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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게임의 람보 플레이가 아닌, 실제 잔투 상황에서를 말하는 것이었다. 동월은 한번 빡돌면 앞뒤 안재고 들이받는 성향이 있었으니까. 아, 그건 람보 보다는 가미카제가 더 어울리려나?
" 야야야 뼈 발라진다. 3000원 비싸지기 전에 그만둬. "
허점을 알고있다곤 해도 이렇게 제3자에게 두다닥 맞아버리면 아픈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방금의 팩트폭행은 조금 아팠다. 아무튼 애린이 나열한 이유들로 인해, 동월이 실제로 그것을 행하는 일은 아마 없겠지. 와이어건으로 저격하는 거라면 몰라도.
" 맞아. 나 악질이야. 물어버려도 할 말은 없지. " " 그래도, '자아찾기' 에 열중중인 후배님을 조금 도와준거라는 변명으로는 빠져나가기 힘드려나? "
화났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앞에 다가온 애린에게 푸스스 웃어보이며, 뻔뻔하게 대꾸했다. 다만 표정이 금방 풀린 것을 보면 연기와도 같은 무엇인것 같으니...
" 밤꿀 한대로 끝날 것이라 생각마라 토끼여. "
위협적으로 주먹을 들어보이고는, 이내 다시 내린다. 놀리는걸 좋아하는 애린의 특성상, 저 말도 아마 놀리기 위한 것이겠지. 실제로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웃어넘길 수 있다.
다만, 그 이후에 꺼내어진 말은 어딘가의 우주 저편에서 들린 말 처럼, 드리프트 후 풀악셀을 밟은 수준의 진실이었기에 하마터면 동월은 들고있던 총을 떨어트릴 뻔 했다.
" .....뭐? "
그런 얘기를 그렇게 편안하게 한다고? 길가다가 점심으로 수르스트뢰밍에 올리브 오일을 뿌려 세제에 비벼먹자고 하는 것과 같은 량의 충격을 받은 느낌이었다.
다만 그것은 거기서 그쳤다. 원래 류애린이 어떤 아이인가를 떠올린 동월은 그것이 한 점의 거짓 없이 진실이며, 더 이상 감정 표현 자체가 무색할 정도 닳고 닳아진 것이라는걸 인지했다. 아니, 어쩌면 감정 느낄 수 없는 상태이기에 저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머릿속에 정제되지 않은 정보가 과다증량되자 잠시 미간을 손으로 짚어 마사지하던 동월은, 이내 입을 열었다.
" 뭐... 방금 놀라자빠질 뻔 하긴 했지만, 지금껏 널 만나면서 생긴 면역력 덕에 자빠지진 않았네. " " 그 '실험' 이라는건, 생명에 위협적이냐? 아니면 매일 다칠 정도로 혹사해? 하다못해, 정신적으로 널 몰아붙이냐? " " 하아...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면서 사는 녀석이 그렇게 밝다는걸 보면, 존경스러울 정도네. "
동월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잠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말을 잇는다.
" 아무리 승자의 보상이라곤 해도, 그만한 정보를 들었는데 입 싹 닫고 뒤돌 생각은 없고, 뭐.... 아까 하려했던 얘기나 해줄까. "
이미 몇 명은 알고있는 사실. 다만 그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에게 동월이 직접 알려주는건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 어쩌겠냐. 우리 법께서 그래도 주먹은 자제하리고 하시니. 법보다 주먹이 가깝긴 해도, 결국 마지막에 맞이하는 건 법이니. 이게 형벌이 확실하지 않아서 그래. 형벌이 가볍다는 얘기가 아니야. '확실'하지 않다는 거지. 지들은 조금 특별할 줄 안단 말이야. 나는 안 잡히겠지, 이 X랄. "
범죄를 저지르면 무조건 잡히고 처벌을 받는다는 것은 범죄자들에게 확실히 인지시켜야 돼. 그러려면 일단 범죄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체포해야 하지. 체포되면 예외 없이 누구나 처벌된다는 신호를 분명하도록 해야 해. 범죄자가 '나는 안 잡히지 않을까ㅎㅎ' 이딴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해야 된다고.
" 근데 쉬불.. 우리들은 알잖냐. 조오올라아아게~ 거대하고 나쁜 놈들이 높은 분들이랑 유착관계라는 거. 내가 말한 걸 기대하면 너무 큰 욕심이지. 그냥 인첨공이 썩었어. 근본부터 잘못됐어. 우리 복면 쓰고 테러해서 외부인한테 인첨공 인식 박살내볼까? 누명은 그림자한테 씌우는 거야. 높은 분들 아주 개빡치게. 아주 대한민국 정부가 인첨공에 초집중을 하게 만드는 거야. "
물론 마지막 말은 장난식이었겠다.
" 우리 학구에서 슬슬 놈들 다시 설치니깐 그러냐? 아니, X발..4학구 진정시키니깐 왜 또 발작이야..미친놈들.. 아, 근데 이거 봤냐. 3학구에서 최근 다섯 명이 실종됐다던데. "
이상하게 여겨질 법도 한데 쫓아내지는 않는구나. 다행이다. 일행끼리 있는 테이블에 직원이 냉큼 앉는 게 희한한 짓이라는 자각 정도는 있었는지 그런 생각을 흘려보낸 리라는 연신 생글생글 웃으면서 두 사람의 맛 평가를 들었다.
"그렇죠? 저지먼트에 요리 잘 하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몇몇 디저트 종류도 만들어 팔고 있어요. 전 아니지만... 헉. 그런데 간이 강한가요? 주문이 많아서 실수했나?"
