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10년전의 무렵의 일이었다. 내가 잃어버린 벗의 흔적을 따라 아야카미라는 이름의 땅에 오기까지.
"결국 돌고돌아 네가 믿어졌던 곳이구나."
역병과 저주를 물어 가져가는 신이었던 나의 벗이, 역병과 저주를 옮기고 다니는 요괴로 전락하여 이제는 숭배조차 받지아니하고 존재조차 소멸했으니. 나는 그 일에 가담한 족속을 모두 멸족할 것이다. 멸족하지 못하더라도 같은 진흙탕에 떨어지게 할 것이다.
"너를 숭배했던 자들이 헌신짝 처럼 버린 말로가 실로 암담한걸."
마을로 부터 멀리 떨어진 산골짜기 어딘가의 장소. 이어지는 길조차 숲속의 녹음에 묻혀버린지 오래였다. 벗이 최후를 맞이할 때에는 신에서 추락해 요괴로서 퇴치당했으니 모시던 사당의 꼴도 마찬가지. 다만 위화감은 존재했다. 분명 관리가 안되는 것이 정상이지만, 누군가 오간 흔적이 있다.
"결국, 너는 죽어서까지 비참하잖아."
누군지는 모른다. 적어도 사당으로 향하는 쪽으로 난 흔적들을 하나하나 확인해가며 나는 거의 사당을 멋대로 쓰는 녀석이 있다면 가차없이 죽일 기세로 사당을 향해 달려갔다. 감히 누가 이런 행패를 부렸는지.
"네. 제가 본가가 좀 먼데- 거기에 여러 전승이 책으로 남아있거든요. 예전에 소설책 읽듯 읽은 적이 있어요."
아주 거짓말은 아니다, 2탄. 참고로 그 책 중에는 내가 적은 게 있다.
점원이 여러 의문점을 품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다만 그것이 순수한 학술적인 것이랑은 좀 다른듯 한데.. 타인의 사정까지는 알 수 없었기에 일단 궁금증을 해결해주고자 했다.
"우리는 야마후시즈메의 자식들이며" "사토의 혈족은 모두 산노사마를 섬기나" "이 서책을 보는 이여, 그대가 사토의 이름을 받았노라면, 충노의 의무를 다하여라.."
"..라고 하네요."
"정리하자면 '사토'가의 사람은 야마후시즈메의 후손이며, 충노, 좀 더 익숙한 표현으로 충복이라는 것 같은데요?"
적혀 있는 내용은 썩 흥미로웠다. 이것이 비유적인 표현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 신의 핏줄이라는 뜻인지. 잠시 코끝에 집중해서 향을 맡아보자, 카페에 흐르는 커피나 달콤한 향기 너머로 어디선가 맡아본 향이 흐릿하게 느껴졌다. 카와자토도 그렇고, 핏줄이란 생각보다 끊기지 않는 모양이다.아니 캇파쪽은 이야기가 좀 다르긴 한데.
>>59 이누이누라는 맹랑한 요괴가 이 터에 자리를 잡은 것은 불과 십여 년 전의 일이었다. 주인 없는 버려진 신당에서는 불길한 냄새와 포근한 기운이 함께 느껴지더랬다. 당의 한쪽엔 역병과 저주를 꾸역꾸역 먹어 삼켜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한가득, 미련하고 괴로운 흔적만이 남아있었고. 어째서인지 소녀, 미천한 요괴는 신당 주위를 배회하다 그 자리에 배를 깔고 잠을 자기를 반복했다. 마치 그 주인을 위로하듯이, 부정한 기운을 정화하듯이. 일 년에 한두 번, 매미가 울면 어느 소년이 찾아와 비질을 해주고 싱싱한 과일을 놓아주곤 했다. 소녀는 소년이 올 때마다 세수를 하곤 했지만, 이제는 우물이 말라버린 조용하고 고요한 신당이다. 더 이상 찾아올 이 없는 버려진 신당에 소란이 인 것은 소녀가 눈물 한 방울을 흘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을까.
"므아아아- 무슨 소리야."
신당 한구석 몸을 웅크리고 얌전히 잠을 자던 소녀는, 인간 아닌 존재가 다가오는 기척에 끔뻑이던 눈을 무겁게 내려감고서 마룻바닥에 옆으로 누운 채 무릎을 끌어안을 뿐이었다.
