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죽음을 맡는 게 당연한 시대가 됐다는 것도, 국민을 수호하겠단 일념 하나로 입대한 곳에서 같은 국민에게 총을 겨누게 되었단 것도. 아니 사실은 모르겠다. 나라가 무너진 시대에 군대의 의미가 있느냐는 녀석들의 대답에도, 각성과 동시에 총을 들고 도망친 녀석들도 있는 마당에 이곳에서 사람들을 지켜야 하는지. 생각해보면, 도망칠 용기조차 없었던 것 같다. 도망쳐서 떵떵거리며 살기에는 나는 너무나도 평범했고, 그런 상황에서 대범해진 녀석들에 비해 나에게 기대하는 사람들조차 버리고 도망칠 용기가 없었다. 그래. 어중간한 용기를 가진 나는 그렇게 살아남았다.
" ...... "
틱틱, 틱, 이제는 발화점이 고장이라도 난 건지. 불이 붙지 않는 라이터를 바닥에 내던졌다. 담배에 붙일 불조차 이제는 사치에 어울리는 물건이 되었다. 입에 물었던 담배를 가슴팍의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한숨을 내쉰다. 머리가 아팠다. 이 빌어먹을 능력의 부작용 탓인지. 온 몸에 느껴지는 토악질의 이물감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러던 때에 등 뒤에서 익숙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평소와 다르지 않은 늙수구레한 남자가 불 붙은 한 개비를 내밀었다. 그의 손에는 아까 내던졌던 라이터가 들려 있었다. 그는 라이터에 붙은 먼지를 과장스럽게 털어내다가,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 이 아까운 것도 버릴 줄 알고. 우리 중위 님께서 사치라도 하실 생각인가? " " 고장나서 버린 겁니다. 고장 나서. " " 고장은 무슨.. 봐봐. 이런 것들은.. "
그는 라이터를 쥐고 구멍으로 숨을 몇 번 불어넣고, 손바닥으로 아랫 부분을 몇 번 툭 툭 쳤다. 그리고 불을 켜자 고장난 것만 같았던 불꽃이 제 몸을 자랑하듯 작게 춤추기 시작했다.
" 이렇게 하면 아직 쓸 수가 있지. "
담배를 입에 물고 그는 연기를 마신다. 나도 그 움직임을 따라 연기를 마시고 있으면, 이 지독한 토악감을 연기를 따라 조금은 뱉어낼 수가 있게 된다. 그것만으로, 나는 여전히 사람이라고 스스로에게 되새긴다.
" 고민이 있나보군. "
그는 내 눈치를 보곤, 연기를 한 번 길게 내뿜고 묻는다.
" 지금 고민 없는 녀석이 있겠습니까. "
그러면 나도 답변하듯 연기를 내뿜는다. 별로 이야기가 이어지진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얘기를 시작해도, 대부분은 내 짜증과 그의 사과로 이어짐을 아는 까닭이다. 그는 대신 진정할 수 있도록 기다리면서 같이 연기를 피워 올린다. 내 고민이 혼자가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그런 시간이 지나다 보면 또 고민하던 것이 어느정도 해소되고, 지나가듯 툭 말을 내던지게 된다.
" 모르겠어서 그럽니다. 내가 하고 있는 게 옳은지. "
문득 손을 내려보면 요즘은 손이 떨리곤 한다. 마치 몸은 계속해서 이어진 전투만을 기억하면서 쌓인 긴장을 함뿍 불어내고 있다. 그런 손떨림은 여러 때에 멈춘다. 괴물들과 싸워야 할 때. 그리고, 같은 사람을 죽여야 할 때. 무언가를 죽이는 때에나 이 감정을 잊을 수 있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같은, 처음으로 임관했을 때의 지루한 훈화가 이따금 머릿속을 지난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무엇도 지키고 있지가 않다. 지켜야 할 국가는 사라졌고, 지켜야 할 국민은 가려야만 했다. 다시금 손이 떨리는 것 같았다.
" 왜. 누가 뭐라 하던가? "
그러면 그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꺼낸다. 처음부터 괴물을 사냥하는 것에 익숙했던 사람이다. 총포상에서 일하면서 수렵 자격증을 가지고, 사냥을 하던 그는 이런 세상이 되었을 때 기꺼이 군의 도움을 수락했다. 처음에는 지켜야 할 가족이 있었지만 게이트는 그런 그의 가족을 잃게 했다. 그 이후, 그는 괴물에게 이를 갈게 되었다. 나와 그가 친해졌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나는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괴물을 사냥하기 시작했고, 그는 복수해야 하는 대상이 그곳에 있는 까닭이었다. 내가 모르는 여러 기술을 그에게서 배우며 그와 내 거리는 썩 가까워졌다. 다만 나쁜 것도 있었다. 이 빌어먹을 담배를 피게 된 것도 그런 이유였다.
