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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을 '예술가'라고 칭하며 살인을 저지르고 다닌다. 그는 암부,안티스킬,스킬아웃,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떠돌이 범죄자다. 특정집단에 속하지 않고, 여러 집단에게 원한을 살 짓을 많이 했기에 이래저래 적이 많다. 그를 여러 번 잡으려고 시도했지만 역으로 죽임을 당하거나, 비행능력을 이용해서 유유히 빠져나갈 뿐이었다. 살인대상을 염동력으로 잔혹하게 살해하고 훼손된 시체를 '예술작품'이라고 칭하고 있다. 하지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 녀석은 그저 반사회적인 미치광이 쓰레기일 뿐이었다.
흐린 날씨를 뒤로 하고, 택시에서 두 사람이 내렸다. 새하얀 비옷을 입은 키큰 소년이 하나, 그 뒤를 따라 그 소년보다도 한참 어려보이는 청록색 머리카락의 소년이 하나 내렸다. 머리 두 개 정도 차이나 보이는, 형제로도 보이지 않는 기묘한 두 소년은 보도 블럭을 가로질러 그들 바로 앞에 있는 건물로 향했다. 경찰서였다.
미리 전화로 사전에 조율을 해둔 덕분에, 안티스킬 형사 하나가 나와서는 성운과 꼬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형사는 키 작은 꼬마와 성운을 번갈아보며, 한번 확인하듯 되물어보았다.
“유치인 면회 신청한 배경락 군. 그리고 신원 보증해 준 목화고 저지먼트의 서성운 군. 맞지요?” “네, 형사님. 유치인 배화락 양을 면회하고자 하는데, 배경락 군의 곤란한 사정상 신원 보증인이 없어 제가 대신 신원을 보증해주기로 했습니다.”
저지먼트 중에서도 특히 인정많은 멍청이들이 이런 절차에 임시로 차일드 에러나 스킬아웃의 신원 보증을 서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오랜 사회경험으로 딱히 이득될 것 없는 어리석은 행동임을 노련한 형사는 알고 있으나, 그럼에도 그게 순진한 선의임을 알고 있기에 형사는 이 풋나기 저지먼트를 뭐라 딱히 야단치지 않았다. 물론 저지먼트가 스킬아웃들에게 겁박당해서 이용당하는 경우도 드물게 있긴 하나, 이 키가 훤칠한 녀석이 당당하게 서 있는 태도는 아무리 봐도 이용당하는 사람의 태도로는 보이지 않아 형사는 별 딴죽을 걸지 않고 경락이라 불린 차일드 에러와, 성운을 유치장 면회장 쪽으로 인도해주었다.
물론, 그때 성운이 푹 눌러쓴 볼캡 아래의 눈빛을 보았다면, 이 형사는 무언가 찜찜함을 느꼈을 것이다. 스킬아웃이 아닌 저지먼트의 눈에서, 마치 어떤 수단방법도 가리지 않기로 한 각오를 한 자 특유의 결연한 눈빛을 보게 되었을 테니까.
청록색 머리카락의 소년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똑같은 머리카락을 한 색깔의 소녀는 저쪽 문에서부터 부리나케 달려왔다. 소년 역시도 “누나아아아.” 하고 소리치며 소녀에게로 달려왔다. 그러나 두 사람은 포옹하지 못했다. 그 대신에, 두꺼운 방탄 유리 앞뒤로 철썩, 하고 달라붙었을 뿐이다. 서로의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어 있는데, 서로가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지를 못했다. 경락은 흐려지는 눈앞을 다잡고, 이를 앙다물며 소매를 들어 눈가를 슥슥 비볐다. 양껏 울며 유리 양옆으로 붙어앉아 면회시간 내내 울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경락은 지금 이 자리에서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경락은 울음을 눌러참고, 입을 열려 했다. 그러나 화락이 먼저 울음소리 섞인 질문을 먼저 경락에게 해왔다.
