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금을 모티브로 하고있지만 잘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상황극판의 기본 규칙과 매너를 따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를 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상대를 지적할때에는 너무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15세 이용가이며 그 이상의 높은 수위나 드립은 일체 금지합니다. ※특별한 공지가 없다면 스토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 30분~8시쯤부터 진행합니다. 이벤트나 스토리가 없거나 미뤄지는 경우는 그 전에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이벤트 도중 반응레스가 필요한 경우 >>0 을 달고 레스를 달아주세요. ※계수를 깎을 수 있는 훈련레스는 1일 1회로, 개인이 정산해서 뱅크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훈련레스는 >>0을 달고 적어주세요! 소수점은 버립니다. ※7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 경우 동결, 14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경우 해당시트 하차됩니다. 설사 연플이나 우플 등이 있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존 모카고 시리즈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따라서 기존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있고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서도 똑같이 그 설정이 적용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R1과도 다른 스토리로 흘러갑니다. ※개인 이벤트는 일상 5회를 했다는 가정하에 챕터2부터 개방됩니다. 개인 이벤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사전에 웹박수를 이용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는 계수 10%, 참여하는 이에겐 5%를 제공합니다.
혜성은 눈가를 찌푸리며 이번에는 초음파를 뭉쳐서 구 형태로 만들어 쏘아내려 준비했다. 확성기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면 다시 소리를 초음파로 바꿔 공격했을 것이다.
늘상 겪는 신경성 두통과 차원이 다른 고통이 머리를 헤집는 감각에 이를 악물었다. 시야가 깨지며 색채들이 범람한다. 소리가 범람하는 끔찍한 통증에도 처음 캐퍼시티 다운에 당했을 때와 달리 버티고 서는 건 저 소리를 다운시켜야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소리가 되지 못한 고통이 머리를 헤집었으나 혜성은 자신의 소리를, 범람하는 색채들 속에서 찾아내어 상쇄시키려 연산을 시작했다.
아, 위크니스로 말을 듣도록 하겠다... 어, 그런데 잠깐만. 파괴본능만 남겨놓으면 위크니스도 약점으로 작동 못하는 거 아니야? 파괴본능만 남으면 소중한 사람에 대한 것도 다 까먹게 되는 거잖... 아이고,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네? 큰일 난 것 같다. 선배들이 스피커같은 걸 부수려고 했는데, 도로 붙는가 하더니 원래대로 고쳐져버렸다. 거기다가 이상한 소리가 나더니, 은우 선배와 웨이버 님, 그리고 선배들과 친구들도 힘들어한다. 철현 선배랑 나만 멀쩡한 것 같은데. 어떡해야 하지? 일단 할 수 있는 걸 해보자. 내가 잘 하는 거. 곤죽 만들기. 적어도 시간 끌기 정도는 되겠지.
새봄은 주변에 굴러다니는 돌맹이들을 최대한 많이 주워담고는, 확성기를 향해 돌맹이를 하나 씩 던지며 애써 정신을 집중했다. 돌맹이의 구성성분이 설탕으로 변한다. 열이 가해진다. 녹아내린다. 저 확성기 안으로 스며든다. 모든 전자기기는 액체류에 약하다. 고장나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저 확성기를 부숴준다면, 설탕 시럽이 잔뜩 묻은 확성기를 고치는 건 그냥 깨끗한 확성기를 고치는 거보다 더 걸리긴 하겠지, 최대한 설탕시럽을 묻혀보자.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하는 본능은 인간적인 마음인데 그걸 이용하겠다는 거는 모순적이네요" "...네. 부족함을 그냥 무시하신 것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병기로 이용하겠다면 병기로 이용하셔야지. 인간적인 것을 잡아두는 것은 자신들의 부족함을 그냥 때운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소리.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 같고. 동시에 정말 아픕니다..
"바깥으로...도 나쁘지 않겠네요." 그것과는 반대로 안쪽으로 이동시도를 해보는 걸까요... 공간에서는 상식이 없어지지만.. 문제는 그런 걸까요..
확성기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계속 울릴 텐데. 혼자 정도는 안쪽으로 진입하는 게 가능할까요?
말이 안 통한다. 그럴 줄 알았지. 애초에 대화가 통할 거라고 생각해서 뱉은 소리도 아니었다. 자기들 논리에 취해서 눈 귀 닫은 자들에게 협상이 통하겠나? 머리를 울려오는 괴악한 소리는 가뜩이나 예민한 신경을 아득바득 긁어내린다.
아, 정말이지 미쳐버릴 것만 같다! 세상사 원래 노력으로 되는 일 하나 없다지만 시간을 거듭할수록 무력하기만 하다.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어 정신을 겨우 붙든 리라는 곧장 방패에 붙은 음파저해장치를 켰다.
그리고 emp 장치의 중앙 버튼을 누른 후 파워드 슈트 쪽으로 던지고, 그 사이 포스트잇에 물이 든 커다란 물풍선을 그려내 실체화시킨다. 가능하다면 비구름 여러 개도. 기계는 물에 약하다. 그리고 물은 소리를 먹는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 그런고로, 물풍선을 파워드 슈트 쪽으로 던져본다. 뭐라도 되겠거니, 안 된다 해도 어쩔 수 없겠거니 하는 마음은 차라리 자포자기에 가까웠다. 솔직히 좀 불공평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목숨줄 붙여 놔야 하는 처지고 저들은 가감없이 행동해도 되는 형편이라는 게.
이런 생각 하는 건 잘못된 걸까. 머릿속이 비겁하고 추악하게 변질되어 고등학생 상대로 죽네사네 하는 저들과 닮아질까 경계하는 마음이 반, 울분 가득차 끓는 마음이 반이다.
이 공간 안에 있는 이상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면, 이 공간을 나가는 건 가능한가, 태오는 이어셋에 대고 입술을 달싹였다. "확성기를 부숴도 소용 없다는군요." 느릿한 브리핑 뒤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뒤로 비틀거렸다. 안 그래도 두통을 상시로 달고 다니는 사람인데 이건 심하지 않나? 태오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 짧은 숨과 함께 노이즈 너머로 눈을 흘겼다. 남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진 몰라도, 적어도 뭐라도 하겠지. 태오는 일단 총을 꺼냈다. 머리가 지끈거리니 명중률이 낮겠다마는, 어찌 하겠는가.
"……."
에너지탄을 장전하고, 겨눴다. 목표는 윤태다. 서아는 담당으로 쥐어패는 사람이 있는 것 같으니까.
캐퍼시티 다운. 또다시 시작된 악몽. 그때보다 아픔은 생각보다 덜하다. 물론 능력이 성장한 만큼 고통의 양 자체는 늘어났겠지만, 나 자신이 고통에 익숙해진걸까. 몇번이고 다시 그린 그 상황. 지금도 이따금씩 꿈에 나온다. 그날의 시위 풍경. 다행히 리라언니의 음파방해장치덕에 저번보단 고통이 덜하지만...그럼에도 밀려오는 고통은 어쩔 수 없다. 겨우 겨우 한발씩 내딛는다. 눈 앞에 가장 믿음직해보였던 두사람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그래도 연산이 아예 안되진 않는다는게, 그나마 다행인걸까? 이빨을 꽉 깨문다. 내가 뭘 할 수 있지? 저 앞 두사람을 노려본다.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요즘 통 쓰진 않지만 항상 챙겨는 두는 마취제 샘플, 눈에 보이는건, 전기톱이 있는 파워드슈트... 움직일 수 있을때, 움직여둬야해. 그리고 퍼스트클래스는, 아직까지 저들에게 유용한 패야. 그럼...어떻게 해야하지?
아라의 손을 잡고. 자그마하게 말한다.
"...퍼스트클래스의 병기화가 목적이면, 지금 죽이진 않겠죠?"
"죽을각오, 하고왔어요?"
"그렇다면. 같이 뛰어줘요."
그리고나선, 달린다. 파워드슈트의 기동하는 모습은 한번도 보지 못했다. 당장 직관적으로 보이는 위협은, 저 전기톱과 칼날, 저걸 피하든 어떻게하든....이 마취액을 파워드슈트의 공기 순환부에, 쳐넣는다.
전의 캐퍼시티 다운과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 일었다. 통각중추가 없을 터인 뇌로부터 파동치듯 밀려오는 고통에 경진은 숨을 일렁였다. 토사물이 올라오려는 그 기분에 억지로 입을 틀어막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 앞에 이질적으로 팽팽 돌아가는 시야는 심박수에 채찍질을 했다. 머리부터 일렁여 연산식을 생각도 하기 전에 흐트러지는 계산에, 경진은 냅다 숨을 들이쉬었다. 처절한 고함이 근방의 귀에도 울려퍼질 데시벨로 내질러졌다.
연산식이 희미하다, 무엇이 될지도 모르겠다. 크리에이터의 귀에 닿는다 하더라도 방해 효과는 미미할 테다. 그러나 한 순간이라도 흐트러트릴수 있을수 있지 않을까, 같은 희박한 확률에 걸어본 것이다.
젠장. 역시 크리에이터의 공간이라는 건가? 물리적으로 찢어낸다고 한들, 결국은 다시 복구된다. 여기는 크리에이터의 법칙이 곧 상식인 공간. 무력화를 해도, 무력화가 되는 공간이 아니란 말이다. 그나저나, 위크니스를 해방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진짜로 사실이라는 거구나. 이것이 곧 크리에이터가 합류한 이유이고.
" 크윽...! "
그리고.. 저 망할 캐퍼시티 다운. 또 있구나. 게다가 여기는 크리에이터의 공간이라서 그런가? 리라양의 장비로도 완전한 방어가 불가능해. 지금 느껴지는 레벨도..고작 1 수준.. 하하.. 내 몸도 못 띄우는 수준이구만. 근데 크리에이터는 여기에 없잖아. 어떻게 보고? 아, 이 영역의 주인이니깐.. 우리가 뭘 하고 뭘 듣는지 다 알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깐 우리가 하는 말도 들리겠네?
서한양은 잠시, 저지먼트와 파워드슈트와의 교전에서 조용히 힘겹게 이탈하려고 했다. 여기서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말이지. 한양은 잠시 전투현장을 이탈해서, 조용히 말하기 시작했다.
" 아저씨. 내 말 들리는 거 다 알아요. "
" 아저씨. 아까 내가 말한 리버티의 계획. 그냥 떠보자고 하는 얘기인 줄 알았어요? 아니에요. 진짜라고요. "
" 아저씨가 왜 합류했는지도 들었어요. 걔네들이 위크니스에 대한 해방법을 가지고 있다면서요? 그런데요. 지금 리버티가 당신의 위크니스를 확보한다면...말짱 도루묵이 아닐까요? 지금 여기에 신경쓰실 때가 아니에요. 나는 그래도 남의 소중한 사람 가지고 장난치는 게 너무 싫어서, 그나마 여기서 아저씨한테 말하는 거에요.. 결정은 아저씨의 자유니깐..잘 생각해보세요. "
이거?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크리에이터가 한양의 말을 듣고서 잠시 코드입력을 멈춰도 좋았다. 그 틈에 부원들이 완전히 확성기를 소멸시키면 되니깐. 크리에이터가 자신의 가족으로 저 새치혀를 내두르는 한양에게 분노해서 한양에게 집중적으로 어그로가 끌려도 좋았다. 결국은 저 파워드슈트 쪽에 신경을 못 쓰게 만드는 거니깐.
통제의 힘을 부여함으로써 자신들의 이상적인 상황을 만들려는 것이 유토피아 프로젝트라. 눈앞에 인첨공의 모든 잔혹함과 부패만이 비치고 있었다/확성기에서 나오는 음파의 공격이 귓속으로 박혀 들어와 머릿속이 울려댔고, 구토를 유발하니 금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비틀거린다. 뇌를 직접적으로 찌르는 것 같으니. 그 고통에 시야가 좁아진다. 제정신으로 있을 수 없으니, 지금의 상황에 금은 살의에 가까운 감정이 솟아올랐을까. 간신히 고개를 들고서 파워슈트를 입고 있을 남성을 죽일 듯이 노려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열에너지를 모아 폭발을 일으키려 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다름 아닌 새봄이었습니다. 새봄은 레벨0였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이어 그녀는 돌멩이를 설탕으로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확성기쪽으로 던졌고 이내 그것은 스피커 쪽으로 스며들어 굳혀졌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소리는 확연하게 작아졌습니다. 그 덕분에 '모두가 원하는 움직임이 그대로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혜성은 미약하게나마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서 상당히 작아진 그 음파를 거의 완벽하게 상쇄시켰습니다. 물론 그녀로서도 힘이 많이 들어가겠지만, 그래도 작아진 소리였기에 그녀의 현 레벨로도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쇄. 완전히 차단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틈에 혜우는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또 다른 장벽이 막아섰기에 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장벽과 윤태쪽으로 희미한 빛줄기 같은 것이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태진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슈트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습니다. 레벨1이라고는 하나 괴력. 윤태의 슈트가 크게 흔들렸고 뒤로 넘어질듯 말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바둥바둥. 하지만 겨우겨우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윤태의 슈트의 움직임이 멈췄습니다. 그렇기에 정하는 접근할 수 있었고, 그대로 마취액을 성공적으로 집어넣을 수 있었습니다. 안에 있는 윤태는 순간 움찔했지만 이내 자신의 몸에 주사를 주입했습니다. 마비되진 않았지만 그 때문에 조종석에서 잠시 손을 놓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서아가 움직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청윤의 공격이 날아왔습니다. 물론 유리를 박살내진 못했지만 그녀를 접근하지 못하게 하기엔 충분한 공격이었습니다. 이어 서아는 칫. 하고 소리를 내며 잠시 물러섰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금은 자신의 능력을 써서 윤태가 타고 있는 슈트의 전기톱이 있는 부분을 박사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어 리라와 성운이 EMP를 작동시켰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 근방의 녹색 에리어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상당히 약해진 것이 아닐까요? 확실한 것은 이렇게 공격이 날아오는데도 바로 복구가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리라의 물폭탄이 이내 떨어졌고 윤태의 슈트에서 스파크가 강하게 튀었습니다. 이어 태오의 에너지탄이 발사되었고, 스파크가 튀는 곳에서 약한 폭발이 터졌습니다. 덕분에 반대편 팔은 그대로 아래로 툭하고 떨어졌습니다.
이내 녹색 에리어가 다시 제 색을 되찾으려는 무렵, 경진이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습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색이 살짝 죽었습니다. 물론 그래봐야 1~2초 정도의 틈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때 바로 한양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응답이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슈트가 있는 곳의 녹색 에리어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크리에이터의 능력이 해제되어버린 것일까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녹색 에리어가 펼쳐졌습니다.
"...뭣?!"
"뭐, 뭐야?! 갑자기 왜?!"
그 순간이었습니다. 철현이 핸드폰으로 '캐퍼시티 다운'을 켰습니다. 그러자 서아와 윤태는 크게 괴성을 지르면서 두 손을 잡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아무래도 제대로 영향이 들어오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된 일일까요? 방금 전까진 그 아프고 아팠던 캐퍼시티 다운이 전혀 아프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틈을 타서 수경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정확하게 윤태의 슈트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니까 꽉 차네요. 일단 수경의 눈에 보이는 것은 캐퍼시티 다운 작동 장치입니다. 어떻게 할건가요?
