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금을 모티브로 하고있지만 잘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상황극판의 기본 규칙과 매너를 따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를 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상대를 지적할때에는 너무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15세 이용가이며 그 이상의 높은 수위나 드립은 일체 금지합니다. ※특별한 공지가 없다면 스토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 30분~8시쯤부터 진행합니다. 이벤트나 스토리가 없거나 미뤄지는 경우는 그 전에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이벤트 도중 반응레스가 필요한 경우 >>0 을 달고 레스를 달아주세요. ※계수를 깎을 수 있는 훈련레스는 1일 1회로, 개인이 정산해서 뱅크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훈련레스는 >>0을 달고 적어주세요! 소수점은 버립니다. ※7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 경우 동결, 14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경우 해당시트 하차됩니다. 설사 연플이나 우플 등이 있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존 모카고 시리즈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따라서 기존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있고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서도 똑같이 그 설정이 적용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R1과도 다른 스토리로 흘러갑니다. ※개인 이벤트는 일상 5회를 했다는 가정하에 챕터2부터 개방됩니다. 개인 이벤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사전에 웹박수를 이용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는 계수 10%, 참여하는 이에겐 5%를 제공합니다.
10월의 마지막 주는 쌀쌀하다. 습기 하나 없는 메마른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고, 단풍을 털어낸 나무들은 일시적인 죽음을 위해 앙상한 몸을 드러냈다. 이제 겨울이 온다. 벌써부터 해만 지면 뽀얀 입김이 허공을 수놓기 시작했고, 바람도 여간 예사로운 게 아니다. 가디건을 걸치면 얼어 죽고, 패딩을 걸치면 쪄죽던 애매한 날씨도 며칠만 지나면 뭘 걸쳐도 얼어 죽을 날씨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눈도 내리겠지! 이르면 다음 주, 늦으면 2주 뒤. 어쩌면 수능 당일에 눈보라가 휘몰아칠 수도 있다. 수능 한파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런 생각을 하니 괜히 몸이 부르르 떨렸다. 몰아칠 한파처럼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는 학교도 마찬가지다. 교실에서는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잔뜩 긴장하거나, 아예 긴장을 놓은 학생들로 나뉘어 제각기 11월을 대비하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문제집에 한 번이라도 더 시선을 주느라 여념이 없지만, 태오는 어깨 위에 흘러내린 담요를 고쳐 감싸며 마른 낙엽이 나뒹구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대학이라. 15주년 축제 때 마주한 할아버지는 태오에게 대학은 반드시 가라 으름장을 놓았지만 태오는 큰 관심이 없었다. 이미 정해둔 미래가 있었고, 저지먼트의 업무는 학업에 신경 쓸 만큼 여유롭지도 않았다.
애초에 끽하면 죽는 세상에서 대학이 무슨 대수인가, 당장의 현실이 더 중요하다.
그나마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던 달콤한 휴가도 이젠 없다. 섬에서 육지로 다시 발을 내딛기가 무섭게 현실의 일들이 휘몰아쳤다. 세상은 저지먼트에 속한 모든 학생을 가만히 내버려두는 법이 없었고, 무자비한 현실을 겪은 건 태오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텀 세레니티에 출품할 작품을 숨겨 경매장에 인계하는 것부터 시작해 정보 수집에 상납까지 겹쳤다. 처음엔 혜우가 바빠 연락도 제대로 못 받는 상황에 풀이 죽었지만 현실을 거칠수록 오히려 바빠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2번 남은 상납 중에서 한 번을 채웠을 때는 이 장면을 들켰으면 둘 중 하나는 죽었으리란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빌어먹을 암리타 프로젝트가 뭐라고, 혈청 주사를 맞은 태오는 서휘의 품에서 몸을 벌벌 떨며 고통을 견뎠다. 서휘는 그런 태오가 또 어여쁘다며 몇 번을 어르고 달랬고, 태오는 서휘의 어깨 가죽이 찢어져 피가 날 때까지 꽉 쥐어뜯으며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제발 살려달라 몇 번이고 빌었다. 그때 그 백 년 묵은 구렁이 같은 양반이 차라리 죄 쏟아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속삭이는 게 어찌나 끔찍하던지! 기어이 태오가 빈속에서 희멀건 위액만 토했을 때 서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가까이 가져다 댔다. 태오는 그 순간을 떠올리며 누가 창문을 연 것처럼 부르르 떨었다. 취향 한 번 고약한 사람 같으니라고. 제사장의 소재만 제대로 파악하면 이 지랄맞은 일도 없을 텐데…….
