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금을 모티브로 하고있지만 잘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상황극판의 기본 규칙과 매너를 따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를 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상대를 지적할때에는 너무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15세 이용가이며 그 이상의 높은 수위나 드립은 일체 금지합니다. ※특별한 공지가 없다면 스토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 30분~8시쯤부터 진행합니다. 이벤트나 스토리가 없거나 미뤄지는 경우는 그 전에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이벤트 도중 반응레스가 필요한 경우 >>0 을 달고 레스를 달아주세요. ※계수를 깎을 수 있는 훈련레스는 1일 1회로, 개인이 정산해서 뱅크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훈련레스는 >>0을 달고 적어주세요! 소수점은 버립니다. ※7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 경우 동결, 14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경우 해당시트 하차됩니다. 설사 연플이나 우플 등이 있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존 모카고 시리즈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따라서 기존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있고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서도 똑같이 그 설정이 적용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R1과도 다른 스토리로 흘러갑니다. ※개인 이벤트는 일상 5회를 했다는 가정하에 챕터2부터 개방됩니다. 개인 이벤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사전에 웹박수를 이용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는 계수 10%, 참여하는 이에겐 5%를 제공합니다.
🤔 근데 느와르썰 1번(금고털이프리랜서)은 저 그림에 대입하려면 좀더 시간이 흘러야겟군 처음 가서 부탁할 때 저렇게까지 당돌하게 굴 수 있을 리 없어 죽고싶은게 아니라면야...(?)
금고털이쪽을 저 그림에 부드럽게 연결시키려면 흠 외근나가고싶다...?(도망칠 생각 만만)⬅️이런건가 싶기도 하고
>>4 헤헤 마히다. 우물우물 샌드고양이
>>10 아 머리짚이 아니라 뭐임뭐임 되는거야?ㅋㅋㅋㅋㅋ 이것도 좋아 아 귀여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기억상 K가 적발이었던가 했는데(아닐시 도게자) 금이랑 정반대 느낌 나서 더 맛있다... 이렇게 싸우다가 캡틴과 언니를 위해서는 엄청나게 협력하는 적폐썰죄송합니다~~
그리고 뭐..다들 아시겠지만 우리 스레. 일단 20명이 넘거든요. 활동하는 분들. 물론 한번에 20명이 다 활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아무리 못해도 10명 이상이 떠들면 잡담에 다 답변하긴 힘들어요. 거기다가 하루종일 상판만 보면서 새로고침만 연타하는 이는 제가 볼땐 없고...저도 지금도 스트리밍 보고 있고..그래서..(흐릿)
사실 적당히 놓치고 적당히 스루되어도 이젠 다들 그러려니하고 넘기는 경지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44 당연하게도, 100%의 확률로, 고민 없이. 애린이를 구합니다. 월이는 지금까지 잃은게 너무 많아요. 물론 다른 사람들이 다치고, 죽는건 안타까운 일이죠. 월이는 분노할겁니다. 하지만, 바로 눈앞의 소중한 한 사람도 못구하면서 다른 사람을 구하겠다고 하는것을 더 싫어합니다. 이 생각은 바뀌지 않을거에요.
...라고 말한 순간 머릿속으로 먼 과거의 보고서 내용이 스쳐지나갔다. 아, 왜 이 놈이고 저 놈이고 백발이어서... 그래도 그게 중요한 게 아니긴 하지. 형이 천재인 게 중요한 거지.
"그거랑 제가 참여하지 않은 전투도 대강은 알죠, 저 얼마간 부실지키미였잖아요. 그때도 형 순발력 쩔었던데요?"
그건 그거고, 철형은 이번에도 내 말을 잘 들어줬다. 심지어 이번에는 진지하지만은 않게 이야기했는데도. 안심이 되면서도, 고마웠다. 어떻게 보면 이번에는 내가 떼를 쓴 거다. 소중한 사람이 걸린 일에도 마약을 먹지 말아달라고. (물론 마약 먹는 것보다 압도적을 좋은 방법이 있어서 떼쓸 수 있었던 거기도 하지만) 그래도 믿음직스럽다고, 같이 싸우자고 말해줬다. 그 마음에 보답하고 싶었다.
"당연하죠! 철형이랑 형 소중한 사람 괴롭히는 것들은 제가 다 달콤하게 만들어버릴 거예요!"
...물론 그것도 대상이 제정신인지 아닌지 봐가면서 방법을 골라야겠지만. 내가 다시는 폭주하는 사람은 달콤하게 만들지 않을 거야. 혜우 때 사건을 되새기며 치를 떨려는 찰나,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요? 나에게 있어 천재의 대명사는 철형인데? ...라는 말이 나올 뻔했다가 생각의 노선을 틀었다. 하긴, 천재 천재 하면 낯부끄러울 수 있지.
"그럼 천재가 영 어색하면 아이디어뱅크... 아, 꾀주머니 어때요? 꾀주머니."
그거랑은 별개로, 형이 이어서 한 말은 - 내가 형의 꾀보다 더 나은 꾀가 생각날까 하는 의구심이랑은 별개로 기분이 좋았다. 나에게 있어서 천재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그것도 나보다 훨씬 먼저 저지먼트 활동을 해온 선배에게 동등한 입장이라는 인정을 받은 것 같아서.
"그럼 역시 공부 열심히 해야겠는데요? 나도 똑똑해지면 형이랑 머리 맞댔을 때 같이 좋은 수를 떠올릴 수 있을 테니까요."
커리큘럼에 알바에 공부에... 별모양으로 갈릴 것 같지만, 열심히 해봐야지! 솔직히 저지먼트 활동을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생각은 없었는데, 형에게 힘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니, 평소에도 열심히 해두고 싶어졌다. 내가 웃자, 형도 웃었다. 장난치면서 자주 들었던 그 웃음소리다. 그래도 느낌은 퍽 달랐다. 하긴, 지금 생각하면 전투를 치를 때마다, 지금 이 대화를 하는 중에도 형에 대한 생각은 점점 변해왔다. 지금 시점에선 크게 변할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그 와중에, 형이 현명한 소리를 했다. 그러네!
"그러네요! ...형 나르려면 역시 커리큘럼에 역기들기 추가해달라고 해야겠다."
가만 있자, 입문용으로 들만한 역기가 어느정도더라... 농담처럼, 놀리듯이 말하긴 했지만, 꽤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형 골밀도는 모르겠고 근육량으로 볼 때, 내가 맨몸으로 나르다간 어찌 나르긴 해도 속도도 느리고 땅에 질질 끌릴 거다. 만약의 경우는 대비해둬야지. 형은 슬슬 일어나보려나보다. 나랑 진대하느라 애썼다고 말하려는데, 이어지는 장난스러운 물음.
나도 히쭉 마주 웃어보이며... 부장님도 안 칠 몹쓸 개그로 답하고 말았다.
"불만 없고, 물은 있어요!"
...조금 후회되려고 하는데, 이럴 수록 뻔뻔하게 나가야지.
"...갈 곳은 있어요. 이따 엄마들이랑 공연 같이 볼 거라서요. 오늘 나랑 진대하느라 고생했어요. 고맙구요.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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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이걸로 막레!>< 판이 넘어가버리긴 했지만... 히히 @철현주 수고 많았어! 그리고, 고마워! 실은 철현이 개인스토리를 준비하고 있다고 듣기도 했고, 새봄이가 진대를 청하게 된 부분이 개인스토리에서 해결되어야 할 갈등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못한 채로 마무리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건설적이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노력해주는 게 느껴져서 돌리는 동안 엄청 고맙더라구 ㅋㅋㅋ 그래서 얘기하고 싶었다! 다시 한번 수고 많았어><!!
>>0 "오늘은 그나마 멀쩡하고 효율적인 훈련이라 다행임다..." [저번 성하제 때의 비밀 레시피를 사용한 꼼수라곤 죽어도 못 말하는거 같거든...]
그저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한 전자적인 문제 해결로 훈련을 삼은 것에 대한 뒷이야기가 밝혀질까 두려웠기에, 그녀와 여학생은 여성이 자리를 비운 사이임에도 에둘러 표현하며 작게 키득거렸다.
"...그치만 에바잖아여... 어디에서 수주받은 건지도 모를 커다란 금속덩어리랑 매일같이 10선을 뜨고 싶진 않슴다..." [그러고보니 그 출처가 좀 궁금하긴 했거든...] "......" [너 지금 무슨 생각 하는지 다 알고 있거든? 안하는게 좋을 거거든,] "슬마 즈가 그 이상한 기곗덩이 받아오는 회사의 정체를 몰래 넷상에서 찾아낼 거라고 생각한 검까?" [...토씨 하나도 안 틀리고 맞는거 보면 정확한거 같거든.] "즈는 토씨보다 토끼가 더 좋은데여..." [뭐래니.]
어차피 여학생이 근처에 있다면 엄한짓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어떻게든 문제의 그곳을 찾아내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75 처음에는 동월이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주겠죠. 물론 비판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결국은 사람을 구했으니 크게 뭐라하는 사람은 없을꺼에요! 하지만 동월이가 처치하지 못한 괴이를 퇴치하기 위해 또 다른 사람이 죽는다면! 그 사람의 연인이 동월이에게 너 때문에 죽었다고 비난한다면!! 과연 동월이의 반응이 어떨까 궁금해요!!
>>96 은우의 입장에선 세은이가 위크니스이니까 그것을 감당하고 세은이가 위험하지 않게 잘 지켜내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한다..로 보고 있다는 것이 1번째 이유. 그리고 세은이는 이런저런 고생을 많이 했으니, 더 이상 고생을 시키고 싶지 않다가 2번째 이유라서... 좀 그렇게 까다롭게 되었다고 하네요!
당신은 만화 데스노트에서 새로운 캐릭터로 등장했습니다. 성여로는 데스노트의 존재를 우연히 알게 되어 주인공 라이트와의 만남을 통해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라이트와의 관계는 처음에는 갈등을 겪지만 서서히 협력 관계로 발전하며, 결국 라이트를 도와 키라를 막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자신도 데스노트의 영향을 받게 되어 삶의 선택을 고민하게 됩니다. 최종적으로 성여로는 라이트와 함께 키라를 제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1184916
데스노트...? 여로땅이 이건 좀 많이 새롭다.. 난 여로땅이 데스노트에 나오는 사신이거나 데스노트를 주워서 키라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출장 뷔페로 차려진 음식들이 가득한 파티룸 한 구석, 디저트 코너 옆에, 작은 테이블 위에, 형형색색의(각각 말차가루, 코코아 파우더, 견과류, 얼그레이 등으로 맛을 낸) 동글동글한 사브레 쿠키가 일곱개씩 들어있는 작은 비닐 포장봉투가 여러개 놓여있다. 사브레를 포장한 봉투에 묶여진 분홍색 리본에는 1부터 7까지 숫자가 랜덤하게 적혀있다. 그리고 맨 앞에는, 새봄이 손글씨로 작성한 듯한 팻말이 놓여있다.
[성하제 뒤풀이 기념으로 약소하지만 준비해봤어요! 리본에 적힌 숫자의 정체는, 뒤풀이 마지막 날 공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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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한 훈련 레스 겸 소소한 이벤트? 라고 해야하나 히히 궁금한 사람들은 1부터 7까지 다이스를 굴려봐도 좋다>< 먹는 레스는 필수 아님!
>>154 캐퍼시티 다운만큼은 아니지만 초능력 연산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전파를 흘려보내고 있답니다. 그래서 거기에 수용된 이들은 능력을 쓸 수가 없어요. 막 머리 아파서 고통스럽게 만드는 정도는 아니고... 그냥 연산하려고 하면 저절로 두통이 나서, 막 연산을 못하도록 방해하는 느낌으로요.
>>156 어떤 관계냐라고 해도...높으신 분들이 한둘이 아니라서... 일단 대표이사만 이야기를 하자면 이용관계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일단은 대표이사는 유니온을 이용하고 있으니까요.
>>166 앗..... 저런. 모카고 월드는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없나보구나 ㅠㅠㅠㅠㅠ 도입이 시급하네... 법이 있어도 어기는 사람이 나오는 판에, 시선이 좋지 않을 뿐이지 그걸 제제할 법률이 없다면 청소년들한테 대단히 위험하겠다... (그래서 나리, 한결쌤이 태오한테 그랬던 거구나...) 새봄이는 법관도 국회의원도 아니니 현 상황에서의 최선은 호신용품을 잘 들고다니며, 호신술을 최대한 연마하는 거겠는걸, 성범죄자(리얼 월드 기준) 옷을 달콤하게 만드는 것도 통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 말이야... 답변해줘서 고마워!
>>168 서연주 아이구야 뭘! 새봄이가 서연이를 잘 따르게 됐기도 하고 (사고쳤는데도 의도와 만회하려는 노력을 봐주는 착한 형이니까!) 어떻게 보면 비슷한 처지다 보니 오지랖부린건데>< 그리고 도움이 될 지도 확실치 않다보니... 히히 보답을 받기엔 대단한 일은 한 건 아니지만 희망사항을 밝히자면 언젠가 한번 일상 해보자구><
>>176 엄, 내가 이해를 잘 못하는 것 같아서 확인차 다시 물어볼게ㅠㅠㅠ(늦은 시간에 미안! 졸리면 내일 답해줘도 무방하다.) 대강, 엄한짓(성관계만? 아니면 성적이거나 연애적인 함의가 있는 모든 접촉이나 언어?) 만 안 하면 사귀어도(사귀는데 털끝하나 만지지 않기만 하면) 불법은 아니라고 들었는데, 내가 이해한 게 맞을까? 괄호친 부분에 대한 부분도 전자인지도 궁금해! 부연설명은 빼고, 그렇다 아니다로만 답해주면 고마울 것 같아><
그리고 이건 태오주에게 물어봐야 할 부분같긴 한데, 태오랑 나리, 한결쌤은 일반적인 케이스(태오와 쌍방의 연애감정이 포함된 관계) 가 아닌걸까? 형부가 둘 같은 말도 본 것 같고 해서 셋이서 삼각관계인 줄 알았거든...(머쓱
>>214 이걸 단순히 예/아니오라고 하기에는 솔직히 케이스가 너무 많기 때문에 딱 하나 케이스만 있다라고 할 수는 없다는 점을 부디 양해해주시길 바라며....
일단 현실에서의 기준과 동일해요. 그 부분에 대해선. 다만 제가 상판을 뛰면서 14살 30살 / 12살 20살 이런 케이스로 연애를 하거나 서사를 푸는 케이스는 한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 저런 케이스가 나오면 당연히 현실에서처럼 불법이에요. 이런 경우는 합의건 뭐건 죄다 불법이에요. 현실처럼.
현실에서도 제가 알기로는 17살부터인가는 일단 불법은 아닌 것으로 알거든요. 여기서부터는 아씨 그래도 윤리/도덕적으로 이건 아니지! 이런 느낌으로 보는 느낌이에요.
>>221 오호 그렇구나, 캡이 말한 것 같은 경우는 우리 어장 캐릭터들 나이 제한상 나올일은 없겠지만... 새봄이는 17살... 이니 올해부터 긴장해야겠네 ㄷㄷ(국법이 19세 미만으로 확 올라가서 새봄이가 아니라 나쁜 어른들이 긴장해야 하게 된다면 정말 좋겠지만ㅠ 현실도 그러지 못하니깐 말이지...
아무튼 충분한 답변이 되었다! 고마워><
>>222 아하,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구나! 다행이다>< 맞아 맞아, 삼각관계이고 쌍방 사이에 연애감정이 오가는지가 궁금했던 거였어. 충분한 답변이 되었고! 답변해줘서 고마워><
저를 보시겠다고 한 것은.. 의외라고 생각되네요. 그도 그럴 것이... 저는 여러분들을 만나는 것을 꺼리는 편이잖아요? 당연히 부르지 않을 줄 알았답니다... 네? 그렇기 때문에 불렀다고요? 사실을 말하시는 솜씨가 좋으시네요... 옛날 이야기를 해달라... 음.. 제 옛날 얘기는 별로 재미없는데 말이지요. 어린 시절 인첨공에 와서 커리큘럼 받는 거랑... 시간이 지나고.. 일도 생기고.. 그래서 대우가 좀 풀렸을 때 스트레인지로 탈주에 가까운 걸 했다.. 같은 건... 재미없잖아요?
