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른 사람과 만나면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가 남자친구든, 그냥 친구든, 사업하는 동료든, 여행하는 친구든, 누구와 만나든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생김새가 조금씩 다르듯이 생각과 습관과 취미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저 사람이 나하고 같겠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저 사람은 나하고 다르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낯선 사람과는 갈등이 없어요. 그냥 한번 보고 마음에 안 들면 안 만나면 되니까요. 그런데 얘기를 하다가 ‘한국 사람이네!’ 하고 공통점이 나왔어요. ‘경상도네!’ 하고 지역 공통점이 나오고, ‘우리 학교 출신이네’, ‘불교 신자네’ 이렇게 자꾸 공통점이 나옵니다. ‘너도 여행 좋아하니?’ 이렇게 공통점이 자꾸 발견되면 친해지게 됩니다. 같은 점이 5가지, 10가지, 20가지가 쌓이면 이제 그 사람에게 정이 갑니다. 그래서 친구가 되든지, 사업을 같이 하든지, 연애를 하든지 해서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인간의 의식은 공통점이 많을수록 ‘저 사람은 나하고 같아!’ 이렇게 자동으로 받아들입니다. 같으니까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게 되는 거예요. 나중에는 서로 같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같이 살아보면 결혼한 첫날부터 계속 다른 것이 발견됩니다. 음식 먹는 습관이 다르고, 화장실에서 수건을 쓰고 말려놨다 또 쓰는 사람도 있고, 한 번 쓴 수건은 세탁기에 바로 넣는 사람도 있고, 옷 던져놓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이렇게 온갖 다른 것이 계속 발견됩니다. ‘이것도 틀리네!’, ‘저것도 틀리네!’ 이렇게 다른 점이 발견되면서 스트레스가 계속 쌓여서 어느 순간에 가서는 ‘저 사람하고는 맞는 것이 하나도 없네. 성격이 너무너무 안 맞는다!’ 하면서 도저히 같이 못 살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런 인간의 인식 작용 때문에 낯선 사람을 만나서 친구, 애인, 부부가 되기도 하고, 또 헤어지기도 하는 거예요. 이것이 나쁜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만나면 헤어지면 안 된다’ 하는 전제를 하면 헤어질 수밖에 없는 삶이 고통이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스님이니까 여자를 만나면 안 된다’ 하는 전제를 갖고 있을 때 만남이 이루어지면 괴로움이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정신작용의 원리 때문에 만났다가 헤어지기도 하고, 헤어졌다가 만나기도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 만나도 별일 아니고, 헤어져도 별일 아니에요. 또 그런 정신작용의 원리를 알게 되면 헤어질 필요도 없습니다. 또한 고향이 같고 취미가 같고 여러 가지 같은 점이 있다고 해서 같이 살아야 할 이유도 없어지게 됩니다. 같은 것은 그대로 두고, 그냥 따로 살면 되지요. 또 다른 점이 많이 발견됐다고 헤어질 이유가 없습니다. 서로 다른 상태를 그대로 두고 한집에 같이 살면 됩니다. 이렇게 헤어질 이유도 특별히 없고, 만날 이유도 특별히 없게 되면, 인간관계가 자유로워집니다.
만날 때는 ‘인종, 민족, 종교가 다른 사람과 만나면 안 된다’ 하는 전제를 하기 때문에 만나는 것이 어렵습니다. 또 헤어질 때는 ‘결혼이나 연애나 무엇을 했기 때문에 헤어지면 안 된다’ 하는 전제를 하기 때문에 헤어지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만날 때는 같다는 이유로 만나고, 헤어질 때는 다르다는 이유로 헤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헤어지고 만나는 것 자체는 괴로움이 될 수가 없습니다. 헤어지고 싶으면 헤어지면 되고, 만나고 싶으면 만나면 됩니다. 그것이 괴로움이 되는 이유는 ‘만나면 안 된다’, ‘헤어지면 안 된다’ 이렇게 전제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원리들을 잘 알면 조금 개선할 수가 있습니다.
