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금을 모티브로 하고있지만 잘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상황극판의 기본 규칙과 매너를 따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를 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상대를 지적할때에는 너무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15세 이용가이며 그 이상의 높은 수위나 드립은 일체 금지합니다. ※특별한 공지가 없다면 스토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 30분~8시쯤부터 진행합니다. 이벤트나 스토리가 없거나 미뤄지는 경우는 그 전에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이벤트 도중 반응레스가 필요한 경우 >>0 을 달고 레스를 달아주세요. ※계수를 깎을 수 있는 훈련레스는 1일 1회로, 개인이 정산해서 뱅크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훈련레스는 >>0을 달고 적어주세요! 소수점은 버립니다. ※7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 경우 동결, 14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경우 해당시트 하차됩니다. 설사 연플이나 우플 등이 있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존 모카고 시리즈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따라서 기존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있고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서도 똑같이 그 설정이 적용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R1과도 다른 스토리로 흘러갑니다. ※개인 이벤트는 일상 5회를 했다는 가정하에 챕터2부터 개방됩니다. 개인 이벤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사전에 웹박수를 이용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는 계수 10%, 참여하는 이에겐 5%를 제공합니다.
"하하" 작게 웃으며 대답하는 한양이었다. 사양한다면 어쩔 수 없지. 맨날 먹고 다니는 건 아니라고 하는 걸 보니.. 은근 사람들이랑 식사를 많이 했나보구나. 전에 나랑도 그렇고.
"아아..그래?"
한양은 왼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힘없이 웃었다. 한양한테 이 적당적당히란 것이 쉬운 게 아니어서 말이지. 아무리 머리가 좋은 한양이라도 공부량이 적으면 80~90점대의 높은 성적은 받지 못하였다. 음, 성찰해보면 사실 공부머리가 좋지 못한 거 아닐까? 아니야..그 쥐콩만한 공부량으로 중상위권을 유지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돼..
"나는 내일 모래 오신대. 부모님 둘 다 오실지는 모르겠고."
엄마는 개인연가를 이미 군수과장,인사과장,대대장 순서로 승인을 해준 상황이고..아빠는 진짜 모르겠네. 전역하고 어디서 무슨 경호원인가 보좌관인가 뭐시기 한다던데. 아, 맞다. 국회의원 보좌관이었지.
"그러니깐~ 쉴 때는 쉬어야지."
서한양 너 이 자식 1학기 중반부터 공부 거의 놨잖아. 누가 보면 전교 1등 찍 휴식도 중요하다고 말하는 우등생인 줄 알겠어. 잘 노는 애들이 공부도 잘해요~ 이러면서 말이다.
"너가 능력으로 해준 거야? 고마워~ 마침 찝찝했는데."
이것이 마치 가벼운 등목을 마친 다음에 에어컨 바람을 쐐는 느낌일까? 좋다, 좋아. 살짝 쌀쌀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더운 것보다는 훨씬 낫지. 더 더워지면 정하 자주 찾아가야겠ㄷ..아? 방학이라서 별로 못 만나지?
"아쿠아리움 가자, 아쿠아리움. 나 벨루가 보고 싶어. 이번 축제에서만 열리는 거. 어..잠시만..."
정하는 이번에 한양이가 가자는대로 따라갈 것이라 했다. 서한양은 여기서 무언가를 먹자고 하면 정하가 부담스러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관람을 테마로 방향을 정한 것이다. 그런데 한양은 왜 주춤한 것일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 랑의 말에 리라의 눈이 가볍게 떨린다. 그 말을 이렇게 짚을 줄은 몰랐다.
"......있죠~ 한둘이 아니에요."
있기야 있다. 없을 리가. 그건 개인이기도 하고 단체이기도 하고 불특정 다수이기도 하다. 리라는 가만히 랑을 바라보다가 살짝 미소짓는다.
"그리고 사람이 많은 공간일수록 사진 막 찍는 사람도 많거든요. 지금 언니랑 같이 다니고 있는데 언니까지 그런 거 당하면 좀 그러니까."
혼자 있을 땐 상관없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언제 찍혀도 무난한 상태를 유지하니까. 그걸 가지고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붙이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인첨공에 들어온 다음부터 그런 걸 많이 보진 못했다. 하지만 외부 사람이 들어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직까지도 사라진 아이돌에 대한 가지각색의 루머가 넷상을 떠돌고 있는데 이런 곳에서 사람 하나라도 잘못 만나면.
—어? 온더로드 리라다! —뭐? 어디 어디? —리라가 여기 왜 있어? 혼자야? 촬영해? —몰라. 야, 일단 사진 찍어! 사진! —리라야! 여기 봐 줘! ...... —뭐야, 표정이 왜 저래? —어? 어디 가? 저기요! 리라! 이리라!
이대로는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를 것 같아서 억지로 생각을 누른다.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지금은 즐길 때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꽤 전형적인 사격 게임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다. 너무 전형적이라서 지루할 정도긴 하지만 원래 축제장에서는 이런 게 근본인 법. 본격적인 걸 하기 전에 워밍업으로 즐기기엔 충분하다.
