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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친구에 대한 기억이다. '오랜' 이라고 해봤자 몇 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동월이 오랜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많은 추억을 쌓았기 때문이 아닐까.
과거에는... 음, 앙숙이라고 해도 좋을 사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서로를 싫어하던 것은 아니었을테지만, 만나기만 하면 한쪽은 놀리고, 한쪽은 때리고. 오빠와 동생같은 사이였던 것으로 동월은 기억했다.
그렇기에 그녀가 실종되었다가, 있어선 안될 곳에서 발견된 것에 적잖게 놀랐었다. 그녀가 위태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긴 했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약한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무엇에 당했는지는 몰라도... 정신을 완벽히 무너뜨린 것은 분명했다.
본부측 인원들에 의해 소식을 들은 동월은 곧바로 그녀에게 향했다. 미리 전해들은 대로 구석에 웅크려앉아 흐느끼고 있는 그녀를 본 동월은, 그 때 자기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서글픔' 이라는 감정 하나만은 기억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거기서 그녀의 목에 칼을 휘두르지는 않았을 테니까.
칼이 목에 닿자마자 그녀는 반응하여, 곧바로 동월에게 손톱을 휘둘렀다. 피하지 않았기에 팔뚝에는 길다란 자상이 생겼고, 동월은 물러서지 않고 다시 한 번 칼을 휘둘렀다.
몇 번이나, 어쩌면 몇 십번이나. 그 물러서지 않는 공방은 계속되었다.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끊임없는 상처를 남긴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녀는 상처가 나도 피가 흐르지 않았지만 동월은 계속해서 피를 흘렸다는 점일까. 점점 그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가는 모습이 보였지만, 본부의 그 누구도 그 싸움을 말리거나 끼어들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동월과 그녀의 몸이 완전히 같은 상태가 되었을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공격이 멈추었다. 그녀는 원래 눈이 자리하고 있었을 검은 구멍으로 조용히 동월을 바라보았고, 동월도 너무 피를 많이 흘린 탓에 완전히 지친 상태였지만, 그녀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잠시간에 침묵 뒤에, 동월이 먼저 입을 열었다.
" ...만족스럽냐? " [.....] " 아니겠지. " [.....] " 나도, 너와 완전히 같은 상처를 입었다지만... " " 네 상처를 이해할 수 있지는 않아. "
힘겹게 입을 뗀 동월이 말을 늘어놓는 동안, 그녀는 침묵을 지킨 채로 동월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을 뿐이다.
" 그렇잖냐. 세상 어느 누가 남의 상처를 이해한다는 말을 할 수 있겠어? 완전히 같은 경험을 해본게 아니라면 말이야. " [...크으으...]
처음으로 그녀가 소리를 냈다. 인간의 언어는 아니었지만, 화난듯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이다.
" 뭐, 그래도... " " 이해하진 못해도, 네 고통을 기억할 수는 있을거야. " " 그러니 더 많은 고통을 남기지 말고, " " 푹 쉬어라. "
동월이 공격 의사를 확실히 밝히고, 느릿하게 검을 들어올렸음에도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울었다. 다른 사람들의 기억엔 그저 처절한 비명으로 남아있었지만, 동월은 그것이 울음 섞인 비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처절한 울음 속에서 칼이 가로로 그어진다. 뚝, 하고 멈춘 울음소리는, 이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남은 흔적은, 동월의 몸에 새겨진 수없이 많은 흉터 하나 뿐이었다. 그 흉터 하나하나는 울음으로써 기억될 것이다.
울음 섞인 비명, 비명, 또 비명... 끊임없이 지르는 비명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마음을 울린 모양이다. 사라졌음에도 남아있는 그 비명은 오늘도 어두운 밤을 울렸다.
4학구의 동향에 관한 신정보. 2학기가 시작되고 냉방 수요가 한풀 꺾이면서, 인간 에어컨 일로 쏠쏠한 부수입을 올리던 빙결계/전격계의 학생들이 직장을 잃자 결집하려는 조짐. 늘상 행하는 바보짓이라는 판단 하에 안티스킬조차 관심을 두고 있지 않으나, 신고하지 않은 쟁의나 집단행동에는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행정학구의 관계자가 사찰 임무를 부여했다. 집회 참가자는 17명, 그 중 레벨0이 11명, 레벨1이 6명. 위험성은 지극히 낮은 것으로 판단되었으나 일단 감시한 결과, 난방 노동권을 주장하는 파이로키네시스 학생 무리와 마주쳐 언쟁을 벌인 끝에 자진해산하는 것을 확인했다.
정보 수집을 완료한 뒤 의뢰인에게 왜 이런 한심한 회동을 예의주시했느냐고 묻자, "집회는 문제가 아니야. 그 놈들은 고무탄에 맞으면 소리지르며 나뒹구는 비능력자와 전혀 다를 게 없지. 문제는 그 녀석들이 용돈을 벌고 나서는 납세를 하지 않는다는 거다. 어른들이 노동을 합법으로 만들어 줬으면, 너희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돈을 벌란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의뢰인은 내 ID의 계좌로 수임료를 송금했다. 나의 마음속 한마디, 그러는 당신은 내가 정보매매 일로 소득세를 납부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겠지──이상. …그리고 또 한 가지, 코뿔소의 「귀」가 저지먼트에 되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