"……."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제사장과 연관된 바즈라로 생각이 넘어갈까 싶기가 무섭게 망막에 알림이 떴다. 눈을 감아 무시하려 했지만 알림을 확인하지 않았다며 오렌지색 불빛이 깜빡여 시야가 요란했다. 깊게 심호흡을 하고 눈을 뜨니, 커리큘럼 윤리 이수와 정신 감정의 날이 돌아온다는 단조로운 문자가 증강현실을 통해 허공에 둥둥 떠올랐다. 이번에도 바즈라의 부소장이 직접 교육을 진행할 것이며, 교육 이후에는 적절한 '보상'이 주어질 것이란 안내 메시지를 확인한 태오는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수능 끝나고 뭐 할 거야?" "어……."
주변에서 태오의 표정을 확인한 학생들은 수다를 떨다가도 입을 꾹 다물었다. 저 양아치는 사람 쫄리게 표정이 왜 또 저런담? 들려오는 속내를 무시한 태오는 책상에 고개를 파묻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산 넘어 산이다. 상납이 끝났더니 이제는 바즈라가 사람을 잡는다. 리버티인지 뭔지가 왜 바즈라는 건드리지 않고 애먼 데 마레만 건드렸는지 의구심이 든다. 사실 누구보다 비윤리적 커리큘럼을 사랑하는 건 아니었을까? 이참에 죄다 접시 물에 코를 박고 죽어버리면 안 되는 걸까 간곡히 바란 태오는 고개를 비비적대며 옆으로 돌렸다. 창밖의 하늘은 꼭 눈이 시릴 만큼 파랗고 공허한 캔버스 위에 흰 물감을 개어둔 붓을 뭉갠 듯한 구름이 수 놓여 있었다. 몹시도 아름다운 하늘이 야속하다 생각하며 태오는 눈을 감았다. 고단한 하루 일과도 그렇게 중턱을 넘어가고 있었다.
하굣길, 태오는 골목에 적당히 숨어들어 전자 담배를 빼물었다. 상쾌한 멘솔 섞인 포도 냄새가 공기 중에 흩어지고, 오늘 있었던 환장할 일들도 날숨에 섞여 조금씩 흐드러지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태오는 벽에 등을 기대며 돌아가서 할 일을 곱씹었다. 일단 바즈라의 커리큘럼 윤리 이수 교육과 정신 감정은 미루지 않기로 했다. 이대로 계속 미루면 어른이 되어서도 질질 끌려다니는 꼴이 될 게 분명하거니와 손톱 두어 개 정도는 류시원이 이따금 술술 풀어주는 정보에 비하면 싼 값이었으니까. 가급적이면 어텀 세레니티 이후로 일정 조정을 해야겠다. 그리고 겸사겸사 제사장의 소재도 파악하고, 또…….
"아."
태오는 망막에 뜨는 남색 알림에 입에 문 담배를 급히 빼 연기를 뱉곤 핸드폰을 꺼냈다. "응, 우리 아가." 목소리엔 여전히 기운이 없지만 어조가 몹시도 부드럽다. 부드러운 깃털처럼 간드러지는 어조와 함께 태오는 담배를 잠시 멀리했다.
"잠깐… 쉬고 있었어요…… 어떤 부탁이길래 오빠한테 전화했을까?"
점심부터 저녁까지 집을 빌려달라고? 태오는 내일의 일정을 잠시 고민하다가도, 이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우리 우화 부탁이면 당연히 그래야죠, 응…. 그러면 점심에 집, 비워줄 테니까…… 마음껏 써요."
