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붕 떠있는 부유감이 기묘한 해방감을 선사하고, 깨끗한 하늘이 시야에 들어온다. '날씨 좋네...' 파열음으로 먹먹해진 고막 너머로 일각고래의 거체가 바다에 처박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반적인 적이라면 이걸로 충분히 결착을 지을 수 있었겠지만 적은 보스급 에너미. 하늘이나 감상할 때는 아니였다.
시선을 돌려 배를 보인 상태로 큰 충격에 빠진 고래를 바라보다 굉장한 마도라는 강산의 말에 한 손을 올려 엄지를 세워준다. 자신과 동격인 마도사라면 이런 공격에 당하지 않을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걱정은 하지 않았다. 바닥에 착지를 함과 동시에 몸 안의 의념에 방향성을 부여해 가속을 일으킨다.
가속 주문
무질서하게 흐르던 대량의 의념이 마도사의 의지에 반응하여 흐름을 이루고, 의지가 형태를 빚는다. 그렇지만, 저 거체를 마무리 지으려면 이정도로는 부족하다. 가속된 시간을 쪼개어, 언어로 의지를 내뱉는다.
" 얼음의 정령들이여, 당신들의 고요한 속삭임이 세상을 감싸고 " " 모든 생명은 얼음 속에 잠드리라. "
내뱉어지는 영상이 이미지를 고정하고, 내뱉어진 말이 의지가 되어 주위 의념을 조율한다. '효율은 정말 별로지만... 장기전은 이길 수 없겠지.' 대량의 의념과 영창. 일반적인 규모의 마도가 아닌, 거대한 규모의 마도를 강제로 펼쳐낼 준비를 이어나간다. 정석으로 발동되는 대마도와는 다른, 의념을 때려박아 위력과 규모만을 강제로 키운 마도. 그렇지만, 불안정한 부분이라면 자신의 머리로 어떻게든 조율 할 수 있다.
" 하늘과 땅이 하나 되어 세상 만물을 얼음으로 뒤덮을 때 " " 영원한 겨울의 왕국을 세우리라. "
대마도식 강제 발현 얼음 정령의 장난
빠른 속도로 내뱉어진 영창이 끝나자, 바다를 부유하던 유빙이 한 점에 수렴한다. 모여든 얼음이 불안정한 삼지창의 형태로 주물되고. 그것이 일각고래의 배를 노리고 쇄도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고래가 피하려는 움직임을 취하지만-
- 쩌적
그것보다, 자신의 마도가 그것에게 닿는 속도가 더욱 빨랐다. 고래의 배에 파고든 삼지창이 강렬한 냉기를 내뿜고 고래를 급속도로 얼려버린다.
머리가 돌아가는 게 보인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나. 새삼스럽게 타인이 자신을 보는 시선을 알 것도 같다 생각하며 윤성이 뜸을 들이는 대로 가만히 기다린다.
"어머, 독특한 속성이어요." 윤성의 대답에 별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가볍게 웃는 얼굴로 반응하고서 슬쩍 해가 져가는 하늘을 바라본다. 자신이야 그리 친절한 편이 아니니 이런들 저런들 그가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것을 보아가며 부러 반응을 즐기고 있지만 과연 다른 이들도 그럴까. 픽 웃고 싶은 마음을 감추고서 음전한 미소를 머금는다.
"시간이 이리되기도 하였고 이 또한 인연이오니 같이 들어가 휴게실에서 다과라도 함께하시련지요. 소녀가 마침 다른 분께 괜찮은 디저트 가게를 소개받았사온데 소녀 홀로 즐기기에는 살짝 양이 많기도 하였고 아무도 없어 곤란하던 참이었사와요." 잠시 윤성이 제안을 듣고 약간의 생각만 할 시간을 주고 말을 잇는다.
하인리히가 그의 찬사에 엄지를 들어보이자, 강산은 장난스럽게 낄낄 웃으며 화염 보호막 아래에서 전투를 마저 지켜본다. ...보호막이 A랭크짜리인데도 불과 극상성인 얼음 공격과 모래 파편을 받아내느라 다소 너덜해진 감이 있지만, 전투도 끝나가는 듯하고 그때까진 충분히 견디겠지. 라고 생각하자마자 의념의 흐름이 또 다시 변한다.
'마무리 들어가려나보군!'
일각고래 몬스터를 확실하게 끝장내기 위해 준비하는 하인리히의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마도의 무영창 시전이 대세가 된 요즘 시대에 이 정도로 긴 영창을 하는 마도사는 드물다.
'이 사람 쇼맨쉽 좀 있는 편인가?'
정말 그렇다면 어쩌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얼음의 삼지창이 고래 몬스터의 숨통을 끊는 것도 모자라서 그대로 얼려버린다.
"이야, 대단했습니다!! 특별반에 걸맞는 굉장한 실력이십니다!"
이제 용도를 다한 방어막을 치우며 하인리히에게 박수를 짝짝짝짝 친다. 강산의 바로 옆에 누가 봐도 출입구로 보일만한 문이 생겨난 걸 보니 숨통은 확실하게 끊어진 듯 하지만...
- 이야, 대단했습니다!! 특별반에 걸맞는 굉장한 실력이십니다! " 그렇게 금칠을 해도 뭐 안나와 친구. 그래도 열린건 다행이네. "
박수를 치는 모습에 헛기침을 몇 번 해보이다, 과하게 저질렀다는 사실을 조금 늦게 자각한다. 보는 사람이 한 명 밖에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특별반 인원들은 다들 특출난 부분이 있으니, 이정도는 괜찮겠지.' 자신의 본래 성정은 소시민에 가까워서 굳이, 굳이 돋보이고 싶다고는 한 번도 생각 하지 않았다. '그냥 평범하게 헌터 일로 먹고 사는것도 충분히 좋았었는데...'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아버지의 얼굴이, 자신의 생각을 멈춰세운다. 차세대의 리더? 솔직히 말하자면 죽어도 하기 싫다. 그런건 자신보다 훨씬 어울리는 사람이 널리고 널리지 않았는가? 그렇지만, 그것이 자신의 족쇄라면... '....빌어먹게도 무거운 짐입니다. 아버지.' 망념이 잔뜩 차오른탓일까 괜스레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낸다.
- 가져가기엔 너무 크진 않습니까? " 역시 그렇지? 알아서 사라질테니... 이만 쉬러 가봐야겠어. "
게이트 밖에서 보자고 친구. 라고 덧붙이며 턱끝까지 차오른 망념을 이끌고 출입구를 통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