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반응 뭐래, 그래도 생각보다 슴슴한 반응이라 피식 웃어버렸다. 이 능글 장인이 뭐라고 반응할지 내심 기대했는데. 오히려 반응이 뜨거운 건 주문을 기다리는 저쪽이다. 짧게 오간 낯선 언어에 무슨 얘길 나눴는지 엄청 궁금해하는 표정이라서. 그래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해버렸다간 엄청 귀찮아 질 것 같아 집요하게 캐묻는 목소리에 잔 예쁜 걸로 달라고~ 뭐 그런 얘기나 가볍게 던져 본거라 둘러대버렸다.
약속한 잔들이 각자의 앞으로 전해지면 이곳 고급스러운 바와 어울리지 않는 시시콜콜한 화제들이 하나 둘 귓가를 때리고 지나친다.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것만 같은 최신 이슈와 노래 얘기, 직장에서의 고충이나 유치한 뒷담 같은거. 바 뒤편 길쭉이가 심심할 틈이 없게 가끔씩 한마디씩 콕콕 찔러대면서.
잔이 비워질수록 무르익은 분위기 속에 시간은 더욱 깊은 밤을 향해 흐르고. 선반과 이마를 맞대고 기싸움을 할 무렵에야 자리는 끝을 맺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다들 엄청 취해버렸네.
“ Bye Bye~ ”
문이 닫히고 멀어져가는 택시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말귀에 술에 젖어 흐느적거리는 목소리가 둘씩이나 귀를 따갑게 만들어서 온몸의 기운이 추욱 빠져버릴 것만 같았다. 나 지금 뭐 하고 있는거지. 의미 없이 반짝이는 새벽의 불빛과 드문드문 지나치는 차 소리 사이에 파묻혀 멍한 표정이 되었다. 지금 껍데기는 여기 있지만 내 영혼은 이미 침대 위에 올라가 있는 게 아닐까~ 잠시 까맣게 있고 있었던 ‘집 가고 싶어’ 병이 도져버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엄청 정신 없었는데. 둘은 엄청 떠들어대서 술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지, 어느 시골 왕똥개는 백만년만인 재회인데도 자기 할 일만 하고 있지~
은은한 조명에 감싸인 바 간판을 올려다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갑자기 좀 열 받네? 누구누구는~ 오랜만에 만나면 막 너무 반가워서 어쩔줄 몰라한다고. 그랬었는데. 그거 완전 웃긴 얘기. 강아지(수인)라고 다 그런거 아니네~
아니면 피곤해서 그런건가? 살도 좀 빠진 것 같고. 애가 기운도 없는 것 같고. 아~ 몰라, 몰라! 짜증나니까 어쩔 수 없이 한 잔 더 해야겠네. 겸사겸사 얼굴도 한번 더 보고.
그렇게 다시 자리로 돌아온 자리. 삐딱하게 턱을 괸 자세로 아직 그곳에 남아 있을 누군가를 향해 눈빛 레이저를 쏘아 보냈다.
“ 廣東話 : 너 지금 아주 죽상인거 알아? ”
돌아볼때까지 기다렸다가 직전에야 운을 떼었다. 마치 몇시간은 기다린 사람처럼 언짢음과 반가움이 섞인 묘한 시선으로.
“ 廣東話 : 한국 사람 다 됐네? 나 너 세상에서 완전히 증발해버린줄 알았어. ”
뭐 어쩌다 헤어지긴 했는데 너무 갑작스러워서 이제 기억도 나질 않는다. 아니면 별로 기억하기 싫어서 머릿속에서 지워버린걸지도. 한가지 확실한 건. 겉모습이 조금 달라지고 한국말에 능해졌다고 하더라도. 내가 냄새 알아보는데는 귀신이거든. 그러니까, 여전하네.
오늘도 무사히 답레 쪄왔답니다~! 앗 못본 사이에 무수한 진단이 🥹🥹 넘 감동이야.. 랑이 진단 덕에 물어보고 싶은게 더 많아졌네~~! ✨ 나도 내일은 진단과 함께 등장하겠어!! 이제부터 티엠아 대방출 할거야 🔥🔥 내일은 아마 밤샘으로 해야할 일이 있어서 🥺 평소보다 좀 더 늦게 올 거 같아. 아마 새벽쯤에 답레 올라올지도?? 혹시라도 백랑주가 기다리고 있을까봐.. 글구 카이 몬가몬가 아시안 스쿼트 자세 엄청 잘 할 것 같은데 🤔 츄리닝 차림으로 집 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 모습 상상해봤어,, (뭔가 댕스럽다고 생각함) 오늘은 이만 가볼게,, 답레 하나 썼다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이 곰손, 더도말고 딱 2배만 빨라졌으면 좋겠는데 😭 우우우,,
"뭐야, 나 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찾아온 거야?" 하려다가 재회에 너무 뺀질뺀질한게 아닌가 싶어 조금 차분하게 했는데 미스였으려나... 👀👀 요번답레에서 억지로라도 해봐야 티엠이 주시면좋죠 저도 없어서못먹습니다 우냥주 하루에 활력소가 될 수 있도록 나도 다양하게 준비해둘게~~ 접속 시간은 괜찮아. 우냥주도 나도 혐생때문에 바쁘다는 거 잘 알고 있는걸... 😢 접속시간에 대해서는 나두 이해 1000% 하고 있으니까 너무 마음쓰지 않아도 괜찮아~! 아 그자세 알지알지... 아 ㅋㅋㅋ 카이 안꾸미고 수더분한 상태로 있으면 꼭 그렇게 앉아서 손에 캔커피나 담배 들고 멍하니 있겠다 채택~~
가끔, 어떤 감정이나 생각이 너무 강렬하여 사람의 타고난 기질마저도 잠깐 덮어버리는 때가 있다. 지금 이 순간 카이가 그랬다. 카이에게 있어 지금 이 순간의 해후는, 당신이 느꼈던 만큼이나 워낙에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더군다나 당신이 혼자 왔으면 또 모르겠는데, 당신과 동료인 듯한 일행도 둘이나 있어서. 일순간 자신이 카이였는지 백랑이었는지 헷갈려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 요령좋은 됨됨이는 어디 가지 않아, 잔 예쁜 거 달라고 말했다는 당신의 임기응변에 맞춰 카이는 당신을 따라온 두 손님에게 맞장구를 쳤다.