아니면 사람마다 입맛이 다른 걸수도 있겠지만, 제법 진지하게 고민한 리라는 어쩌나 하고 비단을 바라보았다.
"......서비스 드릴까요? 세트는 어렵지만 디저트 같은 거 단품으로?"
머리를 굴리고 굴려서 뽑아낸 최선의 선택지였다. 애초에 예행연습을 하던 날 프라이팬 하나를 화끈하게 해 먹고 주방 출입 금지를 당한 후라서 직접 들어가 다시 요리해 올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도 자몽 에이드는 마음에 드시는 모양이니 다행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기다리면 이내 음식을 마저 넘긴 성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5년! 엄청 오래 계셨네요. 그렇네... 그렇게 인첨공 주민이 될 수도 있겠구나. 원래 살던 사람들이 있으니까."
입주 신청을 하고 들어와 이제 겨우 1년 반을 넘긴 리라로서는 상상도 못 해본 세월이고 사유다. 하긴 이정도 범위의 땅이 처음부터 온전히 비어있었을 리가 없으니까.
"엇, 아뇨. 전 연구원 쪽은 관심 없어요. 그게... 이게 좀 복잡한데... 잠시만요."
이윽고 리라는 옆을 지나가는 토끼 메이드 인형? 하나를 집어들더니 "휴게공간에 있는 유니콘 키링 달린 검은색 백팩 안에서 노란색 표지 노트 꺼내다 줄래?" 하고 말을 걸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게 제정신인가 싶을 기행이었겠으나, 의외로 토끼는 그 말을 알아들은 듯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종종거리며 저만치로 사라졌다.
"금방 올 거예요. 아, 그리고... 그런가? 보통 그런 일이 많나요? 하긴. 확실히 돈이 없으면 땅값이 싼 곳을 찾아가는 게 보통이긴 하죠."
그리고 토끼가 돌아오기 전 비단의 답변이 돌아왔다. 막상 이렇게 들으면 또 그런 거 같기도 하고.
"...랑이 언니가 웬만하면 스트레인지는 들락거리지 말라고 했었거든요. 어쩌다 돌아다니게 됐을 때도 엄청 평화로운 분위기는 아니었고, 일반적인 인식도 그렇고요. 그런데도 연구 기관이 들어선다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연구소라면 이래저래 왕래하는 사람도 많고 건물 내에 중요한 것도 많이 둘 텐데, 자리잡은 곳의 치안이 나쁘다는 건 악조건이니까요."
뭐, 금전 문제는 많은 걸 포기하게 만들긴 하지. 다른 게 아니라 정말 그런 이유인가? 거기까지 생각할 때 쯤, 무언가가 리라의 다리를 두드렸다. 자기 몸보다 큰 노란색 노트를 들고 온 토끼 메이드가 거기 있었다.
"고마워~ 잘 가! 아, 성환 연구원님. 이게 그 선생님 자료를 옮긴 사본이에요. 여기를 보시면... 애시르 연구소라고 있죠."
해당 노트의 중간 페이지 쯤에 적힌 내용은 이랬다. 다소 악필이지만 그런대로 읽을 만한 글씨는 세월의 흐름이 묻은 듯 잉크의 색상이 다소 옅어져 있었다.
[ㅇ] [애시르] 운영 시작 시기: 인첨공 발족 직후 비고: 연구소에서 운영하는 보육원 존재. 특이사항 없음. 연구 성과는 평범.
주소: 인천첨단공업단지 제 2학구 00로 000길 00 연락처: (12년 전 애시르의 공식 연락처)
그리고 그 아래, 유난히 더 날려 쓴 악필로 적힌 추가 메모가 있다. 다른 문장들보다 최근에 쓰인 것처럼 진한 검은색 글씨로 적힌 메모에는 이런 내용이 쓰여 있었다.
- 생존본능과 능력 계발간의 상관관계 ㄴ발표자는 애시르 연구재단? 신생인 듯 ㄴ이론의 기본 전제가 능력 계발의 대상이 되는 학생에게 다소 위험하지 않은가? ㄴ과거 애시르 연구소와 이름이 같다. (둘이 관련 있는지는 ?) .hr
"원래부터 이 연구소랑 연구재단 일을 궁금해 한 건 아니었어요. 로벨이라는 옛날 연구소 관련 자료를 찾다가 이걸 보게 된 건데, 발표한 이론이 위험하다는 메모를 보니까 좀 느낌이 안 좋아서요."
그 말을 하며 무의식적으로 종이 끝을 손톱으로 누른다. 마지막으로 본 이후로는 별다른 해결책도 실마리도 잡지 못했으니까.
"굳이 이런 걸 들여다보고 있는 것도, 친구랑 친구 동생 같은 애가 연구소 관련으로 힘들어하는 걸 봐서 시작한 거거든요. 공식적으로 지금은 없어진 연구소라는데 말하는 걸 보면 아직 어딘가에 있는 것 같고, 그런데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고, 협박 당하는 것처럼 구는 게 이상해서 신고를 넣을래도 어디 있는지 뭐 하는 데인지도 모르니까..."
그 와중에 알아본답시고 받아온 수첩 내용 중 눈에 밟힌 게 하필 이거였다.
"비슷한 찜찜함이 느껴져서요. 아닌 것 같다면 다행이지만요. 요즘 일이 많다보니 안 좋은 쪽으로 의심이 늘어서... 음, 쉬러 오셨는데 어쩌다보니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많이 해 버렸네요. 죄송해요."
이렇게까지 말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뭐 상관없나. 이 소란한 곳에서 잘 들리지도 않는 내 목소리에 신경쓰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다만 이걸 다 들어준 사람들에게 미안한 건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