동생의 부탁에 자신의 일정이 굳이 필요하겠나? 과거라면 피해 다니느라 바쁘겠지만 이젠 아니다. 이젠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고, 최대한 많이 어필하는 것이 중요하단 것도 안다. 태오는 아예 전자 담배를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집으로 가는 걸음을 재촉했다. 오늘은 뭐 하고 지냈어요, 바쁘진 않았고? 일상을 얘기하면서도 머릿속에는 어느새 집 청소를 안 한 곳이 있나 기억을 더듬고, 집에서 뭘 하는진 몰라도 초콜릿이라도 먹으며 쉬게끔 해야겠으니 저번에 서휘가 말한 4학구 초콜릿 가게에 들러야겠단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한편 서휘는 난데없는 날벼락에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다음 원고를 집필하고자 막힘없이 전개를 구상할 적 전개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버렸고, 어떤 것을 선택해야 다음 시리즈로 매끄럽게 진행이 될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참사가 벌어진 탓이다. 이걸로 진행해도 괜찮을 것 같고, 그렇지만 또 이 전개로 쓰면 극적일 것 같고. 평소 명확한 계획을 세운 뒤 글을 쓰곤 했지만 모든 글 쓰는 사람들의 고질적인 문제인 전개의 망령과 이건 끼워 맞추기의 악마가 동시에 겹치면 천하의 백서휘도 잠시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손을 싹싹 모아 신내림을 간곡히 빌곤 했다. 글이 안 써진다, 머리에는 여러 전개와 하이라이트까지 빼곡하게 있지만 도저히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신이 있다면 제발 오늘만큼은 전개를 뚫게 해달라……. 눈을 질끈 감은 서휘는 세상이 하얗게 빛나는 것을 느끼곤 드디어 신내림이 내렸구나 생각했다.
"…허?"
신내림은 신내림인데, 다른 부류의 것이 내린 듯하다. 서휘는 망막에 맺힌 메시지를 하나하나 읽어보다 새붉은 눈을 가늘게 휘었다.
<[우리 처제도 잘 쉬었나요?] <[그런데 우리 처제] <[묻고픈 게 있는데요] <[내가 이런 거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담?] <[열심히 즐기고 올게요.]
그래, 이참에 쉬다 보면 신내림이 내리겠지. 서휘는 저장 버튼을 누르며 노트북을 덮었다.
동시에 한결 또한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능력 개화 이후 뭔가 잘못됐는지 말하기 어려운 증세들이 이따금 한결을 곤혹스럽게 만들곤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언가 딱 막힌 느낌이다. 뇌를 잘못 건드렸나? 그렇다기엔 스캔 이후 별다른 이상 증세는 없었는데. 어찌 됐든 논문에 추가할 것이 너무나도 많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 탓에 가뜩이나 더 색이 옅어진 머리를 감싸 쥐며 입모양으로 추가할 내용들을 정리하듯 중얼거리던 한결은 마시면서 하라며 팥차를 건네는 태휘에게 진저리를 내며 정전기를 따닥거렸다.
무자비한 정전기 공격에 몸을 비틀던 태휘는 누군진 몰라도 연락을 준 사람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했고, 한결은 정전기를 사용하는 통에 잔뜩 일어난 머리카락을 뒤로 핸드폰을 켜더니, 손을 들어 비구를 덮어 가렸다. 추위에 민감하다, 라.
<[귀한 선물이네요 (●'◡'●)] <[날이 쌀쌀한데, 혜우 학생도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해요!] <[그렇지만 태오 학생이 추위를 잘 타는 건 몰랐네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같이라면 좋아요.]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른 연락에 눈을 굴리고는 드물게 눈웃음만 쳤다. 아하, 그렇구나. 어디에 있든지 달력을 본 두 형제는 연락을 슬쩍 주고받고는, 거의 동시에 답했으리라.
[당연히 비밀로 해야죠.] [우리가 잘 구슬려둘 테니 걱정 말고 준비해도 좋아요.]
"한결 쌤, 왜 혼자 웃- 악! 따가워! 악!"
태휘의 비명과 함께 하루가 저물었다.