"우리 바에 특별히 더 예쁜 잔이라거나 하는 건 없지만, 대신 바텐더 얼굴 봐서 한번 참아주세요."
다시금 자기 페이스를 되찾은 듯, 한국어로 뻔뻔하기 그지없는 능청을 떨고는 윙크 한 번으로 그 자리를 얼버무리며 카이는 칵테일을 하나둘씩 내놓기 시작한다. 미도리사워, 깔루아 밀크, 롱티, 애플티니... 당신은 결코 바텐더 얼굴을 봐서는 참을 수 없겠지만... 좀 봐달라고, 나 지금 실시간으로 흑역사를 까발려지고 있는 기분이란 말야. 이런 이도저도 안 된 꼴은 보여주기 싫었는데. 생각같아서는 자신도 뭔가 한잔 들이켜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퇴근할 때 운전해서 가야 하니 그럴 수도 없다.
야, 아카이! 하고,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로 카랑카랑하게 자신을 불러온 당신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메아리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일행에게 술을 대접하면서, 카이는 도저히 카이로 있을 수 없었다. 당신과 함께 온 일행들에게 있어 자신은 백랑이었고, 당신과 당신 일행들 사이에 자신이 카이로서 끼어들 구석은 없었으니까. 이따금 당신이 술자리 담화 사이에서 툭툭 던지는 뼈 있는 한마디 한마디를 멀거니 맞고 서 있는 수밖에.
보통이라면 꼬리를 치며 마중나오는 개가 마중을 나오지 않을 때가 두 가지 있는데 언제인지 아는가? 하나는 무언가 잘못한 게 있을 때고, 하나는 개가 병들거나 다쳐서 아플 때다. 이번의 이 시골 왕똥개 녀석은 어느 쪽일까?
당신이 그대로 일행과 함께 떠나가버린 걸까, 하고 멍하니 바의 출구를 쳐다보고 있던 카이와, 일행을 차에 태워 배웅하고 간판 아래서 다시 발을 돌이켜 안으로 돌아온 당신이 눈이 마주쳤을 때, '개가 뭔가 잘못했을 때'의 표정을 지으며 눈을 샥 피하는 카이를 보아하건대, 아마 일단은 전자인 모양이다. 그나마도 당신이 다시 또박또박 돌아와서 숫제 카이의 앞에 앉아버리자, 카이는 체념한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스툴 하나를 끌어다 당신 맞은편에 걸터앉았다. 취기 섞인 양가감정을 드러내어보이는 당신의 첫마디에, 카이는 짧게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알아, 여기에 왔을 때부터 계속 죽상이었으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당신의 추궁에, 카이는 당신을 바라보다가... 씁쓸한 눈웃음을 지으며 반문했다.
