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7039305> [1:1] 눈과 검의 여행 :: 1 :: 74

하멜주 ◆h/RiiL07k6

2024-03-05 15:51:54 - 2024-03-20 20:20:28

0 하멜주 ◆h/RiiL07k6 (BP2h9S509k)

2024-03-05 (FIRE!) 15:51:54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자는 그 책의 한 페이지만 읽는 것과 같다.

- 아우구스티누스


>>1 하메르바타트
>>2 데인 벨몬드

53 데인주 ◆taZqHR8ods (crgz1vcS5w)

2024-03-10 (내일 월요일) 19:11:40

저녁 갱신할게요!

54 하메르바타트 - 데인 (4iPK8TMh9.)

2024-03-10 (내일 월요일) 23:32:34

"그나저나 남부라. 참 먼길을 함께하시게 됐구려.... 내가 아는 데인이라면 누군가를 옆에 붙이고 다니는 건 딱 질색할 놈인데, 뭐..., 그거야 각자 사정이 있으시겠지만."
"네. 있다마다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바쁘니까, 얼른 길이나 터 주시죠."

동행은 질색이라. 하기사 한 지역에 오래 발붙이지도 않는 편력기사라 하였으니, 누군가와 함께 다니는 것이 더 불편하기도 하겠다만... 어쨌거나 본인이 먼저 제안한 일이 아닌가. 애시당초 소란을 피우지 않아 잠든 드래곤을 깨우지만 않았더라면 그마저도 없었을 일이고. 전부 스스로의 업보라며 웃어넘길 뿐이었다.

"원 싱거운 녀석하곤.... 알았네. 이번에도 '크루스' 네에 들르러 온 겐가?"
"...그것 밖에 더 있겠습니까? 이런 깡촌까지 찾아올 이유가."
"그래, 그렇겠지.... 얼른 가 보게나."

'크루스'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긴 여정의 첫 목적지를 이 후미진 마을로 삼을 정도면 꽤 중요한 인물이겠거니 싶었다. '이번에도' 라 말하는 것을 보니 한두 번 오간 수준이 아닌가 본데. 그렇다면 촌장이 데인을 그리 반가워하던 것도 이해는 되었다.

그것을 마지막 대화로, 말은 착실히 앞으로 앞으로 걸어간다. 아까 보이던 것이 너른 밭뿐이었다면 마을 깊은 곳으로 향할수록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많아졌다. 이를테면 더욱 가까이에서 보이는 건물들, 포장은커녕 쌓인 눈만 겨우 치워낸 것이 전부인 흙길, 쟁기며 수레 따위 농사에 쓰이는 듯한 기구 같은 것들. 짚을 엮어 올린 지붕 위로 나무 타는 향과 음식 내음 섞인 연기가 피어오르고,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생활 소음에 더해 말발굽 소리가 전부인 고즈넉한 풍경. 낯선 인간의 문명을 관찰하는 것도 잠시, 그새를 못 참고 또 다시 말을 걸어오는 탓에 정적은 금세 깨어졌다.

"늙으니 괜히 말이 많아지는군.... 원랜 참 과묵하던 분이셨는데 말요. 아마 나도 나이가 들면 저리 되려나 모르겠소."
"뉘 앞에서 나이를 운운하느냐? 우습지도 않군. "

아까 그 촌장에 대한 이야기인 듯한데. 늙었다 한들 한 세기의 절반이나 살았을까 싶은 인간들이 천 년을 살아온 드래곤 앞에서 늙었느니 어쩌느니 하다니.

"네놈은 이미 충분히 수다스러우니, 나이가 든다면 과묵해지는 편이 차라리 낫겠구나. ...그보다도, 지금 찾아가는 것이 누구인지나 말해 보거라."

이왕 대화가 시작된 김에 궁금했던 점이나 해결하자 싶어 답지 않게 말이 길어진다. 그 '크루스' 라는 인간이 도대체 누구이길래 굳이 찾아오는 것인지.

55 하멜주 ◆h/RiiL07k6 (4iPK8TMh9.)

2024-03-10 (내일 월요일) 23:34:34

>>52 크아악 나 왜 주말인데 바쁘지? 늦어서 미안해 ^_ㅠ 그리고 안 자고 기다리다니 안돼!!! 당장 전기장판 켜고 이불 덮자!!!

56 데인 - 하메르바타트 (fvosN4iPL6)

2024-03-11 (모두 수고..) 00:51:17

"뉘 앞에서 나이를 운운하느냐? 우습지도 않군. "

"...."