아. 그 꽤 좋은 꼴을 하게 한 목걸이를 어떻게 만들었냐.. 당신의 마마께서 설명해주신 걸 말할 수 밖에 없긴 하네요. 당연하지만 섬유의 소재 특허를 사들였고요, 거기에.. 일종의 정보를 입력하는 것도 필요했고.. 그래서 정보를 목걸이 내부에 전부 입력하기는 힘들어서 외부 슬롯을 만들었다고 해요. 그리고 슬롯에 삽입되는 칩은 프로퍼티 쪽과의 협업을 통해서 삽입 이후에 함부로 빠지거나 걸리적거리지 않게 하기 위해 결합적인 것도.. 있다고 하고.. 보안통신관련은 일렉트로키네시스와 텔레파시...그리고 자이로키네시스양자ASTC의 차원도 협업을 했다고 한답니다. 많은 기술력이 집합해서 그런지... 이게 진짜 기술력으로 있을 수 있나? 같은 종류이기도 하다네요? 차라리 간단하게 그런 설정을 부여하는 게 더 빠르긴 하겠죠...
그정도라고.. 말하는 게 좀 더 설득력은 높겠지요? 아마 그럴 거에요.
수경의 오늘 커리큘럼은 어두운 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동할 것이 어두운 곳에 있다면 그 어둠 속에서 연산의 범위를 어떻게 잡느냐. 그리고 정교하게 하기 위해서는 연산할 때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대략적인 건 알아야 합니다.
살아있는 생물의 뼈를 뽑을 순 없어도 생선의 뼈는 전부 바를 수 있어요.
그러면 상대방에게 최저한도의 옷을 입힌 채로 공중에 날려버리면 꽤나 위협적일수도 있지 않을까요? 손을 잡혔더니 옷만 남았네! 비명은 저 위에서 들리는데! 가 가능할지도 모른다고요
어제 생각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기도 하고 주무시러 가셨어서 추가 질문을 좀 더 드릴게요.
철현주는 일상에서 서연이가 철현이의 흑화 버튼을 누르길 기대하시나요? 안 누르길 기대하시나요? 어느 쪽이든 상관없으신가요?
쪽지 구깃 건을 일상에서 풀어 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을 때 저는 오해가 생기더라도 잘 얘기해서 뭘 오해했는지 파악하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 바랬어요. 그래서 서연이가 흑화 버튼을 누르는 원흉이 되는 건 가능하면 피하고 싶어요. 서연이는 물론 저까지 가책이 들 거 같아서요. (어차피 갠스로만 풀릴 실타래인데 어설프게 건드렸다가 서연이가 철현이를 엿먹인 존재로 전락하는 건 싫어요ㅠㅠㅠㅠㅠㅠ)
그래서 흑화 버튼 누르기를 철현주께서 기대하시는 게 아니라면, 저는 서연이가 버튼을 피하도록 운전하는 데 도전할 거예요. 그리고 제가 정말로 에바인 레스를 작성한다면 당근 꼭 흔들어 주시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면 부디 손속을 봐주십사(굽신굽신) 원만하게 오해를 푸는 방향으로 이어 주십사 부탁드리고 싶어요. 이 점 괜찮으실까요?
반대로 서연이가 버튼을 누르길 바라신다면, 음... 서연이가 철현이한테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 자기가 할 수 없는 영역은 포기하고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고 있어서 생기는 혼란, 자기 능력 개발도 철현이한테 괴로움을 안길 수 있다는 가책과 거북함 같은 걸 느끼고 있어서 어디로 튈지 저도 모르겠는데 그 점은 괜찮으실까요?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삐 소리 이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연결된 이후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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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국 성운과 통화를 할 수는 없었다. 핸드폰이 방전된 건지, 일부러 그런 건지는 단정지을 수 없지만, 성운의 핸드폰 전원이 꺼져있었기 때문이다. 핸드폰으로 연락하는 건 불가능할 모양이다. 어디로 간 걸까? 집으로 돌아갔을까? 부실로 갔을까? 연구실? 아쿠아리움? 유준에게 뭔가 말했을까? 노을을 보러 간 걸까? 그는 노을을 좋아하니까··· 그러나 노을은커녕 이제야 해가 뜬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때 문득 네 뇌리를 스치는 말이 있었다. 언젠가 성운과 함께 전철을 탔을 때 그가 지나가듯 했던 말이다.
“생각이 많아지면, 3학구 내부순환선을 타곤 해···”
아무런 까닭도 말하지 않고, 네 옆을 마다하고 어디론가 훌쩍 멀어져버린 소년. 말하지 못할 괴로움이 있는 걸까. 그는 네게서 도망쳐버리고 말았다. 네가 그를 붙잡기를 원하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면 한번 시도해볼 가치는 있겠다. 이 병원에서 가까운 곳에 내부순환선이 지나가는 전철역이 하나 있다.
그리고 네가 그 전철역에를 갔다면, 너는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개찰구 너머 승강장의 한 벤치에 앉아있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왜소한 체격과 새하얀 꽁지머리의 소년의 뒷모습을. 등을 수그리고, 무릎에 받친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모습을. 그는 차마 열차를 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멀거니 앉아서 괴로운 고민에 잠겨있었던 것이다. 그때 객사 내의 스피커를 통해 안내방송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금 첨단대. 첨단대 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The train for IHTU is approaching.
그가 얼굴을 파묻고 있던 손에서 고개를 들어올리는 게 보였다. 열차가 천천히 감속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 스크린도어를 향해 발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평소와 비슷한 하루였다. 수업을 들었고 커리큘럼을 진행했고 알바하러 가기 전에 부실에 잠깐 들렀다. 사 놓은 먹거리들을 잘들 먹고 있나 궁금했어서. 그냥 그런 하루였다.
그랬는데,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봐 버렸다. 속에서 뭔가 우그러들면서 굴러떨어지는 감각. 당혹감인지 수치심인지 분노인지 이름 모를 감정들이 휘몰아쳤다.
항의하고 싶었다. 그러나 혼란스러웠다. 내가 항의해도 되는 상황인가? 서연은 제 흑역사를 털어놓았을 때를 돌이켰다. 그때 철현은 지극히 평범하게 염려해 주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 해 주었다. 그런 사람이 저렇게 반응하는 건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일 거다. 감사 인사고 뭐고 상대가 불쾌함을 느꼈다면 잘못한 거다.
그래서 서연은 웃었다. 적어도 입꼬리엔 힘을 한껏 주었다.
" 아차차, 쪽지는 뒤처리가 애매하네요. 그 생각을 못 했네~ 주세요. 제가 버릴게요. "
구겨진 쪽지에 시선을 고정하고 손을 내미는 서연이었다. 목소리는 어찌어찌 평상시와 비슷한 것도 같다. 내민 손은... .dice 1 2. = 1다.
1. 다행히 떨리지 않았 2. 떨리고 있었
" 사과는, 나중에 제대로 드릴게요. " " 제 잘못 확실히 파악하고 같은 잘못 되풀이 안 할 방법 생각해 낸 다음에요. "
쪽지 받고 돌아간다. 내가 뭐라고 썼는지 다시 확인해 본다. 그래도 내 잘못을 모르겠으면 선배가 쪽지를 구겼을 때의 상황을 능력으로 읽어 본다. 일단은 거기까지가 계획이었다.
어느 전설적인 권투 선수가 그랬단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지금의 서연이 딱 거기 해당했다. 계획은 명쾌했다. 구겨진 쪽지를 받아 나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움츠러든 목소리가 서연의 머리를 때린 순간, 계획은 뭉개졌다. 상황 파악이 안 됐다.
미안해? 의도적인 게 아니야?? 내 잘못으로 화난 게 아니란 의미일까??? 그럼 이건 왜 구겨????
알고자 한다면 방법이야 간단하다. 돌려받은 쪽지를 사이코메트리로 읽으면 끝이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서연의 능력 때문에 떨어져서 걷자는 철현에게 서연은 몇 번이고 말했었다. 사생활 안 캔다고. 그래 놓고 지금 사이코메트리를 사용해 버리면 기만 아닌가.
한편으론 딴 마음도 있었다. 현실을 직시하기보단 회피하고픈. 선배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읽으면, 감당이 될까? 물론 알고야 있다. 선배한테 난 도움은 안 되는데 스트레스는 되는 후배란 걸. 하지만 막연히 아는 것과 능력으로 확인까지 하는 건 다른 타격일 거다.
그러니 어떻게든 웃는 낯 유지하고 나가는 게 최선이겠지만... 무슨 미련일까.
" 제가 잘못한 게 아니라면, 물어봐도 돼요? 선배가 무슨 상황이고, 어떤 감정이었는지. "
오늘은 수업 듣는 중에 안티스킬에서 호출해서는 지도를 찍어 주더라. 가 보니 맙소사! 물이 흥건한 바닥에 조각난 다기에 사람이 쓰러진 모양을 본떠서 붙인 테이프까지 딱 봐도 살인 현장이다. 간담이 서늘해 벌벌 떨고만 있으려니 안티스킬이 얼른 능력을 쓰란다. 속으로 수박을 연발할지 주기도문이라도 읊을지 헷갈린 채 테이프 근처, 피가 안 튄 자리를 골라 더듬었다. 다과를 준비하던 피해자의 입을 뒤에서 장갑 낀 손이 틀어막고, 피해자의 목이 꺾이고, 오싹해서 찡그리는데 황당한 게 보였다. 공격한 사람이 안티스킬 제복을 입고 있다? 가짜 아닌지 의심했지만 진짜 안티스킬이다. 이런, 수박;; 안티스킬이라고 안심하는 걸 이용해서 살인을 저지른 거야? 그걸 보고하려니 안티스킬이 잠시 기다리라더니 전에 커리큘럼 할 때 가져왔던 거짓말 탐지기를 작동시키더라. 내가 사이코메트리로 본 게 참말인지까지 확인하는 거까지가 수사상의 절차라나? 그래서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도 나한테 시켰었구만. 안티스킬도 은근히 일하기 번거롭겠다만, 됐고 그 수박이나 얼른 잡혀라!!
철현에게 던진 질문은 희망 고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건 모조리 지레짐작이지, 당사자에게서 들은 건 아니라고. 당사자는 전혀 다른 입장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돌아온 건, 어색한 웃음과 맥락 모를 사과. 다시 한 번 속에서 뭔가 굴러떨어졌다. 구긴 것 자체는 후회 없지만 내 눈에 띄게 할 마음은 없었다, 딱 그 정도의 배려일까. 모르겠다. 듣기 무섭다. 이유가 뭐든 말하길 원치 않는다면 멈추는 게 맞기도 하다.
탈력감이 몰려왔다. 언젠가 커리큘럼에서 그런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어떤 능력자의 사이코메트리가 상시 발동되면서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순간순간 여과 없이 치솟는 것들까지 속속들이 보게 되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결국 제 능력은 봉인한 채 자기 속내를 실시간으로 만인에게 공개하는 길을 택했다고. 능력은 쓰지도 않았는데 왜 그 이야기가 생각나는지.
" ...변명 좀 해도 될까요? "
그렇게 물으면서도 철현을 마주볼 자신은 없었다. 서연은 창가에 기대어 창 밖을 내다보았다. 초가을이라고 푸르게 높아진 하늘에 눈이 시다. 눈치 없이 눈물이 날 거 같아 머리를 젖혔다가 구겨진 쪽지를 다시 읽었다. 어떤 내용이 문제였을까. 글씨가 부얘서 잘 안 보인다. 결국 눈을 감고 지껄이기 시작한 서연이었다.
" 죄송해요. 이 쪽지... 기분 상하시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그저, 혜우가 납치됐을 때 정말 아무것도 못 했거든요. 공격당했을 땐 무서워서 숨기 바빴고 사람들이 다치도록 말리지도 못했고 납치범들에 대한 단서를 얻으려도 나오는 건 없고... 근데 선배랑, 새봄이랑 있었을 땐 막막한 게 한결 덜했어요. "
" 무쓸모인 게 현타 와서 퇴부서를 썼을 때도... 난 고작 하룻밤 느끼고도 힘들어하는 좌절감을 선배는 몇 년이나 겪어 오셨겠구나. 그런데도 저지먼트 부원으로서 함께해 주셨구나. 그게 감사하고 든든하고...... 죄송했어요. "
감은 눈에 물기가 번져 간다. 울어도 될 상황 아닌데. 서연은 깍지 낀 손에 이마를 기댔다.
" 제가 선배라면 못 그럴 거 같거든요. 내가 괴롭고 불안한데 저 같은 후배 챙기는 거요. 저 때문에 속상하시면 속상하셨지 좋을 일은 없으시잖아요. 저도 알아요. 불공정한 거... 그렇다고 제가 리라처럼 필요한 걸 쓱쓱 만들어 드릴 수 있는 능력도 아니고...... "
여기까진 그래도, 할 수 없는 건 포기하는 게 편하다, 가지지 못한 걸 욕심내지 말자고 받아들일 만하다. 문제는......
" 그런 일이 있어선 절대 안 되지만!! 만약에 선배 머리에 이상이 생겨도 혜우처럼 회복시켜 드릴 수 있는 능력도 아니죠. "
부질없는 탐욕이라고 암만 타일러도 혜우의 능력은 못내 부러웠다. 같은 저지먼트니 혜우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내 손으로 도울 수 있는 부분이 하나쯤은 있었으면 했다.
그러나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 서연은 두 눈을 비빈 뒤 안경을 고쳐 썼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다.
" 선배한테 좋을 거 하나 없고 선배 힘드실 거 아는데도 제 기분만 내세워서 죄송해요. "
안데르: 으으으으 그런데 가는 것보다는... 케이스: 님 테스트 상브르 안에서만 죽치고만 있느니 저랑 같이 밖도 좀 나가요! 안데르: 그냥 강제로 데라고 가셔도 저는 반항 안하잖아요.. 케이스: 아 그렇네요? or 수경?: 그런곳에 가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지요. 케이스: 아 그래도 좀 가서 말을 제대로 토해내고 그러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요.
>>368 철현주 어 어라 @ㅁ@;;;;;;;; (동공지진) 글쎄요... 혜우 납치 사건 이후인 건 확실한데... 시점을 정확히 안 적어 놔서 서연이가 언제 flex했을지 잘 모르겠어요(먼눈) 성하제 끝난 뒤라고 해도 뭐... 되지 않을까요? ^^;;;;;;;;;;;;; (땀땀)
[변명 좀 해도 될까요?] 이 한마디에 속이 울렁거리며 머리가 새하얗게 바뀌었다. 싸울 땐 쌩쌩 돌아가던 머리가 지금은 석고상이 된 듯 굳어버려 어떠한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야. 아니라고 제발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 아니라고
머리 속에 아니라는 말이 요동치고 있지만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지금 하는 이 모든 것이 그저 서연에겐 기만으로 들릴테니까 손끝과 발끝이 저려 오기 시작하며 토할 것만 같았다.
입 안에 쓴 맛이 감돌았다. 자신의 멍청한 열등감으로 대체 몇 명이나 상처를 주는 것일까 적어도 상처를 줘선 안되는 이들에게만 상처를 주고 있었다. 이제 갓 저지먼트에 들어와 활약을 한 지 얼마 안되는, 그런 순수한 친구들에게만 상처를 주고 있었다. 새봄이에게도 서연이에게도,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을 믿어주고 있는 후배들을 철현 자신의 손으로 상처 입혔다.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선배인가?
진짜 강한 사람들은 상대하지도 못하면서 상대적으로 약자인 후배들에게만 상처를 주고 있다.
