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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어 나 팔 박살났어 사고나서. 몰랐냐? 그래서 고베 있다가 다시 올라왔잖아.”
이마 위로 스윽 올라오는 손길에 '얘 왜이래?'라는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냇가에 담갔다 빼서 그런지 촉촉하고 차가워서 살짝 움찔했다. 아, 말 안해줬나.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한쪽 팔을 못쓰게 돼서 운동 접었다고. 대충 지나가듯 말해줬다. 그래서 지금 포대 지고 있는 어깨도 멀쩡한 쪽이잖아.
“잠깐 숨통만 트러 나가도 아부지가 뻘짓거리한다고 끌고간다야.. 다시 집 온뒤로는 가게에 거의 살다시피해.”
송충이 하니까 생각난다. 길다란 나뭇가지에 오동통한 녀석 하나 태우고 얘 코 앞에 들이밀어댔었지. 지금 생각하면 엄청 유치한데 왜 그랬지. 아, 기억 못하는 척 하는건지 아니면 진짜 기억 못하는건진 모르겠지만 말 안나와서 다행이라고. 그렇게 대충 생각하고 넘겼다. 십여 분을 걸어 아스팔트 도로가 나올즈음 적당히 멀리 보이는 가게 문구. 오만상을 찌푸리며 포대를 짊어진 어깨를 한번 들썩인다.
“아. 너 우리 가게 온적 있었나?”
아직 오픈 전이라 조용한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서며 막연히 물었다. 노포 느낌 물씬 풍기는 내부는 음식 냄새가 베어서 오묘하게 미소, 간장, 생강이 섞인 쿰쿰한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고 벽과 테이블에는 통일성 없는 여러 장식들이 빈 공간을 차지했다. 불이 꺼져 약간 어둑한 주방 입구에 포대를 던지듯 내려놓고 손을 탁탁 털며 넌지시 물었다.
확실히 마시로가 예상한 대로, 이 빌어먹을 놈의 야구공은 한번 놓쳤다고 아주 신나라 나잡아보쇼 하고 도망간 모양이다. 일단 아무리 짧게 갔어도 이 수풀 건너편은 들여다보아야 되겠다. 그러나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가 않는다... 아주 괴상망측하기 그지없는 형태로 찾아온 비상사태 때문에.
"응."
제대로 약이 올라, 마치 억지로 발톱을 깎이고 난 고양이만큼이나 성이 난 표정으로 이쪽을 째려보며 너 멋대로네, 하고 마시로가 던진 타박에 미카즈키는 무덤덤하다 못해 얼굴에 철판 깐 수준의 노가드로 대응했다. 그리고 그것은 마시로가 뻗은 손길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뻔뻔하게 마시로의 손길을 피했다는 게 아니라, 무덤덤하게 그냥 마시로가 모자를 벗겨가던지 말던지, 마시로 성질대로 하게 내버려두었다. 볼캡 챙이 하얀 손끝에 팩 나꿔채이고, 그 아래로 새하얀 얼굴이, 여름 뙤약볕 아래에 놓인 야구부 아이의 얼굴이라기에는 창백한 얼굴이 드러난다. 표정 없이 가만히 마시로를 바라보는 얼굴이, 그 얼굴 가운데서 이젠 가리는 것도 없이 파르스름하게 빛나는 눈동자가 어디선가 본 것만 같다. 그도 어쩌면 마시로에게서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을까. 그러나 그보다, 소년은 왜 유난이야, 하는 마시로의 앙칼에 원론적인 대답만을 내어놓을 뿐이다.
"그만큼 다쳤는걸."