크크큭맨과 빨간머리 앤...아니 서아가 파워드 슈트를 입고 나타났음 캐퍼시티 다운 틀어서 애들 흔들리는데 레벨 0이 조커패 활약(feat. 광기의 고3철현의 "얘들아, 어자피 지금 아프나 두배로 더 아프나 아픈건 똑같은 거 아니냐?") 크크큭맨과 서아가 그렇게 역관광 당함 < 현재
작아진 소리에 색채가 덮히는 풍경을 지켜보며 혜성은 고통을 참았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상쇄시켜야한다는 생각으로 했던 행동의 여파가 서서히 밀려들었다. 두통과 함께, 다리의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캐퍼시티 다운이 상쇄되었다는 걸 느끼자마자, 나이프를 빼서 다시 주머니에 넣은 혜성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하며 상황을 파악했다.
"어때? 뇌가 잘게 져머지는 기분이야? 아니면 누가 뇌수를 쥐어짜는 기분? 아니면 맨손으로 누가 뇌를 주무르는 기분이야?"
피로한 얼굴 위로 느릿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혜성은 허벅지 상처를 지혈하느냐고 피 묻은 양손을 마주쳤다.
“야. 이리라. 무채색 머리와 보라색 눈의 의리로······ 원래 류애린 후배님이 할 법한 거, 내가 대신 하려고 했거든.”
성운은 손을 뻗었다. 그리고 파워드 슈트의 몸체에는 과중력을 걸고, 운전석 뚜껑에는 역 과중력을 걸어 운전석 뚜껑을 뜯어내버리려 했다. 운전석 뚜껑이 뜯겨나왔다면, 다음번에는 그 안에 탄 ‘파일럿’들의 차례임은 명약관화하다. 앞서의 행동이 성공했다면, 성운은 윤태와 서아를 무중력으로 들어올려 땅바닥에 내팽개칠 것이다. 기왕인 거 철현 선배 바로 옆으로. 그 듣기 싫은 소리, 실컷 들을 수 있도록.
“그런데 나 지금 좀 바빠서··· 애린 후배님의 의지, 네가 이어주라.”
······이게 고등학생끼리 주고받을 회화가 맞나? 아니 맞는 것도 같고? 진실의 방울의 의지를 리라에게 부탁한 성운은, 자신의 행동이 끝나자 혜우에게로 후다닥 달려갔다.
태오는 비틀거리던 걸음을 겨우 바로 세웠다. 어떻게 되었든 잡것이라 칭한 것이 저리 굴어 계획이 꼬였으니 속이 좀 뒤집히겠구나 싶었다. 총을 겨눠 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지. 아니면 그냥 필요없는 곳을 부순 건지. 어찌 되었든 태오는 가만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이 상황에서 할 짓은 아니지만.
"……."
안으로 진입하기 전, 카메라 어플을 켜 줌을 설정하고, 고통받는 얼굴을 영상으로 남기고자 했다. 좋은 자료가 될 것 같다는 끔찍한 예술가 호소인의 변명이리라. 남들은 자신이 예술인이라는 사실 모르니 인성 개빠개진 현태오 리즈시절 갱신이라 생각하겠다만. 그런데, 다른 생각은 안 하나. 태오는 능력을 사용해보며 귀를 기울였다. 비명소리가 퍽 익숙하다.
오, 이게 되네? 와중에 선배들이 저거 안 닿으셔서 다행이다, 저거 펄펄 끓는데. 선배들 친구들 발목이나 안 잡으면 다행이다 했는데 생각보다 결과가 좋았다! 아마 오늘은 요행히 저 선생님들이 고레벨 친구들 선배들만 노리고 나랑 철현이 선배를 얕봐서 당한 것 같지만, 앞으로 나랑 철현이 선배만 얕보는 적만 만나리라는 보장이 없고 또 뭐가 나올지 모르니 긴장해야지.
자, 일단 저 선생님들 있는 공간은 녹색이 사라진 데다 철현 선배 덕택에 영 쪽을 못 쓰고 계시고, 다음엔 뭘 해야 좀 도움이 될까? 음... 고민에 잠기던 찰나, 정하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고마워, 정하야! 정하도 고생했어, 마취액 공격 멋있더라!"
생글 웃는 얼굴로 화답하며, 잰걸음으로 뻗어버린 두 선생님들께 달려가서는 크크큭 아저씨 옆에서 같이 괴로워하고 있는 여자분의 머리에 가져온 권총을 겨눴다. 권총은 하나뿐이고 크크큭 아저씨는 최우선 제압대상인 것 같으니까 이분이 도망가시지 못하게 모두가 묶어줄 때까지 이러고 있어야지~.
머릿속은 언제 혼잡했냐는둥,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더 이상 아프지도, 연산이 어지럽지도 않았다. 크리에이터의 공간 내부에선 그 어떤 법칙도 통일되지 않으리라 들었는데, 어째서 눈 앞의 슈트 두 대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걸까? 한양의 활약을 아직 모르기에 이렇게 혼란스러운 것일 테다.
"크리에이터!"
쩌렁쩌렁한 함성에 목에 핏줄이 불거진다. 방금도 능력이 먹힌듯 했으니, 크리에이터는 분명 그의 목소리를 들을수 있을 거라 확신짓고선 연산을 돌렸다. 주파수는 아지랑이를 그리며 그가 할수 있는 최대한의 방해공작을 펼치려 할테다.
뭐지? 분명히 크리에이터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위선자의 역할을 자처하면서 가족을 들먹였다. 크리에이터의 눈에는 서한양 역시 가증스러운 녀석으로 보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한양에게는 어떠한 답변도, 보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분명 작게 말했는데, 왜 내 목소리만 크게 울리는 거야?! 혹시 시스템에 오류가 났거나, 이것이 크리에이터의 반응인 거야?!
어쨋거나..
모두의 활약으로 캐퍼시티다운은 없어졌어. 이제 나는 뭐 하냐고? 일단 빡돌아버린 애들이 알아서 녀석들을 패주겠지. 굳이 내가 나서야겠나? 나는 마무리만 하면 돼. 부원들이 녀석들을 물고 씹고 맛보고 즐기게 잠시 두다가.. 제압된 두 녀석을 염동력으로 꺼내려고 했다.
"자자-! 주목-! 이제 팰 만큼 팼죠? 잡아야지, 이제. 그런데 안티스킬은 영 믿을 수가 없고.. 얘네들을 어디다가 가둬둔담.. 아 맞다. "
서한양은 활짝 웃으며 아라를 보며 말했다.
" 아라~! 우리 쪽 저지먼트는 다 출동한 상태라서 따로 봐줄 인원이 없어. 너네 월광고 저지먼트들을 불러서 후송해가는 게 어때? 싫으면 괜찮아~ 안티스킬 부르지, 뭐. 배신자가 안티스킬 정점이라 좀 걸리긴 하지만, 안 된다면 안티스킬이라도 불러야지. "
이제까지 먹히지 않던 것이, 그리고 제 꾀에 제가 당한 모습이 통쾌할지언정 열 오른 머리가 제 온도로 돌아오는 일은 없다. 리라는 보기 나쁜 꼴로 찢어져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입술을 대충 문질러 닦고 스케치북을 들었다. 입가 주변으로 번진 피가 허옇게 변색된 외관과 대비되어 섬뜩함을 자아낸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선은 기계 밖으로 튀어나온 것들에 집중되어 있다. 피비린내를 달고 걸어나간 리라는 성운의 말에 무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종이를 팔랑팔랑 넘겼다. 비로소 펼쳐진 곳에는 괴랄하고 끔찍한, 반쯤 부패된 시신— 또는 좀비 같은 것들이 무리로 그려져 있었다. 다리는 없고 팔만 길쭉한 괴물 무리. 영상 시청 커리큘럼을 하며 그렸던 것들이다. 초 단위로 속 뒤집어질 만큼 역겨운 장면만 나오는 영화라 괴롭기만 했는데 이럴 때 쓸모가 있을줄은.
그림자 두 사람을 따라간 리라는 모두가 각자의 행동을 다한 후 종이에 그려진 움직이는 시신들을 그대로 실체화 시켜 두 사람을 붙들었다. 그러니까, 뼈가 부러지고도 남을 힘으로. 삭은 거죽에서 역겨운 피비린내를 풍기면서.
안타까운 일이다. 가능하다면 이 꼴로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머리가 도는 느낌에 가만히 그들을 내려다보던 리라는 주머니에서 제가 들고 다니던 무선 이어폰 하나와 줄 이어폰 하나를 꺼내 철현에게 건넸다. 그리고 노끈 또한 간단히 그려낸다. 그것까지 건네는 동안 리라는 아무 말도 없었다. 표정도 없고. 새하얗게 바란 속눈썹 아래 눈동자는 평소보다 옅은 빛을 띈 채 흐리게 빛나고 있었다.
situplay>1597039274>177 지독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자신을 비롯한 저지먼트를 괴롭히던 캐퍼시티 다운이 멈췄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여전히 울리고는 있으나 마치 그 때와 같은 느낌이다. 불렛이 처음 습격을 당했을 때.
누군가를 정확히 노려서 영향을 미치는 듯한 캐퍼시티 다운. 그리고 기분 나쁜 인간 둘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던 랑은 크리에이터가 뭔가 손을 썼겠거니 하고 지금은 상황을 넘기기로 했다. 어쨌든간에, 목화고 저지먼트를 막아내는 게 목적인 이들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에는 뭔가 꿍꿍이가 있겠지, 그게 뭔지는 몰라도.
그러나 지금은 그 뒤에 담긴 의미가 뭘까 고민하기보다는, 눈 앞의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게 옳아 보였다. 랑은 집중적으로 포화를 받고 있는 윤태 대신 서아를 향해 걸었다.
"불리한 상황이 뒤집힐 때 만큼 짜릿한 건 많지 않지."
까득, 입 안에 담긴 사탕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랑은 파워드 슈트에 뛰어올라 조종석에 있을 서아의 머리채를 붙잡으려고 했다.
"이를 악물어 주십시오 고객님, 이쪽 발치 서비스는 조금 과격해서."
할 수만 있다면 얼굴을 피떡으로 만들어 놓고 싶은데. 주먹의 너클 부분을 인중에 꽂으려고 하면서도 랑은 능력을 통해 주변에 있을지도 모를 위협을 탐지하려고 했다.
아마 그 이후로는 처절한 응징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일단 수경은 장치를 망가뜨리는데 성공했고 캐퍼시티 다운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철현은 계속해서 응징으로 그것을 재생하고 있었지만요. 둘 다 순식간에 다른 부원들의 힘으로 제압이 되었고 때리는 이들도 있고 그냥 제압만 하려는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초음파로 공격을 하는 이들도 있었겠지요. 아. 사진을 찍는 이도 있네요! 혜하지만 그 순간, 랑은 아직 불길한 기운이 끝나지 않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윤태' 쪽에서입니다. 뭔가, 뭔가가 있었습니다. 마치 뭔가로 변할 것 같은... 그것은 인간이 아닌 다른 느낌의 두려움, 그리고 불길함입니다. 한편 경진의 말에 크리에이터는 그 어떤 목소리도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저 안의 장벽이 열리는 일도 없었습니다. 적어도 따라줄 생각은 없는 모양입니다.
슈트에선 하얀색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왔습니다. 아무래도 공격을 많이 받아서 망가진 것이 아니었을까요? 철현에겐 너무나 유감스러운 일이 되어버렸군요. 어쨌건 혜우나 청윤, 성운을 빛을 바라봤겠지만, 그것은 슈트 밖으로 끌려나온 윤태에게 연결이 되어있을 뿐이었습니다. 이어 은우와 아라는 겨우 정신을 차리면서 두 사람을 노려봤습니다.
"핫. 그래야겠네. 그런데 나에게 명령하지 말아줄래? 난 너희 코뿔소에게 명령들을 이유는 없어서 말이야. 그래도...일단 고마워."
"다른 이들도 수고했어. 나와 아라는 그놈의 음파만 나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이럴땐 퍼스트클래스가 보통 힘든 것이 아니란 말이야."
한편 쌍코피를 흘리고 있는 윤태는 이내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크크큭, 하는 특유의 웃음소리를 이어냈습니다. 이어 흘러나오는 것은 광기 그 자체였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크리에이터. 크크크큭. 제가 여기서 잘못되면...어떻게 되는지 말이죠. 당신이라면 아주 잘 알텐데 말이죠!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크크큭. 그리고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요. 여러분들은 강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죠. 고작 이 정도도 예상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너..으읏!"
"크크큭. 과학자는 언제나 최악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움직이는 법이지요."
그 순간이었습니다. 윤태의 입에서 캡슐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어 그는 목구멍 안에 있는 뭔가를 꿀꺽 삼켰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그림자 주변에 있는 이들은 뭔지 모를 풍압에 휘익하고 밀려났을 것입니다. 그 사이에 서아는 칫, 소리를 내며 자신의 손목시계를 꾹 눌렀습니다. 그리고 어디론가 워프해서 사라졌습니다.
랑은 이내 강한 폭발이 그곳을 감싸는 불길함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니. 그걸 넘어선 문제입니다. 그 폭발 속에서 보이는 것.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말로 설명할 수 없고, 소름이 끼칠 정도의 불길함입니다. 물론 퍼스트클래스 급의 불길함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칫 잘못하면 죽을수도 있다는 불길함이 몰려왔습니다.
"...당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크크큭. 저를 정말로 잡거나 죽일겁니까? 그렇게 된다면... 크리에이터의 목숨도 사라지게 되겠지요. 물론 제가 죽는다고 크리에이터가 죽진 않지만... 당신들의 손으로 직접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가 될겁니다. 왜인지는...크크큭. 알려주지 않도록 해볼까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요. 한편, 그의 살결이 꿈틀꿈틀거립니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그리고 그의 눈동자에서 생기가 사라졌습니다. 거리를 두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구속하는 것이 좋을까요?
/11시 35분까지!
좋은 소식은 여러분들이 경기를 일으키던 크크큭맨. 루트에 따라서는 여기서 퇴장하게 되겠네요!
크크큭거리는 아저씨가 뭔가를 씹어 삼키나 싶더니 거센 바람이 불었다. 그 사이에 여자분은 손목시계를 누르더니 사라져버렸다. 저 여자분이 도망치실 것 같아서 일부러 크크큭 아저씨는 냅두고 여자분 머리에 총 겨눈 거였는데, 분하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다음이 중요한 거 아니겠어. 적어도 크크큭 아저씨는 잡고 있으니까. 근데 크크큭 아저씨는 우리가 아저씰 잡거나 죽이면 재신자 아저씨가 죽을거란다. 왜지?
잘은 모르겠지만, 배신자 아저씨의 목숨이 오락가락 하는거에 아저씨의 위크니스인 애기가 연관이 되어있으면 함부로 죽이면 곤란할 것 같다. 이런 중요 사안을 결정할 때는 뭐다? 선배 말 듣기! 근데 크크큭 아저씨의 상태가 뭔가 이상하다. 느낌이 안 좋아. 리라 언니가 준 방패를 크게 만들어서 우선은 내 몸을 가렸다. 저 아저씨가 뭘 하려는 진 모르겠지만 주시하되 조심해야겠어.