...지극히 맞는 말이라, 솔직히 뭐라 대꾸할 것도 없다.

촌장의 나이는 기껏 해야 햇수로 40년 정도. 인간 기준으로는 황혼에 접어든 나이라 하지만, 그것조차 천 년의 세월 앞에선 겨우 찰나의 시간에 가까울 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나이 관련해선 내가 뭘 해도 이길 수가 없으니, 더는 말을 붙이지 않는 것이 상책.

물론 내가 대꾸하지 않는다 해서, 그녀가 아무 말 않는 것은 아니었다.


"네놈은 이미 충분히 수다스러우니, 나이가 든다면 과묵해지는 편이 차라리 낫겠구나. ...그보다도, 지금 찾아가는 것이 누구인지나 말해 보거라."


그만 한숨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을, 앞머리를 뒤로 쓸어 삭혔다.


"참..., 백룡님께선 한낱 인간 따위에게 관심도 많으시군...."


일단 그 자식에 대해 물어지는 건, 나로선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기왕이면 그대로 묻어두고 싶은 관계이고, 기억이다.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기억 하나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난 그저 이대로 볼일만 보고 여길 빨리 끄고 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이 백룡이라는 여인은 인간을 벌레처럼 하찮게 보면서도 궁금증 하난 더럽게 많았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부정적인 감정을 그녀에게 들켜 좋을 건 없다. 무엇보다 그녀는 언제든 내 목을 쥐고 비틀 수 있는 초월적 존재니까.

어지럽혀진 마음을 잠시 정리하고 저 멀리, 아른거리는 보릿대 뒤의 먼 곳으로 손을 가리킨다. 비록 남들보다 눈이 좋은 나조차 겨우 보이는 곳이지만, 아마 드래곤의 눈이라면 바로 눈 앞에 있는 듯 보일 거다.


"저기 저 보리밭 끝에, 하얀 끈이 박힌 말뚝 보이시오?"


착잡하지만 끝까지, 닫아버리고 싶은 입을 열어 말했다.


"그 아래 묻혀 있는 놈 이름이오. 내가 직접 묻었지."

57 데인주 ◆taZqHR8ods (fvosN4iPL6)

2024-03-11 (모두 수고..) 00:56:44

>>55 아녜요, 느긋느긋하게 가보자구요! ^^
그리고 답레를 위래서라면 이 한몸 쯤이야...!

그나저나 여기서 데인의 역린이 하나 나오는군요. 후후....

58 데인주 ◆taZqHR8ods (Y4sus256vo)

2024-03-11 (모두 수고..) 22:53:52

저녁 갱신!

59 하메르바타트 - 데인 (qphYDk48eM)

2024-03-12 (FIRE!) 01:19:49

"참..., 백룡님께선 한낱 인간 따위에게 관심도 많으시군...."

그녀가 드래곤답게 인간을, 더 엄밀하게 따지자면 다른 종족 전체를 깔보는 것은 맞았으나 그것은 호기심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인간으로 비유하자면, 어느 날 개미나 쥐 같은 것들이 문명을 이룬 것을 발견했을 때와 비슷한 감상이랄까. 분명 자신이 알을 깨고 나왔을 적에는 얼마 눈에 띄지도 않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저들끼리 전쟁을 벌이니 나라를 세우니 하며 자신이 사는 북부 끝까지 밀려오지 않던가. 한없이 긴 시간을 살아가는 종족이 보기에는 눈 깜짝할 새 변하는 것이 인간들이니, 신기하다 느끼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리라.

잠시 입을 다물었던 데인은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저 먼 보리밭 건너가 훤히 내다보인다. 허나 그곳에는 인간이 살 만한 집 한 채 보이지 않는데. 무엇을 보라는 것인지 의문이 들 즈음 말이 이어진다.

"저기 저 보리밭 끝에, 하얀 끈이 박힌 말뚝 보이시오?"

있었다. 얼어붙은 땅에 느닷없이 박힌 말뚝 하나와, 바람에 따라 펄럭이는 흰 끈이.

"그 아래 묻혀 있는 놈 이름이오. 내가 직접 묻었지."

그러니까, 일종의 무덤인가.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직접 묻고 난 뒤에도 몇 번이고 찾아올 정도라면 꽤나 가까웠던 사람의 것이겠지. 보통의 인간이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조용히 침묵을 지킴으로써 숙연한 분위기를 이어가거나, 애도의 말 한 마디라도 건네겠으나... 안타깝게도 지금 그 말을 들은 것은 보통도 아니고 인간은 더더욱 아니었던지라.