"제대로 해 본 적은 없는데...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무슨 자신감인지 대뜸 다가간 리라의 눈이 과녁으로 추정되는,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데다가 조금 열받게 웃는 얼굴이 그려진 야구공 크기의 공? 들에 꽂힌다. 그것들은 공중에 떠서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심지어 무작위 방향으로.
"이게 뭐야? 이거 난이도가 너무 높은 거 아니에요?" '인첨공 사격게임이니까요.'
혼잣말에 가까웠지만 가판대 뒤에서 나타난 여성이 흘러가는 문장을 받아주자 리라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리로 돌아간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거 다 맞출 수 있는 사람이 있긴 있나요?" '물론. 저기 태블릿 pc 자리에 하나 빈 거 보이시죠? 만점 맞아서 상품 타 간 거예요. ...그래서 안 하시려고요?'
이 사람, 묘하게... 태도가... 묘하다.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진 않지만 눈빛이나 뉘앙스가 딱 그거다. 쫄?
"......아뇨, 할래요. 도전!"
그리고 리라는 도발에 약했다.
적중하면 공의 빛이 꺼지며 바닥에 떨어진다는 간단한 룰 설명과 몇 번의 안전수칙에 관련된 당부 같은 것을 거친 다음 총을 쥔 리라는 정신을 집중한다. 10개 중에 몇 개나 맞출 수 있을 것인가!
"......"
결과적으로 .dice 1 5. = 5 개 맞췄다. 만점은 택도 없었다...
1개 - 알사탕 하나 2개 - 막대사탕 하나 3개 - 마감이 허접하고 못생긴 오리 인형 키링 4개 - 대나무를 힘껏 뜯어먹고 있는 화난 판다 인형 키링 5개 - 15주년 행사장 내부에서 쓸 수 있는 25퍼센트 할인권(1회) 6개 - 15주년 행사장 내부에서 쓸 수 있는 50퍼센트 할인권(1회) 7개 - 무선 이어폰(구형) 8개 - 폴라로이드 카메라 9개 - 인첨공 15주년 기념주화 10개 - 태블릿 pc
그게 자신에게 재밌을지, 당신에게 재밌을지는 아직은 비밀로 하고 싶었을까.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당신에게도 이득일테니, 그녀는 그저 살풋 웃어보일 뿐이었다.
"이쁜 슨배임 맞으니까여~"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수 있다는건 확실히 좋은 일이다. 특히나 그 누군가가 어떻게 도와야 좋을지 고민까지 한다면 더더욱, 물론 저지먼트의 부원들이 누군가를 허투루 대하는 법은 없으리라 생각되지만 말이다.
"에이~ 기분 맞춰준다니, 그런 섭섭한 말씀 마십셔~ 이래뵈두 진심임다? 즈는 마음에 없는 말은 하지 않는 주의니까여."
당연하게도, 그녀가 보기엔 당신은 꽤나 돋보이는 외모였으니까. 물론 겉모습이 전부가 아닌만큼 그녀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신의 내면이지만... 지금 당장은 외모를 먼저 칭찬해주고 싶었으려나?
"으헤~ 시체들만 만나서 시체같은 인간이라니, 그럼 즈도 조만간 그렇게 되는 건가여~"
똑바로 손을 맞잡고나니 조금이라도 더위를 견뎌낼수 있었을까, 그런 선선한 감각이 싫지 않았기에 그녀도 이런 자신의 체온이 내려갈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볼만도 하려나. 걸어다니는 난로, 용광로 같은 체질은 여름엔 꽤나 좋지 않았다. 안기려는 사람도 거의 없거니와 이런 한여름엔 열사병에 걸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용한 상황이니까, 그나마 잔병치레가 없는 건강한 몸인 것이 다행일 뿐이었다.
...그렇다는건 겨울엔 허그가 합법적이게 되지 않을까? 라는 망상이 조금 들어갔겠지.
"호요?"
어느덧 축제현장의 중심부, 그녀가 말했고 당신이 다시금 언급하는 '계획'을 달성하는건 대략 중후반부쯤의 이야기. 만나려던 시간보다 일찍 마주쳤던만큼 처음에 약속했던 퍼레이드도 아직은 시간이 남았을테고... 그렇다면 역시 우선적으로 할만한건 한가지였다.
"일단 주전부리지여!"
그녀는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만큼 먹는 것도 좋아했다.
"아, 그러고보니... 음식 부스도 꽤 많을거 같은데 간식 취향이라던가 따로 있으심까? ...바나나에 고추장 찍어먹는 거는 좀 고민해보겠지만여."
...그 조합은 나름 먹을만 했지만 비주얼만큼은 충격이었을까... 아무튼 취향에 대해서 이전에 당신에게 물어봤을런지. 아니라면 지금 알면 되는 것이고, 이미 들었다면 간간히 휘발되는 자신의 기억을 탓해야 했을 것이다.