무릎만 깨진 게 아니잖아. 이 원론적인 대답의 가장 골치아픈 점은 맞는 말이라는 점이다. 모래와 자갈이 까슬까슬한 시골길이 입힐 수 있는 상처를 얕보고 있는 마시로의 발언에, 미카즈키의 대답은 반박의 여지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마시로를 안아든 미카즈키의 발길은 비탈길을 오르지 않았다. 대신에 때마침 저만치 있는 가로수 그늘이 드리운 벤치로 향했다. 무슨 심경으로 그리했는지는 모르지만, 남에게 보이면 퍽이나 무안할 지금 이 모양새를 저 비탈길 위에 한가득 몰려있을 야구부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마시로에게는 호재라 할 만하다.
미카즈키는 마시로를 벤치 위에 앉혔다. 끄집어올릴 때 그따위 식으로 우악스럽게 뽑아내듯이 들어올려놓고는, 내려놓는 움직임은 같잖게도 조심스럽다. 그는 주머니에 푹 찔러넣어놓았던 구급낭을 꺼내서는 얄팍한 비닐에 포장된 위생 물티슈부터 먼저 꺼냈다. 그리고 그것으로 마시로의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먼저 톡톡 두드리며 닦아내기 시작했다. 마시로가 딱히 거부하지 않았다면, 미카즈키는 두 장째의 물티슈를 꺼내들어 마시로의 다친 쪽 무릎을 닦아주기 시작했을 것이다.
발을 내리고는 자신의 발치를 내려다본다. 정말 들어본 적이 없는건지, 아니면 그저 마이가 잊은 건지 확실하지 않았기에. 잠시 그러다 위를 올려다본다. 그렇구나. 그럼 저 포대가 얹혀 있지 않은 어깨가 아픈 어깨구나. 마이는 다시 묵묵히 타케루의 뒤를 따랐다.
"타케루네 아버지, 엄하시니까."
같이 놀 때 저 멀리서도 타케루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온 적이 많았다. 그만큼 괄괄하고 목소리가 큰 아저씨. 하지만 가끔 가면 맛있는 것도 해주셔서 아주 나쁜 기억만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만일 그 송충이가 들이밀어진 기억을 기억하냐 물어본다면 미야마 마이는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독충이라 닿으면 큰일난다고 우와악! 하고 도망치다 넘어진 것도 기억한다.
"으으응- 한 번 도 없어."
이자카야는 밤 늦은 시간에 주로 여니까. 마이는 그 시간에 자고 있기 때문에 통 들려볼 일이 없었가. 타케루의 뒤를 따라 들어간 장소에는 장향이 묻어나왔다. 그리고 방금 생강포대를 떨궈서, 바닥에서 흙내와 생강냄새도.
정말 온적 없나. 머리를 긁적이곤 쭈그려 앉아 포대를 깐다. 모두가 잠든 시각 가게 문을 열고 모두가 깨어난 시간 문을 닫으니. 아버지의 밤낮은 우리 같은 사람들하곤 다르다고. 불이 꺼져 어둑한 가게에 전등을 켜고 지난 날 정산하지 못한 영수증 무더기를 옆으로 치워버린다.
“안덥냐? 메론소다라도 한 잔 타줘?”
아. 잠시 할일에 정신이 팔려서 마이쪽은 쳐다도 안봤네. 직업병 때문인가. 가게 입구 문지방을 밟은 사람들은 전부 손님으로 보이니까 저렇게 우두커니 서있는 모습이 왠지 불편하게 느껴져서 아무말이나 툭 내뱉는다. 당장 대답이 돌아오기도 전에 이미 몸은 주방쪽으로 기울었다. 뭇 킷사텐에서 매출 기둥을 든든하게 잡아주는 주력메뉴중 하나. 가게 메뉴에는 오르지 않았지만 가끔 술을 못 마시는 손님들을 배려해서 서비스로 나가고 있다.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흙먼지 가득한 손은 깨끗하게 씻어주고. 예쁜 컵에 메론 시럽을 담고 차가운 얼음과 탄산수를 한 캔 따서 부어주면 끝. 바닐라 아이스나 체리 같은 장식을 올려준다곤 하지만 이런 쌈마이한 오마카세에선 그런건 사치다. 타케루는 잔 안에 담긴 음료를 하이볼 스푼으로 휘휘 저어 대충 빨대를 꽂아 마이에게 건넨다. 이게 바로 ‘파닥파닥표 공짜 메론소다’ 되시겠다.
