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에게 어장의 종합 어장입니다. 메인/서브 미션 발행 및 수행, 이벤트, 포인트 계산, 상점 이용 등. 다양한 곳에 쓰임이 있으며 주로 캡틴이 활동 내역을 확인해야 할 때 쓰입니다. 단, 미션이 아닌 독백, 일상 등은 이곳이 아닌 본 어장에서 활동 후 내역을 남깁니다. 이곳에 레스를 남길 때는 인증 코드를 필히 기입합니다.
한참 깡총거리며 길을 앞서 나가던 토끼가 여전히 한심하다는 얼굴로 뒤를 돌아본다. 아까부터 연신 말을 할 때마다 움찔거리며 신음 비스무리한 것을 내뱉는 꼴이 영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갑자기 말을 걸길래 뭐라도 되는 줄 알았더니, 천국에 왔다느니 뭐라느니,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고 하질 않나. 볼멘소리로 툴툴거리며 다시 숲의 출구를 향해 뛰어가는 토끼의 뒤를, 숲 안쪽에서 뭐라도 쫓아오는 것처럼 종종걸음으로 따르는 붉은 머리 소녀. 어쩐지 말을 걸수록 점점 자신이 한심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강하게 들어서 입을 꾹 다물지만, 찔끔 새어나오는 눈물은 틀어막을 방법이 없어서 나뭇잎 바스락대는 소리 사이로 작은 훌쩍임이 조금씩 샌다.
기억이 없다.
자기가 천국에 왔나? 하는 착각에서 겨우겨우 벗어나 상황 파악을 위해 머리를 굴려 보았더니, 이젠 머릿속에 부옇게 안개가 낀 것처럼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떨어지기 전엔 뭘 하고 있었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애초에 자신은 누구인지조차 잘 모르겠다.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자신의 이름이 '니아'라는 사실, 그리고 어쩐지 여기는 자기가 있던 세계가 아닌 것 같다는 막연한 예감 뿐. 넌 누구야? 이름이 뭐야? 어떻게 나랑 얘기할 수 있어? 마법사야? 쏟아지는 토끼의 질문으로 깨달은 사실들에 눈 앞이 막막해져선, 아, 아,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절규하며 대성통곡했던 십여분 전 상황으로 생각이 튀어 괜히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을 때.
파사삭! 작은 수풀을 헤치고 나가자, 마침내 밝은 태양빛이 눈꺼풀을 찌른다. 찡그렸다가 뜬 눈에 머지 않은 곳에 한 눈에 보기에도 제법 큰 도시가 우뚝 서 있는 광경이 들어왔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홀린 것처럼 저리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 그림자 아래에서 온전히 벗어나 숲 밖으로 나오자, 그제서야 숲 안쪽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분이 이상해⋯ 묘하게 술렁이는 마음을 뒤로 하고, 몸을 돌려 수풀 근처에 앉아 이 쪽을 보는 토끼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다.
"가, 가가, ..감사해요!"
[ 다음부턴 길 잃지 마. 떨어지지도 말고. ]
퉁명스러움 섞인 다정한 말을 마지막으로, 토끼는 등을 돌려 다시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잠깐 온기가 떠난 자리에 눈길을 주다가, 소녀 또한 자신의 로브를 푹 뒤집어 쓴 채 가야 할 길을 걷기 시작했다. 도시 입구를 찾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도시 쪽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뒷꽁무니를 졸졸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아직 도시로 들어가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남았는데도 벌써부터 떠들썩한 분위기가 감도는 것 같았다. 몇 대의 수레가 수십 개나 되는 상자를 싣고 덜컹거리며 옆을 지나쳐갔다. 콜록, 콜록, 와르르 이는 흙먼지를 기침으로 걷어내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아니, 들어가고 싶지 않은...
"...?"
입구로부터 바로 한 발짝,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지 않았나? 발을 옮기는 찰나의 순간에 이해할 수 없는 미묘한 느낌이 머릿속을 스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무언가의 착각이겠거니 생각하고선 주위를 둘러 보는데...
"......히, 히이이이..."
더 이상 이상한 느낌이 들고 말고 따위는 전혀 문제될 것 없었다. 난생 처음 보는 오만 생김새의 사람들이 가게며 가판대에서 시끌거리며 붐비고 있었으니까.
몸이 재생되는 느낌과 그에 더불어 치유됨에 따라 느껴지는 고통 같은 건 없었다. 질끈 감은 눈을 떠보자니 낯선 숲이 있었으며 누군가가 자신의 머리를 조종하듯 '도시'로 가야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도시는 도대체 어디길래, 또한 이곳은 어디길래. 따듯하고도 서늘한 느낌이 몸을 기분 좋게 감쌌으나 중요한 것은 어색하고도 낯선 느낌이었다. 봄과 가을 그 사이의 것이 물씬 느껴지는 숲에서 나오니 자신이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 '도시'로 추정되는 것이 보였다. 저것이 자신을 끌어들이려고 한 곳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더욱 경계의 대상이 되었으나,
나는 도시로 가야 해.
그 누가 묻지도 않았으나 계속 들었던 느낌. 누군가가 조종하고 또 지배하는 듯한 이 느낌. 이질감에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의심할 뿐이고 그에 대치되는 도시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드는 것에 괴로워할 뿐이었다. 그러나 도시로 들어섰을 때는 무언가 달랐다. 미묘한 느낌. 그것을 무엇이라고 정의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아주 잠깐 동안 저항감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착각일 수도 있을 정도로 짧디짧았던 시간. 과연 이 도시는 안전한 것인가.
자신을 부러 끌어들이려는 것도 도시에 무언가 있기 때문인 걸까. 그는 곰곰이 생각에 잠겨 도시에 들어선 그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기억을 되돌아 보자. 자신은 '고향'의 세계에서 어떠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의 연유를 알아가기 위해 이곳저곳을 탐사하고 서적을 찾아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다른 세계인 이곳에, 느닷없이 숲속에 떨어진 것이다. 아프지 않았으니 떨어졌다고 볼 수 있을진 몰랐다. 그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숲에 누워 있었으니.
과연 이곳은 안전한 곳인가.
자신을 흡혈귀로 만들었던 그 세계보다는 안전했으면 좋겠다. 그런 소망을 품고 도시 안으로 발을 디뎠다.
문명의 발전은 지성체들이 집단을 이루면서 시작된다. 개체들이 집단을 이루어 떠돌던 삶이 어딘가에 자리를 잡게 되면서 본격적인 문명이 탄생할 초석이 마련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가 있다는 것은 이 세계에도 충분한 발전을 이룬 최소한 국가라는 것은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것이 도시 하나 정도의 규모더라도 중앙의 통치기구가 존재한다면 국가의 형태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국가의 정의 자체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 문명의 세계에 살다온 내가 문명에게 이끌리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리라.
숲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이엘프의 아종이라곤 하나 어쨌든 엘프의 한 분파, 익숙하지 않은 숲이라고 해도 방향을 찾는 것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고보니 떨어질때 봤던 숲의 풍경에선 침엽수도 보였던것 같았다. 상당히 높은 곳에 있을때 잠깐 보였던 것이라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정작 이곳엔 침엽수는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그렇다면 다른 곳은 이곳과는 날씨가 다르다는 것일까. 어쨌든 이렇게 온화한 곳에 떨어진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위에 강하다곤 하지만 이런 복장으론 혹한을 견디기엔 무리가 있다.
" 꽤나 거대해보이네요. "
숲을 빠져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도시로 향하는듯한 길을 발견했다. 잘 닦여있는 도로 같은 느낌이라 이 문명의 발전 수준을 한 단계 올려서 생각하기로 했다.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하고서 좀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새 도시의 입구가 보이는듯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듯한 이 도시는 입구부터 붐비는 모양새였다. 규모로 보아하니 교역의 중심지거나 국가의 수도 정도라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물론 그렇다는 것은 정보를 얻기에도 쉽다는 말이기에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도시를 향해 나아갔다.
" 새로운 곳을 탐험하는 즐거움은 정말 오랜만이네요. 마지막이 언제였는지 알 수도 없을 정도였는데. "
이러니 저러니해도 나는 본래가 학자 출신이었다. 그러니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은 나에겐 훌륭한 원동력이나 다를 바 없다. 거기에 새로운 곳에 온다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주민들에게 정보 수집을 하는 것이니 간만에 할 것이 가득 생겼다는 생각에 힘차게 도시 안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하지만 아주 잠깐 느껴진 기시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 무언가를 날 밀어내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세계 사람에 대한 세계의 본능적인 거부? 그렇다기엔 숲에 떨어질땐 일부러 안전하게 착지까지 할 수 있었으니 그쪽은 아닌듯한데. '
도시를 딱 들어설때 느껴진 것이니 도시를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둘러싸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보통 도시를 둘러싸는 것은 방어용 장치일 가능성이 높은데 물리적인 방벽 기능을 한다면 이런 기시감을 줄리 없다고 생각한 나는 한가지 추측을 해보았다.
' 스캐닝 기능이 동작하고 있는건가? '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해선 자동으로 신원을 스캔하는 장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도시를 몇번 나갔다 들어온게 아니니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지금 가진 정보로 할 수 있는 추측은 이게 전부였다. 허나 이젠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도시에 들어왔고 수많은 것들이 있고 그것들을 알아갈 수 있다. 그것만이 지금의 나, 라클레시아 테시어에게 중요한 것이었다.
" 가볼까? "
무엇이 되었든 내가 살던 세계보단 흥미롭겠지. 그것 하나만으로 이 발걸음의 의미는 충분했다.
1. 일상은 10번의 핑퐁을 기준으로 비타 2개를 지급한다. 그 후 5번을 기점으로 비타의 갯수가 한 개 씩 늘어난다. (예: 27 핑퐁 시 5개의 비타 지급) 2. 독백은 공백포함 1천자를 기준으로 계산한다. 1천자 미만은 1개, 1천자 이상 2천자 미만은 2개 식. 3. 미션 작성 시 주어지는 비타는 매 미션마다 다르다. 미션 보상을 확인할 것. 4. 소지 비타 계산은 각자가 하되, 이벤트로 지급되는 포인트는 캡틴이 한다. 5. 비타 지급 방식을 악용할 경우 강경 대처를 할 예정이니 주의 바람.
소지 비타 : 일상, 독백 등 활동을 하여 레스주가 직접 기입하는 부분 추가 비타 : 이벤트 등으로 인해 캡틴이 지급해주는 비타(캡틴만 작성) 총 소지 비타 : 소지 비타와 추가 비타를 합친 것. 건드리지 않아도 자동 설정 됨.
너무 길었다. 너무 길었어. 위에서 보는 것만으로는 길을 다 알기가 어려워서─ 또 더러운 길은 무작정 피하려고 하다 보니─ 시간이 예상을 한참 더 초과해버렸다.
”… 그래도 덕분에 많이 더러워지지는 않았지.”
스스로를 속이는 거짓말. 그 썩은 물에 발이 빠진 시점에서 나의 판정패였다. 우우… 지금도 발가락 사이사이가 찝찝해. 지워지지 않는 불쾌감에 나도 모르게 발을 오므라 뜨리고 발가락을 꼼지락꼼지락 움직이고 있다. 아니─ 됐다 됐어─ 연연하지 말자. 이미 지난 일이야. 통신선만 확보되면 더는 이런 오지에서 고생할 필요도 없어. 공방으로 돌아가서 선생님께 오버홀을 부탁해야지. 여기서 묻은 더러움을 싹─ 다 지워달라고 하자.
결벽적인 상상으로 정신이 들뜬다. 들뜨려는데─ 현실이 갑자기 찬물을 끼얹어 왔다. 뭐야 저게… 오지 사람들은 전부 다 저런 거적때기를 입고 다니는 거야?
그러고 보니 전에 들은 적 있다. 어떤 보호 지구에서는 사람들이 문명의 이기를 일체 삼가고 자연 속에서 채집과 사냥만으로 매일매일 살아가고 있다지. 거기 사는 사람들은 의체를 비롯해 Hi의 조력은 물론─ 마더로부터 제공되는 모든 인권 보장 혜택을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던데. 혹시─ 저 사람들이?
요즘 시대에 반기술주의라니─ 참 삐딱한 녀석들이다 비웃었는데. 막상 만나려니까 두려움이 앞선다. 거기 사는 사람들은 Hi를 혐오한다고 들었다. 실수로라도 Hi가 지구 내부로 들어오면 철저하게 때려 부수고 고철로 만든다던데. 으…… 소름이 끼친다.
정말 저들과 접촉해도 되는 걸까? 조금 더 지켜보는 게 낫지 않을까?
망설임이 판단에 군살을 붙인다.
여기는 못 본 걸로 하고 다른 곳이나 더 찾아보는 게 어때. 사람들이 여기만 모여 살라는 법도 없잖아. 나는 저런 원시인들 말고 문명화된 세련된 시민들과 만나고 싶어.
내가 만들지 않은 생명의 소리가 인공두뇌를 딱따구리처럼 괴롭혔다.
아니─ 아니 될 말씀이다. 남은 동력이 많지도 않은데 그럴 여유가 어딨어. 무작정 걷다 힘 빠져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누가 견인해 주기라도 한대?
거기다. 내가 직접 Hi라는 걸 밝히지 않으면 저 원시인들이 내가 Hi인지 어떻게 알겠어. 자신의 성능에 자부심을 가지자. 여차하면 도망치면 되지.
”… 좋아.”
원시인들이 닦아놓은 길 위로 나를 올려놓는다. 괴담 같은 소문 때문에 여전히 머리가 복잡하지만 묘한 이끌림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런 걸 운명이라고 부르는 걸까. 흥분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한다.
포장도로 위로 작지만 큰 한 걸음을 뗀다.
”… 뭐야 이 애송이는? 어디서 온 거냐? 혼자서 온 거냐?”
”숲에서 왔어. 혼자서 왔지. 당신은?”
”켁── 보면 모르겠냐, 위병이다. 이 더럽게 큰 문을 지키고 있지.”
”… 그렇구나, 당신, 부모님은 있어?”
”뭐? 무슨 뜻이냐?”
”부모님이 계시냐구.”
”…… 진짜 무슨 뜻이냐고.”
호기심에 질문 한 번 해본 건데 왜 저렇게 난처한 표정을 지어?
원시인들의 생각은 도통 모르겠다. 침략을 불허하는 높은 성벽 아래─ 생각지도 못한 낯선 아저씨와 시간을 낭비하게 되자 좋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빠르게 가까워오는 땅을 뜬 눈으로 바라보며 전신으로 느끼는 무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끔찍하다. 꿈속이라 아프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무심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이지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 긴장과 공포에 낙하산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추락했던 이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다. 이미 충돌하고도 남았을 찰나의 시간이 지나갔음에도, 일말의 충격도 고통도 없이 세상은 그저 고요했다. 은연중에 잠에서 깨어날 것을 기대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설핏 떠오르는 마지막 기억. 쨍하게 내리쏘는 불빛과 몸속에 흘러들던 기분 나쁜 액체. 밖에서 내가 깨어나지 못하도록 어떤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겠지. 하기야, 깨어나면 혼자서 뭘 어쩔 건데.
이대로 영영 꿈속을 헤매게 되는 것인가 하는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눈꺼풀에 감각이 살아있어, 꾹 감았던 눈을 떴다. 상하반전된 시야에 한가득 들어오는 것은 푸릇푸릇한 풀밭. 지상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이격 되어있음을 인지하자 별안간 시야가 가라앉았다. 고작 주먹 하나 정도의 높이였지만 머리부터 그대로 곤두박질을 치니 여간 아프지 않을 수가 없다.
"으윽..."
이상했다. 꿈속이라 아플 리가 없는데 엄청 아프다. 땅에 코를 처박고 있으니 부드러운 흙냄새와 물젖어 약간 비릿한 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애벌레처럼 몸을 웅크렸다 반대로 뒤집어 하늘을 올려보았다. 언제 보았는지 모를 새파란 하늘, 느리게 유영하는 하얀 뭉게구름,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쪼개져 비쳐드는 다사로운 햇살. 잠자코 있으면 새 지저귀는 소리까지 새겨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에서 살게 해주는 것이 폐기 처분의 대가라면 나쁘지 않은 조건일지 모른다고. 높으신 분들이 일말의 자비를 베푼 것이 아닐까 하고. 솔직히, 돌아가기 싫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처절한 싸움, 회색 하늘과 동식물 하나 없이 메마른 땅덩이. 마물 죽이는 것도 사람 죽어가는 것도 더는 싫다. 그냥 이대로 있고 싶다. 잠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잘 알지만, 선임도 이곳에 와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쯤 가만히 드러누워 생각을 정리했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니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영영 가만히 누워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양 팔이 억압된 채 뒤뚱거리며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넓게 둘러보았다. 저 멀리, 사방을 둘러싼 숲 너머로 높다란 성벽이 보였다. 직감적으로, 그곳으로 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벽을 정면에 두고 길 없는 숲을 무작정 걸었다. 해가 등 뒤에서부터 조금씩 넘어오고 있으니 동에서 서로 향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보다 이 답답한 구속을 먼저 풀어내고 싶었다. 꿈속이라 그런지 몸 상태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러나 꿈속이라 그런지 마력을 전혀 사용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 땅에서 마력 자체가 느껴지지 않았다. 튼튼한 몸뚱어리만 남은 빈 껍데기가 된 기분이었다.
"이이익...!"
꿈속이니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양 팔에 힘을 주고 주고 또 주었다. 꿈인데도 숨이 차오르고 정수리가 지끈거렸다. 그렇게 십 분 정도 혼자 끙끙거리고 있었을까. 오기가 들어 온몸을 비틀어대고 있었는데.
찌지지직—
무언가 날카롭게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귀에 들리는 것은 구속복이 찢어지는 소리 하나만이 아니었다. 다른 괴상한 소리가 머릿속에 함께 울려댔단 말이다. 결국 자유로워진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땅바닥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찌이이이— 하는 소리는 한동안 계속해서 머릿속에 울려댔다. 마치 두개골에 트라이앵글을 박아 넣고 연달아 때려대는 듯한 괴로운 감각이었다.
한동안 몸을 웅크리고 어깨를 덜덜 떨었다. 입마개가 침으로 범벅이다. 소음이 겨우 잦아들고, 목덜미를 더듬거려 입마개를 풀었다.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워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제야 좀 숨 쉬는 것 같았다. 방금 있었던 일을 되짚으면, 내 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얼추 알 것 같았다. 본래 사용하던 마력은 일절 사용할 수 없으며, 일시적으로 강한 힘을 낼 수 있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이 이런 식이라는 것.
"하... 이게 뭔 꼴이냐."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푸념해 봐야 무슨 소용이람. 방금의 힘을 쓰면 발목에 채인 족쇄도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머리가 깨어질 듯한 이명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어서 포기했다. 그렇게, 왼쪽 발목의 족쇄와 쇠사슬로 이어진 커다란 쇠공을 질질 끌며 성벽을 향해 나아갔다.
숲을 빠져나오면 일종의 교역로처럼 보이는 멀끔한 도로가 나타난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시선을 죽 옮겨놓으면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성문 같은 것이 보인다. 그곳으로 낯선 복식의 사람들이 복작하게 왕래하고 있다. 흰 구속복의 양 소매는 너덜너덜하게 찢겨 늘어져 있고, 맨발에다, 한쪽 발목엔 족쇄까지 차고 있는 처량한 모습이었지만, 내 꿈인데 뭐 어떠냐 싶어 별생각 없이 주위를 지나는 짐마차를 뒤따라 도시로 향했다.
위병으로 보이는 이들이 관문을 지키고 있었으나, 이쪽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 듯했다. 태연히 관문 너머로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덜컥.
심장이 붕 떠오르는 섬뜩한 느낌에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것은 첫 모형탑 훈련에서, 몸에 묶은 줄 하나에만 의지한 채 안전장치 하나 없는 땅바닥으로 몸을 내던졌을 때의 감각을 닮았다. 주저앉듯 몸을 잔뜩 웅크렸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엔 묘한 안도감과 해방감이 어깨를 감싸와, 찔끔 새어난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고서 도시 안쪽으로 어색한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최소 수십미터는 족히 되어보이는 하늘에서 추락하였고, 마법이나 신성력의 도움도 없었는데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하게 살아 남았다
이것은 아무리 튼튼한 제 육신이더라도 불가능에 가까운 사건이며, 그리고 애당초 어째서 하늘에서 추락하였는가. 그것에 대해서 그는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망할 마법사 자식아!!! 나를 놀려 먹는게 그렇게 즐겁더냐!?"
바로 자신의 동료중 한 명인 대마법사가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는 것. 물론 그녀 본인은 굳이 그런 장난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였기에 분명, 또다른 동료이자 어린 정령과 맞먹는 장난꾸러기인 엘프 궁수의 의견이 잔뜩 들어가있었다— 라고 확신을 내렸던 그였으나
"...어이, 이제 장난은 그만치고 나오라고? 지금 나오면 머리 한 번 쥐어박는 걸로 용서해줄 테니까! ...이래도 안 나와? 그럼 그냥 용서해줄게! 나 이거 진짜 재미 없다? 농담 아니야!!!"
아무리 제 동료들을 불러봐도 돌아 오는 대답은 없었으니, 그제야 그는 또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마법에 의한 공간 이동은 아닐거다. 싸가지가 조금 없어도 나름 대마법사 딱지 달고있는 그녀가 결계로 막아둔 저택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그 어떤 마법사가 나를 눈치 챌 사이도 없이 공간이동 시키겠어? 이미 진작에 뼛조각 하나 하나 확실하게 정화시킨, 나와 동료가 토벌한 마경의 마왕 중 하나였던 리치왕이 기어코 여신의 심판장에서 빠져나와 우리에게 복수를 위해 찾아왔다 하더라도 불가능하다.'
공간 이동 마법은 아닐거라 확정짓자, 그의 생각은 더더욱 복잡해진다
'그럼 혹시 환술? 이렇게 감각까지 완벽하게 재현하는 환술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알고있지만, 망할 몽마왕이라면 불가능은 아니겠지. 아니, 하지만 그놈은 마경 사이에 쳐둔 신성 결계 때문에 나오지도 못하고 애당초 이런 환영을 보여주지 않을 텐데? 이상하다는 것을 뻔히 눈치 챌 수 있는 환영 따위를 그 사람의 생명력이나 빨아먹는 모기 같은 몽마 주제에 자존감 하나는 더럽게 높은 녀석이 사용할리가.'
그러니 이것은 환각도 아니다. 그렇다면 대관절 이 상황은 무어란 말인가?
.....
"아, 몰라! 모르겠다! 애초에 내가 이런 걸 생각하는 것 자체가 안 어울려! 이런 건 마법사나 용사 녀석이 하던 일이라고!"
이내 자신은 원래 생각 같은거 안 하는 타입이라며 일단 주변을 둘러보기로 결정한 그였다
'일단 하늘에서 봤듯이 이곳은 숲속이군. 하지만 그렇게 깊지도 않고 사람의 흔적도 있는 것이 방향만 잘 찾으면 마을이나 도시가 나오겠어.'
이윽고 능숙하게 주변을 파악하고 나아갈 방향을 정한다
"가기 전에...그래, 이 바위가 그나마 튼튼해 보이는군."
그리고 자신의 능력으로 튼튼해 보이는 바위와 같은 제질의 창을 만들어내는 그였으나...
"으왁!? 히, 힘이...?"
평소와는 다르게 엄청난 탈력감이 전신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뭐, 뭐냐 이거. 설마 능력 때문에...? 아니 설마, 지금 까지 그런적 없었는데!"
그리고 다시 한 번 창을 만들었고, 아니나 다를까 또다시 체력이 떨어졌다
"젠장, 이 능력을 여태까지 쓰면서 이런 패널티 따위는 경험해 본적도 없는데 갑자기 뭐냐고!"
그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으며, 평생을 같이 지내왔던 능력에 살아 생전 처음 겪어보는 패널티가 생긴 것에 점점 더 당황하며 분노하기 시작했다
"하...이게 도대체가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뭐라도 해봐야겠군."
오늘따라 유달리 무겁게 느껴지는 두 자루의 창을 들고 사람의 흔적이 보이는 곳을 향해 간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그는 도시와 그 도시를 지키는 성벽을 발견했다
'꽤나 커다란 도시로군. 그리고...젠장할, 한 번도 본적 없는 방식의 성벽이잖아!'
이름 높은 모험가로서 위대한 귀족의 저택이나 제국의 황성, 시골 영지의 성벽과 마경 바로 앞에서 인류를 수호하는 성벽을 봐왔고, 심지어는 마경의 마왕성에도 몇 번이고 들어가고, 직접 부서봤던 그였지만 당장 제 앞에 있던 성벽은 그가 전혀 모르는 방식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게 분명하였다
"점점 머리가 아파지는데...여기는 도대체 어디인거야? 주점이나 무대에서 음유시인들이 노래하는 시에서나 나오던 또다른 대륙에라도 와버린거냐 나는?"