도저히 같이 못 산다고 하는데, 도저히 같이 못 살 이유가 있을까요? 10년을 같이 살았는데 앞으로 5년을 더 못 살 이유가 없잖아요. 반대로 10년이나 살아봤으면 됐지 죽을 때까지 한 사람과 같이 살아야 할 이유가 특별히 있나요? 바꿔가면서 좀 살아보면 어때서요. 그것이 무슨 큰 문제예요? 그런데 ‘한 사람을 이해하는 것도 엄청나게 복잡한데,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또 그 과정을 거치는 건 귀찮다. 만나던 사람하고 계속 만나는 게 차라리 낫겠다!’ 이런 생각이 든다면 같이 살던 사람하고 계속 사는 게 낫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굳이 한 사람하고 계속 살 거 있나? 다른 사람 하고도 한 번 살아보자!’ 이런 생각이 든다면 헤어지는 것도 큰 문제가 안 됩니다. 문제는 헤어지고 만나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이 결혼을 하니까 축하해 달라고 하면 축하한다는 말을 안 해 줍니다. 왜냐하면 결혼이 축하할 일인지는 예단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그 결과가 축하할 일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결혼하는 날이 괴로움의 시작일 수가 있습니다. 또 헤어진다고 하는 사람에게 ‘헤어질 거면 결혼할 때 좀 신중하지 왜 그랬냐?’ 하고 물어보면 ‘제가 침착하지 못해서 사람을 제대로 안 보고 결혼을 했습니다’ 이렇게 대답합니다. 결혼할 때 그 사람의 이런저런 면모를 미처 생각지 못하고 몇 가지만 보고 결혼했다는 것을 진짜 반성했다면, 그 사람의 몇 가지 싫은 면만 보고 이혼하겠다는 것에 대해서도 좀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결혼할 때와 똑같이 몇 가지가 싫다고 해서 성질을 내고 도저히 못 살겠다고 이혼을 하잖아요. 저는 누가 이혼을 하든 안 하든 그런 것에 대해서는 아무 상관을 하지 않습니다. 자연 생태계에는 이런 게 없잖아요. 이것은 다 인간의 의식이 만들어 낸 하나의 산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결혼할 때 경솔했으면, 이혼할 때는 좀 신중해라’ 이런 의미인데, 사람들은 스님이 이혼하지 말라 했다고 잘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솔하게 이혼하고 나서 새로운 사람을 찾아보면 그만한 사람이 없어서 또 아쉬워하고 후회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남자친구와 생기는 갈등은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같아야 된다’ 하는 전제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 왜 그러니?’ 하고 자꾸 묻는 이유는 내 기준에서는 남자친구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갈등을 풀려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친구가 되고 애인이 되고 결혼을 해도 습관이나 사고는 금방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결혼을 하면 둘이 같아야 된다고 자꾸 생각합니다. 그래서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서로 다름을 인정해서 어느 정도 서로 공유할 것은 공유하되 나머지는 개인적으로 좀 열어놓고 살면 훨씬 자유로워집니다. 자꾸 자기식으로 나와 다른 상대를 통일하려고 하면 갈등이 커집니다. 남북이 통일한다고 저렇게 싸우듯이 자꾸 통일하려고 하니까 싸우게 되는 거예요. 너무 통일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놔둬요. 울타리를 좀 넓게 쳐서 이 범위만 안 벗어나면 개 목줄 풀어서 놔놓듯이 좀 놓아두세요. 개 목줄을 계속 잡고 다니듯이 하지 말고 ‘나가봤자 집 밖에 나가겠나? 대문만 닫아놓으면 되지!’ 하고 집안에 들어오면 목줄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목줄을 딱 걸어 가지고 늘 기둥에다 묶어놓으려니까 개도 힘들고 사람도 힘들어지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