽기 직전에 가장 화려한 것은 자연조차도 예외가 아니라는 듯, 비평선 끝자락에 두 발을 걸친 태양은 온 하늘을 붉게 불태우며 조용하지만 아름답게 사그라들고 있었다. 달은 이미 반대편 하늘에 희미하면서도 드높게 떠올라 있어, 천구(天球)가 완전히 뒤집어질 때만을 기다리고 있을 무렵. 알케미스트는 겨우겨우 타케미카즈치에게서 풀려날 수 있었다. "사람한테 전기를 그렇게 거리낌 없이 쏴대다니…, 분명 전에 여러번 해 봤을 거야…." 아직 보진 못했으나, 분명 벌겋게 부어올라 있을 귀는 아직도 만지면 이상한 감각이 든다. 그러고보면 괴롭혀지면서 이상한 소리를 제법 냈던 것도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다른 기억이 너무 강렬했던 탓이다. 지금으로선 그저 아무 일도 없기만을 바랄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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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미스트
(9arEJmD3Y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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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9 (거의 끝나감) 22:27:30
"…그러고보면 밥도 못 먹었네." 어떻게 사정사정하면 뭐라도 만들어 주지 않을까 생각하며 식당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탁, 탁. 규칙적인 소리가 복도를 채운다. 발소리라기엔 지나치게 가볍고, 또한 선명한 소리. 옛날에 선생님이 지시봉으로 화이트보드를 두드릴 때 비슷한 소리가 났던 것을 기억한다. 그녀가 알기로, 이런 소리를 내는 것은 한 명 뿐이다. "마리?" 눈을 감은 소녀는 고개를 돌렸다. 두 눈을 감고, 그 대신이라는 듯 한 손에 지팡이를 든 소녀. 가슴께까지 내려오는 윤기 나는 금발과 고급스러운 초록색의 원피스를 본다면, 어느 귀족집이나 부호의 따님으로서 치료를 위해 입원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알케미스트는 안다. 천수국을 닮은 소녀의 코드네임은 마리골드. 가족이나 친지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한, 그녀와 똑같은 델타의 오퍼레이터다. "응? 알케─" 익숙한 목소리에 소녀는 알고 있는 이름을 부른다. 그러나 말을 끝맺기 전에, 소녀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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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미스트
(9arEJmD3Y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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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9 (거의 끝나감) 22:28:10
"─알케 할머니?" "뭐!!!" 쿠당탕, 그리고 탕탕탕 거리며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 자신의 바로 앞에 멈춰서선 격하게 숨을 고르는 소리에, 소녀는 숨길 수 없는 웃음을 내보였다. "후후후. 왜 그래, 알케 할머니?" "…너, 이건 꺼내지 않으려 했는데." 알케미스트는 가방을 열고, 약물 하나를 꺼냈다. "으응-? 뭘 꺼낸 거야?" "카카오를 정제해 굳혀 설탕을 뿌린 것에 박하 추출물을 첨가한-" "미안, 메리가 잘못했어." 얻어낸 사과에 알케미스트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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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미스트
(9arEJmD3Y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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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9 (거의 끝나감) 22:29:59
"흐흥. 아무튼, 어디 가는 길이야?" "으음. 이브, 이거 말해도 되는 걸까? 응. 응. 그렇지?" "무슨 일이 있길래…?" 알케미스트의 물음에, 소녀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메리 씨는 있지, 도망쳐 나오는 길이야." "에, 도망쳐? 뭐로부터?" "터스크 씨가 식당에서, 응. 마파두부? 를 쏟았나봐. 엄청 매워서, 급하게 도망쳐 나왔어." "터스크…!" 그 녀석, 첫 임무 때도 그러더니. 아니, 그 전에 결국 못 참고 들어갔잖아. 조만간 직접 찾아가야겠다 생각하며, 그녀는 가장 신경쓰이는 걸 물었다. "그럼, 식당은?" "으응, 다 치울 때 까지 막아두는 것 같아." 아아, 최악의 상상이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이래선 냉장고에서 아무거나 대충 꺼내먹는 짓도 불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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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미스트
(9arEJmD3Y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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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9 (거의 끝나감) 22:30:53
"으으으…, 하는 수 없나." 아쉬움을 숨기지 못하며, 알케미스트는 소녀에게 인사를 남기고 돌아가려 했을 때였다. 돌연히, 소녀는 그녀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마리? 왜?" 그 말에, 소녀는 고개를 젓더니. "마리는 메리야. 하지만, 밖에선 메리는 마리야. 그렇지만 안에선 마리는 메리라고 불러줘." 메리는 그렇게 말했다. "…응, 메리. 왜?" "알케 언니는, 지금부터 뭘 할 생각이야?" "글쎄, 식당 열릴 때 까지는 그냥 쉬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다시 말해서, 딱히 할 일은 없다는 거지?" 알케미스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메리 씨가 알케 언니를 잠깐만 초대해도 괜찮을까?" 두 눈을 감은 미소는 인형과도 같아, 거절할 수 없는 신비로움이 말꼬리를 타고 은은하게 묻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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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미스트
