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힘을 봉인한 채로 깎아지르는 절벽을 오르시오. 절벽에는 다양한 함정이 그대를 방해할 것이다. ]
- 등명탑 6층의 시련 내용
- 이하의 내용은 강산이 등명탑 6층의 등반을 시도하며 자신의 나노머신에 남긴 기록이다.
(*욕설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등명탑 6층 등반 시도 1회차+2회차.txt]
절벽의 끝이 까마득히 높다. 의념을 봉인한 상태로 이걸 오르는 게 가능한가? 맨몸으로? 내 상식 선에선 안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그렇지만 내 인생에 일찍이 안 될 것이라 단정지었다가 놓친 기회나 뒤늦게 이루게 된 것들도 돌아보면 적지 않았지.
이번 등명탑도 일찍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운 기회다. 차후의 활동에 지장이 가지 않을 선에서 등탑을 시도해보자.
그리고 실패함. 떨어지다 지면에 근접하는 순간 반사적으로 의념 켜져서 아프진 않았는데 어처구니가 없네 아니 미친 도대체 왜 거기에 방귀폭탄이 끼여있는거지?? 함정이 있다곤 들었지만...의념의 보조 없이 견디기엔 너무 끔찍한 냄새였다 미끌미끌하기도 했고. 아씨 진짜 찝찝하네; 씻고 다시 와야지;
두번째 시도함. 파도에 휩쓸려 실패.
후퇴 후 재입장 시 절벽의 구조가 겉보기로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을 확인함. 일회차 시도 때 터진 방귀폭탄의 악취가 남아있어서 속이 약간 안좋다. 아까보다 덜하긴 한데. 몇몇 예외 상황 아니면 의념이 봉인되니 함정의 배치도 바뀌었는지 확인 필요. 피해갈 수 있으면 피해가야지.
이번엔 그래도 저번보다 높이 갔나. 첫 함정인 방귀 폭탄에 당한 지점 바로 아래까지 다시 올라가 폭탄 있던 지점에 손끝만 살살 대보니 방귀폭탄이 그대로 있더라. 옆으로 피해서 올라가면서 1회차와 같은 경우를 대비해 돌출물을 움켜쥐거나 매달리기 전에 조금이라도 촉감이 이상하면 피하기로 함. 신체적인 피로도 뿐만 아니라 정신적 피로도도 동반되겠지만 함정에 당하지 않으려면 필요한 일임.
일반적인 바위라기엔 마치 금속이나 날카로운 돌을 갈아 꽂아놓은 듯한 구조물 여러 개 발견. 첫 번째로 걸린 함정이 방귀폭탄이라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은근히 많이 깔려있음. 폭탄에 먼저 당하지 않았으면 부주의하게 접근했다가 더 크게 다쳤겠지.
올라가는데 어느순간 짠 냄새와 파도소리가 들림. 등반하다 감촉이 까슬하고 손이 갈수록 쓰라려서 보니 암석에 붙은 소금이 손에 묻어났다. 상처에 소금이라니 잔인한 구성이구만...이라고 생각한 순간 뒤에서 물기가 느껴져서 돌아보니 물보라였다. 파도가 밑에서부터 절벽을 때리며 올라오고 있었다. 등반을 계속하려 했으나 결국 차오른 바닷물에 따라잡혀서 휩쓸려 떨어짐. 근래 삼킨 것중 제일 짜니 바닷물이 맞겠지 아마.
3번째로 입장했을 때 일부러 절벽 최하단 부분에서 시간을 때우며 바닷물이 차오르는 조건과 시간, 속도 등의 확인을 시도함. 의념이 봉인된 상태로는 파악에 한계가 있으나 대강의 시간제한은 확인했다. 그게 목적이었으니 실패 한 번 정돈 감수할 만했다.
밀물은 6층 진입 후 20분 후부터 들어오기 시작하머 이후 평균적으로 1분에 20cm 정도씩 수면이 높아진다. 물이 그냥 얌전히 차는 것도 아니고 이따금 파도가 일면서 절벽을 덮친다. 두 번째 시도 때의 일을 생각해보면 수위가 높아질수록 파도도 거세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안전거리를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다.
또한 절벽에서 떨어져 바다에 빠진 지 3분 정도가 지나면 잠시 의식을 잃은 후 다시 6층의 절벽 맨 아래에서 눈을 뜨는 것으로 보인다. 이때는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바닷물이 다시 빠져있었다. 그러므로 차오르는 바다를 이용해서 절벽을 오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함. 이건 마도 쓸 수 있어도 어렵겠다. 정말 파도에 쫓기며 꼭대기에 근접할 때까지 버틴 상황에서 강운까지 따라준다면 모를까.