아마네의 속마음에 대한 답을 알고 있음에도 절대 내주지 않겠다는 듯. 작은 웃음소리를 내던 천연덕스러운 얼굴의 고개가 기울어진다. 마시로-하고 다정함을 숨기지 못하는 나긋한 목소리로 불러주는 익숙한 높낮이의 어조와 말투. 그립다면 그리웠던 듣기 좋은 울림이다. 여전하구나, 변한 건 그녀 뿐이겠구나. 그러나 그점에대해서 씁쓸하게 여겨진 않는다.
“응. 나쁘지.”
담배가 아닌 본인을 지칭한 대답이다. 한 모금 채 제대로 피지 못했던 연초가 짓이겨진다. 그 모습에 표정이 찌푸려진다. 저러면 손에 냄새 배잖아, 바보. 지적하기엔 늦었으므로 작은 한숨이 대변한다. 분노하고 속상해 하는 아마네의 심정도 어느정도 가늠이 간다. 생각보다 더 동요하는 것 같긴 하지만 원치않은 시작부터가 잘못된 것을 어쩌겠나. 잘못된 첫단추를 바르게 꿰어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왠지 모를 철없는 반항심이 튀어오른다. 이미 지나간 시간들이야, 달라지는 건 없어, 아오. 그것은 속으로 삼킨다. 한참 콜록대는 아오를 바라보며 마시로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지만 죄책감에 주저하던 손이 닿기 전에 기침은 사그라들었다.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아.”
적어도 이런 상황에선 절대. 무거운 분위기가 지나치게 불편하다. 이 자리를 어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가 그득해진다. 철들지 못한 소녀는 스트레스 상황 속에서 회피 외의 답을 찾지 못하고 웃음기 가신 얼굴로 이마를 짚는다. 그와중 그의 대답은 당연하리만치 건전했고, 여전히 아오다웠고. 하나도 변하지 않은 모습에 안심했다. 비겁한 건 마시로 뿐이다.
“미안, 미안해 아오. 그런 표정 짓지 마.”
분노의 감정이 사그라들고 슬픔이 자리하고 마는 그의 표정을 마주하기엔 무너져 버릴 것 같다. 재회함과 동시에 이런식으로 부정 당하고 싶지만 않았는데. 그것을 두려워하여 선뜻 아오에게 진작 찾아가지 못했던 것을 결국 이런 형태로 되받는 게 아닌가. 무정했던 그녀의 표정이 조금씩 시들어간다.
“관둘 테니까 진정해.”
주머니에 있던 하얀 담배갑이 바닥에 내팽겨쳐지고선 전부 마시로의 발로 짓이겨진다. 정지된 사고에 이 상황을 타개할 만한 좋은 대안은 떠오르지 않고, 별 거 아니니까 호들갑 떨지마? 아닌데 이게. 지끈거림을 무시하다 결국 '잘 지내서 다행이네.' 덧붙였다.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 물론.
베시시 웃으며 타케루네 아버지가 오는 것을 상상해본다. 타케루! 나 다마나기! 와 같은 큰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생생하다. 아직 오지도 않은 사람이거늘 이미 등 뒤에서 그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아 뒤를 돌아보다가 다시 타케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마실래."
타케루가 일 하는 와중에 가까운 자리를 잡아 앉았다. 덥냐는 말에는, 글쎄. 마이는 더위도 추위도 별로 생각 안 하는 편이었으니까. 그래서 동상이나 열병에 종종 걸리기도 하지만. 말을 들어본 김에 많이 더운가 하고 자신의 머리에 손을 얹어보았다. 따듯했다. 더운가보다. 타케루가 메론소다를 만드는 동안 손으로 얼굴이나 목을 부채질하며 기다린다.