레벨이 낮다는 열등감 따위가 아니다. 그런 고상한 마음이 아니다.
철현은 그저 스스로 자신보다 아래라고 생각했던 후배들이 위로 올라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 보다 못난 이가 있어야 마음이 편안하고 자신보다 잘난 이는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추악한 본성일 뿐이다.
은우과 한양이에게 공부를 핑계로 일거리를 떠넘긴 것도, 눈 앞에 있던 샹그릴라를 거절하고 주먹을 날린 것도, 그저 자신보다 잘난 이, 레벨이 높은 이를 당황시키고 조롱하고 힘들게 하고 싶다는 악한 마음에 불과했다.
자신의 본성을 직면하니 스스로가 한심하고 때리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다. 약하다 쓸모없다는 기분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남들에게 무시 받는 느낌이 얼마나 거지 같은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결국 후배에게, 그것도 철현 스스로의 손으로 그런 상황에 몰아넣고 말았다.
입을 열심히 벌리며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배에서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성대도 울리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저으며 입을 움직여보려고 할 뿐이었다.
서연의 말을 그대로 듣고 있는 건 너무나 끔찍했다. 과거의 약하지만 열정 넘치던 철현이 현재의 약하고 열정도 식어버린 철현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서연이 눈을 비빈 후 나가려고 하자 눈 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아니야!!”
마지막 남은 기력을 쥐어짜서 문으로 나가려고 하는 서연의 손목을 세게 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올리고 자신의 이마를 세게 박았다. 서연의 손가락이 완전히 펴졌다면 손바닥이 얼얼했을 것이고 조금 구부려졌다면 손톱에 이마가 긁혔을 것이다. 조금 더 구부러졌다면 손가락에 통증이 있었겠지. 하지만 그런건 철현의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철현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제발..” “진짜 아니야..” “믿어줘...” “진짜 그런거 아니라고....”
철현의 몸이 떨리며 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사이코 메트리든 뭐든 써서 읽어봐.” “아니, 읽어줘.” “단 한순간도 난 널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서연의 손목을 잡고 있던 철현의 악력이 세졌다.
“내가 제일 약한데, 무슨 자격으로 남을 무시해.” “나 따위가 누굴 싫어할 수 있겠냐고!” “난 혼자선 아무것도 못해!”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제발...” “그러지 마...”
그의 손이 풀리며 아래로 축 쳐졌다. 손 발이 저릿저릿해지며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가쁜 호흡을 하며 울음을 참았지만 눈이 빨갛게 변했다. 수치심과 미안함이 한데 뒤섞인 마음이었다.
성하제가 끝나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파티룸에서 뒷풀이를 하던 즐거운 시간도 한순간에 흘러갔습니다. 어쨌든 이제는 정말로 가을 시즌입니다. 아직 낙엽이 붉게 물들지는 않았지만 잠자리가 여기저기서 날아다니는 것 같지 않나요? 여름의 그 날 이후, 특별한 사건 없이... 아니. 물론 성하제에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요. 하지만 그걸 제외하면 특별히 무슨 일이 있진 않았습니다.
정말로 간만에 저지먼트 멤버들은 딱 평화롭게 학교 순찰 및 불량학생 선도 정도의 일만 하면서 보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은우와 한양 역시 각각 다음 세대로 자리를 넘겨주기 위해서 인수인계 자료를 준비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3학년들은 천천히 은퇴를 준비하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자연히 현 2학년 세대들이 점점 주역으로 바뀌어가는... 이른바 세대교체의 시기입니다.
오늘은 저지먼트 정기회의 날입니다. 정기회의라고 해도 특별히 무슨 일이 있진 않습니다. 각각 특이사항이 없는지, 그리고 공지해야 할 사항이 없는지 정도의 간단한 이야기만 하는 시간이었으며, 오늘 역시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가을이 지나면 우리 3학년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현직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알고 있지? 우리들이 완전히 물러나기 전에, 배워야 할 것이 있는 이들은 최대한 물어서 익히도록 하고... 내년 부장과 부부장이 될 일은 슬슬 일이 늘어날테니까 그건 알아두고 있어. 지금부터 조금씩 나와 한양이의 일을 맡길 생각이니까. 아직은 간단한 것들 위주지만, 겨울이 되면 거의 대부분을 체험하게 될거고 쉬운 것은 아니니까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해두렴."
공지를 마치고 이제 막 해산을 하려던 찰나였습니다. 갑자기 모두의 핸드폰이 삐리릭, 삐리릭. 하고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전화라도 온 것일까요? 아니요. 확인을 해보면 카톡에 영상 메시지가 하나 들어온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무려 Live입니다. 말 그대로 실시간으로 방송을 하는 것일까요? 그런데 이상합니다. 스팸이라고 생각하고 닫으려는 이들은 화면이 전환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해당 영상을 확인하는 것 이외에는 조작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무시를 하자니 핸드폰이 그야말로 계속 진동을 하니 보통 시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조차도 어떻게든 무시하겠다고 한다면 참을 수도 있겠지만 대체 무엇일까요? 확인을 하는 것이 좋을까요?
있는 대로 나오는 하품을 참느라 두 손으로 얼굴을 반나마 가리길 반복한 서연이었다. 졸려... 지루해서가 아니라 불가항력으로 졸려....... 생각 없이 따라간 뒷풀이에서 잠버릇 안 들키려고 밤을 꼬박 샜던 여파가 아직까지 있다.
그래도 자꾸 하품만 하는 건 민망하니까 볼이라도 꼬집어 보는데, 가을이 지나면 3학년은 저지먼트에서 손을 뗀다고 부장이 다시 한 번 얘기해 주었다. 그러네, 수능도 늦가을이니까. 가을 지나면 3학년들은 사실상... 치외법권(???)에 있게 되겠구만!!! 부부장은 대학엘 안 가신다니 이미 치외법권에 진입하신 거 같기도 하지만. 차기 부장은 청윤이라고 나 들어올 때부터 정해져 있었던 거 같고, 부부장은 누가 될까? 리라? 아니, 부부장보다...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최고참이 되는 거야, 나? 후배들한테 귀감이 될 만한 모습이라곤 없는데 이대로 괜찮은가!!! 쫄리지 않을 수 없는 서연이었다.
그때 폰 진동이 엄청 울렸다. 전화? 커리큘럼 시간도 아닌데. 확인해 보니 톡에 웬 라이브 영상이 올라왔다. 모르는 사람인데? 이거 영상 보는 이용자 개인정보 터는 수작 아냐?? 나가기 버튼을 띄우려는데, 어? 화면이 안 바뀐다. 뭔데? 먹통 됐냐? 핸드폰을 짐짓 흔들어 봐도 정지 화면 수준으로 그대로다. 이런, 수박??
그런데 둘러보니 부원 모두가 비슷한 상황인가 보다. 뭐야, 저번에 그 납치범들 수법이랑 똑같아? 저지먼트 톡은 왜케 외부인이 잘 접근하는 건데에에에에에..................... 이번엔 뭐 어쩌자는 건지 보자. 한숨을 푹 내쉬고 영상 시청을 시작하는 서연이었다.
지난 반년은 소소한 하루하루가 귀중하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게 되는 나날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평범한 업무를 하고, 바쁘고 정신없던 스케줄에서 한발 물러나 일상의 궤도로 돌아오면 그래도 조금은 마음이 안정되는 거 같다. 정기회의에서 별다른 안건이 올라오지 않는 것도 한몫했고.
그대로 끝났으면 참 좋았을 텐데.
"......또 뭐야?"
모두의 핸드폰이 동시에 울리는 소리. 심지어 재난문지도 아닌 카톡 알림. 이윽고 날아온 메세지마저 확인하면 리라의 표정은 빠르게 차가워진다. 예민하게 날선 목소리가 툭 하고 튀어나왔다.
"다 똑같은 거 온 거죠, 지금?"
핸드폰 화면을 뒤집어 모두에게 보이도록 한 리라는, 확인을 마치면 한숨을 겨우 삼키며 다시 채팅창을 들여다본다. 또 이딴 식으로 놀아나고 싶지 않은데.
지잉. 지잉. 지잉. 지잉.
시끄러워. 머리 아파!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긴 한가? 리라의 손가락은 영상을 재생한다. 또 누구야. 누구더라도 이제 와서 기분이 퍽 유쾌해지지는 않겠지만.
가을은 점점 붉어가고, 우리가 느끼는 냉기는 점점 차가워져 갔다. 다른 이들은 평소에 맡던 업무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왔겠다. 은우와 한양은 다음 세대의 부장과 부부장을 위해 슬슬 자리를 물려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야 이 둘도 겨울에는 마음 편히 졸업을 기다릴 수 있으니깐. 마치 동면을 위해 먹이를 비축하는 동물들,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 김치를 담그는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할까.
정말 떠나야 될 시기가 오긴 했구나. 이 가을만 지나면 나와 은우는 이제 일에 손을 완전히 뗄 예정이니깐.
" 들으셨죠? 여간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미리 말해두는데요. 제 스타일은..... 아직 부부장도 안 정해졌는데, 지금 얘기해봤자 회의만 길어지겠지. "
그건 그때 둘이 가서 천천히 얘기하자고. 그런데.. 부원들의 휴대폰이 울리네? 누가 단톡에 톡을 올렸나? 어차피 단톡에 얘기할 내용이면 그냥 이 회의를 이용해서 얘기하지. 그리고 회의시간에는 매너모드 좀.. 어떻게 한 명도 진동을 안 꺼.. 심지어 은우마저ㄷ.. 잠시만?! 나는 분명 진동을 껐는데?!
" 하.. 가장 만만한 게 저지먼트의 휴대폰들인가? 지겨운 것들.. "
" 퐁당- "
무엇인지 직감이 됐다. 어떤 녀석들이 저지먼트의 핸드폰의 보안을 뚫고 무슨 짓을 했다는 걸. 한양은 본인의 폰으로 확인하자니, 괜히 봐서 혈압만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한양은 자기 앞에 있는 물컵에 핸드폰을 퐁당 담가버린 것이었다.
한양이 물컵에 핸드폰을 빠뜨리는 것을 바라보며 은우와 세은은 멍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제는 저렇게 쿨하게 핸드폰을 빠뜨려버리는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물론 이제 레벨5니까 저렇게 해도 될지도 모르지만... 역시 조금은 아까운 느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한양을 제외한 이들은 모두 메시지를 확인했습니다.
라이브 방송이기에 일단 이곳에서도 채팅을 칠 수 있는 듯 합니다. 아니. 정확히는 접속하자 인터넷 방송 같은 창이 나타났습니다. 거기엔 정말로 수많은 채팅창들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동시 접속자는 얼핏 봐도 몇만을 넘었습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아무래도 저지먼트 멤버들에게만 보낸 것은 아닌듯 합니다. 이 정도라면... 인첨공 전체 사람들에게 다 보내기라도 한 것일까요?
화면에 떠있는 것은 검은색 상하의를 입고 있으며, 검은색 가면을 쓰고 있는 이입니다. 옷깃에는 깃털 모양의 뱃지가 붙어있었습니다. 유난히 그것만은 검은색이 아니었기에 눈에 더 확 띄였을지도 모릅니다.
채팅창에는 마구잡이로 [이거 뭐임?] [누구세요?] [아 핸드폰에 뭐한 거임 ㅡㅡ]
이런 글들이 마구잡이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딱히 답이 들어오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그 대신 검은색 가면을 쓴 누군가는 가만히 팔장을 끼고 카메라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내 그 작자는 팔짱을 풀고 입을 열었습니다. 들려오는 것은 기계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상대의 성별까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ㅡ안녕들하신가. 인첨공 여러분. 오늘 하루는 건강하게 잘 보내고 있나? 아니면 커리큘럼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가? 그것도 아니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목숨 때문에 공포를 느끼고 있나? 뭐가 되었건 이걸 보고 있다는 것은 초대에 응했다는 것이겠지?
ㅡ걱정들하지 마. 딱히 핸드폰을 해킹한 것이 아니니까. 그저 전파를 하이잭해서 강제로 이 영상을 띄우게 한 것 뿐이야. 해킹을 할 수도 있지만, 우린 그런 짓은 하지 않아.
ㅡ단지 오늘은 너희들에게 좀 알리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영상을 보내게 되었다.
ㅡ덧붙여서 내 이름은 K. '리버티'라는 조직의 리더다.
ㅡ일단 이쪽에서 질문을 하나 하도록 하지. 그대들은 인첨공이라는 곳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ㅡ천국이라고 생각하나? 지옥이라고 생각하나? 선택해주지 않겠나?
이내 화면 바로 아래쪽에 천국과 지옥 중에서 한가지를 누를 수 있는 단추 같은 것이 생성되었습니다. 굳이 선택하지 않아도 상관은 없을 듯 합니다. 일단 은우와 세은은 각각 버튼을 하나씩 눌렀습니다.
ㅡ덧붙여서 안 눌러도 불이익은 없어. 그냥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우리가 알리고자 하는 진실을 마주하기 전에, 그대들의 생각을 듣고 싶을 뿐이야.
ㅡ인첨공의 지독하기 짝이 없는 어둠... 너희들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비열하기 짝이 없는 시스템이라던가 말이야.
성운은 그렇게 말하며 핸드폰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핸드폰에서 커패시티 다운이 울려퍼지는 게 아니고서야 괜찮겠지. 그리고 동영상으로 최면을 거는 텔레파시 능력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없다. -성격과 이념의 모든 차이를 막론하고 여로와 민호 아저씨가 합작하면 되기야 될 것 같은데. 성운은 고개를 털어 머릿속에서 탄생한 어쩌면 인첨공에서 가장 끔찍할지 모를 콤비에 대한 생각을 떨쳐냈다. 그리고 그들이 대는 이름에, 성운은 4학구 사태 당시 잠깐 접촉했던 그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 이거 그 테러리스트들··· 잠깐만.”
성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 작자들이 꺼낼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성운은 당황한 표정으로 은우와 세은의 눈치를 살폈다. 아닌가? 또 똥촉인가?
─그렇다고 해도 지금 성운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성운의 능력은 이런 데에는 아무 쓸모 없는 능력이라. 성운은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잠깐 침울한 표정으로 시선을 내리고는 지옥 버튼을 눌렀다.
situplay>1597044541>666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십분가량 남아있었다. 핸드폰의 시간을 확인하고 난 금은 당신이 다가오고 있음을 모른 채, 문제없을 제 옷매무새를 괜히 다시 한번 다듬었다. 자신이 먼저 권했던 데이트라. 긴장하지 않으려 해도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마치 15주년 퍼레이드를 같이 보러 가자고 권했던 때가 떠올랐으니, 그때와 같은 감정을 가진 채 금은 깊게 숨을 골랐다. 머리도 차분하게 손질했다. 멋을 내자니, 그런 것에 익숙하지 않으리라. 촌스러워 보일 수 있어 보기에 적당히 좋은 차림도 했다. 그러니 당신이 좋아했으면 하며 바라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며 금은 당신은 어떨지 상상했으니, 상상만 했을 뿐인데 괜히 가슴이 두근 거림을 느꼈다. 그때 당신이 이름을 부르면 금은 당신을 바라보았고, 자신의 상상보다 더 아름다울 당신의 모습에 활짝 웃었다.
"아뇨, 아직 약속 시간까지는 많이 남았는걸요. 그리고 저도 방금 왔으니까. 괜찮습니다."
잡아오는 손을 금은 당연하게도 꼭 잡아 쥐었다. 미안하다는 당신의 그런 표정에 금은 고개를 슬몃 저으며 싱긋 웃어 보이는 것으로 답했다. 그러며 금은 황홀하다는 듯, 물끄러미 당신을 바라보았다. 그런 금의 눈동자에 사랑의 빠진 이 특유의 빛이 반짝이고 있음을 당신은 볼 수 있었을까. 금은 다른 손을 들어 당신의 옆머리로 가져갔으니, 땋은 옆머리를 스치며 내릴 적에 당신의 귓가를 살짝 스쳤다.