" 뭐 이딴 세상에서 지는 얼마나 선하기에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지는 모르겠는데... "
그는 뒷머리를 긁다가, 내 눈치를 봤다.
" 지금까지 도망치지 않았잖나. "
담배를 비벼 끄고, 남은 연기를 뱉어내면서. 그는 답답한 듯 이미 뱉어냈을 숨을 다시금 크게 내뱉었다. 다만 처음의 그것이 쌓인 연기를 내뱉기 위해서였다면, 두 번째의 숨은 눌러뒀던 분노를 내뱉듯 아래에서 깊게 끌어올려졌다.
" 사람은 선하지 못해. 아니. 그것보다 이타적이지는 못하지. 급박한 상황이 오면 자신이 살기 위해 발악하는 게 인간일세. 위대한 부성애와 모성애? 사람을 이끄는 성인의 마음? 그런 것이 존재했더라면 이 세상이 이 꼴이 나지는 않았겠지. 적어도 내가 아는 곳에서 세상은 그렇단 말일세. "
나는 그의 말을 들었다.
" 그런 상황에서 그대는 아직도 우리들과 비비고 살고 있네. 당신 아래의 군인이란 작자들이 당신을 아직도 따르는 것은, 적어도 내가 모를 위대한 그 정신 따위에 자극받고 있는 까닭이겠지. 중위님이 더 맘대로 하고 싶었더라면 충분히 하지 않았겠나. 이런 세상에서 사람만큼 대체하기 쉬운 게 어디 있다고... "
그는 피식 웃었다. 허탈한 웃음이었다.
" 나도 그런 사람일 뿐이야. 대체될 수 있는 사람. 특별한 가치가 아니라. 단지 아는 것으로 가치를 알게 된 사람. " " ... 그렇습니까. "
나도, 그 말에 따라 웃었을 뿐이다.
" 하지만 이런 세상일수록 중위 님 같은 사람이 있으니 살만해지는 거야. "
그는 손으로 괴물의 시체를 가르켰다.
" 저런 것이 살아있는 세상에서 남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인간은 흔치 않지. 중위 님 같은 사람이 늘다 보면... 언젠가는, 이 지랄이 끝나고 나면 좀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겠나. "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아직 남은 담배연기를 흩어내면서, 사람들이 남은 방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 ... 당신 같은 사람도. 이런 세상에 필요할 겁니다. "
그런 말에 그는, 돌아보며 피식 웃곤 걸음을 이어갔다.
" 난 이미 죽으려고 사는 사람이야. 당신같이 살고 싶어서 남은 사람이 아니라. "
나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세상에서 그 가치랄 게 무엇인지. 그가 말하는 선 따위는 모르겠지만.
" 같이 갑시다. 박재우 씨. " " 이게 어른 이름을 막 부르네? " " 이런 세상인데 그깟 나이차 좀 무시하면 어떻습니까. " " 그것도 그렇네! 크크크... "
그래. 이런 세상이다.
총을 들어야 하는 이유도, 그래야만 하는 이유도 아직은 찾지 못했지만. ... 지켜야 할 것들을 위해. 나는 아직도 전장으로 향해야 했다.
항거할 수 없는 공포가 전신을 짓누릅니다. 알아서는 안 될 지식이, 이해가, 당신에게 고통을 가하고 있습니다.
몸의 고통이 아닙니다. 마치 직접적으로 영혼과 연결되어, 나라는 존재를 마구 휘핑하고 있는 것만 같은 고통입니다.
그때. 당신은 누군가가 당신의 손을 붙잡는 것을 느낍니다.
작은 아이. 아직 세상을 바라보는 법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아이는 당신의 손을 붙잡고 천천히 그 품으로 당신을 끌어들입니다.
" ... 시윤...... "
그 온기가 영혼에 새겨지고,
" ........ 괜찮, 아............ "
시윤은 천천히 몸에 새겨지던 고통을 잊어갑니다.
" 울지, 마......... "
에브나는, 자신을 견디는 것조차 하지 못할 아이는.
" 괜찮아... "
울부짖는 시윤을 끌어안으며, 그 고통을 이해합니다.
" 단지. 단지. "
그녀는.
" 이 고통은, 네 봄을 위한 과정일 뿐이야. "
무언가를 잃었을, 시윤의 고통을 품기 위해. 그 고통을 알고 있을 시윤을 끌어안습니다.