"예뻐-"
투명한 유리 잔 안에 가득 들어간 녹색의 음료. 그 안의 기포가 보글거리며 올라와 수면에서 방울 방울 터지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양 손으로 유리잔을 잡아 빨대를 물었다. 차갑고 달콤한 청량감. 눈을 감은 체 입 안에서 탄산수가 김이 빠질 때 까지 기다렸다가 한 모금 꼴깍 마셨다.
>>163 포터로빈슨이네 노래 클라이맥스로 갈 수록 미카주가 왜 테마곡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아 미카주가 풀어 줄 수록 미카랑 일방적 친밀도만 높아지는중..새벽 귀하다 귀해요..(와구와구 헉 무리아냐 재밌어서 못자고 잇는거라 ㅋㅋㅋ 고마와 ! ! 그런데 자러간 줄 안 미카주는 어째서 깨어있는거야 >:3?!
뻔뻔한 미카즈키의 대답이 퍽 불만족스러웠던 마시로는 '변태, 최악' 등의 굉장히 유치한 대답이 떠올랐지만 당연하게도 입밖엔 내지 않는다. 너무 당연하니 설명도 필요없다. 대신 댓 발 튀어나온 입이 더 유치할지도 모르겠고.
생각보다 손쉽게 걷어낸 볼캡 아래, 가득한 적란운 속 희미한 여름 하늘의 존재감이 지나치게 선명하다. 뚫어지려나. 일순간 휘몰아치는 짧은 기억 장면에 움찔, 몸이 떨리고 마시로의 눈이 찡그려진다. 뭔가 분명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 있었던 거 같은데. 그보다도 저 여름 하늘 닮은 눈동자가 아까부터 사람 정신을 흔들어 놓는다. 저건 옆집 고양이처럼 흔한 게 아니잖아 그렇지?
“너....”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는 듯 구겨진 눈으로 얌전히 운반되어지며 미카즈키의 얼굴을 한가득 담아 응시한다. 주저하는 목소리로 고양이처럼 입을 오물거렸다가, 이내 다물기를 선택한다. 혹시 여동생 있어? 대뜸 뱉으려다 참았다. 휘발된 기억이 뚜렷하지가 않아 그렇다 아니다 할 대답에 이유를 묻는다면 답할 말이 없다. 애초에 답변을 듣는다해도 무엇 하나 명쾌하게 해결되는 점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하얗고, 예쁘장한 얼굴로 지나치게 건장함에서 오는 언밸런스함을 보면서도 여동생 따위가 왜 떠올랐는지. 어쨌든 그 어여쁜 여름 하늘에 정신이 팔려 소년이 배려심이 본인을 어디로 데리고 가는지, 또 얼마나 사뿐히 내려주었는지 따위 야속할 정도로 모른다는 거다.
하나에 꽂히면 집착하게 되는 나쁜 버릇으로 뒤섞인 생각을 고르느라 여전히 뵤로통한 얼굴의 소녀는 소년의 조심스러운 손길을 군말없이 받아들이며 따끔함에 작은 신음을 낸다. 예민한 고양이같은 얼굴이 우습다. 마주한 길지 않은 시간 속 제일 얌전히 굴던 마시로는 혼자 이리저리 끙끙 앓더니, 아. 그 마침내 떠오른 듯 작은 빈틈으로 쏟아지는 햇살에 비치어 반짝거리는 갈색의 눈으로-
“-우리 본 적 있지 않아?”
그 맑은 얼굴에서 나온, 고심해서 고른 말이 그런 저급한 플러팅 멘트일 줄은. 본인도 몰랐겠지만.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장소에 있다고 해서 그 눈에 보이는 세상도 같다고는 할 수 없다. 세상은 여름이라도 누군가에게는 끝없는 봄이거나 가을이거나, 혹은 겨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 겨울. 이 한여름의 햇살이 한가닥도 닿지 못 하는 심상의 겨울이 그 눈에 비추는 것을 스즈네는 보았다. 마주한 것만으로 시림이 전해지는 하늘색 눈동자를 통해.
