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당황과 그에 대한 반응을 주고받다 스노우볼이 커져 여기까지 왔다. 서로의 마음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계속 어긋난 상황 속에서 린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알렌의 말에 물끄러미 당황을 담아 그를 바라보았다. 본인도 잘 모르는 자신의 마음은 다른 감정들과 마찬가지로 눌러져 있다가 이따금 자신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알렌에 대한 심술로 표현되고는 했다. 하지만 오로지 일방의 감정일 뿐이며 그에 맞게 그는 그저 여태 그녀의 놀림에 좀 더 담백하게 허둥거리는 태도를 보여왔다. 마츠시타 린은 그저 동료이며 친구일 뿐이니까. 고뇌와 눈물과 원한도, 마찬가지로 사랑도 표현해서는 안되고 털어낼 수도 없었다. 기실, 그녀는 제 감정의 정체에 대해서도 부정하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네요." 고개를 살짝 돌려 눈을 내리깔고 곤란하다는 얼굴로 예상하지 못한 그의 반응에 대한 당황을 감추며 내용과 다르게는 부드러운 어조로 어쩔 수 없다는 감정을 담아 말한다. 갑자기 왜 그가 그런 태도로 제게 용서를 구하는지 놀라 순간 저도 그와 같이 허둥거리고 있을 뻔했다.
"간단해요 같이 카페에 가서 파르페를 사주세요." 조금 더 조심스럽게 한 발짝 다가선다. 친구라 생각하고 그가 자신을 그 이상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여기면서도 그 명제가 순간순간 흐트러질 때가 있다. 비록 그의 마음이 저와 같을 수는 없더라도 다른 형식으로 제게 미련을 두게 할 수는 있었다. 그러니, 전에도 지금도 이 미묘한 관계는 순전히 어떤 의미로든 상대의 마음에 남고자 하는 그녀의 욕심에서 기인한다.
"앉아서 여유롭게 얘기도 하고 주변 구경도 하며 제 지루함을 덜어 주시면 될 것 같네요. 세 번 정도." 흥, 새초롬하게 흘겨보다 다시 멀어져 처음 붕어빵을 먹던 자리에 앉았다.
딱히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때의 나는 마음이 급한 사람도 맞았고 문제를 덮기 위해 급급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너의 문제도 시간이 지나면, 또 그렇게 여유가 나다 보면 자연히 녹아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가 그렇고, 여전히 바뀌지 않은 내가 그러하듯 지금 역시도 나는 똑같이 무언가를 덮지 않는 대신. 단지 그것을 보려는 노력정도나 할 뿐이다.
사람은 그렇다. 시간이 지나야 뒤를 돌아보며 평가할 여유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그때의 너를 만나서, 만약에 지금의 일이 잘못되었다 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것이 맞고 내 문제였으며 내 노력으로 해결할 문제였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수습할 심리적 여유가 없단 이유로 무시했던 것을 사과해볼 것이다. 그러고 나면. 혹시라도 네거 화를 내거나 욕을 하더라도 그것을 듣고 시간을 기다려볼 것이다. 그 후에 우리는 여유가 생긴다면 그때의 이야기를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시작이 그러했다고 지금의 네가 그렇단 게 아니다. 그 시절의 날카롭던 너가 지금에 있어선 누구보다 겁 많은 사람이고, 그것이 표현되는 것을 볼 수 있단 점에서 나는 사람이 항상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는 조금씩 힘듦을 받아내고 발전하고 있는 좋은 사람이다. 왜 좌절하는가. 왜 힘들어하는가. 왜 그걸 사과하는가. 일어난 것은 일어난 일이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다. 우리가 후회하고 답답해한들 그때가 고통스럽게만 느껴질 것이다. 나는 지금의 네가 좋은 사람임을 안다. 그 시절의 네가 화낼 수 있었단 것을 안다. 그때의 내가 부족했음을, 결국 바뀌지 않았음을 안다. 너는 틀리지 않았다. 단지 둘 다 여유가 없었을 뿐이다.
이 말이 너에게 얼만큼의 표현이 될지는 모른다. 단지 저 사람 또 저러네 정도로 넘어갈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거면 됐다. 나는 여전하게도 너희들을 사랑하며,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았으면 한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그냥 웃으며 말할 수 있겠다. 그 시절 우리는 좀 바보였다고.
그러니. 그냥 둘 다 바보인 것으로 하자. 바보의 잘못은 바보니까 모두 웃어 넘기는 것처럼 우리는 바보니까 실수했고 웃어넘기는 거라고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