그 품속에서 시윤은 글자를 떠올립니다.
머릿속에 남은 알 수 없는 기억. 그러나, 누구보다도 친숙한 향기가 남은 기억...
역천逆天(???) 가장 낮은 이들이 가장 떨어진 세계에게 가하는, 뒤집힌 세계에 가하는 반역의 일부. ??????? ???? ?????? ?????? ????? ?? ?????? ??? ?? ?? ????????.......................... 역천逆天 - 개벽開闢 : ??????????
여전히 손은 떨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시윤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한 걸음, 두 걸음,
걸음을 향하면서 시윤은 허리춤을 마구 더듬습니다. 곧, 그 손에 한 자루 권총이 잡힐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단 하나의 자세입니다.
아쉽게도, 지금의 윤시윤에게는 이것을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단지 무력하게도 도망칠 수 있는 것 정도가 그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겠죠. 하지만, 시윤은 머릿 속 풍경으로부터 조용히 머리를 숙이고 청합니다.
〃 빌려주세요. 〃
담배를 입에 문 채로, 다가오는 괴물의 무리를 바라보는 사내에게. 시윤은 무릎을 꿇고 땅에 머리를 박으며 청합니다.
〃 나에게는 없지만, 당신에게는 방법이 있잖아요. 〃
〃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까. 나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으니까. 〃
〃 에브나도, 지오 씨도, 이드 씨도, 그 외의 사람들도.. 또,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도. 〃
〃 아직. 잃고 싶지 않아......!!!!!!!!! 〃
그러니까, 제발!!!!!!!!!!!
머리에 피가 터져나오고, 자신이 무슨 울부짖음을 할 수 있게 되는지도 모를 상황에서. 시윤은 마치 투정을 부리듯 그에게 손을 뻗습니다.
"〃 빌려달라고!!!!!!!!!! 〃"
그 울부짖음에. 그 바람에.
그는, 아니.
나는, 이주윤은, 그런 시윤의 앞을 바라봅니다. 그곳에 있는 것은 단 한 발의 탄환입니다.
〃"가져가라."〃
나는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 고통을, 그 감정을 이해하는 나이기에.
그는 시윤의 팔을 붙잡고, 쓰러진 몸을 억지로 일으킵니다.
담배. 담배를 피고 싶다는 욕망이 유독 강하게 느껴집니다. 품을 뒤져보지만 그런 것은 나오지 않고, 시윤은 단지 피식 웃습니다.
여전히 손은 떨리고, 머리는 말을 듣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당장 해야하는 일이 있습니다.
타개할 수 있는 방법.
빌려옵시다. 이전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이 순간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을.
시윤은 땅을 더듬어 하나의 돌멩이를 주워듭니다. 그것을 손에 쥐고 품습니다. 그것은 시윤의 의지대로 가공되고, 변화하여. 한 발의 탄환으로 빚어납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권총에 탄을 집어넣으며 온 몸의 공포를 온전히 받아들입니다.
불가능하다는 생각과 판단. 나의 공포와 불안 모든 것을 뒤집어서. 나라는 존재를 뒤엎기 위해서
그런데 저거 보고 느낀건데. 도라 어르신이랑 박재우 어르신은 어쩐지 분위기가 살짝 흡사하네. 윤시윤이 도라에 대해 끔찍할 정도의 감격과 공감을 느꼈던건 어쩌면 과거 자신의 스승을 느껴셔 였을 수도. 에브나에게 지극정성인 것도. 무엇보다 혈연은 아니지만 가족 같은 관계의 소중함을 뼈져리게 알았기 때문이라던가.
롹 하신 분이군 ㅋㅋㅋ 그리고 읽으면서 또 느끼는건데 주윤씨 시점의 과거 묘사 나올 때 마다 늘 담배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 것 같음. 담배에 대해서 맨날 투덜거리지만, 박재우 어르신 볼 때 마다 '이 사람 때문에 내가 담배를 피게 됐다' 라고 불평하는게 사실은 어느 의미론 그와의 연결성을 의미하는 것 같음
자책감이나 우울함, 무기력함, 슬픔, 답답함의 상황에서 이주윤씨는 늘 담배를 피는 묘사가 나왔다고 생각함. 담배를 전혀 좋아하지 않음에도 피었던건, 스승님과의 인연고리기도 하지만. 반대로 끔찍한 세상속에서 기적을 일으킬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착잡한 감정을 흘려내는 진정제였다고 스스로는 해석했어. 윤시윤이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 담배를 피지 않았던 것은. 자신이 성인이 아니란걸 인정한다는 의미랑 동시에, 기적을 일으킬 수 없다는 염세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겠다는 것이기도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