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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오랑우탄

2022-02-17 23:18:00 - 2024-06-09 22:29:30

0 익명의 오랑우탄 (3.05B5StSQ)

2022-02-17 (거의 끝나감) 23:18:00

아무튼 그럼

1 익명의 오랑우탄 (3.05B5StSQ)

2022-02-17 (거의 끝나감) 23:21:12

올해로 10살이 된 시탁탁은 기분이 좋았다. 왜냐하면 그의 생일에 영주가 마을에 방문했고 잔치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순전히 우연에 불과한 일이라 치부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린 꼬마 시탁탁의 눈에는 모든 게 마법같았다.
"난 뭐든 할 수 있을 거야!"
그는 신이 나서 소리쳤다.

2 익명의 오랑우탄 (3.05B5StSQ)

2022-02-17 (거의 끝나감) 23:53:10

하지만 이내 꼬마 시탁탁은 흥미가 시들어버렸다. 변덕스러운 것도 아이들의 특징 중 하나이다. 그는 괜히 시무룩해서는 사람들이 가득한 시장바닥으로 하냥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런데 무언가 곤란한 일이 생겼다.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만 것이다.
시탁탁은 그만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어찌나 그 울음소리가 큰지, 공연을 하던 어릿광대에 환호하던 관중들이 모두 갑자기 그를 쳐다보았다. 장내는 삽시간에 제삿상 분위기가 되었다.

3 익명의 오랑우탄 (RifBzj8oEo)

2022-02-18 (불탄다..!) 00:04:32

오스카가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그는 꽃으로 만든 머리띠를 두르고는 축제를 구경하다 우연히 시탁탁을 발견하고는 손을 내민다.
"꼬마야, 괜찮니? 무슨 일이야?"
"길을 잃었어."
"저런."
친절한 말투였지만 순간 정적이 일었다. 당연하게도, 이것은 만들어진 친절함이기 때문이다.

"이름이 뭐니?"
"시탁탁."
"옳지, 탁탁아."
그는 시탁탁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어주고 품에 안아주지만, 시탁탁은 울음을 그치고는 딱 잘라 말했다.
"아니. 내 이름은 탁탁이 아니야. 시탁탁."
"음, 그렇구나. 나는 칼갈이 거리에 사는 사람인데, 요즘은 마법사의 조수를 하고있어. 고양이 좋아하니?"
"응."
"그렇구나. 고양이를 한마리 키우고 있거든. 애가 어찌나 털이 고운지…"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수다스러운 것 뿐인지, 오스카의 쉴새없는 수다에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던 둘은 곧이어 헤어질 시간을 맞이한다.
시탁탁의 아버지가 찾으러 나온 것이다.
"그럼, 안녕. 아버지 말씀 잘 들으렴."
오스카는 손짓한다. 머리에 커다란 혹이 난 시탁탁이 눈에 뵈지 않을 때까지…

시탁탁이란 이 고을 말로 '할아버지의 불알' 이란 뜻이란 걸 오스카가 안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4 익명의 오랑우탄 (RifBzj8oEo)

2022-02-18 (불탄다..!) 00:25:42

오스카 아구치는 순진한 척 하는 소악당이었다. 그는 조수로서 한 장인 마법사를 모시고 있었는데, 사실 양자로 입양된 것에 더 가깝다. 온통 딸기로 수놓아진 잠옷을 입은 여제가 잠에 깨면, 나무접시에다가 한움큼 정도의 산딸기를 담아 가져가는 게 그의 아침 일과의 시작이었다. 딸기와 산딸기는 엄연히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뒤에는 심심한 주인을 위해 창작극을 하곤 하는데, 오늘의 극은 '악몽의 집' 이었다. 여제는 왜 악몽의 집에서 벗어나도 여전히 악몽인 것인지 궁금해했다. 오스카가 인형에 동전을 넣자, 고깔모자를 쓴 우스꽝스런 인형이 마구 춤을 추었다. 오스카도 같이 춤을 추며 극은 끝이 났다.

"어떠셨어요?"
오스카가 기대에 차서 묻는다. 물론 이는 순전히 연극에 불과했다. 극이 끝났지만, 그의 연극은 끝나지 않았다.
"으음, 뭐. 그냥저냥 하네."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여제는 아침의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반쯤 잠에 취한 채 이 어릿광대의 극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헤헤, 감사합니다. 그럼…"
오스카는 그 진의를 파악하고는, 또 다시 기대를 한다. 그 기대에 부응하듯, 여제는 작게 손짓했다. 곧 이어서 구름이 펼쳐지고 일곱 개의 컵이 떠오른다. 컵들 위에는 팔찌나 반지같은 장신구들이 가득했다. 여제는 그 중 하나를 꺼내어 건네주려 한다.

