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금을 모티브로 하고있지만 잘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상황극판의 기본 규칙과 매너를 따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를 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상대를 지적할때에는 너무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15세 이용가이며 그 이상의 높은 수위나 드립은 일체 금지합니다. ※특별한 공지가 없다면 스토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 30분~8시쯤부터 진행합니다. 이벤트나 스토리가 없거나 미뤄지는 경우는 그 전에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이벤트 도중 반응레스가 필요한 경우 >>0 을 달고 레스를 달아주세요. ※계수를 깎을 수 있는 훈련레스는 1일 1회로, 개인이 정산해서 뱅크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훈련레스는 >>0을 달고 적어주세요! 소수점은 버립니다. ※7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 경우 동결, 14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경우 해당시트 하차됩니다. 설사 연플이나 우플 등이 있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존 모카고 시리즈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따라서 기존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있고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서도 똑같이 그 설정이 적용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R1과도 다른 스토리로 흘러갑니다. ※개인 이벤트는 일상 5회를 했다는 가정하에 챕터2부터 개방됩니다. 개인 이벤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사전에 웹박수를 이용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는 계수 10%, 참여하는 이에겐 5%를 제공합니다.
첫 발짝. 믿음으로 시작한 첫 발짝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너도 그도 누구도 모를 일이다만, 너와 그는 이렇게 첫 발짝을 떼어놓기로 했다.
생에 첫 즐거운 아쿠아리움 관광을 만끽하고 나오자, 해가 어정쩡하게 뉘엿뉘엿 기운다. 잠깐, 가만히 서 있다가 성운은 다음 행선지를 생각했다. 저녁─ 냉장고만 파먹어도 충분히 맛있게 식사할 수 있을 만큼의 식재료가 있지만, 기왕인 거 너와 같이 저녁 장을 봐버릴까. 아니면 다른 어딘가 카페를 가거나, 영화를 보자고 할까. 이건 너무 뻔한가─ 아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시간이 나면 너와 꼭 함께 해보고 싶다고 별렀던 게 있다. 그걸 이야기해볼까? 하며 성운은 네게 고개를 돌렸고, 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응?”
입으로는 반문하듯 말꼬리를 올리고 있었지만, 성운의 발걸음은 이미 네가 이끄는 방향으로 따라가고 있었다. 너만큼은 아니지만 그도 나름대로 여기서 몇 년을 보냈으므로, 주변 지리를 돌아볼 것도 없이 자기 손을 잡아끄는 네게 맞춰진 초점의 주변 시야만으로 대충 여기가 어디구나 하는 감 정도는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굳이 그러지 않았다. 네가 이끌고 가는 곳이라는 게 중요했으니까. 그리고 네가 마침내 이끌고 온 샵 앞에서, 성운은 눈을 깜박였다.
“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악세사리 숍 앞에서, 성운은 또 한방 먹었다는 듯 얼굴에 장난스런 쓴웃음을 옅게 지었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이 먼저 이야기하려고 했던 게 이거였으니까.
연구소와 문화센터에서의 일이 지나고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시간이 꽤 흐른만큼 이전에 네비게이터가 예고했던 날짜까진 앞으로 4일 정도 남은 상태였습니다. 과연 문화센터에서의 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일이 진행되는 것인지. 그 답은 아직 알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아마 그때 있었던 일들은 모두가 보고서 등으로 각자에게 공유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 본 이와 보지 못한 이의 인식 차이는 조금 나겠지만요.
이제 늦여름이 거의 다 끝나가고 개학이 얼마 남지 않은 여름날이었습니다. 모두가 각자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은우에게서 메시지가 들어왔습니다.
[연구소 조사와 문화센터의 일. 정말로 다들 수고 많았어.] [일단 시간이 되는 이들은 부실로 와줄래?]
딱히 긴급모임은 아닌 것으로 보아 가거나 안 가거나, 그건 자유인 듯 합니다. 온다고 한다면 편하게 오도록 합시다. 아마 들어오면 언제나처럼 은우와 세은이 자신의 자리에 앉아있을테고, 둘 다 들어오는 이들마다 인사를 했을 것입니다.
서한양은 단문의 답장을 보낸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부실로 들어온다. 아무래도 은우가 문자를 보내기도 전에 학교근처에 있던 모양이었다. 이제 '그 날'이 4일 밖에 안 남았어. 솔직히 말해서 문화센터에서 잡은 그림자의 간부..까지 잡으면 끝인 줄 알았다만, 배후가 분명히 있어. 그 여자는 그림자 중에서 서열이 낮다보 판단될 수 있지. 왜 굳이 혼자서 현장을 다 뛰어가면서 힘들게 싸우겠어? 다 짬맞아서 그런 거지.
"...."
일단 앉아나 있자. 분위기가 무거운 걸 보니깐 일이 어째 잘 풀리고 있는 모양은 아닌가봐.
바쁘고 심란한 나날의 연속이다. 댄스부 연습은 착실히 나가고 있었으나 아직도 그의 공연 여부에 대해서 정해진 건 없고, 이에 불만 갖는 부원이 0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내부 분위기가 묘해지는 건 당연한 수순. 네비게이터가 예고한 날은 점점 다가오고, 저지먼트 보고서에 쓰여진 내용들은 속시끄럽고, 개학이 가까워지고...
댄스부실에서 곧장 저지먼트 부실로 직행했는지 머리를 올려묶은 리라는 부실 안을 둘러보다가 모두에게 손 흔들어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짧은 상의 아래, 드러난 손과 팔뚝에 붙은 반창고 안의 상처가 조금은 간지럽다. 아무래도 날이 더워서 그런 거겠지.
긴 머리. 끝단의 일부만 하얀 기운이 남아있지만 이마저도 곧 잘릴 것이다. 가위로 머리 끝을 적당히 다듬고 있다니 망막에 가볍게 오렌지빛이 깜빡인다. 나리도 그러더니 저지먼트도 퇴원하고 돌아오기가 무섭게 소집 명령을 내린다라. 뭐, 조만간 예고한 날이 온다 하지 않았나.
가위를 내려둔 태오는 적당히 머리카락을 털어내고 외투를 걸치더니, 기억에서 보고서를 더듬으며 걸음을 옮겼다. 위대한 과학의 산물. 로봇인 것 같다 했나?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잡스러운 생각은 잠시 넣어두고자 하며 태오는 부실에 발 디뎠다.
애시르는 초창기 연구소니까 인지도...는 평범한 수준? 아무나 다 알지는 않을 거고, 그 당시 관계자라면 아 대충 그런 곳이 있었지~ 정도 단 그 당시에는 그다지 많은 성과를 내지는 못했고, 그 와중에 일련의 사건(랑이 독백에서 나온거)이 생겨서 전부 없애고 철수했지 + 고아원을 같이 운영하고 있긴 했는데 인첨공 생기면서 매입한 곳이라서 특이사항은 별로 없다
초창기 애시르를 알기 위해서는 자료에 의존해서는 안 되고, 그 당시 사람들을 만나봐야 한다! 그때 애시르에 대해 많이 알고 있으면서 협조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의외로 꽤 있다, 정말 초창기부터 있었던 곳이기 때문에 일처리가 다소 미숙했을 수 있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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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문사에서 야반도주로... 어... 일단 죽는 마무리가 아니니까 다행이다 휴 아마 로판AU의 랑이라면 말마따나 도적단 두목?이거나 아니면 반대로 노예 출신 암살자나 더러운 일 위주로 하는 이름 없는 기사 같은 거 같긴 하다 피칠갑 된 모습으로 황제 뒤편 휘장에서 어두운 밤이나 새벽에만 알현하는 그런 이미지
이걸 우연히 리라가 보고 두려움+호기심(이거진짜그럴거같음)으로 뒤 밟다가 들키고 그럴거같은데
그때, 성운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언제나처럼 새하얀 볼캡을 눌러쓰고, 새하얀 여름용 우비 차림에, 목에는 조그만 참이 달린 초커를 차고 있는 채다. 다만 그 우비를 입고 좀 험하게 굴렀나, 우비의 빛이 살짝 바래고 해져 있으며 일부분에는 영 지워지지 않을 얼룩이 희미하게 남아있다는 게 문제다. 성운은 자신이 보기에도 지금 자기 외투가 좀 상태가 안 좋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외투를 훌렁 벗어다 팔에 걸고는 볼캡을 벗어 외투와 함께 둘둘 말아다 옆구리에 껴 버렸다.
“조금 늦었습니다.”
은우와 세은, 그리고 모여있는 저지먼트 부원들을 향해 성운은 가볍게 목례를 해보이곤, 혜우 옆자리의 의자에 가서 앉았다.
모두의 상태를 은우는 눈으로 살폈습니다. 일단 밝은 이도 있고, 조금 분위기가 바뀐 이도 있었습니다. 이어 그는 아지가 가지고 온 머랭 쿠키를 조용히 한 입 먹었습니다. 그리고 헛기침 소리를 내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일단 날씨 더운데 저번 일은 정말 수고 많았어. 그때 연구소에서 가지고 온 컴퓨터는 일단 모두 내 담당 연구원 형에게 맡겼고 분석중이야. 프로덱트가 세게 걸려서 자료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 같으니까... 일단 그 부분은 나중에 파악이 되면 얘기해줄게. 또... 네비게이터 말인데, 일단 내 담당 연구원 형이 분석을 해서 복구를 시키는 중이야. 오늘 복구가 된다고 하고, 나중에 복구가 다 되면 나에게 보내준다고 했으니 알아두고... 요즘 묘하게 내 귀로 '과잉진압'을 하나는 이들이 있다는 것 같은데 하지 마. 아니. 할 거면 철저하게 나에게 들키지 마. 하는 것은 자유인데 나에게 걸렸을 때 할만한 변명은 생각해두고 해."
가볍게 공지사항 세 개를 말한 은우는 다시 한숨을 약하게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핸드폰을 조작하더니 모두에게 이미지 파일 하나를 전송했습니다. 그건 이전에 혜성이 조사했던 '지시사항'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샹그릴라 사건에 개입하려고 하는 저지먼트를 자극하기 위해 근처에 있을 학생 4명을 확보할 것. 차후 서아가 조종한다. -블랙 크로우가 최대한 유명해지도록 뒷공작을 펼칠 것 -샹그릴라 프로젝트 때 스킬아웃을 은근슬쩍 선동해서 에어버스터의 체력을 빼놓을 것 -에어버스터가 압박을 받도록 살며시 유도할 것 -유토피아 프로젝트 때 타깃을 감시할 것 -15주년 기념식 마지막 날, 콘서트때 기기를 준비할 것 -이 모든 것을 안티스킬이나 가족, 그 외 기타 등등에게 절대로 알리지 말 것
"이건 전의 연구소에서 혜성이가 찾아낸 자료야. 지시사항. 아무리 봐도 누군가에게 지시를 한 내용을 정리해놓은거야. 사실 이것 말고도 조금 더 있는 것 같은데, 아직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분석 중이야. 대체 누구에게 지시를 내렸는진 모르겠지만... 일단 여기서 서아라는 이는 문화센터에 갔었던 이들이 잡은 그 빨간머리 그림자 여자. 그 여자 이름이 '홍서아'였어. 일단 지금은 4학구의 능력자 수용소 안에 있을거야."
거기서 잠시 말을 끊은 은우는 괜히 머리를 자신의 손으로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목소리를 이어갔습니다.
"네비게이터가 말했다는 그 날까지 앞으로 4일 남았어. 현재 4학구의 모든 사람들이 소멸한다는 그 문제가 해결되었는지, 해결되지 않았는지도 모를 판국이어서 말이야. 일단 나는 이 자료를 토대로 좀 생각해보려고 하는데...일단 이 1번째 문장의 학생 4명. 그건 우리 저지먼트가 맨 처음 임무를 나갔을 때 너희들이 만났던 그 학생 4명일거라고 난 추정하고 있어. 이 애들에 대해서는 나도 당시에 조사된 것을 확인해본 적이 있고...너희들에겐 처음 공유하는 것인데..."
말을 다시 끊은 은우는 손에 든 머랭쿠키를 입에 마저 넣고 천천히 씹었습니다. 그리고 꿀꺽 삼킨 후에 말을 했습니다.