악수하는 것처럼 마주잡고 있던 손, 정확하게는 후배의 손에 힘이 들어오는 건 잡지 않은 빈손으로 팜플렛을 펼쳐보고 있던 혜성에게 어렵지 않게 전해졌다. 그 행동에 잠깐 어릴때부터 알고 지낸 동생이 떠올라 귀엽다는 생각을 하면서 펼치고 있던 팜플렛으로 혜성은 입가를 가리고 자신이 던진 질문에 답하려 고민이라도 하는 건지 후배는 한참 답을 생각하는 눈치라서, 도로록 눈을 굴려 후배를 곁눈질할 뿐이였다.
"일단 뭐라도 마실래? 내가 살게."
가는길목에 보이는 노점상의 행렬을 보고 한 말이었다. 그걸로 그치지 않고 혜성은 후배의 손을 잡고 있는 손을 살짝 당기려했다. 후배가 선선히 이끌려 왔다면 길지 않은 줄 끝에 자리를 잡고 섰을테지만 이끌려오지 않았다면 강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벤치에서? 아, 그렇게 신경쓰고 있을지 몰랐는데. 눈을 가만히 깜빡이며 후배의 대답을 곱씹다가 잠시 멀거니 풍경을 응시했다. 나답지 못하게, 여러사람 신경쓰이게 하는구나. 잠시 그러고 있다가 혜성은 미소와 함께 후배를 바라보며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왜? 해바라기가 씨앗이라도 뺏길까봐? 농담이야. 후배님이 날 그렇게 걱정하고 있을 줄 몰랐어. 신경쓰게 했네. 미안해."
눈을 피하지 않은 후배가 던진 질문은 이제 자신이 고민해야하는 상황이 된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올 줄 몰랐어서 혜성의 새파란 눈동자가 동그래진다.
"먼저 권유해줬잖아. 친구들도 가족들이랑 만나서 할 일이 없었거든. 후배님이 만족할 대답이 됐을까?"
스티커의 얼룩과 접착제가 묻어 잊을만하면 그를 힘들게 하지만 이제는 올리면 좋고 올리지 않아도 좋은 수준.⬅️하아 이 이 아이를 어쩜좋지 철현이 너무 올곧아서 아름다워 이게... 이게 참된 인간이라고 인첨공 보고있냐? 이런사람이 인재라고 철현이는... 크게 될 거야...
답변! 1. 스토커가 인첨공에 있고 자신에게 접촉한다는 것을 은우나 다른 이들에게 말해본 적이 있나요? : 아니요! 챕터 1 때는 이런 거 말고도 다들 신경쓸거 많았는데 신경쓰게 하고싶지 않았고... 박호수가 쓸데없는 걸 알고 있고 이걸 알리면 좀 골머리 썩게 될 거 같아서+당시 박호수의 행동이 딱히 선 넘진 않아서 일단 지켜봤는데 음 그렇게 됐다(?)
2. 아이돌을 다시 시켜준다면 할 것인가요? 불렛 수준의 유명 아이돌! : 당장은 아니요! 학교생활과 친구들 소중해
3. 자신을 갉아 먹고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것을 정의하자면?? : 정...? 또는 불신? 의심?
"그러니까, 데 마레의 3남매가 누구더라?" "……저와, 선지자와…." "태오야. 말을 흐려봤자 여자아이가 있다는 걸 나는 알아." "……혜우, 요." "옳지. 착하다. 우리의 선지자께서도 귀히 여기다 못해 고통을 견디는 동기이자 역린이란 것도 알지. 그깟 조그마한 아이 하나라 한들 인천 앞바다 물고기들은 포식했으니 더 뿌리면 생태계 파괴고…… 굳이 데 마레와 전면전을 치르고 싶진 않아. 거기에 아스트라페가 활동하고 있으니 더 싫지." "아스트라페, 요." "서태휘 그 빌어먹을 안티스킬 놈." "……그를 교단으로 오게끔 회유가 필요하다면 나설게요." "되바라진 영광은 하나면 충분하니 너는 하나만 기억하면 된단다."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버려진 아이 주워다 교단에 넣는 건 내 특기란다. 특히 오빠 하나는 연락이 끊기고, 다른 오빠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겨 행방불명이 되어버린 나머지 정신적으로 위태로운 아이 정도는 순교에 써먹을 수도 있어." "……데 마레의 전면전이." "무슨 소리니? 사회에 불만 가져서 호버로 때려박고 폭탄 타뜨리면 그 아이 탓이지 우리 탓은 아니잖니?" "……."
알아두면 이해가 편한 지식 -할페티 시절 수경이가 백금발에 가까운 머라카락 염색과 보라색 눈 렌즈를 끼고 다녔다. -그런데 할페티가 사건 때문에 와장창 나서 수경이의 자아가 박살나진 않았지만 많은 걸 잃어버렸고 자존감도 바닥을 기고 있다. -저 네카는 할페티 시절의 모습으로 성장한 걸 가정한 홀로그램에 가깝다.
