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이 나를 무시한다고 느끼는 순간 화가 올라올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말이나 행동이 폭력적으로 나올 수도 있는 위험한 상태라고 자신을 자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하고 생각해봐야 합니다. 대화를 하다가 자기가 무시받는다고 느껴서 화를 내며 말을 험하게 내뱉으면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똑같이 무시받는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다시 상대방에게 강하게 전달이 되면 상대방 또한 굉장히 무시받았다고 느껴서 결국 오해가 증폭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자는 다른 사람과 부딪힐 때 상대방과 소통이 안 되고 오히려 충돌할 소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 외국이나 낯선 곳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생활을 하게 되면 사고가 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 환경에 처할 때는 매우 주의를 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수행적으로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정진이 필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업무를 맡을 때 가능하면 그런 환경에 처하지 않도록 미리 조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업식이나 성격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자극이 강하게 오면 도로아미타불이 될 정도로 강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이런 위험에 대해서 우선 본인이 자각을 해야 하고, 앞으로도 항상 주의를 해야 한다는 관점을 견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오해가 생기면 그걸 푸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두 번 이야기해서 안 풀린다고 꽁해서 지내기보다는 제 3자를 통해서 푼다든지 해서 오해를 푸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오해를 푸는 과정이 없이 꽁한 상태로 계속 지내면 그것이 트라우마가 됩니다. 결국 자신의 상처로 남게 되기 때문에 나중에 비슷한 일이 생기면 다시 격렬하게 반응을 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가진 위험을 감지하고 있으면 충돌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타인을 무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설령 누군가가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해도 그 사람의 버릇이 그런 거예요. 누군가를 무시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그냥 그 사람의 태도가 그렇게 습관으로 형성된 겁니다. 수행적 관점에서는 모두 내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릴 때 무시받은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서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고,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으로부터 한 번도 하대를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무시받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무시받는 느낌이 들 때는 ‘지금 내 까르마가 반응하는 것이지 상대가 무시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이렇게 자각을 해야 합니다. 내 업식이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을 보고 그렇게 반응하는 것을 알아차려서 상대를 탓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감정이 올라올 때 ‘이건 내 까르마가 반응하는 것이다’ 하고 자각하는 것이 감정을 진정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상대가 나를 무시해서 화가 나는 게 아닙니다. 상대가 나를 무시한다고 스스로 그렇게 느끼기 때문에 화가 나는 거예요. 화가 일어나는 것은 상대하고는 관계가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느낄 때 문제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 그런 감정이 일어날 때 ‘상대는 그냥 자기 습관대로 말하고 행동할 뿐인데, 내 까르마가 그것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 이렇게 자각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설령 반응을 하더라도 폭력적으로 나가는 걸 막아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칭찬보다는 지적을 많이 합니다. 대부분 무엇을 더 챙겨야 한다고 지적을 하기가 쉽지 칭찬하는 말은 잘하지 않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여기에 서운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무던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칭찬이나 지적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일을 같이 못하겠다는 사람도 있고, 그런 것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고 지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유로운 사람이 되려면 칭찬이나 지적에 구애를 받지 않아야 합니다. 칭찬이나 지적에 본인이 구애를 받지 않으면 자유인이 될 수 있지만, 구애를 받으면 늘 상대에게 매여서 살아야 합니다. 상대가 칭찬을 해주면 입이 벌어지고, 지적을 해주면 입이 비뚤어진다면, 늘 상대만 바라보고 사는 종속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인지상정입니다. 그런 업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칭찬에 구애받는 건 사실 스스로 자유인이 되는 데 있어서는 장애 요인입니다. 그렇다고 칭찬을 받을 때 기분이 나빠야 된다는 뜻이 아니에요. 기분이 좋아지더라도 그 맛에 취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기분 좋음에 취하게 되면 내 존재가 상대방의 칭찬에 종속되는 존재가 됩니다. 그건 상대방에게 내 목줄을 쥐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내 삶의 희로애락을 거듭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칭찬을 들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늘 자각을 해야 하고, 상대방의 비난에 기분이 나빠지는 것도 늘 자각을 해야 합니다. 까르마가 있기 때문에 칭찬을 들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거기에 너무 연연해하지 않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같이 일을 하다 보면 수고했다는 말을 안 해줘서 섭섭하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상사가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살펴서 칭찬을 해주면 좋지만, 사람이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있잖아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감정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은 그만큼 심리가 불안하다는 걸 말해줍니다. 심리가 불안하기 때문에 좋은 말을 바라는 거거든요. ‘저분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생각이 자꾸 드는 이유는 심리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칭찬을 해주면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을 내고, 칭찬을 안 해주면 그만두겠다는 마음을 내게 되는 겁니다. 심리가 불안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눈치를 보게 됩니다.