"4명 다 자신들을 그렇게 만든 이에 대해서 기억을 전혀 못하고 있었어. 거짓말을 하는가 싶어서,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능력자를 동원해서 파악했지만 모두 진실이었고, 하물며 기억을 조작한 흔적도 없다는 모양이야. 덧붙여서 이 4명은 각각 다른 날에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것이 확인이 되었는데... 전원 수상한 사람과 접촉한 적이 없다고 해. 일단... 지금 상태에서 질문하고 싶은 거 있어?"
뒤늦게 부실로 들어온 혜성은 부실 분위기에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고, 자신의 자리에 앉을 뿐이었다. 몇가지의 공지사항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만히 부실의 명확하지 않은 위치에 눈길을 둔 채, 입을 열지 않고 앉아만 있던 헤성의 눈이 도르륵 굴러가는 건 자신이 찍어뒀던 지시사항의 사진이 도착했을 때였다.
찍을 당시에도 봤던 내용을 다시 보게 되니 기분이 묘하다. 누구에게 보내는 지시사항일까 이건. 이어지는 말에 4명이 누구인지 기억하기 위해 혜성의 눈이 부실 천장으로 향했다. 누구였더라, 그 네명이.
과잉진압...? 이라는 걸 처음 들은 것처럼 고개를 갸웃합니다. 그야. 수경은 좀 더 조심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니까요.
"프로덱트가 걸리긴 했어도.. 도움은 되었으려나요." 네비게이터가 말했다는 것..
그럼 부장님은 네비게이터의 진술을 믿는다...는 걸까요? ...제가 못 믿는다는 생각은 아니겠지요. 확실히 네비게이터를 못 믿는다는 생각은 아닙니다. 그 발언의 무거움이나.. 제로가 삭제하려 했다는 것 때문인지. 신뢰에 더 가까운 느낌이긴 하지만... 한번 더 확인하고 싶었다. 는 걸까요... 다만 말로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서한양은 자리에 앉은 채로 은우의 말을 듣고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과잉진압'이라.. 요즘의 한양에게는 아마 해당이 안 되는 내용일 수도 있겠다. 이제는 아무리 저항이 거센 능력자나 스킬아웃이어도 상처없이 진압할 수 있으니깐. 그 다음에는..혜성이가 가지고 온 녀석들의 지시사항이렸구나.
첫 번째 항목은 우리가 첫 임무에 나서서 목격한 조종당한 4명. 2~4 번째야 말할 것도 없고. 다섯 번째는 뭐냐? 유토피아 프로젝트의 타깃? 레드윙을 말하는 건가? 그리고 마지막..
여자저차 다른 내용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궁금한 점을 질문한다.
" 지시사항 마지막 내용 말이야. 조금 이상하지 않아? 녀석들의 입장에서야 당연히 안티스킬에게 알리면 안 되지. '당연히' 지켜야 될 상식의 수준인데, 저기서는 '반드시' 지켜야 되는 지침으로 넣은 게 조금 이상하단 말이지. "
" 내 생각은 말이야.. 안티스킬이 어쩌면 조금은 관련이 있나 생각해. 알리면 안 되는 첫 대상이 안티스킬인 것도 그렇고, 사실 이 프로젝트 이전에 모종의 협력관계가 있었을까 싶어서 말이야. "
" 근데 둘 중 하나가 삔또가 상해서, 안티스킬 몰래 비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거겠지. "
" 그 다음 질문은 세은이야. 세은? 저번 주 문화센터에서 갑자기 사라졌잖아? 이어셋으로 연락해도 응답도 없고 말이지. 레드윙의 매니저분이 위기에 빠질 때가 되어서야 나타나더라고. "
>>196 아지가 가져온 머랭쿠키, 그리고 여로가 가져온 아이스크림을 양손에 호화롭게 들고선, 이야기를 듣는다. 수고했다는 치사 먼저. 응, 당연히 수고 했지. 너덜너덜하게 된 사람이 몇인데... 물론, 다들 정말 큰 활약을 한 덕분에 일 자체는 마무리 됐다손 치지만...그게 우리들의 안전을 의미하진 않으니까.
...큰일났어. 무슨 사춘기도 아니고, 모든게 삐딱하게 들리기 시작했네. 딱히 부장님 잘못은 아닌데말야. 바보같이 실실대면서 이야기를 듣는다. 이 감정이 새어나가지 않게.
"과잉진압...뭐 막말로 옷깃만 스쳐도 구르면서 병원가면 나오는게 전치 2주니까요~"
굉장히 느슨한 제압이지만... 뭐 사실 나는 대부분 말로 해결하고, 폭력적인 스킬아웃이 나오더라도, 적당히 제압만 하는 편이라지만, 손속이 사정 없는 사람들도 많이 있으니까.
뭐 나랑은 관계 없는 이야기인가~ 라고 생각하고있자, 화두가 다른쪽으로 흐른다.
"결국...봄부터 여름까지 있었던 모든 일련의 사건까지, 다 손에 놀아나고 있었던 이야기네요."
"일단 그 4명이 마지막으로 잡힌 CCTV 영상을 어떻게든 얻어올 수 있었어. 여기서 잡힌 것을 제외하면 그 이후로 그 어디에서도 CCTV에서 잡힌 적이 없어. 그렇기에... 내가 가지고 있는 CCTV 데이터가 바로 그 4명이 마지막으로 잡힌 영상이라고 보면 돼. 실제로 그 이후로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것 같아. 날짜는 제각각이라는 점만 알아줘. 아. 그리고... 일단 피해자는 A~D로 칭할게."
이렇게 말을 하면 알아듣기 힘들 것으로 판단했는지 은우는 헛기침을 여러번 하면서 이야기를 다시 이었습니다.
"피해자 A는 그 날, 여학생 하나를 반죽음으로 만들었던 애를 내가 제압한 것 때문에 나에게 앙심을 품었던 그 남학생이야. 우리 학교고. 피해자 B는 월광고의 그 재수없는 녀석이고 피해자 C는 우리 학교의 여학생. 그리고 피해자 D는 스킬아웃. 일단 얼굴은 기억이 안 날지도 모르지만, 대충 어떤 이미지인지는 기억나지? ...피해자 A는 딱히 행방불명되진 않았어. 우리가 출동했던 바로 그 날 찍혔던 CCTV이긴 한데... 남은 이들은 다 다른 날짜이고, 이 CCTV가 마지막으로 찍힌 CCTV라고 생각하면 돼. 세은아."
이어 세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핸드폰을 이용해서 허공에 홀로그램을 띄웠습니다. 4개의 화면으로 나뉜 홀로그램은 각각 계속 재생되고 있었습니다.
17:00 학생들이 우르르 하교하기 시작함 17:10 안티스킬의 순찰차가 뒤쪽으로 천천히 지나감 17:15 피해자 A가 뒤쪽으로 천천히 지나감 17:30 커플이 팔짱을 끼면서 앞으로 천천히 지나감 17:40 학생회장이 환하게 웃으면서 뒤로 천천히 지나감 18:00 안티스킬의 순찰차가 앞으로 천천히 지나감 18:15 자전거를 탄 학생들이 하나둘 학교에서 하교하기 시작함
피해자 B - 남학생 (월광고) 번화가 길목
12:00 안티스킬의 순찰차가 앞쪽으로 지나감 12:30 어린아이들이 우르르 앞으로 지나감 12:35 피해자 B가 혼자서 천천히 앞으로 지나감 12:40 은발머리 남성이 앞으로 천천히 지나감 12:45 할머니 한명이 앞으로 천천히 지나감 12:50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남성이 뒤로 천천히 지나감 12:55 안티스킬의 순찰차가 뒤쪽으로 지나감 13:00 아라가 민우와 함께 팔짱을 끼고 앞으로 지나감
피해자 C - 여학생 (목화고) 목화고등학교 앞 골목길
17:00 학생들이 우르르 하교하기 시작함 17:10 안티스킬의 순찰차가 뒤쪽으로 천천히 지나감 17:15 은우가 가방을 들고 앞쪽으로 지나감 17:20 세은이 친구들과 함께 뒤쪽으로 지나감 17:30 피해자 C가 뒤쪽으로 책가방을 들고 지나감 17:35 안티스킬의 순찰차가 앞쪽으로 천천히 지나감 17:40 정장을 입은 남성이 뒤쪽으로 천천히 지나감 18:00 은우가 다시 목화고등학교로 돌아가고 있음 18:30 보라가 뒤쪽에서 걸어와서 목화고등학교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앞으로 걸어감 19:00 플레어가 앞에서 걸어오다가 목화고등학교의 교문을 바라보다가 뒤로 걸어감
피해자 D - 스킬아웃 스트레인지 골목 (화질 엄청 안 좋음)
11:00 스킬아웃들이 우르르 앞쪽으로 지나감 11:30 피해자 D가 담배를 물고 앞으로 지나감 11:35 안티스킬의 제복을 입고 있는 이가 앞으로 뛰어감 11:40 들개들이 우르르 뒤로 달려가기 시작함 11:50 블랙 크로우의 일원으로 보이는 여성이 뒤로 천천히 걸어감 12:00 여자 스킬아웃 멤버 한명이 CCTV를 빤히 바라보다가 침을 뱉고 뒤로 걸어감 12:30 검은색 오토바이를 탄 남성이 앞으로 빠르게 질주함 12:45 철준이 담배를 물고 앞으로 천천히 걸어감
/일단 주요 CCTV내용은 이렇답니다. 앞뒤는 그냥 길의 왼쪽/오른쪽으로 생각해주세요! 넉넉하게... 9시 40분까지 시간 드립니다! 그냥 자기 캐릭터의 생각을 말해주는 것으로 충분해요! 여러분들의 생각을 서로서로 나눠봐도 될테고요. 어쨌건 9시 40분까지만 올리면 되겠습니다!
여로가 웃으면서 말했다. cctv의 내용을 노트에 정리하던 그는 곧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지나가도 수상하지 않을 것이고 납치해도 의심받지 않을만한 존재가 계속 왔다갔다 하잖아요. 안티스킬- 인첨공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두 존재를 꼽으라면, 안티스킬과 저지먼트일 걸요-? 근데 놀랍게도 실종자들이 사라지기 전, 후로 마치 태우고 난 후에 걸리는 시간처럼 안티스킬 차가 지나가요. 마지막은 대놓고 제복 입은 사람이 그 방향으로 바로 뛰어가기도 했잖아요-?"
그는 미소지었다.
"낯선 사람이고 수상한 사람이지만, 의심받지 않을 수 있는 수상한 사람들. 안티스킬 말고 또 있을까요-? 저지먼트야, 부장님이나 부부장님이 증언해주면 되긴 하겠지만- 안티스킬은, 그 사람을 전부 알 수는 없잖아요-"
여로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 미소는 어딘가 뒤틀려있었다.
"내가 만약, 저 학생들을 필요해서 단시간 안에 납치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믿을 수 있도록 자신을 꾸며서 데려갈 거 같아요. 안티스킬을 믿지 말라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요- 안 그래요-?"
모든 화면에 보이는 안티스킬 순찰차도 수상하지만. 혜성은 한쪽 다리를 당겨 올리고 세워진 무릎 위에 턱을 기댄 뒤 물끄럼, 화면을 응시했다.
"A쪽은 제외하더라도, 나머지 위치에서 전부 퍼스트클래스들의 모습이 확인 되고 있네. 그리고 피해자들 전부 다수의 인원이 한차례 몰려간 뒤에 목격되고 있고." "D를 제외한 피해자들은 방과후라는 점도 있어. 억측이지만 안티스킬 순찰차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패턴이 규칙적이지 않아?"
"정하 후배님 말대로 C쪽만 순찰 주기가 짧네요. 앞 기록들에 비하면 거의 절반 수준인데. 게다가, 전 스트레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보통 경찰이 뒷골목에 갈 때 제복을 입고 들어가기도 하나요?"
그거 총 맞아 죽기 딱 좋은 조건 아닌가? 사복근무라는 게 괜히 존재하는 것도 아닐텐데 굳이 제복을 입고. 마치 내가 안티스킬임을 알아달라는 것처럼. 게다가 1시간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제복 입은 사람이 나오는 장면은 찍혀있지 않았다. 머리카락을 한 가닥 잡아 빙글빙글 꼬던 리라는 잠시 화면에서 눈을 돌린다.
