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카미 고교에 유명한 양아치였던 사토 소이치로를 갱생시킨 것은 스며든 레이나였다. 채찍(무력)과 당근을 적절하게 섞어서 그를 사람처럼 만들었지만, 역시나 방해되는 것은 그 지긋지긋한 사토 가문이었다. 레이나는 이미 소이치로를 신랑으로 낙점해뒀고, 때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___
' 아버지가 우리가 만나는걸 알고 있어, 네가 석연치 않으신가봐 .. 저런 아버지 없어지면 좋겠는데 '
생각해보면, 레이나 그녀 자신도, 눈 앞에 있는 무신을 크게 힐난할 자격은 되지 못한 모양이다.
사토 레이나는 한쪽 눈을 슬며시 감으며 카가리의 말에 입꼬리를 올렸다.
" 그건, 기분 좋은 말이네, 내려와서 인간의 아첨에 대해서 배우신건가? 좋은 징조야 "
본디 크고 탐욕적인 것에서 비롯되어 걔중 일부로 떨어져 나간 레이나이기에 카가리의 저런 말은 설령 그 뜻이 달리하여도 기분좋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 하지만 그건 나쁜 징조인걸, 우리가 통성명 할 정도로 살가운 사이는 아니잖아? " " 나는 당신에게 홀린 사토 가문의 망령들 덕분에 큰아이를 잃었고, 당신도 지금 내가 당신을 증오하고 있다는걸 눈치챘으니... "
뒷말은 따로 말하지 않았다. 말을 삼킨 레이나는 재밌다는 듯 아까보다 훨씬 기묘한 웃음을 지으며, 마치 농을 하듯 다른 말을 꺼냈다.
"그 건으로는 무종務從 말을 아끼는 편이 나을 거다. 이곳은 신을 모독하고 기롱하기 위해 열린 '요괴의 축제'이니."
무신은 불언을 하면 했지 헛되이 지껄이는 법 없는 신이다. 스스로 아끼라 한 말을 구태여 꺼낸 것은 다름아닌 충고의 의미였으니. 그의 입에서 '신'이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주변을 지나던 요괴들의 시선이 일제히 꽂혀들었다. 하늘을 날던 것, 발치를 기며 꿈틀대던 것, 보이지 않는 무형의 요귀도, 인간과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똑 닮은 요괴마저도, 모두가 한 뜻으로 응망하는 눈길. 조금 전까지만 해도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즐거이 웃고 떠들던 것들의 눈들, 붉은 공막과 샛노란 홍채를 지닌 짐승이 응시鷹視하고, 금방이라도 빠질 듯 흉측하게 돌출된 외눈으로 흘기고, 그림처럼 새겨진 수백 개의 평면적인 눈일지라도 어떻게든 매섭게 치떠서 노려보는 그 시선들. 갖가지 형상과 개수의 안구들이 희번들 구르며 불경한 말의 발원을 찾아, 이윽고 실로한 신인神人을 향한다. 오싹할지언정 흥겨웠던 자리가 일순만에 냉담히 식었다. 그 분명한 적대감을 앞두자 격전을 앞둔 때의 싸늘한 흥분감이 피를 타고 온몸을 내달린다. 그러나 무신은 사나운 성질 어떻게든 참으며 시선 멀어질 때까지 가만 기다리기만을 택했다. 돌아보고서도 아무런 낌새가 없자 그중 무심결에 돌아본 녀석들은 다시 제 갈길을 떠났다. 남은 대부분의 녀석들도 무신이 뱉은 말에 큰 문제가 없다 여겼는지 다시금 저들끼리 도란거리며 웃기를 계속했다. 그러고도 미심쩍다는 눈으로 쳐다보는 녀석들은…….
"내 실언을 좀 했기로서니 눈깔 그리 사납게 처 뜨고 꼬나볼 일이더냐?"
쏘아지는 시선보다 더 흉흉하게 노려보니 결국은 기세에 눌려 눈길 거두고 떠나더라. 네코바야시가 어휘를 모호하게 표현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본디 신과 요괴의 구분은 불명확한 구석이 많아 틀린 말이 아닐뿐더러 정정할 필요 또한 없으니. 처음 무신이 꺼냈던 말은 언뜻 이곳이 어떤 자리인지를 주지시키는 문장처럼 들렸으나, 말을 뱉는 어조로부터 '요괴'와 자신을 구분짓는 듯한 태도가 묻어났으리라. 눈치가 좋다면 무카이 카가리가 요괴와 신 중 어느 쪽인지는 짐작할 수 있을 테다.
길다면 길었던 대치가 끝나자 무신은 재차 네코바야시를 되돌아보았다. 섬뜩하게 갈라졌던 눈동자도 어느덧 스멀스멀 합쳐져 다시금 두 개로 되돌아간 채였다.
"하면 도와야겠군. 네가 죽으면 그놈이 또 무슨 궁상을 떨는지."
제 눈을 보고도 야무지게 대답하는 것을 보면 정신은 다 차린 모양이다. 괴이한 것을 마주보고도 위축되지 않는 기개 또한 제법이라. 엄중하게 다물렸던 입매가 피식 오른다. 그는 문득, 마음에 들었으니 은혜라도 베풀까 싶어졌다. 어차피 처음부터 이 인간을 돕기로 마음먹기도 했고, 마침 주제를 모르고 제 앞에서 저용을 부린 것 또한 벌하고자 했으니……. "한데," 때가 맞는다면 네코바야시의 숙여진 시야 안으로 나막신 신은 발 하나가 불쑥 들어왔을 테다. 그리 말한 신의 발 아래에는 그림자가 있었다. 본래대로라면 상像이 있을 뿐 실체는 없을 '그림자'가, 어째서인지 굽 아래 질량을 가진 채 짓밟힌 듯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땅과 소녀의 얼굴로 느른한 눈길 번갈아 향하더니.
"이건 알면서도 붙이고 다니는 게냐."
그 말 꺼냄과 동시에 '그림자'를 짓밟고 있던 신의 조영이 흐트러졌다. 일렁거리던 인형人形은 어느샌가 똬리를 튼 거대한 무엇으로 변모하고, 장대한 몸체에 빼곡히 붙은 날카로운 발톱들이 찰나에 그림자를 완전히 에워쌌다. 그림자 속에서 머리인 듯 보이는 무엇인가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것이 용의 수염처럼 길다랗게 자라난 기관을 까딱임과 동시, 무신이 물었다. 눈앞에 실체로서 선 형상만은 여전히 사람의 모습인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