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로부터 신뢰를 받는 건 상대의 문제니까 질문자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상대로부터 신뢰를 얻겠다는 생각은 바람직한 생각이 아니에요. 내가 상대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면 왜 내가 신뢰를 못 받는지에 대해서 탐구를 해봐야 합니다. 하지만 꼭 내가 잘못해서 신뢰를 못 받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내가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상대가 나를 신뢰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대가 나를 못 믿겠다고 말하면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의 어떤 문제 때문에 믿음이 안 가는지 진지하게 대화를 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상대의 얘기를 들어보니 내가 불신을 살 언행을 했다고 생각되면 그 부분을 조금 개선하면 됩니다.
누구나 이런 트라우마를 몇 가지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성격은 어릴 때의 경험이 작용해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살펴서 상처를 치유하면 건강한 관계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나를 불신한다고 해서 기분 나빠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신뢰를 받거나, 모든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수가 없어요.
그러면 상대가 욕을 한다고 해서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야 할까요? 그건 아닙니다. 누군가는 그 얘기를 해야 한다면 비난을 감수하고 그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모두에게 칭찬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나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고 괴로워합니다. 비난받는 것이 기분 좋은 건 아니에요. 칭찬보다 비난이 더 기분 좋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비난을 피할 수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것처럼 누군가가 나를 불신하는 것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내가 성실하게 일을 하면 주위로부터 신뢰받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나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충분히 신뢰를 줄 수 있는 행위라는 생각은 다소 위험하고 건방진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저 내 방식대로 사는데 그 방식을 신뢰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 것뿐이에요. 신뢰를 받고 싶으면 상대가 나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그것을 개선하면 신뢰의 강도를 높이거나 신뢰의 폭을 조금 넓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내 몫이 아니에요.
내가 다른 사람을 신뢰하면 나에게 이익이 됩니다. 신뢰를 하지 않으면 나에게 손해가 됩니다. 그래서 상대가 어떤 행위를 하면 신뢰를 하고, 어떤 행위를 하지 않으면 신뢰하지 않고,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내가 먼저 그 사람을 조건 없이 신뢰할 때 내 삶이 더 안정되고 풍요로워집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예를 들어 가족부터 내가 불신하기 시작하면 내 삶은 불안정해지고 고통이 심해집니다.
이렇게 상대를 신뢰할수록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성이 높아집니다. 이 말을 ‘무조건 상대를 믿어라’, ‘상대에게 속아도 괜찮다’ 이런 뜻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속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에요. 만약 여러분들이 이것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책임을 회피하기 때문입니다. 후회는 반성이 아니에요. 후회를 심리적으로 분석하면 이렇게 풀이할 수 있습니다.
후회는 바보 같은 일을 저지른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심리 현상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관점입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잘못을 할 수 있는 존재예요. 잘못을 하면 ‘내가 잘못했구나. 다음에는 잘못하지 말아야지’ 이걸로 끝이 나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후회를 하는 이유는 ‘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야 하는 완벽한 존재인데 잘못을 저질렀다. 그래서 잘못한 나를 용서할 수 없다’ 이렇게 자기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을 미워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사람의 행위를 내가 용서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후회는 자기 괴롭힘에 불과하지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참회가 아닙니다. ‘내가 어리석었구나’, ‘미안하다’ 하고 거기서부터 한 걸음 나아가야 해요. 후회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행위와 같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뒤로 물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나는 신뢰받을 만한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지만 사람들이 나를 신뢰하고 말고는 그들의 자유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회사를 다닐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최선을 다하는 것은 나의 일이고, 내 승진을 결정하는 것은 상사의 일입니다. 승진에 대한 결정은 그들의 자유이고 그들의 권리예요. 다만 법률적으로 부당할 때는 고소를 해야 합니다. 사회 정의를 위해서 그런 용기는 항상 있어야 해요. 그런데 법률적으로 위배되지 않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일이든 인간이 개입되는 일에는 항상 인지상정이 있기 마련이에요. 아무리 법이 엄격하다고 해도 인간 세상에서는 항상 정상 참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오히려 너무 자로 잰 듯이 엄격하게 일을 처리하면 세상이 더 각박해집니다.
그런데 이제 갓 회사에 들어간 신입사원이거나 외국에서 유학을 왔거나 이민을 왔으면 그 사회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감안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현지에 적응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만 부당한 것을 너무 참으면서 죄인처럼 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나라마다 법이 있고, 법에 보장된 나의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법적으로 보장된 것에 대해서는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차원에서 개인적 손실이 따르더라도 그 권리를 주장하되, 문화적이거나 감정적인 것은 조금 부드럽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