그런데 그때, 검은 고양이 네무라가 마구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구름은 걷히고, 컵은 시공간 속의 알 수 없는 구멍에 빠져 없어져버렸다.
"저런, 오스카. 어떡하니… 기껏 널 주려고 했던건데."
여제는 나름의 여흥거리가 하나 더 생기겠다는 생각에 기뻐했다. 여제는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표정은 언제나, 매년매월매일 그러하듯 미동도 없었다.
"그럼 어쩔 수 있나, 네가 가져와야지. 저 바다 너머로 건너가서."

오스카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오스카는 물에 젖는 것이라면 이골이 나있었다.
"정말로요? 휴… 알았어요. 다녀오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몇 가지 준비를 좀 해도 될까요?"
여제는 콧방귀를 끼고는 화려한 무늬가 음각된 의자에 앉아서는 지팡이를 거두어들였다.
"마음대로. 단, 빨리 하거라."

오스카는 그의 주인이 가끔은 너무 제멋대로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는 만일을 위해 손질해둔 검을 한 자루 챙겨가기로 한다. 이 빠진 이중검이다.

5 익명의 오랑우탄 (CMgpbKC7AM)

2022-02-19 (파란날) 13:37:00

만반의 준비를 거친 오스카는 시공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원근감각이 어그러지는 풍경이었다. 저 멀리 위치한 산의 마루 부분처럼 생긴 뾰족하고 청량한 바닥을 밟아 나아가다보면 질척거리는 검은 콜타르같은 허공을 헤쳐나가야 했다. 어느 곳이 밟아도 되는 곳이고 어느 곳을 밟으면 안 되는지 잘 감이 오지 않았다. 오스카는 이중검의 중간에 기름랜턴을 끼워서는 제 앞의 2~3보 거리를 비추어 조심스레 헤쳐나아갔다.

"왁!"
그리고는 깜짝 놀란다. 방금의 소리는 오스카가 낸 게 아니다. 열 살 꼬마인 시탁탁이다.
"탁탁아? 네가 여긴 웬 일이니? 아니, 어떻게 왔어?"
"언니 도와주러 왔지. 뭘 찾아야 된다길래"
어떻게 들었는지 싶어 오스카는 한번 더 놀랐다. '경비병에게 들키지도 않고 말이지.'

시탁탁은 오스카의 머리 위에 올라서서 목마를 탔다. 그리고는 저 멀리 지평선 너머를 가리킨다.
"봐, 언니. 저기 우편함이 있어."
"어디?"
오스카는 짜증을 느끼며 (오스카는 누가 자기 몸을 만지는 것을 싫어한다.) 언제쯤 큰 소리를 칠까 고민하다가, 과연 시탁탁의 가리킴에 우편함을 발견했다.

"끙차."
꽤 먼거리를 어떻게든 차근차근 나아가다보니 결국 우편함 앞으로 당도하였다. 그것은 다세대주택에 으레 있곤 하는 금속제의 우편함이었다. 옆으로 길쭉하고, 호수가 적혀있는 명패 아래로 투입구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형태라니, 여기 누가 사나?"
오스카는 의문을 품었다.

6 익명의 오랑우탄 (4yjdD8PF8k)

2022-04-30 (파란날) 16:58:53

그때,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아니, 무언가인지...?
그것은 아르마딜로였다. 초롱아귀마냥 근처를 밝히는 호롱불같은 것이 달린 더듬이를 지녔는데, 잘 발달한 하체를 지니고 있었다.

"깜짝이야."
오스카는 그 갑작스런 등장에 놀랐고, 아르마딜로는 시탁탁에게 로우킥을 먹었다.
"탁탁아!"
지면에 넘어진 시탁탁을 보면서 아르마딜로는 꺄륵거린다. 오스카는 이빠진 이중검을 검집에서 꺼내들었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친구는 아닌 것 같네!"
그대로 경계하는 그였지만, 기이하게도 아르마딜로는 관심을 다른 데로 빠르게 돌려버린다. 가령, 지금같은 경우 그는 자신의 여기저기 움직이는 꼬리에 정신이 팔려서 몸을 둥글게 마느라 정신이 없었다.
"…"
시탁탁은 가까스로 지면을 잡고 일어서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금새 넘어져버린다.
"언니… 나 못 걷겠어."
훌쩍이는 시탁탁을 본 오스카는 불현듯 이 모든게 짜증이 났다.