그는 다시 한 번 골머리를 앓고 성벽으로 들어간다
'으윽...!? 뭐냐 이 감각은. 마치 마경에 처음 들어갔을 때 느꼈던 본능 단위의 거부감이...! ...? 뭐야. 바로 사라졌잖아? 착각, 이었나? 일단은 주의할 필요는 있겠군.'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확인한 메구무는 순간 아차, 하며 자신이 짊어진 짐 중 유난히 눈에 띄는 대태도를 꺼내어 어디 망가진 곳은 없는지 꼼꼼히 살피고는 검집에서 검을 꺼냈다. 검날엔 메구무 또래의, 이목구비가 뚜렷한 남성의 얼굴이 비춰졌다. 다만 눈을 감고 있었기에 메구무는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검날 속 남성에게 말을 걸었다.
"호타루, 호타루! 니 괘안나?"
그 목소리에 검날 속 남성 '호타루'는 눈을 떴다. 천천히 눈동자를 굴려 자신을 부른 메구무와 그 주변 풍경을 훑어보던 호타루는 메구무에게 물었다.
「...먼일이고? 근데 여긴 어디고? 숲 아이가? 언제 여까지 왔노?」
메구무는 호타루가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호타루 역시 상황파악이 덜 된(사실 덜 된 수준도 아니고 아예 안 된 수준이지만) 것을 알고는 잠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뒤 그간 있던 일을 호타루에게 모두 말했다.
「그니까, 하늘에서 널쪘는데 어디 다친 곳도 읎고 디지지도 않았다는 거제? 사실 우리 싹 다 디진거 아이가? 여는 머 극락이고.」 "내가 그 생각 안 해본 줄 아나? 내도 했다. 글고 우리가 극락을 어뜨케 가노. 허구헌 날 하는 기 칼질인데." 「문디자슥. 내는 거서 빼라. 내는 극락왕생할기다.」 "확 그냥 뿐질러부까... 암튼... 우리는 어데던 가야한다."
나무에 기대어 호타루와 이야기를 주고받던 메구무는 자리에서 일어나 숲을 찬찬히 살폈다. 어쨌든 주변엔 사람이 살 것이다. 그것이 수십 명 규모의 아주 작은 마을이라고 할지라도. 숲이 있는 곳 근처엔 벌목꾼과 사냥꾼, 나무꾼이 살테니깐. 그리고 얼만큼 걸었을까. 시냇물을 건너고, 수풀을 헤쳐나가던 메구무와 호타루는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큰 성벽을 마주했다.
"니 이런 거 본 적 있나?" 「있겠나? 생각을 해봐라.」 "맞나." 「그치만... 여서 머라도 건질 수 있지 않겠나?」
호타루의 말에 메구무도 같은 생각을 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성벽 안으로 들어갈 결심을 마치고 도시에 들어섰다. 그러나 도시에 들어서자마자 본능적인 수준의 거부감이 느껴져 메구무는 눈쌀을 찌푸렸다. 그러나 아주 짧은 순간의 감각이었기에 그는 자신이 착각한 것인지 의심했다.
─여차저차 해서 추락 간신히 마친 소녀. 불시착한 장소는 울창한 숲 펼쳐진 곳이다. 여기도 나무, 저기도 나무, 온통 나무... 눈 씻고 주변 둘러보아도 소녀가 지내던 방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환경이었다. 애초에 어떤 도시의 일부라거나, 하는 곳도 아닌 것 같았다.
"여기, 어디...?"
어떻게 된 건지 상황 채 파악하기도 전에─ 소녀의 얼굴이 점점 울상 되어간다. 내, 내 스마트폰이랑, 컴퓨터랑, 플스랑, 스위치는...? 다 없어진 거야? 안락한 보금자리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소녀는 절망한다. 간신히 일으켰던 몸 다시 털썩 주저앉힌 채. "...흐아앙." 눈물이 뺨을 타고 줄줄 흘러서, 결국 소리내어 울고 만다. 소매로 눈가 문지르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소녀는 길 잃은 아이마냥 하염없이 울다가,
"꺅!"
돌연 소리를 꽥 질렀다. 조그만 새가 포르르 날아와 제 무릎 위에 앉았기 때문이다... 비명소리에 깜짝 놀란 새는 다시금 날아가버린다. 온통 생소한 것 투성이라 덜컥 겁부터 났다. 화면 너머로 경험한 건 많지만 실제로 마주하는 건 처음이라. 그럼에도 소녀는 눈가 닦고서 의연하게 일어나려 노력한다. 게임에서도 주인공이 이렇게 앉아만 있으면 스토리 진행이 안 되잖아. 어디든지 가봐야 한다. 설령 이곳이, 자신의 안식처가 아니더라도.
얼마나 걸었을까, 시야에 인위적인 건축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혹시 마을? 인간들이 사는 곳일까? 그치만 사람, 너무 많으면 무서운데... 그럼에도 소녀는 한 발짝 내딛어보기로 했다. 행동하지 않으면 변하는 것도 없다. 다시 얼마간 걷고 조금은 머뭇거리며 마을─도시에 진입하려는 순간.
"...히끅."
처음 맞닥뜨리는 이질감에 당황한 소녀, 딸꾹질 한 번 한다. 자신을 거부하듯 밀어내는 것이 아주 잠깐이나마 느껴졌으니까. 일종의 저항감. 기이하게도 제가 하계에 봉인당했던 때와 비슷한 감각이다... 별로 유쾌하진 않은 회상.
라클레시아의 안내로 묵기 시작한 (물론 소녀는 잠을 잘 필요가 없지만) 여관의 주인, 마시는 무척이나 친근한 사람이었다. 특히 자기 집 알바생의 친구 일행이라며 잘 챙겨주기도 했고. 라클레시아는 역시 친구가 많아. 여관 생활은 소녀에게도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방에 컴퓨터나 게임기가 없는 건 좀 슬프지만, 그래도 맛있는 음식이 있었으니까!
"...응?"
여느 때처럼 식당에서 스튜를 흡입하던 소녀, 마시의 말에 숟가락을 멈춘다. 듣자하니 그녀는 부탁할 게 있는 모양이었다. 헌데 중앙을 지키는 경비원이라면... 소녀는 괜히 그쪽으로 향했다가 고압적인 경비들에게 위협(?)당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 일을 계기로 경비병은 사실 무서운 사람들이었구나, 하는 걸 깨닫기도 했고. 게임에선 무릎에 화살이나 맞고 다니는 NPC였는데...
"어... 아, 알았어. 내가 할게!"
그렇지만 마시의 심부름을 차마 거절하진 못한다. 그녀의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고, 매몰차게 내칠 수도 없었으니까. 스튜를 전부 들이킨 소녀는 마시가 준 바구니 든 채 여관을 나선다. 그리고... 인파에 휩쓸려 길을 잃을 뻔도 하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다행히 바구니 속의 내용물은 무사했다), 아무튼 여러 고행을 겪은 끝에 소녀는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래놓고서도 쭈뼛거리며 근처를 서성이던 소녀를 향해, 한 경비병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힉!"
소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또, 또 혼나는 거야? 지금은 도와줄 사람도 없는데 어떡하지...!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경비병은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마시 씨가 보내서 왔는감?" 소녀를 향해 말을 건네었다. 머리 감싼 채 두 눈 질끈 감은 소녀, 의외의 반응에 조심스레 눈 뜬다.
"...아? 어, 어. 응. 마시가 보내서..."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소녀가 만난 경비병은 상상과 달리 무척이나 친절했다. 부탁받은 음식과 인사를 주고받은 후 소녀는 빈 바구니 든 채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돌아오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려 여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진 뒤였다.
"다녀왔어, 마시~!"
소녀는 재빨리 마시에게로 달려가, 있었던 일을 재잘거리며 보고했다. 왠지 모르게 한 단계 성장한 듯한 느낌 들어 기분이 좋았다. 방구석 히키코모리, 레벨 업이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푸른빛을 띄는 어떤 것. 이렇게 작은 것들이 말을 하면 통상 요정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들이 이 세계에선 어떤 식으로 불리는지 모르겠으나 일단 요정이라고 칭하겠다. 갑자기 나타난 요정들은 알 수 없는 말을 속삭이고선 사라졌다. 사라지기 전엔 붉은 빛으로 변했었는데 결국 요정들이 하고자 하는 말은 하나였던것 같다.
「경배하라, 찬양하라! ■■■의 방문이다!」
하지만 누가 방문하는지는 마치 그 부분만 소리가 막힌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허나 고해, 수사, 죽음이라는 수사가 붙는 존재라는 것은 적어도 이득이 되는 존재는 아닌듯 싶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이상한 것은 이런 말을 들었음에도 이곳의 주민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그들의 눈 앞에도 요정들이 날아다녔기에 분명 앞이 잘 보이지 않았음에도 귀찮다는 기색조차 없었다.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 실례합니다만, 혹시 눈 앞을 날아다니는 파란 것들을 방금 보셨나요? " " 아무것도 없었는데, 형씨 대낮부터 술이라도 마신게야? "
인상이 호쾌한 아저씨는 이 시간부터 그러면 못써~ 하면서 내 등을 한대 툭 치고 지나갔다. 아마 요정이라고 생각되는 그것들을 아예 보지 못한듯 싶었다. 그렇다면 내 눈에만 보였다는 이야기인가? 하지만 나에게도 목소리와 모습은 들렸을지언정 특정 단어까진 들리지 않았다. 어떤 조건이 있고 그것을 만족해야만 요정들을 인지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 있는 많은 사람들과 나와 다른 점은 역시,
" 추락의 유무인가. "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들은 분명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말고 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도 동일한 현상이 보였을지? 그건 윈터나 알레프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을듯 싶다. 하지만 그 전에 이런 현상에 대해서 어딘가 알려진게 있을지 궁금했다. 물론 추락자라는게 그렇게 흔하진 않은 것 같지만 내가 이 도시에 있다는 것은 이전에 다른 추락자들도 비슷하게 오지 않았을까하는 합리적인 추론까진 가능하게 해준다.
" 도서관에 가볼까. "
정보는 보통 기록으로 남기 마련이다. 누군가가 구전으로 전한 것이라고해도 언젠간 기록으로 남기게 되니까. 그리고 그런 기록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곳은 도서관이다. 물론 도서관은 그 정보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원하는 것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번 본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러니 책들을 대충 훑어보았을때도 그 내용 자체를 기억하는 것은 쉬우니 단편적인 정보를 모아서 하나의 완전한 것으로 만드는 일도 쉽다. 그렇기에 나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 책을 좀 열람하고 싶은데요. " " 대여는 따로 서류를 작성하셔야하고 책은 내부에서 자유롭게 꺼내 읽으시면 됩니다. "
사서의 안내를 받은 나는 장대한 서고에 작게 감탄하며 책을 하나씩 꺼내 읽어보기로 했다. 물론 소설 같은 것들은 제외하고 이 일대의 역사를 써놓은 책이나 신문 같은 것들을 스크랩 해놓은 자료들을 중심으로 읽어내려갔다.
>>39 라클레시아 테시어 (1회) 라클레시아 테시어는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보지만, 원하는 것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글자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전 따위를 이용해 해석해 보려고 해도 글쎄요. 글씨가 ■ 따위로 점철되어 있는데 사전이 있다고한들 이해할 수 있을까요.
몇 권의 책이나 스크랩북을 살펴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본 책도 ■ 투성이라 알 수 있는 것이 없군요. 라클레시아 테시어가 도로 책장에 책을 꽂아 넣습니다. 툭. 책 사이에 끼워져 있던 것으로 보이는 종이 쪽지가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큰 기대 없이 쪽지를 펼쳤던가요. 다행히 이 쪽지는 ■가 아닌, 라클레시아 테시어가 이해할 수 있는 글씨로 적혀 있습니다.
[N열 3층 열두 번째]
책의 위치를 적은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다른 곳에서 정보를 찾을지, 책의 위치로 살피러 갈지는 당신의 몫입니다.
때는 아직 이른 점심 때, 스튜 재료가 될 감자며 당근 껍질 벗기길 마치고 아픈 허리춤을 통통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을 즈음에.
벗긴 껍질을 모아담아 버리러 가는 길에, 마시가 작은 바구니 하나를 건넨다. 이 도시락을 중앙 북쪽 경비원에게 대신 가져다 달라고. 그, ..그럴게요! 물기 젖은 손을 대충 앞치마에 문질러 닦고 도시락을 건네받는데, 문득 저번에 시장 입구 부근에서 마주쳤던 경비원의 시선이 뇌리에 스친다. ..이번에도 그런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지? 기껏 바구니를 잘 건네받고선 묘하게 주눅들어하는 기미를 저 쪽도 알아챘는지, 왜 그러니, 니아? 목소리엔 대번에 걱정이 어린다. 무슨 일 있니? 힘들면 굳이 안 나가도 돼. 상냥한 말에 으응, 괘, 괜찮아요! 씩씩한 체 대꾸하고 가게를 나섰다. 딸랑.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경쾌하게만 울리는 종 소리.
언제든 못 하겠다고 이야기하면 괜찮다고 해 줄 상냥한 마시인 걸 알아. 그치만, 이런 것도 못 해선 마시를 볼 낯이 없으니까.
"...바, 밥값은, 해야지!"
좋았어! 꾹 쥔 주먹으로 혼자 기합을 넣고선 북쪽을 향해 출발했다. 착, 착, 착, 내딛는 발걸음은 할 수 있는 최대의 씩씩함을 담아낸 결과다. 그러고 보니 북쪽엔 아직까지 발걸음을 한 적이 없다. 마시에게 들은 몇몇 단편적인 정보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추운 곳이고, 작은 촌락같은 곳이고, 음, 또....
..그리고, 북쪽에 가면 혹시 위험할 수도 있으니 큰 길로만 다녀야 한다? 수상한 사람은 피하고.
몇 주 전엔가 들었던 마시의 경고 섞인 조언이 퍼뜩 떠오른다. ........아. 발걸음에 담긴 씩씩함은 대번에 싹 씻겨 내려가고. 툭, 하고 바구니가 떨어진다. 마시가 음식물이 쏟아지지 않게 손을 써 놓은 건, 어쩌면 최고의 선택이었다.
과연, 마시의 말대로 북쪽은 추웠다. 몸이 떨리는 건 분명 추워서 그런 것이다. 결코 중앙 북쪽에 가까워저서 두려운 마음에 다리가 벌벌 떨리는 건 절대 아니고, 제대로 갖춰입고 오지 못 해서, 추워서 그런 거야. 으, 으으, 으으으, 이제는 끈적이는 바닥에 달라붙은 것처럼 잘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는 다리를 연약한 의지로나마 질질 끌고, 코 앞에 도착했다. 몇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알아낸 길에 따르면, 이제 이 모퉁이만 돌면 중앙의 북쪽 관문 앞이다. 벽 너머로 염탐하듯이 고개만 디밀어 목적지를 살핀다. ...앗! 생각한 것보다 더 가까이에 경비원이 있어서, 눈이라도 마주칠까 디밀었던 고개를 얼른 빼 버리고 말았다.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 같아서 지, 지지, 진정해, 진정해, 수십 번 정도는 되뇌이고 난 뒤에야 로브를 푹 뒤집어 쓰고 경비원 앞으로 나설 수 있었다. 어쩌면 이제 스튜는 따듯한 스튜가 아닐 지도 몰라,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이, 이거.. 포, 포르시티아에서, 요."
점점 가까워지는 자신을 발견하고선 잔뜩 경계를 더해가는 경비원에게 주뼛주뼛 다가가 작은 바구니를 내밀었다. 혹시 눈이라도 마주치면 또 눈물이 찔끔 날까 봐 일부러 고개는 들지 않았다. 바구니를 건네받은 경비원이 갑자기 사근사근해지거나, 친절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일은 없었다. 그저 무미건조하고 딱딱하게 대금은 후에 가게에 가서 치르겠습니다, 따위의 얘기를 할 뿐이었다. 어쩐지 초조한 마음에 로브 앞자락을 계속해서 쥐었다 피는 걸 경비원에게 들킨 것만 같았다.
"네, 네, ...그럼 이, 이, 이만.."
도망치듯이 빠져나왔다. 모퉁이를 돌 때까지 경비원의 시선이 따갑게 뒷통수에 박혀오는 것만 같았다. 도시 동쪽으로 향하는 관문을 통과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쉴 새 없이 구겨지기를 반복한 로브자락이 쪼글쪼글해져 있었다. 무서웠지만 그래도 끝냈으니까 괜찮아. 괜찮을 거야. 어쩐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한적하고도 아무런 할 일이 없어 지루하던 때. 그는 여지껏 남을 돕고 방을 빌려 하룻밤을 지내는 나날을 보냈다. 너무 일을 하다 보니 이제는 손을 빌려 주지 않으면 심심할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보통 심히 일하면 지쳐서 쉬고 싶어 하지 않냐 하느냐마는, 그가 누구인가. 정통 흡혈귀는 지치지 않는다. 워낙 체력이 왕성하다 보니 지치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산들산들 바람이 불어왔고, 그것들이 나타났다.
■■■니 뭐니.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무언가 이상하고도 신비롭고도 부정적인 존재임은 직감할 수 있었다. 그들이 하는 말을 통해 추측하건대, 그것의 존재는 강력하고도 지배력이 방대한 누군가였을 것이며 봉인 같은 거라도 당했던 것 같기도 했다. 단순한 추측에 비롯된 것이지마는. 어쩌면 잠시 지나가는 존재일 수도 있겠다.
죽음으로 고해하며 사죄하라는 것인가? 공포로 억압하는 존재인 것인가. 뭐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대강 윤곽이 잡혔다.
그렇다면 이상한 요정 같은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알아 볼까?
그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인-마을에 오래 지냈다면 알 수도 있을 것 같았기에···-혹은 상인, 도서관에서 고서를 찾아 보아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유이는 일어섰다. 그리고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날씨가 무척이나 좋네요."
"그렇지. 이런 날씨면 밖에 나오기 딱 좋다네. 그건 그렇고 무슨 용건인가?"
"다름이 아니고 요정에 관련해서 말이지요. 이곳에 존재라도 합니까?"
"글쎄다. 내가 나이 90을 먹고도 이곳에서 요정이라고는 본 적이 없어서 말이지. 확실히, 이곳에 요정은 없어. 소설 속에 존재한다면 몰라도."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것의 존재는 무엇이지. 확실히, 요정이라기에는 흔히들 말하는 개념의 그것보다 사악해 보이기는 했다.
>>43 니아 니아가 다시 여관으로 돌아옵니다. 마시는 고생했다며 무언가를 건넵니다. 비타 +1.
>>44 유이 노인이 떠나갑니다.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었습니다. 어쩌면 저 노인보다 더 나이를 먹은 사람을 찾아봐야 하는 건 아닐까요? 아무리 고민을 해도 아는 것이 없는 지금에서는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때, 대여섯살 쯤 된 아이들이 나무로 만들어진 칼을 들고 우르르 뛰어가는 것이 보입니다.
아이들은 용사니 마왕이니 같은 장난을 치며 와하하 웃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미소는 보물이라고 했던가요. 저런 해맑은 모습을 보면 그런 말이 괜히 나온 것만은 아닐 겁니다. 웃는 아이들 사이로 빛무리 같은 것들이 흩어지고 모이기를 반복합니다. 어쩐지 요정과 비슷하게 여겨지네요. 아이들이 멀어집니다. 어떻게 할까요? 저게 정말 요정이라면 말을 걸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면 다른 곳에서 정보를 얻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이런, 그새 또 잠들어버렸나. 넓은 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 풀밭에서 무어라 잠꼬대를 중얼거리며 몸을 뒤척이던 윈터는 이상한 기척에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나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았어. 하늘을 올려보면 아직 해님이 저물진 않았고, 라크도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으며 해 질 녘에 이곳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던 소년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어.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은 자연이 내쉬는 숨이 아니라서, 졸린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보면 푸르게 빛나는 님프들이 포르르 날아다니고 있어. 그것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의미를 정의할 수 없는 단어가 귀에 들려와. "■■■" 하면서. 윈터가 아는 정령은 경이롭고 순수한 자연물에 가까웠는데, 이것들은 고해니 사죄니 죽음의 공포니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것이 무슨 광신도 같았단 말이야. 대놓고 들어라고 하는 말인지.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진 건지 아리송한 윈터가 날벌레처럼 주변을 맴도는 존재들 중 하나에게로 손을 뻗어 잡아보려 했지만, 그것은 손에 잡히는 감각 없이 버섯이 포자를 내뿜을 때처럼 뿌옇게 먼지가 되어 흩어지더니 이내 다시 모여들어 똑같은 형체로 되돌아와.
"야. 잠깐만. ■■■이 도대체 뭔데?"
윈터는 그 단어의 의미를 정의할 수 없었지만, 귀에 들려온 그대로의 발음을 따라 하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어. 아무래도 자신과 다른 이들이 이 세계에 떨어지게 된 것과 연관이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그 푸른 존재는 다급하게 뛰어가는 윈터를 슬쩍 돌아보며 얄궂은 미소를 흘리고서 정면을 높게 가로막은 성벽을 그대로 투과해 사라져 버리고 말아.
"대체 뭐냐고..."
눈 깜짝하는 사이 사라져 버린 푸른 존재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윈터의 눈에 성벽 근처에 작은 토끼 굴 같은 것이 들어와. 기다란 토끼 귀를 가진 어려 보이는 수인이 고개를 빠끔 내밀고 있어. 아무래도 아까부터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지. 어쩌면 나무 아래에서 잠을 자고 있을 때부터. 윈터가 성큼성큼 다가가는데도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토끼 소녀. 윈터는 소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쪼그리고 앉아서 소녀를 내려다보았어. 영원이를 만났을 때의 미묘한 저항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소녀는 이 세계의 원래 주민이겠지.
"꼬마야. 너도 방금 봤지? 저 하루살이 같은 것들. 혹시 ■■■이 뭔지 알고 있니?"
윈터는 소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려 하면서 최대한 귀에 들었던 단어를 흉내 내어 발음해 보았어.
도시에서 하나뿐이라던 여관이 이곳인가- 윈터는 여관 근처를 서성이며 건물을 구경하고 있었어. 이 도시는 딱히 관광지 같지도 않았고 추락자 같은 외부인도 드물어 보였으니까 여관 같은 숙소가 하나뿐인 것도 이상하게 여길 일은 아니었지. 지금 당장은 이곳의 화폐가 없지만, 앞으로 지내게 될 곳이 여기겠구나 생각하며 멍하니 뺨을 긁적이는 윈터를 누군가가 불러 세워. 여관 안에서 나온 여성은 윈터에게 웬 바구니를 내밀어 보이며 작은 부탁을 했어. 이곳에 떨어지고 나서 아무것도 입에 삼키지 못한 윈터여서 바구니 안에서부터 흘러나는 맛있는 냄새에 더 침이 고였는지도 몰라.
"뭐...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라크와 잠시 동행하며, 주민들의 부탁을 들어주면 그들의 호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담담하게 여성의 의뢰를 수락하는 윈터였어. 도시의 중앙으로 향하는 길목은 치안대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서, 익숙한 도시 외곽의 성벽을 따라 북쪽으로 향하기로 했어.
언제 또 뒤를 따라왔는지 미운 정이라도 들어버릴 것 같은 양아치 놈들과 자그마한 소란이 있었지만, 바구니에 마법이라도 걸려있는 걸까, 안에 든 음식은 쏟아지는 일은 없었어.
그렇게 성벽을 따라 걸어서 도착한 북쪽 관문엔 처음 도시에 들어올 때에 보았던 것처럼 두 사람의 위병이 문을 지키고 있었는데, 누가 의뢰자가 말한 병사인지 알아야 말이지.
"야. 마을 여관에서 누가 이거 갖다 주라던데."
윈터는 두 병사 사이에 대뜸 바구니를 내밀 뿐이었어. 여성이 평소에도 도시락을 챙겨준다 했으니까, 알아서 받아 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처음 들어온 동쪽과 달리 북쪽 관문은 분위기가 좀 더 무겁고 경계가 삼엄한 느낌이었다고 할까. 딱딱하게 자세를 잡고 있던 위병 중 하나가 머뭇거리더니 주위를 지나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때가 되어서야 자세를 풀고 윈터에게 다가와 바구니를 받아 들며 순박하게 미소 지었어. 고맙다고.
"뭐... 고생하라고."
한 집단의 병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 줄 누구보다 잘 아는 윈터였기에, 그냥 그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쳐주고서 발길을 돌렸어. 위병은 의뢰를 부탁한 여성의 아들일까 같은 당연한 생각이나 하면서 느긋하게 여관으로 돌아온 윈터는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섰지.
"다녀왔어."
여전히 분주해 보이는 여관. 맛있는 냄새가 폴폴 풍겨와서 배가 꼬르륵... 마침 주방에서 나온 여성이 윈터를 반겨주었어.
"바빠 보이네... 보상은 됐고. 여기서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해? 좀 알려주면 좋겠는데. 보다시피 내가 지금 돈이 하나도 없거든."