제가 여기서 잘못되면……. 태오는 눈을 흘겼다. 아무래도 크리에이터는 협박을 받고 있던 건 맞는 것 같고, 그렇다면…. 아니, 그렇다고 해도…… 결국 희망을 잡는 일이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태오는 제법 잔인한 생각을 머리로 굴리며 노이즈가 유지되길 속으로 빌었다. 제 속내를 누군가 읽을 가능성은 없다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으니까.
"죽음도 당신의 패로 쓸 수 있다지만, 그걸 드러내는 순간 패한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죽음은 소리없이 단숨에 진행되어야 했다. 드러내며 위협하는 것은 한 사람에게나 소용이 있지, 여러 사람에게 써서는 안 된다. 누군가는 나의 죽음을 간곡히 바라며 타인의 삶 따위는 알 게 무언가 식으로 나올 테니, 그건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고, 지금처럼 허무한 결과가 될 수도 있으리라. 태오는 핸드폰을 거두며 다시금 바랐다. 이번에는 제 머리 희게 변모하는 일 없길 바라며, 조금은 덜 뻣뻣해진 머리에 연산을 가해본다.
이 남자의 폭발을 막기 위해 중력으로 혈류를 제어해보려 했으나, 그건 아마도 정하가 더 잘할 것 같다. 이 남자의 몸에 꽤 정밀한 터치가 필요할 것 같으니, 성운은 그 대신에 중력을 정밀하게 제어해 진윤태의 몸에 달린 뱃지나 팔찌, 손목시계 등 무언가 바깥으로 보이는 패물은 다 역중력으로 뜯어버린 뒤에 진윤태의 발 밑의 흙을 세밀한 역중력으로 들어올렸다. 진윤태를 파묻어버리기 위해서였다. 성운이 가한 연산이 정확하다면, 진윤태의 몸은 마치 땅밑으로 빨려들어가듯이 파고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성운은 방패를 치켜들고 폭발에 대비했다.
“크리에이터, 듣고 있습니까?”
“이 남자의 의술이 필요한 거지요?”
“목화고에는 강력한 텔레파시 능력자들이 몇 명 있습니다. 그 중에서는 기억을 조종하는 능력자와 의지를 제어하는 능력자도 있어요··· 진윤태를 무사히 체포하기만 하면, 목화고 측에서 협조할 수 있을 겁니다.”
“그저 따님에게 밝은 미래를 선물해주고 싶었을 뿐이 아니었나요? 그 미래에 당신이 함께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어느새 청윤까지 와서 빛을 살펴보았지만 소득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빛을 가리거나 해도 바뀌는게 없으니 진윤태를 직접 어떻게 해야 하나 본데 그런데 상황이 어째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뭔데, 저게, 뭐 하는 건데...?!"
진윤태의 행동에 순간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정하의 외침으로 진윤태의 저 이상한 변이를 막아야 한다는 것 만은 깨달았다.
바로 등을 장벽에 붙인 채 다시 방패를 꺼내 앞에 세웠다. 방패 옆으로 시야를 확보해 진윤태를 시야에 두고 능력을 전개했다.
모든 세포의 회복을 일제히 가속화 시켜 이상 현상을 일으키는 세포의 괴사를 촉진하고 더불어 후폭발도 막아보려는 방향으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그런 범위는 정하지 않았다. 전신,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능력이 닿는 모든 세포가 그 범위이자 대상이었다.
동시에 등을 댄 장벽을 향해 말했다.
"크리에이터! 당신의 딸이 저 남자에게 치료를 받고 있었단 사실은 이미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 바닥에 의사가 어디 저 미친 놈 하나 뿐인가요? 어쩌면 저 놈이 없어짐으로써 아린이가 더 나을 방법이 나올 지도 모르죠. 저 놈이야말로 아린이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었을지 어떻게 알아요, 안 그래요? 크리에이터, 당신은 분명 용서 받을 수 없어요!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당신의 딸을 위해 우리에게 협력해!!!"
아라의 명령하지 말라는 말에 한양은 히힛 웃으며 어서 인원을 보내달라고 말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저 윤태라는 자는 아직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었을까? 녀석은 캡슐을 깨물더니..!
" 역시 순순히 잡혀주지 않겠다, 이거지?! "
주변의 풍압에 어떻게든 염동력으로 버텨보려고 하는 서한양. 하지만 풍압이 너무 강했던 것일까? 조금씩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홍서아는 저번처럼 워프를 하면서 탈출했고. 그런데.. 랑이의 탐지가 굉장히 불안한 무언가를 발견해냈어. 이곳에서 곧 폭발이 일어날 예정이야.
그나저나.. 저 녀석이 잡히거나 죽으면 크리에이터도 죽는다고? 크리에이터가 죽는 경우는 위크니스의 사망..그렇다는 건.. 잠시만.. 전에 그 고양이가 말한 크리에이터의 딸이 가진 약한 심장. 주기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된다고 했어. 그래. 그 전문의가 당신이었구나. 당신이 딸을 치료하지 않으면, 크리에이터는 죽을 테니깐.
당신은 그 점을 이용해서, 크리에이터를 유토피아의 계획에 이용하려고 했었던 거고. 사실.. 저 윤태라는 녀석이 죽으면 크리에이터도 이 유토피아를 실행할 이유가 없어지기도 해. 결국 저 녀석을 죽게 만들어야 4학구가 무사해질 확률이 높지.
그런데 아저씨. 그러면 왜 저 사람이 가만히 맞게 냅두고 있어요? 아저씨의 딸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것 때문에 악역을 자처하면서 4학구를 없애려고 하는 거잖아요. 근데 왜 지금은 가만히 있어요?
아저씨 지금 흔들리고 있죠?
" 어서 피해요!!! 엄폐물은 내가 만들게-! 최대한 녀석에게 거리를 벌려요-!!!!! "
한양은 녀석에게서 최대한 떨어진 다음, 부원들이 숨을 수 있게 염동력으로 엄폐물을 배치하려고 했지만 리라가 만든 상태. 한양은 폭발에 대비해서 리라의 엄폐물에 염동력을 부여해서 폭발에 좀 더 버티게 만들려고 했겠다.
>>0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해봐여." [요즘따라 생각이 많아보이는거 같거든?] "한창 그럴 나이잖아여~" [...맞는 말이긴 한데 앞에 쳐가 붙어야 할거 같거든...] "때릴검까?" [무슨 분홍색 다람쥐같은 뉘앙스로 말해버리면 곤란하거든...] "애애애앵..." "헉, 방금 대피경보음 울린거 아니니?" [누가 봐두 점례가 내는 소리거든...] "얘도 참 눈치가 없어요..." "다들 이때다 싶어서 갈구는 검까... 따흐흑... 너무함다..." [그치만 이런 기회는 많지 않거든~] "개넘함다 징쟈..."
이런 소소한 장난과 돌아가며 신경을 긁는 것도 다분히 의도적인 상황이기에 웃어넘기려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그녀의 주변에선 자주 있는 일이기에 그러는 것일까? 단말기에서 눈과 손을 떼지 않는 그녀와 격벽 너머에서 한걸음 한걸음씩 움직이며 시간 설정이 된 폭탄쪽으로 다가가는 더미가 있었다.
"그냥, 어느날 갑자기 즈가 훈련 땡땡이를 친다던가 하면 다들 무어라 생각할까여?" [음... 그냥 별 생각 없지 않을까 싶거든?] "조금 의외네~ 라곤 생각하겠지만 말야~" [사람 일이란게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호에~" [...설마 땡땡이 치려는 밑밥이라도 까는 거야?] "흐음... 그런 거라면 조금 괘씸한걸~?" "에이, 슬마 즈가 옛날 생각 난다면서 갑자기 말없이 외출해서 며칠동안 안들어온다거나 그러겠슴까~?" [선생님한테 들어보니 예전엔 자주 그랬다고 하거든.] "...우씨..." "유감이지만 난 우씨가 아니거든~" [나도 마찬가지거든.] "......"
키득거리는 여성과 여학생의 만담에도 아랑곳않고 더미를 조심스레 조작하며 결국 폭탄 무력화에 성공한 그녀였지만...
"어유, 손이 미끄러졌슴다."
라는 말과 함께 단말기가 불꽃을 튀기며 고장났고, 그와 더불어 기묘하게 몸을 뒤틀던 더미가 동작을 멈추기 전 폭탄을 쳐 날리며 유리벽에 퉁 하고 부딪히다 떨어졌다.
[아무리 해체된 거라도 폭탄은 무섭거든...] "즈는 바로 앞에서도 터지는걸 봐서 아무렇지두 않은데 말임다." "뒤랑 옆에서 터지는 것도 보지 않았니?" "포화 속에서 도망칠땐 으레 있는 일이지여?" [...?]
유한은 혀를 찼다. 제 팔을 내려다보자 너덜너덜해진 주먹이 보였다. 자신은 이런게 특기가 아닌데. 속으로 투덜거리고는 시선을 올려 구멍뚫린 샌드백을 보았다. 샌드백에는 주먹만한 구멍이 뚫려있었다. 유한은 조용히 제가 뚫어낸 구멍을 매만졌다. 어떤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작용 반작용이 완벽하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능력에 의해 비틀려서 내게 가해지는 반작용은 가속을 적용하지 않았을 때 만큼의 크기가 가해진다. 그렇다면... 이를 이용해서 다른 것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저지먼트 부원 중에선 크리에이터에게 말을 거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철현, 성운, 혜우. 그렇게 말을 거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크리에이터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그건 상당히 적대적이 목소리였습니다.
"아저씨 잘 듣고 있긴 한데 하나하나 너무 귀찮은데?" "여기까지 와서 무슨 소릴 하는건지 모르겠네?" "이쪽에서 더 해줄 말은 없어. 그러니까 아저씨.. 슬슬 귀찮으니까 이런 말, 저런 말 걸지 말아줄래?" "...정말로 유치하기 짝이 없어서 아저씨 웃음 터트릴 것 같아! 하하하하!"
ㅡ...이제 지쳤어. ㅡ...설사 여기서 어떻게 넘어간다고 해도... 앞으로도 끝나지 않겠지. ㅡ...네비게이터. ...너는 내 뜻을 잘 따라줬구나. 고마워. ㅡ...이제 마지막으로 나도 아빠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줘야겠지. ㅡ...진정으로 내가... 널 위해서, 너의 안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ㅡ...(정말로 강한 노이즈) 뿐이구나.
그런 말이 태오에게는 살짝 들려왔을지도 모릅니다.
혜우와 정하가 각각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뭔가를 막아보려고 했지만 조금도 그 움직임은 멈춰지지 않았고 더욱 온갖 피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수경은 워프장치에 맞은 동월을 잡았습니다. 태진은 근처에 있는 작은 담벼락을 하나 뜯어서 장벽을 만들었습니다. 리라는 돔을 만들어서 폭발을 막아보려고 했습니다. 이어 은우는 그 근처의 공기를 싸그리 압축해서 폭발의 범위가 커지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성운이 윤태를 땅으로 처박기 시작했고, 한양은 자신의 능력으로 돔을 꽈악 잡았습니다. 다른 이들은 모두 방패로 대비했습니다. 이내 강한 폭발이 펑 일어났으나 그 폭발력이 그렇게 크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두들 뒤로 쭈욱 밀려날 정도는 되었을 것입니다.
"..크크큭...크크크큭..." ㅡ실험은 성공이구나.
웃음소리와 함께 그런 속마음이 태오에게도 들려왔을 것입니다. 하얀 연기속에서 뭔가가 천천히 움직입니다. 그것은 키메라. 키메라라고밖엔 할 수 없었습니다.
상반신은 인간의 모습이었으나, 두 팔은 전갈의 팔과 가까운 모습의 집게팔, 그리고 두 다리는 거미를 연상시키는 8개의 날카로운 다리, 그리고 뒤에는 전갈의 날카로운 독침이 달린 꼬리가 길게 자라있었습니다. 어찌나 강한 독인 것일까요. 보라색 액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런 과학기술조차도 어둠이 있기에 만들 수 있는 법이지요. 크크큭." "저를 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습니까? 유감이로군요. 저는 절대로 잡히지 않을겁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을 저 안으로 들여보낼 순 없지요. 자... 크리에이터! 시작하십시오! 하루 앞당기도록 하죠. 유토피아 프로젝트의 마무리를 짓는 겁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연구소 쪽에서 녹색 광선이 하늘을 향해 솟구쳤습니다. 그리고 홀로그램으로 3:00:00 이라는 카운트다운이 떠올랐습니다. 앞으로 3시간 후에 뭔가가 펼쳐질 모양입니다.
Q.50이하로 떨어지면 어떻게 되었나요? A.ㅡ...이제 지쳤어. ㅡ...설사 여기서 어떻게 넘어간다고 해도... 앞으로도 끝나지 않겠지. ㅡ...네비게이터. ...너는 내 뜻을 잘 따라줬구나. 고마워. ㅡ...이제 마지막으로 나도 아빠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줘야겠지. ㅡ...진정으로 내가... 널 위해서, 너의 안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ㅡ...(정말로 강한 노이즈) 뿐이구나.
그 누구도, 자기가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옥을 살아갈 이유는 없다. 성운은 그렇게 생각했다. 정당한 이유 없이 그 믿음을 다른 이에게 그렇게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그 믿음에 대한 가장 강한 반증이 자신이 사랑하기로 한 사람의 형태로 나타났을 때, 성운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 정도라면 이유로 충분하지 않은가.
함께 떨어져야 한다면 기꺼이 떨어져주겠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수 있다면, 기꺼이 손을 잡아주겠다. 운이 나쁘다던가, 몸이 약하다던가, 뭐 하나 할 줄 아는 것도 없다던가... 그런 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의 변명이 될 수 없음을 잘 아니까.
뜨악한 표정도 잠시, 성운은 잔뜩 칭얼거리는 혜우를 받아주느라 얼굴표정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능력 같은 것은 쓰지 않고, 가볍게 혜우를 안아들어 품에 마음껏 기대고 치대게 해주느라고 다른 것을 생각할 여념이 없었다. 유준의 말대로 물티슈라던가 적신 수건 같은 걸 쥐어줘도 땀 닦아주는 건 무리겠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렇게 불쾌할 정도로까지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었고, 그토록 서늘했던 네가, 이렇게 명확한 맥박을 가지고 안겨온다는 사실이 성운에게는 더 중요했으니까. 혜우가 품에 마음껏 기대개 둔 채로 소파에 앉아서, 성운은 유준의 말에 차분히 귀를 기울였다. 이제 더 이상 피아노를 배우는 레슨 학생이 아니다. 이제 발을 뺄 수 없다. 성운도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만 하는 이가 된 것이다.