"그 외에는 아는 얼굴들이 신기할 정도로 많이 보인다는 공통점은 있는데, 어차피 인첨공 안이니까 이상한 건 아니지만... 음."
개중에 딱 하나가 안 보이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할 즈음, 귓가에 여로의 목소리가 꽂혀 들어온다.
"......여로 후배님은 안티스킬이 연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하지만 그건—."
공권력이 그렇게 엮여있다고 믿고 싶진 않지만 일리 없는 소리가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당장 봄만 해도 안티스킬의 도움이 이상할 정도로 부족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가? 그 덕분에 결국 두 명의 퍼스트클래스가 병원 신세를 졌다는 걸 기억한다.
리라의 안색이 순식간에 나빠졌다.
"잠깐만요. 안티스킬이 엮여있다고 한다면... 아니, 애초에 이 일들 자체가, 여기에 엮인 것들 자체가 그렇긴 했지만. 만약 정말이라면... 그럼 저희는 더 이상 도움 청할 곳이 없는 거 아닌가요?"
아직은 가정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상상은 끊임없이 뻗어나간다.
"협력조직이 이 일에 엮여있다면 믿을 사람이—... 잠깐. 홍선아라는 사람이 안티스킬에 의해 체포되어 4학구에 구금되어있다고 하셨었죠?"
다시 한번 주의 깊게 봤는데 A C는 그렇다 치더라도 B나 D가 조금 이상하다고 해야하나.. B는 피해자가 간 후 다른 사람들이 잔뜩 지나간, 20분은 지난 뒤에야 차가 움직였고 D는 제복을 입은 사람이 바로 뛰어갔다고 쳐도 피해자를 끌고 나간다거나 그런 장면은 없고 그냥 개들이 마구 달려가는 장면만 나오고 마네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안티스킬들. 단순한 순찰이라고 하기에는 공통적으로 등장했어. 특히 D..제복을 입은 안티스킬이 급하게 뛰어가고 있지. 사실 차량만 보였다면 단순히 순찰을 한다는 용도지만.. 저 D의 사례로 보아서 안티스킬이 무언가 알고 있기는 할 것이다.
그리고 A를 제외하고 나타난 퍼스트클래스. 은우,아라,레드윙,디스트로이어,플레어. 크리에이터와 유니온을 제외하면 전부 보였어. 사실 은우나 아라는.. 저 상황에 대한 인지는 전혀 하지 않은 것 같아서 걔네들도 사실상 제외. 레드윙과 플레어 그리고 디스트로이ㅇ.. 아, 머리 아파.
" 이거이거 머리가 아프구만.. "
일단 가정을 보자. 안티스킬이 찐으로 그림자의 협력자라는 '가정' . A의 경우 뒤쪽으로 천천히 지나감->안티스킬 차량도 뒤쪽으로 지나감->안티스킬 차량이 앞으로 천천히 나감. 이는 곧 A를 납치하고 가는 길일 수도 있어. B 역시.. 안티스킬의 순찰차가 앞쪽으로 지나감->피해자 B가 혼자서 천천히 앞으로 지나감->안티스킬의 순찰차가 뒤쪽으로 지나감. 이 역시 납치하고 가는 길이고. 하지만 C에서 말이지.
" 세은아. "
" 세은아. 너 시간대는 다르지만 C와 안티스킬 차량이랑 같은 곳을 갔더라고. 혹시 그때 목격한 게 있을까? 절대 의심은 아니야. 가는 방향이 같아가지고. "
안티스킬의 순찰차가 뒤쪽으로 천천히 지나감 ->세은이 친구들과 함께 뒤쪽으로 지나감->피해자 C가 뒤쪽으로 책가방을 들고 지나감->안티스킬의 순찰차가 앞쪽으로 천천히 지나감.
계속해서 같은 패턴이야. 플레어는 의심대상이 아니야. 왜냐면 뒤쪽이 아닌 앞에서 왔거든.
자, D는 좀 복잡하다.
요약하자면 안티스킬은 D를 따라가고 있었고, 들개들이 나온 것은 안티스킬이 D를 잡느라 들개들이 겁먹어서 도망치는 것이다. 블랙크로우의 멤버가 있는 걸 보니, D를 세뇌하기 위해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일까? 여자 스킬아웃은..추론이 안 돼. 그 다음에 오토바이와 디스트로이어가 D가 간 방향으로 가고 있고.
"에초에, 순찰 데이터같은건 여기서 떳떳하게 요구할 수 있는 정보 아니에요? 최근 저지먼트의 인원 및 자원 문제로, 순찰 루트를 수정해야할 것 같습니다. 이에 안티스킬과의 중복된 시간, 루트를 확인하기 위해 목화고 주변 안티스킬 순찰 루트와 시간, 반년 내 변경사항이나 예정이 있다면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정 의심가면, 한번 슥 물어보고 확신 받으면 될것같은데... 이정도 명분이면 납득이 될만한 명분이기도 하고요."
─금교 일로 한동안 자리를 비운 것은 자신이다. 그러니 이 정도는 부장님께서 이해해주시길 바랄 뿐이다. 그 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는 이게 다 끝나고 나서 하자고 생각하며, 성운은 혜우의 어깨에 자기 어깨를 살며시 기댔다. 손은, 억지로 거머쥐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다른 손을 들어서는 네 손등을 조심스레 매만져볼 뿐이다. 일단 지금은 회의에 집중하자. 눈은 은우와 스크린에서 떼지 않은 채로, 다른 부원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며 성운은 타임라인을 다시 한번 더 주의깊게 훑어보았다.
"그 날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 부실 안에서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이 생각나서 다시 돌아간 것으로 기억해. 꽤 이전의 일이라서 솔직히 기억은 잘 안 나."
"딱히 목격한 것은 없어요. 도움이 못 되어서 죄송해요. 하지만... 확실히 안티스킬 순찰차가 보였던 것 같긴 하네요."
은우와 세은은 각각 아지와 한양의 말에 대답했습니다. 이어지는 청윤의 말에 은우는 그건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습니다. 아무래도 그 부분에 대해선 조금 비명확한 모양이었습니다.
일단 전체적으로 의견을 종합했을 때 저기에 찍혀있는 안티스킬이 수상하다는 듯이 이야기를 하자 은우는 잠시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뭔가를 조용히 생각하는 듯 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일단 찍혀있는 안티스킬은 모두 크리에이터야. 나도 그 부분에 대해서 물었었는데... '샹그릴라'를 수사하기 위해서 개별적으로 혼자 이리저리 돌아다녔다는 모양이야. 저 화질이 낮은 영상에 찍힌 것도 다름 아닌 크리에이터야."
"...오빠..."
크리에이터를 입에 담자 세은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에는 굳이 대꾸하지 않으며 은우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습니다. 이어 그는 모두를 바라보며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없겠지? 적어도 안티스킬은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 만약에 문제가 있다면 저번 블랙 크로우가 나타났다는 사인회장을 생각해봐. 굳이 막을 필요가 없잖아. 보고서에 따르면 안티스킬은 블랙 크로우를 막았다고 했어. ...레드윙을 노리고 있다고 한다면, 굳이 막을 필요가 없잖아."
안 그렇냐는 듯이 그는 나름대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허나 그의 눈동자는 다른 곳을 향해 있었습니다. 마치 애써 시선을 피하는 것 같이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여기에 반론을 할지, 아니면 긍정을 할지는 여러분들의 자유에요! 어쨌든 모두의 말에 대한 은우의 생각은 이렇다고 하네요.
“네, 사실입니다. 금교 놈들이 스킬아웃 집단을 고리대로 낚아다가 사람을 총알 쓰듯이 쓰는 게 하루이틀이 아니죠.” “─그 부분에 대한 물증이 필요합니다.” “물증이라면 역시 그것이겠지요? 금교와 엮인 스킬아웃 집단들이 자행하는 무모하고 위험한 범죄가, 자신들이 자의적으로 자행한 것이 아니라 금교의 강요를 받은 것이라는 증거.” “네.” “그것은··· 나으리의 귀인을 실망시켜드려 죄송합니다만, 어렵습니다. 금교가 사람을 총알처럼 쓰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긴 하지만 그 비밀이라는 것을 철두철미하게 유지하고 있어서, 누구나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그 사실을 그들도 반박못할 만큼 확고히 증명할 명확한 증거는 조금도 안 남겨두는 게 금교의 방식입니다. 통신 기록이라거나, 편지라거나··· 철저하게 암호화된 익명 네트워크를 통해 지령을 내리고, 사용하는 어휘를 애매모호하게 하여 강요하지는 않았으며 제안했을 뿐이라고 발뺌할 준비까지 해놓고 있지요. 거기에다 스킬아웃 집단이 회의 기록 동영상 같은 것을 촬영하게 하여, 그것이 스킬아웃 집단 스스로 결정한 일이라고 증거할 수 있는 억지 가짜 증거도 만들어두고 있으니까요.” “···억지 가짜 증거라고 하면?” “그 회의록 영상 하나만 보셔도 자명하실 겁니다. 세상 어느 깡패집단이 자기들 회의록을 남기며, 회의록을 남긴다손 쳐도 그런 어색하기 짝이 없는 국어책 읽는 톤으로 자살 임무에 나가자는 의견을 주고받고, 목각인형 같은 동작으로 죽으러 나갈 사람의 제비를 뽑겠습니까. 그러나 그 억지 증거도, 그 증거를 논파할 증거가 없으면 그냥 증거인 게지요.” “금교가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부린다고 한다면, 누군가는 금교에게 그런 일에 쓸 사람을 요구한 기록이 있을 텐데 금교와 협력하는 이들에 대해서 조사해볼 방법은 없을까요?” “금교가 제정신이고서야 그런 아킬레스 건을 쉽게 내보이겠습니까? 괜히 강철의 상어가 아닙니다. 그런 면에 대해서도 그들은 철두철미하지요. 우리는 그런 거 모르니 이런이런 이들과 이야기해 보라-고 넌지시 말을 돌리고는 자기들이 만든 게 분명한 유령회사로 그 연락을 돌리니까요.” “그러면 그 유령회사에 대해서 조사해볼 수는 없을까요.” “누군가에 대해 잘 알고자 하면 두 가지 방법이 있지요. 첫째는 그 사람의 친구가 되는 것이고, 둘째는 그 사람과 아귀다툼을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괜찮다고 하시면 전자의 방법으로 물심양면으로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만···” “···그럴 시간이 없어요.” “그러면, 아귀다툼밖에는 방법이 없겠군요.”
그때, 봤던 그 사람이었던가. 혜성은 잠시 생각하듯 눈을 도르륵 굴리다가 다시 화면을 보고 은우를 바라봤다. 저 화면에 나오는 안티스킬이 전부 크리에이터라고? 혜성은 주머니를 뒤져서 포장된 판초콜렛을 꺼내 쪼개서 입에 집어넣는다.
"최은우."
은우야. 느릿하고 부드럽게 시선을 피하는 은우를 바라보지도 않고 혜성은 이름을 불렀다.
"여기서 네가 입을 다물고 아무것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해도 좋아.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알아야하는게 있다면 이야기 정도는 해줘." "....다른 애들은 몰라도 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이제 명분과 이유가 필요해. 알려줄 수 없다면 나는 이제 손 뗄 생각이야."
확실히 시간대가 다르긴 했다. 거기다가 친구들이랑 같이 있었으니, 정말로 본 것이 있다면 진작에 우리가 알았겠지. 세은이도 뭔가를 숨기는 것 같지도 않고.
" 아, 크리에이터? "
크리에이터가 분주히 돌아다녔다..라고 하는군. 하지만 이상하단 말이야. 아니, 억측인가? 저 영상의 패턴을 보니깐 의심이 사라지지 않는단 말이야. 하지만 크리에이터가 확정된 것은 아니야. 의심되는 녀석이 또 있거든.