무언가 이상하다. 내가 고른 책들은 전부 읽을 수 없었다. 문자가 있고 그것이 해석이 안되어서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문자가 어떤 모양도 보일 수 없게 ■■■처럼 표시 되어 있었다. 무언가 글자가 보이고 해석이 되지 않는거라면 사전 같은걸 이용해서 조금씩 해석이라도 되겠지만 이런 식이라면 그 어떤 것도 읽어낼 수가 없다. 혹여 인쇄가 잘못된 것인가 싶어 다른 것들도 읽어보았지만 마찬가지.
" 이건 읽는 행위 자체를 막아버리는 느낌인데 ... "
분명 이곳에 떨어지고 나서는 이곳의 언어를 하나도 모름에도 듣는데에 이상이 없었고 말하는데에도 지장이 없었다. 다른 세계에서 온 추락자들끼리도 의사소통엔 문제가 없었으니까. 길거리에 써있는 간판들도 의미 정도는 바로바로 알아챌 수 있었는데 이런 기록물들만 이런 식으로 되어있다는 것은 인위적으로 열람을 막고 있다는 것으로 밖엔 해석이 되질 않았다.
" 도서관은 소득이 없는... "
망연자실하여 꺼내들었던 책을 꽂아넣었다. 그 순간 바닥으로 쪽지 하나가 떨어진다. 정갈하게 잘 접혀있는 그 쪽지는 겉으로는 특별한게 없어보였지만 왜인지 내용을 읽고싶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만약에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쪽지여도 어쩔 수 없다. 이런 곳에 꽂아둔 본인을 원망하는 수 밖에. 무슨 내용이 있을지 약간의 기대를 담아 쪽지를 펴본다.
'N열 3층 열두 번째'
읽을 수 없는 책에서 나온 쪽지는 읽을 수 있는 언어로 작성 되어 있었다. 책을 펼쳐볼때도 보이지 않았던 쪽지인데 갑자기 떨어져서는 어느 책의 위치만 알려주고 있다. 평소 같았으면 별거 아니겠지 하고 넘겼을 정도의 내용이지만 이번에는 그곳에 있는 책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어디보자 N열 3층 열두번째 ... "
나는 근처에서 발받침대를 가져와 올라가서 해당되는 구역으로 가서 책을 하나 꺼내들었다. 표지에도 별 내용이 없는 것 같고 겉보기엔 평범한 책인데 굳이 쪽지가 이걸 가리킨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말없이 책을 펼쳐들었다.
>>46 윈터 토끼 소녀는 윈터를 불신하는 눈으로 바라봅니다. 아무래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경계인 듯 싶지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는 윈터의 행동에 토끼 소녀가 굴 입구 쪽의 애매한 위치로 자신의 몸을 숨깁니다.
어둠 속에서 토끼 소녀의 눈동자가 빛나는 것 같습니다. 토끼 소녀가 입을 엽니다.
“삐—————————.”
순간, 긴 이명이 윈터의 머리를 헤집습니다. 토끼 소녀가 무어라 말하는 것 같기는 한데, 이명이 너무나 길고 시끄러운데다가 고통스러워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윽고 토끼 소녀는 굴 깊은 곳으로 사라졌습니다. 남은 것은 윈터 뿐이네요.
>>47 윈터 마시는 윈터의 말에 도움을 주면 된다고 말합니다. 이곳은 그런 곳이라면서요. 마시가 윈터에게 배고파 보이니 이걸 먹으라며 샌드위치를 건넵니다. 마시의 애정이 담긴 샌드위치 +1.
마시의 애정이 담긴 샌드위치. 마시가 여관에 머무르는 니아를 위해 마음을 담아 만든 샌드위치. 섭취하면 맛있다. 어떤 일이라도 성공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48 라클레시아 테시어 (2회) N열 3층 열두 번째에 놓인 책은 너덜너덜한 동화책입니다. 겉표지가 어찌나 닳았는지, 종이 조각이 일어나 지저분합니다. 문득 라클레시아 테시어는 생각합니다. 동화책에는 그림이 있고, 그림은 ‘문자’의 이해가 되지 않아도 해석할 수 있을 거라고요.
그리고 이 책은 두어살 먹은 어린 아이가 읽을 법한 동화책으로 글보다는 그림의 비중이 8할은 되는 책입니다. 물론 이런 동화책에서 어떤 정보를 얻겠냐마는 혹시 모르는 일이지요.
라클레시아 테시어가 동화책을 펼칩니다. 너덜너덜한 동화책은 낱장이 흐트러져 손을 댈 때 조심해야할 것 같습니다. 한 장, 한 장 조심스럽게 넘기면 확실히, 문자들은 ■ 따위로 보이지만, 그림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건 용사와 마왕, 혹은 그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세계를 침범한 마왕이 세계를 부수려 하자 용사가 나타나 마왕을 물리치고 세계의 안녕을 되찾아왔다는 내용 같습니다. 그리고 이 동화에서 요정—그러니까 그에 준하는 것으로 예상되는 덩어리들은 용사의 동료로 보입니다. ······잠깐만요. 마왕이 아니라 용사라구요?
요정이 선한 측이라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의문입니다.
라클레시아 테시어가 동화책을 닫으면 발 아래에서 비타 한 개가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게 무엇인진 몰라도 챙기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비타 +1.
나름대로 친절한 손길이었음에도 손이 가까워오자 고개를 홱 하고 피해버리는 것은 역시 짐승다운 행동이었어. 이제 대여섯 살쯤 되었을까 싶은 소녀가 입을 열었는데 머릿속에서 삐- 하고 찢어지는 듯한 이명이 울려와.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이 꼬맹이가, 약이라도 올리는 건가?
"아- 짜증 나네." ... "너, 거기 딱 기다려."
괜한 오기가 생긴 윈터는 소녀가 사라진 굴 안쪽으로 깊숙이 따라 들어가려 했어. 글쎄, 이어진 곳이 어딘진 몰라도. 무릎을 꿇고 몸을 잔뜩 웅크려서 흙 구멍에 몸을 밀어 넣었어.
윈터는 저도 모르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라크의 외투로 슬쩍 가리려 했어. 무심코 냄새를 다시 킁킁 맡아버렸는데, 보이는 그대로 무색과 무취라고 할까. 정말 순수하게 깨끗하다는 느낌이야. 청정? 청결? 청량?
"응. 진짜 편리한 능력이네. 눈으로 보기만 해도 따라 할 수 있다니. 아무튼, 치료해 줘서 고마워."
윈터는 어느샌가 그의 외투를 끌어안고 눈만 빠끔 내밀고서 라크를 올려보았어. 조금 머뭇거리다가 어깨를 으쓱이며 제 능력이 어떤 것인지 말해주려 했어.
"내가 가진 능력은 별거 없어. 그냥 몸을 조금 혹사시켜서 무리하게 움직이는 건데, 여기 떨어지고 나서는 이상하게 피가 나오고 그러네. 사실, 너랑 갔었던 포목점에서도 족쇄를 풀다 컨디션이 나빠진 거였거든."
윈터는 앞으로도 계속, 같이 다니고 싶다는 라크의 말에 조금 놀란 기색으로 귀를 까닥거렸어.
"절대 떠나지 않는다고...? 정말?" ...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나도... 목이 떨어지지 않으면 계속 살아갈 수 있어서 잘 알아. 인간 놈들이 내 몸을 어떻게 개조했는진 몰라도, 그렇게 되어버렸거든."
윈터는 라크의 외투를 제 어깨에 두르면서 자리에서 느리게 일어났어.
"조금 걸을래? 도시가 그렇게 넓은 것도 아니고, 너도 봤겠지만, 중앙으로 가는 길은 통제되고 있으니까. 지나가다 보면 아는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겠지."
대수롭잖다는 듯이 말하면서 라크의 손목을 덥석 잡아 상점가 쪽으로 향하려는 윈터였어.
윈터는 꼭 나들이를 가는 기분이었을까. 라크를 끌고 가는 발걸음이 가벼워 보여. 그렇게 상점가를 돌아다니고 있으면, 아는 얼굴이 보여와. 라크의 손을 꼭 쥐고 쪼르르 달려가 좌판 앞에 앉아있는 소녀에게 아는 체를 해보아.
"미하엘. 왜 이렇게 죽상이야?" ... "아. 얘는 미하엘이라고, 덕분에 새 옷을 구했어. 나랑 같은 수인인데, 아직 덜 자라서 그런지 좀 모자라 보이긴 하지만 나쁜 애는 아니야."
어쩐지 조금 들떠 보이는 윈터는 라크에게 제가 아는 미하엘을 간단히 소개했어. 미하엘과 헤어질 땐 무척이나 담담했지만, 이렇게 다시 만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심부름?"
윈터는 대뜸 그렇게 제안하는 미하엘을 내려보면서 왼쪽 귀를 까닥거려. 아까 낮에 여관 주인장의 부탁을 들어주었던 것처럼 물건을 배달하는 것쯤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미하엘이 건네는 약도를 받아 들고서 그녀가 가리키는 상자에 가까이 다가가. 무슨 관짝도 아니고, 사람이 하나는 들어있을 것 같은 나무 상자는 꽤 무거워 보이는데. 호기심에 여기 든 것이 뭐냐고 물어도 미하엘은 대답해 주지 않아. 상자를 슬쩍 들어보려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 무겁네. 윈터는 뒤에 서있는 라크를 돌아보면서 한쪽 눈을 살짝 감았다 떴어. 같이 해줄 거지?
"하... 안에 뭐가 들었길래 이렇게 무거운 거야."
약도가 있어서 길을 헤매진 않았지만, 왠지 자꾸만 엄한 곳으로 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 해는 뉘엿뉘엿 기울어가고, 잠깐만 쉬어가자면서 흙바닥에 상자를 내려놓는 순간 윈터의 쓸데없는 호기심이 발동해버리고 말아. 상자에는 흔한 걸쇠조차 걸려있지 않고, 마치 궁금하면 열어보라는 듯이 반듯한 덮개만 꼭 밀착해있어. 대체 안에 뭐가 들었길래 미하엘은 말해주지도 않고. 그래도... 열어보지 말라는 말은 없었으니까. 아무런 생각 없이 상자를 휙 열어보려고 하는 윈터였어.
>>51 윈터 (2회) 윈터는 흙구멍에 몸을 밀어 넣습니다. 하지만 흙구멍의 크기는 윈터가 들어가기엔 매우 작고 좁습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사방에 뚫린 갈림길은 토끼 소녀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게 해주지만요.
토끼 소녀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습니다. 수분 머금어 짙은 흙냄새만이 윈터의 코를 자극할 뿐이네요. 아쉽게도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가야겠습니다.
>>52 유이 (2회) 유이는 아이들과 빛무리의 뒤를 쫓습니다. 아이들은 상업 구역을 누비고 거주 구역을 지나 휴양 구역으로 들어섭니다. 후텁지근한 여름 날씨임에도 아이들은 지치지 않은 채 떠들며 즐거워합니다. 그때마다 빛무리가 호응하듯 아이들 주변을 맴돕니다. 아이들은 저것이 보일까요? 아니면 보이지 않을까요?
빛무리 중에서 일부가 떨어져 나와 유이의 근처에서 헤매는 것이 보입니다. 가까이 다가가 확인하면, 유이는 이 빛무리는 요정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건 그냥, 생명체라기보단 빛덩어리 같아요. 어쩌면 이건 아이들 웃음에서 태어난 행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이가 행복을 잡습니다.
행복. 아이들의 웃음에서 태어난 빛덩어리. 지니고 있으면 조금 행복해진다. 이 행복은 길지 않고 짧다.
>>54 후지마 메구무 (1회) 이 도시에서 ‘나이가 든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겁니다. 겉모습과 속이 다른 이종족들이 많기 때문이죠. 후지마 메구무는 개중 늙어보이는 사람들을 찾아 다니기로 합니다.
얼마나 도시를 돌아 다녔을까요. 만나는 사람마다 요정에 관하여 물으면 이 세계에 요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대답을 들을 뿐입니다. 이쯤 되면 잘못 본 게 아닐까 싶은 그때 누군가가 후지마 메구무의 옷깃을 잡아당깁니다. 돌아보면 한 남자 아이가 뒷짐을 진 채 자신의 턱을 쓰다듬고 있습니다.
남자 아이는 요정에 관해 알고 싶으면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15년 정도 살았을까 하는 아이입니다. 요정을 안다고 해도 왠지 제대로 된 정보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할까요? 따라갈까요? 아니면 다른 것을 찾으러 갈까요?
▶아이를 따라간다면 해당 내용을 미션에 기입 바람.
>>55 윈터 윈터. 이건 신뢰의 문제입니다. 부탁을 받은 윈터와 부탁을 한 미하엘 간의 신뢰도 신뢰지만, 이 물건을 받을 사람과 배달하는 사람 간의 신뢰 말이죠. 물건을 받는 사람은 감사하고 보답하며 배달하는 사람은 내용물을 궁금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암묵의 신뢰.
그러나 지금 그 신뢰가 깨졌습니다. 호기심에 의해 윈터가 상자를 엽니다. 걸쇠 하나 없던 상자의 뚜껑이 열리는 순간 수도 없이 많은 조각들이 펑! 폭죽처럼 터져 온 도시로 날아갑니다. 조각들은 꼭 별의 조각처럼 반짝반짝 빛나지만, 실제로 어떤 것의 조각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윈터가 상자 안을 바라보면 남은 조각은 없지만, 이 안에서 도구르르 굴러다니는 무언가를 주울 수 있습니다. 비타 +1.
어디선가 분홍색 불꽃이 날아와 윈터의 주변을 맴돕니다. 불꽃은 화가 난 것처럼 몸통을 크게 부풀리다가 일명 빠직 마크로 모습을 바꾸어 댑니다. 흡사 낙인이라도 되듯 불꽃은 어떤 것으로도 꺼지지 않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윈터는 한동안 이 불꽃으로 인해 도시의 사람들에게서 불신을 받습니다.
뭐가 있을지 몰라 조심히 들어온 도시는 생각했던 것처럼 위험한 곳은 아닌 모양이었다. 여기 또한 사람 사는 곳이어서 그런지 기이한 괴물이라던가 사람 잡아먹는 괴물 같은건 없는 것 같았다.
'사실 괴물보다는 사람이 더 무서운거지만 말이야.'
별다른 허가 같은 것도 없이 사람을 막 들여보내는걸 보니 평화로운 곳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이젠 어떻게 한다... 사람 사는 곳도 찾았으니 슬슬 정보가 필요한데... 그 때 내 머리 위로 무언가가 반짝이는 것이 날아가는 것을 목격했다. 세상에 여기서는 사람들을 위해 저런 공연 같은 것도 해주는건가? 인프라가 장난 아닌가보네. 이상할 만큼 반짝이는 빛은 내게 생전 처음 느끼는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아니다, 이 느낌은 그때와 비슷했다. 맨 처음 내가 삥을 뜯기던 그 어린 날, 세상의 구조를 깨우쳤던 그때와 같은 느낌이다. 대체 저것의 정체는 뭘까? 그저 반짝거리는 무언가에 불과한데 말이야.
하지만 그냥 무시하자니 내 촉이 말해주고 있었다. 저게 혹시 비싼거라면? 이 맨몸으로 던져진 곳에서 나름 나를 위로 올려보내줄 물건이 되어주지 않을까? 빛을 따라 무언가에 홀린 듯이 걸어가던 나는 웅성이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벽에 붙은 종이를 보면서 떠들고 있었다.
"... 물건을 찾아..?"
다행히 종이에 적힌 글은 외국어는 아닌 것 같았다. 어디보자... 머리없는 상점주인? 자신이 바보라는걸 저렇게 말하는건가? 흠... 잠깐만, 혹시 이거 방금 내 머리 위에서 날아갔던 그 조각 아니야?
화들짝 놀라서 아까 봤던 빛이 사라졌던 곳으로 나는 발걸음을 빠르게 옮기기 시작했다.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사례를 하겠다고만 써있지 정확히 뭘 준다고는 안했으니 공고문을 내건 사람이 해줄 수 있는건 전부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 같은데 이런 경우 이 세상에 대한 정보라던가 내가 궁금한 무언가를 묻거나 혹은 앞으로 지내는 것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8 칼 칼은 상점 주인에게 찾아낸 3개의 조각을 건넵니다. 알고 보니 머리 없는 상점 주인이라는 건 이 사람의 특징이었던 모양입니다. 정말로 머리가 없는 사람이 나와 조각을 받아갔거든요. 주인은 고맙다며 칼에게 폭죽 1개와 상업 구역 1회 이용권 2장을 주었습니다. (3/20)
폭죽. 때때로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서 이것만큼 뛰어난 물건은 없다. 사용시 자신의 위치를 원하는 사람에게 알릴 수 있다. 대상을 지정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위치가 만천하에 알려진다.
>>59 유이 유이는 그 뒤로 1개의 조각을 더 찾아내 총 2개의 조각을 상점 주인에게 건넵니다. 머리가 없는 상점 주인은 고맙다며 유이에게 폭죽 1개와 상업 구역 1회 이용권 2장을 주었습니다. (5/20)
유난히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불편한 자세를 이리저리 바꿀 때마다 상자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알 수 없이 술렁이기만 하는 마음, 물이라도 마시고 올까 싶어서 계속 감고 있었던 눈을 뜨면,
별똥별이 내리고 있었다.
밖으로 난 작은 창에 뺨을 붙이다시피 하고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기만 했다. 뺨에 스며드는 냉기도 잊고 한참, 그저 한참을ㅡ 견딜 수 없을 만큼 마음 속 술렁거림이 심해졌을 때, 잠옷 위에 로브만 한 장 걸치고 뛰쳐나오다시피 가게를 나섰다. 빛이 꼬리를 그리며 떨어진 쪽으로 한참 내달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이상하게 신경 쓸 필요 없단 생각만 가득했다.
발걸음은 홀린 것처럼 불쪽 구역으로 이끌렸다. 제법 찬 바람이 로브를 뚫고 살을 엤지만 개의치 않고 유령처럼 길거리를 헤맸다. 떨어진 별똥별을 찾고 싶었다. 코 끝이 아릴 정도로 시려졌을 때, 어느 골목 구석에서 고요히 빛나고 있는 그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호박색으로 오묘하게 빛나고 있는, 이리 와, 이리 와, 자신을 부르는 것처럼,
집어들었다. 따듯한 색이었으나 온기는 없었다. 두 손으로 소중히 받쳐들고 뿜어내는 빛을 한참 바라보았다. 스스로가 울고 있음은 어느 순간 뒤늦게 깨달았다. 무어라 표현할 수 없으나 잃어버린 기억 속에 사무치는 무언가임은 확신할 수 있었다. 잠깐 토해내듯이 울었다. 불규칙하게 허공에 흩어지는 입김만 남았다.
다음 날, 조금 부은 눈으로 가게를 방문했다. 지금의 자신이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것임을 알아버려서.
이 동네는 뭔 노인네가 통 보이질 않네. 그야 당연하다. 많은 이종족들이 모여사는 도시인지라 겉모습만으로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으니까. 괜히 심통이 난 메구무는 벽에 기대 앉아 근처의 돌멩이 하나를 휙 던졌다. 던져진 돌멩이는 반대편 벽에 부딪혔다.
그래도 더 찾아봐야겠제... 메구무는 다시 일어나 나이가 있어보이는 사람들을 찾아다녔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하는 말이라곤 '이 곳에 요정은 없다'라는 말뿐. 그럴때마다 "그렇습니꺼... 알겠심더." 라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옮겼던 메구무는 결국 성질이 폭발했는지 언성을 높여 소리쳤다.
"아니, 온갖 희한한 것들은 다 사는 동네에 요정 하나가 없다꼬? 이거 걍 우리가 잘못 본거 아이가?!" 「야, 야... 소리 좀 낮춰라. 그러다 니 맞아죽을라 겁난다...」 "이런 씨, 여기로 널쩌찌고 나서 되는 일이 하나도 없... 뭐고?!"
누군가 옷깃을 잡아당기자, 한창 성질을 부리고 있던 메구무는 고개를 휙 돌리며 소리쳤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마치 늙은 현자처럼 행동하는 어린 남자아이였다. 뭐고, 얼라아이가? 어린아이에겐 차마 화를 낼 수 없어 손짓으로 쫒아내려던 메구무였지만, 요정에 대해 알고 있다는 말에 아이리와 긴급회의에 나섰다.
"우짤까." 「얼라같지만 얼라가 아일지도 모른다. 따라가보자.」 "꼴랑 열몇살 돼보이는데 괘안겠나?" 「니 잊었나? 저 아도 겉만 얼라지 속은 막 1500살 이럴 수도 있다.」 "하기야 하는 짓은 노인네같긴 했디...」
그저 길을 걷다 하늘을 올려다봤을 뿐인데, 반짝거리는 조각들이 날아가는 것을 본 메구무는 그 자리에서 돌이 된 듯 가만히 서서 그것을 감상했다. "이삐다." 원래 세계에선 여러 사정으로 쉴틈 없이 바쁘게 살아왔던지라 메말랐던 메구무의 감성이 마치 마른 논에 물을 대듯 채워졌다. 물론 금방 발걸음을 옮기긴 했다만...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도시 곳곳엔 공고문이 붙여졌다. 물건을 찾아다주는 이에겐 보상을 해주겠다는 공고였다. 그가 찾던 물건은... 아까 전 날아가던 조각들이었다. 그보다 머리 없는 상점 주인이라니, 살벌하구만... 그러나 지나치자니 소지품이라곤 약 가방과 검 3자루밖에 없던 메구무였으니 일단 찾아보기로 했다.
"보상은 준다니 찾아는 보겠다만..." 「기왕이면 돈이면 좋겠디.」 "맞다."
메구무는 아이리의 말에 맞장구 치면서, 조각을 찾기 위해 흩어진 빛들을 쫒아 골목으로 들어갔다.
>>62-63 니아 상점 주인은 니아에게서 3개의 조각을 건네받습니다. 이후 가서 뭐라도 사먹으라며 폭죽 1개와 상업 구역 1회 이용권 2장을 주었습니다. (8/20)
>>64 후지마 메구무 (2회) 남자 아이는 후지마 메구무를 으슥한 뒷골목으로 이끕니다. 길을 꼬고 꼬아서 만든 복잡한 뒷골목입니다. 능숙하게 사이사이를 지나는 남자 아이를 따라가던 후지마 메구무가 사실 저 아이가 강도인 건 아닌가 싶을 생각이 들 무렵, 남자 아이는 걷던 걸음을 멈춥니다. 맞은 편은 막다른 길입니다.
남자 아이가 후지마 메구무를 돌아봅니다. 요정은······, 하고 운을 떼는 순간, 누군가가 후지마 메구무를 가격했습니다. 몸에 힘이 빠집니다. 차디찬 바닥에 엎어지면, 남자 아이가 헤죽 웃으며 말합니다. 요정은 사악하지. 그러니까 네가 우리한테 당하는 거고.
후지마 메구무의 정신이 희미해집니다. 이윽고 다시 깨어났을 때에는 남자 아이는 사라지고 없고, 후지마 메구무가 가지고 다니던 물품의 대부분은 도둑 맞은 상태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무기들은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일까요. 후지마 메구무, 사람을 믿었다가 된통 당했네요. 그만 돌아가도록 합시다.
>>65 후지마 메구무 후지마 메구무가 골목에서 찾아낸 5개의 조각을 상점 주인에게 건넵니다. 상점 주인은 고맙다고 인사하며 은신의 열쇠 1개와 상업 구역 1회 이용권 2장을 주었습니다. (13/20)
은신의 열쇠. 허공에 열쇠를 꽂고 돌리면 사용자와 그 외 1인이 숨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열린다.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그 어떤 것도 안에 들은 사람을 발견할 수 없다. 최대 지속 시간은 20분이며, 지속 시간이 끝나거나 시간 안에 밖으로 나오면 공간은 사라진다.
무료한 눈빛 한 채, 여관 근처 지나는 가지각색의 행인들 지켜보던 소녀. 눈 앞으로 빛의 궤적이 날아가는 것을 보다. 그리고 그날 오후. 이곳저곳을 쏘다니던 소녀가 어떤 공고문을 발견하다.
"조각?"
아까 보았던 빛무리를 말하는 걸까? 소녀는 고개 갸웃이면서도 두 눈을 반짝였다. 어쨌든 서브 퀘스트 발생이다! 그 길로 소녀는 다시금 도시 방황을 시작했다. 멀지 않은 곳에 조각 하나가 있었다. 맑고 깨끗한 백색으로 빛나는 그 조각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엄청 그립고, 따스하며, 정겨운... 그런 감정이 들었다. 몹시 안락하여 실없는 웃음마저 나올 것 같은.
"아, 참!"
이럴 때가 아니지. 소녀는 발견한 조각 지닌 채 서둘러 달려간다. 혹여나 조각이 흩어지기라도 할까 조심스레 쥐고서. 분명, 동쪽에서 북쪽으로 가는 길목의 상점이랬지.
"조각 찾아왔어!"
소녀가 허둥대며 상점 안으로 들어선다. 그러다 주인이 등장한다면, 머리 없는 그의 모습에 "힉." 헛숨 들이키기도 했을 것이며.