화창한 날이다. 가을 하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아름답고, 날은 쌀쌀하다. 어젯밤, 어쩐 일인지 서휘와 한결이 동시에 데이트를 신청한 터라 태오는 수월하게 자리를 비울 수 있게 됐다. 타이밍도 좋게, 어쩐지 석연찮게 술술 진행되는 일 때문에 미심쩍게 생각한 적도 있지만 무자비한 두 형제의 담요 공격에 흐물흐물 녹아버린 태오는 의심할 겨를도 없이 다음 날에야 눈을 뜰 수 있었다.
"우리 아가."
태오는 품에 제 동생을 안으면서도 시선을 물끄러미 내렸다. 폭 안기는 감각이 평소와 다르다. 뭐가 달라진 걸까 가늠하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손을 천천히 내리고, 등허리에 닿은 길쭉한 손가락이 날개뼈를 툭 건드렸다. 말랐다. 손에 닿는 느낌도 다르고, 육안으로 봐도 핼쑥하다. 요즘 바쁘긴 했지만 어쩜 이런 일이 다 있을까. 날개뼈를 손가락으로 쓸던 태오의 손이 올라가 혜우의 뺨을 가볍게 쓸었다.
"우리 아가의 주치의는…… 영 쓸모가 없는 것 같아……."
태오의 표정은 여전히 잔잔했다. 적개심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고요하고, 손톱 거스러미를 보듯 거슬린다는 시선이라기엔 그마저도 과분한 무언가가 희미하게 일렁이다 사라졌다. 태오는 혜우의 주치의와 언쟁을 벌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여력은 없다는 듯, 태오는 느릿하게 뺨을 비비며 품에 조금 더 가까이 안았다. 인간, 동생, 따뜻하다. 단순한 생각이 스쳤다.
"따뜻해서 조금만 더 이러고 있고 싶은데…… 저번에 섬에서 해준 미트볼, 맛있었어……. 그러니까 조금만 더 여기에 있으면… 아."
칭얼거리듯 나지막이 중얼거리기도 잠시, 태오는 두 형제, 정확히는 서휘의 성격을 익히 아는 탓인지 입을 고이 다물며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가, 작업실은 위험하니까 들어가서는 안 돼요. 잠긴 방에도 위험한 게 많아요, 들어가면 다칠 수도 있으니까 들어가지 않기예요, 약속. 아무리 혼자 치료할 수 있다고 해도 우리 우화가 오빠 집에서 다치는 건 싫어……. 주의사항이라 해도 온통 동생 걱정이요, 가는 길까지 미련을 놓지 못하던 태오는 건물 밖으로 사라지는 순간까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
다만 즐기는 건 열심히 협조한 듯싶다. 중간중간 두 형제가 태오의 사진을 보내며 근황을 보고했으니, 한결 덕분에 농구 게임으로 커다란 인형을 받은 채 얼굴을 붉히는 사진이 있는가 하면 서휘의 사격으로 머리띠를 받아 떨떠름한 표정으로 토끼 귀를 만지작거리는 영상, 그리고 결국 패배했는지 일루미네이션의 빛무리 속에서 몹시도 희미한 미소를 짓는 사진까지. 여러 사진에서 태오는 섬에 있었을 때처럼 순간의 근심도, 걱정도 내려놓은 듯싶었다.
<[곧 갈게. 조금 이따 봐요.]
그로부터 대략 20분 뒤, 곧 도착할 것 같다는 연락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태오는 오늘 하루가 어땠느냐며 상냥하게 묻는 두 남성의 목소리를 외면하며, 지친 기색을 애써 삼켰다. 오늘따라 두 사람의 애정공세가 깊은 것도 있었지만 평소보다 몇 배로 눈치를 보는 것 같단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심중을 파고들어 의중을 파악해 볼까 싶어도 귀신같이 눈치채며 볼이며 손등이고 입술까지 남아날 생각이 없으니 놀이공원 내부에서 쏟아지는 두 남자의 애정공세와 대어를 무려 둘이나 낚았다는 시선에 너덜너덜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두 남자를 뒤로 팍팍 밀어내며 문을 열었을 적, 태오는 잠시 제 눈을 의심했다. 바다. 그 깊은 곳이 펼쳐진 탓이다.