···그럴 수 있어서, 성운은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꺼내어놓으려는 유준을 조심스레 올려다보는 성운의 눈은, 이상하게도 얼마 전과 이렇게 많은 것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유준이 알던 그 평균신장에 한참 못 미치는, 자기 허리께쯤 오는 조그만 꼬맹이의 눈과 비슷하게 차분했다. 성운은 차근차근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리고 그 반응은 유준의 예상과 그렇게 다르지도 않았다.
“하겠습니다.”
나직하고 차분한 대답이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이 다른 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하물며 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이가 된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성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가 끝나고, 소파는 내 자리라는 유준의 너스레에 성운은 쓴웃음을 지었다.
“선생님도 수고가 많으세요.”
내년 스승의 날을 꼭 기억해두기로 하며, 성운은 혜우를 조용히 안아든 채로 혜우의 방에 있는 침대에다 혜우를 뉘어놓고 자신도 그 옆에 누우려 했다. 그런데 뭔가 잊었던 걸 떠올렸다는 듯 유준이 메스와 거즈를 들고 들어오자, 성운의 눈빛에 약간의 불안이 어렸다. 잭나이프나 식칼 따위 험악한 도구를 가지고 그랬거나 혜우에게 악의가 있어 한 일이면 성운의 분노를 보았겠으되, 메스와 거즈는 의료용 도구가 아닌가. 이러나저러나 혜우를 위한 선의고. 그래서 유준의 메스가 혜우의 살에 닿을 때 성운의 얼굴에 서린 감정은 주삿바늘을 보는 어린아이의 불안이 좀더 강해진 정도의 불안에 지나지 않았다.
“······.”
성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제 몸에 하시지 그랬나요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솟구쳐올라왔으나, 혜우와 유준 둘 다 기함을 할 말이기에 참았다. 그 대신, 정수리를 허락해주는 것으로 참기로 했다. 그리고 유준이 짓궂은 말을 툭 던졌을 때, 성운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면서도 얼굴이 빨개지는 걸 느꼈다. 이런 류의 지식이 전무한 성운인지라 그 엄한 짓이래봐야 잠든 혜우한테 몰래 뽀뽀하기 정도밖에 안 떠오른다만, 왠지 그 너머 자신이 알아서는 안 될 것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운은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정도의 인사밖에 할 수 없었다.
성운은 그냥 옆에 누워 혜우의 머리에 팔을 들이밀어 받쳐주고는, 반대쪽 팔로 혜우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라곤 이것밖에 없어서.
마음이 설레기는 했지만 나쁜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고, 그 대신 성운은 알퐁스 도데의 별의 마지막 대목을 떠올렸다. ‘밤하늘의 가장 밝은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려와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들었노라고’···
내가 너에게 별이 되어줄 수 있을까. 가장 밝은 별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조그만 개밥바라기라도 될 수 있다면 나는 정말 기쁠 텐데.
붓이 떨어졌다. 학생들이 잘 드나들지 않는 학교 뒷마당 구석에는 한 폭의 예술이 펼쳐져 있었다. 검은 후드를 뒤집어 쓰고, 마스크로 얼굴까지 꽁꽁 가린 신원불명의 인물은 레이브라는 싸인을 휘갈기기가 무섭게 학교 종이 울리자 물감이 묻은 손으로 얼굴을 덮어 가렸다.
"하……."
이제 보니 후드는 고운 한복이 되었고, 쓰개치마 속에 가려진 머리는 곱게 쪽졌다. 태오는 자신의 혀가 갈라졌음을 느꼈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는 없었지만 일단 오너의 환장할 뭐? 과부? 못 참지!로 인해 일단 있을 것이라 주장하는 남편이 생긴지 0.1초도 안 되어 죽었다는 사실과 갈피없는 증오를 나그네에게 풀어야 한다는 것도.
"종이 두 번 남았구나……."
젊은 과부는 붓을 집어들고 자리를 터덜터덜 떴다. 후다닥 도망치는 동안 세상 야속하게 누구의 소리를 들어도 내 남편 죽인 놈이 없는 것 같다…….
하필 학교에 몰래 그려놓고 튄 레이브의 작품이 생명과 죽음의 순환이라는 것을 이 과부(일단 남편이 있었는데 없어졌음 얼굴도 모름)는 알까…….
>>>어딘가에서 움파룸파 댄스를 즐겨 추며 특정 인물의 속내를 유추하는 것에 지대한 즐거움을 느끼고 탭댄스를 추는 뇌세포 한 마리가 나 이 주식 지금부터 풀매수 하였으니 당신은 서술한 약조를 지키시오!라 외치며 팝콘을 튀기고 있다는 것을. 태오는 뇌세포의 팝콘의 호흡 '주식 풀매수'도 모르고 장고의 매듭을 짓는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피아노 레슨의 날. 유준은 성운을 위한 새 악보와 함께 자그마한 케이스를 가져왔다. 마치 악세사리라도 들어있을 법한 손바닥 만한 케이스는 아니나다를까, 그 전에 말했던 수신장치가 달린 팔찌가 들어 있었다.
손가락 한마디 정도의 폭의 진한 푸른색 패브릭 위에 하얀 별자리 자수가 놓인 팔찌, 로 보이는 그것은 가운데에 하늘색 사파이어 장식을 빙자한 엄지손톱 만한 장치가 붙어있었다.
또한 유준은 톡으로 장치의 위치 정보와 바이오 리듬을 실시간 모니터링 가능한 어플의 설치 파일도 보내주었다. 폰에 설치하고, 블루투스 형식으로 팔찌의 장치와 연동시켜두면 언제 어디서든 확인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설명을 마친 유준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덧붙였다.
"걔한테도 네게 준 것과 색만 다르고 같은 디자인의 팔찌를 줬다. 내가 주는 기념 선물이라고 둘러댔어. 하지만 이 장치의 기능은 숨겼으니까, 가급적 사용에 신중하고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 그 애가 알게 된 것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들어갈지 모른다."
그러니 이제는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며, 어쩐지 무거운 목소리로 말한 유준이었으나 마른 세수를 한 번 한 뒤엔 평소처럼 피아노 레슨을 하자며 악보를 팔락였다.
유준이 준비한 악보는,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였다.
예고 없이 찾아온 성운의 덕이었을까. 본래라면 일주일은 앓았을 열병이 그 밤을 넘기자 기적처럼 호전되었다.
오전 중에는 여전히 정신이 오락가락했지만 이른 오후 즈음엔 잠든 시간보다 깨어 있는 시간이 길었고 해가 저무는 저녁엔 열 자체가 싹 사라져 하룻밤 정도 푹 쉬고 나면 어지간한 외출은 할 수 있을 거란 판정을 받았다.
그렇다고 또 쏘다니다가 재발하면, 다음엔 특수병동에 넣어버리겠단 경고까지 덤으로 받았지만.
무사히 병치레를 넘기고 며칠 뒤- 유준에게서 팔찌를 하나 받았다.
뭐, 내가 연인 생긴 거에 대한 늦은 기념이라나.
나를 두고 무슨 일이 흘러가는지 알 턱이 없던 나는, 그저 유준이 준 팔찌를 보통 팔찌인 줄 알고 착용했다.
진한 보라색 패브릭에 맑은 자수정 장식이 달린 그것은 유준의 센스라기엔 제법 수수한 축이었지만 원래 하던 원석 팔찌와도 잘 어울리니 나름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성운과 한 쌍이라는 점이 제일 좋았다.
연구소에서 받자마자 손목에 채우고 싱글벙글 하고 있는데 얄미운 목소리가 내 고막을 콕 찔러왔다.
"거 좋은 건 알겠는데 슬슬 할 일도 좀 하지?" "흥. 안 그래도 하러 갈 거였거든요. 지는 솔로라고 질투하나." "뭐 임마 너 거기 딱 서있어." "싫은데요-"
그 길로 유준의 사무실에서 도망쳐 연구소 내 한 실험실로 향했다. 최근 신 수술법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중인 부서로, 나는 참관 겸 실습이었다. 조직 반응을 보이는 인공 근육을 이리저리 헤집고 회복시키는 것을 반복하면서 그 과정에서 도출할 수 있는 최적의 수술법을 찾아 토론을 하며 나름 건설적인 커리큘럼을 진행했다.
안녕하냥? 나는 찡찡이다. 인첨공 3학구에서 태어난 치즈태비 고양이지. 목화고등학교 근처 골목에서 태어났지만 봄 쯤에 캔따개에게 주워져서 지금은 같이 살고 있다. 가끔 캔따개와 같이 살기 전 나를 돌봐주시던 선생님이 생각나는 것만 빼면 내 침대도 있고, 퍽 만족스러운 냥생이다냥.
소개는 이쯤하고 본론으로 넘어가겠다.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말을 거는 이유는 간단하다.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캔따개가... 이상해졌다!
"갈레트랑, 잼이랑, 버터 단지랑... 우유 한 병..." "우우우우우우우웨웅."
집안에서는 탄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찡찡이는 붉은 망토에 하얀 원피스를 입은 채 평소에는 쓰지도 않던 부엌에서 무언가를 자꾸만 태우고 있는 캔따개를 경계심 어린 눈동자로 주시한다.
"우우우우에웅." "아! 바구니가 없네. 으음~..."
새까만 숯덩어리들을 제물 삼아 탄생한 갈레트는 아이보리색 유산지에 포장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작은 단지에 담긴 버터와 라즈베리 잼이 하나씩. 어디서 났는지 모를 코르크 마개 유리병에는 하얀 우유가 담겨 찰랑인다. 찡찡이는 이 어색하기 짝이 없는 광경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 요리를 하지? 선생님이면 모를까 캔따개가 제대로 요리하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기에 이 행동 자체가 찡찡이에게는 거대하고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이변으로 다가왔다. 이 와중에 캔따개는 주방에서 곧장 종이를 꺼내들고 뭔가를 끄적이기까지 하는데...
"됐다. 바구니 완성!"
불안하게 하는 모양을 지켜보고 있자면 머잖아 리본 매인 피크닉 바구니 하나가 종이 안에서 뽑혀나온다.
"찡찡아, 언니 할머니 병문안 다녀올게! 집 잘 지키고 있어!"
바구니 안에 음식을 챙겨넣은 캔따개는 이상하게 해맑은 얼굴로 찡찡이에게 다가와서 털을 쓰다듬어주고 현관을 나섰다. 그 뒷모습을 보던 찡찡이는 문득 미묘한 불안감을 느낀다.
머리가 긴 공주님이 있었어요. 엄마한테 감금돼서 행복한 백수 라이프를 즐기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날 도둑이 왔어요. 도둑은 공주님을 꾀어내서 납치해 몸값을 받으려 했어요. 백수생활에 질렸던 공주님(판타지)은 도둑과 함께 밖으로 나가기로 했죠. 그렇게 나가서 가출청소년이 된 공주님은 결국 체포되어 보호소로 보내졌답니다. (이상)
그것은 성격적으로도, 능력적으로도 그랬다. 물론 우리는 초능력을 원해서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세상은 초능력이 없었을 때가 더 안정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아주 들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세상은.... 아니, 이런 생각을 해봤자려나. 이미 초능력이란 것은 발현이 되었고, 그것을 이용하려는 자와 그것을 막으려는 자들이 있을 뿐이다. 그 이상의 복잡한 생각은 무의미했다.
잡생각을 하며 싸워나가다 보니 어느새 튀어나온 벌레들이 모두 정리가 됐다. 공허한 눈으로 사체들을 내려다보던 동월은 칼을 대충 닦아낸 뒤 집어넣고 발걸음을 옮겼다.
" 후배님, 궁금한게 있는데. "
그러다가 문득 고개만 살짝 비틀어 새봄을 보았다.
" 괴이라는건 말이야. 굉장히 악독한 놈들이거든? 사람들을 납치해서 자신의 먹잇감으로 만들어. 단지 그것뿐이면 괴이는 그저 괴물에 지나지 않을 무언가였겠지만, 잡아가자마자 죽이는 것도 아니야. 괴이 속에서 희망도 없이 헤매게 만들다가, 절망을 모두 맛본 인간을 잡아먹지. "
목소리는 조금 우울해져있을지도 모르겠다.
" 나는 그렇게 실종된 사람들을 구출하는 역할을 맡고있어. 헤매면서 절망 속에 살아있을 실종자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했지. " " 하지만 수색을 할 때마다, 결국 죽어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우울해져. " " 후배님은 어떻게 생각해? 후배님도, 실종자는 둘째치고 인첨공 정부에 문의해서 모든 괴이를 붕괴시켜야 한다고 생각해? "
남아있는 실종자는 어떻게 됐는지 알아보지도 않고서? 라는 질문은 접어두었다. 그래서야 자신의 생각에 동조하라고 강요하는 꼴이지 않은가.
분실물이냐는 물음에, 동월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분실... 실종과 비슷한 말이긴 한데, 물건은 아니었다. 원래라면 상세한 상황 설명을 해야 했겠으나, 아무래도 실종된 사람에 대한 정보를 얻어왔다고 하면 아지가 어떻게 얻었냐고 추궁할테고, 그걸 설명하려면 필연적으로 괴이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한다. 그건... 그랬다간 또 괴이에 실종될 수도 있는 사람을 한 명 더 늘리는 꼴이 된다. 모든 사람이 잠재적 실종자라곤 하지만, 괴이에 대한 존재를 인지하는것과 그렇지 않는 것에 확률 차이가 꽤 큰 편이니...
아무튼 아지를 고른 것은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여기저기 알아보는가 싶더니 얼마 되지도 않아 주소를 알아내어 동월에게 전달해준 것이다.
전에 어떤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누구든지 다 알아!' 라며 떠벌리던 아지라는 친구에게 '그럼 너 교황 알아?' 했더니 비행기타고 바티칸까지 날아가서 교황과 만나 창문으로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와중에, 그걸 구경하던 친구들의 옆에서 어떤 남자가 '아지 옆에 저 노인네는 누구야?' 라고 했다는 썰... 그거 진짜 한아지였나!?
" ..... "
최근에 직접 본 사람은 없다는 말. 당연했다. 실종상태였기도 하고, 최근엔 사망으로 바뀌었다. 직접 볼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없을테다.
성운은 가만히 입을 다물고는 태오의 비늘을 한번 바라보았다. 성운의 뇌리 한켠에 그 뱀비늘과, 아까 그 총잡이가 그 ‘나으리’를 가리켜 구렁이새■ 어쩌고 했던 이야기가 왠지 이어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내가 원해서 했다’라는 말이 단순히 ‘나 저거 하고 싶어’ 하는 순전한 선호나 바람 같은 것뿐만이 아니라, ‘차라리 미리 해치우고 말지’ 혹은 ‘주변인에게 나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같은 다른 환경적 요소에 엮인 무언가가 있는 걸까─ 하지만 그걸 굳이 캐묻고 싶진 않다. 당신이 내게 그런 이야기를 나눠줄 만큼 날 믿을 이유도 딱히 없고. 그래서 성운은 그 생각을 접었다. 다만 역시, 이런 데에 따라오는 선입견 어린 시선을 태오가 토로할 때에는 성운의 미간에 살짝 금이 갔다.