"서프라이즈...일까요?" "어떻게... 어떻게..." "그런 말만 하시면 어떡하나요?" "안데르님 제발... 구해주세요.." "티. 티가 할 수 있었잖아요?" "제가..제가.. 못 버텨서..흑!" "그렇죠? 티의 잘못이에요" 폐허처럼 보이는 곳에 목을 잡힌 채로 깔아눕혀진 그녀의 위에서 안데르가 당신을 고개를 숙여 그늘진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할페티. 제가. 당신을. 아끼기. 때문에. 넘기겠다고. 생각했다는. 걸.. 아시나요?" 단어 어절마다 가해지는 힘이 세진다. 아득해지는 기분이..
"전부 티의 탓이네요." "앨리어스는 정말이지. 핵심을 어느정도 봐버린다니까요." "샨르우르파의 할페티가 유독 새카만 장미가 유명하기에 당신의 앨리어스가 된 것처럼. 당신께 내가 이 장미를 준다면. 결국 그건 물건의 소유의 문제가 되지 않겠나요?" 수많은 이별과 원한과 불행을 몰고 다니는 티.. 마치 노래를 부르듯 말하는 안데르에게서는. 앨리어스를 따온 원어의 향이 옅게 풍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에 위험을 설명해준답니다." "당신이 만일 우리의 소유물로써 더 끌어냈다 해도. 구할 수는 없었답니다." 그야. 저 정도의 파편이라면 말도 못할 만큼 으스러졌을 거니까요. 보이시잖아요. 파편 아래가 젖어드는 것을요? 어떡하죠 티? 당신이 불러온 이별과 죽음에 모두가 휘말렸답니다.
"...." "전부. 당신이 무의식적으로 거절해서 생긴 일이에요." 마치 연인을 껴안는 것처럼 가까이 다가와 그녀를 덮듯 밀착한 그가 귓가에 속삭인 뒤 비쥬를 가한 뒤 다시 일어납니다.....
뒤돌아 사라지는 안데르는 뒤에서 들리는 통곡인지. 보이지 않는 부서짐의 소리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사라질 게 아쉽다는 듯 몇 번 뒤를 돌아봤지만..
>[(거리를 아무렇게나 찍은 사진)] <[나갔냐?] >[ㅇㅇ] <[가르쳐준 대로 입었어? 화장은?] >[다 했ㄴ는데] <[근데 뭐] >[아무리 생각해도 댁은 변태임] <[(중지를 치켜든 손 사진)] >[(중지를 치켜든 양 손 사진)]
인파를 피해 그늘진 곳에 서서 폰으로 하고 있던 건 오늘 의상과 코디를 협찬한 인물과의 톡이었다. 주거니 받거니- 오래 보고 지낸 만큼 적절히 선 타는 대화를 하다가 문득 한 메세지에 손이 멈췄다.
<[됏고 내일모레 잊지마]
내일모레. 15주년을 기념한 작은 연주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불행일지 행운일지, 그 연주석 하나를 내 이름으로 채웠다. 반주자가 이 인간인 건 절대 행운이 아니겠지만.
>[ㅇㅋ]
간결한 답장을 보내고 메신저를 닫았다. 그리고 잠시 시간을 확인하고, 주변을 보기 위해 고개를 딱 든 순간-
사람들 사이에서 튀어나오는 작고 하얀 존재를 눈에 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그 자리에 뚝 떨어진 양 나타난 성운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약속 시간은 아직 멀었는데 서두르기라도 한 걸까.
"...성운아."
묘하게 싸맨 듯한 차림의 성운을 발견하고 한 걸음 나아가려는데 먼저 멈춘 성운의 얼굴이 새빨갛게 익어버렸다. 게다가 혀를 씹으며 말을 더듬기까지 하고, 대체 왜 그러지 하고 고개를 슬쩍 내렸다가 아, 하고 깨달았다.
확실히- 평소에 비하면 많이 파격적이긴 하지.
"조금 일찍 나와버려서. 응. 너한테 이쁘게 보인다니 차려 입은 보람이 있네."
태연함의 가면을 쓰고 성운에게 한 걸음 다가가 평소보다 조금 높은 시선을 맞추기 위해 조금 상체를 숙였다. 성운의 것과 한 쌍인 양 두른 가죽 초커에 달린 고리가 찰그랑거리며 걸린 끈들을 살짝 늘어뜨리고 깊이 파인 블라우스 깃이 팽팽히 당겨지며 초커와 목 등을 잘 보이게 내비췄다.
시선을 들면 엷게 웃는 꽃잎색 입술과 푸른 눈동자가 있었을 테지.
"그런데 너는- 왜 그런 걸로 꽁꽁 싸맸어? 덥지 않아? 여름인데?"
간단하지만 짖궂은 행동 만큼 짖궂은 말투가 퍽 부드럽기도 했다. 조심히 한 손을 올려 성운의 뺨을 쓰다듬으려 하는 손길도 그랬다.
"그대로면 분명 더울 걸. 그러니까 놀러가기 전에 벗어서 들고 가자."