베는것엔 취미 없었다. 여행이 즐거웠다. 고기 한 점, 술 한 모금, 꽃 내음,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비록 두 눈으로 담을 수는 없더라도 더 많은 소리를 듣고 싶었다. 발 구르는 소리와 폭포 소리를 선율 삼아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모닥불 위로 따스함 번지는 수프에 사람이 모이듯, 나무꾼도 역전의 용병도 음유시인도 상관없이 노래하고 춤추고 싶었다.
허나 구름이 머물면 비가 내리는 법이었다.
"전부 당신을 위한 일이었어."
"내가 줄 수 있는 모든걸 준건데, 어째서. 당신을 위한 왕위, 왕관, 왕좌, 이 나라를 바쳤는데도."
내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적어도 이런 추락이 아니리라.
쐐애액, 하고 활시위가 바람을 찢는듯한 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분명히, 나는 떨어지고 있다. 꿈인가? 그렇지 않다면 드디어 신께서 나를 벌하시는 것인가? 얼마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있는거지? 1초동안 떨어진다고 했을때, 얼마만큼 떨어진다더라... 아아, 모르겠다. 그저 죽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쿵.
살아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는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분명히 추락한 시간이 길어, 산산조각 났어도 이상하지 않을 높이일터. 허나 어째서인지, 땅에 닿기 직전에 멈춘 느낌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거기에, 맡아본 적 없는 풀내음. 들어본 적 없는 새와 벌레의 울음소리. 세계 곳곳을 여행해봤기에 느껴지는 직감. 심상치 않도다. 저 멀리서 다양한 소리가 울린다. 도시일까.
"하하, 곤란하게 되었네요..."
허나 낯설지 않다. 또 다시 여행할 수 있다면... 적어도, 어딘가에 머무르는 것 보다는 낫겠지. 천천히 발걸음을 떼어본다.
이상했다. 쨍하게 해가 비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분명 밤일 터인데, 이따금씩 일렁이는 이 불빛들은 무엇일까. 허리를 숙여 발 아래의 불빛으로 손을 뻗는다. 그것을 꺾어 숨을 들이키자, 미묘한 풀 향이 코 끝을 간질였다.
"빛나는 꽃이라, 이것 역시도 없던 것이구나."
알 지 못하는 장소로 떨어졌을까. 그래, 어쩌면 다른 세계로 떨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느릿하게 마을, 어쩌면 도시 쪽으로 걷고 있었으나 확실하지는 않았고. 거기에... 분명 밤일텐데, 수상한 자가 나타나면 되려 의심을 살 지도 모르는 일이니. 하룻밤 이곳에서 자고 물어물어 도시쪽으로 향하는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우선은 근처에서 적당히 잠을 잘까, 어떻게 할까... 고민하면서도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고.
그때, 발소리와 함께 말소리가 들려왔다. 두근거리는 심음이 귓가에 맴돈다. 탁한 눈으로 말소리가 들리는 쪽을 쳐다보았으나, 정확히 쳐다보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이었으니. 중요한건, 어째서인지 그녀도 나와 비슷한 사정이라는걸 알겠다는 일이었다.
자기소개를 하며 나는 그녀와 인사를 나누었다. 약간의 경계심을 포함해서. 어째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은, 이쪽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말투인걸까. 조금은 경계하면서도 그렇지 않다는 듯, 되려 손을 뻗었다. 우호의 표시였다.
어떤 사람일까. 무엇때문에 나를 알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어째서 저 사람이 나와 비슷하다는걸 알고 있는가. 모르는 일들 투성이었다. 아아, 조금은 귀찮아져오는 탓에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머리칼을 뒤로 쓸어넘긴다. 그저 방랑하고 싶을 뿐인 구름에게, 이런 일들은 조금은 버거웠다.
그리고 제법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추락자, 그리고 바뀌는 세계들... 어째서 나는, 이런 일에 휘말린걸까. 우리는.
다행인 것은 그녀가 적대적이지 않다는 것이리라. 그녀의 인도를 받아 도시에 입성했고. 헌데, 관문을 넘는 순간의 일말의 저항감이 느껴졌다. 순식간에 사라진 그것은 대체 뭐였을까. 지긋이 눈을 감고 옅게 인상을 찌푸렸으나- 흘러가는 구름이 비를 품듯, 곧 속으로 삼켜낸다.
새벽은 숙사의 시간이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잠을 청하지 않는 자들이 할 일이란 대개가 정해져 있었다. 꼭 같은 불면의 상대와 이런저런 이야깃거리를 나누는 것도 썩 괜찮은 한때다. 그러나 어느 때는 홀로서 말없는 정취를 느끼는 날도 있기 마련. 새아침 열리기 전의 거뭇한 날. 여관 앞마당에 앉아 올려다보던 하늘 속에 새하얀 무언가가 스쳐갔다. 한 줄기 빛살 같기도, 떼 지은 별빛 뭉치 같기도, 달 곁에 진 빛무리같기도 한 희끗한 물체.
일순간은 유성인 줄로만 알았다. 문득 그는 언젠가 보았던 별을 떠올렸다. 저문 하늘을 불태울 것처럼 밝히며 터져 나갔던 그것. 발걸음은 홀린 듯 빛나는 무언가를 좇아 갔다. 땅을 뒤흔들며 떨어진 운석에 비하자면 티끌과도 같이 살포시 내려앉은 무언가는, 진짜 별은 아닌 듯했다. 가까이에서 본 빛은 땅 위에 저물고서도 여전히 찬란했고, 그리고……. 한없이 아득한 무언가로부터 짓눌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으로도 해소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정신의 탈력에 시달린다. 모든 것이 그저 막연하고 무용하게만 느껴진다. 이제 와 다시금 느끼게 될 줄은 몰랐던─ 지독한 무상감이다.
─눈을 내리감고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눈길을 돌렸다. 연원을 알지도 못한 채로도 그리해야 할 것만 같았다. 발치를 붙잡고 차오르던 이질적인 감정은 촉발되었을 때와 같이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아무리 봐도 심상한 물건은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이게 뭔지 알까? 달갑지 않은 감정을 몸소 느끼기까지 했건만, 그는 조심성도 없이 조각들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참 태평하달지. 정체도 규명되지 않은 수상쩍은 물건을 챙겨두는 행동엔 주저함이 없었다.
날이 밝았다. 다음날이 되자 거리에 못 보던 공고가 붙어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그는 얼굴이 활짝 피었다. 그건 주인이 있는 물건이었구나! 무언가 알 수 없는 구석이 있는 물건이긴 해도 되돌려줄 수 있다면 되었다. 그는 곧바로 어제 주웠던 조각들을 챙겨 상점으로 향했다. 일전에 인상적이라 느꼈던 주인장의 얼굴은 여전히 건재해 보였다. 관용적 표현에서 말이다.
한 번 만난 경험이 있다고 꽤 반가웠던 모양이다. 그는 가게 주인에게 손을 흔들며─이것도 얼마 전에 다시 배웠다!─ 인사했다.
이상하다. 땅은 멀었고, 태양은 가까웠다. 아니, 정확히는 하나는 멀어지고 하나는 가까워지고 있었다. 자신이 추락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건 조금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도 그럴게 자신은 태양을 향해 자라면서도 역설적으로 하늘을 상상할수 없는 이들, 식물이 아닌가. 땅에서 싹을 틔워 땅에 뿌리를 내려 살아가니 지면에서 벗어날 일은 웬만해선 일어나기 힘들었다. 기껏해야 바람을 타는 몇몇 씨앗정도일까. 하지만 자신은 씨앗이 아니었다. 게다가 바람을 타는 종류의 씨앗을 맺지도 않고. 식물은 그저 가까워지는 땅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전부 가까워지면 어떻게 되는거지.
문득 든 의문이 완결되기도 전에 땅이 훅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식물은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더이상 가까워지지 않네?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도. 식물은 직후 마저 추락하여 널부러졌다.
"아야."
무미건조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땅과 충돌했음에도 잎사귀가 찢기거나 줄기가 꺾이지 않았으니 순 반사적인 것이었다. 많은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한가지는 확실했다. 햇살은 연약하고 땅은 비옥하다는것. 잎에 와닿는 흙의 질감이 포근했다. 그는 생각했다. 이런 땅이라면 사냥 없이 뿌리만 내리고 있어도 충분히 살수 있겠다고. 그러고보면 주변엔 '사냥하지 않는' 식물들이 아주 빽빽했다.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영양 경쟁이 심해져 그들이 서로의 근처에 자리잡지 않게 된지가 얼마나 지났더던가. 확실히 이곳은 제 자생지가 아니었다.
그는 이곳에 뿌리를 내리지 않았다. 많은 것이 괜찮았지만 햇살이 연약했다. 자생지의 햇살은 따뜻하다기보단 뜨거웠고, 종종 잎을 태워 화상을 입혔다. 하지만 자신은 자생지의 환경에 맞춰 진화해오지 않았던가. 필요한 것은 그 강렬한 햇살이었다. 그러니 이 연약하기 그지없는-다른 종들에게는 따스하고 온화할-햇살 아래 정착할수는 없었다. 심지어 여기는 온통 사냥하지 않는 친구들의 잎으로 그늘져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는 몸을 일으켰다. 도시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도시가 뭐지? 아무렴 어떤가. 분명 금방 알게될텐데. 기묘한 확신이었다.
도시는 그리 멀지 않았다. 그곳은 소란스러웠고 네모난 바위와 커다란 두발 짐승들이 많았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기억이 났다. 자신 뿌리내렸던 폐허. 한때 인간들의 서식지였던 그곳을 그들 스스로 도시라고 불렀다지? 그렇다면 저 두발 짐승들이 바로 어느날 사라졌다던 인간일 것이다.
그는 도시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미묘한 저항감이 느껴졌으나 식물이 그것을 이해할수 있을 턱이 없었다. 그는 그보다 다른 것에 집중했다. 인간도 사냥할수 있을까?
재잘재잘 귓가를 맴돌다 떠난 작은 무언가. 약한 바람결에도 훅 흩어지는 그것들을 붙잡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떠나가는 모습 덩그러니 지켜보기만 했다. 즐거운 웃음소리가 낭랑하게 울리다 멀어진다. 뒤늦게 고개가 슬며시 기울었다. 이상하게도 분명 들리지 않는 말이 있었지. 예전에 미하엘이 이리 말한 적 있다. 추락자는 언어의 불편을 느끼지 않으나 ‘특정한 것’에 한해서는 판별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직접 들어보니 어떤 느낌인지 잘 알겠다.
그가 아무리 물정에 어둡다 한들 그들이 던지고 떠난 말의 의미를 모를 정도로 아둔하지는 않았다. 얼핏 듣기에도 심상치 않는 말 투성이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곧장 알아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 그는 그 길로 주변 사람들에게 방금 보았던 것을 수소문해 보았다. 그러나 유의미한 해답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모두 그것들을 보지 못했는지 헛것을 본 게 아니냐는 대답까지 들었지 뭔가. 하지만‘변하지 않는’ 그다. 그토록 뚜렷하게 보았던 것이 단순한 환영에 불과할 리는 없다. 그는 방법을 바꾸어야겠다 생각했다. 그것들이 말하기로, ‘그날을 잊고 덮었다’고 했었지. 과거에 이곳에서 어떤 사건이 있었던 걸까?
또 한동안의 발품을 팔며 주민들을 귀찮게 한 결과, 그는 마침내 수고 만큼의 결실을 얻어내었다. 알고 싶은 게 있다면 도서관에 가서 찾아 보라는 친절한 축객령을 들은 것이다. 그렇구나! 새로운 상식을 얻은 그는 곧장 도서관으로 향했다. 이용수칙에 관해 간략한 설명을 들은 후, 찾고자 하는 분류의 책장을 찾아갔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면…… 이곳이다. 상처투성이 손가락이 책장의 어느 칸을 향하였다. 이 세상의 전설과 역사에 관해 다룬 책을 위주로 여러 권을 꺼내어 펼쳐 보았다.
>>73 영 (1회) 도서관에서 정보를 찾는 건 나쁜 선택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책의 글자를 제대로 읽을 수 있었다면요. 한 권뿐이 아닙니다. 영이 꺼낸 책들의 글자가 전부 ■로 표시되어 읽히지가 않습니다.
이건 꼭, 일부러 내용을 확인하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무언가의 힘이 작용한 느낌입니다. 이런 상태라면 역사는커녕 사소한 정보도 찾지 못할 것 같습니다. 영이 다시 책을 원래 자리로 꽂으려는 순간, 손이 미끄러져 책을 놓칩니다. 가운데가 쩍 벌어져 놓인 책을 도로 주우려 하면, 영은 수많은 ■의 사이에서 읽을 수 있는 글자 한 개를 발견합니다.
그건 정말 기묘한 현상입니다. 읽을 수 없는 글자들 틈에 섞인 ‘읽히는 한 글자’는 새카만 어둠 속에서 발견한 한 점의 흰색과도 같았으니까요.
[너]
라는 단 한 글자가 영을 부르는 것만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또 다른 글자가 있는지 찾아볼까요? 아니면, 다른 행동을 할 수도 있겠죠.
여관 생활 이틀 차, 마시에게 얘기했던 것처럼 주방에서 요리를 돕고 있었다. 물론 내가 요리를 하는 것은 아니고 재료 손질을 미리 해두거나 식기들의 설거지를 하는 등의 흔한 주방 잡일이었다. 내가 요리를 하면 맛이 바뀔테니 단골 손님들이 분명 싫어하실 것이니 말이다. 그런 나에게 마시가 다가와 도시락을 가져다 주면 좋겠다는 말을 건넸다.
" 아, 이 정도는 문제 없죠. 다녀올께요. "
평소 북쪽의 경비원에게 도시락을 챙겨주는데 오늘은 손님이 많아서 부득이하게 가기가 힘들다는 모양이었다. 나는 흔쾌히 도시락을 받아들고 도시의 북쪽으로 향했다. 도시락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풍겨나왔는데 이런 도시락이면 하루 한끼만 먹는게 아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밥 먹을 시간인데 식욕을 자극하는 강렬한 냄새다.
" 직원들 점심도 이걸로 해달라고 해야겠다. "
냄새를 맡은 이상 맛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음식에 대한 실례다. 이 음식은 대체 무슨 맛이 나며 어떤 재료가 들어갔을지 상상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북쪽의 경비병들이 주둔하는 곳 근처까지 오게 되었다.
" 실례합니다. 마시씨의 심부름으로 왔는데요. "
이름은 들었는데 얼굴은 제대로 알지 못하므로 내 용건을 크게 외쳐서 그들이 듣게 해보았다. 용건이 있는 사람이 어련히 알아서 오시겠지. 그렇게 내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아서 누군가가 헐레벌떡 이곳으로 뛰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게 그렇게까지 달려올만한 음식인가 싶은데 냄새를 직접 맡아봐라. 저렇게 뛰어오는 것도 이해가 되니까.
" 어우 오늘은 마시씨가 아니고 다른 분이 오셨네. 정말 감사해요. 곧 밥 시간인데 도시락이 없어서 얼마나 초조했는지. "
듣자하니 마시씨의 도시락은 이 사람에게 하루의 활력소 같은 느낌 같았다. 오전의 힘든 일과를 도시락 먹을 생각을 하며 버텨내고 맛있는 밥을 먹고 난 뒤의 에너지로 오후를 버티는 식인듯 했다. 얼마나 맛있길래 그런 효능까지?
" 정말 감사드려요. 감사인사도 같이 전해주세요. " "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
나는 도시락을 건네어주고 다시금 여관으로 향했다.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얼마나 맛이 있을지 가늠도 되질 않는다. 안되겠다 정말 오늘 점심 식사는 저걸로 해달라고 부탁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걸음이 빨라지고 나는 갈때보다 빠르게 여관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여관의 뒷문으로 들어가 마시에게 도시락 배달을 완료했다는 보고를 한 나는 흥분한 표정으로 외쳤다.
펼친 책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곳의 글이나 책을 읽지 못해 그런 것은 아닐 테다. 분명 다른 곳에서 본 글자들은 이렇지 않았는데. 문득 그의 머리에 이런 생각이 짧게 스쳤다. 귓가를 날아다니던 무언가의 말은 일부만이 들리지 않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꼭…… 이 관련으로는 찾아보지 못하게 하려는 것 같지 않나? 의문이 한층 강해졌지만 지금으로선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듯싶다. 평범하게 다른 책이 궁금해서 읽더라도 지금으로선 똑같이 글자가 가려지려나? 태평한 잡생각을 하며 책을 제자리에 돌려 두려두려던 때. 그만 손이 미끄러져 책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앗, 시끄럽게 하면 안 된댔는데……! 노심초사하며 슬그머니 눈치를 보았지만 이 정도 실수는 용인해 주는 모양이다. 안도한 그가 다시 책을 주워든 순간.
수백, 수천, 수만의 글자 사이에서, 단 하나의 문자가 말했다.
너
추락자에게는 모든 세계의 말을 매끄럽게 옮기고, 혹은 감추기도 하는 정체불명의 기능이 작용하는 상황. 그중 이 한 글자만이 외따로 떨어져나온 것이 우연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책의 낱장을 넘겨 가며 다른 글자를 모두 살피고, 그곳에서도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면 다른 책을 꺼내어 드러난 글자를 찾으려 해 보았을 테다.
방랑하고 있으면 때로 많은 소문이 들려온다. 누군가가 중앙에 침입했다는 소문. 그리고 탈출했다는 소문. 무엇인가 세 글자 단어. 대체 어떤 것일까. 헌데 이상한 직감이 울린다. 무엇인가 귓가에 맴돌며 까르륵 까르륵 웃는 소리.
「알고 있어? 알고 있어?」 「들었어? 들었어?」 「■■■가 돌아왔어! 드디어 돌아왔어!」 푸른빛 몸체를 한 요정들의 색이 붉게 변화합니다. 「경배하라, 찬양하라! ■■■의 방문이다!」 「■■■의 세상이다! 그날을 잊은 자들에게!」 「그날을 덮은 이들에게!」 「모두에게!」 「고해의 시간을!」 「사죄의 시간을!」 「죽음의 공포를!」 「두려워 하라! 결단코 ■■■를 거스르지 않도록 하라!」
요정들은 흡사 저주라도 하듯이 경쾌하게 소리치고는 포르르 날아가 눈 깜빡하는 사이 사라지고 말았다.
'하아.'
짧게 한숨을 내뱉는다. 누군가 역시도 세 글자였던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 제대로 듣지 못한 그것 역시도 세 글자이리라. 드디어 돌아왔다라. 미하엘 양이 그리 말했다. 우리는 세계를 떠돈다고.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하는 비밀이 많다. 그렇기에, 나는 감히 의심해본다.
듣지 못한 말은 추락자가 아닐까. 우리와 연관되어있는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나는 중앙으로 향해 조사할 계획이리라.
! 우선은 중앙이 어떤 곳인지 직접 향해 알아보자. 무엇이 되었든, 정보가 우선이다. 침입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알아낸다면 더 좋을테고.
>>77 라클레시아 테시어 라클레시아 테시어의 외침에 마시는 기분 좋은 듯이 웃으며 샌드위치가 담긴 그릇을 내옵니다. 마시의 애정이 담긴 샌드위치 +1.
>>78 영 (2회) 영은 차분하게 책장을 넘깁니다. 한 권, 두 권, 세 권······, 그 권수가 몇 권인지조차 세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을 때, 도서관의 사서가 영의 어깨를 치며 이만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 탓에 모든 글자를 발견해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은 그 많은 책 속에서 찾아낸 글자들이 문장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기이하게도 글자는 글자를 잇고 문장을 만들어 냅니다. 따로 조합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문장은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영은 세 문장을 읽습니다.
[너희는 여왕을 알현하여 영광하라]
[미력한 자들아 사랑하고 경배하고 찬양하라]
[잔존한 여왕이 너희]
이 문장들은 필히 영, 아니 어쩌면 영과 같은 추락자들에게 주어진 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왕이라니요? 알현이라니요? 여왕이 어디에 있고, 알현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요? 마지막 문장은 찾은 글자가 부족해 완성되지도 못했습니다. 이것이 요정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의문만 남은 채 영은 도서관을 떠납니다.
>>79 아델라이데 (1회) 중앙으로 향하는 길은 총 네 군데가 있습니다. 동서남북으로 나뉘어져 있지요. 대부분의 거주민들은 중앙으로 향하는 길로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기에, 근처를 맴도는 아델라이데의 모습은 눈에 띌 수밖에 없겠습니다.
중앙으로 향하는 길은 두 명의 경비대원이 지키고 있으며, 아마 안쪽에도 몇 명인가 순찰을 도는 경비들이 있을 겁니다. 심음, 발자국 소리, 숨소리와 약간의 대화 소리 등으로 그들이 다가오는지 멀어지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혼자서 저 안을 뚫고 들어가자니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요. 저들을 쓰러뜨린다면 모르겠지만요. 아니면 미끼가 될 사람이 있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할까요? 지금 중앙을 뚫고 향하는 건 시기상조일지도 모릅니다. 기회가 오기까지 기다리는 것도 방법일 수도 있잖아요?
>>84 아델라이데 (2회) 아델라이데가 가까이 다가오자 경비원들이 들고 있는 무기로 앞을 가로막습니다. 이내 아델라이데의 말에 경비원들은 저들끼리 킥킥 웃습니다.
“요정은 무슨 요정? 이보시게, 눈도 보이지 않는 자가 요정을 보았단 말이오?”
들어가서 잠이나 자라는 퉁명스러운 말이 이어집니다. 경비원들은 아델라이데가 멀어질 때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군요. 아델라이데는 소득 없이 돌아섭니다. 그런 아델라이데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툭 떨어집니다. 눈은 보이지 않지만, 이건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타 +1.
요새 마을은 꽤나 흉흉해져 있었다. 마치 자신이 살던 세계처럼. 흉흉하기도한 세상 속에서 언제나처럼 일상을 살아감과 동시에 일말의 경계심과 두려움이 엄습하는 것. 그런 점이 닮아 있었다.
그런데, 어떤 주민의 소리가 들렸다. 그순간에 들린 소리는 악의에 차고도 자신을 경계하다 못해 증오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주민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강연을 듣는 듯이, 몰려 있는 주민들의 웅성임은 유이에게 적지 않은 위협을 주었다.
하다 못한 유이는 이곳에 남아 있기 위하여 주민들을 제치고 중심에 섰다.
"여러분들, 들어보십시오."
마치 연설을 하는 듯한 투였다. 아무래도 급하다 보니, 어쩔 도리 없었다. 최대한 이목을 끌어야 했다.
"저는 추락자입니다. 하지만 불행을 일으키거나 하는 능력은 없죠. 되레 신성한 빛을 만들어 내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이내 유이가 자신의 손에서 빛나는 빛덩이를 만들어 내었다가 다시 껐다. 손에 화상을 입은 것처럼 홧홧한 느낌이 들었지만 최대한 아랑곳 않은 체하기 위해서 참았다.
"다른 추락자들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능력이 없거나 제각각의 능력이 있거나 하겠지요. 이것은 추락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다른 분들은 모르겠다만, 저는 확신합니다. 추락자가 아닌, 혹은 주민이 아닐 수도 있는 어떠한 외부의 존재에 의한 것은 아닐까요? 당신들도 모르는 어떠한 존재 말이에요. 아주 조용히, 깊숙한 곳에서 살고 있는. 왜냐하면 저희는 악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지껏 잘 대해 주었는데 누군가 한 명이라도 악의를 가질 이유가 있겠습니까? 추측하건대, 들어본 바로는 저희는 이곳에 추락한 것이지, 알고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저 또한 그렇고요."
소녀는 문득 기시감을 느낀다. 고개를 처들어 하늘 바라보니 괴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치 금 간 유리처럼, 푸른 하늘에 균열 생기고 있던 것이다. 이윽고 균열은 점차 세를 넓혀가더니─ 하늘이 뒤틀리고 일그러지고 구겨지기 시작했다.
"...뭐야?"
소녀가 주변 둘러본다. 이상했다. 저 기현상은 뒷전인 것마냥 행인들은 태연히 제 갈 길 가고 있었다. 균열이 보이지 않는 걸까, 아니면 여기선 흔한 현상이라 관심조차 주지 않는 걸까? 현대 인간들이 천둥번개를 두려워하지 않듯이 말이다. "저기... 있잖아, 하늘에 저거 뭐야?" 호기심보다도 왠지 모를 걱정이 앞서서, 소녀는 제 곁 지나는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붙들린 자는 영문 모르겠다는 듯한 반응으로 일관할 뿐. 그 뒤 다른 이들에게 물어보아도 똑같았다.