“있죠, 그런 편견. 문신한 놈은 양아치다. 통계학적인 경험에 기반한 편견이라 부정하기도 좀 그래요. 좀 까부는 스킬아웃들이나 나 스킬아웃입네, 하고 까부는 얼치기 양아치들 잡아보면, 선배 것만큼 멋진 건 아니더라도 십중팔구 문신이 있는 게 사실이라.”
그 문신이라는 말로 쉽사리 일컫기에는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그로테스크한 태오의 팔의 장식에 대한 궁금증과 경위는, 다른 이들의 시선에 대한 성운의 견해를 머릿속에 문장들로 정리하는 생각들에 쓸려 바닷가의 발자국처럼 사라졌다. 내가 보기에 선배 팔의 그건 어중이떠중이 양아치들이 하는 촌스러운 그거랑은 느낌부터가 다른데 이건 말하면 뭔가 아첨떠는 것처럼 들릴 수 있으니 뇌절하지 말자.
“근데 선배가 그걸 후회하지 않건, 후회하건, 선배가 좋아서 했다면 결국 그것도 선배가 되고 싶었던 선배 모습이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성운의, 굳이 자르지 않는 새하얀 긴 꽁지머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언젠가 어렸을 때부터 자르지 않고 그대로 유지해와서, 머리가 하얗게 되어도 키가 이렇게 커버리고 나서도 고집스레 유지하고 있는 스타일이었다. 물론 태오의 화려한 입묵에 비하면 일탈이나 고집이라는 말을 댈 것도 없는 그냥 한낱 머리모양에 불과했지만, 적어도 자신의 고집으로 유지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같은 선상에 서있는 것이었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자기가 원하는 모습을 할 권리가 있어요. 그 권리에 따르는 책임은 당연히 져야겠지만, 그딴 제삼자의 시선 같은 건 책임도 뭣도 아니라 얼간이들의 트집일 뿐이에요. 싫어할 거면 싫어하라고 하세요.”
그게 쉽지 않기는 한데, 원숭이들이 뱀 보고 끽끽대는 거 일일이 신경쓰다 보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도 고달프니까요.
사실 동월이는 타인의 죽음에 대해 조금은 무던한 편이에요. 저지먼트같이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라면 원랜 '안타까운 죽음이야...' 라고 생각하고 말거에요.
하지만 괴이에선 조금 달라져요. 누군가의 죽음을 보고, 그를 수습할 때 마다 '만약 내가 죽고 저지먼트 부원이 내 파편을 수습해서 DNA 검사를 했을 때, 그 때 'DNA의 주인은 동월이다' 라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에 대한 질문을 끝없이 던지게 된다고 해요. 생각지도 못한 형태의 시신(파편)을 수습해가서 생각지도 못한 사람의 죽음을 알게 된건 음... 평소에 받아들이는 죽음과는 확연히 다를테니까요. 그러니 그쪽에 대해서는 조금 민감해질 수 밖에요.
나 같은 사람이라. 어떤 사람일까? 레벨 0이고, 실전 경험도 적고, 성격은 무르지만 내 생존에 직결된 문제에 대해서는 나답지 않은 선택도 생각도 얼마든지 할 수 있고, 그리고... 앗, 그나저나 벌레 이제 안 온다! 아이고, 빡셌네. 칼질하다가 최초의 국산 자동차 이름을 끝없이 외치는 노래를 부를 뻔했지 뭐야~. 새봄은 나이프와 옷에 묻은 벌레 체액을 손수건으로 슥슥 닦아내며, 걸음을 재촉하다, 앞서가던 동월이 퍽 침울해진 듯한 목소리로 운을 떼자 고개를 들어 자신을 돌아보는 그와 눈을 마주쳤다. 상담은 내 전문분야는 아니지만, 그래도 목숨도 구해주셨으니 좀 들어는 드려볼까. 나보다 선배시라곤 하지만, 미성년자잖아. 이런 상황에 멘탈이 안 깨지시는 게 이상하지. 그건 그렇고, 실종자 구출보단 괴이를 말 그대로 청소하는 걸 우선해야 하는가, 라... 어려운 문제네.
"전 실종자였던 입장이고, 아까 돌아가신 분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당연히 구해주러 와주셔서 감사하고 기쁘고 안심됐어요. 또 지금은 저지먼트로서 실종자를 찾고 있으니, 가능하다면 저도 이번 수색에서 살아있는 생존자를 찾아 구조하고 싶구요."
여기까지는 실종자이자, 생존자 수색중인 저지먼트 신새봄의 입장.
"그렇지만, 선배 말씀대로라면, 선배가 절 구해주시는 동안에도 실종자나 사망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잖아요. 저보다 레벨도 높고 경험이 많으신 선배한테도 여긴 위험한 곳이니까, 선배도 당하실 일이 없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고레벨 인력을 대거 투입해서 실종자, 사망자가 생기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구조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제가 봤을 때 괴이 대응을 위한 인력은 선배 한 분 뿐이시거나, 더 계시더라도 저지먼트 전원이 괴이에 대응할 수 없는 듯 하니, 사망자를 확 줄일 수 있을 만큼의 인력 충원을 기대하긴 솔직히 어려워보이고요. 실종자를 포기하고 괴이를 붕괴시키자는 말이 나온다면 그런 여건들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선배한테 구조된 입장이라 괴이를 붕괴시키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해도요."
물론 나도 저런 입장 때문에 구조되지도 못하고 죽어버린다면 억울하고 분할 테고, 여기서 살아서 나가서 진짜로 실종자 수색 자체를 못하게 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편치 않겠지만, 그렇다고 대안을 내놓을 수 있냐면, 그건 아니니까.
"요는, 지금 실종자를 찾고 있는 저희나, 괴이와 관련된 결정을 내려야 할 분들이나, 각자의 입장이 있고, 그에 따른 고민과 주장을 할 수밖에 없고, 최종적으로는 어떤 쪽을 택하든 후회나 유감이 남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지금 당장은 저지먼트로서 실종자를 찾아 구출해야 하는 입장이니 그 일에 최선을 다하고,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서는 나가서 더 생각해 볼래요. 지금 생각해도 결정권 있는 어른들한테 제 생각이 핑! 하고 가 닿아서 당장 결론이 나고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런데 이런 것보다도 제일 걱정되는 건 동월 선밴데. 이 얘기 꺼내시기 전에 하신 이야길 들어보니, 괴이 실종자 구출 활동에 대해서 일종의 사명감도 보람도 느끼시지만, 사람이 끔찍하게 살해당한 걸 보시면서 느끼는 우울감과 스트레스도 못지 않게 큰 것 같아. 이제 막 실전에 투입된 후배인 나한테 이 얘길 하실 정도면 그런 마음들이 일상생활에서 잘 정리되는 것 같진 않으시고... 어쩌지, 얘기를 해볼까? 새봄은 제 머리카락에서 벌레 채액을 쭉 짜내고는 머리끈을 푸른 뒤, 머리칼을 하나로 모아 대강 묶으며 생각을 정리하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근데, 선배. 선배 이야기 듣다 보니까, 선배가 이 일 하시느라고 고생하시면서 스스로를 못 돌보시고 계시는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일단은 일 끝나고 나간 다음에, 푹 쉬고 맛있는 것도 잔뜩 먹은 다음에 찬찬히 생각해보면 좀 더 좋은 대안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선배는 괴이에서의 경험이 풍부하시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끙, 하고 기지개를 컨 뒤, 새봄은 동월의 옆으로 다가서서는 짐짓 히쭉 웃어보였다.
"그러니까, 지금은 힘내서 얼른 할거 다 하고 나가요! 나가면 기숙사 탕비실에서 선배가 좋아하시는 음식, 수제로 만들어 드릴게요. 구해주시고 실전 경험 시켜주신 보답으로요!"
훈련실을 가득 매운 지독한 탄내, 모든 문을 열어도 빠질락말락한 자욱한 연기. 그리고 끝없는 걸레질.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 때는 약 한시간 전. 이번엔 미리 반죽을 준비해와서 굽기만 하면 쿠키가 될 거라고 기대하고 반죽을 가져와서 머릿속 쿠킹 스튜디오속 오븐에 넣고 오븐 문 너머로 열심히 바라봤는데 어제 본 영화의 폭발신이 생각나는 바람에 그만... 정신을 집중하는 게 통 어려운 게 패착인 듯 하니 오늘은 다 치우고 돌아가는대로 명상이라도 해야지. 에휴, 내 팔자야.
첫인상은 사람의 인식을 알게 모르게 바꾸니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점에서 보면 태오의 첫인상은 최악에 가깝다. 노이즈로 가린 얼굴, 몸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옷차림과 둘둘 감싼 붕대, 거기다 특유의 달관한 태도까지! 그 모든 걸 배제해도 최악인 편이다. 파충류를 닮은 동공과 팔뚝의 문신, 그리고 보기 좋은 편이겠지만 관리하지 못해 야생의 미에 가까운 모습까지... 어떻게 보아도 긍정적인 요소는 없는 편이다. 태오도 자신이 저 윗물에서는 영 좋은 인상이 아니라는 건 알았다. 이런 밑바닥에서나 그나마 호감인 상일 뿐이지. 아니, 그마저도 이젠 바닥일지도 모른다.
"……그렇죠. 스킬아웃은."
대다수 그렇다. 인간 외적의, 있어서는 안 될 것을 신체에 새겨 위협의 용도로 쓰거나 멋내는 용으로만 쓴다. 태오 또한 이곳에서, 그리고 저지먼트 생활을 하면서도 많이 봤다. 입묵사가 배불릴 수 있는 흔하지만 화려한 도안부터 시작해 말도 안 되는 문구를 적은 사람도 있었다. 그런 것을 새긴 사람과 태오의 입묵은 확실히 다르다. 그렇지만 이 세상은 세세하게 따지지 않는다. 뭔가 달라도 단 하나로 통용하여 자기 좋을대로 부른다. 선입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동류밖에 없다. 태오는 스트레인지에서 독립한 이후, 그 뼈저린 사실을 깨닫고 다시금 인간은 어딜 가나 똑같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는다고 생각했다.
"……너."
태오는 잠시 당신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되고 싶었던 것은 맞다. 그렇지만 당신들에게 들을 말이 아니다. 그래, 당신들에게. 싫어할 거면 싫어하라 하든지, 그런 말은 이미 적용한지 오래다. 인간에게 기대를 품지 않는다. 실망도 품지 않는다. 타인 또한 선택의 결과를 짊어질 뿐이라 생각했고,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그 말을 걸고 넘어갈 연유 없다마는 그 이전에 했던 말이 역린을 건드린 듯이 속을 긁어내린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그마저도 너무 쉬이 수긍하여 화를 내거나 불편하지도 않다. 태오는 이런 사람이었다. 누군가 역린을 찌르고 뜯어내도 그마저도 결국 덧없다며 그러려니 잿더미에 묻어버리는 사람.
"뜬금없다마는…… 여기 말고, 4학구에 걸치는 경계에는…… 버러지가 많이 와요."
하지만 이따금, 잿더미가 온전히 덮이지 못할 때도 있다. 혹은 불쏘시개로 뒤적거리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 튀어나올 수도 있고.
"버러지들은 연고가 없으니, 혹은 범죄를 저질러 숨었으니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실험체로밖에 보지 않지요……. 병들고, 굶고, 지친 자에게 선의를 베푸는 척 수면제가 든 빵을 먹이고 연구소에서 눈 뜨게끔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연구소도 저건 건드리기 싫다는 꺼림칙한 녀석들이랑 어울리거나…… 잡혀가도 연구소를 엎으러 올 것 같은 과격한 녀석들과 어울리는 수밖에요……. 블랙 크로우처럼요."
태오는 담담하게 거친 언사를 뱉었다. 2학구를 떠올리기만 해도 증오스러운 건 리버티도 리버티지만 이쪽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쪽은 다르다. 태오는 소속된 자의 맛을 안다.
"…오라비란 것이 연락 하지 않고 잠적한 이유도 이쯤 되면 네 눈치가 알아서 빛을 발리라 믿지요……. 더 오해 없었으면 하여 내 주둥이 놀렸으니 그리 알고 있어요."
당신이 언젠가 말할 수도 있다. 혜우에게 그대로 가서 오해를 풀고자 대화를 요청할 수도 있거니와, 그 모든 것이 당신의 자유겠다마는, 불쏘시개로 숨어있던 뱀 역린 뒤집는 것도 당신의 선택이리라.
결정권이 있는 어른들이라. 그런 결정권이 있는 어른들이라고 한다면 역시 인첨공의 높으신 분들이겠지. 그런 인간들이 과연 제대로 된 결정을 내려줄까... 가 문제긴 하다. 당장 퍼스트 클래스만 보더라도 위크니스라는 끔찍한 짓을 저질러가면서 통제 하에 두려고 하고 있는데, 소수의 사람들이 실종되거나 죽었다고 해서 뭔가 획기적인 방법을 생각해낼까는... 글쎄.
" 뭐... 그래도 얘기해줘서 고맙다. 뭔 헛소리냐고 하지나 않을까 걱정이었는데. "
동월은 킥킥거리며 말했다. 실제로 괴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긴 힘들었다. 저지먼트 부원들이야 신뢰하는 사람들이니 믿고 이야기하고, 그들도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곤 하지만... 실제로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다가는 무슨 미친 소리냐며 타박을 받을 만한 이야기다.
" 일이 끝나고 나간 다음에...? "
동월에게 괴이와 관련해서 '일이 끝나다' 라는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마 괴이가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 이겠지만... 그래도 동월은 새봄을 향해 웃어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좋아. 그럼, 카레를 울트라 점보 사이즈로 3접시는 받아야겠는걸. "
목숨값... 이라고 하면 좀 그렇지만 아무튼 그 정도는 받아야 수지타산에 맞지 않을까? 라는건 그냥 핑계고 자신이 카레를 먹고 싶을 뿐이었다.
" 그것도 우리가 무사히 탈출 했을때의 이야기지만 말이야. "
만화 같은데 보면 이런 대사 뒤에는 영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던데. 그리고 동월의 그 예상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
공장 내부에서 알 수 없는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음... 후배님. 간단한 문제인데 말이야. " " 내 칼로 일격에 죽일 수 있는 인간의 허리쯤 키 되는 괴물이 있어. " " 그런 녀석들이 10마리가 모이면 아무리 그래도 좀 힘들겠지? "
생각에 빠진 표정으로, 그들의 뒤쪽 어둠 저편에서 들려오는 무수한 발소리들이 땅을 울리기 시작한다.
인첨공 제 3학구. 그곳에 있는 목화고등학교엔 참으로 무시무시한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학생들이 모두 소설이나 동화 캐릭터가 되어버렸고, 그것에 의문을 품는 일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제 정신으로 돌아오고 난 뒤에 어떤 흑역사가 생길까요. 하지만 그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사태였기에 그야말로 비극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저기 저, 교복을 입고 있는 말. 네. 말입니다. 두 발로 걸어다니고 있는 말입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동물 '말'입니다. 아무튼 말이 두 발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입고 있는 교복은 무려 목화고등학교 교복입니다. 사람들은 그야말로 당황하고 있었으나, 이 말은 정말로 태연하게 앞으로 걸어가며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이내 걸음을 멈췄습니다. 바로 근처에서 불량배 그룹으로 보이는 이들이 허약해보이는 한 남학생의 돈을 뜯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말의 코에서 콧방귀가 솟아올랐습니다. 말이 화를 낼 때 보이는 특유의 모습처럼, 이발이 살짝 비쳤습니다. 이어 그 말은 정말로 빠르게 다그닥다그닥 하며 네 발로 뛰기 시작했고, 머지 않아 그들 앞에 멈춰섰습니다.