아아앗 🥺🥺🥺 미안미안해,,, 새벽에 답레 꼭꼭 남겨보겠다고 했는데 결국 이 시간이 되기까지… 내일은 정말진짜 리얼루 답레 남겨놓을테니까,, 기다리게 한것 같아서 너무 미안하네 😭😭 백랑이 반응 완전 졸귀탱이네?? 🥰 아니니 이전 나메에서 반응 뭐야 싱거워~ 이랬던 우냥이 반응이 곧 내 반응은 아니니까!! 왜 그런거 있잖아?! 아무리 개냥이라도 반가운 마음을 100% 발휘하진 않는 그 얄미운 그런 느낌,,? 새벽 기운 물씬이라 내가 무슨 말을 하는건지도 잘 모르겠덩 🥺 아무튼,,, 내일은 꼭!!! 답레!!! 드립니다,,, 그리고 이건 아쉬운 마음에 남긴 티엠아,,,
우치링: 225 꽃은 좋아하나요? 화분에 심어진 거나 다발로 뭉쳐 있는 거 다들 예쁘긴 한데 이름이 뭔지는 잘 모름,, 🤔 그냥 갖다 주면 우아~ 이쁘다~ 정도 감상..? 183 카페가면 주로 주문하는 것 버블티랑 무화과가 총총 박힌 스콘~! 🧋🥐 267 캐릭터를 동물에 비유한다면 닝겐 자체가 냥냥이라서 다른 동물로 비유해보자면 상어나 허숙희 같은 느낌..? 🐋🐶 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겉으로는 되게 까칠해 보이는데 의외로 댕청한 부분이 포인트 👌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646172
우냥: 295 슬픔을 참는 방법 침대에 틀어박힌채로 애착인형 끌어 안고 버티기! 혹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일기 쓰기, 예쁜 장소에서 사진 남기기, 디코에서 게임 멤버들에게 찡찡찡~ 하소연 해버리기!! 😤 093 앉을 때의 자세 소파에서나 의자에서나 다리를 모은 양반다리 자세가 디폴트값! 가끔 인어다리(?) 자세나 조신하게 무릎을 포개 앉기도 하는데 이건 아주아주 드물다는거~ 🙂↔️ 190 캐릭터의 말년은 불행한가요, 행복한가요? 그건~~ 아모른직다!! ☺️ 아직 살날이 더더더 많으니까~ 그래도… 해피해피한 엔딩일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51-52 괜찮아~~ 바쁘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돼~ 답레는 우냥주가 쓰기 편할 때 써주는 것으로 좋아! 그랬던거였군 이 왕고양이씨... 사람을 들었다놨다해.. 우냥주가 쓰기 편할 때 써주는 것으로 좋은 것과 별개로 뒷내용이 기다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군요
((빠른 받아적기)) 확실히 우냥씨.. 차가운 도시여자니까, 꽃에 그렇게 관심가질 것 같지는 않지. 사실 현대인이 다 그렇지 않을까 🙄 하지만 무화과스콘은 못참지. 아 갑자기 나도 스콘이 먹고 싶어졌어... >겉으로는 되게 까칠해 보이는데 의외로 댕청한 부분< 사실.. 나 이 느낌이 좋아서 처음에 바로 찌르려 했는데 시트가 생각이 안나서 머리 싸쥐는 새에 다른 참치가 찔러서 아그런가 하고 멀리떨어져잇섯서요. 우냥씨 슬픔을 참는 방법이 그냥 참기만 하는 게 아니라 확실한 해소가 되는 방향인 게 좋아. 백랑이는 그냥 내면으로 꾹꾹 집어삼키면서 아무렇지 않게 계속 자기 하던 일 하는 게 방법인데.. 🥺 그리고 앉는 모습 이거 알것같아 고양이들이 그 뒷다리로는 앉고 상반신은 세우고 있는 그자세 맞죠(?) 우냥씨의 해피엔딩, 적극적으로 지지합니다 같이 힘내봐요..!
백랑주 백랑주!!! 이머전시 이머전시!!!! 🚑🚑 🥺🥺🥺 술자리에 강제 납치 돼서 끌려가는 중이거든??,,,, 나메가 좀 늦게 올라올지도 몰라 백랑주 어제오늘 갑자기 일복 막 터져서 ㅠㅜㅠㅠㅠ 끌려가는 길에 애들 몰래 쓰는거라 반응도 못하고,,, 이따 이르면 자정 전이나 아니면 조금 넘어서 올려볼게..!!! 자정 넘으면 한시쯤에나 확인해주면 쏘땡스할거같애,,, 😭😭😭😭
>>49 정말, 뭐라고 해야할지. 이렇게 불쑥 튀어나와 버리면 내가 무슨 반응을 해주길 바라? 오히려 되묻고 싶었다. 마음만 같아서는 ‘너 진짜 죽을래??’라고 확- 소리쳐 버리고 싶었는데. 세상 일 뭐든 이야깃거리로 소비해버리는 방해꾼 둘을 내치느라 이미 김이 다 새버렸고. 아까부터 같은 분위기에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너에게 정신 차리라는 듯이 반쯤 감긴 심드렁한 눈빛을 쏘아보냈다. 한 잔, 두 잔. 화제에 맞추어 들어갔던 술기운이 낯선듯 가까운 재회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순식간에 달아나버렸다.
“ 글쎄~ 나 아직 소감 말할 준비 안됐는데. 너무 뜬금 없는 곳에서 마주쳐버려서? ”
지금 가장 궁금한건 ‘너 지금 여기서 뭐해?’, 그런 말이겠지만 적잖이 가라앉은 얼굴에 직설적인 단어를 꽂아넣긴 싫었다. 뭔가 단전에서 억지로 끌어올린듯한 멘트에 말썽 부리다 들킨 강아지 같은 표정이 연달아 들어오니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가볍게 푸핫 웃어버리고 말았다.
“ 됐으니까 눈은 이제 그만 굴리고- 아직 문 닫으려면 멀었지? 나 아직 한 잔 더 하고 싶은데. ”
취하기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변덕 많은 고양이는 집중이라는 단어를 잘 몰랐지만. 적어도 세상과 단절된 이 작은 공간 속에서만큼은 머나먼 땅 위를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어쩌면 오랜만에 마주친 반가운 얼굴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만큼 반가우면 어디 한번 억지로라도 웃어보라고 가볍게 한쪽 뺨을 찡그렸다.