소녀는 곧 타당한 추측을 내놓았다. 저 균열은 추락자들에게만 보이는 현상일 것이라고. 그렇다면 그 이유는? 어쩌면 무언가의 징조 혹은 경고가 아닐까. 도무지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다.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가 지나간다, 아니 지나갔어야 했다. 하지만 오늘 내가 느끼고 있는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아니 점점 바뀌었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첫날과 다르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할 수 있는 것은 점점 없어져갔다. 간단한 심부름으로 해결되던 일들도 이젠 모르쇠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당장 어제 친절했던 사람들이 오늘은 벌레 보듯이 하는 경우도 심심찮아 있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어느날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 내쫓아야 해요! " " 저들이 없다면 도시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거예요! "
어느날 우리는 그들에게 불청객이 되었다. 언젠간 이런 일이 일어날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일어난 탓에 그는 상황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아직까진 우리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우리가 나타난 시기와 비슷하게 도시에선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고 했다. 땅이 무너지고, 중앙엔 누군가 침입했고 뒷골목의 깡패들까지 죽었다. 공교롭다면 공교롭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내가 모르는 추락자가 그런 일을 벌였을수도 있다. 혹은 사실 저 사람들은 엄한 곳을 들쑤시고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을듯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은,
' 화풀이 대상. '
겪어보지 못한 혼란을 정상적으로 해결하기보단 좀 더 의탁하기 쉬운 상대에게 덮어 씌우는 것이다. 어렵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 도시에 나타난 낯선 사람들이 범인이다, 라고 몰아가면 좀 더 쉽게 믿을 수 있으니까. 대중이란 쉬운쪽으로 더 선동 당하곤한다. 그것은 비단 지성인이라고 피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 이거 큰일이네. "
대부분의 추락자들은 아마 여관에서 머물고 있을 것이다. 그야 이 도시에 여관은 하나니까. 그리고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곳의 주민들은 곧장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나는 빠르게 여관으로 향했다. 아마 눈치 빠른 이들은 이미 여관을 벗어나서 다른 곳으로 향했겠지만 내 생각으론 아직 한명이 남아있을것 같았기 때문이다.
" 알레프! "
역시나 여관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울먹이며 앉아있는 주홍색 머리의 소녀가 보였다. 나는 인파를 뚫고 재빠르게 다가가 그들을 막아서고선 알레프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그들이 뭐라고 소리치는 것이 들렸지만 나는 깔끔하게 무시했다. 여기서 어떤 말을 하더라도 저들은 듣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하는 말 중에 조금이라도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지금 이런 소요는 순식간에 커질수도 있으니 말이다. 나는 여관 안으로 들어가서 우리가 머물던 방에 무언가 두고선 빠르게 빠져나왔다.
" 가야해요. 이 사람들은 더 이상 우리를 좋아하지 않아요. "
손이라도 잡고 가야하나 싶었지만 저 인파를 다시 뚫고 지나가기엔 힘들어보였다. 결국 나는 알레프에게 등에 업히라고 말한 뒤에 그녀를 등에 업고선 그대로 인파를 빠져나갔다. 아직까진 우릴 쫓아와서 뭘 어쩔것 같지는 않았는데 역시나 그들은 우리가 도망가는 것을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일단 이대로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가서 몸을 숨기는 것이 먼저다.
" 알레프, 일단 밤까지 기다렸다가 몰래 여관으로 다시 들어가는거에요. 마시는 아직 우리를 믿어줄테니까. "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들어선 나는 업고 있던 알레프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선 입고 있던 외투를 걸쳐주었다. 머물던 방에 그 나무 그늘로 오라는 쪽지를 던져두었다. 윈터는 본다면 바로 알아챌테니까. 알레프를 두고 다른 사람들을 찾으러 갈수도 없었기에 나는 깊은 한숨을 쉬며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그림자가 길어지는 무렵, 소녀는 여느 때처럼 여관 앞 지나는 행인들 관찰에 몰두해있었다. 그래, 그저 그뿐이었다면 좋았겠지만. 몇몇 이들이 사람 구경하는 소녀더러 대놓고 손가락질하며 수군대곤 했다. 심지어 그런 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도 소녀는 그때까진 별다른 낌새 느끼지 않았다. 문제는, 어느덧 여관 앞에 여러 사람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는 거. 소녀는 뒤늦게 불안한 기류 감지하고서 그들을 흘겨본다. 그 자들이 머무른다는 곳이 여깁니까? 자기들끼리 몇 마디 나누던 그들은 곧 험악한 기세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과 소녀의 시선이 맞부딪힌다.
저 꼬맹이다, 도시에 혼란을 가져온 불한당이. 긴말할 거 뭐 있나요, 얼른 쫓아냅시다.
"저, 저기?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사람 잘못 본 거 아냐?"
소녀가 소극적으로나마 말 건네보지만 그들은 들은 척도 않았다. 그 뒤론 차마 입에도 담지 못할 모욕과, 위협이 이어졌다. 소녀는 두려웠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친절하게 대해주던 주민들이 돌변해버렸으니. 그럼에도 소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무릎 끌어안은 채 눈치 살피는 것밖엔. 이윽고 무리가 끝내 신체적 위해를 가하겠다는 협박마저 꺼냈을 즈음─ 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클레시아! 곧 인파 헤치고 나타난 그를 올려다보며 소녀는 울먹였다.
"으, 으으..."
그 뒤로는 어떻게 했는지 잘 기억나질 않았다. 워낙 갑작스런 상황에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던지라. 라클레시아에게 업힌 채 거리를 빠져나왔던 것 같기도 하다. 인적 드문 골목길, 그제야 숨 돌린 소녀는 그의 외투를 꼭 여민 채로 우물쭈물대었다.
"응..." "그, 저기, 나 때문에 돌아온 거지, 미안..."
그냥 놔두고 갔어도 됐는데. 도시 주민들도 저를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몰랐을 테고. 이곳저곳 방황하는 시선이 결국엔 하얀 엘프에게 가 닿는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도시. 나이만 많지, 순진하고 어리숙한 엘프와 함께 하나뿐인 여관 포르티시아에 들어선 윈터는 낮에 보았던 주인장 마시에게 늦은 시간에 돌아다녀 좋을 것 없다는 핀잔을 들으며 미리 배정받은 객실로 향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른 방에선 젖은 나무의 눅눅한 냄새가 났다. 침대는 각각 벽면에 붙어 양쪽에 두 개가 있었는데, 한쪽에선 이불을 끌어안은 주홍 머리의 어린 소녀가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아무래도 일인실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엘프가 미리 말해주진 않았지만, 어렴풋이 느껴지는 이물감에 소녀가 저와 같은 추락자임을 직감했다. 윈터는 소녀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용히, 방 한편에 비치된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내고서 빈자리에 몸을 뉘었다. 하얗고 폭신한 이불에선 약간 퀴퀴한 냄새가 나, 이곳이 도시 주민들에게 자주 이용되는 곳이 아님을 상기하게 했다. 윈터의 머리맡엔 나무로 된 미닫이창이 반쯤 열려있어서,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창밖의 밤하늘이 그대로 눈에 담긴다. 그런데, 하늘이 조금 이상했다. 번개가 칠 때처럼 흰빛으로 쫙 갈라지는 것도 아니고, 종잇장을 찢어내는 듯한 느낌도 있어. 이 현상은 윈터가 살던 세계에서 미지의 존재들이 보랏빛 소용돌이를 타고 넘어올 때의 것을 닮았다. 이내 그것은 빳빳한 종이가 구겨질 때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였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적어도 윈터에게는. 별일 아니겠지. 윈터는 불길한 감각을 애써 무시하며 눈을 감았다.
>>87 — Sub 4. 그렇기에 그들은
그리고 아침. 윈터는 창밖에서 재잘거리는 새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서너 시간밖에 쉬지 못해서 몸이 나른하고 피곤했다. 그러다 침대 아래로 굴러떨어져 이름 모를 소녀를 끌어안고 있었는데. 어째선지 여관 밖이 무척 소란스럽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듯한 소녀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무슨 일인지 확인하려 객실 밖으로 향하려는데, 잠들기 전에는 보지 못한 쪽지 한 장이 침대맡에 놓여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나무 아래에서 보자고. 나무라면, 그 엘프밖에 없지. 어제만 해도 이곳에 묵자고 하지 않았던가, 갑자기 왜 거기서 보자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윈터는 객실에서 나와 밖으로 향했다. 로비 카운터에는 주인장이 보이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일이 없다. 여관 밖으로 나서면, 도시의 주민들이 건물을 빙 둘러싸고 있다. 저들을 내쫓아야 한다느니, 도시가 불안정해졌다느니. 여관에서 나온 윈터도 세차게 쏟아지는 불신의 눈초리를 피할 길이 없었다. 그보다, 건물 옆쪽엔 어제 만났던 회색 머리 소년이 몇몇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에게 붙들려 있다. 저 소년도 여기서 묵고 있었구나. 어제 봤을 땐 머리가 짧았던 것 같은데.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흘리는 사이, 소년의 멱을 잡고 있던 사내가 무어라 소리치며 당장이라도 때릴 것처럼 주먹을 들어 올렸다. 순식간에 그들 사이로 달려나간 윈터는, 소년을 해하려던 사내의 손목을 붙들어 떼어내고서, 그를 강하게 밀치고 소년과 사내들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러는 중에도 소년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헤실헤실 세상 바보 같은 웃음을 짓고 있을 뿐이다. 능력의 부작용 탓인지 주륵 흘러내린 코피를 손등으로 슥 문대고서, 앞에 선 사내들과 이쪽을 매섭게 노려보는 주민들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대충 무슨 생각으로 그러고들 있는진 알겠는데, 우리가 대체 뭘 잘못했어? 우리도 여기 오고 싶어서 온 줄 알아? 괜히 애먼 사람 괴롭히지 말라고." ... "어제 있었던 일 때문이라면, 내가 사과할 테니까. 뭐라도 할 테니까..."
어제 있었던 일. 미하엘이 운반을 부탁했던 상자를 열어버려 붉은 조각들이 도시에 흩어지고 여기저기 공고문까지 붙었던 일. 그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윈터를 향해 주먹만 한 돌멩이가 날아들었다.
"저■이 원흉이야. 저걸 당장..."
윈터는 돌멩이가 날아오는 것을 눈으로 보았으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윈터의 이마에서 새붉은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꽤 큰 충격이었음에도 미동 하나 없던 윈터는 고개를 숙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알겠다고. 꺼져줄 테니까 더 이상 건드리지 마."
그렇게 돌아서서, 뒤에 서 있던 소년의 손목을 붙들고 성큼성큼 걸어 주위를 빼곡히 둘러싼 주민들 사이를 헤집고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우다다- 들려오는 급진적인 발소리. 윈터가 느낀 것은 마주 오던 사람과 어깨를 부딪친 정도의 충격이었으나, 멍한 감각에 몸이 굳어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녀의 옆구리가 붉게 물들어갔다.
이 모든 고독한 순례길이 철지난 이야기처럼 바래고 흐려져 낡아버린 옛 소설같이 되어버린 그리고 그런 것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희망이라는 말이 조롱이 된 어느 시대를
어느 기사가 끝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88 〈Sub 5. ■■■〉 비틀리다 못해 깨어져버린 지평 그 너머를 얼마나 가로질러왔을까. 자신이 알던 세계의 경계선 밖으로 얼마나 떨어져내려왔을까. 그러고도 도착한, 초대받지 않은 세상에서 얼마나 더 거닐었을까. 아니, 이건 얼마 되지 않았다. 자신이 겪은 일을 추락이라 부른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는 추락자는 며칠 전에야 겨우 이 땅을 밟은 참이므로.
다행히도 다른 세계로 순례를 떠나는 것은 이 기사에게 뜻밖에도 익숙한 일이었다. 일그러진 지평을 가로질러 전혀 낯선 지평으로 걸어가는 것은 더 익숙한 일이었다. 하여 기사는 계속 걸었다. 이 세계가 어떤 곳인지 알기 위해. 그러나 단순히 둘러보는 것만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세계의 시대상이 기사가 살던 시대와 그리 크게 동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까닭은 모르겠으나, 이 세계는 마치 극히 일부분으로 한정된 것만 같다는 사실. 명확한 모서리가, 그것도 그렇게 넓지도 않은 모서리가 존재하고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낯익으면서도 왠지 모를 미시감이, 딱 꼬집어 말하지 못할 변곡이 흐르고 있는 것만 같은 지평선이 기사에게 무언가 불길한 흉조를 속삭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기사는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고자 했다. 이 세계에도 여관은 있을 테다. 쉰다는 것에 의미가 없으며 먹는다는 것에 낙이 없는 몸이긴 하나, 적어도 여관에서는 무언가 알 수 있을 테니까. -여관에 접근할 때에는 갑옷을 벗는 것이 좋겠다. 불필요한 경계를 사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그러나 그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사의 뒤를 두려움에 가득 찬 사람들이 그림자 속에서 중얼대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따르고 있었다.
"저기 괴물이 있다!" "저기 괴물이 있다!" "원한에 가득찬 망령이 있다!" "깊고 어두운 숲 속에 죽음의 기사가 있다!"
>>87 〈Sub 4. 그렇기에 그들은〉 >>95 그러나 윈터의 옆구리에 파고든 섬뜩한 감각은, 결코 치명적인 깊이에까지 파고들지는 못했다. 윈터의 옆구리와 그 칼날 사이에 거대한, 실로 거대한 손아귀가 자리하여 그 날붙이를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 몸을 던진 칼끝은 아무 것도 차지 않은 맨손을 반쯤 꿰어뚫고 그 끄트머리를 윈터의 옆구리에 찔러넣고는 있었으나, 그것은 그 맨손마저도 반쯤밖에 꿰어뚫지 못하고 손아귀 안에 박힌 채로 멈추어 더 들어가지도 빠지지도 않은 채로 요지부동이었다.
공기가 스산했다. 고개를 들매 거대한 이가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이것을 사람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인가? 행색으로만 보면 사람이 맞다. 그가 입고 있는 것은 남루한 리넨 셔츠와, 이 세계 사람들이 입고 있는 것과 별다를 바 없어보이는 트라우저, 부츠와 함께 발목을 휘감고 있는 낡은 각반. 그래, 그 복식만 보면 이 세계의 사람들 중 한 명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이- 그러나 그자를 결코 그렇게 여길 수 없게 하는 것이 세 가지 있었다.
첫째는 모든 추락자들이 공유하는 특징- 추락자를 알아보는 추락자의 예감이 그가 추락자임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었으며, 둘째는 도저히 평범한 인간이라 볼 수 없는, 뭇 사람의 머리 위에 그 어깨를 두고 있는 장대한 키였고, 마지막 셋째는... 뭐라 딱 꼬집어 말로 하지 못할, 그러나 굳이, 굳이 정의하자면, 그가 인간이라기에는 무언가 결여되어 있는 것 같은 이상할 정도로 음산한 결핍감이었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되 사람의 냄새가 없는, 불길한 형상이 주민들과 추락자들 사이에 버티고 서 있었다.
그는 주민들을- 윈터의 옆구리를 향해 날붙이를 찔러넣은 그 이를 냉엄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천천히 입을 열어 첫 마디를 떼어놓았다. 온기 없는 차갑고 낮은 울림이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무덤의 바람처럼 그들을 한 차례 쓸고 지나갔다.
"당신들은 무슨 권리로 이 사람들을 해치고자 하는가?"
얼어붙어 있던 그 자는, 그 말 한마디에 정신이 퍼뜩 들었는지 겁에 질린 얼굴로, 거의 손아귀에서 놓쳐가던 손잡이를 다시 힘세게 거머쥐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든 하려고 했다. 더 밀어넣던지, 잡아 빼던지, 아니면 잡아비틀어버리던지. 그러나 그 필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손길은 부질없이 남자의 손아귀 안에 박힌 자루 위에서 번번이 미끄러지기만 할 뿐이었고 그 날붙이는 그 냉막한 손아귀 안에서 요지부동이었다.
그때, 정체모를 불사자의 일갈이 마치 법정에서 내리치는 망치 소리처럼, 묘지에서 울리는 만종 소리처럼 쩌렁쩌렁, 사람들 사이로 울려나갔다.
어느 날, 어떠한 징조도 없이 하늘의 이상현상이 발견되었다. 그러한 징조는 확실하게 추락자와 관련이 되어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이러한 현상은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내 눈에만 보였기 때문이었다. 돌아갈 수 있다는 징조인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세상으로 방랑을 할 시간이라는 것일까? 그간 했던 모든 것들이 물거품으로 녹아내리는 이 순간이었지만 그것이 내게있어 큰 타격을 주진 못했다. 이것은 단지 증명이었을뿐이며 또 다른 삶을 의미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다만 다음 세상이 어디가 될 것인지, 혹은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이 내게 있어서 단 하나의 불안요소였다. 과연 다른 이들도 이러한 내용을 알까? 나는 조심히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하던 것을 배낭에 넣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대비하기로 했다.
>>87
아무래도 이상현상은 원주민들에게 또한 영향을 주는 것 같았다. 이런저런 불길한 현상들에 의해 사람들은 일어나기 시작했고 모두가 불안에 떨며 이 현상과 거의 동시에 발생했다고 할 수 있는 추락자들에게 그 원한의 화살이 쏘아지기 시작했다.
"더럽고 추악한 것들! 여기서 꺼져!"
"워우... 진정들 하시죠?"
내게 위협을 하는 이들에게 총을 꺼내들어 겨눴지만 그들은 아랑곳 않고 내게 위협을 가했다. 잘못하면 몰매맞아 죽을 것 같아는 생각이 들자 이곳에는 더 이상 못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냥 도주하는 편이 나으려나?
"얌전히 사라져줄테니 우선은 물러나시겠어요?"
평소의 능글맞은 모습과는 다르게 확실하게 위협하는 표정을 지은 나는 위협을 위해 일반인들의 발 아래에 총알을 쏘아낸 나는 총성에 사람들이 놀라 뒤로 물러난 틈을 타서 그 사이로 빠져나왔다.
"자, 위해만 가하지 않는다면 확실하게 사라져줄테니 걱정마십시요."
옛날 같았다면 하나 둘에게는 확실하게 본보기 삼아 보복을 했을텐데 나도 성질 참 많이 죽었다. 그럼 어디보자, 이제 어떻게 할까? 그간 만났던 다른 우호적인 추락자들을 만나서 의논을 해볼까?
잎이 바람에 흔들렸다. 얼마 전 제 손으로 잎 조각을 뜯어냈던 자리는 흉진 것처럼 녹색으로 메워져 있었다. 겉보기에는 어색하거나 이질적으로 보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는 제 녹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알았다. 오히려 이로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겠다. 자연스러운 적응의 한 과정이니까. 기존의 적색은 따가운 햇살에서 잎을 지키기 위한 색이었으니 빛이 약해진 지금은 빛을 흡수하는 성질을 가진, 광합성에 유리한 잎을 내는 것이 당연하리라.
그는 문득 하늘을 바라봤다. 이렇게 될 줄은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 나온 새잎의 색을 보아하니 어지간히도 빛이 다른 모양이라고. 하늘에 난 균열을 발견한 것이 그 때였다.
처음 발견할 때만 해도 균열이었던 것은 점점 크기를 키우고는, 일그러져갔다. 적어도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었다. 일단 그의 기억으로는 말이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몰랐다. 그의 서식지와 이곳은 아예 다른 세계라고 하지 않았던가. 세계라는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주, 아주 먼 곳이라는건 이해했다. 그러니 제게 익숙하지 않은 일도 이곳에선 빈번히 일어나곤 할지도 모르지. 보라, 이 도시의 두발 짐승들은 저 현상을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조금 더 지난 후였다. 아무리 익숙하다 한들 아예 존재하지 않는것처럼 잠깐의 시선도 두지 않는 것은 꽤 부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까. 그러다가 종종 일그러짐을 보며 흠칫 놀라는 두발 짐승들이 보였다. 전부 저와 똑같이 하늘에서 추락한 이들이었다. 식물은 생각했다. 저 현상은 떨어진 이들에게만 보이는 모양이라고. 이건 아주 '이상한' 현상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이상하다는건 덜 지루하다는 말과 동의어였다.
어느날 하늘에 일그러짐이 생겼다. 처음엔 이곳의 기상현상인가싶어 그러려니하고 넘겼으나 그 자리엔 곧 균열이라 부를만한 것이 나타났다. 저것이 무엇인걸까. 저런 일그러짐을 이곳의 주민들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마치 저번의 요정처럼. 그렇다면 이것은 추락자들의 눈에만 보이는 것일까? 무엇인가의 징조인 것일까? 만약 무언가의 징조라면 그것은-.
" 다시금 추락할 수도 있다는 것일까? "
그럴 가능성은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아무런 징조도 없이 이 세계의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또 그렇지 않을 것이란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만약 추락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면, 요정들이 말한 그것의 강림이라면? 그것 또한 좋은 것은 아니지 않나 싶다. 그렇게 하늘을 보며 걷다가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혔다. 나는 곧바로 사과를 했고 평소였다면 호쾌한 웃음과 함께 넘어가주었을 주민의 반응은,
" 눈 똑바로 뜨고 다녀! "
못볼걸 봤다는듯이 어깨를 손으로 탁 털어내며 눈을 위아래로 훑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삽시간에 바뀐 태도. 불길한 생각이 뇌를 스친다. 무언가 바뀌고 있다. 나는 그렇게 곧장 여관을 향해 뛰어갔다.
떨어진 이들에 대한 적대감은 본래 이곳에 살아가던 사람들 사이에 들불처럼 번져갔다. 예상하던 일이었다. 무리생활 하는 짐승들 사이에 다른 무리의 짐승이 끼어든다면 싸움이 나는 것은 당연하니까. 그들은 이미 무리를 형성하고 있었으니 떨어진 이들은 침입자로 여겨졌으리라. 식물은 일찍이 그 분쟁에서 한발 떨어져 있었다. 그가 가진 재주가 그것을 가능케했다. 자유로운 의태. 인간의 외형을 벗는다면 그는 사냥하지 않는 동족들과 감쪽같이 비슷해졌다.
그는 여관 앞 기둥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의 발걸음이 잦은 길목이라 여러 분쟁이 잘 보였다. 그는 그저 모든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저들을 내쫒자며 언쟁과 폭력이 오가는 현장은, 그래. 나름 볼만한 구경거리였다.
"저것도 추락자야! 사람이 저걸로 변하는걸 내가 봤어...!"
그러니까 그런 외침이 들려오기 전까지만 해도 구경거리일 뿐이었다. 자리를 잡을때 주변에 두발짐승따윈 없다는걸 분명 확인했다. 아무래도 제 굴에 틀어박힌 채 고개만 내밀고 훔쳐본 모양이지. 식물이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사냥하지 않는 척'을 계속했더라면 그는 그저 착각한 거짓말쟁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식물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왜냐면 그 인간이 추락자임을 증명한다며 제 줄기를 뜯어내려 했으니까. 줄기는 손상시킬수 없었다. 줄기는 새로 내는데 시간도 영양도 너무 많이 들었다.
식물은 순식간에 의태를 입고 인간의 줄기를 잡아챘다. 지켜보던 인간들이 술렁였다. 추락자들이 이제 사람이 아닌 척까지 하며 숨어드느냐 하는 경악이 대부분이었다. 식물은 애초에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들은 이제 저들 주변의 모든 사물을 의심할 작정인 것처럼 보였다. 그것도 나름 우스운 구경거리가 아닐까 싶었지만 그럴 여유는 사라질 예정이었다. 이곳에서 녹색이 아닌 식물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붉은 빛의 식물은 눈에 띌테니.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추락자임이 까발려진 현재, 적의 가득한 여러 개체의 인간들로 둘러싸인 상황부터 벗어나야 했으니까. 식물은 천천히 인간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들은 추락자가 당황은 커녕 도리어 그들에게 다가오는것에 당혹스러워 했다. 어쩌면 공격받을수도 있다고 생각하는것도 같았다. 물론 식물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궁지에 몰리면 먹잇감도 사냥꾼을 무는 법이니까. 인간들이 서로를 방패삼아 내세우고 저는 뒤로 숨으려 하는 아비규환은 꽤 바보같이 보였다. 수많은 인간을 전부 사냥하는 것은 식물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으며 다같이 싸운다면 제게 어찌할 방도가 없을텐데도.
식물은 인파를 간단히 밀치고 걸어나갔다. 굳어있던 사람들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잡아!" 하는 외침이 터져나올 때 쯤에는 이미 식물은 자리에 없었다.
균열은 나날이 덩치를 키우며 하늘을 가른다. 불길하게 일렁이는 하늘 아래, 저편의 너머를 응망하는 까만 눈동자. 시국이 날로 험악해지고 있지만 평온한 낯으로부터는 근심 한 점 엿보이지 않았다. 스쳐 지나가는 행인들의 눈길이 종종 날카롭게 변할 때도, 유난히 쌀쌀맞은 투로 축객을 당한 날에도. 그러다 결국— 눈앞까지 주먹이 닥친 지금에 이르러서도 한결같이. 옷깃 붙잡힌 채로도 태도는 혼연하기 짝이 없다. 뜻 없이 둥그렇게 뜬 눈으로 주변을 휘 훑는다. 그는 도리어 고개를 당기며 험악하게 일그러진 얼굴에 제 면을 가까이 했다. 무덤덤히 바라보던 낯이 이내 생긋 웃었다. 여전하게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태도였으나, 단지 이것만이 궁금할 뿐이었다.
“왜 그렇게 화가 났어?”