스즈네는 그 눈을 신기한 눈이라고 생각했다. 메마르고 황량한 겨울이 담긴 눈동자가 한겨울에 날려져 그대로 얼어붙은 비눗방울처럼 보였다. 자세히 보면 그 결정의 가지가 보일 것 같은.
"헤에~"
소년, 나가쿠모 미카즈키의 자기소개를 들은 스즈네의 눈이 두어번 깜빡였다. 잠시 기억을 더듬는 듯 하다. 나가쿠모, 잇치 할부지의 손자, 예전부터 얘기는 종종 들었다. 손자 얘기를 하시는 잇치 할부지는 즐거워 보이셔서 스즈네도 꼭 만나보고 싶다고 했었다. 그렇지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손자는 어느 날 갑자기 멀리 가버렸다. 한동안 기운 없는 잇치 할부지를 위해 손에도 안 맞는 글러브와 야구공을 가져와 같이 캐치볼을 하자고 한 적도 있었다. 그 뒤로는 더 자주, 잇치 할부지와 차 마시는 시간을 가졌던 것도 같다.
그리고 언제인가, 그리 멀지 않은 이전에, 그 손자가 돌아왔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도 같았다.
"너구나아~ 헤에에~"
잠시 기억을 헤메이던 갈색 눈동자에 빛이 한바퀴 감돌며 현실로 돌아온다. 동그란 눈이 나가쿠모 미카즈키를 제법 지그시 응시했다. 그러다 돌연, 싱긋 웃더니 자리에서 통 하고 일어섰다. 일어나며 크게 휘두른 팔이 빈 음료수 캔을 가까운 분리수거통을 향해 던졌다. 휘익. 탱그랑. 단단한 철망 안으로 빈 캔 떨어지는 소리 경쾌하게 울리고 스즈네는 미카즈키의 앞에 서 있었다. 그늘과 빛의 그 경계선에. 서서 웃으며 고개를 까딱 기울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나가쿠모 가의 미카즈키 군. 나는 키리야마 가 차기 가주, 키리야마 스즈네. 만나서 반가워요."
방금까지의 철없이 늘어지는 말투는 사라지고 또렷하고 똑똑한 발음으로 자기소개를 한 스즈네는 한 손으로 원피스 자락을 살짝 집으며 그럴 듯한, 아니 제법 그럴싸한 인사까지 했다. 그러나 원피스를 놓고 고개를 들기 무섭게 이히~ 하고 웃어버리는 스즈네였다. 방금은 신기루였던 듯이.
"뭐어~ 차기 가주는 칸쨩이 이미 이었으니까 농담이지마안~ 맞아~ 내가 키리야마의 스즈네다용~ 네 얘기는 잇치 할부지한테 자주 들었어~ 미카즈키 군~ 그 때에 비하면 시간이 쪼오금 많이 지났지만~ 이제라도 만나서 반가워어~"
그리고 스즈네는 미카즈키에게 훌쩍 다가섰다. 그 뿐일까. 미카즈키의 손을 잡으려 하고 가볍게 당기려 했다. 피하거나 막지 않으면 부드러이 이끄는 힘이 미카즈키를 벤치에서 일으키려 했을 것이다. 링링이 걱정은 할 필요 없었다. 미카즈키가 이끌린다 싶을 때, 알아서 일어나 스즈네의 옆으로 톡 튀어나갔을 테니까.
"얘~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얼른 우리 집 가자~ 찻잎이랑 말차가 기다린다구~"
서스럼 없는 행동만큼이나 벽 없는, 마치 어제도 봤던 친구를 대하는 듯한 스즈네의 말이 행동의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