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온통 새하얗게 설경이 펼쳐져 하늘과 땅이 온통 희게 물든 설원에 홀로 검고 붉은 차림을 한 소녀가 상체를 더 웅크렸다. 어울리지 않게 뚝 떨어진 듯 한 색상을 한 저를 밀어내듯 사납게 눈보라가 몰아쳤고 극도의 추위는 각성자의 강인한 신체도 둔화시켰다.
고향, 일본 북해도 지방의 겨울보다도 더 추운 것 같다. 소복히 눈이 머리와 옷에 쌓이고 체온이 내려가자 졸음이 서서히 몰려온다. 린은 부러 감각을 느끼기 위해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비릿한 쇠맛 비슷한 것이 입술새로 느껴졌다. 핏방울이 흐르기무섭게 차게 식고 의식을 잃지 않기 위해 린은 일부러 끊임없이 잔념을 이어갔다. 먹고 싶은 것. 의뢰. 게이트. 조난 신호는 어떤 언어로 해야 할까. 그래도 영어가 좋을까. 신한국에서 출발했으니 한국어가 나을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몰라. 알 바인가. 내가, 나시네의 고통이 죽은 사람의 것이듯 아마도 알 바가 아니었다.
'죽은 사람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니까'. 어느새 추위가 타는 듯한 고통처럼 느껴지는 것을 넘어서 가볍게 정신이 몸으로 부터 유리되듯 저 멀리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변에 펼쳐진 흰 풍경처럼 머리도 새하얗게 아득해져가 린은 무심코 그렇게 생각해버렸다. 겨울은 죽음의 계절이다. 생동하던 모든 것이 잠들고 온통 말라버린 생명의 흔적이었던 것만 남겨져 무심한 눈으로 뒤덮인다. 그러므로 하야시시타 나시네는 그 날 이후 줄곧 나갈 곳 없는 영원한 겨울을 살고 있었다.
'영원한...' 눈을 감으면 아직도 그녀는 제 손을 애써 불며 추위를 견디던 그 겨울날에 있었다. 저 멀리 빛이 눈에 반사된 햇빛처럼 찰나의 온기가 주어질 듯 말듯 하다 그대로 허공을 향해 뻗는 손을 투과해 지나간다. 저 멀리 아득한 시야에 옛날 그 빛과 비스무리하게 보이는 금빛의 무언가가 보여서 린은 흐릿한 의식으로 바로 떠올린 그것과 비슷한, 그러나 좀 더 엉성한 대상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알렌?" 가까스로 입술을 열어 하얗게 얼어붙은 숨을 뱉어내다 그대로 온통 머리와 시야가 눈보라로 가득 찼다. 예상치 못한 이상기후에 무리가 흩어진 지 오래된 시각, 헌터 마츠시타 린은 희게 쌓인 설원에 잠들듯 쓰러졌다.
11층의 시련 - 도달한 것을 축하합니다. 그대에게 새로운 시련에 앞선 보상을. 보상 : 자유 분배(매력 분배 가능. 단 매력은 1:3 비율로 분배됨) 스테이더스 포인트 10
12층의 시련 - 본인의 의념속성과 2층의 깨달음. 이외에 마주했던 벽들에 근거하여 본인의 의념 속성의 변화 또는 개인의 변화를 서술하시오. 보상 : 의념 기술 작성권
13층의 시련 - 마법국의 마법감찰관 6명을 상대로 승리하시오. (독백으로 처리 가능. 최소 8레스 이상 작성할 것. 감찰관은 의념 사용을 봉인함.) 보상 : 마법국의 침묵 스크롤
14층의 시련 - 특수한 이야기에 따른 시련. 이를 해결하시오. (재현형 게이트를 가장하고 일상을 돌릴 것. 타인과의 일상만 가능. 독백 불가. 단, 현재 참여자가 가장 높은 층계일 때에 한해 낮은 층계의 레스주와의 협력 가능) 보상 : 캡빼롱의 애정 사탕(NPC에게 사용 시 호감도 증가)
15층의 시련 - 다른 레스주와 대련하여 승리하시오.(다이스룰 적용. 먼저 4회 피격받은 레스주가 패배) 보상 : 이세계의 황금 금궤(1,000,000GP의 가치를 지님)
16층의 시련 - 마법국의 감시 키메라를 사냥하시오. 보상 : 원망서린 울음(40레벨 이상 장인 제작 재료)
17층의 시련 - 하루 휴식하시오.
18층의 시련 - 인간, 드워프, 엘프, 오크, 페어리, 엘리멘탈, 타르거 등 종족 중 하나를 선택하여 그들의 호감도를 올리시오. (종족에 따른 호감도 보정이 존재.) 보상 : 종족 고유 기술의 열화 기술서
19층의 시련 - 선택한 종족과 멸망을 대비하시오. (최대 192레벨 이상의 보스 몬스터가 쏟아지는 보스 레이드의 풍경을 서술하시오. 9레스 이상의 독백인 경우 통과됩니다.)(캐릭터의 감정, 감상 등을 제대로 묘사하기 바랍니다.)
길을 걷고 있었다 끝도 없이 온통 하얗게 이어진 설원에 우두커니 서서 린은 고개를 들고 점점히 흩뿌려지는 눈을 맞았다. 어렴풋이 저 너머 보이는 광경은 온통 푸르게 물든 여름인가 혹은 봄인가. 그를 바라보던 린은 문득 지금 계절은 여름이지 않았나 떠올린다. 항상 겨울에 닿은 여인은 어느새 자신에게 다른 계절이 와 있음을 몰랐는지 몽롱하게 흐려지는 설원에서 그 사실에 놀라 눈을 떴다.
"...!" 황급히 몸을 일으켜세운다. 악몽을 꾼 것도 아닌데 쫓기다 온 사람처럼 짧은 숨을 몇번 급하게 들이쉬었고 붉은 눈은 긴장을 담아 주변을 탐색하며 번잡하게 시선을 옮겼다. 작게 타오르는 모닥불, 몸에 덮힌 이불, 자질구레한 도구들과 눈에 보이는 익숙한 사람. 졸고 있는 알렌의 얼굴에 시선이 닫자 두어 번 눈을 깜박이다 다급히 몰아치던 숨이 가라앉는다. 꾸벅 조는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 천천히 일어서 좀 더 가까이 다가간다.
'깨워야 할까.' 곤히 자는 얼굴을 보다 일으켜야 할지 말지 고민을 해본다. 남은 잠이 고민과 함께 서서히 물러가고 어느정도 평소처럼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니 정신을 잃기 전 그를 보고 바로 눈밭에 쓰러졌던 것이 떠올랐다. 아마도 의식을 잃은 저를 챙기며 이 곳까지 온 모양이었다.
"...좀 더 주무셔요." 흐린 미소를 지으며 가까이 다가가 속삭이듯 말했다. 깨어나면 위험하게 불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고 그대로 잠에 든 것을 문책해야 할지 짓궂은 마음으로 생각하며 희끄무레한 눈웃음을 그린다. 아마도 졸고 있으니 듣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얌전히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 건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다 끓은 주전자를 탁자 위에 적당히 올려두고서 창을 가린 커튼을 살며시 치워 밖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거센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