리라의 눈이 문득 세은을 향해 돌아갔다. 그 때, 세은이 뭐라고 말했었지. 깃털 모양 앰블럼을 달고 있는 사람을 보면 조심하라고. 분명 그렇게 말했었는데. 깜빡. 세은에게 조금 오랫동안 머물렀던 눈이 다시 화면으로 돌아간다. 뭐든 지금 이 자리에서 묻는 건 바람직하지 않겠지. 아마도.
"해킹이나 하이재킹이나... 얘네 바보인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해명하면서 그 증거로 다른 범죄를 고해다 바치는 꼴 아닌가. 리라는 화면의 버튼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끝내 아무것도 누르지 않은 채로 테이블 위에 핸드폰을 올려둔다. 아직 살아있는데, 천국이고 지옥이고 그런 게 어디 있을까. 현실이란 건 그렇게 딱 잘라 재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신 리라는 가을을 맞아 다시 몸에 두르고 다니기 시작한 펭귄 망토 담요를 벗어서 눈을 붙이겠다고 선언한 랑에게 덮어주었다. 잘 자라는 듯 가벼운 토닥토닥은 덤이다.
솔직히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다들 그러겠지. 하지만 시청하지 않을 자유도 없이 사방을 막아놨으니 어쩌겠는가? 스트레스로 혹사당하는 신경이 끊기지 않으려면 주의라도 돌려야겠다.
아, 이거 방수기능이 있는 핸드폰이었지? 물에 닿는 게 아니고, 아예 물에 담가버렸는데도 안에서 진동이 성가시게.. 잠시만?! 진동이 이렇게 강했던가?! 컵 쓰러지겠다!!
" ..... "
휴대폰을 담근 물컵이 강한 진동에 의해서 쓰러져버렸다. 문제는 그 컵에 담긴 액체가 단순히 물이 아닌, 콜라였던 것. 그 다음의 문제는 한양의 흰 셔츠가 쏟아져버린 콜라에 완전히 흥건해진 것. 마지막 문제는 그 셔츠는 교복이 아닌, 교복 대신 입고 온 나름 가격대가 나가는 셔츠였던 것.
한양은 말 없이 휴대폰을 켜서 녀석들이 올린 라이브방송에 들어갔다. 리버티가 말하는 것이 들리지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안 들었겠지. 한양은 몇 만 명의 채팅에도 불구하고, 채팅창에 닉네임인 'Seo Seoul'로 도배될 만큼 빠른타자로 도배를 하기 시작했다.
현대 공공시설 건축양식의 주류가 개방감을 중점으로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 이런 점에선 다행이었다. 네 예감은 적중해, 너는 곧 소년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내 들려오는, 열차가 제동하는 소리. 그가 일어서서 발걸음을 옮긴다. 고요한 역내를 가득 채우는 그 굉음에 네가 내려다가 만 목소리는, 그 소년에게는 닿지 않았다─ 아니, 닿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성운은 그 가운데서도 그를 부르다가 만 네 목소리에, 네가 선 곳에서도 보일 만큼 크게 움찔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형편없는 몰골이었다. 실컷 운 게 분명한 새빨갛게 터있는 눈가에 눈물로 엉망진창이 된 양 뺨, 공포에 젖어 창백해진 얼굴. 정확히 말하자면, 마치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 들통난 것만 같은 죄책감과 충격 어린 공포. 그러나 그 얼굴에 공포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쩔 줄 모르는 듯한 양가감정의 교착상태가 성운의 얼굴에 선명히 두드러져 있었다.
그 얼굴을 뭐라고 해야 할까. 대분류로 따지자면 그것은 공포의 범주에 들었다. 떨리는 시선과, 순간에 창백해진 얼굴. 그러나 그건 단순히 공포라고 할 수도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 들통난 것만 같은 죄책감어린 공포였다. 성운은 입을 껌뻑였다. 그의 뒤에서 객차는 완전히 멈춰섰고, 스크린도어가 입을 벌렸다. 그러나 성운은 문 안으로도 발을 들이지 못하고, 그렇다고 네게 발을 돌이키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양가감정의 교착상태에 빠진 채로 마비되어 있었다.
그래서 성운은 네 움직임에 몸을 고스란히 맡겼을 것이다. 네가 그대로 개찰구 앞에서 성운을 끌어안아버리면 객차는 누구도 태우지 않고 다시 문을 닫고는 무정하게 가속음과 함께 떠나갔을 테고, 네가 객차 안으로 성운을 끌어안고 들어갔다면 객차는 두 사람을 태운 채로 한산하여 가벼운 몸을 끌고 다시 내부순환선으로 올랐을 것이다.
동공이 크게 떠져 흰자위가 위아래로 드러난 자색의 눈을 네게 가만히 두고 있다가, 성운의 눈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니, 꼴사납게 찌푸려지고 있다. 눈물이 도륵, 하고 눈시울에서 솟아나는 게 보였다.
혜우야.
성운은 소리내어 말하지 못하고 입만 벙끗거리고는, 결국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말았다. 다시 흘러내리는 눈물 위로, 성운은 손목을 들어 황급히 눈물을 닦아내려 했다.
# 혹시나 고민되실까 하여 말씀을 드리자면, 성운이와 이야기할 장소는 혜우의 취향대로 고르(?)면 돼요.
채팅창은 그야말로 엉망이 되었습니다. 철현의 도배와 함께 한양의 분노의 타이핑 때문이었습니다. 덕분에 채팅 메시지는 도저히 읽을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많은 이들이 접속해있는데 도배에 응하는 이들이 더욱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K라고 자신을 칭한 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지먼트 멤버 중에서는 버튼을 누른 이도 있고,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는 이도 있었습니다. 한편 들려오는 말에 은우는 가만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습니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연락을 보내고 싶지만, 지금 핸드폰을 쓸 수 없으니 말이야. 그리고 어지간하면 지금 이 사태는 높은 분들... 그러니까 우리 외삼촌이라던가 다른 이들도 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니까 아마 거기서 역추적을 하려고 하지 않을까? 굳이 내 생각을 말하자면 이렇게 대놓고 방송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나는 이해가 안 가."
"여긴 인첨공. 고작 이 정도 영상은 역추적이 충분히 가능해. 바로 잡힐텐데... 뭔가 잡히지 않을 자신이라도 있는건가? 보아하니..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칫..."
"......"
한편 세은은 자신을 향한 리라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덩달아 리라를 바라보긴 했지만, 이내 시선을 회피했습니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더 나아가 화면에서도 시선을 외면하려고 했습니다.
한편 모두의 핸드폰에서 천국, 지옥을 선택하는 버튼이 뿅하고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있던 K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ㅡ천국이라고 고르는 이가 조금 더 많고, 지옥이라고 고른 이도 적지 않고, 고르지 않은 이들도 어느 정도 있군. 그래. 이것이 자네들의 생각이란 말이지? 뭐, 좋아. 어떻게 생각하건 그건 자네들의 자유야. 고작 그 정도 자유도 인정하지 못할까. 그런 자네들에겐 이걸 보여주도록 하지.
이내 화면에 어떤 한 문서가 떠올랐습니다. 문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능력자들은 각각 전쟁병기로 얼마나 적합한지의 여부에 따라 계수를 매기고, 그 계수를 토대로 레벨을 매기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레벨5를 제외하면 대부분 결함품에 지나지 않는다. 차후 그에 대해서는 경우에 따라서는 폐기처분을 고려해보는 것도 검토. 그와는 별개로 우리가 원하는 병기 혹은 그 이상으로 성장하는데 성공한 존재들을 '퍼스트클래스'라는 네이밍을 붙인다.
해당 병기들은 존재 자체가 위험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 총구가 다른 곳으로 향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럴때를 대비하여 그들의 가장 소중한 능력자들중 하나를 선정해서 위크니스로 지정한다. 심장 외벽을 잘라내 그 안에 리모컨으로 작동하는 작은 소형칩을 부착. 이어 퍼스트클래스의 심장 역시 외벽을 잘라내 리모컨으로 작동하는 작은 소형칩을 부착한다. 위크니스의 칩이 폭발하게 될시, 자연스럽게 퍼스트클래스의 칩 역시 폭발하게 하여 만일의 경우에는 병기를 폐기처분하도록 한다.
허나 결국 사람이기에 마음이 있으며, 마음이 있으면 병기로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우려가 크다. 그에 따라 마음을 제거하여 없애는 것을 검토. 차일드에러(=인첨공에 버려진 아이들) 300명을 이용하여 실험을 착수한 후에 그 결과를 보고하도록 한다.
만약 그로도 부족할 경우 차일드 에러 500명을 더 동원하고, 적합한 결과를 내지 못했을 경우, 예정대로 뇌를 절단하는 실험을 시도한다. 해당 능력자는 이쪽에서 제공하도록 한다.
인첨공 대표이사 지시사항 (도장)]
ㅡ...이런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도 있겠고, 모르는 이도 있겠지.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알지 못하는 이들도 많을거야.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진실이다. 이것은 제 2학구에 있는 어떤 연구소에서 찾아낸 문서이며 해당 도장은 인첨공 대표이사의 도장이야.
ㅡ현실을 알겠나? 폐기처분될지도 모르는 결함품 여러분? 나도, 너희들도 모두 결함품이야.
ㅡ초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꼬셔서 마음을 열고 오고 뇌를 열었더니... 결국 병기가 되지 못했다고 결함품 취급하면서 폐기처분을 하려고 하며, 하다 못해 모두의 영웅 퍼스트클래스는 목숨을 저당잡힌 존재들이야. 그것도 인질까지 잡으면서 말이야. 그게 인첨공이야.
ㅡ그래도 너희들은 이 인첨공의 삶에 만족하나?
이내 은우의 핸드폰이 박살이 났습니다. 그의 눈동자에는 붉은 핏줄이 강하게 올라와있었습니다. 이를 빠드득 가는 모습까지. 그리고 세은은 약하게 몸을 떨고 있었습니다. 모두의 시선을 회피하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567 캡 부부장님처럼 flex를 할 돈이 없습니다................... 근데 지금 인첨공은 레벨3 이상에겐 지원금을 마구마구 퍼 줄 수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수익을 얻고 있잖아요. 굳이 전쟁 병기 제작으로 넘어가고 레벨 4 이하를 '폐기 처분'할 이유가 있나요?@ㅁ@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수많은 클리셰에 따라 그게 날카롭게 진실을 향해 있었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이들에게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힘을 주는 이유? 인류 역사상 그건 전쟁에 쓰이는걸 최우선으로 생각했겠지. 왜 총을 들려주는 걸까? 그걸 그냥 들고 폼만 잡으라고? 아니. 그걸 적에게 쏘라고 들려주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당장 내 능력만 하더라도, 전쟁에 있어서 매우 효율적인 능력이다. 그리고 나는 한편으로는 그걸 받아들이기도 했다. 만약 우리가, 국가 규모로 적성 세력과 충돌을 한다면? 과연 이 나라가 이런 최고의 무기고에 손을 대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는 징집되겠지. 여느 전쟁이 그러하듯. 그것도 말 잘 듣고 능력 센 놈들부터 말이다. 퍼스트 클래스. 그 구실이 바로... 그래. 위크니스일거고.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린 아직 징병제 국가에 살고 있다. 비록 인첨공은 예외로 친다 해도, 절대라는 건 없다. 특히 전쟁에 있어서는.
"만족할 리가 있냐..."
당연히 만족 못하지. 이럴거면 차라리 징집 서류에 서명이라도 하라고 하던가. 아, 소년병은 불법이지. 물론! 하지만 최소한 사관학교인 척이라도 좀 했으면 시선이 좀 달라졌을까? 입학률은 떨어졌겠지만. 거기다 그것만이라면 모르겠다만... 처분? 처분이라? 그럼 진짜 기적적으로 레벨이 확 오르지 않았으면, 나도 그냥 고기 가는 기계 같은데 들어갔을 수도 있었다는거 아냐? 미쳐도 한참 미쳐 있었던 도시였군.
병기가 되지 못해 처분당하는 이 불합리한 현실은 그 누구라도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병기가 된 사람도, 병기가 되지 못한사람도. 하지만 이 솔깃하게 공감을 부르는 이야기는 밑밥이다. 이 다음에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화면을 두드린다.
「그래서 우리보고 뭐 어쩌라고? 다 뒤엎어서 폭동 일으키자고? 되겠냐?」
우리의 불만을 이용하려 하는 이 자식의 목표를 알아야 한다. 불합리를 불합리로 맞서려 드는 놈의 말 따윈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을 것이다.
「그럼 그거 아니냐? 전쟁병기가 되는거 싫으면 니 전쟁병기가 되어서 니 대신 죽으라고. 결국 거기서 거기 아니냐 그러면?」
내 삶을 조종당하지 않기 위해 내 삶을 포기한다? 그건 좀 웃긴 이야기 같은데. 이 도시에도 당연히 불만이 많지만... 그 불만을 이용하려는 놈에게도 불만이 많단 말이야.
>>547 혜우가 옆자리로 의자를 끌고 다가오자, 성운은 당연하다는 듯이 엉덩이를 조금 들어 혜우의 옆에 가까이 다가붙었다. 어깨를 끌어안는 동작에도 딱히 저항하지 않고, 얌전히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시선은 혜우의 폰 화면으로 옮기고, 성운은 자기 핸드폰을 음량을 줄인 채로 무릎 위에 얌전히 엎어놓았다.
" 그렇다면 일반 전화기를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요즘 가정집들은 일반 전화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추세라지만.. 업무용으로는 다 있는 걸로 알아서. 우리도 있지 않아? 그걸로 높은 놈의 사무실에 전화를 하는 거야. "
" 역추적을 해도 성과는 없을 거야. 녀석들은 바보가 아니니깐. 아마 원래의 사용자가 불분명하고 거래의 흔적도 추적하기 힘든 대포폰을 사용했을 테니깐. 위치라도 추적이 가능하겠지만.. 녀석들은 바로 저 자리를 뜰 확률이 높을 테고. 이런 수들은 녀석들이 미리 고려를 했을 거야. "
한양은 자신의 머리를 짚으며,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저 대포폰 역시 능력을 이용한 역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이 방송이 끝난 직후에 형체도 안 보이게 폐기처분을 할 텐데.
" 어쨋든.. 이 상황을 월광고 저지먼트들도 인지하고 있는지 알아볼게. 일단 걔네들이랑 대화를 해봐야 무언가 좋은 의견이 나올 수도 있으니깐. "
한양은 부실의 일반 전화기에 월광고 저지먼트의 부부장, 김민우의 휴대폰 번호를 누르고 전화를 시도했겠지. 왜 부부장에게 전화를 거냐고? 그야.. 부장은 부장끼리, 부부장은 부부장끼리 컨택.. 왠지 그래야 될 것 같았어. 그나저나 녀석들의 휴대폰도 방송 때문에 사용이 불가능하려나? 그러면 어쩔 수가 없어.
" .......... "
ㅡ초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꼬셔서 마음을 열고 오고 뇌를 열었더니... 결국 병기가 되지 못했다고 결함품 취급하면서 폐기처분을 하려고 하며, 하다 못해 모두의 영웅 퍼스트클래스는 목숨을 저당잡힌 존재들이야. 그것도 인질까지 잡으면서 말이야. 그게 인첨공이야.
ㅡ그래도 너희들은 이 인첨공의 삶에 만족하나?
결국 서한양도 들어버렸다. 인첨공을 설립한 목적과 병기가 되지 못한 아이들을 어떻게 처분할 지에 대한 계획을 말이다. 한양의 얼떨떨한 표정은 차갑게 식어가기 시작했고, 채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 이 계획, 국가에서도 허락한 것인지 알고 있나? ]
전쟁용으로 양성된다는 것에는 놀라지 않았다. 그야.. 인류는 전쟁의 역사를 반복해오지 않았는가? 하지만.. 조건에 맞지 않다고 해서 폐기시키는 것은.. 당신들은 정말 사람이 맞는 거야?