응? 하고 고개를 갸웃 기울이자 검푸른 머리카락 사이로 새하얀 목덜미가 스르르 드러났다. 내 채근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성운의 귓가에 작게 속삭이는 말도 더했다.
"말 잘 들으면, 좋은 거 해줄게."
사실 꼭 이렇게 해야만 할 건 아니었지만 좋은 구실로 쓴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할까. 금방이라도 닿을 것처럼 굴어놓고 그 속삭임만 하고선 슬그머니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상체를 세워 서선 웃는 얼굴로 성운을 바라보았다.
저번에 정하랑 같이 갔었던 한식당이 있었지? 아마 지금이 1년 중 가장 붐비는 성수기니깐 문을 닫을 일은 없을 거야. 아마 대접해주면 맛있다고 좋아하겠지. 일단 엄마는 나처럼 한식을 좋아하니깐 말이야. 서한양은 손가락을 딱 튕기며, 가보겠다고 말하였다.
부모님의 직업을 정확히 밝히자면..아버지는 장교 출신 국회의원 보좌관. 그러나 한양이는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시는지 정확히 모른다. 어머니는 6급 군무원. 군에 소속된 민간인 신분이지만, 부대에서 미리 보안 및 방첩교육을 받았기에 인첨공으로 들어오는 게 가능했다.
"으음.. 그렇지.."
미안하다. 그 삘이라는 것이 탄 적이 없어요. 여기서 밝히는 건데.. 나 공부 자체를 굉장히 싫어한단 말이야. 싫어하는데 삘이 어떻게 타요(?). 그나저나 정하도 아쿠아리움이 좋다고 하니..그런데 기다리자고 해야겠다. 금랑이 불러야 돼.
"여러 명이서 자취한다고 했지? 재밌겠네. 나도 여럿이서 살아보고 싶은데. 기숙사 말고..헤.. 잠시만..반려동물은 목줄만 제대로 차면 출입할 수 있대."
한양은 오른팔에 찬 스마트워치를 보고는 혼자서 " 이 근처에 있네."라고 중얼거린다. 워치를 누르더니 "현재 위치로 와줘~"라고 말을 한다. 3분도 안 지났을까? 바퀴가 달린 로봇이 한양에게로 온다. 그리고..로봇에 묶인 줄..그렇다. 금랑이의 목줄이었다.
복슬복슬한 인절미 같은 골든리트리버..금랑. 금랑이는 한양에게 달려오다가, 옆에 있는 정하를 보고는 정하에게로 방향을 전향한다. 헥헥거리며 꼬리를 흔들면서 말이지. 한양은 '이 녀석 주인은 항상 2순위인 거냐.'라는 표정으로 금랑이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어서 로봇에 묶인 목줄을 자신의 허리에 묶기 시작하고.
개인별 인상. 한양: 그. 앞으로 나서게 하는 건 아래 학년 전부에게...인 걸까요. 성운: 폐허에서 거주지를 잘 꾸며놓고 사시는 것 같아요. 혜우: 선배로 여긴 모양입니다... 실제로 들었네요. 철현: 살짝 경계대상.. 혜성: 저번(스토리상)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정하: (기본 인상)
"아뇨 제가 사겠," 금이 채 그 말을 끝내기 전에 당신이 손을 당겼을 땐, 먼저 앞서가면서 당신을 이끌려고 했던 것이 의미 없을 정도로 무력하게 당겨져온다. 줄을 선 채 서면, 금은 입술을 달싹이다 다문다. 그저 자신의 대답을 듣고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당신의 옆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볼 적에, 그런 농담을 듣자 금은 당혹스러운 기색이 어지간한 표정이 된다. 늘 무표정하였던 게, 오늘따라 표정의 변화가 잦다.
"정말.... 그냥.... 제 오지랖이니까요. 선배가 미안해하실 거 없습니다."
그 짓궃은 농담에 찾아오는 꼴사납고, 민망하고, 부끄러운 감정이란. 고개를 숙이지 않으려 노력하며, 당신의 쨍한 푸른 눈동자를 간신히 마주 보고 있을 적에 그런 답을 듣고서 금은 대답을 망설인다. 그날 벤치에서 당신과 만났을 때처럼, 여전히 금은 지금 자신의 행동이 당신에게 방해이고, 부담이 되고 있진 않은지 헤아리고 있었다.
외모적 칭찬을 받아본것은 꽤나 오래된 일이니까. 동월은 괜히 툴툴거리듯이 말하고는 뒷목을 손으로 한번 쓸었다. 하긴, 단지 외모적 칭찬 뿐만 아니라 '칭찬' 이라는걸 받아본 기억이 흐릿했으니. 의식하고 칭찬하는 말도 괜시리 부끄럽게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 어... 넌 좀 힘들지 않을까. " " 따뜻한 사람은 뭘 해도 따뜻한 법이니까. "
그것은 단지 신체적으로 따뜻한 것만을 이야기한 것은 아닐테다. 시체를 많이 만나서 시체같은 사람이 된것은, 애초에 동월이 차가운 사람이었기에 그것이 극대화됐다... 라고 설명해도 될테다. 지금의 활기 넘치는 모습이 나타난 것은 몇년 안된 일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애린의 경우에는... 원래부터 따뜻한 사람. 이라고 동월은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은 뜨거운 열정과는 다른 것일테지.