"멈춰!"
"뭐야? 뭔데? 이 말은 뭔데?"
"이 말이 지금 말한거야?"
"어허! 야후야! 어찌하여 같은 야후끼리 서로 돕지 않고 약한 이를 괴롭히고 있는거니! 아무튼 이래서 야후들은 야만적이기 그지 없어. 그래도 옷은 입고 있구나. 후이먼을 본받는 것으로 보아 기본적인 이성이 있는가 했더니 역시 야후는 야후로구나!"
"....?"
"아. 뭐래."
"경마장이나 가서 달릴 것이지. 이 말은 뭔데 말을 하고 있는거야? 웃기네."
그야말로 키득키득 웃는 현장이 이뤄졌습니다. 그래봐야 말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말이 말을 하는 것이 웃기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일단 집단중 리더로 보이는 이가 손에 불꽃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말의 머리를 살며시 스쳐지나가게끔 날렸습니다.
"야. 너 변신 능력자야? 뭐야. 컨셉질 그만하고 꺼져. 내가 누군지 알아?"
"야후는 야후지!"
"아. 야후가 뭔데!!"
"야후는 야후야!"
"아! 그게 뭐냐고! 짜증나게 하네. 야. 우리 오늘 말고기나 먹자."
"이런 버릇없는 야후 같으니. 너의 주인 후이먼의 얼굴이 정말로 궁금하구나. 바로 주먹부터 휘두르려고 하는 야후에겐 제대로 된 교육을 해야겠구나."
강한 돌풍이 바로 그곳에 불었습니다. 일순간에 모든 것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돈을 뺏기고 있던 이를 제외한 다른 불량학생들은 모두 벽에 처박혔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털썩 쓰러져버렸지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말은 앞발로 팔장을 끼고 가만히 서서 쓰러진 학생들을 바라봤습니다.
"야후야. 야후가 후이먼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니. 생각을 해 봐. 아무튼 야만적인 것들이라서 생각 자체를 못하는 모양이구나. 그래도 옷은 입었으니까 조금만 더 교육을 하면 문명 야후가 될 수 있어. 좋아. 너희는 내가 가르쳐줄게. 아. 거기 돈 뜯기던 야후야. 넌 볼일 없으니까 어서 가. 알았지? 너도 야만적인 일 하면 안돼."
"으아아아악!! 사람 살려!!"
그 날, 3학구에선 말이 사람을 날려버리는 것도 모자라서 노예처럼 굴린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어쩌면 당신들의 귀에도 들어가지 않았을까요?
"저야 헛소리가 아니라는 걸 직접 겪어봐서 알잖아요, 게다가 초능력도 있는 마당에 귀신이나 기현상이라고 없으란 법 없죠."
그냥 길 가는 사람이나, 저지먼트 부원이라도 이런 일을 겪어보지 않은 부원에게 얘기하는 거라면 하실 만한 걱정이긴 한데, 아마 내가 귀신 그런 게 어딨냐는 입장이었어도 이런 일을 겪고 나면 믿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건 그렇고, 먹을 거 이야기는 꺼내길 잘한 것 같다. 기분이 나아보이시네!
"카레 좋죠! 그럼 무사히 나가면 좋아하시는 종류 알려주세요, 카레도 여러가지 있잖아요, 치킨 마크니라던가, 티카 마살라라던가, 비프 코르마같은거...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중에 골라주셔도 되고요. 아, 맞다. 제가 만드는 카레는 매운맛이 1도 없으니까 그건 감안...?"
동웰의 기분이 좀 나아보이는데다, 카레 이야기를 하니 덩달아 신이 났는지 재잘거리던 새봄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입을 다물고 귀를 기울였다. 이게 무슨 소리람? 그 와중의 동월이 꺼내놓는 이야기에, 새봄은 진지하게 경청하는 듯 하더니, 천마리라는 대목에서 미간을 찡그렸다.
"어... 그러니까 저희가 하나씩 일격에 죽일 수는 있지만 동시에 저쪽도 저희를 진심전력으로 죽이려고 하는 어린아이 아니면, 늑대... 뭐 그 정도 크기의 괴물? 그런게 천명쯤 오고 있다는 거잖아요? 하나 씩 하나 씩 죽인다고 해도 저희가 하나씩 죽이는 동안 나머지 998마리가 저희를 공격하겠네요?"
저지먼트 고레벨 친구들 선배들이 더 있었다면 까짓거 해보자, 하겠는데 이건 좀 위험하겠는데?
[은우야. 세은아. 이 고모부가 답답하다 못해 이렇게 편지를 보낸다. 대체 뭐가 그렇게 섭섭하고 화가 나길래 그렇게 편지를 보내도 답장 한 번 보내지 않고 응하는 일 없이 무시하는거니? 아니. 세은이가 아니라 은우, 네가 지금 막고 있는거니? 너희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실때 내가 가장 먼저 맡았고 너희들에게 밥을 굶겼니? 잠을 못 자게 했니? 한번 만나자고 하는 것이 무시받을 정도로 그렇게 싫은거니? 듣자하니 은우야. 인첨공이란 곳에서 꽤나 높은 위치?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곳까지 올라갔다고 들었다. 이제 고모나 고모부는 천해서 보기 싫다는거니? 이쯤되니까 내가 다 섭섭하구나. 어찌되었건 너희들의 양육자는 아직 고모와 고모부라는 것을 잊지 않아줬으면 좋겠구나. 외삼촌이라는 작자가 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그 사람을 믿지 말거라. 솔직히 나는 인첨공이라는 것도 꺼림칙하단다. 대체 어떤 곳이길래 평소에는 들어갈 수도 없고, 나가는 것조차도 허락하지 않는다는거니. 그런 곳으로 데리고 간 그 작자가 내가 볼땐 정말로 수상하기 그지 없단다. 가을에 한번 찾아가도록 하마. 그땐 꼭 서로 이야기를 하고 대체 뭐가 불만인지, 뭐가 그리 섭섭한지, 아니면 천해서 꼴도 보기 싫다면 직접 얼굴이라도 보고 말하렴. 그때 만나는 것으로 알고 준비하도록 하마.]
혜우주의 요청도 있었으니까...다시 한번 올려보는 은우가 구겼던 편지 내용이에요! 새봄주 입장에서는 이걸 왜 구겼는지 이해가 안 갈 수도 있겠지만....대충 설명을 하자면 시트 스레에서도 언급이 되어있긴 한데 은우와 세은이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친척집에 갔는데 거기서 막 입이 늘었다는 식으로 일부러 들을 정도로 뒷말을 한 적도 있고, 조금... 눈칫밥을 많이 먹였어요. 그러다가 외삼촌이 인첨공으로 데려간 케이스랍니다.
1. 「다른 사람을 포기하고 자신만 구할 수 있다면?」 🤔 같이 죽을지언정 이런 선택지를 자의로 고르진 않겠지... 애초에 타인에 대한 애정이 큰 사람이라서 불가능함 다른 사람을 포기하는 게 객관적으로 다수에게 더 나은 선택지라도 어려울 듯 무엇보다 누군가를 포기했다는 사실 자체를 이후에 감당할 자신도 없을 거 같다 이런 일이 생긴다면 평생 후회하며 살아가겠지
2. 「대화를 나누던 도중에 무례한 질문을 듣는다면?」 눈치없는 척 행동한다. 잘못 알아들은 것처럼 생뚱맞은 답을 한다던가... 자기한테만 향하는 거면 굳이 제지하지 않음. 근데 센스있게 넘겨줘도 두번 세번 같은 짓 하면 좋은 꼴은 못 보겠지? 반대로 자기 있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한테 이러면 "그 질문은 이런 자리에 적절하지 않은 것 같네요. 사과해주시겠어요?" 하면서 대놓고 지적함
3. 「순수한 호의가 명백한 적의와 악의로 돌아온다면?」 이런 적이 꽤 많았어서🤔 또 이렇게 됐구나,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내 호의가 상대에게 반드시 호의로서 다가갈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이러고 자기세뇌함 사람이다보니 당연히 서운해하지만 스스로 억누른다 나는 이런 감정 느끼지 않는다고 원래 사람 생각하는 건 다 다른 거라고
책임, 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 건 저지먼트에 들어온 후였다. 그전까지는 어영부영 그런 걸까- 하고 테두리마저 흐릿한, 추상적인 무언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책임 역시 고독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와 가까워질수록, 관계가 형성될수록, 차츰 형태를 갖춰 지금은 어엿하게 내 어깨를 짓눌렀다. 그것이 과거부터 이어진 관계라면 더욱 무겁게, 내리눌렀다.
아무튼- 그 책임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으려면 주어진 저지먼트의 활동이라도 성실히 임해야 했다.
저지먼트의 시프트는, 부원들마다 돌아가며 순찰과 서무, 그 외 기타 잡일들을 나누어 담당하게끔 되어 있었다. 그 중 오늘은 내가 약간의 보고서 정리와 간단한 청소 담당이었다.
일찍부터 나와서 그런지, 보고서 정리가 비교적 빨리 끝나서 남은 청소도 후딱 끝내고 가기 위해 움직였다. 바닥을 간단히 쓸고, 부실 곳곳의 쓰레기를 수거한 뒤에 큰 전용 봉투에 담아 쓰레기장으로 가져다 놓으면 끝이었다.
쓰레기를 담는 과정에서 그걸 발견하지만 않았으면 말이지.
그건 한 통의 편지였다. 내용은 뭐- 이런 곳에 살면 꽤나 흔하게 받지 않을까 싶은 그런 내용이었다. 솔직히 인첨공에 사연 없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니 그런가보다, 하고 흘리기에는 그 편지의 수신인들이 신경 쓰였다. 그들도 사연이 있겠거니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생각이 현실이 되는 것은 또 별개의 일이니.
잠시 고민하다 구겨진 편지를 접어 겉옷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종종걸음으로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뭘 하든 일단 할 일은 마친 후에 해야 나을 테니.
그렇게 다녀오는 길에 자판기에 들러 음료수 캔 두개를 뽑았다. 하나는 복숭아맛 이온 음료, 하나는 보통 콜라. 여즉 후덥지근한 날씨에 음료가 식을라 다시금 종종걸음으로 부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평상시엔 얼씬도 안 하던 부장의, 은우의 자리로 다가가 음료 두 개를 턱 하니 올려놓고 말했다.
"날도 더운데 쉬엄쉬엄 하시죠. 하나 고르세요. 제가 드리는 거니."
대뜸 그렇게 말하곤 셀프 팔짱을 꼈다. 딱 서서 내려다보는 눈초리가 잔말 말고 얼른 고르라는 인성 밥 말아먹은 표정 그 자체였겠지.
하. 덥네. 은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가만히 에어컨을 바라봤다. 이제 늦여름인데 왜 아직도 더위는 이렇게 자신을 괴롭히는지. 역시 조만간에 섬에 몰래 한번 더 갔다오는 것이 좋겠다고 은우는 생각했다. 그곳에 틀어박혀서 혼자만의 바캉스를 즐기다가 돌아오는 것이 좋겠다고 진지하게 그는 생각했다. 부원? 한번 더 데려갔다간 섬이 파괴될 것 같아 차마 같이 가자는 말은 그 누구에게도 꺼낼 수 없었다. 너무하다고 해도 어쩌겠는가. 실제로 난장판이 일어났었는데.
어쨌든 컴퓨터 앞에 앉아 자신이 처리해야할 서류를 하나하나 검토하는 와중, 갑자기 책상에 뭔가 턱하고 올라오자 자연히 그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복숭아맛 이온 음료와 콜라. 그리고 자신을 내려다보면서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제 동생의 친구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어..."
뭐지? 얘 갑자기 왜 이러지? 음료수 사주는 것은 고마운 일인데 왜 팔짱을 끼고 저렇게 바라보는거지? 영문 모를 사태에 은우는 바로 말을 잇지 못하고 콜라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바로 먹진 않고 일단 자신의 자리에 두었다.
"어. 혜우야. 무슨 일이니? 쉬엄쉬엄은 안돼. 요즘 일이 많이 들어와서 말이야. 2학기때의 계획서도 내야 하거든. 아무튼...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니?"
지금껏 한번도 없었던 일이었던만큼 은우로서는 무슨 일인가 싶은 감정만이 서서히 올라왔다. 아무 일도 없다면 없는거지만. 팔짱까지 끼고 저렇게 바라보니 혹시 자신이 최근 무슨 짓을 저질렀는가라는 결론에 도다른 것이었다.
1. 「자신이 정말로 바라던 것을 정말로 손에 넣는다면?」 “···「손에 넣는 것」부터가 「시작」이야” “평화롭고 행복한 삶” “이루었으면, 이제 지켜나가야겠지”
2. 「별로 선호하지 않는 취미 활동을 집요하게 권유받는다면?」 “정중한 거절 일변도” “다만 상대의 권유에 점점 예절이 결여된다면 내 거절도 그에 맞춰서 예절이 사라지겠지”
3. 「우연한 기회로 자신의 추악한 면을 직시하게 된다면?」 “직시했어” “다른 이들과 잠깐 멀어지기를 택했고” “고민하고, 노력했어”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었지” “I tried so hard and got so far, But in the end it doesn't even matter”
"객관식 문제가 쉬워, 주관식 문제가 쉬워?" 서성운: “쉬운 것으로 따지자면 당연히 객관식 문제지” “어느 정도 풀면 대강 답을 고를 수 있어서” “하지만 좋아하는 쪽을 말하라면 주관식이야”
"원하는 사람 한 명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어떤 자를 고를래?" 서성운: “전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됐고, 이제 한 명, 그 딱 한 사람만 조종할 수 있다면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어떤 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
"네가 원하는 이상적인 애인은?" 서성운: “조금 엉뚱맞아도 괜찮아” “좀 새치름하거나 짓궂어도 괜찮아” “고집이 좀 세도 괜찮아” “자기애가 바닥을 쳐도 괜찮아, 그만큼 내가 사랑해줄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날 좋아한다는 걸 충분히 표현해주는 사람” “내가 여기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사람” “날 원해주는 사람” “내가 유일이 되어줄 수 있고, 내 유일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 “······응” “오그라든다고? 견뎌. 괜히 1호가 아니란 말이지”
>>807 하지만 삼호커플도 만만찮죠.. 리라도 더이상 자기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짓눌리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바라고 있어요. 첫 발짝은 순조롭게 떼어놓은 것 같은데, 새 연구원씨가 좀 거슬리네요. 밤길조심혀라잉
>>809 스토리는 유지할 거에요. 그러나 계수 대바겐세일을 열어버리겠다(?) 6핑퐁이하 일상1번에 계수2%, 6핑퐁이상 일상1번에 계수3%, 10핑퐁이상 일상1번에 계수5%...! 아주 그냥 드래곤볼 뺨치는 파워인플레를...!! (끌려나감) (전적으로 농담이며, 진짜 행복은 합당한 역경을 넘어 쟁취했을 때 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은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턱이 없는 나는, 아니, 알아도 어쩌라고 했겠지만 아무튼 은우가 바쁘든 말든 내 용건을 들이밀 작정이었다. 음료는 핑계일 뿐이었지, 말을 걸기 위한.