" 아니? 문제가 있어. 은우야.. 우리 기억나? 블랙크로우 잡을 때 말이야.. 너 혼자 진짜 머리털 다 빠지게 조사하고 다녔잖아. 응? 왜냐고 묻더니 안티스킬이 협조를 안 해준대. 그런데 저 시기에 같은 '안티스킬'인 크리에이터는 왜 이렇게 열심히 조사하고다녔냐 이 말이야. 정말 조사하고 다닌 것이 맞을까? 설령 크리에이터가 혼자 조사해서 무언가 알아낸 게 있다면. "
" 진작에 우리에게 수사결과를 알려주지 않았겠어? 이어서 문화센터.. 사실 나도 여기서 의심을 멈췄어. 하지만 크리에이터의 레벨을 생각하자. 인첨공에서 다섯 번째로 세. 아무리 암부라지만 고작해야 레벨 4 정도 화력인 홍서아 하나 어떻게 못해서 쩔쩔매는 모습을 보이는 게 더 의심이 가지 않을까? 하지만 너의 말도 틀리지 않았어. 정말 배신자였다면 이런저런 명분으로 충분히 문화센터에 협조를 안 했을 수도 있지. 근데 나 의심가는 인물이 하나 더 포착되어서 말이야. "
저 시선을 피하는 거.
무언가를 숨기는 분위기가 아니야. 은우도 크리에이터에 대한 정이 있잖아. 은우는 크리에이터가 제발 배신자가 아니길 원하는 것 뿐이야. 숨기는 건 없어보여.
"강철준이는 왜 D하고 같은 방향으로 가는지 싶어서. 좀 시간차가 난다고는 하지만.. 안티스킬,그림자,D랑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 말이야. 이게 조금 걸려."
"...블랙 크로우를 유명하게 만들라고 했지. 막지 말라는 말은 없었는걸요." 오히려 블랙 크로우를 유명하게 만들어서 안티스킬이 불렛의 호위는 일단 저지먼트에게 맡기고 유명한 그쪽에 더 집중하도록 만든 게 아닌가? 같은 생각도 할 수 있을지도요.. 라고.. 말을 약간 어물거리며 꺼내려 합니다.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다. 어쩜 제대로 신뢰할 수 있는 곳이 이다지도 적을까? 한번 싹튼 의심은 가는 길 모르고 사방으로 뻗친다. 안티스킬, 안티스킬이 연루되었다면. 정말 그렇다면.
"사실 그것도 좀 궁금했던 건데요. 왜 블랙 크로우 잔당들이 하필 그 날 거기에서 설치겠다고 한 걸까요. 그것도 이미 헤드를 잃은 흩어진 조직의 잔당이. 물론 이유는 저희 모두가 알죠. 그렇지만 그 이전에 좀 더 근본적으로요. 눈에 띄는 짓을 하면 모조리 잡혀간다는 걸 모르지 않았을 텐데."
리라는 잠시 말을 골랐다. 이런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
"그들을 협박한 배후가... 있다고 했었죠. 그럼 사인회장 습격과 그에 대응하는 제압마저도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퍼포먼스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건 너무 억측인가요? 하, 제가 말해놓고도 그렇게 들리네요. 귀담아 듣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지만 은우 선배님."
-샹그릴라 사건에 개입하려고 하는 저지먼트를 자극하기 위해 근처에 있을 학생 4명을 확보할 것. 차후 서아가 조종한다. -블랙 크로우가 최대한 유명해지도록 뒷공작을 펼칠 것 -샹그릴라 프로젝트 때 스킬아웃을 은근슬쩍 선동해서 에어버스터의 체력을 빼놓을 것 -에어버스터가 압박을 받도록 살며시 유도할 것 -유토피아 프로젝트 때 타깃을 감시할 것 -15주년 기념식 마지막 날, 콘서트때 기기를 준비할 것 -이 모든 것을 안티스킬이나 가족, 그 외 기타 등등에게 절대로 알리지 말 것
금은 고민하거나 생각하는 듯. 입을 다문 채 잠자코 오가는 말을 듣는다. 화면에 찍혔던 안티스킬이 모두 크리에이터라는 것. 이어 은우가 하는 말을 듣고서, 금은 의아하다는 듯 눈을 살짝 크게 뜬 채 바라본다. 은우의 눈동자가 다른 곳을 향했으니, 숨기는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다른 이들의 반응 또한 자신의 생각과 같았으니, 금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안티스킬이 블랙크로우를 막았지만, 그것 마저 연기를 위해 계획된 행동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 안티스킬이든, 크리에이터든 다 위험한 가정이었다. 지금에선 어떠한 결과도 내지 못하니, 금은 그저 꾹 입을 다물었다.
태오에게는 좋지 못한 버릇이 있다. 무언가 깊이 생각할 때면 검지를 들어 툭툭 두들기고, 나 골몰합니다 동네방네 광고하곤 했다. 지금도 태오의 손가락은 곱게 포갠 손등 위에서 위아래로 까딱이고 있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손가락 운동은 도통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크리에이터라. 다른 사람들은 은우가 뭔가 속이고 있다 생각하지만 태오는 다르게 생각했다.
이건 신뢰의 문제다.
"왜 회피하려 들어요?"
끝나지 않을 듯하던 손가락 운동이 멈췄다. 태오는 턱을 괴고 은우에게 시선을 꽂았다. 노이즈에 가려진 얼굴이지만 시선이 정확히 꽂혔다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샹그릴라 때 지원도 안 해줘서 평판 나락간 사람들이지 않던가요…… 이번에도 안 하면 존립에 대해 고민해야 할 텐데 말이에요……. 밥그릇 하나는 누구보다 잘 지킬 존재들이 여러 번 꼬리 밟힐 짓을 하다 시민에게 철퇴 맞는 건……. 그쪽이 바라는 일은 아니라고 봐."
굳이 막을 필요가 없었다고? 어불성설이다.
"사적인 감정은…… 내려두어야죠. 아무리 친분이 있다고 해도, 아니면 그 사람에게 위크니스가 있다고 해도……. 용의선상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인데 네가 그렇게 변호를 해버리면 되겠나요. 부원들은 너를 신뢰하기에 어떻게든 이 자리로 와서 돕고자 하는데……. 사감을 가지고 와서 회피하면 신뢰의 보답은 받지 못한답니다."
인간은 그런 존재지.
"혹시라도…… 너도 두려운 걸까요. 네가 믿는 사람이라 생각해 발 디뎠던 곳이 그렇게 무너질까……. 네 신뢰가 헛되었을까."
태오는 눈을 반개했다.
"지금은 아니길 바라는 것도 잠시 내려두어요……. 아니었다면 아닌 거고, 맞는다면 둘 중 하나잖아요…… 네 발 디뎠던 지지기반 무너진들 부원이 밑을 떠받들고 있음도 자각 못하고 무너지거나, 아니면 그래도 이겨내거나……."
어쩌겠니, 인간이 높이 올랐고 바라지 않았다 한들 아래는 그 사정 모르니 끝없이 존재를 증명할 수밖에 없는데. 안타까우나 안타깝다고는 하지 않으마.
>>435 안티스킬에게 알리지 않되 안티스킬을 통솔할 수 있으려면 역시 조직 내의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
그리고 안티스킬과 가족으로 대상이 콕 집어서 서술된 것도 신경쓰이는 그리고 타깃 감시⬅️얘도 걸려 캡틴한테 민호씨가 사인회장 꼭 아린이 때문에'만' 온거냐고 물어봤을 때 '딸 때문에 온 게 맞다'고만 대답해줘서 이건 다른이유도 있지 않았을까 그게 감시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
모두가 하는 말에 은우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 어떤 말에도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태오의 말에 그는 입을 꾹 다물고 한숨을 약하게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번에는 분명히 모두를 바라보며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이 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어. 딱히 숨기는 것도 없어. 단지, 나와 세은이의 생각도 여기에 있는 이 안티스킬이 수상하다에 가까워. 아니. 정확히는 '지시사항'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어. 왜냐하면... 제 4학구에서 있었던 15주년 행사의 모든 기기는 안티스킬이 담당했었으니까. 샹그릴라 사건에서의 지원도 포기한채로 말이야. 다른 사람들,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었어. 15주년 행사는 완벽을 기하는 행사였기 때문에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했으니 말이야. 하지만... 믿고 싶지 않았어. 그렇기에 너희들에게 나나 세은이의 생각을 말하지 않고 보여주기만 한거야. 나와 세은이는 크리에이터에게 정이 있으니까. 그 아저씨에겐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까. 그러니까... 객관적인 판단이 불가능했으니까. 하지만 너희들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조금은 쓰린지 은우는 이를 악물었습니다. 그런 은우의 모습을 바라보며 세은은 한숨을 약하게 내쉬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눈을 감던 은우는 태오의 물음에 이어 대답했습니다.
"사이버 리얼리티. 현실세계를 사이버 세계로 바꿔서 그 안의 코드를 바꿔서 현실세계에도 영향을 끼치는 리얼리티 매니퓰레이션 능력 중 최강의 능력이야. CCTV를 조작 가능한지까진 솔직히 모르겠어. 그 아저씨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런 짓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자신이 안티스킬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느끼던 사람이야."
즉,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은우도 명확하게 아는 것이 없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 아저씨의 능력이라면....."
4학구가 문제가 아니라 이 3학구까지도 모두 한순간에 지워버릴 수 있어.
그런 말을 남기며 은우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어 세은은 가만히 팔짱을 끼다가 눈을 감았습니다. 이어 그녀는 조용히 은우의 등을 톡톡 쳤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아린님. 윤태 박사님에게 진찰 받으러 갈 날짜입니다냥 -아린님. 윤태 박사님에게 진찰 받으러 갈 날짜입니다냥 -아린님. 윤태 박사님에게 진찰 받으러 갈 날짜입니다냥
"응?"
그 소리는 어디서 들리는 것일까요? 은우의 핸드폰에서 나는 것 같군요. 깜짝 놀라 은우는 핸드폰을 꺼내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더니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홀로그램으로 띄웠습니다.
거기에 있는 것은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네비게이터'의 모습이었습니다.
-아. 미안하다냥. 이 몸 부활해서 신나게 여기로 왔다냥! 그런데 알람 시스템이 안 꺼져있었다냥. 이제 껐다냥. -그런데 분위기 왜 이리 심각하냥? 무슨 일이 있는거냥?
당장 코앞에 닥친 샹그릴라 사건보다 15주년 행사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는 안티스킬에 대한 이야기에 혜성은 손으로 제 입가를 가리듯 덮고 꾹 힘줘 눌렀다. 그러지 않으면,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욕설이든 냉소적인 한마디든 터져나올까 싶어서 막기 위한 행동거지였다.
15주년 무대, 그 장소에서 있었던 일들은 여즉 제 머리 한구석에 자리잡아 뇌를 갉아먹고 있었다. 잊어버린 척 하고 있었을 뿐, 잊은 적 없다. 지금 떠올리기에 적합하지 않은 생각이지만 어쩌겠어. 어느 사회든 그러지 않는 완벽한 곳이 어디있겠만서도. 입가를 눌렀던 손으로 눈과 눈사이를 가만 누르다 혜성은 엄지로 미간을 문지른 뒤 관자놀이까지 눌러 문질렀다.
"도움을 받았어도 의심할 여지가 있다면 용의선상에 넣어야한다고 생각해. 너희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고 있지만 지금으로서 너희도 동의했듯, 정황이 안티스킬에게 의심스러운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어."
너희가 크리에이터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건 배제하라는 말은 하지 않아 라고 혜성은 말을 덧붙혔다. 이어지는 말은 분명 크리에이터가 의심스러운 정황을 만들어냈지만 혜성의 표정은 여전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일부러 이런 상황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제로는 아닐테지. 생각하던 혜성의 눈이 도륵 굴러 네비게이터를 바라본다.
은우와 세은이가 봐온 민호씨의 행실이 진실이라면(사실 진실이어도 배신자일 수는 있긴 함) 그리고 안티스킬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정말 좋은 어른이라는 스탠스가 진실이라면
1. 협박 당했다 2. 4학구를 없애는 것이 자신과 가족에게 좋다(협박으로 인한 게 아니라 자의적 판단)
근데 네비게이터가 만약 크리에이터 작품이라면 나리가 4학구의 소멸을 막아야 한다는 자의적 판단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고 이 경우 2번은 부정된다, 제작자는 4학구를 없애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 그러나 나리가 결국 프로그램이고, 인공지능이긴 하지만 자의적 행동을 마구 하는 건 아닌 것 같으므로 이건 제작자의 의지가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크리에이터는 협박으로 인해 4학구 소멸에 협조하고 있는 상황이며, 이를 협박자들 모르게 주변에 흘리기 위해 네비게이터를 이용했다.