"……아."
혜우가 집을 빌려달라 한 이유는 이것 때문일까. 집을 새로운 거처처럼 누비는 열대어와 해초, 일렁이는 바다와 빛무리……. 태오는 기이하되 몹시도 익숙한 정경을 하나하나 눈에 담다가도 새하얀 존재를 가만히 마주했다. 동시에 익숙함을 느꼈고, 그 익숙함이 제 여동생을 몹시도 떠올리게 만든다는 것에서 기인됐음을 깨달았다. 안드로이드처럼 새하얀 몸이 금방이라도 흩어질 듯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검푸른 눈 탓일까. 차분함과 장난스러움, 순진무구함이 느껴질 적 태오는 불안함을 느꼈다. 몹시도 순진무구하고, 몹시도 말간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불안한 것인가. 걸음을 따라 홀린 듯 족적 하나 남기지 못하고 더듬더듬 걸어갈 적 그 불안의 정체는 명료해져만 갔다. 상실의 불안이다. 외려 순진무구하기에 두려움을 느꼈다. 제아무리 동생을 아끼고 품는들 그간 겪은 일들이 없던 것이 아니다. 본능에 가깝게 새겨진 공포는 이렇게 화려한 순간, 행복을 느끼면 그럴 자격이 없다는 듯 거대한 존재가 물어 채가는 것을 안다는 듯 체념과 절망을 준비했다. 자신이 그런 것을 느껴서는 안 된다는 듯 운명의 너울이 흉포하게 몰아칠 것이다. 여성이 조개에 들어설 적 태오는 딱딱하게 굳어버렸고, 두려움과 걱정이 없는 표정에서는 한때 망가진 듯 잠에만 빠져 어떤 것도 하지 못하던 제 동생을 떠올렸다. 그리고 암전 속에서 태오는 잠시 숨을 멈췄다. 갈피가 명확한 공포가 등골을 타고 뇌를 잠식하려 들었다.
"흐앗."
그리고 공포에게 자신을 내어주기 직전, 흰 손이 불쑥 튀어나오자 태오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나다가도 눈을 질끈 감았다. 명순응되는 눈과 함께 태오는 가늘게 눈을 떴고, 공포는 어느새 등골에서 쑥 사라진 듯 온데간데없었다. 어안이 벙벙한 듯 눈을 깜빡이던 태오는 조그맣게 벌어진 입과 함께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다가도, 조개가 있던 자리에 서있는 혜우를 보며 서서히 수륜을 좁혀갔다. 눈꺼풀이 조금 더 넓은 간격으로 벌어지며 그 안의 나침반 명확한 눈동자가 작아질 적, 태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주먹을 말아 쥐었다.
아, 그랬구나. 그러하였구나.
본성 깨닫기 전의 과거라면 모를까 생세일을 기뻐한 적이 있었나. 한 번도 원하지 않는 숨을 시작한 날이라 생각하며 스스로의 존재에 의문을 품지 않았던가, 그렇게 의문에 대한 답을 삼키고 하루만큼 꾸역꾸역 살아간 날이라 생각하며 위안을 얻다가 기어이 잊지 않았나. 만나지 아니하였더라면 평생 그리하였을 것을 서로 송두리째 바꾼 날이기도 하지 않은가……. 태오는 더듬더듬 혜우의 이름을 불러보려 입술을 벙긋거리다가도 몸을 움찔 떨었다. 그리고 품에 안겨주는 스탠드 조명을 고이 품고 한참을 침묵할 뿐이었다. 은은한 조명이 비치는 것이 천지의 빛을 머금은 것 같이 아롱거릴 적, 태오는 굳게 다물린 조개처럼 입을 열지 못하며 단어만 곱씹었다.
"……."