재정비 후 4번째로 6층 등반을 시도하였으나 다시 파도에 따라잡혀 실패함. 아무래도 함정이나 방해물이 있는지를 파악해가며 발견한 방해물을 피해가는 루트로 올라가야 하니, 미지의 영역을 오르는 데에 시간이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행인 것은 아직 등탑을 시도할 수 있는 시간이 내게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손은 시도할 때마다 점점 더 높은 곳까지 닿고 있다. 그래서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계속 절벽을 올려다보게 되는걸까.
계속 하다보면 언젠간 끝에 다다를지도 모른다. 혹은, 시간의 한계든 체력의 한계든 더 이상 도전할 여유가 없어져서 포기하게 되거나. 결말은 이 둘 중의 하나겠지.
5회차 시도 실패. 등반 도중 또 다른 방귀폭탄을 세 번 정도 더 발견해서 식겁했다. 셋 다 터트리지 않고 잘 피해가는가 싶었으나 실패 원인이 따로 있었다.
바위인 줄 알고 잡은 것이 말라붙어 겉만 단단한 새똥 무더기였다. 잡고 올라가려는 순간 부서지면서 추락함.
방귀폭탄의 재료가 이거였던 걸까. 설마 적대적인 몬스터의 존재를 암시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냥 방귀폭탄 같은 단순 함정이었으면 좋겠다마는, 아닐 수도 있으니 불안하군.
이제부터 떨어졌을 때의 충격이 슬슬 아프다. 뼈도 조금 나간 것 같으니 잠시 나가서 재정비를 하고 다시 오자...
[6층 등반 시도 6회차.txt]
6회차 시도 실패. 진짜로 하피가 있었다! 최소 두 체 이상!!
이 우라질 놈들이 처음에는 멀리서 얼쩡대며 깔깔대며 구경하는 정도였는데, 절벽 등반을 계속하다보니 멀리서 작은 돌 같은 걸 던지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 뒤로 갈수록 던지는 물체의 크기도 커지고 명중률이 향상되고 있다. 어릴 적 이후로 오랜만에 머리에 혹이 났다. 아무래도 이것들이 내가 절벽 오르기 바빠서 자기들이 까불어도 대응 못 하는 걸 눈치채고 날 만만하게 보는 것 같다. 나중에 가니 표창이나 화살 같은 날붙이도 날아왔다. 대담하게 가까이서 옷을 잡아당기고 손이나 발을 직접 할퀴는 녀석도 있었다! 밀물이 차오르자 놈들이 거대해지는 파도를 피해 달아나긴 했지만, 나는 놈들의 공격을 피하느라 시간이 지체되어 파도와의 거리를 충분히 좁히지 못하고 휩쓸려갔다.
이번에는 웨이스트백과 레그백을 몸에 달고 붕대나 반창고, 소형 폭죽 같은 것들을 좀 넣어갔다. 건강 버프도 걸고 왔다. 의념이 봉인된 상태에서도 버프 효과가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성공을 기원하고자 연주해봤다. 장갑과 팔토시도 꼈다. 별다른 의념의 힘은 담겨있지 않은 것이지만 이번은 의념을 봉인하는 시련이니 차라리 이런 게 없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일곱번째 등반 시도 시작이다.
결과부터 쓰자면 이번에도 실패다.
충분한 준비운동을 하고 다시 절벽 등반을 시도했다. 고통을 견디며 그 동안 파악해둔 루트로 올라갔다. 방해를 피하되 경우에 따라 사소한 부상은 그냥 감수했다. 손에 들고 던질만한 돌조각 등도 주워뒀다가 하피들 쪽으로 던져 반격하기도 했다. 내가 던지면 거의 전부 빗나갔지만. 맨 처음 건드렸던 방귀 폭탄이나 절벽 중간의 방귀폭탄도 주워갈까 했으나 그 악취를 떠올리고 관뒀다.
그러다가 하피 한 놈이 내 근처 벽에다 방귀폭탄을 집어던졌다!! 악취가 퍼지자 이를 악물고 속으로 욕지거리를 하며 챙겨온 소형 폭죽을 터트렸다. 안 그래도 귀아픈 폭죽 소리에 하피가 놀라 소리까지 질러대서 고막이 터질 거 같았다. 구역질이 나서 어지러웠으나 견디며 폭죽을 하나 더 쐈다. 놈들의 괴롭힘은 곧 잦아들었으나 몇 초간은 올라가기는 커녕 그 자리에서 버티며 구역질이 잦아들 때까지 숨을 고를 수 밖에 없었다. 그놈의 악취가 워낙 지독해서 ㅅㅂ...
코를 막은 채 입으로 숨을 고르고 상처난 곳에 테이핑을 하며 다시 올라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소란에 뒤를 돌아보니 어느 순간 하피들이 자기들끼리 소리를 지르며 싸우느라 바빠서 방해를 하지 않고 있었다. 사이 좋은 줄 알았더만.