마주보던 분홍색 눈동자는 곧 시선을 피하니, 각도에 가려져 모습을 감췄다. 리라는 그런 세은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둔 핸드폰을 집어든다.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자 싶어서 한 행동이었다.
그러면 안 됐다.
"—아아아아아악!"
어느 정도 무게가 있는 기계가 바닥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음을 낸다. 동시에 공포에 찬 목소리가 새된 비명을 지르며 부실을 짧게 흔들었다. 창백하게 질린 낯에는 경악과 공포, 충격,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 분노와 혐오감이 한데 섞여 일그러지고 있다. 파르르 떨리는 손을 가누지 못하던 리라는 표정이 갈 곳 없이 무너지는 걸 뒤늦게서야 인지하곤 제 얼굴을 양손으로 덮었다. 내가,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내가. 내가...
전쟁 병기. 결함품. 폐기 처분. 퍼스트 클래스와 위크니스. 마음을 제거하는 실험. 차일드 에러 300명 이상을 동원한 인체실험. 결함품.
"......사, 사람, 이... 어떻게... 이딴 짓을 할 수가 있어?"
그건 누구에게 하는 말이었을까. 주어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누구에게 대입해도 이상한 말은 아니었다. 걷잡을 틈도 없이 눈물이 고이고 흘러내린다. 지금 화낼 사람이 누군데! 적어도 그게 나는 아닐텐데. 부장님도 세은이도 울지 않는데 내가 뭐라고 눈물을— 그런 생각도 들지만 충격으로 인한 신체의 거부반응은 멈추지 않는다. 심장이 죽을 것처럼 두근거린다.
결함품이라고.
당신은, 당신도 나를 그렇게 보고 있었던 건가? 기준치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폐기 처분할 수 있는 부품으로?
망가질 만큼 강하게 던져지지 않은 핸드폰에서는 여전히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숨이 막힌다. 경직된 어깨가 뻣뻣해진다.
충격을 받기는 다들 마찬가지인 것 같다. 부장은 늘 머금고 있던 미소는 간 데 없이 살기 그득한 표정으로 폰을 작살냈고, 승엽이는 배트로 폰을 내리찍었는데 망가진 게 폰인지 승엽이 마음인지 모르겠다. 리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딴 짓을 하냐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게. 사람이 어떻게 이럴까. 무슨 말로 위로하면 저런 마음들이 조금은 나아질지 알 수가 없었다.
잘못했다. 나랑 언니가 여기 온 걸 후회하지 않냐고 했을 땐 자신 있게 말했는데 지금은 모르겠다. 물론 폐기 처분 되리라는 실감은 안 난다. 레벨 3만 되어도 지원금이 두둑하게 주어진다는 건 그만큼 초능력자들로 거두는 수익이 어마무지하다는 의미일 테니까. 이제 와 그걸 다 엎고 레벨 5 이상만 남기려는 시도를 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하지만, 내가 언제든 물건 취급당할 수도 있다는 실감은 께름칙하게 각인되어 버렸다. 앞으로도 살던 대로 살겠지만, 이런 걸 바라고 온 건 아니었는데. 너무 나한테만 유리한 거 같은 조건은 의심해 봐야 한댔던 보육원 친구의 말이 떠오르는 서연이었다.
안타깝게도 한양이 건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저 방송 때문인지 핸드폰은 모조리 연결이 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와는 별개로 은우는 한양의 말을 들으면서 심호흡을 하면서 겨우 자신의 가슴을 진정시켰습니다.
"그럼 되겠지만, 나도 그 작자들의 일반 전화의 번호는 몰라. ...그나마 외삼촌의 번호는 알긴 하지만..."
그렇게 말하며 은우는 가만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습니다. 아무래도 이 사태에 대해서만큼은 은우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모양입니다. 일단 뭐라고 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확인하려는 듯, 은우는 세은에게 다가간 후에 세은의 핸드폰 화면을 같이 나란히 바라봤습니다. 덧붙여서 세은은 혜우의 모습을 보긴 했지만 시선을 회피하며 다가가지 않았습니다. 애써 눈을 꽉 감으면서 그녀는 몸을 약하게 떨 뿐입니다.
목화고 저지먼트 학생들 중에서는 채팅을 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채팅에도 답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이들 또한 혼란 속에서 이런저런 채팅을 치긴 했지만, 그 어떤 말에도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ㅡ이런 현실이 용납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ㅡ이런 현실을 우린 용납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이 인첨공을 뒤엎고 우리들의 권리를 다시 되찾기 위해서 움직일 생각이다.
ㅡ이 현실을 깨닫고 분노하는 이가 있다면 얼마든지 같이 움직여보지 않겠나? 하지만 이 일은 매우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일안만큼 어설픈 작자들은 받아줄 수 없어.
ㅡ그래. 담당 연구원의 목숨을 끊고 그것을 증명한다면 대원으로 받아주도록 하마. 그 정도의 각오가 없이 어설픈 분노만으로 받아줄 수는 없으니까.
ㅡ덧붙여서 이미 우리 쪽은 퍼스트클래스 1명을 섭외했다. 이러면 의문이 들겠지? 퍼스트클래스가 이런 반란을 저지르면 인질과 함께 죽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우리와 같이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야.
ㅡ...우리와 함께 한 퍼스트클래스는 이미 해방되었다. 칩을 해제했고 더 이상 목숨이 위험하지 않아. 그렇기에 우리와 함께 하게 된거다.
ㅡ알겠나? 이 방송을 보고 있는 대표이사. 리모컨을 눌러서 우리와 함께 하는 퍼스트클래스를 죽이려고 해도 더는 죽일 수 없다. 덧붙여서 그게 누군지도 모르는 이상, 너희들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어. 아니면...어쩔거지? 다른 퍼스트클래스를 모두 죽이겠나?
ㅡ할 수 있으면 해봐라. 너희들이 그런 더러운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 될거다. 지금 이곳에 접속한 사람은 인첨공에 살고 있는 이의 약 85%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폭탄을 터트려서 뒤엎어지는 것을 보고 싶다면야 얼마든지 해봐라. 믿지 않는 이들 또한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보게 되면 믿게 되겠지.
ㅡ그리고 퍼스트클래스. 우리들은 폭탄을 해제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망설이지 마라. 우리들과 함께 해서 자유를, 우리의 권리를 되찾는거다. 어째서 강하다는 이유만으로 억압받고 목숨을 저당잡혀야하지. 안 그런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되어야하지?!
ㅡ...물론 선택은 너희들의 자유다. 참가하지 않아도 좋아. 그 또한 자유니까.
ㅡ하지만 퍼스트클래스건 능력자건 우리를 방해한다면... 적으로 인식하겠다.
ㅡ선택을 잘 하도록 해라. 퍼스트클래스도, 너희들도.
그것은 명백한 선전포고. 인첨공을 향한 선전포고 그 자체였습니다. 함께 하려면 담당 연구원의 목숨을 끊어라. 그런 요구를 하는 K의 모습은 적어도 정상은 아니었습니다.
멍하니 있는 동안에도 짜증나는 기계음은 다른 부원들의 핸드폰을 통해 잘도 들려왔다. 진짜 저 수박들!!!! 무시하려고 했으나 담당 연구원을 살해한 걸 인증하면 자기 편으로 삼아 주겠다는 말에 실소가 나와 버렸다. 정신 나간 작자들 아냐??!! 도구가 되기 싫으면 사람을 죽이라? 그건 도구 아니냐?? 지금 삶보다 오히려 그쪽이 대놓고 병긴데? 수박을 똥구녕에 박아 넣어야 할 작자들 같으니!!!
홧김에 책상 다리를 걷어찼으나... 당연히 발만 아프다.
" 아야야... "
아픔 대신 얻은 거. 흥분해 봤자 내 손해다. 그렇게 마음을 진정시키려는데 세은이가 이쪽을 쭉 둘러본다.
'내가 ㄷ체 뭘 적고 있는거지? 너무 싸패같아 보이지 않을까? 고릴라란 이런 매정하고 냉정한 생명체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도 여름철에 난리난리 쳐가면서 인첨공의 어두운 모순을 스스로 마주한 적이 있는 장태진이라면 이런 식으로 대응할거 같기도 하다고 생각이 들고
>>609 힘이 빠졌다. 이제와서 무얼 어떻게 하든지 쫓아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정말로 이길 수 없다면 저들과 함께 해야하는걸까? 퍼스트클래스가 동료로 있으시단다. 그것도 제약이 없는 놈이. 그리고 자유를 향해 가자신다. 듣기에는 정말로 좋은 말이잖아.
혁명. 좋은 말이다. 근데 조건이 잘못되었어.
"...XX같은 XX가 별 X같은 소리하고 앉았노."
남의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자연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뭘 어째? 뭘 어쩌라고? 누굴 어떻게하라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쌤과 나는 가족이다. 가족을 버린 쓰레기에게서 벗어나 처음으로, 내가 얻을 수 있었던 가족. 믿음이 가는 사람이고. 몇 안되는 이 도시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 언젠가 여기를 바꿔보자고 말도 안되는 계획을 세운 사람을 죽여라.
성운의 손에서 핸드폰이 둥실 떠올랐다. 아무 것에도 닿지 않는 허공에서, 갑자기 케이스와 뒷판이 톡톡 떨어져나가더니 배터리가 쏙 빠져나왔다. 배터리는 성운의 손 위로 내려앉았고, 뒷판과 케이스가 말끔히 결합된 핸드폰이 그 뒤를 따랐다. 성운은 핸드폰의 전원을 꺼버리는 것을 택했다.
세은을 불렀지만 세은은 보기만 하고 오진 않았다. 그래도 옆에 은우가 있으니, 섣불리 다가가는 건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성운을 챙기며 화면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말을 들었다.
용납이니 증명이니, 블라블라블라.
그래도 흥미로운 정보는 있었다. 위크니스와 퍼스트클래스의 폭탄을 해제할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 그것 하나면 이 판에 끼어들 이유는 충분했다.
다시 나타난 버튼을 무시하고, 모두 들으란 듯, 목소리를 키워 말했다.
"설마하니 이 중에 여기 얼굴도 못 내미는 관종한테 혹한 사람은 없겠지? 뭐, 사실 누가 어떻게 생각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하자. 담당을 죽이고 저기에 가담하든, 아무 것도 못 한다며 주저앉아 질질 짜든, 하고 싶은 대로 하는데, 그런데 말이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저 새X들 재수없지 않아? 그렇게 좋은 방법을 찾았으면 좋게 좋게 공유하지는 못할 망정, 저렇게 우위에 선 듯이 내려다보는 거. 솔직히 내로남불이잖아. 해킹이나 하이잭이나 뭐가 다른데, 능력자를 병기로 보고 폭탄으로 조종하는 저 윗대가리들이랑 뭐가 다르냐고. 어이 없지 않아? 빡치지 않아?"
거기서 나는 저지먼트의 완장을 집어들었다.
"봐, 여기 모인 우리가 누군데. 그 많은 실적을 쌓아올린 목화고 저지먼트잖아? 우리에겐 마침 좋은 명분도 있겠다, 직접 잡아서 해제 정보 뜯어내고 내친 김에 윗선도 들이받아 버리자고. 해제 정보를 쥐게 된다면 나머지 퍼스트 클래스의 협조도 얻어낼 수 있겠지. 뜻만 맞으면 그들이 한 번쯤 도와줄 거란 가능성은 있잖아?"
웃는 얼굴이 부실 안을 둘러보았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 당장 보이는 정보는 그저 정보일 뿐이야. 이해는 천천히 해도 돼."
말을 마치며 완장을 내려놓고 은우를 보았다. 조금은 진중해진 표정으로.
"저지먼트 부원으로서 위와 같이 건의합니다. 이에 대한 부장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만."
함께하려면 담당연구원을 죽이라고? 인첨공을 무법지대로 만들 생각이야? 자유를 얻으려는 시도는 좋지만, 저런 잔인한 짓을 요구하는 것은 테러리스트나 다름이 없어. 죄가 있는 녀석들을 벌해야지, 왜 죄 없는 연구원들까지 죽이라는 거야?
[어이, 리버티. 독한 것도 적당히 독해라. 어쩜 나보다 더 독한 녀석들이 생겼냐?]
[중국의 역사에서는 '후한'이라는 나라가 있었지. 십상시의 폭정과 황건적의 난으로 인해 난세가 된 세상을 동탁이 어부지리로 잡았어. 그런데 동탁이 잡은 세상은 인첨공보다 더 개판이었지. 결국 왕윤은 여포를 꼬드겨서 동탁을 처단했다. 하지만 후한은 더 개판이 됐어. 왜인 줄 알아?]
[너무 독해서 그래. 왕윤이 동탁을 처단하고도, 도망가버린 잔당들까지 전부 씨를 말린다면서 병력을 밖으로 빼냈거든. 그 틈을 타서 이각과 곽사가 어부지리로 힘을 얻으면서 끝날 줄 알았던 난세는 더 개판이 됐지.]
[너네라고 안 그럴 것 같아?]
[2학구 연구소에서 찾은 문서라지? 2학구에서 찾았다면 저 문서는 극비리에 적힌 것이고.. 대부분의 연구원들은 당연히 모를 내용일 텐데? 증오를 쏟아내고 싶은 심정은 이해하다만.. 그거 알지?]
[조조가 '서주대학살'을 일으킨 것이랑 비슷하단 거. 서주에서 죽은 자기 아버지의 원수만 처단하면 되는데, 분풀이인지 전략인지 모르겠지만 서주의 죄없는 백성들에게 대학살을 펼쳤어. 너네가 딱 그 꼴이야.]
[여러분들도 현혹되지 마십시오. 방금의 문서는 꽤나 충격적이지만.. 증오에 빠져서 자신마저도 괴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오히려 스스로 '병기'임을 증명하는 행위이지요.]
[그렇다고 저는 인첨공의 이러한 행태에 따르겠다는 생각이 아닙니다. 저 역시 이러한 현실에 반기를 들 생각입니다.]
' 이런 경우를 계획하긴 했지만.. 꽤 시간이 지난 후라고 생각했는데... 이거 너무 빠르게 당겨졌네. '
서한양은 초강수를 두기 시작했다.
[제 정체는 인첨공 제 13 위. 3학구의 '마틸다', 서한양입니다. 4학구의 크리에이터의 활약을 최초로 보고한 사람이라고 하면 기억이 날까요?]
[리버티가 아닌, 저를 지지해주십시오. 저는 여러분들의 손에 피 한방울 묻힐 생각이 없습니다. 괜히 저에게 붙었다가는, 여러분이 무사할 리가 없거든요. 하지만 응원해주십시오.]
[불합리에는 합리로, 총에는 펜으로. 우리들의 권리를 보장할 최선의 방안을 모색하겠습니다. 우리들싀 권리를 지키는 길을 찾아가겠습니다. 함께하는 힘으로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갑시다.]
용납될 수 없다. 용납될 수 없지만 이런 방식은 잘못됐다. 리라는 액정이 나간 핸드폰에서 끊임없이 주절거리고 있는 누군가를 손가락 틈으로 노려본다. 허울 좋은 대의를 말하기엔 너희가 지금 퍼뜨린 진실도, 그것 때문에 타격을 받을 사람들도 너무나 많다. 수많은 죄 없는 사람들과 약점을 잡힌 퍼스트클래스들, 그리고 그들의 위크니스들이 혼란과 폭력의 소용돌이에 무방비로 노출될 거란 말이다.
담당 연구원을 죽여라.
그 말에 리라는 그의 담당 연구원을 떠올렸다. 검은 머리에 날카로운 검은 눈, 안경 너머 차가운 시선, 전형적인 인천첨단공업단지의 연구원. 메스를 매만지는 창백한 손가락과 고압적인 말투. 윽박지르는 목소리. 너는 성장 가능성이 없는 열등생이었으니 사람 취급을 해 줘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서늘한 목소리.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다. 그 때, 잔뜩 굳었던 어깨와 머리에 부드러운 천이 덮였다.