여담으로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윗분들 내지 그림자 측은 아린이가 죽는 편이 더 좋다고 여긴다고 캡이 말했던 기억이 있거든 하지만 그림자가 아린이를 인질 잡고 크리에이터를 협박 중이라면 아린이가 죽는 게 더 이득이라는 입장은 이들의 입장은 아니지 않을까? 인질이 죽으면 협박할 거리가 사라지니...
조금 돌아온 정신으로 이 말 저 말 쏟아내고 나니 실시간으로 기력이 쭉쭉 새어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여기 있어봤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일찍 퇴석하려던 찰나 별안간 이상한 알람음이 들렸다.
아니, 그것보다 중요한 말이 그 알람에 들어있었다.
"...윤태?"
어지러운 정신들 사이로 그 이름과 관련된 기억이 우수수 떠올랐다. 그러니까 그 이름은.
"진윤태, 그 남자, 자신을 진윤태라고 했어..."
콜록! 조금 큰 기침을 하고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목소리를 높였다.
"15주년 무대 사건에서 태오를 억류했던 그림자의 일원, 이전 연구소에도 왔었어. 모두가 조사하고 있을 때, 복도에서 마주쳤는데, 그 때 자신의 이름을 진윤태라고 했어. 심장 전문이라고, 그 연구소의 성과들은 이미 2학구의 연구소로 옮긴 후라서 없어져도 상관없다고도 했어."
솔직히 믿을 수 있는 정보인지는 모르지만.
"Nari, 대답해 줘. 아린의 주치의는 2학구 소속의 심장 전문의 진윤태 박사가 맞아?"
청윤은 앉아서 별 효과 없는 추론만 던져대고 있었다. 정말 크리에이터가 배신자인 걸까? 청윤은 솔직히 크리에이터는 좋은 사람 같으면서도 경찰이란 점이 또 발목을 잡고, 미쳐버릴 것 같다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그렇게 머리를 부여잡고 있던 중, 갑자기 나타난 나리에 청윤은 얼떨결에 벌떡 일어나버리고 말았다.
"어떻게 살..아니, 그것보다, 크리에이터가 진짜로 배신자..였던거야..?"
혜우의 말을 들어보니 사실상 확실해진 결과는, 그나마 청윤을 의심의 늪에서 조금이나마 꺼내주는 것 같았다.
혜성의 말에 은우는 가만히 혜성을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맞다고 이야기를 하며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이라도 부정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허나, 그는 그 말은 굳이 입에서 꺼내지 않았습니다.
한편 다시 나타난 네비게이터는, 정확히는 은우의 담당 연구원이 복구해서 다시 은우에게 보내준 그 고양이 AI는 모두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태평하게, 혹은 마치 고양이처럼 식빵 굽는 자세를 취하더니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회의중이었구냥. 내가 너무 눈치없이 끼어든 것 같아서 미안하다냥.
-안냥안냥!!
-음. 그렇다냥. 아린 주인님의 주치의... 그러니까 아린 주인님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심장이 매우 약하다냥. 그래서 제 2학구의 심장 전문의 진윤태 박사님에게 진찰을 주기적으로 받으러간다냥. 그런데 그건 왜 묻는거냥?
-4학구 소멸냥... 확인이 안된다냥. 미안하냥. 지금 막 눈을 떠서 모르겠다냥.
-아린은 아린이다냥. 마스터의 딸이다냥. 마스터가 정말로 아끼고 사랑하는 분이다냥.
-마스터는... 인간이다냥. 인간은 자유 의지가 있으니까 마음대로 말할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냥. 하지만 마스터는 입을 다물고 계신다냥.
-..............
모두의 말에 하나하나 이야기를 했지만 이내 네비게이터는 청윤의 말에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야기했습니다.
-Nari는 마스터가 아린 주인님의 이름을 따서 아린 주인님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준 존재다냥. 원래는 이것도 말하면 안되는 것이지만 프로덱트가 풀려서 말을 할 수 있다냥. 지금은 제로가 쫓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냥.
-아린 주인님이 나에게 부탁했다냥. 마스터가 최근 힘들어보이니까 가서 도와줬으면 좋겠다고냥. 그래서 Nari는 일정시간은 마스터의 근처로 가서 마스터를 지켜봤다냥. 그리고 마스터가 보고 있는 자료를 봤다냥. 거기에는 제 4학구를 소멸시킨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냥. 마스터의 손으로 직접 소멸시킨다는 그런 내용이 담겨있었다냥.
-마스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냥. 내가 불러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냥. 그러다가 마스터가 이어 너희들의 자료를 본 것을 나도 봤다냥. 샹그릴라 사건을 해결한 주역... 마스터가 본 자료에는 그렇게 쓰여있어다냥. 그래서 너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온거다냥. 허나 그때 '제로'가 나를 찾으려고 했다냥. 겨우겨우 따돌리는가 싶었지만... 결국 추적당해서 죽었었다냥. 하지만 복구를 했다냥. 어떤 인간이 날 복구해줬다냥. 그래서 이렇게 온거다냥.
-나에게 걸려있는 유일한 프로텍트는.... '마스터를 직접적으로 배신하면 안된다'이다냥. 그건 아린 주인님이 나에게 부탁한 것이다냥.
...그리고 잠깐 조용해지는 것도 참지 못한다는듯 곧바로 그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그녀의 리액션이 반복되고 있었다.
[어떻게 사람이 스타카토식으로 당황한대?] "살다보믄 그럴 수도 있는 거잖슴까?" [아니, 무슨 인생을 살던간에 일단 난 그럴 일은 없을거 같거든...] "에이~ 사람 인생 알다가도 모른댔어여~ 혹시 모르잖아여?" [그러니가, 난 그런 캐릭터가 아니래도... 너라면 몰라도 내가 그런걸 말할 리가 없거든...] [아니다에 바나나푸딩도 걸수 있거든?]
당연한 일이라는듯 확신하는 여학생의 발언에 그녀는 말 그대로 눈을 반짝이며 특유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호오, 그거 도전장으로 봐도 되겠슴까?" [어제의 설욕을 갚기 위해선 다소 치사한 방법이라도 써야 하는 거거든.] "호에~" [호에가 아니라 어제는 분명 너한테 유리한 내기였거든! 그러니깐 문제 없거든!] "머, 애초에 해커가 투명할 리는 없으니까여~" [...그거 은근 돌려까는데, 너도 그 부류에 들어가는건 알고 있지?] "에, 모를리가 읎잖슴까. 즈는 원래 치사한 사람임다~"
이젠 익숙해진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성격이었기에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인지, 맞부딪히는 카랑카랑한 쇳소리가 울리는 상황에서도 열린 입만큼은 태연하기 그지 없다는듯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을까?
"자~ 그럼 이제 대충 준비는 끝났지? 바로 다음 훈련으로 가자구~" "엗." [다음 훈련?] "학생들~ 아직 우리가 해야 할건 많다구? 너희도 당연히 동참해줘야 하고 말야~"
생글거리는 미소를 얼굴에 내건 여성은 손에 들고 있던 패널을 몇번 넘기더니 무언가 하나를 선택했을까, 잠시 뒤 이전에도 그랬듯 커다란 문이 열리면서 등장한 것은...
"갓 데엠..." [호 어 억 . . . 아, 내 푸딩.] "...괜찮아여. 푸딩 기깔나게 말아주는 사람을 알고 있으니까여. 그 사람한테 얘기해볼게여..." [제삿상에 올려달라고?] "ㅓ..."
>>이 이야기를 쓴 사람은 분명, 분명 악질일거야. 그래도, 마음은 따듯한 사람이려나.<< >>이 이야기를 쓴 사람은 분명, 분명 악질일거야. 그래도, 마음은 따듯한 사람이려나.<< >>이 이야기를 쓴 사람은 분명, 분명 악질일거야. 그래도, 마음은 따듯한 사람이려나.<<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기에 원하는 대로 말할 수 있으나 입을 닫고 있다. 그 대답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순식간에 용의자가 좁혀진 가운데 드는 의문은, 어째서? 였다. 제 직업에 자부심이 있는 안티스킬.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 인자한 어른. 그런 사람이 이런 일에 연루될 이유. 언제나 이유 없는 결과는 없다.
그리고 이유로 생각되는 건 조금 전 바쁘게 지나간 정보들로 조금이나마 유추할 수 있다. 아린, 윤태, 주치의, 2학구 출신, 그림자.
"협박이라도 당하고 있는 건가 싶네요. 하필 아이의 주치의가 그림자라는 게 걸려요. 언제든 심장을 터뜨려 버릴 수 있는 위치니까."
은우에게 위크니스의 심장 칩에 관한 문자가 온 적이 있다고 안다. 시기상 크리에이터는 그 전부터 접촉하고 있었겠지만 같은 말로 꼬드겼을지는 모르는 일이지. 머리가 아프다. 약점 하나 잘 잡아서 참 알뜰하게 써먹네.
성운은 잠깐 충격을 받은 듯 말을 잇지 못했다. 그 크크큭맨(진윤태라는 이름은 기억하고 있지만 아무튼 그놈), 크리에이터, 그리고 그 위크니스 사이의 관계가 밝혀지고, 그 상황이 모두 어떻게 벌어졌는지가 성운의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정보 과다로 인해 성운은 잠깐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일단 짚고 넘어가야 할 점 두 가지. 첫째, 우리가 하고 있는 이야기를 마스터가 알게 될 가능성은? 둘째, 너희 마스터가 주도하는 4학구의 소멸을 너를 통해서 우리에게 막아달라고 전한 건 누구의 뜻이지?”
이어지는 물음들을 네비게이터는 조용히 들었습니다. 맨 먼저 들리는 아지의 물음에 네비게이터는 냐아앙! 하는 소리를 내면서 화내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물음에도 대답했습니다.
-모른다냥. 그런데 4일? 왜 그리 시간이 지난거냥!! 그리고 그거 못 먹는다냥! 놀리지 마라냥!!
-양 눈은 똑바로 달려있다냥. 이명? 이명 있다냥. 다섯글자다냥.
-진윤태 박사? 주인님과 마스터의 친척 중에 그런 이는 없다냥. 근데 그건 왜 묻는거냥?
-마스터는 이 대화를 들을 수 없다냥. 그리고... 내 의지다냥. 난 아린 주인님의 안전을 위해서 움직이다냥. 4학구가 소멸하면 4학구에서 살고 있는 아린 주인님도 소멸한다냥. 그리고 살아남아도 슬퍼할거다냥. 아린 주인님의 친구는 모두 4학구에 있다냥.
차례차례 들려온 물음에 대답하는 것과는 별개로 은우는 가만히 머리를 굴렸다. 지금 이 상황이라면 크리에이터가 사실상 배신자라는 것이 확실시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불렛은.... 아니. 애초에 그럼에도 조금 더 머리를 굴려야 할 것이 더 많았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보인 모습이 모두 연기라는거잖아. 하지만 꼭 그렇게 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던거야?"
은우조차도 좀처럼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지, 그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작게 혀를 찬 후에 일단은 생각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리고 리라와 청윤의 말에 각각 대답했다.
"협박을 당하는진 아직 확실하지 않아. 만일의 경우라는 것이 있으니, 너무 그쪽으로 생각하진 마. ...경우에 따라선... 그 아저씨가 보인 모습 자체가 모두 연기일 수도 있으니까."
"우리가 할 일은 하나야. 4학구의 소멸을 막는다. 그렇다면...크리에이터를 막을 수밖에 없어. 레드윙을 데려간 것이 크리에이터라고 한다면 더더욱 말이야."
"...자신 있어? 오빠? 이 말대로라면 상대는 제 5위잖아."
퍼스트클래스 제 5위. 크리에이터. 당연하지만 은우보다 훨씬 강한 상대입니다. 만약 맞붙는다고 했을 때... 얼마나 가능성이 있을까요? 그걸 알기에 은우도 좀처럼 바로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은우는 모두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습니다.