칵테일도 위스키도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맥주였다. 7월의 여름날 차찬텡의 에어컨 아래서 몇 푼 안되는 싸구려 음식과 숨 막히게 목을 넘기던 그 시원함이 그립네. 오늘은 잠시 잊고 있었던 추억을 마시고 싶어.
“ 생맥주 한잔, 라거로. 난 쌉싸름할정도로 홉이 쎈 게 좋더라. ”
이렇게 마주 보고 앉으니까 그냥 아무 술병이나 꺼내 와서 일 같은거 때려치고 쌓아놓은 이야기 보따리나 풀어보라고- 꽁시랑 거리고 싶었지만. 네가 장난칠 기분처럼 보이진 않아서 나도 가볍게 이야기 했다.
사실 반갑기도 한데, 너무 오랜만에 봐서 조금 어색하기도 해. 나는 언제나 50%의 진실만을 말하는 사람이니까. 은근하게 그늘 진 얼굴에 대고 이런 내색을 비치긴 싫었어. 하지만 허여멀건 뽀송 퐁실 머리털은 여전하네. 예전에도 말했지만. (아주 오래 전일거야.) 색안경의 불편한 도움을 받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를 다 볼 수 있으니까, 마음에 든단 말이야~
“ 여기서 일한 지는 얼마나 됐어? ”
잔을 시키고. 띠링- 핸드폰 알람 소리에 SNS화면을 바라보며 가볍게 그런 생각을 중얼였다. 저번에도 누가 여기 같이 오자고 했었는데. 그러면 좀더 빨리 얼굴 봤으려나, 하고.
예상보다 좀더 빨리 올렸네?? 👀 생각해보니까 >>48에 반응을 안했었어~ u,u 나 이것도 좋아!! DM 띠링띠링인 세상에서 아날로그 감성으로 손편지 야무지게 끄적이는 모습 촘 많이 귀엽잖아..?? ㅎuㅎ 암튼암튼 우냥이는 차도녀인척하는 덤벙이라서,, 오히려 멍충멍충 얕보이면 안될까봐 그 부분에서 조금 가면을 쓰는 편이라구 해야할까 🤔 백랑이 참으면 병나는데 🥺🥺 참아참아 게이지 펑~!! 하는 날엔 애옹쓰가 오구오구 꾹꾹이 하러 가줄게 😼
되물어봤자 뭔가 뾰족한 대답이 나오지도 않을 것 같다. 그의 시점에선 당신이 갑작스레 튀어나온 거니까. 그래서 그는 너무 뜬금없는 곳에서 마주쳤다는 당신의 지적에, 씁쓸하게 "그러게." 하고 맞장구를 쳤다.
그가 짓궂은 사람인 건 맞지만, n년 단위의 몰카계획을 실행에 옮길 정도는 아니었다. 기왕 당신을 놀래켜줄 거라면 정말로 깜짝 놀랄 정도로 성공해서 재회하는 것으로 놀래켜주고 싶었지만... 잘 안됐다. 그럴 수 없다면 적어도 이런 몰골은 아니었으면 했는데 이것 참 어쩌면 이렇게 우스울 정도로 꼴사나운 몰골의 연속인지! 당신의 푸핫 하는 웃음에 카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어지는 주문에 시계를 흘끔 보고는,
"마감시간까지 한잔 더 할 여유는 있지."
하고는 주문을 받아 맥주 디스펜서로 다가간다. 홉 빡센 시원한 라거. 안성맞춤인 녀석이 하나 있다. 술통을 옆구리에 끼고 맥주를 흥청망청 투구에 들이붓는 기사의 목판화가 찍힌 라벨이 붙은 케그의 탭 아래에 익숙하게 맥주잔을 세팅하고, 레버를 꾹 누른다. 새하얀 거품을 끼고 뚜르르르륵, 하며 금빛으로 채워진 잔은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 채로 탄산 터지는 희미한 사아아... 소리를 내며 당신 앞에 놓인다.
그리고 옆에 딸깍, 하고 뭔가 하나 더 놓이는 게 있다. 안주 접시였다. 한번 구운 건어물과 땅콩, 찍어먹을 매콤한 소스, 마라맛으로 양념된 곤약, 건어물, 바나나 칩, 그런 시답잖은 것들로 들어찬 마른안주 접시였다.
"너한테 마지막으로 편지를 부친 게 준결승전 직전이었으니까... 거진 3년은 넘었네."
그리고 뜬금없이 건네어지는 뚱딴지같은 소리. 카이는 탄산수 채운 잔을 하나 손에 들고, 당신 맞은편에 앉았다.