"옛 동료라도 되는 모양이구나."

하고는, 흥미가 떨어졌다는 듯 입을 꾹 다물 뿐이었다. 그 말뚝 앞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60 하멜주 ◆h/RiiL07k6 (qphYDk48eM)

2024-03-12 (FIRE!) 01:24:03

>>57 크아아아악 대지각(도게자)(그랜절)(석고대죄) 현생이 갑자기 몰아치는 바람에 이제서야 들어오네...(›´-`‹ ) 얼른 일 해치우고 열심히 핑퐁핑퐁해볼게...

누구인지 궁금했는데 이미 고인이었을 줄이야! 데인의 과거사 첫 등장인가. 사회성 없는 용님이지만... ^_^ 데인의 비설털이를 위해 노력해보자 아자아자화이팅~~!

61 데인 - 하메르바타트 (5K3d5keMZo)

2024-03-12 (FIRE!) 21:33:54

"옛 동료라도 되는 모양이구나."

"...그런 셈이지."


동료라는 한 단어로 줄이기엔, 그 놈과 나 사이엔 설명할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내가 구두 작공의 도제로 팔려갔을 무렵부터, 스승 사이의 친분에 의해 우린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그리고 알고 보면 닮은 점도 꽤 많았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읜 것부터, 또 같은 여인을 좋아했던 것까지.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동료보다는 형제에 더 가까웠을 지도 모르겠다.

말 없이 보리 밭 너머 바람에 나부끼는 하얀 천을 최대한 눈에 담지 않으려 의식하고, 그저 앞으로만 나아갔다.
아마 놈의 집은 이 근처였을 거다.

참 조용한 분위기였다. 우리 백룡 아가씨께서는 언제나 흥미로울 게 없으면 입을 닫고 있었지만, 지금은 나 역시 입을 열어 분위기를 환기시킬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데인? 데인! 데인 맞죠?"


그 정적을 깨는 카랑카랑하고 시끄러운 목소리가 갑작스레 귀를 때렸다.

소리가 나는 아래를 내려다 보니, 거의 내 반토막 만한 조그만 꼬마 하나가 티 없이 맑은 벽안으로 나와 그녀를 응시하고 꼿꼿히 서 있었다.

이 마을에서 본 적 없는 얼굴인데,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이 걸려 물었다.


"...누구냐 너?"

"맞구나!"

"어. 맞는데, 너 누구냐고."

"엄마! 엄마! 우리 집에 데인 아저씨가 왔어요!"

"야...."


지 할 말만 하고 말을 끊는 버르장머리라니..., 딱 내가 아는 누군가가 떠오르는 성격이다. 어지간히도 부모가 오냐오냐 하며 키운 모양이군.

게다가 말간 물색의 벽안에 태양 빛 같은 금발이라....

...아, 설마.

뭔가 떠올라 다시 소년이 있었던 곳을 봤더니, 이미 그 소년은 아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발도 빠르군.

됐다. 어차피 이 길로 쭉 가다 보면 곧 확인할 수 있을 테니.


"엄마 저기! 저기 와요!"


예상대로라고 해야 하나..., 딱 그 소년의 얼굴이 담긴 여성이 그 옆에 있었다. 그녀는 내가 기억하던 인상보다는 훨씬 어른스러웠지만, 여전히 그 때와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릴 적의 나는 저 우수에 찬 눈빛에 그렇게도 휘둘려 댔었지. 크루스도 마찬가지였고.


"잘 지냈수 누님?"


나는 일부러 별 말 없이 건조히 물었다.


"...그럼, 잘 지냈지. 데인 너는?"

"나야 뭐..., 그럭저럭이지."


그러니 그녀도 그런 날 의식해선지 똑같이 별 말 않고 답했다.

난 그제서야 그녀의 잘린 머리칼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기억하는 하늘하늘한 장발이 아닌, 겨우 어깨에 닿을까 말까 한 단발이다.


"머리는...."

"아..., 이거? 얼마 전에 잘랐어. 예쁘지?"

"...."


그녀는 별 거 아니라는 듯 눈웃음 지었다.

별 거 아니긴.... 십 년 전만 해도, 그렇게 자기 머리를 자랑스럽게 여겨 우리한테 자랑하고 다녔으면서.