그도 그럴게, 내가 말을 걸고 싶어 하겠냐고, 최은우한테.
"쉬엄쉬엄은 안 되도, 제 말 들어줄 짬은 있나 보네요. 친절하시긴."
쯧!
까칠하게 가시 박힌 말에 대놓고 혀차기까지, 대체 얘가 왜 이러나 싶은 언행을 이어가며 남은 복숭아 이온음료를 가져왔다. 근처에 빈 의자 아무거나 끌어와 은우의 책상 옆에 놓고 털석 앉아 캔음료의 따개를 틱, 틱, 건드리며 말했다.
"1학년에게 잘못은 몰라도 저 개인적으로 원한? 그런 건 좀 있죠. 알고 계실지 모르지만, 제가 세은이랑 초등학교 시절 사이가 좀 좋았어야죠. 이런 시궁창 같은 곳에서 사귄 첫 친구인데, 오죽하겠어요, 그쵸?"
따개를 건드리던 검지가 툭 튕기며 손끝이 찌릿해졌다. 눈을 꾹 감으며 얼얼해진 손을 가볍게 흔드는데, 눈썰미가 좋다면 손톱 없이 밋밋한 손끝이 보였을 터였다. 나는 따지 못 하는 캔을 들기만 한 채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뭐 중간이야 어쨌든 여기 와서 다시 만난 거야 아무래도 상관 없는데, 이게 멀어진 시간이 길어서 그런가, 도통 세은이를 이해할 수가 없어서요. 그래서 거리를 둘랬더니 세은이 본인이 이젠 안 그럴 거라며 고집을 바락바락 부리질 않나..."
사람 속도 모르고 말이지.
"어떡하나 답답하던 차였는데 때마침 뭘 좀 발견해서요. 부장님 앞으로 온 편지라던가. 그런 건 확실히 태워서 없앴어야죠, 허술하시긴. 아무튼 그런 이유로 그 편지와 관련된 얘기를 듣고 싶네요. 솔직히 부장님 만이면 패스하겠는데 세은이가 얽혔으니까, 제 이해도 도울 겸 두 사람 얘기 좀 해주시죠. 세은이는 모르고 부장님만 아는 것들요."
어쩔거냐는 표정으로 은우를 응시했다. 세은이를 걸고 넘어진 건 치사하다고 생각하지만, 완전한 거짓도 아니었으니 나는 당당했다.
"그건 둘이서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 아니야? ...걔 내 말 잘 듣지도 않는 거 알잖아."
솔직한 심정으로 은우는 그걸 왜 자신에게 따지는지 모르겠다는 마음이었다. 그야 둘이 친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세은과 친하게 지내던 이들은 어릴 때 본 적이 있었고 그 중에는 혜우도 있었으니까. 물론 딱히 친하게 지내진 않았다. 세은이가 소개해주는 것은 극히 거부했었으니까. 즉, 은우에게 있어서 그녀는 어디까지나 존재와 이름만 아는 이였을 뿐이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세은과 잘 지내줬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이뤄질지는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자신이 끼일 수는 없었다.
"...아. 그거 읽은거야? 그래서?"
편지를 구겨서 넣은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은우는 딱히 놀라지 않고 태연하게 그녀를 바라봤다. 물론 그것을 굳이 꺼내서 읽었다는 것은 조금 놀랍긴 했지만 쓰레기통에 있었으니 누가 읽었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태워서 없애야했다는 말에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쓰레기를 버린 것 뿐인데, 그렇게까지 해야하나 하는 심정이 더욱 강했다. 사실 그보다 방금 전 이야기와 편지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그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그야 세은이도 얽혀있지. 내 고모와 고모부라는 것은 세은이의 고모와 고모부니까.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도 말이지. 뭘 알고 싶은건데?"
세은이는 모르고 자신만 아는 것들을 이야기해달라는 그 말에 은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완전 적대적인 분위기를 강하게 풍기면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지만 애초에 그녀는 뭘 알고 싶은 것일까. 그것부터 감이 안 잡히는 탓이었다. 이어 그는 잠시 생각을 하다 혜우에게 물었다. 그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차분했다.
"그러니까... 나와 세은이와 고모와 고모부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거야? 아니면 따로 알고 싶은 것이 있는거야? 전자라면... 왜 그걸 알고 싶어하는지도 알고 싶은데? ...나는 입부 면담을 할 때 가족에 대한 것은 딱히 묻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와 세은이의 가족에 대해서 알고 싶은 이유가 있어?"
비꼬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왜 그걸 알고 싶냐는 궁금증만을 입에 담으며 은우는 콜라를 땄다. 그리고 한 모금 마신 후에 쭈욱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혜우의 답을 조용히 기다렸다.
>>0 "한동안 말이 많았었지여. 공룡의 후손은 조류고, 그중 가장 가까운 존재가 닭이라구여." [어쩌다가 양서류가 파충류가 되고, 거기서 또 조류로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지금으로선 가장 유력한 가설이거든. ...설이 아닐지도 모르고,] "그 사이에 시조새도 있었고 말임다. 사실 공룡도 정말 파충류라 분류해도 좋은건진 모르겠지만... 원래 공식석상에서두 말빨 좋은 사람 말이 맞는 말이잖아여." [그렇게 말해버리면 학회에서 증거들을 내밀면서 열변을 토하는 사람들 노력이 대똥꼬쇼 같아보이거든...] "뭐 어때여~ 용이 실존했다면서 나온 화석이 상당히 작위적이라던가, 분명 화석인줄 알았던 고대 파충류의 흔적이 사실은 동물성 물질로 정교하게 그려낸 거라던가 말임다." [뭐, 최근엔 그런 일도 있었다지...]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며 화면에서 분주히 오가고 있는 데이터들을 눈으로 보고, 머리로도 읽는 중인 그녀의 옆에선 마치 늘 있는 풍경이라는양 바나나 푸딩을 한입씩 먹고 있었다.
[근데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거든?] "아, 이번 과제 말임까? ...사실 그게 말임다~" [...또 연구소 서버 털어서 꺼낸거면 들킨 순간 선생님이 환멸의 서드불릿을 날리실지도 모르거든.] "...데헷~★" [...난 정말 요즘 애들 이해 못하겠거든.] "유라두 요즘 애들이잖아여." [...Aㅏ?]
"이게 뭐야? 이건 그냥 설사약이잖아?" "샹그릴라라면서 대체 이딴 걸 누구한테 산거야?" "스킬 아웃 얼그레이가 암시장의 마지막 물량을 모두 선점했다고 하는 정보를 듣고..." "샘플 실험도 안한거야!!" "실험 결과는 모두 진짜 샹그릴라였습니다!" "정말이야? 실험 도구가 잘못되거나 방법이 잘못된 게 아니라?" "그럴리 없습니다! 구매한 지 얼마 안되는 신제품입니다! 주위 실험실에서도 사용하는 제품이어서 믿을 수 있습니다!"
철현은 도청기로 이 모든 상황을 낄낄거리며 듣고 있었다.
"얼그레이라...어쩌다가 스킬 아웃 '얼간이'가 '얼그레이'라는 멋진 이름을 갖게 되었지?" "뭐, 덕분에 쓰레기 같은 연구소의 연구비를 털어먹었으니 나야 고맙지" "그 도구 판매상이 제대로 된 사람인지, 진짜 그 회사 직원인지부터 알아봐야지~ 멍청아"
자신의 과실도 있다는 말에 은우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는 알고 있었으나 그에 응답할 생각은 조금도 없는 탓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그 말은 적당히 한 귀로 흘렸다. 고작 그 정도로 화를 내거나, 열을 낼 생각은 없었다. 무엇보다 아직 자신은 좀 더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 그 전에 그 '책임'을 질 순 없었다. 아직까지는.
"너는 여기에 오기 전의 세은이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지? 세은이라면 아마 여기에 오기 전의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했을테니까 아예 모를려나?"
하지만 혹시나 친한 친구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진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예 모른다는 가정하에 이야기를 하기로 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무관계한 이라면 적당히 넘기겠으나 세은의 친구라고 한다면 알 권리가 있다고 판단한 탓이었다. 사실 이런 것은 세은에게 듣는 것이 좋겠지만, 그 애가 모르는 사실도 있었기에.
"그 전에 약속을 해줄 수 있을까? 너는 세은이가 모르는 사실까지도 나에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는데... 그 관련은 듣는다고 해도 세은이에겐 비밀로 해줄 수 있을까?"
물론 별 거 아닌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은우는 그 사실을 요구했다. 만에 하나라도 세은에게 전해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사실이 있었기에. 그의 표정은 차분함에서 진지함으로 바뀌었다.
"그게 힘들다면, 나도 말해줄 수 없어."
그 부분에 대해서 그는 강하게 선을 그었다. 조금은 차갑게, 냉정하게. 그리고 숨을 후우, 내뱉은 후 은우는 이어 혜우에게 이야기했다.
"덧붙여서 그 작자들이 온다고 하더라도 세은이와 만나게 할 생각 없어. 내가 만나고, 내가 처리할거야. 그러니까 세은이에게 피해갈 일도 없어. 이것만큼은."
>>862 일단은 움직이지 않을 것 같긴 한데 저기서 더 설치거나 더 사고를 치면 그땐 아마 에어버스터가 움직이지 않을까 싶네요!
퍼스트클래스와 안티스킬의 관계. 이건 퍼스트클래스마다 다 관계가 달라서 딱 뭐라고 하긴 힘드네요. 일단 에어버스터만 이야기를 하자면 약간 비즈니스 관계에요. 에어버스터 쪽에서 안티스킬이 가지고 있는 자료가 필요하면 요청해서 받고, 안티스킬도 에어버스터의 힘이 필요하면 지원 요청을 하는 느낌으로요.
태오는 맨손에 괴나리봇짐 하나 들고 한복차림으로 다니는 남성을 마주했다. 정확히는 커리큘럼 문제로 학교에 있던 한결이 봉변을 당한 것을 마주친 셈이다.
"……." "……." "……등 뒤에 그것은 무엇이옵니까?" "……."
태오가 등 뒤를 확인하려 휙 움직이자 한결은 후다닥 몸을 돌렸고, 태오는 집요하게 빙글빙글 돌듯 등 뒤를 확인하려 했다. 한참의 꼬리잡기 후, 태오는 한결의 등에 숨겨진 활을 보고 눈을 치켜떴다.
"어찌 그대가 나의 부군을 해할 수 있단 말이오?" [아니, 오해예요, 저는 구렁이를 쏘지 않았어요!] "하면 고하시오. 내 그대의 속내 헤집을 수도 없는 터라 참을성이 심히 부족하니 묶어 죽이기 전에 고하는 것이 좋을 게야." [저는……. 용머리 설화…]
한결은 태오와 눈을 마주치고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치악산 설화가 아니라 까치 설화에서는 남편과 같이 승천을 준비하던 구렁이가 과부가 되었지……!
"……." [태, 태오 낭자!] "……." [제가 부군을 살릴 방법을 아외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어찌 역천에 가까운 것을 해낼 수 있단 게요?" [새로운 설화나 소설이 되길 간곡히 비는 것입니다……!] "무엇 될지 내 알 수 없지 않나." [……사실 아까, 향낭자와 기예인이 섞인 존재도 보았으니 태오 낭…자도 어떻게든 변하지 않을…….]
혜우가 웃는 모습 그 모습에 은우는 피식 웃었다.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으나 은우는 그 중 어느 한 단편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가만히 혜우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피식 웃었다. 참으로 당돌하기 그지 없고,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이였다. 허나 딱히 악감정은 없었고, 굳이 그 관련으로 할 말도 없었다.
"지장까지 찍을 것이 뭐가 있어."
가벼운 웃음소리를 내며 은우는 조용히 콜라를 입에 머금었다. 그 내용물을 모두 마셔버린 후에, 아주 가볍게 캔을 구겨버리고는 바로 밑에 있는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팔짱을 끼더니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디서부터 말을 하면 좋을까. 너무 이전의 이야기는 역시 빼는 것이 좋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은우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세은이와 난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 너무 자세하게는 말하지 않겠지만, 일단 살해당했어. 범인은 잡혀갔고. 아무튼 그때가 초등학생 때의 일이었고, 고아 초등학생은 자연히 친척에게 맡겨지기 마련이고 나와 세은이도 예외는 아니었어. 고모와 고모부의 집으로 향했지. 이모와 이모부의 집으로 간 적도 있었지만 결국 마지막엔 다시 고모와 고모부의 집으로 갔었어. 하지만 어느 쪽도 우리를 환영해주는 이는 없었어. 뭐, 그도 당연하다면 당연하겠네. 갑자기 입이 두개나 늘었으니 말이야. 그것도 자기 친자식도 아니고 말이야."
그때의 일을 떠올리려는 듯, 은우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숨을 후우 내뱉었다. 그때 들었던 말, 그리고 자신만 아는 사실, 자신이 외삼촌이 이야기를 꺼내자 받아들이고 세은과 함께 인첨공으로 바로 들어간 이유. 그것은...
"눈칫밥은 예사였고, 일부러 골칫덩어리라는 말을 들리도록 말하고 노골적으로 사촌들과 차별하고, 편애을 받았지. 빈 방이 없으니까 다락방을 내주고, 장난감이나 새 옷은 없었어. 사촌들이 더 이상 입지 않는 그런 옷들이 제공되었지. 하다 못해 사촌들이 무시하는 지경이 되었지만 막아주는 이 하나 없었어.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나와 세은이가 죽는 것은 아니잖아? 그러면 다음 단계는 뭐라고 생각해? 필요없는 입을 줄이는 방법 말이야. 다락방에 처박혀서 세은이와 자다가 화장실이 마려워서 중간에 깨서 계단을 내려간 어느 날이었어. 고모부가 고모와 거실쪽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더라. 그때 들은 이야기는 아직도 세은이에게 말하지 않았어."
ㅡ여행을 가자. ㅡ그리고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낙오시키자. ㅡ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낙오시키자. ㅡ설마 죽기야 하겠어? ㅡ다른 착한 이가 데려가겠지. ㅡ경찰이 데려가서 보호해서 대충 보호시설에 둘 수도 있잖아. ㅡ죽이지 않는 것이 어디야. ㅡ6학년보단 4학년 쪽을 데리고 가는 곳이 좋겠지? ㅡ전화번호..알려준 적 없으니까 연락 못하겠지. 안 그래?
한마디, 한마디를 이야기하는 은우의 손을 무의식중에 천천히 떨리고 있었다. 오래전의 일이지만, 그때의 말을 잊지 않은 것은 그만큼 그때의 기억이 너무나 강렬하게 박힌 탓이 아니었을까.