>>57 헤어질 당시에 연락처를 못 받았다거나 아니면 홍콩 살던 시절에 백랑이가 제대로 된 핸드폰이나 SNS계정이 없었거나 해서(아무리홍콩빈민이라지만너무간거아닌가) 온라인 연락처를 미처 못 받았다고 내심 생각을 했었어👀 기억하는 게 우냥이네 집 주소뿐이라 편지를 썼는데 우표를 잘못 붙였거나 주소를 틀리게 기억했거나 해서 편지가 못 갔다고 생각하고 있어. (부자연스러운 것 같다면 지적해줘!) >오구오구 꾹꾹이< 아. (죽었음)
나메는 새벽에 남겨놓고 왜 아침에야 갱신하느냐 하면... 야간근무 중에 앙증맞은 대사고가 일어나서 그거 수습하느라구.. 나메 덧붙이는게 늦었어...... (말라비틀어짐.)
갱신!! ✌️✌️ 좋아좋아~ 중간에 이사 가서 편지 못 받았다고 하는 건 어때? 나중에라도 전에 살던 집주인이 이래저래 전해줘서 보게 됐다고 해도 좋을 것 같아서 😏 그리고 연락 안된 부분은~ 으음,, 백랑이 지금 음악에 현타 와서 나름 은둔생활? 하는 듯한 느낌인데,, 마음 복잡한 시기에 계정 다 날려버려서 그동안 연락 안된거라고 하면 어떨까 🤔 무튼 답레는 10시즈음에 올릴 수 있을 것 같아~! 곧 돌아올게 😌
으응? 제대로 들은게 맞는지 두 귀를 살짝 쫑긋, 역시 취했나봐 나. 그게 아니라면 웬 생전 듣지도 못한 편지 얘기? 내면의 목소리로 중얼였다.
발바닥에 가시라도 박힌 것마냥 애처롭게 낑낑댈 것 같은 분위기나 풍기면서. 몇년 전 이야기는 엊그제 일처럼 잘도 가볍게 얘기하네 얘.
언제적 얘기였지, 손가락 위에 마른 과일을 올리고 동전을 굴리듯 돌리며 불현듯 떠올렸다. 아아, 그땐 그랬지. 너도 나도. 꿈을 좇아 머나먼 행선지로 향하는 티켓을 끊었는데. 3년 전이 30년 전 인것처럼. 푸릇했던 미소는 어디 가고 현실에 찌들어 시들어 버렸는지. 근데 말야. 이런 표정에 익숙해지면 내가 알고 있던 모습이 더 어색하게 느껴질 것 같거든?
“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되는데~ 너 언제 나한테 편지 썼어? ”
‘왜 너만 아는 얘기 해~?’라고 말하듯 장난스레 물으며 맥주로 가득 찬 잔을 받아들었다. 예쁜 잔에 담긴 칵테일도 좋지만 나는 이 넘칠듯 말듯 푸짐하게 넘실대는 거품이 훨씬 좋단 말이야.
너는 마실 수 없을테니 건배는 생략. 가뭄에 단비를 기다리듯 꼴깍, 꼴깍, 잔을 들이켰다. 차가운 기운이 찌르르 머리를 뚫고 올라와 한껏 표정은 찡그러지고. 반쯤 뜬 눈으로 맞은편의 얼굴을 힐끔 바라봤다.
바빠서 잊고 있었네. 둘 다 다른 의미로 미쳐있었지 아마? 음악이 좋아서. 누군가는 음악 그 자체가 되고 싶어서. 또 누군가는 그런 음악을 만든 이들을 동경해서. 이렇게 멀리까지 온거잖아. 이제 와선 뒤를 돌아볼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까 정말 멀리도 달려왔네. 까마득하게.
“ 3년-! 야아~! 너희 바 맞은 편에 공항 있잖아~ 나 거기서 일한 지 1년도 넘었거든? 뭐야 이거? ”
진~짜 어이없어. 고작 몇개 차선을 사이에 두고 완벽하게 잊고 살았구나. 우리. 정말 너도 나만큼이나 바빴냐고. 실곤약을 씹으며 반농담 반진담 어린 의심의 눈초리를 째릿 쏘아보낸다.
“ 그러니까 편지도 제대로 도착 못한거 아니냐고~ 나 정말 못받았거든- 그래서 뭐라고 썼는데? 기억해? ”
0.15mm... 그 머리카락 한 올 들어갈까 말까한 길이가 사람을 이렇게 미치게 만드는군. (털석) 우냥주도 푹 쉬구 평온한 불금 보내길 바라~ 일단 나는 어제의 나비효과를 좀 수습해야 돼서.. 으아앙 내몫까지 쉬어줘
>>61 이사로구나. 나중에 편지 받아보는 거 좋다!! 으음 SNS 이야기 하니 역시 타임라인 정리를 좀 해야겠는걸..! 어렸을 때 우냥이랑 첫만남-18~19세 전후, 원한다면 20세까지(한국 세는나이 기준) 친하게 지내다가 어떤 일이 생겨서 갈라졌다가(백랑이가 이사를 가거나, 일을 몇 개 더 시작해서 엄청 바빠졌다거나 해서 우냥이랑 만날 일이 많이 줄었다거나. 아마 한국갈 준비 한다고 돈 악착같이 모으려고 그러지 않았을까?) 그렇게 서로 서먹해진 상태에서 백랑이는 21세쯤에 한국으로 떠나고, 2~3년 정도 연습생 생활을 한 후에 23~24세에 드림 퍼니스에 도전했다가 탈락한 뒤 홍콩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얼레벌레 한국에 좌초했다고 생각하고 있어. 편지 쓰기는 아마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을 때쯤(21세 무렵)부터 시작했을 거라 생각하고 있어. 모종의 이유로 SNS로 연락을 할 수가 없어서(혹은 SNS로 바로 연락하기 민망해서) 편지를 썼을 것 같거든.
