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곳에 떨어진 지 어느덧 XX일째, 나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남은 또다른 조력자와 함께.
손에 피를 묻힌다는 건 예상 이상으로 힘든 일이었다. 그냥 힘든 게 아니라 정말로 끔찍한 일이었다. 이 일을 내 스스로 행한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매일 밤 악몽을 꿨고 짧게 자고 일어나는 생활을 했다. 그런 순간에도 버틸수 있었던 것은 제 옆에 있는 연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자신의 연인이 있었기에.
"........그런 말은 하면 안된답니다. 코우 씨. "
끝난 걸까, 하고 중얼이는 자신의 연인의 손을 잡아오는 그 때, 저 위쪽 스피커 쪽에서 치지직 거리는 소음이 들려왔다.
엉망이 된 몰골로도 손을 꼭 마주잡는데, 스피커가 울렸다. 변조되고 변형된 기계음은 여전히 듣기 싫었다. 이제 끝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겠거니 했는데, 그 내용은 정말 믿기 힘든 것이어서.
"...거짓말."
표정을 잔뜩 구기며, 허탈한 중얼거림을 내뱉는다. 살아서 나가고 싶다면, 남은 한 명을 마저 처리하라는 지시. 이곳에 오게 된 이들은 처음부터 각자 자기들만의 팀을 이루어 행동했었다. 「흑막」 측에서도 그에 대해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들 팀의 존재를 당연히 여겼었다. 그런데... 최후의 최후까지 다다라서야, 이런 잔인한 지시라니.
"......"
게다가 그녀는, 단순한 팀원에 불과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 제 목숨을 위해 죽이는 짓도 할 수 없다.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이 끔찍한 곳에서 나가려면, 둘 중 하나는 죽어야만 한다.
[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살아서 나가고 싶다면 눈 앞의 사람을 죽여야 할 것 이다. ]
돌연듯이 울린 스피커, 그 이후 들려온 충격적인 소식. 믿기지 않는 소식에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허망했다. 겨우 모두를 해치고 살아남았는데, 또 다시 누군가를 해쳐야만 하다니. 그것도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연인을 해쳐야만 하다니 믿기지가 않는 소식이었다. 팀끼리는 서로를 해치지 않아도 괜찮을 거라고 믿고있었다. 믿었는데,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해야만 하는 것일까. 해치고 싶지 않다. 해치고 싶지 않으니. 그러니 죽는 건...... 역시 내가 되는 것이 옳다.
"........코우 씨. "
지지직 소리가 끝나고 모든 [ 지령 ] 이 끝날 무렵, 조용히 고개를 돌려서는 자신이 들고 있는 칼을 코우에게 건네주려 하며, 이렇게 나직이 속삭이려 하였다.
이제서야 생지옥을 벗어났다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보다 더한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잔혹한 「게임」을 시켜서 저 치들이 얻는 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 상황에 대한 분노보다도, 덜컥 두려움이 앞섰다. 그리고 내밀어지는 칼, 자신을 죽이라 하는 말. ...그럴 수 없다. 네가 날 죽이겠다고 하면, 기꺼이 목숨을 내어줄 수 있는데. 그런데 어째서 너는...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하다가, 겨우내 울먹이며 목소리를 낸다.
"......싫어."
싫을 수밖에 없다. 그녀 없는 세상을 혼자 살아갈 자신이 없다. 끔찍한 기억을 홀로 견디고 싶지 않다. 그녀가 건넨 칼을 받기는 커녕, 그걸 쥔 손을 가까이 끌어와 제게 들이밀려 한다. 잔뜩 닳아 뭉뚝해진 날, 저것에 찔리면 단숨에 죽을 수도 없이 고통에 몸부림쳐야겠지. 하지만 그런 고통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