다 큰 여인이 머리카락을 잘랐다면, 그 이유는 뻔했다.

내가 주먹을 꾹 쥔 채 잠시 입을 못 떼고 있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긴 크루스 보러 온 거야?"

"아니."


곧장 답했다. 내가 뭐가 좋아서 그 놈 무덤을 다시 보러 왔겠는가.

내겐 보면 볼 수록 그저 불쾌감만 더해지는 그 날의 기억을 더는 파헤칠 이유도, 목적도 없다.


"아니면, 나 보러?"

"...아니."

"그럼 왜 왔어?"

"...."


내가 또 아무 말 않고 있으니, 그녀는 곤란한 듯 프슬 웃음 지으며 살짝 돌아 섰다.


"그래, 일단 들어와서 차라도 한 잔 마시고 가. 이유는 천천히 들으면 되니까.... 뒤에 모시고 계신 예쁜 아가씨도 같이요."

"아가씨가 아니라 내 집사람인데."

"푸흣!"

"?"


갑자기 뜬금 없이 웃음을 터트려, 난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그러다 그녀는 뭐가 또 그리 웃긴지, 초승달 모양으로 눈을 구부리곤 옆에 애가 보고 있다는 것도 까맣게 있은 채 깔깔 웃는 게 아닌가....

...촌장만 그런 게 아니었군. 사람은 나이가 들면 확실히 변하긴 하는 모양이다.

수 초 뒤 겨우 웃음이 잦아들고, 눈물을 닦은 그녀가 숨을 고른다.


"후후, 흐흣.... 하.... 그럴 리가.... 데인, 그렇게 조각처럼 예쁜 스타일은 네 취향이 아니잖니?"

"이보쇼...."


뭐, 고작 그것 때문에 그렇게 웃었다고?


"음, 크흠.... 아니시죠?"


헛기침을 주먹으로 가린 그녀는 넌지시 나를 건너 뛰고, 뒤의 백룡 아가씨와 직접 눈을 마주하고 물었다.

62 데인주 ◆taZqHR8ods (5K3d5keMZo)

2024-03-12 (FIRE!) 21:44:25

>>60 현생 화이팅이에요...! 힘내요 하멜주, 무리하지 말고 오래오래 가는 거에요! ^^

이번 지문은 설마하던 연적의 등장! 이란 느낌입니다. 허나 정작 하멜은 아직 데인을 조금도 남자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요. 친해지길 바라.... ㅠㅠ

63 데인주 ◆taZqHR8ods (flSKHFT.iM)

2024-03-13 (水) 20:12:28

갱신갱신! 이제 슬슬 날도 풀려가네요!

64 하메르바타트 - 데인 (7h887eUCPU)

2024-03-15 (불탄다..!) 00:42:06

자신도, 데인도 입을 다문 탓에 한동안 사위는 쥐 죽은 듯 고요하기만 했다. 들리는 것이라곤 간간히 휘몰아치는 바람소리와 말이 걸어가며 내는 작은 소음뿐인 와중에, 갑작스레 정적을 깨는 높고 카랑카랑한 목소리.

"...데인? 데인! 데인 맞죠?"

잠시 내리감았던 눈을 뜨고 시선을 아래로 옮기면 밝은 금발의 자그마한 것이 또랑또랑하기 그지없는 벽안으로 이리를 바라보고 있다. 제 키보다도 작은 체구와 젖살이 채 빠지지도 않은 볼 따위를 보아하니 정말 태어난 지 얼마 안 된—물론 인간 기준으로는 십 년 안팎은 살았을 것이나 어디까지나 드래곤의 관점에서—인간이 분명해 보인다.

데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던 어린아이는 이내 재빨리 길을 따라 달음박쳐 사라진다. 길은 한 갈래뿐이었으므로 굳이 붙잡지 않고 가던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니 곧 길 끝에 나타난 집 한 채와 그 어린아이,

"엄마 저기! 저기 와요!"

그리고 그 곁에 선 여인 한 명이 눈에 들어온다. 그 태양을 닮은 빛의 머리칼하며 맑은 호수 같은 눈이 빼다 박은 듯 닮은 두 사람. 누가 봐도 부모자식 관계임이 분명해 보였다. 자식 쪽이 더 자랐을 때의 얼굴이 예상될 수준인 것이 반박도 못 할 외탁인데. 아비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미 혼자 낳았대도 믿겠구나, 생각하며 잠자코 데인과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여긴 크루스 보러 온 거야?"
"아니."
"아니면, 나 보러?"
"...아니."
"그럼 왜 왔어?"
"...."