좋아~ 💕 받고! 우냥이가 백랑이한테 투덜투덜인 이유로 떠나기 전부터 연락이 잘 안됐던 걸로 해도 괜찮을까? 학창시절에는 자주 봤는데 한국행 준비하면서 연락도 잘 안되고 그때 조금 서먹~ 해졌다는걸로! 연습생 시절도 바쁘니까 비슷했을 것 같구. 편지도 못 받고 디엠 티키타카도 잘 안되다보니까 얘 진짜 어디 증발해버렸나? 🤔 싶어하면서 이마에 스팀 좀 올랐을거야~ 백랑이가 사정 얘기하기 전에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분위기 봐선 먼가먼가 일이 잘 안풀렸나? 대충 어림짐작은 할 것 같아~! 참참 그리고 백랑주 편할때 답레 이어줘도 OK니까 현생 파이팅하구!! 사실 나도 이리저리 치이다보니까 더 여유로워도 상관 없거든 ☺️ 그러니까 일 마치고 편하게 쉬다가 생각날때 이어줘도 상관없어~! 타임라인은 백랑주 얘기해준대로 이어가면 될 것 같아!! 잠깐 깨서 나메 남기고 사라집니닷,,
우치링: 296 화를 삭히는 방법 킹받아 게이지가 금방 꽉꽉 들어차는 타입이라 혼자 아휴아휴~ 집에 꽁 틀어박혀서 틱톡이나 유튜브 보면서 조용히 쉬면서 스팀 빼는 타입!! 하루 지나면 금세 가라앉지만 완전 안풀릴때 건들면 캬아아아악-!! 승질 내는 타입이라네요 😏 208 탄산이 들어간 음료는 잘 먹나요? 없어서 못 마시지~! 무더운 계절에 냉기 꽉꽉 들어찬 호하우호록 목이 타들어가라 찌인~ 하게 걸쳐주면 완전 뿅 가버린다니까 🔥🔥 038 캐릭터의 눈의 특징을 설명해주세요. 뾰족한 아몬드형 눈매에 고양이처럼 동공이 가느다란 느낌? 그래서 눈에 살짝 힘이라도 주면 째릿- 하는 느낌이기도 하구, 평소에도 새침하게 솟아오른 모양이라서 사르르 녹아내리는듯한 느낌은 완전 긴장 풀렸을때 정도??
한국으로 입국하고 나서 핸드폰을 새로 맞췄는데, 기술적 문제인가 법리적 문제인가 원래 사용하던 SNS 계정을 사용할 수가 없어서 새로 계정을 만들고 보니 당연히 주소록이 텅 비어있다. 그런데 당신 아이디가 기억이 안 나서 연락을 못했다. 그 궁여지책으로 고안해낸 것이 편지였다. SNS 아이디는 기억을 못하면서 주소는 기억한다는 게 참 우습다. 그래도 그에게 남아있던 게 그것뿐이라, 답장이 없더라도 꼬박꼬박 보냈는데, 아예 받지마저 못했단 건가. 카이는 눈을 치떴다가, 이내 에잉 쯧, 하고 혀를 차며 공연히 빈 잔을 쇽쇽 닦았다. "뭐지, 내가 주소를 잘못 썼나? 아니면 중간에 뭐가 잘못됐나? 적어도 몇 장쯤은 제대로 도착했을 줄 알았더니." 이어지는 당신의 말- 자신이 1년 전부터 도로 맞은편의 공항에서 일하고 있었다는 말에, 카이는 그만 헛웃음을 흘리고 만다.
"답장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러면 이제 안 기다려도 되는 거야?"
답장을 기다리기에는 이젠 너무 많은 것이 변해버렸다. 애초에 치링이 편지를 똑바로 받아 답장을 똑바로 썼더라도 지금이라면 받아보기엔 글렀다. 소속사 주소로 답장 달라고 했는데, 그날 탈락 이후 소속사 대표님 볼 면목이 없어서 편지 한 장 남기고 소속사를 도망치듯이 나왔으니까. 미쳐서 내달리다가 커다란 벽에 머리를 들이박고 나동그라지고 보니, 너무 많은 것이 되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늦어있었다.
시간을 속이고 모든 것을 되돌려 원래 있던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 실패도 쇠락도 체념도 없었던, 막연한 희망이 가슴속에 아직 남아있던 침사추이의 콘크리트 정글의 어느 날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 돌아가서 이 노래 좋더라고 서로 플레이리스트를 나눠들으며, 시답잖은 만화나 잡지, 홍콩의 골목골목에 알음알음 놓여있는 대수롭잖은 것들을 함께 즐기던 날들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적어도 그때는 나답게 웃을 수 있었는데. ...아아 젠장, 하필 마주쳐도 이런 새벽에, 제일 속쓰릴 때 마주치고 그러냐.
