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연시해서 떠오르는 거지만 유우키는 아무리 생각해도 맨날 공략캐릭터 데이터를 알려주는 그런 엑스트라 포지션 이외의 포지션은 떠오르지 않아. 다른 이들 정보는 싱긋 웃으면서 제공해주는데 아야나 정보를 요구하면 표정 굳어서 가만히 바라보다가 일단 주기는 주는데 되게 떨떠름한 표정 짓고 있는 그런 느낌일 것 같네!
20XX년 X월 11일 오후 3시 30분 날씨 좆같음 오늘은 구로키와 매점에서 라무다를 사마셨다. 존나 맛없었다. 스프라이트나 마실걸. 근데 개새끼 곧 안달나기 직전이라 슬슬 보러 와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여지껏 묵묵부답이다. 진짜 죽이고 싶다. 진짜 죽이고 싶은데 가끔 이뻐 보여서, 그거 하나 보고 살려둔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을까. 뻔하지. 타케코년이랑 시답잖은 말이나 나누고 있을 거다. 소후에 타케코년도 진짜 죽이고 싶은데 걔한테 몇 없는 친구라 살려둔다. 진짜 좆같은 날이다. 날씨도 좆같은데 심기도 좆같다. 오 분 주겠다. 그 시간 지나고도 내 앞에 없으면 구로키랑 가라오케나 갈 거다. 반경 밖으로 멀리멀리 날아가 버릴 테니 타죽든지 말든지. 오늘도 정말 재미있었다.
20XX년 X월 11일 오후 3시 35분 날씨 개좆같음 주인 행세는 존나 해대면서 결국 오 분 지나도 오지도 않았다. 내가 미친 건 맞는데, 곱절은 더 미쳐야 이 맘 좀 알아줄까 싶다. 구로키는 일분 전에 갔다. 꼴에 데이트 약속 잡혔다고 사람 바로 버리더라. 진짜 짜증난다. 사진 보니 예쁘던데 선심 천만 번 써서 용서해준다. 그래도 내 취향은 아니다. 나는 걔 보다 좀 더 눈썹이 앙칼지고 눈매가 사납고 얼굴에 핏기가 없고 인상이 더럽고 우미 스미레처럼 생긴 얼굴을 좋아한다. 생각하니까 또 좆같다. 진짜 죽이고
인어 땅 밟는 소리에 일기장을 덮었다. 내 돈 들여 산 것도 아니라서 대충 구겨 서랍에 넣었다. 인어 욕으로 빼곡히 채운 뒤에 주인에게 돌려줄 것이다. 빗소리 오 분 전보다 짙어짐에 인어 미끄러지는 발자국 역시 가까이 다가온다. "나와." 한마디 지나가면 입꼬리 낮추고 뒤따랐다. 예정한 시간 보다 오 분 더 늦었다. 귀엽게 봐줄까. 혼을 낼까. 후자에 마음이 쏠린다. 곧 벗어날 사람처럼 위태로운 간격을 유지했다. 일부러 반경 밖으로 발도 뺐다. 사십 초 세고 울타리 안으로 돌아왔다. 몸에 열이 올랐다, 내렸다. 아마 죽을 맛일 거다. 꼴 좋다.
정문 가까워질 시간이면 인어 발소리는 빗소리에 묻혀 아득하다. 하지만 뒷모습은 내 망막에 머물렀으니 무심코 안도했다. 걸음을 찰박인다. 물구덩이가 빗선 먹고 옅게 파동을 그린다. 구태여 발 담궜다 뺐다. 슬리퍼는 말할 것 없고 양말 채로 푹 젖었다. 물먹은 발 그대로 거실 밟으면 우미 스미레는 노발대발하겠지. 벌써 신난다. 걸음을 재촉했다. 빗줄기에 긁히다 못해 온 몸이 비투성이다. 빗방울 떨어지는 머리를 뒤로 넘겼다. 축축한 게 기분 좆같다. 얼마 전에 강 하나 말렸다고 벌 받나 보다. 물에 사는 새끼들은 유달리 뒤끝이 길다. 이래서 물만 보면 태우고 싶다.
보폭을 크게 벌렸다. 낭창대는 허리가 코 앞이다. 손 뻗으면 곧 닿을 듯하다. 몸 낮춰 우산 속으로 파고 들었다. 언제나처럼 허리에 팔을 감았다. 이럴 때면 너 몰래 옷깃 아래 살갗을 은근히 만끽하곤 했는데. 오늘은 꿉꿉한 와이셔츠만 느껴졌다. 영 탐탁지 않다. 너 들을라고 욕지거리 중얼대는 와중에, 머리부터 발 아래까지 옆모습 늘어져라 훑었다. 자정 넘으면 욕조에 사는 너였기에 젖은 꼴은 내게 익숙했다. 여느 때와 같다. 하나 빼고. 손목에 드리운 빨간 음영을 주시했다. 네 몸은 곧 내 것이니 애지중지하라 귀에 박히도록 씨부렁거리지 않았었나. 고분고분하게 따라주는 법이 없다. 불현듯 역정에 미간이 이지러짐이 전해진다. 눈초리 곧게 세워 마주봤다.
"세상 좆같은 년. 그래서 네 피라도 먹였냐? 어이구 이쁘다. 하면서?"
비 냄새 반. 그 속에 인어 냄새 반의 반. 그 안에 개구리 비린내 반의 반의 반. 그 곳에 탄내 반의 반의 반의 반. 내 촉은 예리하다. 확증도 분명하다. 어깨 붙잡아 네 등이 외진 벽에 맞닿을 때까지 밀어 붙였다. 인어 뒷걸음이 수렁에 닿으면 물이 찰박이는 소리가 났다. 뒷걸음질한 자리 따라 밟았다. 발길 닿는 즉시 말랐는지 슬리퍼 끄는 소리가 건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