일순 세상이 바다처럼 일렁인다. 공막에서 투명한 물이 차오른 탓이다. 의지를 가질 새도 없이 혼자 후드득 떨어지는 물방울이 굵다. 주체할 수도 없이 쏟아지던 것은 점차 줄기가 되어 흘렀고, 시야는 몇 번이고 일렁이다 돌아오길 반복했다. 태오는 눈을 깜빡이고 나서야 자신이 울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의 돌아갈 곳이 무저갱의 어둠이라도 너는 그 위를 비추는 빛이니 너는 나의 유일한 천지를 비추는 명주明珠요 이는 태양이다. 나를 등용문에 올리고도 너는 끝까지 나를 구원하는구나. 소리를 내려는 것에 여러 번의 시행착오가 생기고, 단단히 메여 목구멍을 비집고 나오지 못하는 단어들이 혀를 애써 맴돈다.
"나, 나는, 그러니까."
스탠드를 조심스럽게 한 편에 둔 태오는 더듬더듬 말을 잇다가도 입술을 꾹 다물며 천천히 한 걸음씩 다가갔다. 조금 더 가까이, 더 가까이. 그렇게 팔을 벌려 품에 안았다. 조금이라도 잘못 건드리면 쉬이 부서질 보물을 품은 듯 몹시도 조심스러운 태도였고, 덜덜 떨리는 몸이 사시나무와 같았다. 겨우 비집고 나온 어성은 애써 고운 척을 하지만 결코 곱다고 할 수 없다. 짐승이 인간의 소리를 흉내 내듯 겨우 더듬거리며 뱉은 단어는 또 한참의 침묵에 잠겨 사라졌다.
"……고마워."
몇 개의 단어, 몇 줄의 문장이 머리를 맴돌고, 그 모든 말을 뱉고 싶었으나 태오는 단 한 마디밖에 할 수 없었다. 눈물에 일렁이는 눈을 감고 태오는 연신 속삭였다. 고마워, 고마워……. 눈에 박힌 나침반이 마침내 길을 정했으니, 순한 짐승처럼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고개를 숙인 태오는 혜우의 뺨에 제 입술을 대더니 그대로 입술을 벙긋거리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행복해. 다시는 잊지 못할 것 같아…."
그 어떤 순간도 오늘만큼 행복할 리가 없다. 태오는 고개를 느릿하게 비비며 조금 더 떨어지지 않을 듯이 끌어안았고, 슬쩍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두 형제도 조심스럽게 다가와 남매를 품고는 거봐, 아직 애라니까. 싶은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든 말든 태오는 축축한 뺨 너머로 말갛게 미소 지었다.
"응, 우리 우화 배고프겠네. 어서 먹어야지, 응……."
증오스럽던 나의 생세일을 뒤집은 네가 나의 보주요, 내가 너로 하여금 승천의 기로에 발 디뎠노라.
"그럼 커리큘럼은 이제 끝나는 건가요?" "끝내고 싶은가 봅니다?" "이 과정을 좋아하는 학생은 아마 없을 테니까요. 저도 평범한 학생일 뿐이고요." "......"
짧은 정적이 흐른다.
"계수 19면 아직은 더 나아갈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저도, 이 연구소도 그렇게 생각해요." "꼭 더 나아가야 하나요?" "이리라 학생은 여기서 만족하는 겁니까?" "일단은요." "이유는?" "충분한 것 같아서요." "갈 수 있는 길이 아직 남아있는데도요." "남았다고 꼭 가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게 유의미한 행동인지 아닐지 모른다면 더더욱."
둥굴레차의 수색이 짙어진다. 리라는 조금 식은 차를 한 모금 넘겼다. 따스한 액체가 목구멍을 부드럽게 데운다.
"나아가기 싫다는 게 아니에요. 다만, 이젠 앞만 보고 무작정 달리는 것보다는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걷고 싶다는 거죠." "......변했네요. 이리라 학생." "전 꾸준히 변하고 있었어요."
그걸 당신이 얼마나 잘 알고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개인 시간을 늘리고 싶다면 커리큘럼은 주 2회로 줄이죠." "거기에 더해서 능력 활용 훈련 위주로 프로그램을 짜고 싶어요. 머리를 연다거나, 약물을 사용한다거나 하는 건 이제 와서는 사실상 불필요한 커리큘럼이니까요." "그건 학생이 아니라 연구원이 판단하는 겁니다. ...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니... 일단 좋아요. 하지만 이전에 한 말은 변함 없습니다. 새 병원, 새 상담소. 예약일은 이번주 주말입니다. 데려다 줄 테니 정오까지 연구소 앞으로 오세요."