"―님을 뵙습니다. 꽃놀이의 계절과 학도들의 신학기를 맞아 봉납되어진 기원을 독송하도록 하고자 생각합니다. 듣고 계실런지, 아니 듣고 계실런지. 미욱한 저로서는 비록 알 수 없으나 예부터 단 한 번조차 단절되지 않은 신심을 지녀 읽어나가고자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아야나가 아주아주 강한 물의 신이 되게 해주시와요! 아저씨보다 강한 신!
"신으로 거듭나는 요괴는 고릿적부터 천번이고 만번이고 있어 왔지요. 그렇다면 이 어엿븐 어린 요괴 또한 신앙을 쌓고 공덕을 쌓으면 수신水神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런 것치고는 경을 칠까 두려울 정도로 뭇 사람에게 캇파의 모습을 드러내며 신화가 아니라 괴담을 지어내던데요. 신으로 모셔야 할 정도로 두렵고도 무서운 악명을 쌓으면 이 또한 신이 되는 길이니, 악신惡神이라도 될 수 있도록 제 쪽에서 빌어야 되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제가 아는 이들이 행복하며 또 즐거운 일 년을.
"행복하며, 즐겁다. 예의 기원이네요, 그렇지요? 자세히 어떻게 행복하고 즐거우면 좋겠을지는 비는 사람 측에서 정해주지 않았으니, ―님의 마음대로 처리하셔도 좋을 듯싶습니다... 물론 농담입니다. 아시지요? 아, 아시지요...? 농담입니다? 아야야, 이 입이 방정이지. 그렇지만 굳이 이렇게 빌지 않아도 올해는 즐거운 한 해가 될 것이 분명하니 이 사람은 복 받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음, 그러니까, 여러 의미로 즐거운 한 해 말이죠."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기를 - 갈라테아
"이것은 또 귀여운 기원을. ...갈라―테아―... 아, 누군가 했더니 그 어린 석상 씨. 아름다움만은 누구보다도 앞서나가서 거머쥐었지만 세상만사, 아름다움만으로는 흡족할 수 없는 법이라더니. 그리 보면 또 굉장한 욕심쟁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요, 얼굴에도 소리에도 아무 감정도 실을 수 없어 마음을 전할 수 없다고 하면 그것은 아무리 나라도 답답해서 졸도하고 맙니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은 어떻게 전하면 좋은 걸까요? 말 하나, 행동 하나마다 쪽지라도 건네야 하는 걸까요? (놀람驚き), (기쁨喜び) 과 같이 적어서 말이에요. 신성이라도 내리면 감정을 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신성 같은 건 필요로 하지 않고 마음을 전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굉장히 멋진 일이겠다 하고. 아, 너무 감성적이게 되었네요. 그렇다면 지체 없이 다음으로..."
부디 우리 형님이, 새로운 걸음을 걸을 수 있기를.
"형님... 이라면... 어디 보자... 오야, 설마 하는데 그 신님? ( )님 말입니다.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 했지 않습니까? ―님. ...들렸다고 치고, 지금도 궁금해 하신다고 치―고! 이것은 웃기는 일이 되었다, 새로운 걸음이라, 이 맹랑한 요괴는 말하자면 어떠한 걸음을 원하는 걸까요? 신으로서의 새 출발? 요괴로 전락한 뒤의 출발? ...그조차 아니라면...? 무어, 장난은 여기까지로 하고요, 그래도 이천 년 넘도록 한 주柱의 신만을 따랐다니 따름요괴로 이제 묶이지도 않은데도 그 정성이 지극합니다. 갸륵한 우애인지고. 나조차 혀를 내두르겠다니까요."
我輩는 다른 神에게 低頭하며 苦懇하지 아니하도다.