(9arEJmD3Y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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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9 (거의 끝나감) 22:33:06
* * * 메리의 방은 단적으로 말해 살풍경했다. 기본적으로 달려있는 전등. 잠을 자기 위한 침대, 혹시 모르니 놔둔 책상과 의자. 그마저도 메리에겐 전등은 딱히 필요가 없는 듯 보였다. 창문 너머의 황혼은 결코 밝지 않았건만, 소녀는 개의치 않고 들어가 침대 위에 자리를 잡았다. "응. 누추하지만 들어와." "어, 실례할게?" 알케미스트는 의자를 끌고 와 메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으음. 그래서, 무슨 일이야? 메리." 초대를 받아서 오긴 왔지만, 역시 이런 방에서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소녀는 평소에 항상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또 언제나 '이브'랑 함께 있으니 별다른 가구를 들여놓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한 거겠지. 그 점에 입각해 알케미스트는 왜 자신을 불렀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었고, 그 말을 들은 메리는 가볍게 투덜거렸다. "실은 말이야, 이브가 맨날 바쁘다면서 메리랑은 놀아주지 않는 거 있지. 으응. 그치만 이브, 최근엔 계속 서류업무가 바쁘다면서 필요할 때가 아니면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서류업무…." 이브는, 아마 메리의 또 다른 인격으로 추정되는 존재다. 광석병의 영향인지, 아니면 선천적인 것인지. 분명한 것은 그녀는 메리에게 있어 둘도 없는 친구이자. "공무-? 으응, 메리는 그런 어려운 말 몰라. 그치만 이브, 임무 때가 아니면 먼저 말도 잘 안 하는걸." 메리보다 훨씬 어른이라는 것 정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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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미스트
(9arEJmD3Y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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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9 (거의 끝나감) 22:34:06
"그래서, 오늘은 알케 언니를 초대했어. 와아-" "와, 와아-" 방 안을 울리는 둘의 박수 소리. 그래도 결국 할 만한 게 대화 뿐인데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잠시. "그거 알아?" "응? 뭐가?" "메리에겐 메리1회분만큼의 메리늄이 존재해." "…메리 1회분은 어떻게 사용하는 거야?" "으응- 미안해. 아프게는 잡아먹지 말아…, 응? 이브, 그거 아니라고?" 의외로 대화는 메리의 주도로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이브와 계속해서 대화하던 경험에서 비롯된 건지, 소녀의 신비로운 분위기가 말문을 트이게 한 건지. 의외로 알케미스트는 막히는 일 없이 말을 해 낼 수 있었다. "천국씨가 장미를 줬을 때? 으응. 고맙고, 소중하고, 제법 귀여웠을지도. 아, 이브는 박장대소했지만." "생각보다 감상이 평범하네…." 처음 만났을 때의 일. "그 때 메리 씨는 잠들어 있어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알지 못하는 걸. 알려 줄 수 있을까?" "으음…. 리더가 출발하는 걸 까먹고 서 있다가, 도와주려는 인원들이랑 같이 뒤쪽으로 넘어져서 구른 정도려나." "에에, 괜찮았던 거야?" "다들 튼튼해서 그런지 별 외상은 없더라구. 의사의 진단이니 신뢰해도 좋아!" 임무를 위해 수송기에 탔을 때의 일. "화이트 씨의 능력-? 으응, 신기했었지. 엄청 뜨거웠는데, 순식간에 엄청 차가워졌어. 응, 이브. 이미 지난 일인걸, 괜찮아." "절명 같은 말이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건 좀 그래. 엘리트는 엘리트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 스노우 화이트의 아츠를 겪었을 때의 일. "그러고보면 같은 팀이라면서, 정작 얼굴 맞댄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단 말이지." "응. 메리도, 다른 사람들의 정보 같은 건 몰랐었는걸." 그렇게 점점, "그러고보면 그 때 보여줬던 반응도 그렇고, 리더랑 이브는 뭔가 공통점이 있어?" "응, 이브. 말하지 말라고? 그래도…. 앗, 그건 안 되는데. 알았어." 이야기는 깊은 곳까지 침범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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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미스트
(9arEJmD3Y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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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9 (거의 끝나감) 22:34:22
"이브는, 메리에게 어떤 존재야?" "으응- 그건 조금 민감한 질문인데." 앗, 알케미스트는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이놈의 혀가 방정이지 자책하면서도, 급히 상대의 안색을 살피는 눈빛. 메리는 그런 그녀를 앞에 두고 슬며시 웃었다. "그치만 알케 언니니까. 응, 대답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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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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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9 (거의 끝나감) 22:35:00