"정말 다행스럽게도 며칠 후, 인첨공의 연구원인 외삼촌이 찾아왔었어. 자신과 함께 인첨공으로 가자고 나에게 제안을 했었어. 그곳이 어디인진 알 길이 없었지만, 솔직히 당시 내가 있었던 고모와 고모부 집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했어. 덧붙여서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어. 난. 아무튼 그래서, 세은이를 데리고 이곳으로 왔어. 외삼촌을 따라서 말이야. 외삼촌은 본 적 있지? 전에?"
3학구의 장.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어 말을 잠시 끊었던 은우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레벨5의 영역에 들어서기 전엔 관심조차도 가지지 않고 편지도 보내지 않던 작자들이야. 이제와서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고 하는 작자들인데 상대해줘야 할 이유가 없잖아. 외삼촌을 통해서 일단 나와 세은이의 근황을 어떻게 들은 모양인데... 난 그 작자들을 더 이상 친척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노리는 것이 너무 뻔해서 구역질이 날 지경이야."
오늘도 평화로운 나날이 계속되는 인천첨단공업단지의 제 3 학구. 그러나 그곳에 뻗친 악의 손길이 그림자을 드리운다!
"이럴수가, 이렇게 화창하던 날에 갑자기 폭풍이 불다니... 이게 무슨 일이지?"
그렇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화창한 날씨는 온데간데 없고, 무시무시한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마치 오버로드를 타고 날아오는 히드라리스크의 떼처럼 매섭고도 날카로웠으며, 그것은... 여러가지 의미로 위험했다!
그렇다. 누가 무어라 해도 모카고는 건전하게 피가 튀는 학원 청춘물. 그러나 지금 들려오는 이 폭풍 너머의 음성은 지극히 위험했다!
'으하하하하! 마음껏 바람을 불어서 (검열삭제)!'
이 무슨 폭거! 이 폭풍을 뿜어내고 있는 이는 이솝우화 속 북풍에 빙의하여, 자신의 능력으로 바람을 마구 뿜어내고 있었다. 그것도 그저 자신의 능력을 멈출 수가 없는 것이 아닌, 매우 불순하고 좋지 않은 목적으로 행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원전에서는 추운 바람으로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름! 한없이 복장이 얇아진 지금 그런 짓을 하려 했다간 정말로 큰일이 날 게 뻔한 것이다! 이것은 어장의 존폐가 걸린 희대의 대 대 대위기!
결국 그레고르 잠자, 아니 혼고 타케시, 아니 장태진은 시속 600km/h를 넘었으면 좋겠는 딱히 몬스터는 아닌 머신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서 폭풍을 마주하며 달렸다.
"변신!"
핸들에서 손을 놓고 자세를 취하자, 벨트에 달린 풍차 다이나모가 폭풍에 마주하여 돌아가며 전원을 공급한다. 곧 온 몸으로 에너지가 퍼지고 그 힘으로 바이크 위에서 힘껏 뛰어 올랐다.
"토옷!"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하며 착지한 가면라이더는 곧 폭풍을 뿜어내는 이를 가리켰다.
"이 녀석! 당장 그만둬!" '흐하하하! 날 막을 수는 없다, 가면라이더!'
주먹과 주먹이 부딪히는 격투! 아아, 밀리는가, 가면라이더!
"지금이라도 얼른 이 폭풍을 멈춰라! 무슨 셈이지?" '하하! 나는 모두의 복장이 얇아진 지금, 모두가 감기에 걸리게 해서 밖으로 나오지 않게 만들거다!'
사악한 술수의 내막이 드러났으니! 이럴수가!
"안돼!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냐!" '흐하하하! 그거야 뻔하지 않나! 사람들이 감기에 걸리면 편의점에 오는 빈도가 덜해지지! 즉, 내가 편의점 알바를 하는 동안 꿀을 빨 수 있다는거다!' "그런 이유로 이런 짓을 한다니, 네놈은 용서할 수 없다!" '막을 테면 막아봐라, 가면라이더!'
폭풍이 몰아치자, 가면라이더는 뛰어올랐다. "라이더- 점프! 토옷!"
'아닛?!'
강력한 각력으로 공중으로 뛰어오른 라이더! 그리고 연달아 공중에서 몸을 회전한다!
"라이더- 킥!"
그대로 이단옆차기를 하며 날아와 사악한 북풍에게 달려들어, 킥이 작렬한다!
'이, 이럴수가! 내가 당하다니...!!'
한 차례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고, 라이더는 폭발에서 등을 돌린다. 그러나 가면라이더는 오늘도 모카고의 정의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달리려, 바이크에 오른다!
"가자, 사이클론!"
폭풍에 흔들리는 교복들을 뒤로 하고서, 라이더는 달린다. 붉은 머플러를 목에 휘날리며 오늘도 달린다!
서로 다른 웃음 뒤로 서로 다른 생각이 상충함은 지극히 당연했다. 그것을 구태여 드러내어 마찰을 빚을 수도 있겠으나 지금 이 자리에서 그럴 이유가 나 역시도 없었다.
그러니 잠자코 은우가 얘기를 시작하길 기다렸다. 열기 귀찮아진 음료수는 근처 책상에 적당히 올려놓고 양 손은 후드집업의 주머니에 꽂고 조금 느슨히 자세를 풀고서.
적의도 원망도, 지금은 모조리 집어넣고 이윽고 시작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몇 년 전, 데 마레에서 영락으로 연구소를 이적하고 깨달은 것이 있었다. 데 마레가 유달리 친절하고 상냥한 곳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영락도 학생에게 호의적이긴 했으나, 필요할 때는 따끔하게 현실을 직시시키곤 했다.
예를 들면, 인생의 형태라는 건 전부 다른 듯 하면서도 깊이 들여다보면 서로 서로 비슷한 결이 존재한다던지. 그러니 내가 겪은 아픔 역시, 누군가 다른 형태로 같은 아픔을 겪었을 수도 있다던지.
그 때를 생각하며 은우의 얘기를 들었다. 희미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드러나는 표정, 행동 하나하나까지, 얘기를 끊는 일 없이 그저 지켜보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경청했다.
그리고 얘기가 끝난 후엔 잠시 눈을 감았다. 지그시 감고, 손을 올려 살짝 턱을 받치고 생각에 잠겼다가 낮게 눈을 뜨며 중얼거렸다.
"...인생 참..."
기구하기도 하며, 덧없기도 하구나.
작게 덧붙인 말은 안 들렸을 지도 모르겠다. 에휴, 짧게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리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푹 기댔다. 그 자세로 힐끔 은우를 보는 얼굴엔 지긋지긋함과 묘한 안심이 섞여 있었다. 그것들의 이유는 금방 내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이해득실을 앞에 둔 인간들의 양상이란 참 거기서 거기네요. 어쩜 이렇게 구역질 나오게 비슷할까.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이걸 세은이가 모른다는 거네요. 그래, 알아버리면 몰랐던 때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그 사실 만큼은, 죽을 때까지 몰랐으면 좋겠네요. 세은이는, 세은이는 이런 기분 끝까지 몰랐으면 좋겠어."
쓴 웃음을 넘어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다시 손으로 가려 감춰야 했다.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런 심정이었을까. 뜻밖의 상황에서 뜻밖의 이해를 얻어버림은 조금, 추스르기 벅찬 일이었다. 그래도 겨우 표정을 정리하고 다시 은우를 볼 수 있긴 했다. 한 가닥 남은 씁쓸함을 걸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태어나서 다섯살이 될 때까지 피가 이어진 가족에게 그 취급을 받았어요. 못 알아들을 거라 생각했는지, 면전에서 죽지도 않고 끈질기단 말까지 하더군요. 부모라는 작자들이... 인첨공이 없었다면 그 다섯살의 해를 넘기지 못 했을 거에요. 뭐, 여기 버려져서 산 삶도 죽음보다 낫다... 라고 단언하기에는 어렵지만."
그렇게 말하며 손목에 걸린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이것이 있음에도 나는 아직 떨쳐내지 못 한 것이 있었다. 굴리면 잘그락 소리가 나는 원석팔찌를 조금 만지다가 놓고 양 손을 다시 후드집업의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나즈막히 덧붙였다.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에요. 최은우 선배님. 원망하는 마음은 여전한데, 이제는 별개로 존경의 마음도 드네요."
잠시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그런 말도 했다. 피식 실소하며-
"최세은 이 기지배, 좀 부럽네. 나는 가족이란 것들이 죄- 상처만 주구 뒷수습도 안 해주는데 X발-"
동월은 감격한 눈으로 새봄을 보았다. 이대로라면 새봄을 붙잡아두고 몇 시간이나 카레의 위대함에 대해 토론을 펼칠 기세였다. 매운맛이 1도 없다지만 우리에겐 고춧가루라는 위대한 소스(?)가 있었기에 전혀 문제될 일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일단 저 무수한 발걸음의 요청을 떠나보낸 뒤에 해야 할 일이겠지.
" 아쉽게도 이번엔 땡입니다? " " 그치만 뭐, 잠깐 눈을 끌긴 해야 하니까. 조금 물러나긴 해야겠네. "
그리고 동월은 빙긋 웃으며 품 속에서 와이어 건을 꺼내들었다.
" 그런 고로 미끼작전이야 후배님. " " 저것들의 주의를 끄는 동안 작전을 수행하는거지. 할 수 있겠지? "
그리고 동월은 방아쇠를 당겨 와이어 건을 사출하더니, 어둠 속 저편으로 빠르게 사라져갔다.
미끼 작전으로 가자는 말만 남기더니 와이어건을 꺼내더니 어딘가로 사라져버리는 동월의 모습을 눈으로 좇던 새봄은 어깨만 으쓱했다. 음, 1대 1000이라. 여기만 아니라면 전설이 됐을 텐데. 근데 여긴 괴이 안이니까 전설은 고사하고 다윈상도 못 받겠네. 어쩌겠어, 해볼 건 다 해보고 죽어야지. 그나저나, 어쩐다? 도망치는건 자신 있지만 이 자리를 이탈하면 조난당할 가능성이 크고, 도망을 안 가자니 진짜 죽을 것 같은데. 사람 죽는 거 볼때마다 우울해진다는 선배가 미끼하라고 시켜서 1대 1000으로 벌레든 괴물이든 사람 반만한 거랑 싸우다 죽어서 왔다고 하면... 좀 면목 없겠는데. 아니, 방금 건 좀 쓸모없는 생각이었다.
...아, 그렇지. 지금 그 뭔가 몰려오고 있는 게 우리가 지나온 방향에서부터란 거잖아. 그럼 벌레 시체들이 산더미겠지? 죽었으니까 무생물일거고. 그럼 그걸 활용해볼까? 이래 포위당하나 저래 포위당하나 차라리 등이라도 사수하자는 생각에 가장 가까운 벽에 붙어 잠시 눈을 감고 상상속 주방을 열었다. 아까 벌레들 썰면서 지나오면서 바닥에 잔뜩 흐른 벌레 체액을 팔팔 끓는 설탕시럽으로 만들어버리자. 벌레시체보단 차라리 체액이 다루기 쉬우니까. 괴물이든 뭐든 바닥에 뜨겁고 끈적한 게 있으면 아프든 끈적끈적해서 발이 잘 안떨어지든 이동속도가 느려지겠지. 그럼 대책을 강구할 시간을 벌든, 상대하는 게 수월해지든 할 거고.
체액 웅덩이가 설탕더미로 변한다. 거기에 열을 가한다. 물도 좀 넣어서 양도 늘리자. 최대한 많이 만들어야 하니까. 머릿속으로 지나온 풍경을 더듬으며, 한참 정신을 집중하고 있자니 골이 울리듯 욱신거렸다. 여기까지네. 벽에 의지하여 겨우 몸을 다잡으며, 새봄은 나이프를 고쳐쥐고 무수한 발소리가 가까워지는 방향을 바라보며 자세를 잡았다.
눈을 뜨고 감을 때마다 당신이 곁에 있는 하루하루, 아침에 눈을 뜨면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서 아침이야, 말하는 상상을. 당신의 볼이 연하게 붉어지는 것을 금은 말없이 바라보았다. 말한 자신도 부끄러운 감정에 빠질 것을 알면서도, 부끄러워하는 당신의 모습은 그러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부추기는 것이었을까. 고른 숨소리와 달리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귀찮다고 대신 사지 말라는 당신의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을 간질이는 느낌에 금은 자꾸만 웃었다. 그리고 마주 깍지 끼면 금은 당신이 놓을 수 없게 움켜쥔다. 그런 말에 금은 금세 울상인 표정이었다. 입맞춤에 기뻐하는 대신, 금은 눈을 내리깔고 입술을 꼭 깨물었으니, 감정이 북받치는 게 보일 정도로 축 처진 모습이 된다. 금은 흉터가 남아있을 당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림자, 이번 4학구의 사건이 해결되어도 또 무슨 일을 벌일 것인데. 그때엔 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라. 2주의 제약에 묶여있는 우리와 달리 상대는 우리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으니, 걱정이 끝날 새가 없다.
"....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이들은 가장 강력하고, 가장 무서운 적들인걸요. 선배들은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더 언제까지 뒤에서 희생하는 것을 지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입맞춤에 대응하듯, 금은 깍지를 낀 손을 잡아 제 입가로 가까이 들어 올리고서, 당신의 손등에 입을 맞추려고 했다.
"저 역시 저지먼트의 일원이니, 사람들과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지만. 그중에서 선배는 제게 가장 특별한 존재인걸요.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선배가 약속해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누구도 제가 소중히 하는 선배를 다치게 두지 않을 거니까. 누가 됐든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사라진 동월, 다가오는 위협, 후배를 미끼로 쓴 선배. 새봄에게 일어난 일들은 확실히 일반적인 일들은 아니었을테다. 하지만 새봄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고, 능력을 써 다가오는 것들의 발을 묶으려 했다. 아니, 묶었다. 새봄의 전략은 완벽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먹혔다. 끈적한 액체가 그것들의 발을 묶고, 넘어뜨린 것이다. 당연히 1000이나 되는 숫자의 무언가가 맨 앞에서 넘어지기 시작하자 뒤따라오던 것들도 채여 넘어지기 시작했고, 끈적한 액체에 묶여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있다. 그런 장면들이 합쳐져, 곧 아귀도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장관이 연출되었다. 그것을 제1열에서 직관하는 새봄은 김이 샜을지도 모르겠다.
" 이번에는, "
그 때, 복도의 천장 쪽에서 동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와이어 건을 이용해 2층으로 재빨리 올라간 모양이었다.
" 딩동댕입니다. "
그리고 다음 순간, 뒤엉켜 넘어져있는 곳 위로 복도의 천장이 통째로 내려앉는다. 능력을 이용해 2층 복도의 바닥을 썰어낸 것이다.
쿵! 쿠직!
별로 유쾌하진 않은 소리가 텅 빈 복도를 타고 울려퍼진다. 동월은 내려앉은 천장의 위에 느긋하게 앉아있었다.
" 이야... 후배님 진짜, 스카웃 하고 싶을 정도인걸. "
동월은 자신의 밑에 깔끔하게 깔린 것들과, 끈적거리는 액체를 번갈아보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