“경락이, 너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어? 밥은 어떡하고, 잠은 어떡하고 있는데?” “누나, 나 괜찮아. 저 저지먼트가 날 도와준다고···” “···저지먼트?”
의외의 엉뚱맞은 답변에, 화락의 눈물 가득하던 눈에 의문이 들어찼다. 그리고 그제서야 화락의 시선은 경락의 뒤를 따라 면회실에 들어와 있던 어느 인물에 닿았다. 그 새하얀 옷을 입은, 목화고 저지먼트─ 화락의 언성이 저절로 올라갔다.
“─설마, 저 자식한테?!”
저놈은 우리가 참다참다 못해 윤강목에게 대항하기로 했던 그날, 스킬아웃들 사이에서 새로운 두려움의 대상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코뿔소 완장 찬 놈들」 중 하나이자, 자기들을 손짓 한 번 안 하고 죄다 땅에 짓눌러서 제압해버린 그 미친 저지먼트가 아닌가.
화락은 자신의 감정에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재회의 반가움, 구속된 처지의 서러움, 이제 아무도 보살펴줄 사람이 남지 않은 하나뿐인 혈육에 대한 걱정에, 그 혈육을 누군가 보살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가, 이제는 그 자상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과 동료들을 잡아넣은 그 자식이라니.
“걱정 마, 누나. 저 짭새 알고 보니 윤강목 따까리는 아니라더라고, 내가 우리한테 있던 일 다 이야기해주니까, 우리를 도와주겠대.”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경락아. 저 짭새 나부랑이를 믿겠다고?!” “하지만, 우리 사정을 듣고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게 저 짭새뿐인 걸 어떡해.” “말했잖아, 저 초록 완장 찬 놈들도 결국 하나같이 우릴 억압하지 못해 안달이 난 인첨공의 부품이나 다를 바 없는 놈들이라니까······.”
바로 자신의 눈 앞에서 자신과 자신의 초록 완장에 대한 험담이 오가고 있는데도, 성운은 팔짱을 낀 채로 이렇다 할 반응 하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야. 윤실장 그 근육돼지 놈이 지금까지 우리한테 무슨 일을 저질러왔는지 저 형도 알고 싶어한다고.” “경락아, 외부인에게 기대기만 해서는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없어.” “난 기대기만 하지 않아! 저 형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선택도 내가 했고, 누나를 만나게 해 달라는 선택도 내가 했어! 윤가 그 자식, 이때다 하고 싹 다 우리한테 덮어씌울 텐데, 그 자식이 우리들을 더러운 거 닦고 버리는 휴지처럼 쓰는 거 나 싫어! 그걸 막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저 하얀 짭새 손 잡는 거뿐이라면 난 잡을 거야!” “···경락아.” “왜? 난 맘바꿀 생각 없어···!” “미안해.” “응?” “우리 경락이한테, 그런 힘든 결정 하게 해서, 그런 모진 마음 품게 해서··· 미안해, 경락아.” “그만큼 누나가, 누나들이, 형들이 다 나한테 소중한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거야.” “······미안하고, 고마워.”
성운은 시계를 흘끔 눈짓했다. “면회 시간 얼마 안 남았어.” 성운의 지적에, 경락의 미간이 구겨졌다. 하지만 뭐라 불평도 못한다. 정당한 지적이기 때문이다. 고작 서로 유리판을 사이에 놓고 엉겨붙어서 신파극이나 찍자고 온 게 아니니까. 면회를 오자는 것은 경락이 먼저 제안한 일이었고, 경락에게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저기, 누나, 가기 전에 꼭 물어봐야 할 게 있어.” “뭔데?” “우리, 금교한테 빚진 장부, 그거 다 어딨어?” “···그런 게 있는 줄은 또 어떻게 알았어?” “상경이 형이 그거 쓰다 말고 잠든 거 이불 덮어준 적 있거든.” “그놈 새애끼 그거 나가면 혼을 좀 내야겠네. 아무튼, 그건 왜?” “필요해서 그래. 윤가놈이 우리한테 다 덤탱이씌우려고 할 때 우리도 뭔가 항변할 게 있어야잖아. 윤실장이 우리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증명할 수만 있으면 그 자식도 감방에 처박아줄 수 있지 않겠어.” “···우리 경락이, 못 본 새 많이 컸네. 그거, 우리가 마지막에 머무르고 있던 폐 쇼핑몰의 3번 창고. 거기의- 아마 302번 선반일 거야. 그 안쪽에서부터 2번째에 있는 책상의 서랍을 열어봐.”