소녀는 말했다. "이브는, 친구야." "「나」를 지켜주고, 「나」를 위해주는." "물질세계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응. 항상 곁에 있어주는."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 "그래서, 최근에는 항상 바쁜 것 같으니까." "너무 이브에게 의존하는 것도 좋지 않을거라 생각해서." "응, 알케 언니를 초대해 봤어." "대답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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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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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9 (거의 끝나감) 22:35:26
시종일관 눈을 감은 채, 꿈을 꾸듯이 소녀는 말했다. 혹자는 어린 나이에 미쳐버린 소녀에게 동정심을 품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그녀가 앓고 있는 정신병에 침을 뱉은 뒤 지나갈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갈 길을 가겠지. 하지만 알케미스트는 혹자도, 누군가도, 어떤 사람도 아니었음에. "응." 조용히, 긍정했다. "전에도 말했었지? 부럽네. 난 친구랍시고 있는 게 그 녀석 하나 뿐인데." "그-녀석?" "그런 녀석이 있어. 케이크 값만 200번을 넘게 털어간 녀석이…." "으음, 힘내?" 그 말에, 그녀는 살짝 웃고는 손을 뻗었다. 소녀는 살짝 움츠러들었으나, 이내 별다른 거부감 없이 손길에 몸을 맡겼다. "힘내야지. 그런 녀석이라도 친구는 친구니까." "응- 으응." 태양이 완전히 모습을 감출 무렵, 둘은 한동안 그렇게 있었다. "그러고보면, 지금쯤 식당은 열었으려나." "글쎄. 확인해보면 된다고 생각해?" "역시 그런가…. 아, 그렇지." 알케미스트는 가방을 열었다. "잠깐만 기다려봐, 언니가 지금부터 개쩌는 거 만들어줄게."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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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미스트
(9arEJmD3Y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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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9 (거의 끝나감) 22:36:05
만드려는 건 딱히 대단한 게 아니다. 따지자면 평범한 자양강장제. 먼저 피로를 없애주는 칠색버섯을 잘게 썬 뒤, 조각에서 즙을 짜낸다. 그 다음 면역력을 활성화시키는 미르 과즙과 섞어준 뒤 끓이고. 마지막으로 몸의 재생력을 높여주는 라이프베리의 씨앗을 곱게 갈아 섞으면…. "이렇게 보랏빛의 물약이 완성되지." "보-라?" "후후, 대답해줘서 주는 선물이야. 마음 놓고 들이켜도 돼." "으음, 잘 먹겠습니다? 마시겠습니다?" 메리는 물약을 받아들고 그것을 한 모금씩 마셨다. "푸하. 으음, 살짝 배부를지도." "아, 이런. 성인 기준이라 메리에겐 좀 많았으려나. 괜찮아?" "괜찮긴 한데, 으음…. 이브? 무슨 일이야? 느낌이 좋지 않다니?" "잠깐만, 어린아이에게 약을 먹여본 경험은 몇 번 없어서…,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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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미스트
(9arEJmD3Y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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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9 (거의 끝나감) 22:36:49
신발 너머로 느껴지는 이질감에, 알케미스트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황금을 녹여 만든 듯한 실들이, 그녀의 신발 너머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어라…?" 소녀의 머리가, 자라나기 시작한다. 물 속으로 떨어진 잉크처럼, 메리의 머리카락은 계속해서 제 크기를 불려나가고 있었다. "…약이 너무 잘 든 모양인데." 범인은 아마도─ 라이프베리. 한껏 성장 중인 육체가 과도하게 영향을 받아, 가장 생장이 빠른 부위인 모발을 끊임없이 재생시키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알케 언니?"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듯, 메리가 상황을 물어온다. 하지만 늦었다. 황금빛의 물결은 이미 수없이 얽히고 설켜, 진즉 이 방을 잠식해나가고 있었다. 무심코 뒷걸음질치던 알케미스트가 무언가에 걸려 넘어진다. 머리카락이다. 일어나고자 짚은 손을 무언가가 덮는다. 머리카락이다. 급히 빠져나오려고 하나, 그 몸을 무언가가 옭아맨다. 머리카락이다. 거미줄에 걸린 나비 꼴이 된 그녀에게, 아마 지금 무엇보다도 무서울 한 마디가 들려왔다. "설명, 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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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미스트
(9arEJmD3Y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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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9 (거의 끝나감) 22:38:08
─알케미스트의 델타팀 답사 일지, 마리골드 편─ "응. 응. 생각보다 솜씨가 좋아? 이브도 그렇게 생각해?" "이발사 노릇은 생전 처음인데 말이야…." <부제: 자승자박>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