"......"
그래, 인정한다. 나는 그 사람이 미워. 지금에 와서는 더더욱 그렇다. 당장 커리큘럼실로 달려가 나를 폐기물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봐 온 거냐며 바락바락 대들고 화를 내고 싶다. 하지만 그게 누군가를 죽일 이유는 되지 못한다. 이것들은 살인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하아, 하, 하아. 윽."
가볍게, 걸치듯이 붙잡은 손을 천천히 마주 잡았다. 그의 손은 랑과는 다르게 다소 필사적인 느낌으로 상대를 붙든다.
"다, 다 똑같아. 이거나 저거나 사람을 아주 장기말 취급하면서... 웃기고 있네. 누가 놀아날 줄 아나."
눈물 자국이 너저분하게 남았다. 리라는 바닥의 핸드폰에 뜬 선택지를 바라보다가 아랫입술을 물었다. 분해서 참을 수가 없다.
동조하는 분위기가 강해지는 가운데 한양의 채팅이 올라왔습니다. 그러자 안의 분위기는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확실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까? 아무리 그래도 살인은... 그런 글들이 하나씩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K라는 이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채팅 반응에는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어지는 혜우가 상황을 정리하듯 모두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은우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이어 은우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뭔가를 생각하듯 가만히 눈을 감았습니다. 아마도 내심적으로 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이 분명해보였습니다. 여기서 바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부장이기 때문이었겠지요. 이어 그는 넌지시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 네 발언은 리버티도, 높으신 분들과도 다 적대하자는 말로 들리는데 맞니?"
ㅡ자. 선택은 잘 들었어. 그럼 이제 전할 것도 다 전했으니까 방송은 이 정도로 끝낼게. 진실을 알려주고 우리와 함께 하는 이가 한명이라도 있다면야 이득은 있으니 말이야. 없다고 하더라도 인첨공의 지독한 진실을 알렸으니 충분해.
ㅡ일단 지금은 멤버들부터 천천히 늘려보고... 이후에 천천히 인첨공을 무너뜨려줄게.
ㅡ다시 말하지만 우리들과 함께 할 이는 담당 연구원의 목숨을 끊어. 그 정도의 강한 의지가 있는 이들만 우리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참고로 안 그래도 돼. 딱히 강요하는 것은 아니야.
ㅡ아. 그리고 지금쯤이면 나를 잡겠다고 역추적을 해서 제 2학구에 있는 폐연구소에 들어왔을지도 모르지만... 소용없어.
ㅡ이건 녹화방송이거든.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폭발이...
이내 갑자기 방송이 뚝 하고 끊어졌습니다. 물론 제 2학구에 있던 이라면 갑자기 어딘가에서 강한 폭발음이 들리는 것을 알 수 있었겠지만, 여기는 제 3학구. 그 사실까진 알 수 없었습니다.
어쨌든 그러거나 말거나 은우는 혜우를 가만히 바라봤습니다. 방금 전 물음과는 별개로 그는 일단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솔직히 인첨공에 대한 불만이 있어. 없을 수가 없지. 내 심장에... 그리고 세은이의 심장에 그런 짓을 한 놈들이 있는데. ...그리고... 제로원 프로젝트나, 그간 했던 이들 또한 절대로 용서 못해. 그렇다고 해서 리버티라고 하는 저들의 행동도 용납할 수 없어. 지금 저들이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절대 좋은 짓은 아닐테니 말이야."
사람을 죽이는 것을 요구하며, 그야말로 혼란과 혼돈,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지도 모르는 지금 같은 방법. 그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은우는 살며시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이 참에... 이 참에..." "....인첨공의 어둠이니 뭐니, 그런 것은 모두 뿌리 뽑지 못해도 조금이나마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고 한다면, 그 정도로 개입해서 많은 것을 정리하고 싶다고 한다면...내가 미친거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 미친 짓을 같이 했으면 해. 강요는 하지 않아. 위험하니까. 일단 내 생각과 뜻은 그래. 그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하고 다음에 확실하게 하도록 하자.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테니까."
지금이야말로 인첨공의 어둠. 그토록 자신들이 봐왔던 것들을 엎어버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 좋은 기회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은우는 혜우의 말에 찬동하며 다른 이들의 협력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당장 선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습니다.
"......혜우와 수경이와 정하 정도는 나를 믿어줄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다른 이들이 우리를 믿어줄 거라고 생각해? 오빠는?"
목소리를 낸 것은 다름 아닌 세은이였습니다. 그녀의 눈동자는 살며시 그 빛이 죽어있었습니다.
"세은아?"
"......퍼스트클래스가 하나 들어가있다. 그리고 다른 퍼스트클래스들이 오는 것을 요구하고 있고, 해체 방법까지 알고 있다고 요구하는 것이 현 상황..." "......그런데 그 참가한 퍼스트클래스가 오빠 쪽이고 저 역시도 리버티일지도 모른다고 의심이 들진 않아요?"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믿어요?"
"......당신들의 믿음을 저버리고......" "......저쪽에 붙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거 아니에요?" "......리버티의 편이 될지도 모르는 이인데... 무섭지 않아요?" "......어떻게 믿어요?" "......저라면 못 믿어요. 절대로." "......당장 저는 저기에 붙고 싶거든요... 라고 말하면 어쩔건데요?"
"......오늘 들은 이야기는 모두 잊고, 리버티 문제는 물론이고 저와 오빠와 선을 긋고 살아가세요." "......그게 당신들이 제일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야." "......알려지지 않았다면 모를까. 알려진 이상......." "......그렇게 되는 것이 맞아. 철저하게 우리들과 멀어지는 것이...... 당신들에게 있어서 나은 길이야." "......서로 상처받지 않는 유일한 길이야."
"소리의 색채화 증상은 어떠냐? 말은 안했는데 정신적인 증세일 수도 있어서 완화하도록 약을 좀 처방했는데." "단순히 진통제만 주신 줄 알았어요." "네가 신경성 두통도 있어서 진통제를 처방한 건 맞아. 거기에 다른 것도 같이 처방한 것 뿐이지." "그대로죠." "쯧, 그러냐." "그런데 기분은 별로네요. 묻지도 않고 약을 처방했다는 건요."
"아직 스물도 안 넘긴 녀석들이 머리에 전극을 박는 게 일반적인 거냐." "이마를 열고 전기로 지지는 게 일반적인 거냐." "제정신인지 아닌지도 모를 정도로 몽롱하게 만들고 치료라는 말로 적당히 퉁치는 게 일반적인 거냐." "멀쩡하게 있던 전화의 전파가 하이재킹 당해서 취향 병X같은 놈한테 개소리를 듣게 되는 게 일반적인 거냐." "납치하지 않으면 안 됐다고 납치가 최선이었다고 지껄이는 납치범을 보는 게 일반적인 거냐."
주머니에 남은 사탕이 하나. 얼마 전 서연이 선물로 줬던 사탕 중 하나가 남아있었기에, 랑은 사탕을 꺼내 포장을 뜯었다. 포장이 바스락거리며 뜯기고, 드러난 사탕은 이빨과 부딪히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퍼스트클래스 정강이를 걷어차는 게 일반적인 거냐?"
"네가 못 믿는다는 소리를 그렇게 돌려 말할 필요가 있나?" "나는 네가 믿든 안 믿든 신경 안 쓴다, 어차피 무슨 정보를 주고받든 그걸 직접 확인해보기 전까진 진실인지 아닌지 몰라."
"붙고 싶으면 붙어라, 아니면 안 붙는 거고." "뒤에서 찌르고 싶으면 찔러라, 아니면 정면에서 죽여보던가."
잠시 말을 멈추고 입 안에서 사탕을 굴린다.
"나한테 명령하지 마." "믿고 믿지 않고를 떠나서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건 못 봐주겠다."
랑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뚜벅거리는 소리를 내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제지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평소라면 주머니에 들어가 있거나, 사탕의 막대를 쥐고 있는 것으로 족해야 할 손이 바깥으로 나온 채 옮기는 발걸음. 그 끝에서 랑은 세은의 뺨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붙이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이 됐든 간에.
"착각하지 마라." "내가 어떻게 행동하든 내 맘이야, 너나 저 녀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든, 어떻게 판단하든 내 몫이다."
"에어버스터가 손을 쓰면 여기에 있는 전부를 싸그리 죽여버릴 수도 있을 거라는 걸 내가 모를 것 같나?"
"네가 뭘 했다고 해서, 네가 뭘 할지도 모른다고 해서 내 생각이 바뀔거라는 생각은 버려." "내 결정은 내가 한다,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라."
"한번만 더 머저리 취급하면 누구 하나 여기서 죽어나가도 상관없다는 걸로 받아들이마." "어차피 뒤질 거, 난 내 맘대로 하다가 뒤질 거니까."
세은이는 딱히 할 말이 없었던 모양이다. 좀 뻘쭘한 기분으로 있는 사이 혜우가 저 수박들 재수없으니 잡아서 위크니스 해제 정보를 뜯어내자고 제안했고, 부장은 고민에 잠겼다. 그때까지도 수박은 수다를 그치지 못하고 기계음을 뽑아냈다. 시끄러! 그때 폭발음이 났다. 역추적으로 들어오는 순간 폭발하게끔 세팅해 놓고 녹화 방송을 했던 모양이다.
그러고도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에야 부장은 말문을 열었다. 자신과 세은이가 피해자이기 때문에, 그간 인첨공에서 자행했던 악행들 때문에 인첨공을 적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고. 그런데 리버티도 믿을 수 없다고. 그래서 미친 거 같지만 이 참에 리버티도 높으신 분들도 정리하고 싶다고. 위험하니 강요는 하지 않겠지만 함께 해 달라고. 생각할 시간을 주겠단다. 확실히, 그런 일은 목숨도 걸 각오가 필요한 일이긴 하겠다. 정식 부원으로 인정받기 전, 부장과 나눴던 대화들이 떠오르는 서연이었다.
그런데 세은이가, 그때껏 침묵하던 게 안 믿기도록 활발하게, 그러나 냉담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저 수박들한테 가담한 퍼클이 부장이고 자신이 리버티일 거라는 의심은 안 드냔다. 그러고는 오늘 일을 모두 잊고 자기네 남매와 선을 긋고 살란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이는데... 머릿속에 물음표가 늘어나는 서연이었다. 의심할 이유가 없는데?
" 어... 세은아. 네 담당 연구원 혹시 죽었어? 살아 있으면 당연히 저 수박들이랑은 무관한 거 아냐? "
" 그리고 니가 저 수박들한테 붙으려면 당장 부장부터 설득해야 할 거 같은데. "
" 네 입장에선 저 수박들한테 당장 가서 코드를 해제하고 싶은 게 당연하다고 생각은 해. 하지만 내가 너라면 코드 해제 받자마자 빠져나올 거야. 저 수박들 말하는 거 봤잖아. 우리가 병기 신세라면서 우릴 병기로 써먹으려는 거. 그런 데서 오래 있어 봤자 좋은 꼴 못 보고, 저 수박들도 머리가 있다면 코드 해제해 주는 대로 손 터는 게 퍼클과 위크니스에게 훨씬 이익일 거 아니까 쉽사리 코드 해제를 해 주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해. "
"세은..양" 그러한 말을 하는 세은을 바라보다가 믿어준다는 말에 자신이 믿지 않을 거라고는 안하는군요. 그레서 더욱 말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을까요. 수경은 나은 일이라는 것에 입을 꾹 다물고는.
"내가... 뭐라고 할 자격은 없지만요."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이미 계획을 저지한 게 사라지지는 않는걸요." 이러나저러나. 저지먼트 활동을 하면서 그렇게 보이지는 않겠지만 수경은 꽤 긍정적인 편의 의사결정을 하고는 있었으니까요. 아 저지먼트 활동 없었으면 일상 그런거 없음에 그냥 스르륵 사라지고 끝이었다고요.
"내가...." "....아무리" 있어선 안 될 것이라고 해도. 이건 있어야 할 것도 원하는 것일 거라고 생각해서. 라는 중얼거림을 삼키고. 세은의 손을 붙잡으려 시도합니다.
성운은 혜우의 팔을 가볍게 톡톡 쳤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세은에게로 발걸음을 조심스레, 한발짝 한발짝 옮겼다. 그리곤 나직이 목소리를 한 마디 한 마디씩 내려놓았다.
“세은아, 기억해? 내가 격리 프로토콜을 마치고 학업에 복귀한 이후에, 처음으로 그 사람 머리에 실 꼽는 빨간 머리 미치광이 여자를 만났을 때, 그 여자가 에어버스터의 어쩌구 하는, 딱 너 찾는 것 같은 소리를 지껄여댈 때, 내가 널 가려주려고 했던 거.”
“왜 그랬을까, 당연히, 네가 부장님의 동생이라서는 아니야. 그러면 네가 저지먼트 동료라서? 아니, 그것도 아니야.”
“저지먼트고, 리버티이기 이전에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인첨공의 아이들이야.”
“우리는 그 수많은 이름들 중에 저지먼트라는 이름 아래 뭉쳤을 뿐이고.”
“그러니까 네 불안을 이해해.”
“하지만 또한, 나는 알고 있어, 세은아.”
“너도 행복해지고 싶을 뿐이잖아.”
“우리 같은 아이들에게 짊어지워진 인질이니, 병기니, 실험체니, 그런 부당한 짐들은 다 벗어버리고··· 목화고 고등학생 최세은. 친구들과 같이 수다도 떨고, 오빠와 같이 투닥대면서 장도 보고, 오늘 저녁엔 뭘 해먹으면 좋을까 메뉴 때문에 골머리도 앓아보고. 사람들과 친해져도 보고, 시험공부에 몰두해도 보고, 고지서를 보고 뭐가 이렇게 많이 나왔냐고 투덜대고, 장래에 뭐가 될지 뭘 배워야 할지 고민도 해보고. 그런, 시시콜콜하고 자질구레한 나부랭이가 이렇다 할 고민의 전부인···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되찾고 싶을 뿐이잖아.”
“어른들이 우리에게 그런 미래를 주지 못하겠다면, 하다못해 우리 손으로라도, 아무리 서투르고, 무엇을 할지 모르고, 헤매고, 때론 실수하고 실패하더라도··· 우리가 살아갈 이 인첨공을 조금이라도 더 멀쩡하고, 더 평화롭고, 더 행복한 곳으로 바꾸겠다는 바람이 있잖아. 그리고 거기에서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잖아.”
“그래서야. 너도 그걸 갖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너를 믿고 동료로서의 본분을 다했고, 저지먼트의 본분을 다했어. 여기 있는 모두가 그러는 것처럼, 여기 있는 모두에게 내가 그럴 수 있는 것처럼.”
어느 순간 자다깼다. 비몽사몽하지만 정신 차리고 대충 들어보니, 일전의 리버티라는 분들이 활동을 개시하신 모양이다. 포교활동? 이라고 해야 하나?
대충 리버티한테 붙을 사람은 담당 연구원을 죽이라는 모양인데, 미친 거 아냐? 싫어! 나 선생님이랑 요새 친해졌단 말이야. 그리고 선생님 진짜로 죽인다 치자, 그래서 뿅! 하고 바로 인첨공 탈출해서 엄마들한테 갈수 있다고 해도 안 내키는데, 그런 것도 아니잖아? 그냥 살인범이나 되겠지.
그나저나 아이고, 자다 깨서 그런지 부장 선배가 뭔가 진지하게 이야기하시는데도 바로 파악이 힘들다. 커피 없나, 커피? 커피를 찾는데 세은이가 뭔가 심상찮은 분위기로 말하기 시작해서 도로 앉았다. 대강 들어보니, 리버티가 포섭했다는 퍼클과 위크니스가 자기 남매일거란 생각은 안해봤냐고 물어본다. ...뭐야, 얘 왜 이래? 이어지는 이야기도 앞뒤가 안 맞는다. 아깐 자기들 남매가 리버티일 수도 있단 식으로 말하더니, 이번에는 리버티에 붙고 싶다고 말하다가... 애 취했나?