제 앞에서도 혀에 기름칠이라도 한 양 뻔뻔하게 굴던 놈이 이리 딱딱하게 구는 꼴이란. 저쪽은 꽤나 반가워하는 듯한데 둘 사이에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지. 인간들 사정에 그리 관심 둘 생각은 없었기에 구태여 끼어들 생각은 없었으나, 이어지는 대화에는 더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 일단 들어와서 차라도 한 잔 마시고 가. 이유는 천천히 들으면 되니까.... 뒤에 모시고 계신 예쁜 아가씨도 같이요."
"아가씨가 아니라 내 집사람인데."
"네놈이..., 기어코 명을 재촉하는구나."

아까 그렇게 경고를 했음에도 또다시 헛소리라니. 다시 서늘하게 얼어붙는 표정. 일전처럼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수준은 아니었으니 그나마 나은 듯싶으나, 여전히 냉랭하기 그지없는 얼굴이었다. 그것이 조금 풀어진 건 여인이 웃음을 터뜨린 순간. 한참 웃어대던 여인이 조금 진정한 후, 관심은 다시 자신에게로 옮겨온다. 어쩐지 아까 마을 초입에서 만난 촌장과의 대화가 그대로 되풀이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같은 마을에서 오래간 함께 살아가다 보면 같은 핏줄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닮게 되는 것인지.

"음, 크흠.... 아니시죠?"
"쯧. 그럴 리가. 잠시간 동행하고 있을 뿐이다."

아니꼽다는 기색을 숨기지도 않으며 혀를 찬다. 이런 대화를 앞으로 몇 번이나 반복해야 하는 것인지... 인간들이란 서로에게 관심들이 너무 많아 귀찮다고 생각하며, 아까 촌장 앞에서 대었던 변명을 그대로 반복했다.

65 하멜주 ◆h/RiiL07k6 (7h887eUCPU)

2024-03-15 (불탄다..!) 00:45:36

(경) 하멜주 혐생탈출 (축)
이제 열심히 핑퐁핑퐁할 수 있는 것이야... 흑흑

하멜이 데인을 남자로 생각하려면... 한참은 더 걸리지 않을까나... 나중에 의식하기 시작한 뒤에야 이 순간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네.

66 데인 - 하메르바타트 (uyRmZ1Jyiw)

2024-03-15 (불탄다..!) 21:08:29

"네놈이..., 기어코 명을 재촉하는구나."

"...."


...아, 너무 나갔나....

구태여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이미 말투에서부터 표정이 보였다.

보나 마나, 아까 봤던 것과 같이 설산에 쌓인 눈보다도 더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겠지.... 그런 표정을 두고 보통은 '차게 식는다'라고 표현하던데, 이 여인은 차게 식다 못해 그대로 얼어버릴 정도였다.

...반응을 보아 하니, 집사람 농담은 그만 둬야겠군. 무사히 살아 있다면 얘기지만.

나랑 엮이긴 어지간히도 싫은가 보다. 하기야, 거꾸로 내가 용이어도 그럴 것 같긴 하다만.

뭐 이러나 저라나 이미 뱉은 말이니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일단은 무시하는 게 답이겠거니 가만히 입을 닫았다.


"쯧. 그럴 리가. 잠시간 동행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이번엔 또 누님의 그 실 없는 웃음보가 분노를 잠재우는 데 도움이 되었는지, 이번 그녀는 그저 귀찮다는 듯 혀를 한 번 차고 마는 데에 그쳤다.

그리고 어느새 그 옆에서 자기 엄마에게 웃음기가 옮아, 꼬마까지 날 보고 히죽거리며 웃었다.

하여간 모자가 쌍으로 꿀밤이 마려운 걸 보니, 생긴 것 만큼이나 성격도 어지간히 닮은 모양이다.

아무튼 그대로 누님은 백룡 아가씨와 나를 데리고, 삐걱거리는 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였다.


"있는 건 없지만 차라도 내올 테니까 조금만 앉아 있...."

"됐수다. 차라리 벼룩의 간을 빼먹고 말지."


딱 봐도 허름한 집이군. 집 구석구석 꼴이 말이 아니다. 어설프게나마 보수를 한 흔적이 곳곳이 보이지만, 그보다도 더 많은 하자가 눈에 띄었다.