화락은 경락의 어깨 뒤로 성운을 눈짓했다. 성운은 어느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슥슥 적고 있었고, 이내 짧은 메모를 마치고 그걸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경락아, 조심해. 금교 사람들이나 윤강목이나 그 장부가 그렇게 쓰일 수도 있다는 걸 모를 리가 없으니까. 그걸 자기들이 가져가서 은멸하려고 들 테니까.” “···괜찮아.”
경락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을 거야. 곧 다시 찾아올게. 그때는 같이 밥먹을 수 있는 데서 만나, 누나. 유치장 안에서 몸조심하구, 공연히 밉보일 짓 하지 말고.” “얘는 유치장에 들어와본 적도 없는 땅꼬맹이가 별 걸 다 걱정하네. 내 몸 간수는 내가 잘할 수 있어. 너야말로 조심해, 경락아.”
화락은 다시 경락의 어깨 너머의, 영 못미더운 동맹을 째려보았다.
“···조금이라도 밀린다 싶으면 무조건 도망치고.”
성운은 무심하게 시계를 한 번 눈짓했다. 찌르르르릉, 하고 면회 종료를 마치는 알람이 울었다. 멀리서 빈둥거리고 있던 간수가 화락을 다시 유치장으로 데려가기 위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성운은 경락의 어깨를 툭툭 쳤다.
“지금의 키를 말하는 거면··· 솔직히 커도 작아도 상관없어. 지금의 상황을 말하는 거면··· 모르겠는데.”
모를 리가 없다. 지금의 상황이 좋을 리가 없다. 성운이 2학년의 다른 말썽꾸러기에게 두들겨맞을 때도, 스킬아웃 여섯 명을 상대로 악전고투를 벌일 때도, 아지에게 엉큼한 짓을 하던 아저씨에게 치명적인 오프숄더 공격을 할 때도, 에인절스에서 전혀 예기치 못한 알바를 하게 되었을 때도, 블랙 크로우 전을 치렀을 때도 제로 전을 치렀을 때도 그의 눈빛이 이렇게 어두컴컴하게 빛을 잃은 모습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길을 잃고 있었다.
나눌 수 있는 고민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지를 부여잡고 제발 도와줘, 하고 울부짖을 수 있는 종류의 고민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단서가 없다. 아직 이것을 설명할 그 어떤 단서도 없다. 전부 다 내 잘못이야. 내가 무능해서 겪는 문제일 뿐이야. 하고, 울고 싶었다. 하지만 성운은 그 대신 한번 길게 숨을 들이쉬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뭔가 굉장히 신경쓰이고 짚이는 일이 있는데, 아직 아무런 단서도 없어. 그래서 지금 내가 품은 이 찜찜한 직감은 아직 편집증 걸린 조현병자의 헛소리 정도의 값어치밖에 없어. ···다른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보고, 충분한 단서를 찾아보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설명하기에 충분한 일이 되면······ 말해줄게.”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 고민이 어떻게 생겼는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
# 회화를 이어나가는 데 팁이 필요하면 긁어보세요, 성운의 고민에 대한 스포일러입니다 ▷ 깊은 이야기까지 부드럽게 접근하고 싶다면 혜우에 대한 이야기냐고 물어보세요. 아지이기에 제공되는 팁입니다. 지금 성운이 품고 있는 고민은, 혜우에게 자신이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무력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