좀 더 올라가다보니 바람이 거세지고 하늘이 어두워졌다. 비도 내리기 시작하니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 고생을 하고 있는건가 하는 후회가 들었다. 지금이라도 그냥 뛰어내리고 절벽으로 돌아갈까?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절벽에 난 바위굴이 보였다. 사람 하나가 입구에 앉을 수 있는 크기였다. 함정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절벽에 난 굴에 올라섰다. 그 정도로 지쳐있었던 것 같다. 굴 입구에 앉아 파도가 여기까지 덮치는 것을 보고서야 내가 해수면에 쫓기고 있었단 사실을 다시 떠올릴 정도로.
시야가 암전된 후 정신을 차려보니 다시 절벽 아래였다.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맥이 탁 풀려서 한동안 누워있었다. 등명탑을 나가서야 비로소 기록을 쓸 기력이 나왔다.
여태까지 파악한 절벽의 함정과 해결방안 : 0. 시간을 지체하면 아래쪽에서부터 밀물이 들어와 차오른다.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파도가 절벽을 휩쓸 때가 생긴다. 바다에 빠진 지 3분이 지나면 처음 위치로 돌아온다. -> 다음번 재도전까지, 회복이 끝나면 체력을 키우고 암벽을 등반하는 연습을 한다. 또한 절벽의 구조가 바뀌지 않으므로 함정의 위치를 암기해 빠르게 피해갈 수 있도록 한다.
1. 벽에 방귀 폭탄, 날카로운 돌이나 금속 파편, 하피 배설물 같은 것이 걸리거나 박혀있을 때가 있다. 돌틈에 섞여있는 경우가 있으므로 주의. 함정의 위치를 파악했으면 되도록 피해간다. 파악하지 못한 구간은 촉감을 이용해 안전한 지형 여부를 확인한 후에 매달린다.
1-1. 벽에 소금이 말라붙어 있는 경우가 있어 상처 부위가 닿으면 통증을 유발한다. -> 상처를 오래 방치하지 말 것.
2. 중반부터 하피가 나타나 방해한다. -> 작은 돌조각은 무시하되 급소 보호에 유의한다. 날붙이를 던지기 시작하면 최대한 피하되 만일을 대비해 방어구를 준비할 것. 근접해서 공격하거나 방귀폭탄을 던지는 등의 심각한 방해를 하기 전에 폭죽을 쏘거나 돌을 던져 일찍 쫓아내는 걸 고려해보자.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하는 것 같은데 조건은 모르겠음.
3. 일정시간 이상 지나면 바람이 거세지며 비가 온다. 비는 그냥 비지만 암벽이 약간 더 미끄러워지고 위를 보기 어려워지니 주의.
4. 바위굴이 있다. 특별히 위험한 것은 없어 쉬어갈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시간을 오래 지체해서는 안 된다. 절벽을 오르는 도중 파도에 맞았더라도 떨어지지만 않고 버틴다면 실패가 아니다. 그러나, 바위굴에서만큼은 예외적으로 바닷물에 맞는 즉시 실패 처리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8번째 등반 시도다. 준비는 저번 시도와 비슷하게 해 갔다. 다만 며칠의 시간을 두고 몸을 회복한 후 체력을 기르기 위해 운동량을 늘렸다. 막상 가면 이게 얼마나 효과적일진 모르겠지만. 초중반부는 여러번 올랐으니 이제 익숙하다. 슬슬 지긋지긋해지고 있다. 질리기 전에 성공할 수 있을까?
이번엔 성공한 것 같다. 아마도. 평평한 꼭대기까지 올라왔으니까.
힘들어 죽을 것 같고 그만두고 싶어져도 이를 악물고 견디며 올라갔다. 하피가 나타나는 구간에서는 하피들의 공격이 심해질 때쯤 폭죽을 터트려 소음으로 녀석들을 쫓아냈다. 이것도 여러번 하면 안 통할까봐 걱정이었다. (안 그래도 될 것 같지만.)
이 짓도 여러번 했다고 하다보니 조금이나마 속도가 붙어서 파도에 따라잡히기 전 바위굴에서 잠깐 쉴 수 있었다. 조금 무리하게 몸을 움직이다 미끄러져 떨어질 뻔할 때 같은 위험한 상황에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렇게 몸도 무겁고 마음도 지치더라도 여기서 포기하면 그간의 고생이 헛된 것이 된다. 그렇게 스스로를 타이르며 참고 올라갔다.
그 덕에 드디어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파도가 아슬아슬하게 등에 물벼락을 튀기고 다리를 다 적셨을 때 절벽의 맨 꼭대기에 다다를 수 있었다. 한번 더 떨어지는 것도 각오했건만... 이게 되더라. 이게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