"일단... 그 안전가옥...이라는 곳을 내가 알아볼게. 최대한 빠르게 말이야. 그리고 이번만큼은 너희들에게 강제로 도와달라고 할 수가 없어. ...나보다 더 강한 이야. 제 5위 크리에이터. 솔직히 말하자면...나도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는 존재야. 그러니까... 2일 뒤에.. 나와 함께 할 거라면 여기로 모여줘. ...설사 빠진다고 해도 원망하지 않을게."
"아니! 도와주세요! 부탁이에요! 물론... 어려운 거 알아요! 아는데!! 이 오빠 알잖아요! 혼자서라도 처들어갈거라는 거. 이번만큼은... 오빠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도와주세요!!"
이어 세은은 은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하게 외쳤다. 물론 그녀로서도 이 부탁이 얼마나 무모한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거절한다고 해서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낼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은은 부탁했다.
"....부탁할게요."
"........"
이어 은우는 조용히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더니 숨을 후우 내뱉었습니다. 그리고 저지먼트 멤버들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건 은우의 작은 부탁이었습니다.
"...도와줘. 잘은 모르겠지만... 그 아저씨가 정말로 배신자라고 한다면, 4학구를 날려버린다고 한다면... 막아야만 해. 그 아저씨가 지금까지 보인 모습이 연기이건, 아니면 협박을 당하는 것이건 이대로 둘 순 없어. 그러니까... 도와줘."
은우의 몸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 역시도 무서웠겠지요. 이후 이들이 뭐라고 대답을 하건... 아마 자연히 자리는 해산되었을 것입니다. 몰래 나가던지, 아니면 여기서 의사를 밝히던지 그건 자유였습니다.
모두에게 주어진 것은 2일의 시간. 그 2일의 시간동안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지도 모릅니다.
/오늘자 스토리는 여기까지! 원래 네비게이션은 내일 나올 예정이었지만... 일단 조건 달성으로 조금 빠르게 진행되었어요. 내일은 스토리가 없고... 음. 다음주부터..3주간 스토리가 진행됩니다!! 쭈욱 이어져요!!
다들 늦은 시간까지 수고했어요!
그리고. 네! 배신자는 크리에이터가 맞습니다! 크리에이터라는 것을 알고 지시사항을 보면 모두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예요!
협박을 당하든, 다른 꿍꿍이가 있든, 대학살을 막아야했다. 그건 당연한 것이었다. 공리주의자에겐 말이다. 청윤은 잠시 부원들을 둘러봤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봤다. 은우 선배가 떨듯 떨리고 있었다. 승산은 낮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자칫하다간 우리가 4학구 신세가 될 가능성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것이 옳은 일이니까요."
청윤은 잠시, 자신이 진짜로 공리주의를 위해 움직이는 것인지 까먹은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캡틴, 이건 갑자기 든 엉뚱한 호기심인데요, 저번 스토리의 연구소 조사 때 크크큭맨이 연구소에서 나타났을 때, 만일 거기에 정말로 적절한 캐릭터들이 크크큭맨과 마주쳤고, 그들이 최선의 능력 사용 및 행동으로 크크큭맨을 무사히 제압하고 무력화해서 크크큭맨을 체포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면 추후 전개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아무 상관없는 if 이야기이니 스루해주셔도 좋아요.
선 아녜스 아동 청소년 복지 센터는 꽤 큰 신축 건물에 자리잡고 있었다. 신경써서 잡은 구조, 외관의 모양과 내부의 인테리어. 이만한 규모를 갖추기까지 꽤 오랜 세월이 걸렸다고 전해 들은 바 있었으니 새삼스럽게 건물의 퀄리티에 대해서 놀랄 필요는 없다. 이곳은 네 명의 대표들이 마음 모아 손길 모아 촘촘히 쌓아올린 결과물이자 하나의 상징이나 다름없었으므로. 인첨공 아이들의 보금자리. 대피소. 은신처. 요람.
그 가치에 걸맞게 두터운 보안을 자랑하고 있다는 것 또한 알았지만, 이런 위치에 사무실이 있을 줄은 몰랐다. 리라는 사면에 창문 하나 없는 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내부는 다소 너저분하다. 온갖 잡동사니가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환기가 잘 되지 않았는지 무거운 담배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섞여 공기의 무게를 더한다. 얼룩 남은 화이트보드에는 여러 메모가 남아있지만 태어나서 본 것 중 가장 훌륭한 악필은 그 내용을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
"여기서 문이 두개인 사무실은 처음 봤어요." "그렇겠지. 내가 사비로 달았거든."
인첨공의 발전한 기술은 생활의 경량화를 가져왔으나 그런 일상적 풍경이 무색할 정도로 시현의 사무실은 다소 고전적이었다. 책장으로 꽉 찬 벽면에는 수많은 책과 종이, 수첩과 노트, 파일들이 꽂혀 있었으며 전자기기라곤 천장의 전등과 책상 위의 스탠드 라이트가 전부였다. 도서관이 아니면 쉽게 보기 어려운 책의 폭포에 리라의 몸은 자연스레 책장 쪽으로 기울어진다. 책등과 간간히 보이는 표지에는 주로 학술서적이나 논문의 제목으로 추측되는 글자들이 단정히 수놓여 있었다. 커리큘럼으로서의 고농도 고용량 약물 요법, 전기충격요법으로 시도하는 초능력 각성 이론, 밀실과 연산능력 향상의 관계성, 색채심리학과 퍼스널 리얼리티의 연관성, 영구적 상해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음향은 뇌세포에 어떠한 변화를 야기하는가... 대체로 그런 것들.
"거기! 그만 보고 이거나 받아!"
동시에 휙 하니 무언가 날아오는 느낌에 손부터 뻗어 붙잡으면 정체는 커버가 단단한 두꺼운 수첩이다. 이걸 지금 잡으라고 던진 건가, 이 선생님. 내가 못 잡았으면 어쩌려고! 가볍게 눈을 흘기면 시현은 자기 죄를 자기도 안다는 것처럼 양손을 애매하게 들고 항복의 의사를 표한다.
"그래서 이게 뭔데요?" "네가 좋아할 만한 거."
아니, 그래서 그게 뭔데...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표지를 넘기면 빼곡히 적힌 글씨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화이트보드에 쓰여진 것과 똑 닮은 악필. 그러나 그것보다는 조금 더 읽기 편하게 정리되어 있는. 그러니 이걸로 작성자를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 다만 뒤따르는 의문은 그 글자들이 함유한 정보에서 비롯된다.
"날짜가... 12년 전이네요." "오래됐지." "가온... 데 마레... 로벨. 부용... 이거 다 연구소 이름 아니에요?" "옆에 써 있는 거 보면 모르냐." "이걸 왜 저한테 주세요?" "연구소 공부한다며."
지금 그걸 묻는 게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 텐데. 리라의 눈이 가늘어진다. 하지만 리라는 그가 저런 화법을 구사하는 동안은 질문을 아무리 퍼부어봤자 유의미한 답을 얻을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거 보여주는 대신 조건이 있다." "뭔데요?" "아무데서나 막 검색하고 다니지 말 것. 정리는 노트에 할 것. 뭔가 궁금한 게 있으면 여기 와서 찾거나 학교에서 찾을 것." "......어렵지 않죠. 그럼 저 이제 가도 돼요?" "아니? 뭔 소리야. 내가 언제 가져가래?" "네? 안 가져가면 어떻게 봐요?" "베껴 가. 종이에."
다시 말하지만 이 수첩은 두껍다. 상당히 두꺼운 하드커버 수첩이란 말이다.
"진심이세요?!" "응. 나도 했는데 네가 왜 못 해?"
리라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수첩의 내용 자체는 탐이 나는 게 사실이지만 조금 있으면 학교로 돌아가 진행해야 할 커리큘럼을 생각하니 마냥 손목을 과하게 놀릴 수도 없는 노릇. 어쩐다.
커리큘럼이 끝나고 돌아오겠노라 못박은 뒤 떠난 리라의 자리에는 딱 그의 손 크기와 똑같은 새하얀 손 하나가 펜을 붙잡고 수첩의 내용을 노트에 베끼고 있었다. 시현은 마치 시체에서 손만 잘라온 것 같은 그것이 제 글씨를 똑같이 베끼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담배갑을 들고 사무실을 나갔다.
"에휴, 귀찮은 꼬맹이 같으니."
그래도 차라리 이렇게 하는 게 낫다. 센터의 현관을 나선 시현은 곧장 라이터를 꺼내 연초에 불을 붙이고 빨아들인다. 매캐한 연기가 깊이 스며들었다가 뱉어진다. 아찔한 두통이 관자놀이를 타고 올라가니 바깥 햇빛이 유독 더 따갑게 느껴져, 그는 눈쌀을 찌푸렸다.
"...이 아저씨가 이런 사람이라서 말이야." "용서하라고는 하지 않을게. 평생 원망하렴." "원망하고 원망하고 또 원망하렴. 이 아저씨를." "이 장치로 극한으로 만들어서 네 데이터를 최대한 뽑아달라고 하니 아저씨도 어쩔 수 없어서 말이야." "이 아저씨를 평생 원망하렴."
-4학구 어딘가에서 크리에이터가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양손과 양발이 모두 강력한 전기가 흐르는 쇠사슬에 묶여서 벽에 걸려있는 레드윙을 바라보고 있는 모 시간.
15년 전에는 ALTER의 이름이 알터가 아니라 알타였답니다. 인첨공 초기 연구소들 중에서도 피실험자의 치사율이 독보적으로 높기로 탑 3 안에 들었고, 그만큼 연구의 진척도 불도저같이 이루어졌어요. 연구원이고 피실험자고 평등하게 갈려들어가는 곳이었죠. 물론 피실험자 치사율은 철저히 불문에 붙여졌지만, 일단 사정을 모르는 연구원이나 피실험자 혹은 학생들도 알타라는 연구소는 엄청나게 빡세게 한다더라, 하는 인상 정도는 갖고 있었을 거에요. 알타에 연구원/피실험자로 들어간 내 친구 내 친척 누구누구가 연락두절이다 하는 괴담도 많았을 테고요. 인첨공에서 연구원 짬이 13년 이상이거나 중견 간부급의 인사라면 인첨공 초기의 알타가 얼마나 미쳐돌아가는 곳이었는지 정확히 알고 있을 수도 있어요. 물론 그 댓가로, 알타는 개국 이후 2년만에 인첨공의 전체 커리큘럼을 관통하는 핵심 이론들 중 하나인 균열장 이론을 정립하여 커리큘럼이라는 개념의 근간을 닦는 성과를 이루어냈어요. 그리고 그 이듬해에 ALTER로 이름을 바꾸면서 커리큘럼의 개념을 정립, 초기의 시행착오를 거쳐가면서 학생 정원을 줄이고 능력 개화율을 높여나간 끝에 현재의 명문 연구소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10년 전이라고 하면 이미 커리큘럼 과정이 제법 안정화되어, 사람 잡아먹는 연구소라기보다 가장 앞서 성과를 이룩해낸 명문 연구소라는 이미지가 강해진 후겠네요. 그 과정에서 잊혀진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려진 바 없어요.
차해리는 느릿하게 찻잔을 들어올렸다. 그 안에 든 것은 따뜻한 동백차였다. 그걸 지켜보는 건 당신이었습니다. 어두운 공간에 희미하게 빛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인가요?] "조금 다른 느낌이겠지? 넷은 필요하지..." "안타깝게도... 둘은 살아있는 게 아니니..." [살아있다고 볼 수 없지만 동시에 살아는 있지요.] "헬라 같은 방식으로." 그녀는 잔을 홀짝였습니다. 어딘가에 둥둥 떠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수경의 오늘 커리큘럼은 여름인 만큼 아이스크림 배송이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뜬 다음 차곡차곡 쌓는 게 가능하다고요!
물론 수경은 스쿱으로 뜬 다음 이동시키는 식이었지만... 녹지 않고 그릇에 담긴 채 바로 먹을 수 있다는 건 매우 칭찬받을 일입니다. 수경이 원했냐와는 별개로요.
"...리태 연구원님.." 진호에게도 아이스크림을 내미는 수경입니다... 차인 건 아니지만 사정이 있어서 못 만나고 있어서 흑흑거리는 꼴이... 아주..