지붕은 금방이라도 물이 샐 듯이 낡았고, 나무 창은 작은 바람에도 덜덜 떨리며 금방이라도 박아 둔 못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보였다. 용케도 이런 곳에서 여자와 아이 둘이 살았군.

한 편으로는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한 편으론 또 왠지 모를
화가 치밀었다. 웃기는 건, 도대체 무엇 때문에 화가 나는 건지 나로서도 도저히 알 길이 없다는 거다.

그저 뭔가 굴뚝에서 뭉근하게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처럼, 은근하고도 불쾌한 감각이다.


"괘, 괜찮아.... 크루스는 없어도 그 동안 조금 저축해 둔 게 있으니까."

"그놈 뒤진 지가 거의 십년인데, 저축은 개뿔.... 그래서 그 아끼던 머리도 잘라서 팔아먹었어?"

"그건...."


누님은 거기서 말이 턱 막혀 입술을 꾹 물었다. 그 모습은 마치 갑자기 올라온 설움을 억지로 참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래. 어지간히도 낯짝이 두꺼워 망정이지..., 양쪽 집안에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난한 과부 혼자 애 한 명을 키운다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

아마 돈도 빌릴 수 있을 만큼 최대한 빌렸을 거다. 촌장이나 다른 마을 사람들 성격에 모른 체 하진 않았을 테니까. 거기에 돈은 굳이 갚지 않아도 된다고도 했겠지.

아무리 그래도, 누님 성격에 그 많은 빚을 지고 발 뻗고 잠이나 잘 잤겠냐마는....

생각하다 보니 더 짜증만 올라오고, 그냥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기로 한 난 그대로 허리춤에서 묵직한 주머니를 꺼내 통째로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안에 든 돈은 어림 잡아 금화로 약 50냥 정도. 이 정도라면, 아마 지금까지 진 빚은 충분히 갚고도 한참 남을 돈이겠지.

그걸 본 누님은 뭐랄까, 당혹스러운 표정이라 할까.... 아무튼 그리 좋은 표정이 아니라는 것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크루스 그놈에게 10년 전에 빌렸던 돈이야. 이자까지 대충 쳐서 넣었으니까, 애 키우는 데 보태든 누님 맘대로 하쇼."

"크루스한테 그런 이야긴 못들었는데...."

"말 안했나 보지."

"...."


아무튼 여기서 볼 일은 이제 끝났다. 이제 남은 건 돌아가서, 이 백룡 아가씨와의 계약을 마무리 짓는 것 뿐이다.

이 기구한 인연도 결국 내 선택으로 여기까지 오며 엮이게 된 것이니, 마무리는 되도록 빠르게 지어두고 싶었다.

잠시 사람을 홀리는 저 얼굴에 한 눈 팔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왠지 그 얼굴이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볼일은 끝났수. 가지."


그녀에게 짧게 줄이고, 그대로 뒤도 안 돌아 본 채 문 밖으로 나섰다.

67 데인주 ◆taZqHR8ods (uyRmZ1Jyiw)

2024-03-15 (불탄다..!) 21:23:21

>>65 정말인가요! 고생하셨어요!! ^^
하루 동안 기다리고 있으니 이런 좋은 소식이....

음. 그 때가 될 때까지, 데인이의 역할이 중요하겠군요. 원래라면 딱 공략 불가인 캐릭터를 공략하는 느낌이니까요!

그나저나 하멜은 특히 좋아하는 음식이라거나 그런 것 생각해 두신 거 있을까요?

참고로 데인 입은 거의 미각 상실 수준이라, 하수도에서 잡은 들쥐고기 같은 것도 잘만 먹는답니다.

68 하메르바타트 - 데인 (baQM6jH3Do)

2024-03-16 (파란날) 12:17:57

말에서 내려 여인을 따라 들어간 집은 꽤나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좋게 말해 고풍스럽니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니 하지만, 결국은 낡아빠져 금방이라도 쓰러진대도 이상치 않을 꼴이라는 말을 돌려서 표현한 것에 불과한. 들어올 때부터 요란하게 끼익거리던 문짝과,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은 상태일 것이 분명한 창문들. 벽과 바닥에는 깨진 흔적이 가득해 그 사이로 차가운 공기가 새어들어오는 집은 인간의 문명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에 가까운 하멜에게도 그닥 좋은 환경처럼 보이지 않았다.

