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꽃 꽂은 태가 퍽 이쁘장해서 은연중에 소리 내어 헛웃음 냈다. 덕담하기엔 낭만이 야박해서 비유할 거리를 한참 궁리했다. 침묵으로 제 목덜미 만져도 봤지만 도통 허울 좋은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잠시 상판 전체를 눈여겨봤다. 흉흉했던 기색은 풀렸지만, 안광은 으레 고약했고. 입 다문 낯짝에는 겨울이 드리웠다. 그런데도 귓가의 봄을 여미는 태도는 퍽 상반된 것이라, 여러모로 우습긴 했다. 모로 보나 올곧이 보나 아무렴 미친년이 제격이다. 기어이 그리 여기자고 속으로 되뇄다. 말 나누는 종래로 희미했던 경 읊던 소리가 그쯤 뚝 끊겼다. 어스름에 걸쳤던 자잘한 빛무리 또한 말소하니, 생채기 난 등불 몇이 초저녁을 밝힌다. 사방이 거뭇했으나 눈은 전보다 또렷하다. 덕분에 이따금 낯빛조차 선명하다. 비죽 휘어지는 입꼬리며 웃음을 내기 전 부드럽게 벌어지는 입매까지. 욕 처먹고 웃는 년은 또 처음 본다, 핀잔주며 내민 손이나 맞잡았다.
"해 다시 뜨면 뭐 꽂아줄까."
철 지난 꽃은 버림이 당연하다. 곧 여름이고 하니 수국을 꺾어볼까 하다가도 그곳까지 남은 날이 떠올라 단념한다. 정 변변한 게 없다면 마른 나뭇잎이라도 꽂아주면 될 일. 여분의 손으로 귓가에 유채나 틱 건드려봤다. 그 채로 머리맡까지 올려 걸쳐놨던 제 웃옷을 끌어 내린다. 물기도 거의 말랐겠다, 물 맞은 직후보다는 볼만한 꼴이다.
지네라기에 만일을 상정해두긴 했으나, 동일임을 확정해주니 참 골머리가 울린다. 야마후시즈메라 했었나. 땅에 떨어지고서 명명을 달리했단 소식을 풍설로 접하긴 했지만, 이리 가까이 있을 줄은 전망하지 못했다. 귀보에 흠집 낸 값을 대신 받아주겠다고 직언했으니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진퇴유곡에 제 처지 참으로 궁하다. 승패에 자신이 없냐면 외려 오만할 만치 자신했으나 애당초 저 신명 들은 때부터 전제가 어긋났다. 제 암만 망나니, 개새끼 소리 들어가며 격을 영위할지언정 제 자식 같은 이에게 쉬이 손댈 수 있을 리가.
"내가 저 위에 있을 적에 비사문천과 무를 겨뤘던 만큼 쌈박질에 도가 텄다만... 계집질하다 불현듯 홀려서 내 새끼에게 성을 내는 건 도리가 아니고... 그렇다고 또 무르기엔 계집 앞에서 면이 안 서고. 걔는 그냥 산에서 도 닦다 다시 신위에나 오를 것이지 왜 인세에 내려와서 씹... 사군(師君)을 난처하게 만들지?"
어떠한 곡절에도 매번 능청대기나 했던 제 낯짝이 심히 일그러짐이 느껴진다. 이도 저도 못 하는 형세에 여전히 손 하나는 맞잡은 채로 머리를 세차게 헝클였다. 속히 만나보긴 하겠으나 영 탐탁지 않다. 묘책 어디 없나.
"내가 업어다 키운 애 면전에다 개지랄할 수는 없잖아. 그치?"
뜸 들이다 재차 뱉었다.
"물론 네가 더 내어주겠다면 못 할 것도 없지만."
어찌 되었든 지금은 우선이 따로 있다. 방식을 달리해서라도 복수해줄 것이니 이는 잠시 접어두고. 한데 겹친 손을 입가로 끌어왔다. 시선 들어 눈치 살피다가 입매 모로 휘었다.
"조금 따끔해. 참아."
제 것 아닌 손바닥에 입 맞춘다. 삽시에 손금 따라 불이 일었다. 전조에선 진홍으로, 무르익은 후에는 검게 타더니 이내 낙인으로 속에 박힌다. 겉보기에 문양조차 남기지 않았으나 네 살갗 아래 뚜렷이 아로새겼다고 확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