" 호요. "
가끔씩... 이 아니라 자주 들리는 애린의 감탄사를 따라하듯이 말해본다. 다만 감정이 실려있는것은 아니라서 그저 글자를 그대로 읽을 뿐인 말투가 되었지만... 어떻게 보면 대답과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뭔가 의미를 담고 한 것은 아니고, 그저 애린이 잠시 생각하는 동안 튀어나온 말이다.
" 주전부리라... " " 그럼 간장은? "
물론 농담이었다. 바나나를 고추장이나 간장에라니. 동월이 아무거나 잘먹는 막입이라곤 해도, 그런 것까지 입에 댈 만큼 식욕이 왕성하진 않았다. 애린은 고민을 해보겠다고 했지만, 동월은 아마 질색하며 손을 내저을 것이다.
" 취향... 체리만 아니면 돼. " " 넌? 따로 좋아하는거나 싫어하는거 있어? "
애린과 이런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나누지는 않았겠지만, 저지먼트와 괴이부를 함께 하고있는 만큼 같이 다니는 일이 많았을테니. 무언갈 먹으러 가자고 할 때에 동월이 반대한 적은 없었을테다. 뭔갈 정하면 딱히 반대하는 일 없이 따라갔겠지. 이번에도 방금 애린이 든 예시처럼 극단적인 것만 아니라면야 불만 없이 따라갈 수 있었다.
저번에 갔던 식당 생각을 잠시 하다가, 무심코 추천했다. 확실히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무난한 메뉴들에 뛰어난 맛이였으니까. 한식을 완전히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무난하게 갈만하겠지.
"진짜, 선배덕분에 괜찮은 집 찾았어요."
그냥저냥 갈만한 맛집은 많아도, 어른들이랑 갈만한 무게감 있는 가게는 다른 이야기니까.
"그쵸~"
...사실 삘같은거 탄적 없지만. 언제나 적당적당 미뤄두다가 전날에 하루빡공하고 시험보는게 고딩 국룰 아니겠어~? 그치만 그래도 시험 수행은 다 잘봤으니까. 응.
"한양선배도, 대학교 가면 같이 자취 하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대학교는 좀 더 자유로우니까요!"
다같이 자취도 그때쯤 가서 할 수 있겠지. 왜인진 몰라도 은우선배, 현서선배, 철현선배와 한양선배가 나란히 장난치는 모습이 그려져 살짝 미소가 그려진다.
"오! 다행이네요, 금랑이는 그렇게 막 사납거나 그러진 않으니까요!"
진짜, 처음 봤을때부터 짝사랑이였다. 학기중에도 징징대서 몇번은 만나봤는데, 너무나 고맙게도 도망쳐주지 않아서. 매번 올때마다 예뻐해주고있다.
"저건 진짜 볼때마다 신기하네요..."
그렇게 말하다보니 저 멀리서 보이는 커다란 금색 털뭉치 실루엣. 저 복슬복슬하고 듬직하지만 귀엽고 무해한 실루엣. 백퍼센트 금랑이다. 드론이 개 산책을 시키는 꼴이라니. 뭔가...뭔가 초자연적이야... 직접 산책시켜주면 금랑이도 더 좋아할텐데...
"오구오구오구오구!! 우리 금랑이와쪄어~! 눈나 보고싶었어여어어~ 그래쪄여어어어!!!!"
만나자 마자, 거의 위에 올라타듯, 한품 가득 금랑이를 껴안으면서 뺨 가슴 팔과 머리로 금랑이를 한가득 쓰다듬어준다. 금랑이도 이에 지지 않게 머리와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돌리며 나에게 부비적대 내 검은색 후드티를 금방 금색 털로 물들인다. 그러다가 자연스레 몸통박치기로 날 쓰러트리고 얼굴을 햝아대기 시작한다.
"야 그만해~ 간지러워!! 꺄하하하" 물론 너무 햝아댄 나머지, 얼굴이 침 범벅으로 되어버렸지만, 딱히 나쁜 기분은 아니야...헤헤헤 거진 한 1분 가까이 그렇게 껴안고 뒹굴고 올라타고 한 결과...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더이상 여한이 없어.
약간 힘든듯 헥헥거리는 금랑이에게, 능력을 끌어올려 가볍게 노폐물들을 씻어 목욕시키는 느낌으로 잠깐 씻궈낸 뒤, 뽀송하게 다시 말려서 에어컨을 틀어준다.