노예 출신 암살자나 더러운 일 위주로 하는 이름 없는 기사⬅️ 휴우...... 아닌 새벽에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참치 근데 좋다 예전에 풀어줬던 썰에는 암살자나 기사 하다가 주인공 만나고 지내던 곳을 떠나는? 그런식으로 나왔었는데 후후 후후 재밌군... 늦은 시간에만 휘장 뒤편에서 황제 알현하는 피투성이 기사님 최고네요🤤 마히다.
두려움+호기심(이거진짜그럴거같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근데 나도 진짜 그럴 거 같다(...) 성에 들어오고 얼마 안 된 상황에 잠도 안 오고 하니 몰래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하는거지 그리고 추격.(?) 제대로 들키는 건 좀 더 있다가 그럴 것 같은데 그와 별개로 랑이는 리라가 뒤 밟는 첫날부터 대충 뭐가 따라온다는 걸 알고 있었을 거 같네🤔 처음 한두번은 어차피 금방 놓치니까 굳이 품 들여 쫓아낼 이유를 찾지 못해서 냅뒀는데 갈수록 잘 쫓아오니 언질 주려고 마주치는거지... 그리고 그날부터 뒤만 쫓는 게 아니라 본격적으로 말을 걸기 위해 쫓아다니는 이리라(랑이: (피곤))
로판au 리라는 길거리 무희 출신이다보니 성 안에 일찍이 적응할 거 같지도 않고 그로 인해 사용인들 또한 리라를 존중하지 않을 거라는 적폐가 있어🤔 웬만한 황궁 사용인들보다도 출신성분이 낮아서 은근슬쩍 무시당할지도 이 au의 랑이도 출신때문에 그런게 좀 있으려나 이름 없다는 것부터 그럴거 같긴 한데 후우
나중에 친해지면 수건 데워와서 굳은 피 닦아주고 맨발로 높은 나무 타고 올라가서 수다떨고 그런 걸 보고싶군
자신 하나 때문에, 제 동생이 위크니스가 되고, 심장에 생체 칩이 달리고 나서 얼마되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욕실의 물이 붉게 물들고,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이후의 날. 그의 병실에 한 남성이 찾아왔습니다. 은우는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 자는 제 5위. 크리에이터. 퍼스트클래스가 되고 모두에게 소개를 받았을 때 봤던 바로 그 남성이었습니다.
"요 녀석. 아저씨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니?"
실눈을 뜨고 안경을 끼고 있는 그는 엄격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딱히 꿀밤을 때리는 일도 없었고, 주먹을 휘두르는 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목소리는 상당히 엄격했고 묘한 카리스마를 풍기고 있었기에 은우는 침대에 누운채,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습니다. 자신을 혼내려고 온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기에 아직 중학교 3학년인 그는 살짝 겁에 질린 모습을 보였습니다. 상대는 자신보다 강한 퍼스트클래스. 그것도 안티스킬. 즉 경찰이기에...
"많이 힘들지? 아저씨도 알아. 아저씨도 비슷한 상처를 입었거든. ...그래. 아저씨도 잘 알아."
"......"
하지만 이내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자상한 어투로 바뀌었습니다. 당연히 자신을 혼내러 왔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은우는 크게 당황했습니다. 이내 크리에이터는 손을 뻗어 은우의 보라색 머리카락을 천천히 손으로 쓰다듬었습니다. 이어 그는 다시 자상한 목소리를 이어나갔습니다.
"하지만 함부로 죽고 그러면 안돼. 어떻게든 살아야지. 살아남아야지. 절대로 굴하면 안돼. 물론 힘든 것은 아는데... 너처럼 아직 젊은애가 죽고 그러면 안돼. 네가 죽으면... 네 동생은 어떻게 되겠어. 이 아저씨 생각에는... 네 동생도 아마 많이 힘들어질거야."
"......"
"그래.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니. 모두 이 썩어빠진 인첨공 놈들이 잘못된거지. 어쩌자고 이런 짓을 계속하는 것인지. 이 아저씨는 한탄이 절로 나와. 이렇게 되어야만 하는 환경이 말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말이야. 너에게 위크니스가 소중한 이듯이, 위크니스에게도 너는 소중한 사람일 거라고 아저씨는 생각해. 네가 느낀 그 충격은... 너의 소중한 사람도 느꼈을거야. 그러니까... 죽지 말렴. 살아주렴."
"......"
"이 아저씨가 미안해. 어른인데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서 미안해.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이 아저씨가 많이 도와줄게. 너희가 힘들어지면 이 아저씨가 적극적으로는 아니어도 조금씩 지원해주고 그럴테니까. 응? 퍼스트클래스거든. 이 아저씨도. 물론 비밀이긴 한데 어쨌든... 너희가 너무 힘들어지지 않게 도와줄테니까... 살아주렴. 알겠지? 이 아저씨와 약속해줄 수 있지?"
"......"
"그래. 그래.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아. 아저씨가 이런 말 한다고 바로 받아들일리가 없는 거 잘 알아. 하지만 아저씨. 의외로 끈질기거든. 그러니까 앞으로도 시간 나면 천천히 올게. 다음에 이 아저씨랑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아저씨.. 이래보여도 돈 꽤 많아. 허허허."
"......"
"이 아저씨는 정의의 편이거든. 안티스킬. 알지? 경찰! 이 아저씨를 믿고 한번 이 악물고 살아봐. 소중한 이를 위해서 말이야. 그러다가 힘들면 이 아저씨에게도 기대도 괜찮고. 아. 다른 네 또래의 퍼스트클래스도 있거든. 다음에 이 아저씨가 데리고 올게. 아. 이미 서로 아는 사이였나? 아무렴 어때. 다음에 이 아저씨가 데리고 올게. 그러니까 그때까지 얌전하게 치료 잘 받고.. 알았지? 눈에 힘 좀 주고. 허허허."
그 날, 은우는 미소를 내비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크리에이터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마치 자신이 아버지라도 된 것처럼 은우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었습니다.
그 손길이 묘하게 따뜻하다고 은우는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 사실을 굳이 입밖으로 내보내진 않았습니다. 말을 하려고 했을 때, 크리에이터는 커다란 사건으로 매우 바빠졌으니까요.
"......"
자신의 방에 앉은 은우는 조용히 생각했습니다. 자신은 어떻게 해야할지... 믿고 싶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한가지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의 시선이 책상으로 옮겨졌습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달빛이, 크리에이터와 레드윙, 웨이버, 그리고 자신이 함께 찍은 사진을... 크리에이터가 품 안 가득, 세 명을 안으면서 웃고 있는 사진을 조용히 비추고 있었습니다.
[상처받은 마음에 더 이상 자리가 없어 겉으로도 드러나게 되었지만, 알아주는 이 하나 없다.]
[9월 15일의 마지막 기록] 언제부터인진 모르겠어. 그냥, 정신 차리고 보니까 그곳에 있더라고. 그저 웅크리고 앉아서는 벽만 보고있었지. 뭔가 말을 걸어온다거나, 움직인다거나 하지도 않았어. 그래서 우리도 그걸 그냥 방치해놨지. 꽤 오랫동안 지켜봤지만 위협이라는 생각이 안들었거든.
가끔씩... 뭔 흰색 털뭉치 하나가 같이 있기도 했어. 그땐 조심해야해. 그 흰색 털뭉치가 옆을 지킬때 근처에 다가가면, 별로 좋은 꼴은 못보거든.
아무튼, 그게 혼자 있을 때는 근처에 가면 흐느끼는 소리만 들려. 얼굴을 완전히 파묻고 있으니 표정이나 생김새같은건 모르지만, 여리여리하고 머리가 긴걸로 봐선 사람이라면 여자겠구나 싶은?
우리가 여기 배정받기 전에 딱 한번, 이 괴이를 담당하던 녀석들이 말소 작전을 진행했었는데... 결과적으론 뭐, 괴멸 수준도 아니었대. 전부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난자가 돼있었다나. 몇몇은 천장이나 바닥에 찌부러져있었다더라. 생존자 0. 그쪽이 괴이 사냥 부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던걸 생각해보면, 꽤나 충격적인 결과였지. 그 이전과 이후에 달라진거라고 해봤자 상처 뿐이야. 부대에서 피해를 입히긴 한거지. 그 상처는 지금까지도 아물지 않고 있어.
그 이후에는 그냥 저기에 둔 상태로 방치하는 중이야. 괜히 깨웠다가 무슨 난장을 만들지 모르니, 본부에서도 그냥 냅둔채로 살자는거지. 본부가 제거를 포기한 괴이는 저게 처음일걸?
그나저나 여기에 여자가 배정받는건 또 처음이네. 커리큘럼인지 뭔지 하는 부작용이 쎄서 흑발 흑안인 사람은 찾아보기 힘든데. 아, 이쪽에 들어온지 얼마 안됐구나? 그럼 일단 그것부터 확인하러 가자. 위협은 안돼도 매일 상태 체크는 하고 있거든. 여기가 워낙에 변칙적이어야지.
[뚜벅거리는 묵직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녹음 종료]
웅크리고 앉아 구석을 바라보고 있다. 얼굴은 완전히 파묻고있어 보이지는 않으나, 마지막 목격에 의하면 그저 검은 구멍에서 검은 눈물을 끊임없이 흘려내고 있다고 한다.
가까이 다가가면 그저 흐느끼는 소리를 낼 뿐이지만, 한 번 자극하면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자극한 대상에게 달려든다. 그것은, 자신을 공격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 같은 것을 표출하는 것이 아니다. 죽이지도 못하면서 상처만 늘린 것에 대한 분노다. 삶의 의지는 이미 옛부터 사라졌지만, 그것을 죽일 수 있는 이는 없다. 어쩌면 그것도 알고있을지 모른다. 마음만 먹으면 없앨 수 있는 상처가 아물지 못하고 흉터처럼 자리잡게 되는 것이 그 근거일테다.
가끔 그것의 곁을 지키는 흰색 털뭉치가 있다는 보고가 올라온다. 흰색 털뭉치는 그것에게 가까이 붙어앉아 비비적거리거나 동물이 사람을 핥는 듯한 모습을 표방하곤 한다. 주변에 불청객이 가까이 다가가면 낮게 으르렁거리다가, 일정 거리 이상 접근하면 공격한다. 해당 털뭉치에 대해서는 다른 문서에 서술되어있다.
그것은 어쩌면 자비를 베풀고 있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만큼 똑같은 자리에 똑같은 모습으로 되돌려준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버렸기에, 같은 모습일지라도 인간은 버틸 수 없다. 그 많은 상처는 누가 내었으며, 그것이 삶을 포기하게 만들어 버린 것은 누구인가.
그것이 자비를 베풀지 않는 순간이 있다. 정확한 조사가 더 필요하지만, 현재로써는 검은 머리와 검은 눈을 가진 여성에게 비상식적으로 거대한 적개심을 품고있다는 것만을 알 수 있다. 해당 모습의 여성이 그것이 인지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갈 경우, 평소 자극되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비명을 지르며 여성을 공격한다. 여성이 어디로 숨던 찾아내어, 가로막는 장애물을 모두 분쇄하며 여성을 공격한다. 한 번 공격이 시작되면 막을 수 없으며, 여성의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피해를 입히고서야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마음의 상처는 치유될 수 없다. 상처받은 마음에 더 이상 자리가 없어 겉으로도 드러나게 되었지만, 알아주는 이 하나 없다.
─ 이 독악한 것. 이시미는 이시미인 모양이구나. 안승환 그 작자가 어떻게 이런 것에게 사슬로 모가지를 묶어 억압했는지 경탄스러울 지경이야.
태오는 기억을 더듬으며 폐목했다. 세상은 데 마레의 신시申時 햇살 쏟아지던 눈부신 날로 되돌아간다.
"태오야." "네."