"...누구 음료수에 술 타신 분? 양심 고백!"
...이라고 뱉어놓고 보니,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세은아, 난 연구원 선생님 안 죽일 거고, 세은이 니가 나나 리버티 편 안하겠다는 다른 부원들한테 협박한 정황을 알게 된다면 그 때 가서 판단할게."
좋아. 분위기를 바꾸는데 성공했어. 내 스스로의 신상을 공개해서, 정체를 숨기는 리버티세 비해서 신뢰를 상승시킨다. 동조하는 이들이에게서 아무런 물리적인 도움을 요구하지 않고, 동조하는 걸 드러내지 말라는 식의 말로 리버티에 비해서 인첨공의 학생들에게 '진심'이라는 것을 어필했다. 녀석들은 계속해서 권유를 하지만..
[현혹되지 마십시오. 세상 그 어디에도, 구성원에게 자신의 스승을 살해하라고 지시하는 자는 없습니다.]
[추적이 두려워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자들입니다. 의지를 확인한다는 명분으로 죄 없는 연구원들의 살해를 명령해서 분풀이를 하려는 자입니다. 그런 잔학무도한 자들입니다. 인첨공은 우리들을 결함품이라고 하며 폐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 인첨공의 잔학성에 준한 자들이 리버티입니다. 저들의 목표가 달성된 후..]
[이에 동조한 당신들이 무조건 무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하지만 이 영상이 녹화본인 것이 밝혀지고, 영상은 뚝 끊겼을 것이다. 이후 은우는- 인첨공의 미래를 바꾸기 위한 이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한양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 어차피 우리는- 그림자랑 엮였을 때부터 높은 놈들에게 찍혔을 거야. 언젠가는 숙청이 될 존재라는 거지. 가만히 있어봤자, 조건에 안 맞는다고 폐기 당해- 이러나 저러나 일부를 제외하면 죽을 목숨이라고. "
이후 세은의 목소리는 부실의 분위기를 잠시 차갑게 만들었고, 한양은 나긋한 목소리로 세은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 난 말릴 생각이 없어. 너네 오빠라면 모를까- "
" 그리고 그 퍼스트클래스가 은우라는 생각은 딱히 들지는 않아. 난 이미 의심하고 있었던 인물이 하나 딱 있었거든. 지금까지 본 정황으로도.. 가장 유력했고. 심증이지만 말이야~ "
" 그리고 세은아.. 쟤네들은 근데 위크니스를 해제하는 방법을 어떻게 아는 걸까? 아니, 애초부터 위크니스라는 존재를 알았던 것처럼 보이는데. "
리버티도, 높으신 분들과도 다 적대하자는 말. 나는 은우의 반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은우가 의견을 말해주는 것을 들었다. 내가 제의한 안건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모두에게 피력해주는 것을.
그리고 뒤따라 나오는 세은의 반응을 보며 소리 없이 눈웃음을 지었다. 차가운 목소리와 빛이 죽은 눈동자를 보면서도.
세은의 고개가 툭 떨어졌을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느긋하게 일어나 고개 숙인 세은의 앞으로 다가가서 먼저 은우에게 말했다.
"은우 선배, 미안해요."
그리고 다음은 세은에게.
"미안."
차례로 사과한 후, 세은의 턱을 친히 들어올려 그 뺨을 쳤다. 휙, 찰싹! 하는 따가운 소리가 생각보다 가볍게 부실에 울렸겠지.
나는 그 앞에 서서 세은을 보며 말했다.
"최세은. 너 지금 말하는 꼬라지가 그게 뭐야. 리버티에 가고 싶다고 말하면 어쩔 거냐고? 가고 싶으면 가고 싶다고 해. 그렇게 떠보지 말고."
담담하고 차분하게 말은 이어졌다.
"네가 뭔데 다른 사람의 믿음의 근거를 논해. 그러는 너는 나나 모두가 근거를 대주면 안심할 수 있어? 무엇무엇 때문에 믿는다, 그러면 마음 놓고 믿을 수 있겠냐고. 너, 나조차도 믿어줄 거라고 생각한다 했지. 그래. 나 너 믿어. 다시 내 친구가 되겠다던 최세은을 믿는다고. 그런 너는 나를 믿긴 해? 똑바로 쳐다보고 잘 생각해 봐. 너를 믿는 나를, 너는 믿어?"
그리고 다른 부원들을 돌아보았다.
"부장님이 이미 말하셨다시피 이건 미친 짓이야. 솔직히 나머지 퍼스트클래스들이 조력해줄지도 미지수고. 다들 유니온의 개짓거리를 기억하고 있겠지. 나머지도 크게 다르다고 볼 수는 없어. 그러니 여기서 빠져도 상관없어. 저지먼트라는 건 명분일 뿐, 이건 의무는 아니야."
>>747 원래 이런 다정한 아이로 굴리고 싶었는데 멘탈뿌셔뿌셔 연타석 맞고 나니 스몰사이즈 징징이밖에 안 남았서요....... 오늘은 원래 굴리고 싶었던 방향대로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조금 다행이에요. 저게 또 어떻게 반박될지는 모르겠지만요.
모두가 저마다의 이야기를 한다. 혜우는 상황을 정리하며 의견을 냈고, 은우는 그를 경청한 뒤 제 의견을 피력했으며, 세은은 이에 반대한다. 그러나 그 모든 이야기들 사이에서 리라는 한 마디도 내지 않고 호흡만을 가다듬는다. 두렵거나 숨이 가쁘거나, 꼭 그런 이유뿐만은 아니었다. 가장 정확한 이유는—
"......그렇게 되는 것이 맞아. 철저하게 우리들과 멀어지는 것이...... 당신들에게 있어서 나은 길이야." "......서로 상처받지 않는 유일한 길이야."
"최세은 후배님. 지금 장난해요?"
깨물고 있던 입술에서 으득 하는 소리가 났다. 리라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리지만 조금 전과는 그 결이 다르다. 불덩이 삼킨 듯 메는 음성이 천천히 이어진다.
"반대로 묻죠. 세은 후배님은 뭘 근거로 우리가 믿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저지먼트가 퍼스트클래스와 위크니스에 대해 알게 된 게 봄이에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어디 신뢰 잃을 짓을 했나요? 내 기억엔 이 중 누구도 그런 짓 한 적 없는데."
"상처? 그런 거 받기 싫었으면 알게 된 첫날부터 3학구장님이 주는 약 먹고 회피했겠지! 네 말마따나 그때부터 상처 받고 힘들어 하고 마음고생 하고 죽을 수도 있는 가능성들이 뻔히 다 보였는데! 다 알고 여기까지 온 거라고요. ......너... 이때까지 우리가 한 걸, 내가 말하고 행동으로 보인 걸 다 뭐라고 생각한 거야? 같잖은 위선? 가식?"
"정말 그랬다면 실망이에요, 최세은 후배님." "......그렇지만 그게 믿지 못하겠다는 말은 아니에요. 나한테... 말해줬었잖아요. 그거."
그건 세은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이전에, 세은만이 들을 수 있을 만큼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으니 다른 사람들은 듣지도 못했겠지만. 이윽고 리라의 얼굴은 다시 은우에게로 향한다.
"피차 마찬가지에요. 부장님. 사방에서 온갖 것들이 쉴틈 없이 숨통 조여오는 것도 질리고, 그것 때문에 우리 부원들이 괴로워하고 고뇌해야 하는 것도 싫어요."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다는데 손 거들지 않을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니... 적어도 전 거들 거예요."
>>747 새봄: 그치만 취객말을 진지하게 듣는 사람이 어딨어요 재우고 집에 보내야지 그나저나 서연이 머리 엄청 좋은데? 담당 연구원 죽었는지 확인부터 하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버티가 내거는 조건이 너무 달달해서 수상한 것까지 파악해서 딱 지적하고! 역시 서형이야><
싸대기가 짝... 그리고 또 짝. 차분하게 설득하는 이도 있긴 했으나, 싸대기를 때린 이들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세은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바로 옆에 있던 은우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이내 그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자신에게 하는 말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잊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태진을 바라보며 은우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작게 하는 것을 아마 태진은 들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와는 별개로 세은은 맞은 뺨을 가만히 손으로 문질렀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말을 한 이들을 차례차례 하나하나 바라봤습니다. 이어 그녀는 눈을 감고 고개를 더 아래로 푹 숙였습니다.
"세은아. ...하나 물어볼게. 너... 리버티야? 나에게는 솔직하게 얘기해줘. 아니. 여기에 있는 애들에게는 솔직하게 이야기해줘. ...평소의 너라면, 절대로 이런 이야기를 할 애가 아니야.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이어 은우는 조심스럽게 세은을 바라보면서 가만히 물었습니다. 그러자 세은은 몸을 약하게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그리고 입을 열었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봄에... 샹그릴라 이야기로 시끄러울때 이야기가 있긴 했지만...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지만 안 들어갔어... 안 들어갔어... 들어가려고 고민했었는데...들어갈 수 없었어.... 솔직히 저지먼트고 뭐고, 다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들어가려고 했는데 들어갈 수 없었어!!"
이어 그녀의 목소리에 울분이 조금씩 섞였습니다.
"나빠?! 여름에... 성하제 전에도 들어오라는 제안이 있었지만 차마 들어갈 수 없었어!! 하지만... 하지만... 그러면서도 들어가야 했을까..라고 고민이 될 때도 많았어. 무서워. 무섭단 말이야!!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심장의 이게 너무 무섭단 말이야!!! 위크니스가 알려져서... 지금이라도 펑 터져버릴지도 모르는 현 상황이 무섭고... 갑자기 붙잡혀서 인질이 되는 것이 무서워서 미칠 것 같단 말이야!! 그렇게 되면...나 때문에 다 죽잖아! 오빠는... 오빠는... 결국 나를 위해서 싸울 사람이니까."
"......"
"어떻게 하면 되는건데. 나." "...역시 들어갔어야 했던거야? 아니면 들어가지 않고 결국 이 상황이 되는게 맞았던거야?"
"모르겠어...." "도와줘... 도와줘.... 도와줘...."
"...자유롭게 되고 싶지만, 그래도... 많은 이를 죽이면서까지, 인첨공을 파멸시키면서까지 자유롭게 되고 싶진 않아. 많은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은 싫단 말이야!" "하지만 이런 몸이니까... 결국 의심받을지도 모른다고... 리버티에 협조할지도 모른다고 생각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내 자신이 싫단 말이야!!"
"...도와줘..." "...도와줘..."
"....도와줘....."
눈물을 흘리진 않습니다. 허나, 쌓아둔 뭔가가 펑 터져버린 모양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지금까지 쌓아왔던 관계가 크게 작용한 것이겠지요. 알게 모르게... 정말로 알게 모르게... (시크릿 조건 달성 - 세은이 리버티 가입 X 루트) (조건 - 그간의 일상 등으로 세은이와 친밀도를 쌓아둔다.)
"......."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은우는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모두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습니다.
"시스콤 오빠라고 말 들을지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난 역시 얘의 오빠야." "...다 부숴버리자." "이런 불합리적이고 짜증나는 선택을 강요하며 피를 흘리게 하려는 리버티도... 그리고 이런 시스템을 만든 높은 이들도..."
"코뿔소 정신으로 다 부숴버리자."
"...저지먼트 정신으로 말이야. 내 임기가 끝나기 전에, 이 문제는 해결해야겠네."
"후배들 힘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야. 동기들. 올해는 조금만 더 힘내보자. 미안."
그렇게 말을 하며 은우는 한숨을 후우 내뱉었습니다. 그리고 괜히 자신의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고개를 홱 돌려서 창가를 바라봤습니다. 조금은 쑥스러운 모양입니다.
/이것이 오늘자 마지막 진행레스!! 알게 모르게 여기서도 분기가 작동해서..이런 루트로 들어오긴 했는데... 아무튼...12시 15분까지!
“······성운아.” “네?” “뇌전단 스캐너에 뭘 했니?” “아, 아셨구나. 헤헤헤···.” “이렇게 해서는 네게 적합하고 올바른 커리큘럼 방향을 제시해주기가 힘들어.” “하지만 아빠. 이제 슬슬 아들의 사생활을 존중해주실 때가 됐잖아요?” “서성운! ···아빠도 알고 있다. 다 알고 있는데, 그래도 너희에게 밝은 미래를 선사해주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아빠.” “······” “하고 싶은 일이 생겼어요.” “······” “제 미래는, 제 손으로 찾아내고 싶어요.” “······” “저기. 응원해주실 수 있나요···?” “······”
왜 세은이와 부장이 리버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지만 밝힌 서연과는 달리 부원들의 반응은 다채로웠다. (나랑 언니와 혜우가 수정 싸다구(???)를 날린 게 가장 강렬했다.) 어쨌거나 세은이는 자기에게 말을 건넨 부원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이윽고 부장이 세은이에게 리버티냐고 묻자 세은이는 보기 딱하게 부들부들 떨더니 그간 쌓였던 걸 폭발시키듯 제 사정을 이야기했다. 들어가고 싶었는데, 차마 들어갈 수가 없었단다. 지금도 혼란스럽다고, 도와 달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서연은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세은의 입장이었어도 때론 죽고 싶도록 괴롭고 막막하고 그만큼 저 수박들의 제안이 미칠 듯한 유혹일 터라 애썼다고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그게 이제 고작 얼굴이나 익힌 수준인 자신이 맡아도 되는 역할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라?? 부장 선배 말씀이...??
" 부장!! 부장이 시스콤이란 생각은 전혀 안 해요!! 동생이잖아요! 가족 중에선 유일하게 남은!!! 누구보다 걱정되고 위하고 싶은 거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
" 어, 근데... 저... 저는 아직 저쪽과도 싸운다고 결정한 건 아니었거든요;;; 위험하니 강요는 안 하신다고, 생각할 시간 주신다고 하셔서요...... 좀 더 고민해 봐도 될까요? "
이 정도로 분위기가 무르익은 와중에 찬물 끼얹기 뭣하지만 할 수 없다. 무슨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결정을 단순히 분위기만 타서 할 만큼 난 용감하지 못하다고!!!
방금 전까지 열심히 병뚜껑 따듯 더미의 머리와 몸을 분리시키던 그녀가 그렇게 외치며 유리벽쪽을 바라보았다.
[이미 충분히 성장한거 같거든. 내가 보기엔...] "왜져?" [당장 네 손에 들린걸 보면 말야.] "흐음... 그-렇슴까..." [무엇보다, 넌 딱히 강해진다거나 하는 욕심이 있진 않았던거 같거든.] "그치만 강해서 나쁠건 없잖아여?" [...아, 잘못 말한거 같거든. 강해져야 한다는 강박증이나 조바심은 없었다. 려나?] "그것도 쵸큼 애매한데여..." [뭐, 생각해보면 그렇거든... 좌우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거야. 스스로에게 재촉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 "그럴... 지두 모르겠네여." [헤에... 점례 지금 네 모습을 소장님들께서 보시면 뭐라고 생각하실지 궁금하거든~] "...그건 좀 봐주십셔..." "어라, 싫은 소리 들을거 같아서 고민이니?" "홈마니나!" [?! 인기척 좀 보이는게 좋다고 생각하거든!] "쏘리쏘리~ 어찌보면 그 딸에 그 엄마일지도 모르지~?"
갑자기 툭 튀어나온다 하여 갑툭튀로 등장한 여성에 그녀와 여학생은 소스라치게 놀랐고, 여성은 그런 모습이 재밌었는지 쿡쿡거리며 웃어보였다.