최근에 한 일이라고는 한가로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변이 일어날지를 관찰한 것밖에 없다. 그러다 주변이 점점 소란스러워지더니, 사람들의 무리가 기어이 건물을 에워싸고 말았다. 하나의 군집처럼 몰려든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이 무엇인지는 그도 쉬이 눈치챌 수 있었다. 맹렬한 적대감. 그렇다면 대체 왜? 자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는 줄곧 대답을 기다렸으나 주민들은 별달리 답을 줄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제 얼굴을 겨누고 굳게 쥔 주먹에 불끈 힘이 들었다. 이쯤 되면 다음에 무슨 상황이 이어질지는 뻔했다. 곧이어 다가드는 주먹을 눈에 담자, 짧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거창한 이유는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때마침 이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자신이었기에 일을 당하는 것뿐일지도. 이유가 무엇이었든 이제 와 큰 상관은 없을 테다. 어차피 언젠가는 다시 갈아치울 수 있는 몸이다. 얼굴을 맞다 눈이라도 다치게 된다면 불편해지겠지만, 얼굴 좀 뭉개는 정도로 저들의 분이 풀린다면 차라리 다행이었다. 하여 닥쳐드는 폭력을 가만 기다리던 그때.
앞섶에 느껴지던 압박감이 떨어져나간다. 돌연 눈앞이 가려졌다. 앞장선 뒷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기이한 감각. 추락자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미처 어떤 반응을 하기도 전에 새롭게 나타난 누군가가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 누구에게도 저항할 생각이 없었거니와, 창황히 돌아가는 상황에 마땅히 무엇을 행해야 할지도 알 수 없어 그대로 몇 걸음을 끌려 갔다. 평생을 정적으로 살아갔던 그에게 이 세상과 사람들은 너무도 빠르기만 했다. 늘 순식간에 변해 가고, 그렇게 찰나만에 피 흘리고, 또 그렇게 스러져 가는 연약한 목숨들. 유한한 존재들. ……추락자들을 해하는 것이 기존 주민들의 원이라면 그저 두고 싶었다. 하지만 이 추락자들은 경우가 다르다. 저로 인해 휘말린 것이라면 관망할 수만은 없었다.
당장이라도 극단으로 치밀 것 같던 분위기가 덩치 큰 추락자의 일갈에 맥을 잃은 사이, 그는 그 틈을 타 앞으로 나아갔다.
”왜 화가 났는지는 아직도 말 안 해줄 거야?”
실없는 질문에 어름어름 눈치를 보던 이들 중 몇이 정신을 차렸다. 칼을 든 주민의 곁에 있던 동조자들 중 하나가 바로 그랬다.
”너희 때문이잖아! 도시는 원래 살기 좋은 곳이었어. 그런데 너희들이 오고 나서부터 전부 이상해졌다고.” ”그래서 저 사람들을 해치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어?” ”뻔뻔스러운 소리나 할 거면 우리 고향부터 돌려내. 쳐들어온 주제에…….”
결연히 외친 첫 말에 비해 문장은 점차로 흐려져 갔다. 명료하게 끊지 못하고 어물거리는 사이 그가 다시금 물었다.
”아니면 그냥 그렇게 하는 편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아서 그래?” ”그건…….”
상해와 살해의 금지는 사람이 사람으로 있기 위한 최저선의 도덕이다. 그 선을 뒤흔드는 극단적인 행동이 정당한 명분이 아닌 ‘기분’의 문제라는 것을 지적당하자 주민은 곧장 말을 잇지 못했다. 당황한 것인지, 혹은 단순히 무리에 섞여 방관하던 입장에서 앞으로 끌려나오게 된 상황이 부담스러웠던 걸지도 모른다. 당당하게 꺼낸 첫 마디와는 달리 그자는 대번에 집중된 이목에 기를 펴지 못하는 듯했다.
”그러면 지금 해 보자. 다들 모여서 여기까지 올 정도로 하고 싶었던 거잖아.”
추락자의 입에서 나올 만하지는 않은 소리를 하며 곧바로 몸을 틀었다. 그는 칼날을 막느라 꿰뚫린 추락자의 손으로부터 조심스레 칼을 빼내어—”미안, 이거 빼도 괜찮아?”— 자신이 쥐어 들었다. 위협적인 행동에 좌중에 소란이 일었으나, 그의 행동이 더욱 빨랐다. 칼끝이 향한 곳은 반대였다. 그는 방금 전까지 자신과 대화하던 주민에게 칼자루를 쥐어주었다. 그리고, 이내.
억지로 쥐여 준 서슬이 가슴의 한가운데를 파고든다. 심장이 있을 곳을 찔렸음에도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그는 되레 기대 어린 웃음만 지으며 상대를 가만 바라볼 따름이다. 여타 사람들과 신체구조가 다르다 하기엔 속의 것을 가르는 감각이 지나칠 정도로 선명했으리라. 추락자를 몰아내어야 한다 주장하던 모습과는 다르게 주민은 영 맥을 추지 못했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의아해진 그가 붙잡은 손을 더 움직여 주려 하자— 마구 발버둥을 치더니 입을 틀어막고 어디론가 급히 뛰어가는 것 아닌가. 서슴없이 칼을 휘둘러 대었던 이들과는 달리, 저 주민은 그 정도의 담은 없었던 모양이다. 아마 다른 이들도 그러하리라. 무리를 짓고 군중에게로 책임을 미루었기에 저용을 부릴 수 있게 되었을 뿐, 홀로서는 스스로 진 업과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이가 대부분일 테다. 그가 그 사실을 알고서 이리 나섰을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태연자약한 태도로 ”다음에도 하고 싶어지면 말해.”라며 황급히 사라지는 뒷모습을 향해 살갑게 손을 흔들어 주기만 할 따름이다.
주민이 떨어뜨리고 간 칼을 주워든 그가 이번에는 또 다른 사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우연히 눈이 마주친 그 사람은 그를 똑바로 마주보게 되자 외려 눈을 피했다. 다른 사람도, 그 다음 사람도. 서로 술렁거리며 옆구리를 툭툭 쳐 대고 엉뚱한 곳만 바라보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그렇게 되는 사이 추락자들은 사라져 있었고, 처음 칼을 휘둘렀던 인물은 제 손이 자유로워지자마자 도망친 지 오래다. 만연히 느껴지던 의지도 이제는 흐지부지해졌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헛기침을 하며 등을 돌렸다. 그 인물을 따라 몇몇 사람들도 짜증스러운 탄식을 흘리거나 혀를 차 대며 어디론가 떠나 버린다. 이제까지의 집요한 폭력이 단지 알량한 기분을 위해서였다는 것을 도리어 증명하듯이.
어느날부터 하늘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으로 이곳에 온 날, 미하엘과 나누었던 문답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추락자가 추락을 할 때엔 하늘이 일그러진다고. 그렇다면 저것이 미하엘이 말해주었던 그 전조일까? 하지만 그것만으로 가정을 끝내기엔 무언가가 석연찮았다. 요정이라 불리는 그것들이 했던 말과, 책에서 발견한 의미심장한 문장들이 아직껏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쩌면 그 ■■■라는 것과 하늘의 균열이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저 막연한 상상일 뿐이지만, 저곳으로부터 무언가가 도래하기라도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단들 무엇 하나 분명한 것 아무 데도 없고, 그가 할 수 있는 일 역시 아직까지는 아무것도 없다. 과거 남겨진 터전에서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을 지켜보기만 했던 때와 같이, 언제까지고 닥쳐올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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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병들의 발소리가 들린다. 철로 만든 군화 덜그덕 부딪히는 소리. 몇몇의 가죽 샌들 소리. 웅성거리는 소리. 실로 불쾌한 소음이로다. 그들은 큰 소리로 글을 읽기 시작했다.
자신을 추락자라고 칭하는 이들은 경비대를 따라 중앙으로 이동하라. 하하. 중앙이라.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때 전부 베어넘기고 중앙으로 들어가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냈어야 했다. 실로 우스운 생각이로다.
"파국인가, 또 다른 시작인가..."
사내는 작게 중얼거리면서 옷 매무새 가다듬는다. 실로 불쾌했다. 어찌하여 우리는 이런 사태를 직면하게 되었을까. 나는 흘러가는 구름처럼 방랑했을 뿐. 싸움을 말렸고, 그 누구 하나 죽이지 않았다. 나의 신념대로 살았으며 행동함에 있어 부끄러움 한 점 없다. 무고한 주민들에게는 손 끝 하나 대지 않았다. 도시를 지키기 위해서, 만나는 추락자들마다 악인인지 물으며 신을 베는 죄악까지 저질렀다.
"그럼에도 저들은 우리를 데려가길 바라는가."
그렇다면 그리 할 따름이다.
사내는 문을 열고 나와 제일 먼저 앞장섰다. 경비병들에게는 살며시 미소지으며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었고, 천천히 경비병들을 따라 걷는다. 뚜벅거리는 발소리 귓가에 울린다. 웅성거리는 소리 사이에는 불쾌한 욕설들이 섞여있으나 경비병들이 막아서고, 누군가 돌을 던지려 하자 그 역시도 막아선다.
'무슨 일일까.'
의문스러운 세계였다. 어째서 이곳엔 여관이 하나 뿐인가. 저 바깥에는 또 다른 마을이 보이지 않는가. 어째서 중앙으로의 침입을 그리 경계하면서 우리를 중앙으로 끌고 가는가. 주군이란 또 무엇인가.
저들은 우리를 어떻게 하려 하는가.
아무 정보 없이 적진으로 들어가는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으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많은 경비병들을 모두 베어넘길 수 없는 노릇일 뿐더러, 베어넘기고 도망친다 하더라도, 어디로 도망치겠는가. 불합리하게 우리를 감금하거나 대우한다면 철창을 가르고 쇠사슬 끊어내며 빠져나오면 될 노릇이었다. 부디 힘을 빼앗는 등, 저주에 관련된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런 마족도 있었으니. 그것은 실로 유쾌하지 못한 경험이었다.
중앙으로 향하는 길목을 지나는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넓은 홀에 도착했다. 소리가 울린다. 놓여져 있는것은... 왕좌인가. 헌데, 어째서 왕좌가 텅 비어 있는가. 분명히 돌아와야 할 소리가, 쓸쓸한 왕좌의 소리만을 반사했으니. 그것이 사내의 가슴을 옥죄어온다. 텅 비어버린 왕좌. 불타버린 도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사내는 인상을 쓰며 지긋이 눈을 감는다. 도시로 들어올 때 느꼈던 미묘한 저항감은, 이것과 연관되어 있는가.
정신을 차려보니 홀인 것도 이상했을 뿐더러, 어째서... 이리도 쓸쓸한 기분이 든단 말이냐.
그 치들 말이죠, 여관에 옹기종기 모여있다나 뭐라나요. ─어머, 맞아요. 거기 모여서 또 무슨 작당모의를 하려고! 그 여편네는 왜 놈들을 그냥 놔두는 건지, 쯧.
도시로 입성한 이후─ 그런 가십 주고받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수십 번씩이나 들었다. 스스로를 추락자라 칭하는 이들에 관한 이야기였었는데. 청년은 그 추락자라는 이름에서 기시감을 느끼었다. 그도 땅을 향해─ 이 세계를 향해 추락하였으니까. 그리하여 청년은 이 도시에 하나 뿐이라는 여관을 향해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호기심 혹은 궁금증이라기보단─ 강한 직감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그 직감은 결론적으로 잘 맞아떨어졌다─
여관에 도착한 청년은 친절한 주인장에게서 대강의 설명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최근 도시에서 흉흉한 사건들이 일어났으며─ 추락자들은 그들이 그 원흉인 것마냥 군중의 질타를 받고 있는 중이라고. 하지만 정말로 추락자들이 아무런 잘못 하지 않았을까─ 그건 또 모르는 일이다. 어쨌건 자신은 상황에 대해 잘 모르는 외부인이었으니.
그리고서 몇 날이 지났다. 아침부터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밖을 내다보니─ 가죽 갑옷이나 금속 갑옷 차려입은 경비대원들이 여관 둘러싼 것이었다. 그들은 추락자들더러 중앙으로 이동하라며 요란스레 외쳐대었다. 등쌀에 떠밀리듯 여관 밖으로 나온 청년─ 그의 앞으로 한 무리의 경비대원들이 다가왔다. 우리의 주군이 그대들을 만나길 바랍니다. 그들의 말에 청년이 질문하였다.
"그 주군이라는 건 어떤 사람이야?"
그러나─ 우리의 주군이 그대들을 만나길 바랍니다. 고장난 축음기처럼 반복적으로 읊조리는 경비대원들에게선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어떤 말로 화두를 던져보아도 소용 없었다.
"─따를게."
대신 청년은 그들을 순순히 따라가기로 하였다. 별로 저항하고픈 마음도 없었다.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 하면 오해를 풀면 되는 일이고. 그것조차 불가능하다면─ 운명이 이끄는 대로 따를 수밖에. 말 마치기 무섭게 판금 갑옷 두른 두 장정이 나서선 청년의 팔을 한 쪽씩 잡아끌었다. 흉악범이라도 연행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그는 태평한 얼굴 하고서 몸을 맡기었다. 그 초연한 태도에 몇몇 구경꾼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어떻게 저리 태연할 수가 있지? ─그야 녀석들이 일을 저질렀으니까요. 청년은 그들의 담화에서 일종의 광신을 느꼈다. 자신이 믿는 사실에 의심 한 줌 품지 않는 광신을. 또한 추락자들을 향한 맹목적인 악의까지도─
청년은 경비대원들의 행렬에 둘러쌓인 채 얌전히 걸음 옮기었다. 그리고 주변 환경이 부지불식간에 바뀌었다. 말 그대로 찰나, 잠깐 눈을 감았다 뜨는 순간이었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 왕궁의 홀처럼 보이는 곳이 정신 사나울 정도로 화려하게 꾸며진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묘한 쓸쓸함이 느껴졌다─ 홀 중앙 왕좌엔 아무도 앉아있지 않았다. 청년은 그제서야 이상함을 감지했다. 주군이 기다린다 하였으면서─ 어째서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지 않는가.
가게를 위해 준비했던 것들을 챙겨담으며 도망갈 준비를 하던 나는 갑작스러운 경비대의 방문에 놀랐다.
"거부권은 없습니까?"
기계처럼 계속해서 주군 이야기를 하는 그들을 보니 편리하게 쓰던 안드로이드들이 떠올랐다. 그정도까진 아닌 것 같지만 이들은 맹목적으로 나를 자신들의 주인에게 데려가려했다. 지금은 부드럽게 대하는 태도였지만 만약 거부한다면 어찌될 줄 몰랐다. 뭐가 됐든 지금 반항은 무의미해보였다. 하려면 언제든지 테이저건이나 실탄을 써서 제압 및 살해 등 뭐든 가능했겠지만 그랬다간 이 세상, 아니 두번 째 삶을 사는 것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했다. 또한 다른 추락자들이 협동해서 날 죽이러 올 수도 있었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갑시다, 가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경비대들은 자신들을 따라오란 듯이 나를 이끌고 여관 밖으로 향했다. 얌전히 그들을 따라가니 경비대의 위압감 때문인지 다른 이들은 내게 적대적이지 않았다. 어디선가 날아올법한 돌멩이조차 날아오지 않는 것을 본 나는 얌전히 그들을 따라가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여관이 있던 골목을 지나 큰 대로변으로 나가는 것 같았다.
"에구구, 경비원 나으리!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사람 많은 곳을 나가면..."
야, 부담스러운데? 어떻게 좀 돌아서 가면 안되겠니? 하지만 경비원들은 거부권 따위는 없단 듯이 내 등을 밀어버렸다. 균형을 잃고 앞으로 밀린 순간 나는 믿기지 못할 광경을 보았다. 분명 사람들이 있어야할 대로변이었어야 했는데 내가 밟고 있는 곳은 왠 공간이었다. 처음 이 세상에 왔을 때와 비슷했지만 다른 광경, 마치 양자이동을 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허허, 진짜 미지의 세상 맞구만."
조심히 앞으로 걸어가니 내 눈앞에는 텅 빈 왕좌가 싸늘한 느낌을 주면서 내 눈 앞에 보였다. 주인 없는 자리였지만 단순한 자리로는 보이지 않았다. 마치 주인을 대신해 위압감으로 이 공간을 채우는 느낌이었다.
"뭐가 됐든 범의 입 안에 들어온 것은 확실하군."
주변에는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은 듯 했다. 나는 혹시나 모를 이 자리의 주인을 얌전히 기다리기로 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비롯한 추락자들에 대한 대우가 박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은 쌀쌀맞은 눈빛이었다. 이거야 뭐, 그냥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메구무는 본래 살갑지 않은 성격이었으니까. 그리고 며칠 뒤부터 폭력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돌을 던져대는가 하면, 꺼져버리라는 욕설과 함께 물이 끼얹어지기도 했다. 불필요한 살생은 꺼리는 메구무였기에 이것도 그냥 무시했다. 그러나...
돌을 맞았다. 문제는 돌을 맞은 사람이 메구무가 아닌 아이리였던 것이다. 분노로 눈에 뵈는게 없어진 메구무는 돌을 던진 이와 그의 일행들을 두들겨 팼다. 죽은 사람은 없었다. 칼은 쓰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많은 이들의 경악을 불러오기엔 충분했다. 메구무는 빠르게 도망쳤다.
그리고 숨을 돌리고 있던 그때, 경비대원들이 메구무를 향해 다가왔다. 이미 녹초가 된 메구무는 지긋이 눈을 감았다. 결국 깜빵행인가. 여기 시민들을 두들겨 팼으니 형량이 가볍지는 않겠지... 그렇다면 아이리는 영영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 하는 건가? 용광로에 넣어 녹이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경비대원의 입에선 뜻밖의 말이 나왔다.
"우리의 주군이 그대들을 만나길 바랍니다."
깜빵이 아니라? 더 이상 덤빌 힘도, 도망칠 힘도 없던 메구무는 속으로 되뇌었다. 끄응... 메구무는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칼자루에 손을 뻗었다.
"만나길 바란다고? 내가 싫다믄 우얄..."
그러나 메구무는 처참히 패배해 경비대원들을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들이었다. 실로 비참했다.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 하던 메구무는 어느 순간 자신의 눈 앞에 텅 빈 왕좌가 놓여진 것을 보고는 그 싸늘함과 정적에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주문에 걸린 것처럼 머릿속을 맴도는 말은 그 뿐이다. 울퉁불퉁한 숲길을 내달리고 구르느라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정신이 아찔해져도, 그 문장 하나만은 머릿속에서 도통 사라지지 않고. 누군가가 귓가에서 끊임없이 중얼거리기라도 하는 것 같아.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를라치면 뒤에서 철그럭거리는 소리가 몇이고 겹쳐 들려와 그럴 수도 없다. 마음같아선 무엇 때문에 이러는 거냐고 소리라도 빽 지르고 싶지만 두려움에 목은 꽉 막혀 나오지 않고, 쌕쌕거리는 숨 사이에 섞인 작은 흐느낌으로만 한탄할 수 밖에.
커다란 나무 둥치, 무성하게 자란 수풀, 나무, 또 수풀. 그리고 또 나무, 머지 않아 보이는 빛. 안쪽으로 들어갈라치면 귀신같이 각반 소리가 들려 발걸음을 돌리게 한다. 앗차 하는 사이에 숲을 빠져나와 언덕길 위를 달리고 있었다. 차라리 도시로 들어가서 복잡한 골목에 잘 숨으면 나을까? 스스로도 가망 없게 느껴지는 생각을 한 가닥 희망처럼 붙잡고 인파를 헤치고 골곰 그림자 틈으로 스며들어 보려고 해 보았지만.
질질질. 일부러 발을 끌며 걷는다. 누가 보아도 가기 싫은 티가 팍팍 나는 걸음이다. 좋지 않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대로 중앙까지 끌려가서 목이 사라지게 되는 건 아닌지, 아니면 죽는 게 나을 정도로 심한 꼴을 당하게 되는 건 아닐까. 무서운 상상에 혼자 훌쩍댔다가, 그래도 괜찮을 거라며 애써 다독였다가. 나뭇잎 흙먼지 투성이에 눈이며 코 끝은 벌게져서 한심한 꼴로 중앙으로 향하는 길목을 막 지나면.
..... ..
........?
부자연스럽게 이어 붙인 것처럼 기억이 이어진다. 눈 앞에 있는 것은 커다란 문도, 복도도 아닌 화려한 왕좌 앞이다. 그러나 그 위에 앉아 있어야 할 우리의 주군은 어디에도 보이질 않고. 가라앉은 공기가 무겁기만 하다. 초조하게 마른 침만 삼켰다.
도시 주민들이 추락자들을 적대하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그 후로도 상황은 더욱 악화되기만 했다. 여관 주인과 손님들 간에 다툼도 잦게 벌어졌다. 그녀가 그런 일방적인 비난을 들을 이유는 없음에도. 소녀는 그런 마시가 걱정되었지만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다. 지금 상황은 마치 시한폭탄 같았으며... 잘못 건드리면 터질까 두려웠으니까. 그동안 소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죽이기만 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거리 구경도, 다른 추락자들과 담소 나누는 것도, 전부 그만두었다. 침울한 심정으로 방구석에 박혀있기를 반복했다. 이곳에 추락하기 전의 삶과 같이.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여느 때와 같은 날이 밝았지만 소녀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디선가 문득 목소리가 들려왔다. 힘주어 외치는 소리. 자칭 추락자들은 경비대를 따라 중앙으로... 소녀가 몸을 움찔댄다. 그리고 조용히 귀 기울였다. 경비대가 드디어 행동에 나선 듯하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은 쉬이 알 수 없었다. 추락자들을 보호하기 위함인가, 혹은 벌하기 위함인가? 지금 상황이 상황인지라, 아무래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소녀는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방문을 조용히 밀어젖힌다. 뒤이어 소녀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경비대원들이 여관 안에까지 들어와있었기 때문에. 도대체 언제 들어온 거야? 소녀는 황급히 문을 닫으려 했지만, 그보다 소녀를 발견한 경비대원의 행동이 빨랐다. 억센 손아귀가 문짝을 붙들어맨다.
- 우리의 주군이 그대들을 만나길 바랍니다.
지극히 무감정하고 정적인 목소리로, 경비대원이 읊조린다. 소녀는 한참동안이나 문고리 잡고 낑낑대다 겨우 몇 마디 외칠 수 있었다. "그, 그 주군이라는 작자가 우리한테 무슨 짓 할 줄 알고?!" 그러나 경비대원은 아무런 반응조차 없었다.
- 우리의 주군이 그대들을 만나길 바랍니다.
방금 전과 같은 목소리, 어조, 말투로 그가 다시 한 번 되뇌인다. 마치 세뇌라도 당했거나, 누군가의 조종이라도 받는 것 같았다. 소녀는 겁에 질린 낯으로도 빠르게 머리를 굴린다. 여기서 저항하면 형량이 더 높아질지도 몰라. 차라리 순순히 따라가서 선처를 비는 게...
"...알았어. 가면 되잖아..."
소녀는 문고리에서 손을 뗐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힘싸움하던 것도 멈춘다. 경비대원이 소녀의 어깨를 거칠게 붙잡은 채 끌고 가기 시작한다.
...
여관을 나온 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금세 풍경이 바뀌었다. 게임 속에나 나올 법한 화려한 궁정, 그에 대비되게 텅 빈 왕좌. 아무도 없는 장소에서 일말의 쓸쓸함마저 느껴졌다. 소녀는 눈동자 데굴 굴려 주변 경비대원들의 눈치를 살폈다. 주군이 기다리고 있다더니 왜 아무도 없는 거지? 언뜻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도 같았다.
아무래도 삽을 구하러 가는게 맞는 길이었나 싶다. 그래도 윈터를 위험에 빠지게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 안에서 용납이 되질 않아서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손을 쓰자니 치유 마법을 쓸 수 있는 기회는 이제 몇번 안남았기에 상처라도 나면 치료하는데에도 꽤 애를 먹을 것이었다. 그러다 톡 쏘듯이 들려오는 윈터의 말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듯이 웃으며 말했다.
" 앗 짝사랑이라 그런건가요~ 아쉽네요. 근데 전 여전히 당신을 좋아하니까요. "
사실 짝사랑인거 애저녁부터 알고 있었다. 이렇게 어프로치하는 것도 본인이 싫어한다면 당연히 안할 생각이기도 하고. 근데 적극적으로 듣기 싫다는 말은 없으니 그냥 하는것 뿐이다. 지금도 이렇게 같이 있으니 드문드문 떠오르던 옛날의 기억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그녀와 함께 다니고 싶은 이유가 충분했다.