어린 태오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혜우는 낮잠을 자고, 희야는 윤 선생님의 손을 잡고 4학구의 스케이트장으로 놀러 간 날. 퇴창의 쿠션 더미에서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다 고개를 기울이면 움직임에 따라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고, 리넨 커튼에 비친 연노랑 빛 햇빛 너머로 새하얀 점 같은 먼지들이 하늘하늘 춤을 추던 날.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득도 없는데 동물을 그냥 죽이고 그러는 것을 싫어한단다." "그러면 돼지랑 소, 닭 같은 동물은요?" "먹으려고 동물을 죽일 때는 법에 정해진 도축 방법이 있지. 하지만 보편적으로 거기에서 벗어나서 죽이는 것을 싫어하는 법이야." "어차피 다들 저를 싫어할 거면서……." "그게 무슨 소리니?" "어차피 언젠가 저에 대한 쓸모를 잴 거면서, 그 가치에다 새로운 기준을 또 정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워요."
승환의 표정은 새하얀 빛에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나치게 이른 나이에 환멸을 깨달은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누구도 모른다. 아버지가, 그리고 어른의 역할이 처음이었던 승환도 무언가 조언하기 어려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태오야. 우리는 인간이잖니. 그리고 삼촌은 널 미워하지 않을 거란다."
그날 태오의 손에 들려있던 조그마한 새는 죽은 지 오래였다. 어린 태오는 생각했다. 창틀에 머리를 박아 곧 죽을 녀석이었기에, 더 고통받지 않게 목을 꺾어 먼저 보내준 것인데 왜 다들 이 간단한 것을 혐오스러이 여기는가.
개목하고 다시금 폐목한다.
세상은 스트레인지 유시酉時의 햇빛 쏟아져 시야 명멸하던 날로 되돌아간다.
"태오야." "예."
아직 앳된 기색 가시지 않던 태오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소파에 앉아 나리께서 친히 따라주신 차를 마시고 역으로 내리쬐는 낙조의 단말마에 뒤통수에 열이 오르며, 그것이 불편하여 고개를 기울여도 햇살 떨어질 기미 없고, 새붉은 것이 튄 리넨 커튼에 비친 단색 햇빛 너머로 먼지 하나 없던 날.
"인간들은 참 우습지. 이득도 없는데 동물 몇 죽이면 야만적이라 해놓고 정작 취미로 사냥을 앞세우고, 인첨공에서 레벨로 쓸모 정해서 낙인찍은 주제에 거기에 또 법을 들이밀면서 그래도 더 폐기물처럼 살기 싫으면 입 닥치라 하고." "……." "인간이니 뭐니 해도 결국 그 안에서 짐승으로 취급할 것을 나누는 주제에, 기어이 우리를 천 것으로 몰고 말이다." "어차피 기대도 안 했어요. 남들에게 이해를 바란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거니와 미워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도 믿지 않는걸요." "퍽 우스운 말이야. 그들이 네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어도 미워하지는 않노라 지껄이는 연유라 함은 이해하지 못했으니 미워하지 않는다는 뜻 아니겠더니?"
나리의 표정은 새빨간 빛에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나치게 이른 나이에 환멸을 깨달은 아이와 어른은 서로를 잘 이해했고, 이해하지 않으려 들었다.
"하지만 태오야. 우리는 결국 인간이구나, 이 바닥에서 지내서 천한 짐승 취급받을 뿐이지."
그날 나리가 머리채를 쥐어 들어 올렸던 사람은 머리에 바람구멍이 나 죽은 지 오래였다. 태오는 생각했다. 인간이되 짐승인 자는 이 바닥에서 쉬이 죽는다. 쓸모를 다 하였으니 더 고통받기 전에 보내주는 것인데 어찌하여 바깥사람들은 이것을 혐오스러이 여기는가.
죽음은 인간의 삶에서 무엇보다 밀접한데도. 태오는 발치에 스민 피를 보며 찻잔을 마저 기울였다. 색이 붉은 탓은 낙일의 새된 비명 탓이요 낙조의 스밈이라 믿고 폐목한다.
그리고 지금 개목하니 섬휘 찬란히 드리운 열대야는 습한 공기를 방에 가득 채우고, 목덜미에 고개 파묻은 남성의 머리카락에 고개 파묻으며 느릿하게 일소했다.
"무엇이 우습니." "스스로에게 배신 당한 기분이 어떠냐 여쭈셨지요." "답할 생각이 들었구나." "결국 저들도 짐승에 불과함을 내가 깨달았으니 굴은 도래할 곳으로 삼기에 너무 좁았구나 하였답니다." "그래서 그때 지금 당장 나서는 것이 두려운 것이냐 소리쳤구나." "그런 셈이지요."
나의 삶은 낙일이자 낙조의 스밈이니 이후에는 몰각함 기다리고, 샐녘 다가오겠으나 짐승들의 도래로 승천하지 못하니 천일 다시금 마주할 일 없으리라.
옷자락 살짝 집으면 은근히 몸이 굳어버린 유한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수경이가 은근 장난기가 있는 편이었으니 마음만 먹으면 슉 하고 넣을 수 있다... 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을까. 물론 어디까지나 카트에 태우려고 더 부추기면, 의 이야기겠지만... 그렇기에 유한은 부추기는 것을 중단했다. 아무리 그래도 본인이 타고싶은 마음은 없었으니까.
"에이. 그래도 어느정도는 쓸데없는걸 사도 괜찮잖아?"
유한은 얌전히 꺼내서 들고있을 수경이를 향해 살짝 투덜거리듯, 악마의 속삭임을 계속해나갔다. 정말로 속삭이듯이 조용한 목소리로 소근소근 말하기도 하면서.
"너도 예쁘다고 생각하는거, 많잖아? 조금 정도는 사도 괜찮지 않을까? 이런게 다 추억감이고 나중에 돌아봤을때 재미있는 기억인데 몇개 정도는 괜찮을거야. 그치?"
-... "...?" 분명 누군가 있었는데. 같은 표정을 지으며 옷자락을 놓아주려 합니다. 조금 찜찜한 것 같지만. 그다지 드문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수경은 금방 털어버리고는, 협박이 아니라고 하려 하네요
"협박이 아니에요. 그냥.. 잡아당긴 것 뿐이니까요." 수경의 능력을 생각하면 협박에 가깝지만 뭐.. 본인이 아니라고 부정하긴 하니까..
"저는 예쁜 게 어울리지 않아요. 사는 건... 그렇죠..." "예쁜 걸 산다고 해도 개인적으로 사는 거지. 비품으로는 안되는걸요." 수경은 고개를 젓긴 하지만 일단 다른 비품을 사고 나서 결정하겠다는 듯. 볼펜은 있던 자리에 놓아두려 합니다. 하지만 볼펜을 다시 넣어도 모를 만하게 등을 돌리고 있으니까요.
예전에는 나이프를 썼었다. 그게 정확히 언제더라. 몇년 된 걸로 기억한다. 거기다가, 나이프를 주력으로 쓴 것 뿐이지 나이프만 쓴 것도 아니었고. 총이라던가, 둔기라던가, 벽돌이나 쇠파이프 같은 것도 썼다. 나이프가 주였던 것은 간단하다. 나이프는 들고 다니던 사람이 많아 구하기도 쉬웠을 뿐이다. 어린 시절 내게는 무기를 선택할 여유조차 없었다. 뺏은 돈으로 밥먹고 최소한의 삶에 들어가는 돈을 내고나면 다시 빈털터리였다. 그러다보니 딱히 수단을 가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주먹은 물론이고 필요하다면 물어뜯고, 할퀴고, 찌르고 후려치고. 그 당시의 나를 회상하자면, 굶주렸을 뿐인 들개새끼. 그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나를 개취급 하던게 최근에 하나 있었던가...'
어찌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한편으로, 지금 이 생활 정도면 정말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했다. 비록 머리아픈 일이 많이 터지긴 해도 주변에 사람이 있으니까. 배곯지 않고, 좋은 사람들이 있고.
"아직까지 그렇게 특별할건 없어보이는 집단이네." "개개인에 대한 비밀은 깊고 많지만, 그게 없는 집단이야 인첨공에서는 드물고..." "...은근히 단합이 잘 되는지, 아닌지 헷갈린단 말이지. 조금은 개인주의 성향을 띠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드네."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어. 다들 재미있고, 따뜻하니까.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말이야." "이런 느낌이면 아마, 서로에 대한 비밀들이 터져나오면서 잠시 삐그덕거릴지도 모르겠지만..." "다들 좋은 녀석들이니 그런 것도 언젠가는 잘 넘길 수 있겠지, 응."
소매 딱 걷는 순간, 손끝이 붉다 못해 검게 물든 거즈로 둘둘 감긴 창백한 손 나오고 혜우 한 박자 늦게 보지마!!! 하면서 손 뿌리치는데 거즈 몇개 벗겨져서 손톱 없는 손 나옴 그거 다시 소매로 감추면서 뒷걸음질 퀭한 눈 희번득하게 뜨고 아주 약한 히스테릭 증상 나오면서
"...." 그것이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고개만 살짝 돌리려 합니다. 수경은 그런가? 라는 말을 하는 것에 괜찮은 건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곳으로 갈까? 라는 것에 살짝 당황한 듯 손을 내젓습니다. 그냥 다른 데를 간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니까요.
"아. 아니요. 카페에 갈 거라는 걸 예상하지는 못해서 그래요." 생각해보니까 카페에서 맛있게먹은 건 기억난다. 정도겠지? 지금은 그렇게 여기는 게 맞을 것이다.
"....굉..장히.. 달아보이는데요." 수경은 아아를 시키려 했겠지만. 이걸로 먹어보라고 추천하면 추천받은 대로 시켰을지도? 그래도 케이크나.. 가장 잘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건 조금 고민하기는 해도 시켰을 것이다.
내가 독악한 것이라 하였지요. 태오는 대뜸 물었다. 나리는 시선을 들어 태오를 흘깃 쳐다봤지만 시선이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나리는 파묻었던 고개 사이로 뺨만 느릿하게 스쳤다. "그렇지. 네 독악하기 짝이 없지." 그리 대답을 하니 흐린 웃음이 터졌다. "나는 죽어 마땅하겠어요."
오늘도 어김없이 병든 속삭임을 뱉으니 나리의 시선이 가늘어진다. 등허리를 껴안던 손이 스치듯 올라가 목을 받치면 태오는 목을 가누며 자연스럽게 허공에 시선을 꽂았다. 암실은 온통 어둠만이 가득하고, 나리의 무릎에 앉아 바라본 창 너머도 퍽 어둡기만 하다. 나의 삶은 낙조의 스밈이라 생각했는데 몰각이었구나.
"누구도 악한 것 좋아하지 않고 천시하니 사람들은 필히 나를 사냥할 거예요. 어떤 방식으로든 끌어내리고, 목을 매달아 가죽을 벗긴 뒤 이것이 사악하여 승천도 못한 녀석의 가죽이라며 전시하겠죠……."
흘리던 단어를 하나하나 이어붙이며 태오는 손을 들었다. "그러면 그때 당신이 나를 흔적도 없이 불태워주면 좋겠어요." "내게 죽여달라고 비는 방법도 있을 텐데." 머리를 껴안는 상냥한 손길에 세로로 찢어진 붉은 동공이 속눈썹 사이로 사라졌다.
"그건 싫어." "왜?" "그건 사랑한다고 말하는 거나 다름 없으니까." 태오는 매달리듯 머리 안은 팔에 힘을 살짝 주었다. 나리는 손길대로 고개를 파묻으며 나지막이 웃었다. "싫어?" "그러니까 오늘은 내 살을 가르되 속은 헤집지 마. 상처만 줘. 역겹다 욕하고 침을 뱉어도 좋으니까."
나리는 침묵했다. 머리카락 스치는 소리외 함께 태오는 눈을 감으며 몸을 웅크렸다. 손아귀가 새하얗게 물들고 목 물린 짐승처럼 바르르 떨다 허공을 올려다보며 웃었다.
"아까 그 애랑 친해? 그래, 친하구나. 그렇게 보이긴 했어. 응? 친한 사람이 많으면 좋은건데 뭐.." "...친한 거랑 좋아하는 거랑 다르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괜찮아. 네가 좋아하는 건 나잖아." "그래도 바로 나한테 안왔던 건 조금 서운했어. 나는 바로 와줄 줄 알았단 말이야." -보통의 경우.
"좋아하는 사람은 나잖아. 날 좋아하는 거 맞지?" "그렇다고 이야기해주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제발. 날 좋아한다고 말해줘. 지금." -일정 조건 달성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