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였더라, 언젠가 분명히 들었던 말이 있었다. 희망은 모든 악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고통을 연장시키기 때문이다. 였던가. 이 말을 했던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분명히 고명한 철학자가 분명하고 이 말이 그대로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희망이 없다면, 인간에게는 무슨 가치가 있을까. 꿈조차 꿀 수 없다면 이 시궁창 같은 현실을 마주하고 평생을 절망 속에서 살아야 하나? 아닐 것이다. 분명. 이 말을 했던 이는, 그런 의미로 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비뚤어져버린 눈으로는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 수 밖에 없어서.
그저, 이 자그마한 아이를 끌어안았다. 저 웃음의 뒤편에는 얼마나 많은 고통이 숨어있을까. 너는 이 자그마한 몸으로 얼마나 많은 괴로움을 안고 살아왔을까. 분명 네가 느끼는 그 모든 것들은 고작해야 수 억년 정도로는 전부 알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시간은 짧은 듯 하면서도 영원하다. 너의 지금은 영원한 듯 하면서도 짧다.
왼쪽 가슴이, 아팠다. 애초에 언젠가는 울리게 될 타이머를 억지로 틀어버린 탓에. 조금 고장이 난 것 뿐이다. 그렇구나, 나는. 나는 너를 이끌 수 없구나.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지. 응. 그래.
언제나와 같은 하루였다. 취기에 몸을 맡겼고. 조금 불행해진 친구를 하늘에 공양했으며.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편의점에 들려서, 기억을 잊게 해줄 약을 사고. 겨우겨우 서로의 마음을 전했다. 평범한 하루. 누군가에게는 그런 평범한 하루였다. 아무 문제 없어. 그러니까.
“괜찮아.”
기다릴게. 평생을 어둠 속에서 살면서 기다리는 것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가 되었으니까. 얼마가 되든, 너의 짧은 시간은 기다려줄 수 있다. 그렇게 헤어진다고 하여 현세의 이별이 아니고, 무엇보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지 않은가. 긴 심호흡을 하면서 조금 젖어버린 눈으로 너와 눈을 마주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죽어버릴 것처럼 고통스럽기만 했기에. 후유증을 없애려면, 언제나 가장 하고싶은 것을 해야만 한다고 하던가.
심장을 조여오는 이 고통도, 입 안을 아릿하게 맴도는 술의 쓴 맛도 모든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자각시켰다. 조금 긴 하루가 될지도 모른다.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으니까.”
조금 새어나가는 말투였다. 이대로 모든 것을 말하기에는 아직 부족해서. 그를 따라 눈물이 주륵주륵 흘렀다. 가장 행복해야 할 순간에. 우리는 그저 눈물 흘리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아직 오지않은 이별의 고통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헤어지는 것이 두려워서.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 운명이라고 스스로 이름 지은 것들에, 소중한 무언가가 빼앗기는 것이 두려워서.
나는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싶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순수해보이는 이면 뒤에 숨겨둔 감당 못할 고통과 만약 일어난다면, 슬퍼할 일 까지도. 모든 것을.
함께 들고 가고 싶다. 연인이란 그런 것이기에. 나눌 수 있는 고통이라면. 얼마든지 내가 대신 들어줄 것이다.
알고 있다. 나의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 쯤은. 몇 번씩 상담을 받는다고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쯤.
그렇기에 바라는 것이다. 언젠가 죽어야만 하는 삶이라면, 최소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있고 싶다고. 그리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언제까지고 함께 짊어지고 싶다고.
씁쓸한 침을 삼켰다. 여전히 눈물 흘리고 있는 너에게 나의 말은 얼마나 닿을 수 있을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서 누군가의 대신을 택한 사람의 말이니까, 아마도 영원히 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여전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정적 속에서, 언제나 나는 새로움을 느낀다. 아마 오늘은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까. 무언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의지해서 살아가려고 했지만 그럼에도 조금은 두려운 것이 사실이라 언제나 금방 깨버리는 술에 의지해서 가벼운 마음을 전할 수 밖에 없었다.
불꽃놀이가 끝나고 사람들은 돌아갈 생각인지 조금씩 인파가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맑은 하늘이 구름에 가려지듯이 듬성듬성 밝혀진 도시의 불빛이 아름다웠다. 그림과도 같은 정경에 감탄하기도 잠시, 그런 것을 보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것처럼 눈물 흘리며 히데미의 눈을 바라보았다. 역시, 이쪽이 더 좋네. 투명하고, 깊어서. 언제까지고 떨어질 수 있을 것 같은 눈에는 폭풍우가 친 것인지 파도가 넘실댄다.
불안함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미래에 대한 공포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법이니까.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겨내야만 한다.
나는, 너에게 있어 최고의 여자이고 싶으니까.
자신감은 없었다. 태어나 남의 것을 빼앗거나 잃는 것 만을 해온 사람이니까. 얼마나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니까, 나는 조금 욕심을 부렸다.
“………내가 너를 잊을 수 없게 해줘.”
네가 나를 잊을 수 없게 해줘. 몇 번이고 끌어안고 몇 번이고 입술을 맞추어서, 서로가 서로를 잊을 수 없게. 오늘의 추억을 몇 억년이고 가져갈 수 있게 해줘. 고요가 이렇게 무겁게 느껴진 적이 있던가. 그저,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는데. 언젠가의 이별을 약속하는 것 같아서. 입술이 닿기 전에 시간이 멈춰버리면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