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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들켰어야 했다. 어설픈 너와 나에서 온전한 우리가 되려면 필히 들췄어야 하는, 무대 뒤 장막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적절한 때를 맞출 수는 없었다. 특히나 준비 없이 시작해버린 관계일수록 어떤 시도는, 상대에게 시기적절하지 못 했다.
이번은 그저 내 차례였을 뿐이었다.
차라리 나오지 말 걸 그랬다. 얌전히 집에 있다가, 나중에 연락해서, 오늘 무슨 일이었는지 묻는게 나았을 걸 그랬다.
허공에 흩날리는 검붉은 거즈 조각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혼자 있게 보내달라고 했잖아!!!!!"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고성이었다. 목이 잠길 대로 잠겨 그런 큰 소리는 낼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내 안의 무언가는, 이럴 때 열심히도 일했다.
그렇게 내질러버리고 뒤로 돌아 뛰는 내내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거즈가 벗겨진 손의 아픔도 메마른 목의 갈증도 지나가던 행인과 부딪혀 바닥을 굴러도 미처 피하지 못 한 벽에 긁혀도
모든 것이 무감각했다. 집에 도착해 현관을 넘자마자 쓰러지는 그 순간까지.
차가운 바닥에 널브러져 있기를 몇 시간째였을까. 몰아치는 격통에 쫓기듯 눈을 떴다.
제대로 먹지도, 잠들지도, 쉬지도 못 한 몸뚱이에 몰아친 그 모든 순간이 한 번에 찾아오는 건 이제까지 없던 격통 중의 격통이었다. 잠시 숨 쉬는 법도 잊을 만큼 격렬한 고통에 본능적으로 살고자 능력을 전개했다.
정신 없이 뛰어서 뭉친 다리부터 넘어지고 부딪혀 까지고 긁힌 모든 상처들까지 말끔히 사라졌으나 단 하나 만은 남아있었다.
붉다 못해 검어진 손 끝.
바닥에 흔적 여럿 남긴 손 끝을 보며 겨우 숨을 골랐다. 차차 제대로 호흡하며 이제 어떻게 일어나 방이든 욕실든 들어가지 하고 고민하던 중에 익숙한 진동음이 울렸다. 주머니, 아니, 저기 거실 한 가운데였다.
들어오며 넘어질 때에 떨어져 거기까지 밀려간 모양이었다.
힘이 풀려 제 구실을 못 하는 하반신을 두 팔과 상체만으로 질질 끌며 갔다. 그런 상태인데도 문득, 제 방에 걸려있을 태피스트리가 생각났다. 내 꼴이 딱 '그녀'와 같구나, 싶어 고개를 푹 떨구었다. 찢긴 커튼처럼 드리우는 머리카락 안으로 문자가 띄워진 폰 화면이 가득 빛을 발했다.
<[ 천혜우 ] <[ 무슨 일 있어? ]
시야가 흐려 두 문장만 어찌어찌 읽을 수 있었다. 발신인의 이름을 본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긴 했지만 답신을 보내야겠다는 마음도 동시에 똑같이 들었다.
우스운 일이었다. 당장 몇 시간 전에, 면전에 대고 그런 소리를 내질렀으면서. 뻔뻔하기 짝이 없지.
폰을 집어들려고 했는데, 덜덜 떨리는 손을 보니 이건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어찌어찌 통화 버튼을 눌러 신호를 보냈다. 또, 음성사서함으로 이어지면 어쩌지, 싶었지만 다행히, 이번엔 제대로 성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잠시 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라 침묵해야 했다.
"...성운아."
겨우 내놓은 첫마디는 그의 이름이었다. 실은, 아까도 부르고 싶었는데, 하는 뒤늦은 후회가 목 끝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내가 할 말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해야 할 말은, 다른 말이었으니까.
콜록, 마른 기침을 하고, 말을 시작했다.
"전에... 내가 한 얘기, 기억나? 내 얘기, 내가 언제 인첨공에 왔고,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한, 얘기... 응, 그 얘기에 딱히, 숨긴 건 없지만, 아마 너는 눈치 못 챘을 사실이 하나 있어."
그렇게 대단한 것도, 엄청난 것도 아니지만.