야생의 짐승들조차도 제 새끼는 최선의 환경에서 기르는 법인데. 이 집은 어린 것이 자라기에는, 애시당초 마을의 다른 집과 비교했을 때 외관부터도 눈에 띄게 허름한 것이, 지나치게 열악하지 않은가? 하여 조금 탐탁치 않은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자니 집주인이 곧장 변명하듯 입을 열어온다.

"괘, 괜찮아.... 크루스는 없어도 그 동안 조금 저축해 둔 게 있으니까."
"그놈 뒤진 지가 거의 십년인데, 저축은 개뿔.... 그래서 그 아끼던 머리도 잘라서 팔아먹었어?"
"그건...."

그러니까, 이 집의 가장이 그 크루스란 인간이었던 모양이지. 이미 죽었고, 저 말뚝 밑에 묻혔으니, 남은 어미가 홀로 자식을 키우려다 이리 된 모양이다. 제 머리카락까지 잘라다 팔아야 할 만큼 궁했나 보지. 다른 인간들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구한 결과가 이 수준인지는 모르겠으나 참 기구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동정심은 들지 않는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인간의 관점에서였는지. 데인의 허리춤에서 주머니 하나가 딸려나온다. 아니면 이전부터 알던 사이였다는 것이 크게 작용했는지도 모르고. 어쨌거나 제법 묵직해 보이는 주머니는 쩔렁, 하는 소리를 내며 책상 위에 얹어졌다. 적은 돈은 아닌 듯한데. 문득 고개를 들어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니, 화가 난 것인지 당황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미묘한 표정이 그려져 있다.

"볼일은 끝났수. 가지."

답도 듣지 않은 채 데인은 몸을 돌려 집을 나섰다. 저것이 얼마나 되는 돈인지, 진짜 과거에 빌린 돈인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딱히 그녀의 알 바도 아니었으나 이 집안에 꽤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언젠가 이 설산에 다시 돌아오게 된다면 찾아볼 것이 생겼으니 이만하면 지루한 인생에 나쁘지 않은 수확이라고 생각하며, 그녀 역시 뒤돌아 문 밖으로 걸어나왔다.

"그래서. 이젠 어디로 향할 셈이지?"

얌전히 주인을 기다리던 흑마의 등에 올라타며 묻는다. 사실 다음 행선지인 마을의 이름을 댄대도 그녀가 알리라는 가능성은 낮겠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만 다니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뭐, 그런 생각에서.

69 하멜주 ◆h/RiiL07k6 (baQM6jH3Do)

2024-03-16 (파란날) 12:21:46

>>67 좋아하는 음식... 일단 인간 음식은 잘 모르다 보니 처음엔 이것저것 잘 먹어볼 것 같은데 그러다 보면 취향이 확고해지지 않을까 싶네. 일단 생각 중인 건 야채나 과일류 좋아하고 생각보다 단 거 좋아한다는 정도? 해산물보단 육류 좋아할 것 같고.(익숙함)

아아니 데인이 입맛 무슨 일이니 안되겠다 용님 레어에 있는 보물 다 털어와... 최고급만 먹여...

70 하멜주 ◆h/RiiL07k6 (SjZN1LEaH.)

2024-03-17 (내일 월요일) 00:45:09

자기 전에 갱신! 데인주 좋은 밤 보내~

71 하멜주 ◆h/RiiL07k6 (00jGi/E6w.)

2024-03-18 (모두 수고..) 00:38:40

갱신!

72 데인 - 하메르바타트 (i1vAjuymJE)

2024-03-19 (FIRE!) 00:35:18

"그래서. 이젠 어디로 향할 셈이지?"

"...."


먼저 말의 엉덩이에 오르는 그녀의 물음에 곧장 답을 하지 못했다. 마치 물 속에 있는 듯 갑갑해서, 그저 여길 빠르게 벗어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나 역시 훌쩍 말에 오르고나서 살짝 돌아, 곧 무너질 듯이 선 크루스네 집을 흘겨보았다. 그래도 여기서 보수만 좀 거치고 나면 볼만해지겠지.

괜히 왔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돈주머니를 건네자는 일차적인 목적은 달성했으니, 또 완전히 헛걸음은 아닌가....


"다음은...."

"데인!"


등 뒤로 누님의 소리가 들렸다.

잠시 이대로 말머리를 몰아 달아나버리고픈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 다시 멈춰서 뒤를 바라보게 되는 나도 나다.

귀찮다, 라기보다도 더는 머물기 싫어 꺼림칙해진 말투를 하곤 말 위에서 돈 주머니를 그대로 가져 나온 누님을 내려다 보았다.