「서두르기라도 한 걸까」라니 성운이에게 그런 옷을 리퀘스트해두고는 너무 뻔뻔하게 시치미떼는 발상이 아닌가? 숨이 가쁜 기색은 없어보였으니, 뺨이 애초부터 빨갰던 것은 급격한 운동으로 인한 혈류의 상승이 아니라 심리적 불안감에 의한 혈류의 상승이 원인임이 분명─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 이 가오리 후드티 안에 꽁꽁 감추고 있는 착장을 다른 이에게 들킬까 하는 조바심이었다. 거기다가 혜우까지 상당히 자극적인 착장을 하고서는 상체를 숙여서 눈높이까지 맞추어오고 있으니, 얼굴이 빨개지지 않을래야 빨개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뺨에 손을 올리자, 몇 번인가 만져본 적 있던 따스한 말랑함이 손끝에 와닿는다. 여름 햇살과는 달리 따갑지 않은데도, 어떤 햇살보다 따스하다. 손끝을 녹이러 오기라도 한 것처럼. 처음에는 보라색이라는 포괄적인 말로밖에 조심스레 짚을 수 없었던 성운의 보라색 눈동자는, 혜우가 그 망막 위에 자신의 모습을 비출 때 두 송이의 보라색 수국과 같은 빛이 되었다.
혜우가 다 알고도 묻는다는 듯이 왜 그런 걸로 꽁꽁 싸맸어? 하고 묻자, 성운은 빨개진 얼굴로 팔자눈썹을 떴다. 눈물까지 글썽 맺히며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가 참 듣기 좋다.
“야, 천혜우··· 그걸 니가 나한테 물어보면 안되지······.”
그러나 결국 성운은, 가볍게 고개를 기울이며 타이르는 듯 조용히 밀어붙이는 혜우의 청을 무시하지 못했고, 달달 떨리는 손으로 앞덜미의 지퍼를 꽉 붙들더니··· 굳게 결심한 듯 지퍼를 지익 내려버렸다. 소년은 내심으로 탄식을 내질렀다. 첫 데이트라고 하면 조금 더 포근하고 폭신한 느낌이 되고 싶었는데···!
하지만 흡연자와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자는..미안하지만 같이 못 살 것 같다. 담배냄새를 조금만 맡아도 두통을 호소하곤 하니깐. 금랑이 닮아서 은근 후각이 예민하단 말이지. 어쨋거나 금랑이는 한양이를 슬쩍 보다가 정하에게로 갔다. 금랑이가 정하랑은 구면이라서 말이지. 정하가 꽤 예뻐해주기도 했고.
"엄청 싸보이는 로봇이지? 근데 저런 것도 엄청 비싸다? 레벨 4 되어서야 겨우 할부금을 갚았거든."
한양의 직업이 학생이고 바쁘고 혼자 살고를 떠나서.. 언제 어디로 출동해야 될지 모르는 신분이기에 이런 로봇 하나 쯤은 필수였다. 그런데..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 엄청 좋아하고 있네. 누가 보면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줄 알겠어.그래도 이렇게 웃음기 가득해본 적은 오랜만이네. 그거면 됐어. 그런데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정하가 체구가 작아서 그런가? 나한테는 절대 안 하는 몸통박치기를 쓰네??!?!?!?!
"야야..금랑아..얼굴 다 젖겠다. 그만혀.."
한양이는 정하의 얼굴을 핥고 있는 금랑이의 뒤로 간다. 그대로 뒤에서 안아들어서 정하와 떼어냈다. 이어서 로봇은 집으로 다시 돌려보내고, 정하에게는 티슈를 건넸다. 그런데 이거는 능력으로 닦을 수 있으려나? 티슈가 필요없어 보이기는 하는데. 정하는 살짝 지친 금랑이의 몸을 간단하게 씻겨주었다. 물에 잠시 젖은 것 뿐인데 뭔가 아까보다 기세가 더 순해진 느낌이야. 털이 내려가서 그런가? 하지만 말리기 시작하네.
"침 엄청 묻었네..아, 능력으로 닦게? 정하 너도 옷 좀 행궈야겠다. 털 다 묻었어."
에어컨을 쐐는 것마냥 바람을 맞는 금랑이는 기분이 좋은 듯, 눈을 감으며 바닥에 축 늘어지고 있었다. 이게 강아지인지..진짜로 사람인지..
한 번씩 있는 피디피 군의 세척날이었습니다. 늘어진 부품들을 차례로 닦고 기름칠하며 조립합니다. 스킬아웃씨를 배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기적으로 거쳐야 하는 일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저의 몸을 챙기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곧 저지먼트에게 아이돌인 불렛씨의 경비 임무도 주어질 것이기 때문에 더욱이 신경써야 했습니다. 가장 원하지 않은 순간에 저의 역할이 짐덩이로 되는 것은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달리 아무런 능력이 없는 제게 이 순간은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186 오갹(물림) 갈거에요 갈거에요 제발그것만은더이상 으아앙 8ㅁ8 음.. 폐공장 파티가 결성되어야 볼 수 있을 그림이긴 한데 추운날 혜우가 -"- 돼서 오거나 여름에 태풍 와서 우르릉쾅쾅하는날 성운이가 8ㅁ8 돼서 왔을 때라던가 이야기일 것 같아요 아무래도 후자가 가능성이 좀 더 높지 않을까요? 서로가 서로의 개인이벤트를 체험해보거나 혜우가 성운이에게 어느 정도 마음을 열었다면 이야기가 더 풍성해지겠네요. 왜 나한테 고백했어? 내 고백 왜 받았어? 나 계속 네 옆에 있어도 돼? 언제까지 내 옆에 있어줄 거야? 그런.. 좀 달달한데 아련하고 쌉싸름한 그런 이야기들
대담한 이 차림새로 어떻게 움직여야 어떻게 보일지, 성운이 왜 이 날씨에 답답해 보이는 후드집업을 껴입었는지, 다 알면서 모르는 척 구는게 제일 얄미움을 내가 모를까.