".................................................................................................................. . . . .. . . .... .... .. . . .... .....다음! 다음으로 저기, 넘어가겠습니다..." "꼭 다른 신 앞에서 도발하다시피 그래야만 속이 후련했냐...(중얼중얼)"
좋-아! 올해도 실컷 웃기는 한 해가 되게끔 빌어나 보자고. - 코코로
"잉어인 만자이꾼. 아니, 라쿠고가라고 부르는 쪽이 맞을까요? 아무렴 어떠합니까. 등용의 꿈을 접고 요상하다고 하다면 그야말로 아주 요상한 길로 새어버린 한량, 흥미 본위대로 움직이는 겉치장만 화려한 잉어. 골치 아파지려면 몹시 아파질 수도 있었던 예측불허의 요괴지만, 다행히 재미난 이야기밖에 관심이 없는 듯해 뭇 신들이 몰래 한숨을 돌린 건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되는 극비리의 사실. 어떤가요, 저? 꽤 이야기 하지 않아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박장대소하시는 것 다 압니다. 방석 팔백만 장! ... ... ...하아, 어쨌든, 이 잉어가 있는 이상 금년의 웃음은 딱히 걱정하지 않아도 좋겠다고요."
올 한 해 아무 탈 없이 졸업할 수 있기를
"지극히 무난한 소원이네요. 딱히 특별하게 바라는 것도 없어 보이고 말입니다? 말하자면... 인간다운 소원. 인간답게 그저 아무 일 없이 학교만 졸업하고 싶다는 소원. 이것은 우리가 왈가왈부 어떻게 손댈 수 있는 것조차 아니겠습니다. 물에 흘려보내다시피 하는 수밖에. 그나저나, 대체 무슨 일에 시달리기에 졸업도 졸업이지만 아무 탈 없는 졸업을 굳이 꼬집어 원하는 걸까요? 이름도 없어서, 이건 함부로 들출 수도 없고 원."
有仇不報非君子 君子報仇 十年不晩
"이것은 이것은. 꽤나 살벌한 기원이. 그래요, 이렇게 되어야 하계下界도 둘러보기가 퍽 즐거워지죠? 신일런지, 요괴일런지, 인간일런지는 모르겠지만 말할 것도 없이 아주 포부 높은 꿈을. 군자君子로 자신을 빗대다니 어찌 보면 오만하기마저 합니다. 신이라면 이 오만함이 어느 정도 풀어 설명되기는 하겠군요? 무어, 이름이 적히지 않아 찾아가지 못하는 것은 애석하지만... 만일 면面을 마주하게 된다면 이 이야기쯤은 건네고 싶군요. 해마다 피는 꽃은 같지만, 해마다 보는 사람조차 같지는 아니하다고."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
아버지가 기운을 내시길 가족들을 다시 만나고 싶어 - 사토 류지
"만남은 운명. 헤어짐 또한 운명. 가엾은 이야기지만 이 어린 소년도 언젠가는 그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는 순간을 맞을 텝니다. 아니면 이미 받아들였거나요... 때로는 풀리지 않는 응어리도 있고, 참척은 도저히 쉽게는 풀리지 않는 가장 아픈 응어리. 어쩌면 영원히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가끔은 그것을 전부 짊어지지 않으면 안되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네요. 설마 너무 꼰대 같았나요, 저? 하아... 슬슬 저도 나이를 먹는다니까요... 네에, '슬슬'이요, '슬슬'. 어쨌든, 그렇더라도, 야마후시즈메니 아야카에루니 슬픔 따위는 앗 하는 사이에 잊어버릴 정도로 현재는 정신없는 비일상의 연속이라, 그래도 이것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면 다행. 그러므로 적으나마나, 아해야, 네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길."
꽁냥냥냥 연애가 하고 싶어요
"아하하하! 귀여워라. 아아, 너무나도 당연해서 그만 눈물까지 나와버렸어요. 나오지 않았다고요? 그럴 때는 가만히 듣고만 계시는 겁니다, ―니임. ...하아, 내가 혼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아야야, 이것이 아니라, 인연을 이어낸다든가 끊어낸다든가는 ―님의 특기잖아요? 그러니까 말로 하자면, 인연의 실은 ―님께서 이어둘 터이니, 찾아가는 것은 이 아이의 몫으로... 같은 느낌으로. 듣고 계시잖아요, 그렇지요? 그렇다면 이 건도 이것으로 마무리."
".....................하면 이 충복은 이것으로 물러나겠습니다. 예로부터 안녕하신 대로 앞으로도 안녕하시길."
"그나저나 손님이 와 계셨네요. 설마 엿듣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요..." "그래, 반갑습니다? 눈치채줘서 고마워요. 만남은 짧았지만 언젠가 다음에도 만날 수 있기를 기약하죠..." "그럼, 저는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