" 아니 진짜 못만든다니까ㅇ ... "
자기 체력으로는 진짜 안될것 같아서 그렇게 얘기하려고 했는데 숙이라는 말과 함께 윈터가 나를 끌어안고 구덩이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화살이 박히는 소리가 들려왔고 난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젠 정말로 무기까지 들고서 우리를 사냥하려하는 것인가 싶었다. 그리고 윈터와 함께 구덩이 바깥으로 시선을 향하니 평소 보던 위병들과는 차원이 다른 무장 수준-그러니까 기사 정도-의 무리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 우리의 주군이 그대들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
주군이라 함은 이 도시를 통치하는 우두머리를 말하는 것이겠지. 허나 지금까지 중앙은 모종의 장치로 출입이 불가능했을터. 그랬기에 중앙에 침입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은 나로써도 놀라운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안에 꽁꽁 숨어있던 사람이 갑자기 자신의 부하들을 시켜서 우리를 데려오라고 했다? 당위성은 충분히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이렇게 몰리게된 나로써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말라고 전해주시겠어요? 그렇게까지 얘기하는 것을 보면 지금 이 소요사태의 원인들도 그 주군이라는 양반 같은데 우릴 이렇게까지 몰아놓고서 만나고 싶다고하면 퍽이나 좋다고 찾아가진 않을 것 같은데 말이죠. "
나는 구덩이에서 빠져나와 그들의 얼굴을 가까이서 마주보며 말하고서는 그들 사이로 지나가려했다. 하지만 지나가려는 시도는 그들의 장병기에 의해 막히고 내 팔은 거칠게 잡혀 다시금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정말 해보자는건가? 그래도 약간의 미소를 짓고 있던 내 얼굴은 점점 굳어가다가 결국 험악해진채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 우릴 보자고 하는 목적이 뭐지? "
어느새 존대도 그만둔채 그들에게 외쳤지만 그들은 그저 주군이 만나고 싶어한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마치 자유 의지를 잃어버린 것처럼. 아마 이런 능력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면 주민들도 약간의 세뇌로 추락자들을 적대하게 된게 아닐까. 그리고 이들을 부리는 것은 그 주군이라는 사람일테니 ...
" 목적도 말 안해주고 따라가라는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는거야? "
나는 금방이라도 공격할 수 있게 주먹을 쥐었다. 공격 마법이라곤 쓸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래도 고분고분 끌려간다는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어깨를 잡아서 뒤로 끄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윈터였다. 윈터는 애초에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건지 나에게 고개를 저어보이고선 얌전히 따라가야한다고 말했다. 만약 내가 여기서 싸우면 윈터까지도 휘말릴 수 있으니 ... 결국 나는 쥐었던 주먹을 풀고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 알겠습니다. 같이 가시죠. "
그렇게 나는 그들에게 내 신변을 맡겼다. 도시로 들어섰을때 주민들은 여전히 우리들을 적대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물건을 던지려고 하거나 우리를 직접적으로 잡기 위해서 손을 뻗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시도들은 오히려 우리를 데려가고 있는 경비대들에게 저지 되었다. 마치 우리가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안전하게 막혀있던 중앙으로 향하는 길목을 넘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이는 풍경은 어느 경계를 기점으로 풍경이 바뀌는 것이었다.
" 이건 대체 ... "
나는 말도 안되는 광경에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중앙으로 향하는 길목엔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끝부분에 왕좌가 언뜻 보이는 홀이 있었을뿐. 그곳으로 들어가는 정문도, 앞을 지키는 위병도 없는 곳이었다. 그렇게 왕좌가 있는 홀에 가까이 갔을때 나는 깨달았다. 그곳은 엄청나게 화려하지만 상당히 쓸쓸한 곳이라는 것을. 그렇게 나는 이들의 '여왕'과 마주할 수 있었다.
처음 날아온 화살은, 우리는 언제든 너희를 해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부러 비껴쏘지 않고 곧장 살을 쏘아온 것은 마땅히 피할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온몸을 철판으로 두른 병사들이 우직한 걸음으로 느리게 가까워온다. 나뭇잎 새 부서진 정오의 햇살이 눈부시게 반짝여, 그들은 구시대적인 냉병기로 무장했을 뿐인데 괜히 가슴이 두근거린다. 두당 한 발씩이면 되는데. 그렇게나 만지기 싫었던 소총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윈터는 한숨을 내쉬며 엘프를 따라 구덩이에서 빠져나온다. 지금까지 저에게 보여왔던 유순한 모습과 달리 당장이라도 저 상판을 쥐어지를 것처럼 적의를 드러내는 그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세력의 손 아래 개인이 반항해 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어깨를 잡아세우고 눈을 맞추며 이거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다.
"얘들이 뭔 잘못이겠냐." ... "내 몸에 손대지 마. 어련히 따라갈 테니까."
당돌한 엘프를 만류하며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몸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내던 윈터는, 저를 구속하려 다가오는 병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평소의 맹한 표정으로 동그랗게 뜬 눈동자엔 당장 네 목을 비틀어 버릴 수 있다는 살기가 그득 담겨있어. 순간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으나, 이상의 소란 없이 두 사람은 얌전히 그들을 따라 도시 중앙으로 향했다.
주민들의 적대와 반목, 갑작스레 벌어지기 시작한 이상 현상들. 이변은 갖가지 전조의 끝에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육중한 발걸음과 냉엄한 음성의 형태로써.
”주군?”
목을 베이고 힐난을 듣고 모르는 곳으로 끌려가게 되어도, 무엇을 당해도 위기감이란 것을 느낄 줄 모르는 인물이었으니─ 더군다나 신적 존재마저도 보통의 사람 정도로 여기는 그가 일대의 군주라 하여 특별히 생각할 리 없다.
“그게 누군데?”
별다른 반항 없이 순순히 따르면서도 들어 오는 궁금증들을 족족 물어보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정해지기라도 한 듯 똑같은 말 뿐. 대답해 주기 싫은 걸까. 어쩌면 대답해 줄 수 없는 걸지도 모르지. 한편에서는 저와 같이 ‘주군’의 부름을 받은 추락자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도주하는가 하면 그 자리에서 심히 격렬한 저항을 택하는 인물마저 있었다. 저마다가 보이는 반응들을 뒤로하고 그는 경비병들의 인도를 따라 걸어나갔다.
중앙에 관한 정보들은 그동안 철저하게 접근이 금지당해 있었다. 그동안의 의문점들이 이리 해소되는 상황에 기뻐해야 할까? 기대감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으리란 직감 또한 막연하게 들었다.
굳게 가로막혔던 길이 열리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공간이 접붙은 것처럼 변하는 모습보다도, 공간 자체에서 느껴지는 심상에 이끌린다. 외롭고 허전한 적막. 쓸쓸한 애상만이 자리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문득 도서관에서 보았던 의문스러운 구절이 떠올랐다. 이 자리가 여왕의 자리일까?
— CHAPTER 1. 추락할 수 없는 도시 1-2. 부디 격정하라. 격정하고 또 격정하라.
나는 걱정했다. 고민하고 걱정하고 생각했다. 왕좌가 있는 홀로 끌려가듯 다가가 만난 여왕이라는 자는 곰이었고, 추락자인 것 같았다. 그렇기에 고민하고 걱정했으며 생각한 것이다.
곰이 말한 것처럼 자신이 여왕이고, 그 도시를, 세계를 통치하는 자였다면 우리들 추락자 또한 그 곰처럼 세계를 하나씩 맡을 수 있는 걸까 하는 생각. 그렇다면 우리가 맡을 세계는 우리가 원래 있었던 곳인가 하는 걱정. 세계의 크기는 우리가 아는 것만큼 정해지는 것인가 하는 고민.
그 모든 것이 내 생각대로가 맞다면, 우리는 왜 이런 곳에 있는 것인가.
기이하게도 우리가 홀에서 일그러짐에 빨려 들어가 존재한 곳은 어느 상점이었다. 그래, 그곳은 상점이 맞았다. 사방에 널려 있는 가판대에 놓인 물건들과 그것을 구매하는 자들. 감히 말하건대, 그들을 사람이라고 칭해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기이한 모습을 한 그들을 사람이라고 칭할 수 있다면 다행인 이야기지만, 아니라면 도대체 우리는 어디에 있는 것이란 말인가?
나는 어서오십쇼, 고객님! 하고 소리치며 우리를 맞이하는 이곳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다른 추락자들 눈에는 각각 다른 모습으로 비치는 듯 싶었다.
“오랜만에 수많은 추락자 분들이 오셨군요.”
그는 우리가 추락자인 것을 알고 있는 듯했는데, 그 말은 한편으론 자신은 추락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실제로도 그를 보았을 때, 추락자 특유의 동질감은 느껴지지 않았고.
나는 이곳이 어디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장사꾼답게 질문의 답에는 요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이곳에서 쓸 수 있는 돈이 없다고 말하자, 그가 내 가슴팍을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없기는 왜 없습니까? 거기 있잖습니까? 비타 말입니다.”
그 순간 나를 비롯한 추락자들이 가지고 있던 비타가 빛나기 시작했다. 그는 낄낄거리며 웃더니 질문 한 번 당 비타 한 개를 제공하면 줄 수 있는 답을 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가지고 있던 비타 한 개로 이곳에 관한 정보를 구매했고, 그는 이곳이 경계선에 놓인 상점이라고 말하며 자신은 이곳의 주인, A.A라고 답했다.
A.A는 이곳에선 비타만 제공하면 어떤 것이든 구매가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는 이 수상한 상점의 주인을 믿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A.A의 경계선의 상점에 추락했습니다. A.A는 자신에게 비타 한 개를 제공하며 질문하면 그에 따른 답변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러면서 답할 수 없는 질문에는 비타를 받지 않겠다고 했으니, 어떻게 보면 공평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A.A는 1인당 3개까지의 질문을 받으며 때에 따라 정보 대신 다른 것을 제공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이제 어떡하면 좋을까요?
보상 : 비타 지급 없음. 대신 질문에 따른 정보 제공(질문 당 비타 1개 소모).
0. 24년 7월 8일부터 24년 7월 21일까지 수행 가능(이주일 간) 1. 추락자들은 A.A에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질문의 종류에 제한은 없으며, 물건 구매에 관한 요청도 가능합니다. 물론 그에 따른 비타는 소모 됩니다. 2. 상점의 구경을 하고 싶다고 하면 아직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답이 돌아옵니다. 하지만 우리의 눈에는 상점에서 구매하고 있는 그림자 같은 이들이 보입니다. 3. 추락자와 함께 일그러짐 안으로 끌려 들어온 거으로 예상되는 곰의 행방에 관하여 물을 수 있습니다. 이는 3회 이상 질문할 경우(3명의 추락자 질문이 있어야 함) 서브 미션으로 새로이 발행 됨을 미리 고지합니다. 4. 한 번의 메인 미션 수행으로 3번의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질문에 관한 답변을 들은 뒤 새롭게 미션 수행을 하는 것으로 수행할 수도 있습니다. 5. 추락자여, 지칠 필요 없이 영원하라.
추가 정보
이곳은 우리가 추락할 세계가 아닙니다. 굳이 따지면 세계도 아닌, 그저 거쳐가는 장소로 보면 됩니다.
소녀를 비롯한 추락자들이 추락한 곳은... 어느 잡화점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다만 평범한 상점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 상점 주인의 모습부터가 기묘했고, 또 그가 추락자를 언급했기 때문에. 하여튼 오랜 시간동안 이것저것 구경하던 소녀는 다시 상점 주인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저기, 있잖아. 뭐 좀 물어봐도 돼?"
그리고 언젠가 주워놓고 있었던 물건, 비타를 건네며 말을 꺼냈다.
"여기서 엄~청 큰 곰탱이 못 봤어? 우리랑 같이 떨어졌을 텐데."
아마 다른 추락자들도 똑똑히 보았을 거다, 그 자칭 여왕이라는 곰이 같이 끌려들어온 것을. 그러나 사방을 둘러봐도 곰은 어디에도 없었으니. 이런 걸 물어봐도 되나 싶긴 하지만...
어디선가 들려오는 A.A의 목소리에 추락자가 돌아보려는 순간, 무언가가 허벅지에 부딪쳐 나뒹굽니다. 자세히 보니 이건 이빨이 달린 책입니다. 그리모어라고 불리는 책으로, 책은 추락자의 뒤에 숨어 이빨을 드러낸 채 개처럼 으르렁거리고 있습니다.
무슨 연유인가 하니, A.A가 책을 관리하다가 책 표지에 흠집을 냈다는 모양이군요. 이 그리모어, 매우 화가 난 것 같습니다. A.A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도움만 주면 이득을 볼 수 있게 해주겠다며 추락자에게 그리모어를 달래줄 것을 부탁합니다.
추락자, 어떻게 할까요? 그리모어를 달래는 방법, 추락자는 아나요?
보상 : 비타 2개, 정보.
0. 24년 7월 15일부터 24년 7월 21일까지 수행 가능(일주일 간) 1. 공백포함 500자 이상, 1회 수행 제한, 그리모어를 달래는 방식이 확실히 드러나야 함, 그 외 제한 없음. 2. 그리모어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용물(종이)을 흩뿌리거나 물어버리는 수가 있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3. 추락자들끼리 연합하여 그리모어를 붙잡아도 괜찮습니다. 4. 미션의 큰 틀을 망가뜨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든 자유입니다. 5. 미션 작성 시 해당 레스의 번호를 앵커해야 합니다. 6. 추락자는 어떤 것도 볼 수 없다.
그리모어 대소동이 짧게 지나간 뒤, 추락자들은 서로 모여 알게 된 정보를 주고 받기로 했습니다. 물론, 누군가는 아무런 정보도 얘기하지 않을 수 있지만, 또 누군가는 다를 수가 있겠죠.
그래요, 우리는 정보가 중요한 사이들 아니겠어요? 추락자들, 정보를 모아 보도록 해요.
보상 : 비타 1개, 모인 정보.
0. 24년 7월 15일부터 24년 7월 21일까지 수행 가능(일주일 간) 1. 글자수 제한 없음, 1회 수행 제한, Sub 6. 한결 같은 시간 수행 후 작성 가능, 그 외 제한 없음. 2. 자유로운 방식으로 정보를 주고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냥 정보만 툭 쓰고 가셔도 오케이입니다. 3. 미션 작성 시 해당 레스의 번호를 앵커해야 합니다. 4. 추락자는 무력하지 않다.
>>140 유이 아기를 어르듯 달래는 목소리에 그리모어도 마음이 한결 누그러진 것 같습니다. 그리모어는 슬금슬금 유이의 앞에 다가오더니 퉤! 종이 한 장을 뱉고 그릉그릉 고양이처럼 가르릉 소리를 냅니다. 그 모습을 보던 A.A가 감탄하며 종이는 유이에게 가져도 좋다고 말합니다. 종이에 적힌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돌연 허벅지에 와닿는 충격에, 늘 그렇듯 외마디 탄성을 내질렀다. 아프진 않아도 갑자기 튀어나왔으니 놀랄 수밖에. 여튼 충격의 주범인 이빨 달린 책...은 제 주인에게 몹시 화가 나 있다 하였고. 그것은 소녀의 뒤에 숨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지간히도 심기 불편한 모양이다. 주인의 상황 설명을 들은 소녀는, 잠깐 제자리에서 고민하다가 이빨 책을 향해 몸을 돌렸다. 자신은 없지만 일단 해보는 수밖에.
"으음~ 책댕아, 착하지, 착하지..."
그리고 책댕이라는 기묘한 별명까지 붙여가며, 두 손 뻗어 이빨 책을 달래려고 하는데... 실제 살아있는 동물을 달래본 적도 없으니 어설프기 그지없는 몸짓이었다! 이래가지고 효과가 있을지!
"말 잘 들으면... 어, 츄르 줄게...?"
그러면서 두어 마디 덧붙이는데. 방금 전까진 강아지 취급 해놓고서 이젠 고양이 취급이다... 물론 수중에 츄르도 없고. (그건 상점 주인이 알아서 하겠지!)
situplay>1597049543>255 윈터 “아이고, 이기셨구만요. 그럼 뭘 해드릴까. 그래, 정보를 하나 드립죠. 큰 정보는 아니지만요.”
그렇게 말한 A.A는 윈터에게 소소한 정보를 안내합니다.
“무언가를 할 때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새로운 것이 열리거나, 생기거나, 아무튼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요. 예? 무엇에 말이냐고요? 글쎄요?”
>>146 윈터 “아이고, 감사합니다요, 고객님!”
수수께끼의 알 - 열화판 구매 처리 되었습니다. (비타 차감 되었습니다.)
>>147 알레프 책댕이, 아니 책냥이, 아니 그냥이? 아무튼 무언가가 된 그리모어는 갸우뚱갸우뚱 몸체가 기울어지더니 곧 얌전해 집니다. 그리고는 왠지 알레프를 바라보는 것 같네요. 츄르를 빨리 달라는 걸까요? 그 사이 다가온 A.A가 그리모어에게 목줄(!)을 채우고 데려갑니다. 가면서 한 마디 던지는 것도 잊지 않네요.
“고객님! 고객님께서 향할 다음 세계는 그럭저럭 어렵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요. 뭐······, 저마다 다르겠지만요! 아이고, 그리모어야. 가자!”
A.A는 추락자들이 어디로 가는지 아는 걸까요? 끌려가는 그리모어는 배신감 가득한 표정은 아니지만, 그런 느낌으로 가는 길마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종잇조각을 흩뿌립니다. 흡사 눈물 같네요.
어느 곳으로 덩그러니 떨어졌다는 것만은 같으나─ ‘추락’과는 명백하게 다른 감각이 느껴진다. 주변을 둘러보자 보이는 것은 다른 추락자들과 정체 모를 그림자들, 그리고 이곳의 주인으로 보이는 누군가. ‘주인’은 무어라 차마 형언하기 어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누구던가, 외적인 면에 연연하지 않는 성정인 만큼 기이한 형상을 목전에 두고도 당혹감을 내보이지는 않았다. 다른 이들이 질문을 던지는 사이 그는 상점의 내부를 이리저리 다니며 둘러보았다. ……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모두 함께 빨려들어간 것을 보았는데도. 자리로 돌아온 그는 다른 추락자들을 따라 지불할 비용을 꺼내며 말했다.
“키는 이 정도에 털이 많고…… 발톱이 날카로운 추락자인데. 아, 다들 곰이라고 부르더라.”
’곰’이라고 하면 곧장 알아들을 수 있을 말을 빙빙 돌려서 한다. 곰은 일반적으로는 평범한 동물에 속한다는 것도, 곰이라는 동물의 명칭부터도 몰랐던 탓이다.
“그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알아?”
그리 묻고는 가만히 대답을 기다리는 사이, 문득 묻고픈 것이 하나 더 생겼다. 멀리에 있는 그림자 손님들을 일별하고는 물었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인간이 곰의 모습으로 변한 것도, 그 곰이 사람의 말을 하는 것도. 저마다의 세계에서 모인 이들이 당연하단 듯 소통하는 곳이니 그저 곰의 말을 알아들은 것뿐이겠지. 곰과 함께 일그러짐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녀도 우리와 같은 추락자라는 것을.
목소리가 들려온 곳엔 검은 정장 차림의 무언가가 서 있었다.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엔 달 없는 밤의 고요한 바다처럼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 소름 끼치는 검정뿐이다. 마땅히 두려워야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이 궁금했다.
퍽. 바닥을 나뒹구는 기세가 심상찮다. 나동그라진 것이 언제였냐는 듯 그에게로 부딪쳐 온 무언가가 벌떡 일어선다. 다리 뒤로 돌아가 숨어 버린 그것, 그러니까…… 움직이는 책? 그가 의문을 갖기가 무섭게 주인장의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듣고 나서 자세히 살피자니 표지 면에 흠집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A.A의 난감한 심정도 이해가 가지만 도망치는 책의 마음에도 만만찮게 심정이 동해서, 그는 그리모어에게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레 말했다.
“다친 데는 없어? 괜찮아?”
제 뒤로 숨은 책을 억지로 끌어내려 하지는 않았다. 자세 역시 구태여 바꾸지 않고 가만히 선 채로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삐죽삐죽 드러난 살벌한 이빨에도 아랑곳않고 어르는 목소리는 퍽 상냥했다.
“저 사람이랑 잠시 떨어져 있으면 화가 풀릴 것 같아? 조금 더 이렇게 있을래?”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책의 시점에서 A.A가 보이지 않도록 슬쩍 몸을 비틀고는, 그가 천천히 몸을 낮추었다.
“하지만 A.A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야. 그러니까 진정이 되면 저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주지 않을래?”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춘 채 하는 말을 들어 보면 그는 말로 책을 달래기로 정한 모양이다. 여기까지는 서로 사이좋게 지내라는 둥의 뻔한 화해 종용인 듯했지만, 그가 문득 목소리를 낮추었다. 책에게만 들리도록 몰래 속삭인 말은…….
“……하지만 무조건 용서해 주라는 건 아니야. 그래도 기분이 풀리지 않는다면, A.A한테 보상을 요구하는 건 어때? 너는 이미 다쳤으니까, 아팠던 만큼 사과를 받고 네가 원하는 것도 더 달라고 하자. 어때?”
“곰 말입니까? 아까 저 고객님도 그렇고, 왜 이곳에서 곰을 찾는 건지 모르겠군요. 어라, 그러고 보니 본 것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디로 갔더라······? 제 기억력이 좀 좋지 않아서 말입니다. 아이쿠, 비타는 감사합니다요! 아이고, 고객님, 물건은 눈으로만 봐주십쇼!”
그렇게 말한 A.A는 재빠르게 자리를 피해버립니다. (2/3)
그러다가 빠르게 돌아온 A.A가 이어진 질문에 답하는 걸 잊었다는 듯이 대답합니다.
“저 고객님들은 ■■■이기 때문입니다요! 원래 저렇게 생긴 건 아닙니다만, 뭐. 그렇게 생각해도 괜찮겠군요! 아이고, 고객님! 만지면 안 된다니까!”
A.A가 말하는 ■■■는 추락자들이 여태 들은 ■■■와는 조금 다른 단어 같습니다.
>>152 윈터 A.A는 윈터의 말에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곧 내민 비타 1개를 받아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잠깐만입니다요.”
가까이에서 만져보는 A.A의 얼굴은 당신이 느끼는 감정, 혹은 느낌 그대로일 것입니다. 사람의 피부처럼 느껴지던, 아무런 것도 느껴지지 않고 그저 손이 통과하던지 말이지요.
>>153 영 영의 설득에 마음이 끌린 걸까요. 그리모어가 그릉그릉거리며 영의 다리에 제 몸을 마구 부벼댑니다. 이것은······! 흡사, 고양이 같은······! 어쨌든, 그리모어는 영의 피해 보상의 개념을 잘 이해한 것 같습니다. 영의 신발 위로 퉤! 종이 한 장을 뱉은 그리모어가 총총총 A.A를 향해 다가갑니다. 그리고 파업 선언을 합니다! 세상에나!
“도,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신 겁니까요, 고객님······!!!”
A.A는 훌쩍거리며 그리모어를 데리고 사라집니다. 그나저나 이 종이, 읽어볼까요? 종이의 안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비ː아벨은 기어코 파멸을 불러올 것이다.]
>>154 윈터 윈터의 말에 A.A가 깨갱, 기가 죽습니다. 그리모어는 더 해달라는 듯이 열심히 청기를 흔들고 있습니다. 이 청기, 응원봉인 걸까 싶네요. 이윽고 그리모어는 자신이 여기가 다쳤다는 듯이 표지를 촥 펼쳐 이빨이 다닥다닥 붙은 종이 안쪽(입 안)을 내보입니다. 어라, 분명 표지를 다쳤다고 한 것 같은데, 왜 입 안을 보여주는 걸까요?
가까이 들여다 보면, 윈터는 어떠한 정보를 얻게 됩니다.
[탑을 무너뜨려서는 안 되나, 때에 따라 무너져야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좀 더 지켜보자하니, 어느 샌가 다가온 A.A가 그리모어를 착 덮고는 재빠르게 데려가며 사라집니다.
situplay>1597049543>287 알레프 두근두근 비밀상자! 주황색 리본이 달린 상자를 열자, 안에서 나오는 것은······! 빠바바바밤!
노란 포션 2개였습니다.
알레프, 노란 포션 2개와 빈 녹색 상자 1개 획득.
>>150 영 “감사합니다요, 고객님! 우하하하!”
두근두근 비밀상자 1개, 선택 무기권 1개, 초록 포션 1개 구매 처리 되었습니다. (비타 14 차감 되었습니다.)
“아차, 무기입니다요! 원하시는 단검입니다요. 이게 고객님과 어울릴 것 같군요.”
〔모르타의 단검〕 렐릭 등급의 모르타가 사용했다는 단검. 검날의 예기는 예사롭지 않지만, 베인 사람에게 상처는 주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소유자에게 돌아오는 기능이 달려 있다. 모르타는 수명이 다한 대상이 어떻게 죽는지를 결정하던 이로, 이 단검에 베이면 상대의 수명 중 일부를 엿볼 수 있다. 이 대상의 수명이란 생명체가 아닌, 무생명체에게도 통한다.
>>151 알레프 “아휴, 이걸 사주시다니. 소중한 인연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군요.”
추락자의 거울 구매 처리 되었습니다. (비타 20 차감 되었습니다.)
>>155 윈터 랜덤 무기권 2개, 선택 무기권 1개, 비타의 인형 1개 구매 처리 되었습니다. (비타 21개 차감 되었습니다.)