"그나저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심까?" "글쎄~ 그건 네가 어른이 된다면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어른을 부정하던 입장에서 그 반대로 되긴 쉽지 않을거 같거든...] "글쎄? 그렇게 말하기엔... 점례 너, 소장님들하고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고 싶단 말을 자주 하지 않았던가?" "...머, 언젠간... 이라는 느낌이지만 말임다." "흐음~" [...수상한 웃음이거든...] "왜? 정작 그런 때가 오면 오히려 당황하는 쪽이려나?" "...에반데여." "조만간 잡자구. 그 '저녁식사' 라는거 말야. 나 꽤나 힘들었다니까~? 한명은 목석에 한명은 까다롭기 그지없는 사람들한테 긍정적인 메시지를 얻는다는게 얼마나 힘든지~ 이래서 중간관리직이란건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니까~" "[우와, 어른의 야비함.]" "어머어머, 얘들 말하는 것 좀 봐... 어른다운 화술이라고 해주렴!" [언제가 될진 몰라도 그날은 꽤나 외로울거 같거든~] "아니, 유라 너도 갈건데?" [엩...]
아, 대세 거스르는 소릴 너무 당당하게 했나? 뒤늦게 뒷머리를 긁적거리는데, 성운이가 (놀랍게도) 부드러운 어투로 말을 붙였다. 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부드럽지 않고 오싹했다. 대체 뭔 일 겪었냐, 너? 아니, 저지먼트? 자그마한 동급생이 고생은 고생대로 한 노목의 그루터기처럼 느껴지는 서연이었다. 어깨를 툭 쳐 주는 성운을 돌아본 서연의 표정에서 드러난 메시지도 아마 그리 다르지 않았으리라.
어쨌거나 자기 눈치는 안 봐도 된다고 말해 주는 건 고마워서 고개를 끄덕였다.
" 고마워!! 나도 신중하게 생각해 볼게. 그리고 어떤 결정을 내리든 목숨 걸어야 하는 정도만 아니면 가급적 협조할게~!!"
아이고. 설마 누가 따귀를 때리는 일은 없겠지- 라고 생각했건만. 이것이 실제로 일어나버렸네. 어쨋거나 다행이야. 세은이가 결국은 위크니스가 아니고, 들어갈 생각이 없다는 것이 말이야.
" 세은아. "
" 이렇게 솔직하게 말해주니깐 얼마나 좋아. 드디어 너의 진심을 알 수 있게 되었네. 많이 힘들었겠구나. 너랑은 거의 3년을 알아온 나도 이렇게 답답했는데, 당사자인 너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
" 정작 죄가 없는 너 스스로를 왜 혐오하냐. 너 잘못한 거 없어. "
서한양은 "좋아-"라고 말하며 자리에 일어나고, 은우의 뒤에서 은우의 어깨를 손으로 탁 짚고서는, 세은이에게 웃으며 말했겠다.
" 세은이 너는 봐왔잖아. 이 두 오빠가 마음만 먹으면 다 해내왔던 거. 이번에도 오빠들이 마음 제대로 먹었으니깐, 세은이 너는 안심하고 있어도 돼. 더 이상 너 자신을 증오할 필요도, 무서움에 떨 필요도 없어. "
다 부숴버리자는 은우의 말에 한양은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 그래. 이게 우리 방식이지. 역시 코뿔소들은 코뿔소들이라니깐? 하지만 이 분위기에 찬물을 얹는 것 같지만.. 이 말은 해둬야겠어. "
" 다들 잘 들어요. 우리는 리버티에게 전쟁을 선포한 동시에 인첨공에게도 반기를 들었어요. 그렇다는 것은 우리가 필연적으로 싸워야 될 세력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이죠. "
" 인첨공의 특수부대 세력 '헌터'입니다. "
아마 부원들은 서한양의 뒤에는 검은 배경이 생기고, 디스트로이어가 흉악한 미소를 지은 채로 부원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보이는 착시(?)를 경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 다른 퍼스트클래스들은 몰라도- 헌터는 인첨공의 세력이죠. 인첨공에 반기를 든 이상, 디스트로이어와 헌터와의 싸움은 필연적일 겁니다. 디스트로이어는 확실하게 싸워야 될 대상이죠. 제가 알기로 헌터는, 디스트로이어를 필두로 구성원 하나하나가 레벨 5에 근접한 능력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걸로 압니다. 솔직히 화력면에서는, 우리가 아직 상대적으로 약해요. "
" 하지만 그 필연도 필연이 아니게 만들 방법이 있긴 합니다. 디스트로이어 역시 위크니스로 인질이 잡힌 상황.. 하지만 리버티는 위크니스의 해체방법을 알고 있죠. "
" 맞아요. 먼저 리버티와의 싸움에서 해체방법을 확보한 후에 디스트로이어를 이 방법으로 설득하면 디스트로이어는 물론- 그의 헌터세력도 우리의 편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애초에 그 분도 윗 분들에 대한 태도가 껄렁한 분이라~ 굳이 우리가 아니어도, 싸워야 될 대상에서 제외시킬 수 있죠. "
그리고는 은우를 바라보며 물었겠다.
" 결정은 너가 하는 거야. 어떻게 할래? 이 방법이 아니면 헌터와의 싸움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하는데. "
세상에, 저지먼트에서 음료에 술 타는 사람이 있는 것도 충격인데 양심고백 소리까지 했는데도 안 나와. 실화냐? 그리고 왜 아무도 애를 안 재우는 건데? ...설마, 술주정이 아닌건... 가? 이런 분위기에서는 싸대기를 때리러 간 혜우한테 술 냄새 났냐고 물어보기도 좀 그런데. 그 와중에도 세은이의 주정인 듯 주정 아닌 주정 같은 넋두리는 계속 이어졌다. 난감하다. 도와달라, 라... 술에 취했든 아니든, 냉철한 상태로 하건 아닌 게 확실한 말이라, 귀 기울여 듣기 보다는 재우기부터 해야 하는데. ...그렇지! 좋은 생각이 났다. 담요를 가져와, 세은이를 부리또 마냥 둘둘 싸려 했다.
"자, 세은아. 일단 자자. 리버티에 들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충동적으로 들게 될까봐 두려운 거지? 사람이 심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컨디션이 나쁘면 더 충동적이게 될 수 있어. 그러니까 한 숨 눈 붙이자."
...이렇게 하는 거 맞죠? O박사님? 인첨공 밖을 향해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려니, 부장선배도 한마디 하신다. 정신 없지만, 이번엔 잘 들어보자. ...그러니까, 리버티 측도, 인첨공 높으신 분들 측도 아닌, 제 3세력으로서 참전하자는 말씀... 이...신가? 나... 나도 싸워야 돼? 이런 중대사를 뒤풀이 자리에서 당장 결정하라고요? 아니, 그런데 부장 선배 마음상태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닌데... 어쩌지? 오래간만에 패닉에 빠질 찰나, 서형의 목소리가 날 구원했다. 나도 헛기침을 하고 말을 얹었다. 오랜만에, 합쇼체 모드로!
"부장 선배님께서 싸우기로 결단을 내리신 그 심정을 제가 다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저 역시 제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걸린 일이라면 당연히 상대가 누구든, 얼마나 큰 세력이든 맞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쟁에 뛰어들고 말고는 중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선배님께서도 쉬운 마음으로 내리신 결단이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그러니 어줍잖은 마음으로 분위기에 휩쓸려 결정하기보다는, 시간을 들여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결정하고 싶습니다."
붉어진 세은의 뺨을 가만히 바라보던 리라의 시선이 움직이는 입으로 떨어졌다. 혀끝에서 떨쳐 나오는 이야기는 리라가 가장 바라마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만일 리버티였더라고 해도 솔직히 너를 어떻게 마냥 원망하겠느냐만은. 이 자리에서 가장 마음 썩인 사람이 누구겠는가. 나는 너희 남매가 아니었으므로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해봤자 완벽하지는 못하다.
그래서 더 고마운 거다. 리라는 가슴 속에서 끓던 불 같은 것을 무거운 한숨에 섞어 뱉어내고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목적지는 세은의 앞이다. 아직 떨리고 있는 양 팔을 뻗어, 리라는 세은을 살짝 껴안으려고 했다.
"무섭겠죠. 이해해요. 나는 세은 후배님이... 세은이 네가 아니니까, 위크니스가 되어본 적 없으니까 그 심정을 온전히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네가 많은 걸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 하나는 알아. 그래서 네가 만약 뭘 하고 있고 어디에 소속되었다고 했든 쓰릴지언정 경위만큼은 납득했을 거 같고."
결함품. 퍼스트클래스와 위크니스. 마음을 제거하는 실험. 차일드에러 인체실험. 듣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혀오는 단어들인데 그걸 실제로 겪은 너는 어땠을까. 리라는 아직 조금 불안정한 호흡을 가다듬으며 세은의 등을 두드리려 했다.
"하지만 너는 결국 그러지 않았잖아. 고마워. 너와 우리의 마음을 더 괴롭게 했을지도 모르는 선택을 하지 않아줘서 고마워. 그리고... 도와달라고 말해줘서 고마워. 그게 내가, 우리가 가장 원했던 말이야."
세은의 어깨 너머로 간 시선은 은우에게 닿는다. 눈물 자국으로 너저분한 낯은 평소만큼 말끔하진 않았겠지만 적어도 눈빛만큼은 훨씬 명료하다.
"당연하죠. 혜우 후배님이 그랬는데— 우리가 누구예요? 그 '목화고등학교 저지먼트' 잖아요?"
"상관없어. 오히려 진지하게 생각하고 무서우면 나서지 않아도 돼. ...이 문제는 쉽게 충동적으로 정할 일이 아니야."
서연과 새봄의 말을 들으면서 그 부분은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은우는 이야기했습니다. 애초에 억지로 끼이게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무슨 선택을 하더라도, 결국엔 자신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법. 거기서 빠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개인의 자유였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저지먼트가 개입해야 하는 일에서까지 뺄 생각은 없다는 것도 한 몫 했습니다.
한편 세은은 자신의 손을 잡은 수경의 모습을 우선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에 손을 얹다가 알사탕을 쥐어주는 랑을 바라봤습니다. 이어 블루 레모네이드 사탕까지 쥐어주는 혜우를 덩달아 바라봤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을 안아주는 리라 역시 가만히 바라봤습니다. 이어 세은은 고개를 아래로 숙이며 고맙다는 말을 조용히 이었습니다. 물론 넷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모두 포함되는 작은 인사였습니다.
"소망과 각오... 지금 당장은 움직이지 않을 거니까, 일단 그 마음가짐을 조금 더 잘 간직하고 터틀릴 때가 되면 터트려줘."
"복수려나... 하하. 복수는 모르겠지만, 부장으로서 마지막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네."
"...정 안되면 내년에는 네가 좀 해줘라. 랑아."
"공리주의적으로 낫게는 아니지? 뭐, 그게 더 낫다면 그것도 상관없겠지만?"
"헌터라. 확실히 그 작자들이 아군이 되어준다면 고맙긴 하겠지만... 그 작자들과 정면 충돌은 최대한 피해야 해. ...일단 디스트로이어는.... 아.. 그 아저씨 싫은데. ...일단 긍정적으로 생각해볼게. ...경우에 따라서는 내가 어떻게든 헌터를 막아보는 방법도 있을테고. ...물론 디스트로이어가 아군이 괸다면 도움이 되기야 하겠지만, 그 아저씨가 되려나. 일단 그 부분은 작전을 좀 생각해야겠어."
각각의 말에 따로 대답을 해주면서 은우는 후우 숨을 내뱉었습니다. 그리고 모두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럼 일단 오늘은 이쯤에서 해산하자. ....나는 나대로 생각을 정리하고 싶고, 세은이는 세은이대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으니까."
"...어느쪽이건... 후회없는 길로 나아가자. 각자 말이야."
내놓은 답이 조금 다를지라도 그건 틀린 대답이 아닙니다. 그 또한 각자의 길이기에. 그렇기에 가을 바람이 부는 그 날. 저지먼트 아이들은 각자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884 서연주 헉 명대사 뽑아주다니 감동이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 확실히 저 말할때 새봄이가 오늘 스토리에서 최고로 진지했던거 같아 히히 나는 개인적으로 서연이 명대사 이거 두개! 하나만 못고르겠더라 히히 " 어... 세은아. 네 담당 연구원 혹시 죽었어? 살아 있으면 당연히 저 수박들이랑은 무관한 거 아냐? " " 네 입장에선 저 수박들한테 당장 가서 코드를 해제하고 싶은 게 당연하다고 생각은 해. 하지만 내가 너라면 코드 해제 받자마자 빠져나올 거야. 저 수박들 말하는 거 봤잖아. 우리가 병기 신세라면서 우릴 병기로 써먹으려는 거. 그런 데서 오래 있어 봤자 좋은 꼴 못 보고, 저 수박들도 머리가 있다면 코드 해제해 주는 대로 손 터는 게 퍼클과 위크니스에게 훨씬 이익일 거 아니까 쉽사리 코드 해제를 해 주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해. "
>>935 대부분은 한양이와 철현이의 도배나 외침 덕분에 위험에서 조금은 빠져나가겠지만... 그래도 역시 납득하지 못하는 이들 중에서는 연구원을 습격하는 이들도 있긴 할 거예요! 그 부분은 여러분들의 자유롭게 해주세요! 독백으로 쓰거나 하면요! 그리고... 율럭키가 경호를 하는 것은 개개인의 자유지요!
약속한 장소에서 금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허둥지둥 달려와서 손 잡으며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건넸기 때문에 금이 어떤 차림인지, 어떤 모습으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혜성은 채 살필 겨를이 없었다. 커리큘럼으로 체력증진 훈련을 할 때나 자경단 활동을 하고 복귀할 때나 이렇게 뛰어봤지, 평소에는 이렇게 뛸 일이 없어서 그런지 금방 숨이 차올랐다. 체력이 떨어지거나 하는 편은 아닌데. 역시 담배를 너무 많이 폈나. 진지한 생각을 하는 것과 다르게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차올랐던 숨은 금방 가라앉았다.
혜성은 제 손을 마주 잡아오는 금의 손에 숨 몰아쉬느냐고 내리고 있던 시선을 들어 바라봤다.
"─ 정말? 오래 안기다렸다면 다행이야. 진짜 늦는 줄 알고 뛰어왔거든."
진짜 다행이다, 하고 중얼거리며 슬몃 흐릿한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혜성은 이제는 익숙하고 당연하다는 양 서로 마주 잡고 있는 자신과 금의 손을 바라보다가 제 얼굴 보며 웃어보이는 금의 얼굴에 도록, 눈을 굴렸다. 손 마주잡는 것에 익숙해진만큼 제 얼굴을 보는 저 시선에도 익숙해질 법도 한데 도통 익숙해질 수 없단 말이야. 새삼스레 부끄럽고 쑥쓰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금의 눈을 피해 다른 곳을 향하고 있던 혜성의 새파란 눈동자가 흘끔 곁눈질하려던 찰나였다.
"...뛰어와서 그렇게 예쁘게 보이지 않을텐데. 그래도, 칭찬해줘서 고마워."
이거 맞아? 아니 물론, 내가 할말은 아니기는 한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니야. 내가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거야. 정작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이겠지. 생각하며 혜성은 자신이 말을 마치는 타이밍에 귓가에 손이 스쳐지나가자, 잠깐 눈 깜빡이고 금의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한다. 물끄럼 바라보던 새파란 눈동자가 도록, 영화관 방향으로 움직였고 혜성은 잡고 있던 금의 손을 살짝 놓았다가 깍지를 껴서 고쳐 잡은 뒤 어깨가 스칠 정도로 가까이 몸을 기댔다.
"너도, 오늘 예뻐. 평소에도 예뻤지만 말이야."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 작게 속닥거린 혜성은 빈 손을 들어 금의 뺨을 엄지로 쓰다듬어주고는 들어갈까? 하고 말 덧붙히며 느릿하게 미소를 지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