"나는, 바깥을 몰라. 평범한 가족의 삶 뿐만 아니라, 네가 인첨공에 들어오기 이전까지 살았던, 그 바깥의 삶, 그 사고방식, 그런 걸 하나도 몰라... 내 자아는, 인첨공에서 시작되었고, 모든게 인첨공의 형식으로 갖춰졌어. 데 마레 같은, 좋은 연구소에서 자랐지만, 분명 많은 배려를 받고, 올바른 교육을 받고, 보살핌을 받았지만... 나는, 잘 모르겠어. 바깥에서 온 너희가, 이해가 되지 않아."
마른 침이 목을 넘어갔다. 처음으로, 털어놓는, 내 본심. 이 전화 너머 그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내가... 여러 동아리 중에서도, 굳이 저지먼트를 택한 건, 상명하복의 체계를 갖춘, 좋게 말하면 사회성을 기르기 쉬워 보여서 택한 거 였어. 정의감이니, 사명감이니, 그런 거 없어. 인첨공에서는 오로지, 더 강한, 더 유용한 능력자 만이 대우 받으니까. 하지만 작년의 나는, 개화조차 못 한 열등생이라서, 취직을 위한... 이력서에 쓸 만한, 뭐라도 있어야겠다 싶어서, 그래서 저지먼트를 선택했어. 내 전공, 의과니까, 의료반으로 있기 딱이잖아. 그 정도 알량한, 계기였어. 단지, 그 뿐인."
그러나 생각 외로 많은 사람과 얽혔다. 끊겼던 인연도 다시 만났다. 그 뿐이면 좋았을 터였다.
"그런데, 입부하고 첫 임무부터 전위에 나서야 했어. 그 때부터였겠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건. 나는 분명 서포트를 희망했는데 왜 전위로 나와 있는 거지? 내가 왜 현장에까지 나와서 되도 않는 이런 걸 해야 하지? 부장이 퍼스트클래스인데, 나는 개화도 못 한 열등생인데, 왜? ...그래도 그 때까진 괜찮았어. 내려진 지시대로 움직이고, 지시대로 따르기만 하면 될 때는. 하지만 블랙크로우를 추적할 때, 퍼스트클래스인 부장이 '도와달라'고 하는 걸 보고, 솔직히 이해가 안 됐어. 퍼스트클래스잖아. 이 도시 최강 중 한 명이잖아. 그런데 말야, 그것보다 이해가 안 되는 광경이 있었어. 그 자리에 있던 대다수가 너무나 쉽게 그 상황을 납득하는 거야. 당연하다는 듯이 돕겠다고 하는 그게 너무... 이상했어."
문득 그 당시의 이질감이 몸 위로 쏟아지는 듯 해 다시금 바닥에 웅크렸다.
"퍼스트클래스가 고개를 숙이고, 도와달라고 한다? 하물며 저지먼트인데? 명령하면 되잖아. 저지먼트가 움직여야 할 명분은 충분했으니까. ...점점 그 안의 분위기가 내가 알던 상식과 멀어지는 기분이었어. 아니, 실제로 멀어졌어. 필사적으로, 아닌 척 했지만, 아까 깨달았어. 나는 바깥에서 살다 온 너희가 이해되지 않아. 성운이 너도, 내가 알던 서성운이 아닌 것 같았어. 그 공간에 나만 이방인이 된 것 같아서, 그래서."
웅크린 탓에 먹먹한 목소리는 제대로 들렸을까. 콜록, 콜록! 밭은 기침 몇 번을 하고서야 한층 가늘어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서 그렇게, 예민하게 굴었던 거야. 응.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여기까지야. 성운아."
어쩌면 제일 중요한 걸 감춰버렸지만 나는 그걸 알지만 여기까지, 라고 했다. 지금은, 이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이면서.
사람한테는 못 쓰는 걸까요? 인간을 지칭하는 코드을 복붙해서 정신 조종을 하면 퍼클 군대를 만들 수도 있을테니까요. 시전속도가 느릴 수도 있겠군요. 코드짜다가 보라의 피맞고 죽을 테니까요. 그런데 그러면 아라나 은우 보다도 약할텐데.. 아저씨가 전면전에서 보라를 이길 수 없는 약점이 뭘까요? 능력을 제대로 쓰는 장면이 있음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