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명탑 6층에 올라온 윤성은 까마득하게 높은 절벽을 올려다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들어오자마자 느껴진 의념의 봉인도 그렇고 저 절벽의 존재도 그렇고 누가봐도 저길 맨몸으로 올라가는 것이 시련처럼 보였다 몇몇은 포기하고 돌아간 듯 서성거리던 발자국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곳에서 윤성은 방패를 등에 짊어지고 절벽의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윤성은 절벽에 가까워질수록 선명해지는 수 많은 잡념을 떨쳐내고 주머니에서 꺼낸 청포도맛 싸구려 사탕을 입에 넣고 굴렸다 까득 하고 두꺼운 사탕을 억지로 깨물어 먹으며 당을 채운 그는 절벽에 있는 틈새를 움켜쥐어 단단히 고정하며 절벽등반의 첫발을 내딛었고 그렇게 인내와 고난의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오를수록 어깨와 팔의 근육이 끊어질듯 비명을 지르고 뼈 마디마디가 으스러질듯 기묘한 소릴 울려댄다 수직의 벽을 오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듯 육체가 신호를 보내왔지만 윤성은 묵묵하게 절벽을 기어 올랐다 '놈들도 여길 올랐겠지'
윤성의 손이 다시 암석을 하나를 움켜쥐고 체중을 들어올리 듯 몸을 기울이자 암석은 순식간에 으스러지고 균형이 뒤로 기울어진 윤성의 몸이 절벽에서 미끄러지기도 잠시 등에있던 방패를 절벽에 꽂아 넣은 유성은 쓸리고 다친 몸을 진정시키며 숨을 골랐다 /1
윤성은 이대로 매달려서 쉬고 싶었다 하지만 방패가 얼마나 버텨줄지도 모르고 이곳에서 하루 종일 매달려 있을 수도 없었다 방패를 뽑아내고 다시 절벽의 틈새를 움켜쥐며 천천히 기어올랐다 오르는건 한세월이지만 떨어지는건 순식간이기에 방금까지 자신이 있었던 곳은 까마득하게 높이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얼마나 기어올라갔을까 부르튼 손가락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갈 즈음 윤성은 적당한 크기의 암석이 튀어나와 있는걸 발견했다 적당히 평평하고 앉을 만한 공간도 있어 보였기에 윤성은 망설임 없이 암석으로 뛰어 착지했다
"드디어 조금 쉴ㅅ"
!
펑소리가 울려퍼지며 붉은빛의 화염이 치솟은건 그 때 였다 화염에 그을리진 않았지만 암석이 터져나간 충격으로 공중에 몸이 붕 뜬 윤성은 절벽에 부딫혀 몸을 구르며 또 다시 한없이 밑으로 떨어져나갔다 날아가려는 의식을 겨우겨우 붙잡아 손을 절벽에 박아넣듯 매달린 윤성은 몸에서 검은 연기를 흘려대며 폐에 고여있던 숨을 내뱉었다
"진짜 적당히해!!"
그제서야 밑에 흔적이 절벽을 보기 포기한게 아닌 이 절벽의 악독함을 느끼고 돌아간 흔적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윤성이 주먹으로 절벽을 연신 후려치며 절규했다 짜증과 분노가 서린 고함을 얼마나 내질렀을까 딱히 달라지는 것도 없기에 윤성은 결국 다시 몸을 기울여 절벽을 등반했다
다시 또 한참 절벽을 기어오르고 부상을 입은 몸이 욱씬거리는 것도 애써 무시하며 겨우겨우 끝자락에 도착했다
폐에 산소가 부족하여 흐트러진 숨을 내쉬며 절벽의 끝에 손이 닿는 순간 역광탓에 보이진 않았지만 커다란 새 형상의 무언가가 돌풍을 일으키며 하늘로 날아올랐고 그 충격에 의해 윤성은 또 다시 밑으로 추락했다 아늑해지는 정신을 바로 잡으려 해도 몸에 더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았기에 윤성의 시야가 검게 변하며 그대로 떨어져나갔다 /2
의념도 봉인된 와중에 파고드는 격통을 참는건 쉬운일이 아니었지만 지금 소릴 지르면 하피가 눈치채고 윤성을 떨어트릴 것 이기에 윤성은 필사적으로 입술을 깨물며 고통을 버티다가 아드레날린이 차오르기 시작하자 허벅지에 박힌 화살을 직접 뽑으며 피에 흠뻑 적신 다릴 이끌고 절벽을 다시 기어올라갔다
함정이 작동되며 들린 소리 탓에 하피가 슬쩍 고도를 낮췄지만 특별히 이상한건 보지 못했는지 다시 고도를 높히며 어디 사냥감 없나 두리번 거렸다
"이대로면 걸리겠네 어쩌지"
하피가 바보도 아니고 혈향을 눈치 못챌리 없다 그렇게 생각한 윤성은 또 다시 절벽의 끝을 앞에 두고 고뇌에 잠겼다 의념이 봉인된 지금 하피를 따돌리고 절벽을 완등 할 방법 절벽을 오를 수 만 있다면 의념은 돌아올 것 이고 하피를 처리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피는 느껴지는 혈향에 고갤 숙였다 이 절벽은 가끔 맛있어 보이는 먹잇감이 매달려 있곤 했다 이번에도 그런 먹잇감이라 생각한 하피는 절벽에 매달려있는 윤성을 발견하자 크게 날개짓을 하며 빠르게 낙하했다
풀을 뒤집어쓴 윤성을 향해 하피가 낙하하며 점점 거릴 좁히자 윤성은 풀로 가린 방패를 꺼내 하피를 겨누었다 그러자 방패의 반짝이는 면에 반사된 햇빛이 하피의 눈을 가렸고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은 하피는 허우적거리다 그대로 윤성을 스치듯 지나쳐 떨어졌다
'다시 올라올거야 ... 이틈에!'
떨어지는 하피를 볼 틈도 없이 윤성은 다시 절벽을 기어 올라갔다 화살이 박혔던 다리도 한참이나 절벽을 구른 몸도 이미 한계인듯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번에 떨어지면 또 얼마나 회복을 기다려야할지 알 수 없었다 절벽의 끝에 손을 뻗어 움켜쥔 윤성은 마지막 남아있는 힘을 쥐어짜 몸을 굴렸다 익숙한 지면이 그를 반겼고 중력의 영향으로 끌어당겨지는 듯한 몸에 편안함이 스며들었다
!!!
그리고 윤성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분노한 하피가 날개를 펼치며 절벽 위를 향해 날아오르자 몸에 스며드는 의념을 느끼며 환희에 절여있던 윤성은 몸을 일으켜 하피를 마주봤다
일각고래를 토벌 하고 난 뒤, 2층의 등탑 권한이 생겼다는 메시지를 확인 하자마자 재빠르게 나온것이다. '망념은 어떻게든 해결 했지만, 정신력은 별개지' 올라오는 피로감을 털어내며 그대로 탑의 외벽에 몸을 기댄다.
" 2층은 이것보다 어렵나? 그건 좀 그런데. "
혼잣말을 하며 미끄러지듯 바닥에 앉은 나는 손 안에 자그마한 얼음을 조형하여 그것을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적당한 시원함이 정신에 낀 피로감을 약간이나마 털어내주는 듯 했다. 그렇게 눈을 감고, 정신력의 회복에 전담 하고 있기에- 주위에 누군가가 다가오는것도 약간은 느리게 파악 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