리라는 차를 한 모금 더 넘긴다. 하고 싶은 말은 있지만 적어도 이 시점에선 상대에게 와닿지 않을 게 분명하고, 그렇다면 전문가의 입을 빌려 증명한 다음 합리적으로 끝마치면 된다. 급할 건 없다.
"조금 의외네요." "그건 또 무슨 말이죠." "음. 그냥, 느낌일 뿐이었지만... 연구원님은 제가 레벨 5를 달성하면 어딘가로 떠나버릴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그러지 않으셔서요." "그러길 바란 겁니까?" "딱히요."
침묵.
"어쨌거나 난 굿위치의 담당 연구원이니까요." "그렇죠." "커리큘럼 시간 종료됐습니다. 귀가할 준비 하세요."
그간 헤쳐왔던 시간이 어땠는지 고려하면, 조금은 심심하게도 느껴지는 레벨 갱신 시간이었다.
... ... 위이잉—
띡.
저벅, 저벅, 저벅.
달칵.
타닥. 타닥. 타닥. 딸깍. 딸깍.
팟!
[목화고등학교 LAP 통합 홈페이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바로가기]
>> [제 11연구소] ㄴ 소속 학생 명단 ㄴ대분류: 리얼리티 매니퓰레이션 (1명) ㄴ소분류: 드로잉 액츄얼라이즈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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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열람] [해당 데이터는 목화고등학교 제 11 연구소의 중요한 자산입니다. 허가받지 않은 외부로의 유출은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름: 이리라] [대분류/소분류: 리얼리티 매니퓰레이션-드로잉 액츄얼라이즈] [계수: 19] [판정: 레벨 5] [학년/반: 2-n] [소속: 목화고등학교 저지먼트, 목화고등학교 댄스부] [담당 연구원: 윤정인] [...] [비고: 위 인물은 레벨5로 귀중한 인재입니다. 「굿위치」라는 이명으로도 불립니다.]
>>660 >>661 리라주 리라 5렙 공식으로 인증됐군요 >< 그러면서 갠서사도 마무리라~☆ 리라도 애썼고 리라주도 애쓰셨어요오오오오 >< 그나저나 리라가 저래 저체중인 건 어려서부터 오랫동안 강제 관리를 당해 와서인가 인첨공 와서 커리큘럼에 저지먼트에서 처했던 위기에 갖가지 고생을 해서인가 헷갈려요 @ㅁ@;;;;;
죽여보라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한 도박은 오너가 약간의 캐붕을 섞어서 예상이 안된게 당연해요! 강철현은 '낭만'과는 거리가 먼 성격이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런 도박은 안해요! 하지만 수연의 저 대사가 너무나 안타까워서! 최대한 강철현답게 겉은 낭만을 연출하지만 속은 이렇게 안전장치를 마련해놨다는 게 되어버렸네요! 네! 하남자랍니다!
철현: 내가 그거 먹으면 오히려 수연이는 다른 부원들 퍼클 만드는 거 막으려고 날 죽이려고 들텐데? 철현: 협박은 안 해야 협박이지. 철현: 진짜 해버리면 상대는 대응책을 준비해버려. 철현: 팔찌는 내 실수야. 철현: 분위기 타버렸어...
(힘 없이 밀림) 철현: 아, 맞다.
(매달리는 서연이 포옹하기) 철현: 아마...미쳐버리는 줄 알았겠지? 철현: 이런...나도 널 완벽하게 믿는 건 아닌가봐... 철현: 아니, 실수야. 철현: 나는 널 믿지만 그렇다고 걱정하지 않는 건 아니야.
(수연이 운반 중)
철현: ... 철현: 이미 아물어서 회복할 수 없나? 철현: 그러면 그냥 그 부분만 도려내면 어떻게 될까? 철현: 이미 기절했는 데 그냥... 철현: 그냥 옮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