윈터가 뭔지 모를 글들이 잔뜩 적힌 종이를 찢자 하늘에서 뚝 무기가 떨어집니다. 무기는 윈터의 발 앞에 널부러집니다.
1. 랜덤 무기 〔다트〕 일반 등급 중에서도 최하위 등급의 다트다. 진짜다. 다트다. 그것도 세트가 아닌 한 개다. 빨간 꼬리깃이 달린 다트로, 던져서 맞히면 생각보다 아프다. 뾰족한 끝에 찔리지 않도록 조심하자.
2. 랜덤 무기 〔이리라의 투척용 표창〕 양산품 등급의 투척용 표창이다. ‘이리라’라는 이름의 추락자가 만든 것으로, 던진 후 맞춰야만 원하는 문구에 따라 다시 돌아오는 기능이 있다. 문구는 종이에 적어 표창의 끝에 끈으로 달아야 한다.
>>157 라클레시아 테시어 비타 인형 1개, 수수께끼의 알 - 열화판 1개, 선택 무기권 1개, 초록 포션 2개 구매 처리 되었습니다. (비타 51 차감 되었습니다.)
situplay>1597049543>288 라클레시아 테시어 “흐음, 이것 참. 어쩌면 가장 어울리는 무기일지도 모르겠군요. 아차, 구매하신 것에 따라 이것도 같이 드리겠습니다요.”
〔이동하는 이의 왼손잡이용 권총〕 렐릭 등급의 왼손잡이용 권총이다. 권총에 오른손잡이니, 왼손잡이가 뭐 있냐마는, 이것은 있다! 그야 왼손으로만 사용할 수 있으니까. 미래에 존재하던 추락자의 애장품 중 하나로 총 6발의 총알이 들어 있다. 총알은 다 소진했을 경우에만 24시간 후에 다시 자동으로 채워진다. 이 총의 홀수 번째 총알에 맞은 사람은 다치지 않지만, 짝수 번째 총알의 위치로 이동하게 된다. 홀수 번째 총알은 무조건 생명체에게 맞혀야 하며, 짝수 번째는 무생명체에게 맞혀야 한다.
〔폭발하는 이의 오른손잡이용 권총〕 렐릭 등급의 오른손잡이용 권총이다. 권총에 오른손잡이니, 왼손잡이가 뭐 있냐마는, 이것은 있다! 그야 오른손으로만 사용할 수 있으니까. 미래에 존재하던 추락자의 애장품 중 하나로 총 3발의 총알이 들어 있다. 총알의 크기는 새끼 손가락 한 마디만 하지만, 파괴력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다. 한 번 맞힌 곳에서부터 연쇄폭발이 세 번 일어난다. 3발의 총알을 전부 맞힐 경우, 상대의 몸은 너덜너덜해져 있을 것이다. 총알은 다 소진했을 경우에만 24시간 후에 다시 자동으로 채워진다.
〔감정되지 않은 DMR〕 감정되지 않은 DMR(지정사수소총)이다. 계열은 M14 계열. 현대식 무기로, 6배율 스코프가 달려 있다. 감정되지 않아 어떤 능력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이 총은 그냥 평범한 소총으로 보인다.
〔잊혀진 폭탄(1회용)〕 양산품 등급의 어느 잊힌 세계에서 사용하던 작은 폭탄. 아기 주먹만한 크기지만 그 살상력은 가히 뛰어나다 할 수 있다. 던지거나 밟는 식으로 충격을 주어 사용할 수 있다. 이 폭탄이 유용한 점은 사용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만, 같은 아군에게는 피해를 줄 수는 있다. 1회용 물품이다.
〔성자 유피르의 눈물〕 렐릭 등급의 마체테. 전투의 여신의 성자로 불리는 유피르가 사용하던 마체테다. 기본적으로 소유자와 떨어졌을 시, 되돌아오는 기능이 있다. 마체테의 끝에는 방울이 달려 있는데, 소유자를 적대하는 자가 나타날 경우에만 방울이 울린다. (평소에는 방울이 울리지 않는다.) 상대가 정말 ‘적’인지는 소유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이 마체테가 ‘눈물’로 불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유피르가 사용할 때마다 상대의 피가 눈물방울처럼 흘러내렸기 때문이라고.
situplay>1597049543>456 영 구매한 비밀상자 다이스 88 (캡틴 다이스 23) 두근두근 비밀상자! 회색 리본이 달린 상자를 열자 안에서 나오는 것은······! 빠바바바밤!
감정되지 않은 이동석 1개였습니다.
영, 감정되지 않은 이동석 1개와 빈 녹색 상자 1개 획득.
situplay>1597049543>668 A.A 알레프 비밀상자 다이스 32 (캡틴 다이스 94) 두근두근 비밀상자! 연노란색 리본이 달린 상자를 열자 안에서 나오는 것은······! 빠바바바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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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프, 감정되지 않은 이동석 1개와 빈 녹색 상자 1개 획득.
situplay>1597049543>688 A.A 라클레시아 테시어 비밀상자 다이스 75 (캡틴 다이스 94) 두근두근 비밀상자! 흰색 리본이 달린 상자를 열자 안에서 나오는 것은······! 빠바바바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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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클레시아 테시어, 랜덤 악세사리권 1장과 빈 녹색 상자 1개 획득.
situplay>1597049543>720 알레프의 축복! 영 정보 A.A는 영을 보며 잠시 고민하더니 이야기합니다.
“숫자가 낮다고 무조건 나쁜 것이리란 법은 없습니다요. 물론 높다고 좋을 수도 없겠습니다만······.”
situplay>1597049543>727 알레프의 축복! 알레프 비밀상자 다이스 76 (캡틴 다이스 15) 두근두근 비밀상자! 붉은색 리본이 달린 상자를 열자 안에서 나오는 것은······! 빠바바바밤!
비타의 인형 1개였습니다.
알레프, 비타의 인형 1개와 빈 녹색 상자 1개 획득.
situplay>1597049543>734 알레프의 축복! 라클레시아 테시어 비밀상자 18 (캡틴 다이스 46) 두근두근 비밀상자! 은색 리본이 달린 상자를 열자 안에서 나오는 것은······! 빠바바바밤!
〔감정되지 않은 이동석〕 감정되지 않은 이동석이다. 이동석이라 하면, 사용했을 때 어느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게 가능하다는 모양이다. 상태에 따라 돌아가기만 할 수도 있고, 왕복이 가능할 수도 있다. 다만 기본적으로 1회(왕복의 경우 왕복 포함)만 사용이 가능하다.
〔랜덤 악세사리권〕 랜덤을 좋아하는 사람은 모두 모여라! 어쩌면 소유자에게 알맞는 악세사리가 나올지도 모른다. 물론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종이에 불을 붙여 날리면 허공에서 악세사리가 톡 떨어진다. 악세사리에는 특별한 기능이 달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이곳에서 나오는 악세사리는 최대 감정되지 않은 악세사리까지 나온다. A.A에게 판매하려고 해도 A.A는 무기가 아니라 사주지 않는다는 모양이다.
1. 라클레시아 테시어 랜덤 악세사리 〔양후의 보석 팔찌〕 양산품 등급의 추락자 ‘양후’가 만든 보석 팔찌. 두 개가 한쌍으로, 서로 다른 사람이 나눠 끼면 상대의 상태를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새끼손톱만한 가넷으로 보이는 보석이 한 개 달려 있는 심플한 디자인의 금색 팔찌. 양산품 등급이지만, 정작 만들어진 개수는 몇 개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한 사람이 두 개를 다 끼고 있을 경우엔 그냥 꾸미는 용도로만 사용되는 모양이다.
2. 라클레시아 테시어 랜덤 악세사리 〔팔찌〕 일반 등급의 평범한 팔찌다. 어떤 효과도 없는 것 같다. ······정말로 없는 걸까? 누군가 이 팔찌에 관하여······ (이 뒤의 설명문은 읽히지 않는다.)
혼란스러움에 사람을 피하려고 알 수 없는 물건들로 빼곡한 선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고 했더니. 거기, 고객님! 제발 좀 도와주십쇼!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뛰어들어와 다리에 툭 부딪힌다. ..우아악! 볼썽사나운 비명과 함께 툭 주저앉을 뻔 한 걸 겨우 면하고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를 하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이, 이, 이빨 달린 채애액〰〰!"
이, 이젠 물건까지 스스로, 우, 우, 우, 움직여요〰! 기겁하며 책을 피해 다리를 빼느라 유난이다.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모습이 제법 사나워서, 혹여나 잘못 다가갔다가 물리는 모습만 자꾸자꾸 머릿속에 떠오르고 만다. 반쯤 폴짝거리다시피 책을 피?하고? 있으면 이젠 커다란 늑대 모습을 한 가게 주인장까지 선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도망칠 데도 없이 막혀 버리고. 안색은 대번에 파리해져서, 이젠 자극하지 않으려면 움직이면 안 되겠다 그 자리에 석삭처럼 굳어가지곤 식은땀만 뻘뻘 흘리는데. ...뭐, 뭐라고, 이걸 달래 달라고요.....〰?! 모, 못 할 것 같은데요〰!! 차마 말은 못 꺼내고 으아, 으아, 이상한 신음만 삼키듯이 뱉는.
".......이, 이이, 있잖아~..."
겨우 쥐어짜낸 목소리로 책?에게 어찌어찌 말을 걸어본다. 작은 고양이나 강아지 달래듯 부드러운 말투로 달래려는 것 같기는 한데, 책이 자세를 바꿀 때마다 뭔가에 찔린 것처럼 연신 움찔대는 걸 보니 영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 그래도 지금 하지 않으면 얘가 온 가게를 돌아다니고... 그러면 나는 또 얘를 만나고... 그러면, 그러면.. 머릿속에 범벅된 좋지 않은 결말. 그런 신세만은 면해야지, 울며 겨자먹기로 또 말을 붙였다.
"주, 주, 주인..님? 이, 미, 미안하대~.... 다, 다, 다음번부터는..... 아, 아아 아프게 아, 안 한대."
>>171 니아 니아의 말에 그리모어는 킁! 하는 소리를 냅니다. 불만스러운 것 같지만 한 번쯤 믿어보겠다는 걸까요? 킁킁! 몇 번 같은 소리를 내던 그리모어가 A.A를 향해 돌아갑니다. A.A는 감사 인사를 하며 그리모어의 입 안에서 종이 한 장을 북 찢더니 니아에게 내밉니다.
책은 기분이 나아졌고, 더 나아가 조언해 주었던 피해 보상까지 훌륭하게 요구한 모양이다. 그는 사라지는 책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 뒤 그리모어가 뱉은 종이를 집어들었다. ……그러나 문장을 읽을 수는 있었지만 이해할 수는 없었다. 암시하는 내용이 지나치게 두루뭉술하다. 눈 가늘게 하며 고민해보던 것도 잠시, 때마침 한쪽에 모인 추락자들이 보여 그리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알지도 모르겠다.
시점은 조금 흘러, 서로 알게 된 정보를 나누는 현장. 그도 자신이 보고 들은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다.
“여왕이 어디로 갔는지 물었는데, A.A도 잘 모른다고 했어. 하지만 여기에 없다고는 안 하더라.”
“그리고 저기 있는 다른 손님들은…… 이번에도 ‘들리지 않는 무언가’이기 때문에 모습이 안 보이는 거라고 했어. 지난번 세계에서 들었던 그 말이랑은 다른 뜻인 것 같아. 숫자가 낮거나 높다고 해서 무조건 기대하는 결과가 나오는 법은 없다고 하기도 했고…… 아, 그리모어가 나한테 이걸 뱉고 갔어.”
마지막으로는 뜯어진 종이를 들어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쓰인 내용이라면 당연히 이러하다.
[비ː아벨은 기어코 파멸을 불러올 것이다.]
제 아는 모든 것을 풀어놓았건만 의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을 것만 같다. 결국 다시금, 누구도 명쾌히 대답하지 못할 질문만 반복되었다.
분명 나는 이전에 보았던 그 균열이 일으킨듯한 일그러짐에 빨려들어갔다. 허나 정신을 차렸을때는 흔히 볼 수 있는 상점에 들어와있었다. 어디론가 이동한다는 기색조차 느껴지지 않았음에도 순식간에 장소가 바뀌어 있는 것은 꽤나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다양한 물건이 놓여있는듯한 가판대와 그것을 구매하기 위해 구경을 하고 있는 존재들. 그 곰이 추락자였던 것처럼 그 존재들도 꽤나 다양한 형체를 띄고 있는듯 했다.
" 안녕하세요. "
그리고 들려오는 우렁찬 인삿말. 그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시선을 향하니 평범한 엘프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에도 엘프가 있나? 물론 다른 세계에도 엘프들이 존재한다고 했으니 그도 마찬가지인 것일까. 하지만 일반적인 엘프라기엔 무언가 기시감이-.
" 이게 여기서 쓰이는 화폐였나보군요. "
그가 내가 갖고 있던 무언가를 가리키며 비타라고 칭했다. 이것의 이름은 비타, 지금까지 계속해서 중요한 자리에 놓여있던 수상쩍은 물건이었다. 왜인지 챙겨야만 할 것 같아서 챙겼던 것인데 사용처는 이곳이었던 것 같았다. 그는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선 이것을 지불해야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나는 가지고 있던 비타 하나를 건네어주면서 말했다.
상점 내부는 많은 물건들과 그것들을 사러 오는 존재들이 있어서 꽤나 복작복작한 편이었다. 추락자들의 상점이라는 위치에 걸맞게 다양한 세계에서 흘러들어오는 물건들이 있었기에 나는 그것들을 구경하기 위해 가판대 사이를 지나다니며 물건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다 들린 주인장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고,
" 윽. "
무언가 허벅지에 부딪히는 촉감에 다리 아래를 바라보았을땐 이빨이 달린 책이 그의 뒤에 숨어서 주인장을 바라보고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A.A의 실수로 표지에 흠집이 난듯 싶었다. 그나저나 이빨이 달린 책이라 상당히 연구 가치가 있어보였기에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실뻔한 것을 참아낸 나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선 말했다.
" 자자, 이번엔 놀랐겠지만 절대 나쁜 마음을 가지고 그런게 아니니까. 아마도 지금 흠이 난 것도 분명 잘 고쳐줄꺼야. "
쪼그려앉아서 그리모어라는 이름의 책을 바라본채 나는 표지를 살살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설마 이 책을 해부한다던가 할 생각은 아닐테니까. 아마 내 손에 걸렸다면 ...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나는 A.A의 상점에 며칠 간(어쩌면 하루도 안 되는 시간)동안 머물렀다. 왜 명확한 시간이 아닌, 며칠이라는 두루뭉술한 단어를 사용했느냐면, 이 상점 내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다른 추락자들은 졸리면 자고, 깨어나면 다른 추락자들과 정보를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끔씩 A.A에게 비타를 주어 정보를 구매하는 추락자도 있었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다 A.A는 이벤트 성으로 주사위 대결을 제안 했는데, 이 주사위란 것이 참 독특했더랬다. 평범한 주사위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보통 장사꾼들은 자신이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던데, A.A는 다른 건지 모르겠다.
주사위 대결 또한 며칠 간 이루어졌지만, 그걸로 날짜를 계산하기는 어려웠다. A.A가 말하는 ‘오늘’은 흔하게들 말하는 의미의 ‘오늘’과는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나는 길거나 혹은 짧은 휴식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는 이 생활에 무뎌질 무렵, A.A에게 이곳을 나가고 싶다고 이야기 했고, A.A는 선뜻 한쪽에 놓인 ‘문’을 가리켰다. 그는 문이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었지만, 나와 다른 추락자들은 알 수 있었다. 그건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그야 그럴 수밖에. 문은 벽이 아닌 허공에 계단과 함께 나타났으니 말이다.
나는 계단을 올라 문을 열었다. 문 너머는 새까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 너머로 가면 어느 세계에 ‘추락’하는 걸까? 알 수 있는 것은 없었지만, 망설일 필요도 없었다. 등 뒤에서 A.A가 상점을 찾아오는 방법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들려왔다.
나는 문 안으로 발을 들이고, 이윽고 새로운 세계에 추락한다.
내가 떨어지는 곳은 이전의 세계와는 확연히 다른 곳입니다. 하얗지도 않고 잿가루가 내려앉은 것처럼 짙은 재색의 건물들, 남쪽 방향에 벽이 보입니다. 벽 너머의 구역들은 형형색색의 전광판들이 빛나고 있었지만 그 외의 곳은 불 꺼진 세계처럼 고요할 뿐입니다.
우리의 등 뒤로 어둑어둑한 하늘이 펼쳐집니다. 날씨는 좋은 말로도 화창하다 할 수 없습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입니다. 지금이 밤이라서 그런 걸까요? 문득 우리는 바라본 하늘에 뜬 달이 크고 작은 사이즈로 두 개가 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더 생각할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추락합니다. 그러나 무슨 문제일까요. 우리의 몸이 어딘가로 끌어당겨지는 듯한 인력이 느껴지더니, 우리는 하늘에서 서로 갖은 방향을 향해 흩어져 추락합니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붙잡았다면 함께 추락할 수도 있었겠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하고 홀로 추락한 사람도 있었겠지만요.
이제 우리는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이곳에 있을 ■■■를 잡아야 할 것입니다.
보상 : 비타 3개.
0. 24년 7월 24일부터 24년 8월 9일까지 수행 가능(16일간) 1. 서로 붙잡는다면 추락자들은 같은 장소, 같은 구역에 추락할 수 있습니다. 2. 추락자들은 이곳에선 ‘천사’ 혹은 ‘천사님’이라고 부릅니다. 3. 도시의 이름은 비ː아벨, 세계는 바벨이라 불리는 세계입니다. 4. 이전의 세계처럼 이곳에는 이종족은 없으나, 추락자를 배척하는 이는 드문 편입니다. 5. 총 13구역으로 나뉘어진 세계 중, 일부(5구역에서 6구역으로 넘어가는 사이)를 벽이 가로 막고 있습니다. 벽이 세워진 곳을 기점으로 안을 ‘인 바벨’, 밖을 ‘아웃 바벨’이라고 칭합니다. 6. 인 바벨은 1부터 5까지의 구역, 나머지가 아웃 바벨이며, 숫자가 작을수록 치안이 좋고 높을수록 치안이 낮으며 크리쳐가 등장합니다. 7. 추락자에게는 충분히 크리쳐를 잡을 수 있는 힘이 있으나, 이곳의 주민들은 추락자들이 위험한 일을 하는 것을 말리고 싶어 합니다. 8. 천사의 날개는 뜯겨져 추락하고 만다.
추가 정보
8월 10일, 11일 진행이 있습니다. 혹여 캡틴의 여건이 좋지 않아 진행할 수 없을 경우, 임의로 미션과 활동을 바탕으로 한 다음 미션이 제출 될 예정입니다.
세계는 디스토피아 크리쳐 SF 라는 분위기입니다.
아웃 바벨(벽 밖)의 사람들은 추락자를 극단적일 정도로 칭송하고 환영하나, 인 바벨(벽 안)의 사람들은 다소 반기는 느낌은 아닙니다.
벽을 기점으로 나뉘어진 구역들은 같은 구역(인 바벨, 아웃 바벨)의 경우 오고가는 것에 제한이 없습니다. 이는 추락자(천사)이기 때문이지만, 인 바벨로 들어오길 바라는 아웃 바벨 사람을 추락자 임의로 데리고 들어올 수는 없습니다. (추락자가 보증해도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알레프와 영, 그리고 라크의 질문에 지친 걸까요. A.A가 곰의 행방에 관하여 안내합니다. 짝, 하고 능숙하게 A.A가 박수하자 한쪽 벽이 투명한 유리벽으로 바뀌더니 그 안에 동물원에 전시된 것처럼 곰이 있는 것이 보입니다.
“저 고객님, 아니 추락자는 너무 날뛰어서 말이지요. 자신의 세계를 돌려달라느니 뭐라느니.”
“실제로 세계의 주인도 아니면서, 추락자인 주제에 너무 나대지 않습니까?”
A.A는 어쩐지 곰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유리벽은 매직미러 같은 건 아니었는지, 곰은 추락자들이 보이자 우다다 달려와 유리벽을 쾅쾅 내리칩니다. 물론 그 정도로 부서지지는 않겠지만, 어쩐지 조금 안쓰러워 보이기는 하네요.
어떡할까요, 추락자. A.A에게 곰을 풀어달라고 해볼까요? 뭐, 그가 어떤 조건을 내걸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보상 : 비타 1개. (+@)
0. 24년 7월 24일부터 24년 8월 11일까지 수행 가능(18일간) 1. 공백포함 500자 이상, 1회 수행 제한, A.A를 설득하거나 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함, 그 외 제한 없음. 2. 곰이 있는 유리벽 안쪽은 방음이 잘 되어 있는지 곰의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3. 세계에 추락하고 난 이후에도 이 미션 수행이 가능합니다. 4. 미션의 큰 틀을 망가뜨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든 자유입니다. 5. 미션 작성 시 해당 레스의 번호를 앵커해야 합니다. 6. 그러나 좋아하지는 않았지.
그렇게 말한 A.A는 잠시 기다려 보라고 하더니, 곧 확성기 하나를 가지고 와 상점이 전부 울리도록 소리칩니다.
“이 고객님께서 다이스 1을 띄웠습니다. 때문에, 제가 이곳에 방문하신 모든 분들에게 선물 하나를 해드리고자 합니다.”
그렇게 말한 A.A의 옆에 여러 색상을 가진 오팔 같은 보석이 들은 상자가 생겨납니다. A.A는 영에게, 그리고 다른 추락자들에게 해당 보석을 건네줍니다.
“자, 고객님들. 오늘로 주사위 대결은 끝입니다. 대신 이 귀한 것을 나눠 드리니 이걸로 만족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보석을 깨뜨린다면 고객님들이 추락하신 세계에 남아 있을 수 있으니 신중하게 사용하십쇼.”
추락자, 어떡할까요? 받을까요? 아니면 거절할까요?
보상 : 비타 1개, 세계에 머무르는 보석 1개가 주어지거나 주어지지 않거나.
0. 수행 기간 없음. 1. 글자수 제한 없음, 1회 수행 제한, 받거나 받지 않는 내용이 있어야 함, 그 외 제한 없음. 2. 보석은 오팔이라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3. 보석을 받지 않아도 비타는 지급됩니다. 단, 보석 없이 세계에 남을 수는 없습니다. 4. 숫자 1이 나왔으므로 앞으로 3회 남은 다이스 이벤트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습니다. 5. 미션의 큰 틀을 망가뜨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든 자유입니다. 6. 미션 작성 시 해당 레스의 번호를 앵커해야 합니다. 7. 그는 손해를 본다.
추락자들이 각각 추락하고 난 뒤, 아이들은 추락자들을 볼 때마다 즐거운 듯 소리칩니다. 우중충한 분위기 속에서도 아이들의 미소란 환한 법이죠. 하지만또라는 건 조금 기이한 느낌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찾아야 할 ■■■이 이미 이곳에서 어떠한 행동을 개시한 건 아닐까요?
우리는 아이들에게 천사에 관하여 물어볼 수 있습니다.
보상 : 비타 1개
0. 24년 7월 24일부터 24년 8월 11일까지 수행 가능(18일간) 1. 글자수 제한 없음, 1회 수행 제한, 그 외 제한 없음. 2. 아이들 외형은 자유롭게 설정 가능합니다. (인간에 한해) 3. 미션의 큰 틀을 망가뜨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든 자유입니다. 4. 미션 작성 시 해당 레스의 번호를 앵커해야 합니다. 5. 행동하지 않는 천사는 천사가 아니란 말인가?
이곳에서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하루? 며칠? 몇시간? 이제는 아예 시간 감각이 없어진 듯하기도 했다. 슬슬 나갈 때도 된 것 같다.
"A.A, 이제 나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A.A는 말없이 곧장 문을 가리켰다.
뭐야, 저 문은 원래 없었을 텐데.
갑작스레 허공에 나타난 계단과 벽이 무척이나 이질스러웠다. A.A가 만들어 낸 것인가?
어떤 추락자는 많이도 추락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 문을 열게 된다면 또다시 추락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작별 인사와 함께 유이는 문을 열고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추락했다.
그가 새로 추락한 곳은 그야말로 無색의 경치와도 같다고 말할 수 있었다. 중간중간 보이는 전광판 같은 것들은 형형색색으로 빛이 났으나, 총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차가운 무채색의 도시였다.
그래도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리 차가워 보이지는 않았다. 한 명을 붙잡고 이곳이 어딘지 물었더니, 비ː아벨이렸다. 아무래도 도시 이름인 듯싶었다. 그리고 낯선 사람의 행색에 그는 이윽고 유이에게 '천사님'이냐며 물었다. 아무래도 추락자를 칭하는 말인 것 같았다. 이곳에서는 추락자에게 호의적인 듯했다. 어쩌면 극한까지도.
추락자인 걸 알았으니, 물어보는 데에는 더욱 거리낌이 없을 것이다. 유이는 이김에 그에게 더 자세한 정보를 물었다. 이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