"주소록 다 날아갔는데 너 웨이보 아이디 까먹었으니까 좀 알려달라고 했었지. 그 외엔 글쎄... 나도 기억 안 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같은 거라."
카이는 킥킥대며 웃었다. 그리고 당신 앞에 놓인 잔과 똑같이 생긴 잔을 꺼내서는, 거기다가 아까 당신에게 내어준 것과 같은 라거를 한가득 따랐다. 거기에 찬장에 손을 뻗어서 꺼내는 것이, 花和尙이라는 상표가 박혀있는 투명한 병이다.
그러니까 관심 좀 갖자아~!! 너 한국 와 있을동안 거기 얼마나 많이 달라진 줄 아냐고. 가뜩이나 뾰족한 눈매에 가벼운 불씨가 튀었다.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허름한 건물들도, 덕지덕지 간판으로 도배된 거리도. 재개발 들어간다고 이것저것 부수고 고치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편지를 부쳤다고 말하는 시점도 딱 그때쯤일걸. 이미 방 뺐지- 공사 때문에 시끄럽고 정신없고 또.. 그래도 예전보다는 형편도 나아졌으니까.
나도 고향을 떠나온 지 꽤 되었으니까. 너와 내가 기억하고 있는 장소는 아마 지금쯤이면 사라졌을지도. 아니면 더 예뻐졌을라나. 뭐, 말하자면 끝도 없이 이어질 얘기라서 그냥 그렇게 속으로만 생각을 곱씹었다. 피곤해, 피곤해~
멀어진 시간만큼 과거를 들춰내며 어떻게 지냈냐고. 잘 지냈냐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보단 그냥 지금 이 정도가 딱 좋았다. 백만년만에 만난 것만큼 반가운 마음도 절반만, 아쉬운 마음도 절반만. 마치 엊그제 만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것도 그렇고. 혼날까봐 말도 못하고 구슬 같은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려대는 애한테 뭐라뭐라 앙냥냥 거려봐야~ 시무룩해지기밖에 더하겠냐고.
“ 와아 일하는 시간에 술 마신대요~ 아니면 나 오늘 마지막 손님이야? ”
이젠 자연스럽게 엉뚱한 곳으로 손이 가네? 그래그래, 아카이 하고 싶은대로 다 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신경 하나 쓰지 않는 표정으로 맥주만 꼴딱꼴딱 넘겨댔다. 뭐가 됐든, 무슨 일이 있었든. 오랜만에 만나니 반갑긴 하네. 입가에 묻은 맥주 거품을 닦아내며 받으라는 듯이 핸드폰을 테이블 앞에 슥 내밀었다.
“ 빨리 찍어~ 위챗 말고. 여기선 다들 IG랑 카카오톡 쓴단 말이야. ”
언제 또 귀신처럼 사라질지 모르니까.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찍어두겠다고. 어플 안써도 찍으라는듯이 으름장을 내곤, 고양이처럼 앙다문 입술로 연락처를 기다렸다.
>>70 아냐~~!! 이정도 티키타카 딱 좋은데? 😉 나도 오늘 답레 뿅! 내일은 신나는 야간 머시깽이가 날 기다리고 있어서 🥺🥺🥺 답레 줄 수 있다면 새벽쯤 올라올거야,, 혹시라도 저번처럼 시간 더 걸릴 것 같으면 나메 남겨놓을게 🐾 내일도 힘내기~! 🔥🔥 월요일 날 또 보는거야 👋👋
적어도 몇 장쯤은, 하는 말에 당신은 카이를 한번 째려보고는 입을 다물기를 택했다. 당신이 입을 닫음에 따라, 카이도 입을 닫는다. 깨어진 조각이 오랜 시간 비바람에 참 많이도 닳았고, 이제는 원래처럼 짜맞춰질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실감되어서다.
속이 쓰려 뭐라도 마시려고 잔에 뭐라도 받았더니, 기다렸다는 듯 빈정거림이 날아든다.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카이는 화화상 병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지금 술을 마시면 뭘 마시더라도 맛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므로. 이미 따라버린 맥주는... 마시자. 마시고, 걸어가자.
"니가 마지막 손님이긴 한데... 됐다, 센 건 나중에 마시지 뭐."
엊그제 만났던 것처럼 다시 자연스럽게 이야기나눌 수 있는 사이로 돌아가기에는, 아마 생각보다 더 오래... 어쩌면 그것보다도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다.
자꾸 한 박자씩 어긋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 당신을 마주쳤을 때 덜컥 하고 어긋난 첫발걸음이, 밀려쓴 답안지나 잘못 끼운 첫단추처럼 자신을 한 박자씩 덜컥덜컥 밀어내는 것 같았다. (도망자에게 알맞은 인과응보다.)