"너는 누구야! 여긴 어디고!"
서슬퍼런 날이 빛을 발하고, 오스카의 검격이 쇄도할 적에, 아르마딜로는 돌연 공격을 받아냈다.
그런 뒤, 싱긋 웃으며 검을 가지고 도망친다.

"거기서! 거기 안 서!"
오스카는 따라가려 했지만 기이한 옅은 구름같은 지반 (그것을 지반이라 부를 수 있다면) 탓에, 발을 헛딛고 주춤거리느라 한발 늦는다.

결국 그는 시탁탁을 업고 계속 나아가기로 한다.

7 익명의 오랑우탄 (UmMgWZtZZs)

2022-12-25 (내일 월요일) 10:30:43

오스카는 위를 바라보았다. 다세대주택의 어느 호실도 불이 켜진 곳은 없었다.
"할 수 없네. 저 위로 일단 가보자."
시탁탁은 오스카의 넓은 어깨에 기대어 빠르게 숨을 내쉬었다. "언니, 이제 어떡해?"
오스카는 답했다. "괜찮아. 검돌이도 언젠가 찾을 수 있을거야. 그런 것보다, 지금은 재정비가 필요해."

짜증나서 작게 투덜거리며 오스카는 계단을 올라 대문의 초인종을 눌렀다. 가장 바깥쪽부터였다. 그러나 답은 없었다.
맨 안쪽의 호실에 이르렀을 때, 초인종을 누르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얼굴 대신 커다란 CRT 화면이 달린 사람이었다.

"어, 안녕하세…"
그는 그대로 오스카의 손을 잡아 끌었다.

그 안으로 넘어지듯이 들어간 오스카는 자세를 바로하고 주변을 보았다. 금속제 락커와 행거 너머로 연금술 연구실같은 곳이 보인다. 정확히 말해, 화학 실험실같은 곳이었다. 오크통이 몇 개 있는 것이 양조장같이 보이기도 했다. 희미한 민들레술 향이 났다.

"여긴, 아…"
오스카는 제 앞에 모니터 남자가 고개를 디밀더니, 자기 애완동물 (거대 지네)의 목줄을 잡아끄는 것을 보고는 그대로 힘이 풀려 쓰러져버렸다. 벽에 쓰러지자, 오스카와 시탁탁의 머리는 벽에 반쯤 묻혀버렸다.

"캐롤라인, 안돼!"
모니터 남자는 지네를 어린아이 타이르듯 혼냈다. 새된 목소리로 외치자, 지네는 풀이 죽었다.

모니터 남자는 그 둘을 도로 꺼내 바닥에 늘어뜨려놓았다. 거대 지네는 더듬이를 빠르게 움직이더니, 이내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 몸을 둥글게 말았다.
"여긴 동물 소리가 너무 많지?"

8 익명의 코주부원숭이 (EsCN9sC0Q6)

2024-06-09 (내일 월요일) 22:29:30

오스카는 호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서 그 안을 확인했다. 검은 배경의 흰 두개골이었다.
"지금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내 친구는 다쳤고 저는 무기를 잃어버렸으며, 더 안쪽으로 가야 해요."

거대 지네가 벽에 걸린 검은 페도라를 쓰며 말했다.
"무언가 찾는 게 있는가?"
그리고는 품에서 휴미드 박스 안의 시가를 꺼내 물고는 불을 댕겼다.

"저는... 목걸이를 찾고 있어요."
"그 뿐인가? 고작해야 장신구라고?"
"젊은이, 자신을 가꾸고 치장하는 데에 너무 공을 들이지 말게."

그걸 듣고 있던 시탁탁은 돌연 소리쳤다.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마! 언니는... 언니도 힘내고 있단 말이야!"

모니터 머리를 한 사람은 거대 지네에게서 모자를 뺏어 자신의 머리 위로 옮겼다.
"그렇군. 그렇담 나도 도울 수 있겠는걸."
모니터 머리는 오스카에게 뚜론을 주었다.

"뚜론?"
오스카는 그걸 건네받고는 일순 고개를 갸웃거리다, 환희의 춤을 춘다.
"뚜론? 뚜르론? 뚜론!"

모니터 안에는 외발자전거를 탄 광대가 나타났다. 광대는 말한다.
"인간의 가장 어리석은 행위는 가장 고양되었을 때에만 나타날 수 있지.

오스카는 싱글벙글하여 소리친다.
"응! 조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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