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최대 15인이 제가 받을 수 있는 한계입니다. ※총 10개의 대사건이 모두 일어나면 완결됩니다. ※이 스레는 슬로우 스레로서, 매우 천천히 진행됩니다. 진행은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보통 오후 2시~4시 사이에 진행되며 길면 2시간 짧으면 1시간 반 진행되니 참고 바랍니다. ※진행 때에는 #을 달고 써주시면 됩니다. 진행레스가 좀 더 눈에 잘 띄기 위해서 색깔을 입히거나, 쉐도우를 넣는다거나 하는 행위도 모두 오케이입니다. 스레주가 지나치지 않을 수 있도록 이쁘게 꾸며주세요! ※유혈 묘사 등이 있사오니 주의 바랍니다. ※이 외에 미처 기억하지 못한 주의사항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스레주도 무협 잘 모릅니다...부담가지지 말고 츄라이츄라이~ ※기본적으로 우리는 참치어장 상황극판의 규칙을 적용하며, 이에 기속됩니다.
분운선술에 어느정도 익숙해졌을 무렵, 구름을 다루는 것에 적응하기 위해 구름을 뭉치고 재하에게 안내받았던 산으로 떠난 때가 있었다. 슬슬 겨울이 지나고 봄이 얼굴을 빼꼼히 내밀 때가 되었기에 꽃들을 구경하고, 괜히 꽃들을 모아다가 화환을 만들어볼까 하여 이 산까지 찾은 것이다. 그러나 중원에게는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한 팔이 없다는 것이 첫 번째 문제였다면, 두 번째 문제는 한 번도 화환을 만들어본 적 없다는 것이 문제이기도 했다. 어설프게 만지는 꽃에 의해 수십 송이가 제 머리가 꺾인 채로 생을 마감한 후에야 중원은 씁쓸한 표정으로 화환보다는 저 멀리 사는 이들의 가시면류관 비스무리한 것을 만들어낸 채로 한숨을 쉬었다.
망가진 꽃화환을 내려두고, 조용히 산의 신에게 기원을 올린다. 그저 한 사람에게 전하고픈 물건이란 이유로, 꽃을 해한 것이 용서될지는 모르나. 그 댓가라는 듯 중원은 흐르는 강줄기를 일부 떠다가, 마른 땅에 물을 축였다. 그러다가 또다시 오늘 마주한 것은 이제는 재하보다 많이 만나지 않았을까 싶은 아이, 시아였다. 조용히 꽃을 모으고 물음을 하는 것으로 보아 그녀도 내가 무엇을 고민하는지 아는 모양이었다. 망가진 화환을 몸 뒤로 숨기고 중원은 부끄러운 듯 짧게 혀를 찬다. 그러다가 오른팔을 들어올리며 괜히 투덜거릴 뿐이었다.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의수는 어디까지나 일상생활을 보조하기 위한 것인지라 그런 것이니..."
그 말에 중원은 고개를 흔든다. 도움을 받지 않고 만들겠다는 말이 아니라, 이미 많은 꽃을 꺾은 까닭이다. 여기서 더 만들어 아름다운 화환을 만든다 한들 그것은 자신이 꺾은 꽃을 기만하는 행동이다. 그것에 사죄하듯 물을 길었으면서, 또 꽃을 꺾는다니. 자연지물에도 정이 깃든다. 그 정을 무시할 수는 없다. 대신에 중원은 미소를 지으며 시아의 눈앞에 커다란 구름을 빚어냈다.
"그래도 도와주겠단 마음이 곱구나. 자, 여기 더 있으면 괜히 산신을 더 자극할지 모르니. 요동으로 가자꾸나. 돌아갈 때에는 데려다주마."
사랑에 빠진 이들이 이성을 초월한 선택을 내리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그들의 사고가 그렇게 바뀌는 커다란 사건을 겪은것이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음을 또한 이해한다. 그렇기에 저렇게 사랑에 빠진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어떠한 감정에 매몰되어 연속선상에서 벗어난 존재로 튕겨져나가는 것은 심히 불쾌한 일이다.
그것도 네 인생이라면 하고 중원은 평소같은 애늙은이의 어투로 말을 마친다. 다만, 중원은 그 말의 뒤에 있는 불쾌감에 조용히 조소를 지었을 뿐이다. 그래서 한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훌륭한 괴뢰술사는 될지언정, 가주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가주란 감정을 보고 이해해야만 하는 자리다. 그 매몰된 감정을 다루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인 역시도 그 감정에 곧 빠진 적이 있어야만 한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세가를 이어가기 위해 모든 후회를 버리고 나아갔던 것처럼. 누군가를 다루는 이는 누구보다 발밑을 알고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것도 네 인생이라면 하고 중원은 평소같은 애늙은이의 어투로 말을 마친다. 다만, 중원은 그 말의 뒤에 있는 불쾌감에 조용히 조소를 지었을 뿐이다. 그래서 한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훌륭한 괴뢰술사는 될지언정, 가주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가주란 감정을 보고 이해해야만 하는 자리다. 그 매몰된 감정을 다루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인 역시도 그 감정에 곧 빠진 적이 있어야만 한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세가를 이어가기 위해 모든 후회를 버리고 나아갔던 것처럼. 누군가를 다루는 이는 누구보다 발밑을 알고 있어야 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