질문자도 우선 내가 그런 까르마를 가지고 있다는 걸 자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민감하게 반응을 할 때마다 ‘아, 이건 내 까르마의 문제다’ 이렇게 자각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내 까르마의 문제로 자각을 하면 상대방에게 차츰 덜 얽매이게 됩니다. 상대방을 미워하는 것은 곧 상대방에게 묶여서 살아가는 겁니다. 꾸준히 자각하면 미워하거나 화가 나는 것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정신작용이 이런 원리로 작동하기 때문에 기분 하나하나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 거예요. 기분이 안 좋더라도 잠시 시무룩할 수는 있어도 빙긋이 웃고 넘기면 됩니다. 기분에 따라 너무 감정이 널뛰기를 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런 경험을 계속하면 점점 그 폭이 줄어듭니다. 아이들은 기분이 좋으면 펄쩍펄쩍 뛰고 기분이 안 좋으면 우는데, 노인들은 좋아도 빙긋이 웃고 안 좋아도 덤덤하잖아요. 한두 번 경험한 것이 아니니까 덤덤해지는 겁니다. 꼭 마음공부를 안 해도 오랜 경험을 통해서 지나 놓고 보면 별 것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을 보면 아이 같다고 하고, 아이가 천연덕스러우면 애어른 같다고 말하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옛날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에요.
지금 좋은 일이 생기면 필연적으로 나쁜 일이 생긴다는 뜻이 아니라, 나는 ‘기분 좋다’라고 하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저 사람 별 거 아닌 거 갖고 좋아하네’ 이렇게 볼 수도 있고, 내가 막 힘들어 죽겠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저 사람은 별 일 아닌 거 갖고 난리 피우네’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 자기감정에 사로잡히지 말고 한 발 떨어져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나놓고 보면 다 인생살이의 한 과정일 뿐이에요. 등산을 할 때도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잖아요. 사람들은 오르막길을 오를 때는 죽겠다고 하고,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는 막 좋아합니다. 그런데 내리막길만 가서는 산꼭대기에 올라갈 수가 없잖아요.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은 그냥 인생을 살아가는 한 과정입니다.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법문을 잘못 이해하면 ‘좋은 일이 생기면 다음에 나쁜 일이 생기겠구나’라고 생각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감정이란 늘 주어진 바깥 환경에 따라 변합니다. 왕자나 공주로 태어난 사람도 괴로울 일이 늘 생겨요. 누구나 자기 원하는 대로 안 되면 괴로워집니다. 그럼 가난한 집에 태어나면 늘 괴로울까요? 아니에요. 그도 그 속에서 행복한 일이 있어요.
좋은 일이 생기면 나쁜 일이 찾아오고, 나쁜 일이 생기면 좋은 일이 찾아온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우리의 마음은 이렇게 늘 좋았다가 시무룩했다가 한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면 좋아서 입이 벌어졌다가, 자기 원하는 대로 안 되면 기분이 나빠졌다가, 이렇게 계속 바뀌는 것이 마음입니다.
기분이 좋고 나쁜 것은 다 마음 작용인데, 우리는 늘 바깥을 탓합니다. 바깥에 좋은 일이 생겼다, 바깥에 나쁜 일이 생겼다, 이렇게 늘 바깥세상을 논합니다. 바깥세상이 한결같이 좋아도 내 마음은 널뛰기를 하고, 바깥세상이 나빠도 내 마음은 널뛰기를 합니다. 다만 바깥세상이 좋으면 내 마음이 좋을 확률이 좀 높고, 바깥세상이 나쁘면 내 마음이 나쁠 확률이 좀 높을 뿐이에요. 마음이 널뛰기하는 것은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지는 바깥 환경에 널뛰기를 많이 했더라도, 이제부터는 자기 마음을 잘 살피면 앞으로는 널뛰기를 덜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