"또 왜 나왔수. 그냥 안에 있지."

"...내가 어떻게 그래. 이 큰 돈을 받고."

"액수가 문제요? 어차피 들어갈 데도 많을 텐데."


꽤 큰 액수라곤 하나, 살림살이로 보건대 금세 써질 돈이다. 애도 아직 어리잖은가....

아무리 애들은 가만 나눠도 알아서 큰다지만, 크루스가 없는 시점에 그녀에게 아이가 가질 의미를 생각해보면 또 그리 간단히는 볼 수 없다.

그렇게 스스로 꾸미고 놀길 좋아했던 사람이 지금은 저런 수수한 차림이다. 애만 보고 살고 있다는 증거지.

그나저나 본인 처지는 본인이 제일 잘 알 텐데, 이 누님은 뭐하러 가는 날 붙잡고, 또 내게 무슨 얘길 하려 하는 건가....


"이 돈, 난 못 받아."

"...하...."


살짝 띵하게 머리가 아프다.

젠장..., 방금 말을 걸린 시점에 바로 말을 몰아 자리를 떴어야 했나....

난 내 미간 사이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걸 숨길 생각도 없이, 그걸 그대로 누님한테 보였다.


"자존심 때문이오?"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면 뭐!! ...아니면 그냥 좀 받아 이 여자야.... 애도 있잖아. 이제 와서 만년 동생 같았던 놈한테 돈 받는 게, 그렇게 쪽팔려?"


괜한 짜증이 더 터져나왔다.

지금 당장 자리를 뜨고 싶은 조급함과, 자기 처지도 외면하고 무슨 이유에선지 돈을 받지 않는 누님의 태도를 보고 생긴 답답함이 어우러진 탓이다.

게다가 구태여 내가 이걸 건네 주려, 얼마나 많은 개고생을 하며 여기까지 왔던가? 설산에서는 자칫 드래곤에게 목숨까지 잃을 뻔했다.

정말 물 한 잔 없이, 찐 감자 스무 알을 목구멍으로 넘긴 기분이다.

그리고 그런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그저 담담하게만 보였다.


"...아무튼 난 못 받아."

"에이델린."

"줄 거면 니가 크루스한테 직접 갖다 줘."

"뭔...."


아니, 이건 또 대체 뭔 소리래.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다시 언성을 높혔다.


"누님, 죽은 놈이 뭔 수로 돈을 받아? 제발 정신 좀 차려."

"그 이 무덤 앞에서 다시 줘. 그럼, 나 이 돈 받을게."

"...."


미치겠다.

그냥 돈이야 받든 말든, 다 집어치우고 돌아가 버릴까....

하지만 이제 와 모든 걸 다 포기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포기하면 그 긴 여정도, 돈도, 시간도, 그리고 지금 저당 잡힌 내 목숨마저도 전부 허사가 되겠지.

...결국 가야만 하나? 다신 쳐다보기도 싫었던 그 곳으로.


"...하.... 가면, 받을 거요?"

"응, 받을게."

"그럼 가. 나중에 딴 말 하기만 해."


이미 뻗칠대로 뻗친 내 머리를 분에 못이겨 마구 헝클었다.

짜증이 나 소리라도 크게 한번 지르고 싶었지만, 등 뒤에 눈을 시퍼렇게 뜬 백룡 아가씨가 시끄러운 걸 아주 싫어한다는 점이 겨우 내 이성을 되찾게 만들었다.

말 머리를 하얀 깃발 쪽으로 향하고, 난 내 정신을 차리게 한 그 백룡 아가씨에게 말을 걸었다.


"미안하군..., 하멜. 좀 더 걸리겠어. 금방 끝나겠지만."

73 데인주 ◆taZqHR8ods (i1vAjuymJE)

2024-03-19 (FIRE!) 00:42:15

주말 동안 너무 바빠서 한번도 접 못했어요! 미안해요...! 세상에. ㅠㅠ

>>69 다음 마을에서 참고해야 겠네요! 용님 데리고 가니면서 맛있는 거 많이 사주고 싶다.... 조공 많이 바쳐서 조금씩 친해지고 싶다....

그리고 들쥐 먹으면서, 너도 먹을래? 했다가 용님에게 멱살 잡히는 데인도 너무 보고 싶다....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제가 너무 늦게 왔네요.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것!

74 데인주 ◆taZqHR8ods (G8EZo0IEKA)

2024-03-20 (水) 20: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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