그런 카이의 앞에 내밀어져온 것이 당신의 핸드폰. 이번에는 쓸데없는 군말 하지 않고, 카이는 한국식 전화번호 하나를 톡톡 찍어서 당신에게 건네어주었다. 그리고는 바지 뒷주머니춤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통화버튼을 눌러보면 그의 손에 들린 핸드폰이 윙윙 우는 것까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요새 정말 일이 안풀리긴 했나봐. 이렇게 시무룩한 건 또 처음이어서. 오히려 이쪽에서 당황스러워져버렸네. 차라리 어쩔저쩔 뻔뻔하게 나오기라도 했다면 한번 캬악- 해버리고 말았을텐데. 이렇게 짠하게 나와버리기 있기야?
“ 응, 그것도 엄청 많이~ ”
연락처가 찍힌 핸드폰을 가져가면서 내심 신경 쓰이는 마음에 빤히 마주봤던 눈을 살짝 옆으로 돌려버렸다. 솔직한 마음은 화난 것보다 반가운 마음이 더 컸지만. 그 당돌했던 애가 이렇게 기 죽어 있으니까 진심으로 걱정되잖아. 남의 꿈을 캐묻는 참견쟁이는 못돼서 그저 지켜보기만 했었는데. 빛나는 별이 되고 싶어했던 몇년 전 그 아이는 지금은 현실에 가까워진듯 했다.
“ 아카이, 내가 제일 센 걸로 마시라고 하면 마실거야? ”
왜 내 눈치 봐? 지금까진 너스레를 떨었던 낯빛에 살짝 불만스러운 기운이 담겼다. 우씨, 아아아아-!! 답답해~ 반쯤 남은 잔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테이블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맥주거품을 입가에 가득 묻히고, 찐한 탄산을 때려박은 탓에 막을 새도 없이 반사적으로 작은 트림이 끄윽, 나와버린다.
“ 말 나온김에~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내가 알고 있는 아카이는 한류 대스타가 될 수만 있다면 대륙따윈 가볍게 건너버리는, 그런 오늘만 사는. 대책이라곤 하나도 없던 애였는데. ”
코앞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만큼 땅굴 파고 숨어버린거냐고. 언제부터. 됐다 됐어~! 내가 아카이네 부모님도 아니고. 내가 잘난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니고. 가뜩이나 시무룩한 애 몰아가는 것 같아서 오히려 나만 나쁜 사람 되는 거 같고. 에효, 작은 한숨이나 내쉬면서 아카이쪽으로 빈잔을 밀어준다. 답답해서 한 잔 더 해야할 것 같아.
마침 지금 켜보기를 잘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 지금까지 못켜본 게 잘못이지 😢 정말 미안해, 가족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그거 수습하느라 눈코뜰 새 없이 바빴어. 내가 먼저 접속해서 나메를 남겨두었어야 했는데... 염치없지만 오늘 하루만 더 기다려줄 수 있을까...? 관심 떨어진 거 절대 아니야. 😭
하고 괜찮은 척 너스레를 떨어보지만, 안 괜찮다. 요새 뭔가 안 풀렸다기보단, 재워뒀던 마음의 상처가 한번에 깨어났다.
애써 괜찮은 척하며 살아갈 만했다. 아래로 한참을 떨어지다 턱 걸려버린 여기는, 적어도 소박하나마 안정된 삶에 머물러있을 만한 곳이었으니까. 실패의 괴로움과 미련을 몇 년에 걸쳐 가슴속에 묻어버릴 여유가 있는 곳이었으니까. 많지는 않으나마 통장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돈을 '귀향 자금'이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할 여유까지 있었으니까.
그런데 당신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카이는 떠올려버리고 말았다. 자신이 고향에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었는지, 자신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내려왔는지, 원래 자신이 얼마나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행동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어리석었는지. 계속 마음을 두드리고 있는 소리들을 이제서야 애써 마음 속에 파묻어가던 참인데, 그것들이 아카이! 하는 고함소리에 깨어나 버렸다.
"헤, 글쎄. 지금은 마셔도 맛없을 것 같아."
평소라면 당신이 말이나, 혹은 손으로 직접 휘두르는 냥냥펀치를 낄낄 웃으며 툭툭 받거나 흘려넘기는 게 이 호우카이라는 사람이었지만, 그 정도 충격은 그 호우카이의 기를 이렇게까지 죽여놓기에, 이렇게까지 너덜너덜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때 당신의 질문이 톡 날아온다.
"뭐하긴, 쫄딱─"
하고 입을 열다가, 당신이 됐다 됐어, 하며 잔을 드르륵 밀어오는 서슬에 카이는 그대로 말이 끊겼다. 끊긴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카이는 그냥 당신의 잔에 맥주를 다시 채워서 당신의 앞에 놓아준다.
당신은 갑갑해하면서 성질을 부리고 있는데, 당신을 달래거나 변명이라도 해보려고 뭐라도 하려고 하면 당신이 그걸 틀어막아 버린다. 문득 카이는 눈앞에 벽이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탈락 선고를 받던 그 날, 자신이 정면으로 충돌해버린 그 크고 높고 단단한 벽이. 카이는 가슴 한가운데가 찌르르 하고 아릿하게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지금 술을 마시면 더 아플 것 같다.
"이거고 저거고 줄창 실패만 하네."
짐짓 짓궂은 농담이라도 하는 어조로 카이는 그렇게 말했다. 나름대로 자학개그다. 사실 농담도 아니고 개그도 못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