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구는 좋아하지 않는다. 조심히 다루지 않으면 쉽게 상하여 값어치를 잃으니 번거롭고, 엉키거나 걸리기라도 하면 거추장스러우니 언제라도 임전의 태세를 갖추어야 하는 무신에게는 하등 도움 될 점이 없다. 그러니 생전 이런 걸리적거리는 것 하게 될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건만. 손 위에 빛나는 반지를 보며 헛웃음이나 흘렸다. 한때는 갖은 보석과 귀물이 발치에 넘치던 하늘에서 살았기에 입가로 바람 새는 와중에도 이것의 가치는 곧장 알아볼 수 있었다. 무신은 인간들의 규범을 따르지 않을지언정 서로 귀물을 주고 받는 상황이 무엇을 연상하게끔 하는지만은 알았다. 그러며 영원이라니, 치기 어린 시기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라 무심코 생각해 버리고 만다. 때로는 이치를 초월한 존재이기에 유한자보다도 한계에 연연하기도 하는 법이다. 공연히 제 그 생각 못마땅해 그는 반지 끼워진 제 손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곧 한껏 진중한 선언 하던 녀석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툭 치기로 했다.
"천중이라 한들 명 있기에 언젠가 죽기 마련이다. 이 나조차도 영원하지 못하거늘, 나로 하여금 공담 같은 언약 맺도록 한 대가는 정히 치르거라."
그러고 나자 못마땅하던 기분 한결 나아진 것도 같다. 무신 제 손안에 잡힌 손 그러쥐어 본다. 한 손에 모두 잡히는 섬약한 손목부터, 거칠게 굳은 제 것과는 달리 견사처럼 고운 살결 고스란히 느끼며 손가락을 얽는다. 쉬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단단히 깍지 낀 채 손 끌어당기니 속절없이 끌려오는 길밖에 방법 없으리라. 바짝 다가붙어 가까워진 몸을 숙여 입맞추었다. 조금도 물러날 틈 없도록 남은 한 손 허리 뒤로 둘러 죄듯이 끌어안는다. 깊고 긴 숨결만 그렇게 부단히 내려앉았다. 숨조차 쉬지 못하도록 거칠게 몰아치는 포악성도, 피를 내어 해하고픈 육肉으로의 욕도 지금만큼은 잠연하기 그지없다. 하늘에는 아직 형형색색의 불꽃 아롱져 요란燎亂한 가운데 그치지 않는 입맞춤만은 모순되게도 정적이다. 그렇게 한참을 깊이 취하고서야 굳게 맞물린 깍짓손에 힘 풀어지나 싶더니, 요령 좋게도 보지 않은 채 한 손만으로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그제서야 맞대었던 입술과 허리에 두른 팔도 모두 풀렸다. 지금껏 동하여 내리 탐한 것 언제였냐는 듯, 표정은 이제까지처럼 예사스러울 뿐이다.
그 여름 날 창문 밖으로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은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진다. 흐린 하늘 아래 보이는 습한 경치가 사람의 기분을 오묘하게 하며, 비일상의 그것들이 가장 활동하기 좋은 이 시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시기에 마침 어머니께서 돌아왔다. 하지만 가게를 비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카가리 혼자 가게를 맡을 순 없었기에. 나는 접이식 우산을 카가리에게 내밀며 말했다.
"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어머니 마중 좀 나가줘 "
아마 이후에 카가리가 엄청 귀찮아하면서 툴툴 거렸겠지만 어쩌겠는가. 그렇다면 카가리가 카페를 볼거야? 라고 말할 수 밖에 조상님도 조상님이지만, 일단 카페(신사)가 살아야 조상님도 살것 아닌가..
카가리가 우산을 쓰며 버스정류장으로 향하자 그날 따라 유독 길가에 물웅덩이가 많이 고여있었을 것 이다. 오늘 따라 하늘에서 많이 쏟아진 장대비 덕에 흘러 넘친 연못에서 탈출한 잉어가 살짝 파인 아스팔트가 만들어낸 웅덩이에서 아가미를 벌름 거리고, 빗방울이 쏟아지면서 후링을 쳐대는 덕에 울리는 묘한 소리까지. 카가리에게 있어서 이 모든 현상이 썩 달갑게 느껴지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카가리가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 푸른색의 머리카락을 틀어 올려, 머리끈으로 고정한 여성이 하얀 셔츠의 소매를 걷어 올린체 팔짱을 끼며 빗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이야, 한번 쯤은 만나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다 보게되네? "
그녀는 조용히 다물고 있던 입술을 천천히 때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곤 서서히 몸을 돌려 카가리를 마주 보았다. 수상할 정도로 물이 튀지 않은 검은색 바지가 눈에 띄었다.
" 사토 레이나 라고 합니다. 일단은 며느리야 "
그녀는 카가리와 모든 것이 반대되어 있었다. 그 검푸른 머리카락도, 카가리의 적색의 반전이었으며 그 금빛 눈동자도 카가리의 녹색 눈동자의 반전이었다. 그 절지류의 갑충의 존재에 대하여 불만이 아주 많은 그녀는 마치 비슷할 정도로 몸이 긴 파충류와 같았다.
사내가 각시와 지내다 오두막 밖으로 잠시 외출하니. 주지스님으로 변장한 뱀이 나타나 그에게 신부가 지네이니 제대로 살피라 말하였다
”끼엥“ 하며 튕겨져 나가던 카와자토 아야나, 무방비한 상태도 그대로 대가를 치렀다. 물론 그 대가는 평소에 받아내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도 부드럽고 또 상냥했다. 평소의 그라고는 상상조차 할수 없을 정도로. 그래서인지 몰라도, 지금의 이 [ 가져감 ] 은…… 너무나도 아쉬웠다.
“에에잉 이 정도 댓가는 너무나도 약소한 것이와요. 아야나 지금 너무너무 아쉬운 것 아시와요? ”
부루퉁해져선 삐죽 입술을 내밀었다. 품에서 나오자마자 우엥 거리며 “진짜진짜 아쉽사와요~” 하고 파닥거리는 모습 실로 영락없는 개구리다. 뭐어, 그래도 나쁘지 않은 [ 바침 ] 이었다. 댓가를 바쳐 얻은 증명 더할나위 없이 값진 것이니. 왼손에 반짝이는 녹빛에 가까운 청록빛이 밤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났다. 그 모습 실로 만족스러운 모습이라 절로 미소가 나왔다. 입꼬리가 휘었다.
있잖아요, 아야나는 사실 계속 계속 혼자 외롭게 있어 와서, 지금 이렇게 같이 있는 것이 너무너무 좋사와요.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카가리 신님에게는 좀 더 좀더 많이 확인받고 싶은 것이와요. 더 많이 확인받고 싶고, 더 많이 귀애받고 싶사와요. 아버지에게도 이러지 않았는데. 더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욕심. 이것이 연모하는 마음이란 것일까요?
불꽃은 이제 슬슬 막바지를 빛내고 있다. 그 많은 사람들도 하나둘 씩 이제 다 보았다는 듯 하나 둘씩 자리를 떠나고 있다. 그 속에서 어린 요괴 조용히 제 주인과 다시 손을 얽으려 들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나직이 속삭였다.
“……카가리 신님, “ ”저희, 카페로 갈까요? “
이제는 카페 블랑이 어떤 곳인지 알기에 할 수 있는 말. 얽은 손에 살짝 힘을 주려 하며 푸르른 물빛 눈 똘망똘망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