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을 모르겠다는 낯으로 내려다보았다. 아니 근데 내 목은 왜 건드리는데? 이게... 뭐 하는 자세지...?
"착한 아이가 되면 생각해보겠다고 해도. 아니 근데 진짜 뭐 하는 건데 지금...?"
징징거리는 캇파. 들어올린 까치발. 성난 얼굴. 한층 가까워진 머리 간의 거리...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가...
그러니까 그것은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였고. 나는 판단력을 높이기에는 너무 우쭐해 있었고... 남에게 이 정도의 무례를 겪어본 적도 없어서 목덜미를 껴안은 이 짓이 박치기를 하려는 것인가 정강이를 걷어차려고 하는 것인가 하는 결론까지 다다르기 위한 충분한 데이터가 부족했고...
눈 한 번 감음으로써 대답을 대신한 스미레는 간간이 첨언하는 사쿠야의 말을 끊지 않으려 차분히 틈을 두고 말하면서도, 자신 또한 바삐 새 정보들을 조합하고 욱여넣었다. 그 놈 뒤에 있는 '거', 무신임은 알았는데 상세히는 지네였나…. 어쩐지 널린 원소나 동물 따위와 다른 느낌이더라니.
"쯧, 인간들이란 다 그렇지요. 망령에 씐 듯 탐욕적이고, 타산적이야."
제 성질대로 혀 한 번 찬 스미레가 날 선 채 뇌까린다. 도서관에서 제 눈으로 손 뻗은 그날이 떠오른 탓. 사쿠야의 의도에 빗겨나간 대꾸임을 알면서도 제멋대로 감정을 슬몃 내보인다. 제법 잘 참았는데, 인간 얘기가 나오니 슬금슬금 열이 오르기 시작해서.
"아아, 그쪽-태양 신-'은' 대놓고 경고하던걸요. 눈 간수 잘하라고."
능구렁이 외 인어의 눈을 한 번씩 언급했던 이들. 열 내는 이유 확고하니, 외려 냉소를 띈 스미레에 눈에선 일족을 아끼는 마음이 뚝뚝 묻어 나온다. 이윽고 그녀가 복수를 입에 담았을 때 눈을 두 어번 깜빡이던 스미레가 한 손을 설레설레 흔들며 싱겁게 웃는다.
"이 이상 빚을 더 지우고 싶진 않네요. 성질 상 직접 갚아주고들 싶고……."
끝에가선 입매의 온도가 뚝, 떨어졌다. 직후엔 다른 의미로 가라앉았다.
"……카와자토가요."
무심코 이름을 부르며 대꾸한 스미레가 애써 냉담한 낯을 유지한다. 겉보기엔 차디찬 무표정. 하지만 신의 망막에 무엇이 비칠 진 모를 일이다. 걘 철부지 어린 애라 아무것도 몰라요. 그래서요, 그래서 그랬던 걸 거예요. 그런 옹호적 문장들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가 힘겹게 삼켜졌다. 굳이 이런 말들을 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동시에, 언제 이렇게 정을 주었나 스스로가 가벼이 여겨져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 스미레는 화제 전환을 택한다.
명중!!!!!! 그것도 제대로 명중했다! 꼴사나운 외마디 비명을 내지른 아오이는 아니메의 개그씬마냥 머리 주변에 빙글빙글 새와 UFO를 띄운 끝에 히익, 하면서 풀썩 뒤로 넘어졌다. 그렇다... 꾸준히 강조해온 사실이지만 이 아저씨의 인두겁은 터무니없는 약골인 것이다...!!! 참고로 부딪치자마자 아야나의 폰은 손에서 놓쳤으니 아야나가 나이스세이프했는지 땅에 곤두박질치는 모습을 꼼짝없이 지켜볼 뿐이었는지는 알아서 설정하길 바란다.
"...어, 어...? 타카마, 타카마가하라...? 여긴... 내 방...?? 그, 그렇구나아... 꿈이었구나아아... 나, 나 다시는 밖으로 안 나갈래...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해..."
고운 미간의 흠결. 퍼뜩 정신이 들어 그제야 찡그린 미간을 펴 자중하겠노라 답한다. 뜨듯미지근한 봄바람이 불어도 둘의 공기를 메운 것은 다른 색채의 한기. 아무렴. 한쪽은 심해의 인어고, 한쪽은……. 어떠한 온기도 온정도 만무한 채 한에 비롯한 계산만이 머릿속을 오갔다. 스미레가 창백한 뺨 위로 청보랏빛 눈을 내리깔았다. 습관적으로 구두 앞 코로 흙바닥을 툭툭 두들겼다. 이내 입 열고. 하오면-.
"허면 이 스미레가 도무지 손쓸 길이 없을 때. 그때에 손 내밀어 주시렵니까?"
고개를 모로 살짝 기울인다. 반듯이 잘린 진녹색 머리채가 아래로 흐트러지고, 사나운 눈매가 일견 순하게 둥글어진다. 엄연히 히비스커스-인어족 패권을 쥔 집단 넷 중 하나-의 막내, 아닌 체하며 부탁할 때 쓰는 꼼수쯤이야 여러 개다. 물론 사쿠야가 받아준다고 한다면 그건 그녀가 눈감아준 것이겠다만. "……알아요. 젠장, 구태여 말 안 꺼내셔도 되니까. ……다신 이런 실수 없을 테니."
아무리 성숙하게 굴어도 고작 이백 년 조금 넘게 산, 성년 앞둔 요괴. 속내 들킴을 속속히 그녀의 입을 통해 까발려지자 부끄럽고, 쪽이 팔린다. 다른 상대 같았음 어림도 없는 일이었으니. 심지어는 정곡까지 찌르며 웃으신다. 따라서 첨예한 자존심이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인어의 자아 또한.
"—그것이 짊어진 값을 갚는 일이라면."
은혜를 원수로 갚는 형편 없는 짓은 인어의 이름을 내걸고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러나. 당장의 스미레도 모를 깊숙한 무의식이. 어쩌면 지금을 후회할 지도 모른다고…… 그리 속삭인다.
"여, 역시 난 폐급이야... 괜히 밖으로 나가겠다고 나대는 게 아니야... 얌전히 방안에나 틀어박혀야... ... ... ... ...맞다...!!!!"
헛소리를 중얼거린 끝에 결국은 힉힉호무리 특유의 밑도 끝도 없는 자기비난으로 이어지다... 가, 서서히 밝아오는 정신... 밝아오는 시야... 헛것이 아닌 현실을 다시 마주본 아오이는 정신을 차리면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는 상체, 그 다음에는 다리. 나데나데는 기억도 못하는지, 아니면 무시하는 것인지, 안중에도 없는 반응이다.
"내가 캇파랑 실랑이나 하려고 여기 온 게 아닌데에..."
절룩절룩 걸어가서 거슴츠레 성적표를 노려보았다. 아카가네... 아카가네... 아카가네... 여기 있다. 80점이라는 무난한 평균, 무난한 석차다. 높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낮은 것도 아니다. 아마도 영어가 가장 깎아먹었으려나. 상관도 없는 일이지만. 시큰둥한 눈으로 별로 열심히 살피지는 않으면서 뒷목을 살살 쓸면서 대강 주변의 성적도 훑고, 성적표 여백에서 요괴의 승리를 고하는 짧은 글마저도 별 흥미 없이 지나친 아오이는 "뭐" 라면서 가볍게 어깨를 늘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