그럼에도 생글생글 웃으며 다정하게 굴었다. 뺨을 쓸어줄 적에도, 홍조를 식혀주려는 듯 차가운 손바닥을 한껏 대고 살며시 어루만져주었다. 귓가에 속삭일 때도 숨소리 없이 비밀스러운 말만 살짝 흘렸다.
그 결과로 눈가에 눈물 맺힌 성운이 떨리는 목소리를 내었을 때 전에 없던 짜릿함이 느껴진 건, 나만 알 비밀이었지.
나는 그저 웃으며 기다렸다. 이윽고 성운이 행동할 때까지. 기다림 끝에 후드 집업이 열리고 지난 날 내가 벌게임으로 지정했던 옷이 나오자 한 손을 가볍게 주먹 쥐어 입가에 댔다.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가리기 위함이었다.
"...왜, 잘 어울리는데."
겨우 웃음을 참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빈 말은 아니었다. 저 자그마한 몸에 참 잘 어울리지 않은가. 누군가 보기엔 마니악할 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 눈엔 몹시 만족스러움에 틀림 없었다.
"잠깐, 이리 와."
돌연 나는 그렇게 말하며 성운의 한 팔을 가볍게 잡아 내 쪽으로 당겼다. 잡기는 가벼웠으나 당기는 힘은 제법 강단 있었다. 제대로 당겨졌다면 잠시나마 품에 폭 안겼겠지.
그러나 그냥 안기 위해 한 행동은 아니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성운의 근처로 한눈을 파는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대로 두면 부딪힐 것 같아 당긴 것이었다. 행인이 지나가고 나면 팔을 놓아주고서 다시금 성운의 뺨을 어루만지려 했다. 품에서 떨어질 지는 성운에게 맡긴 채로.
"...아무튼 제대로 입고 왔으니, 상을 줘야겠네. 그럼 이제 눈 감아 봐."
부드러운 손길과 달리 그 말은 제법 흠칫하게 들리지 않았을까. 다시금 생긋 짓는 미소도 그랬겠지.
성운이 순순히 눈을 감았다면 감는 대로, 아니면 내 손으로 가볍게 성운의 눈가를 가리고, 시야가 차단된 사이에 지이익 지퍼 끄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잠시 달그락, 부스럭 소리가 잠시 나더니 성운의 한 쪽 팔이 살짝 들어올려지고 낙낙한 소매 끝에 나온 자그마한 손에 동그랗고 단단한 줄? 같은 것이 닿았다. 약간의 무게가 느껴지는 그것은 스륵 움직여 손목에 딱 걸려 멈추었다.
이것으로 끝일까 싶은 순간, 부드럽고 말랑한 감촉이 깃털처럼 사뿐히 성운의 입술 위를 스쳐갔다.
"...이제 됐어. 눈 떠 봐."
그 말을 듣고 눈을 뜨면, 혹은 내 손을 치워주면. 성운의 손목에 걸린 원석 팔찌를 볼 수 있었을 테지.
검푸른 심해를 담은 듯한 원석과 무색투명하나 기묘한 흑색 결정 같은 것이 담긴 원석이 동그랗게 커팅된 채 줄에 꿰여 다시금 동그랗게 고리를 만든 장신구였다. 원석들 사이로 달과 별을 합친 듯한 은빛 참도 반짝였다.
"저번에 준 머리카락으로 만든 보석이야. 흰 색은 네 거, 진청색은 내 거. 커팅은 기계가 했지만, 엮는 건 내가 했어. 마음에 들어?"
나는 성운에게 준 것과 한 쌍이자 내 것인 팔찌도 꺼내 들고서 성운을 향해 웃으며 물었다. 과연 눈치 챌까- 하는 생각과 함께.
>>187 성운주 간다 했다 나 지켜볼거다 (으르릉) 오 그런거면 후자가 킹능성이 높지 혜우 추우면 필로톡이고 뭐고 그냥 품에 기어들어가서 골골대기만 할 거라 여름날 바깥 날씨는 궂지만 둘이 나란히 누운, 혹은 겹쳐 누운 채 도란도란 나누는 얘기... 아 근데 이건 진짜 서로 개인이벤트를 겪은 다음에 해야 진국이다 쓰으읍
>>192 그래애애 안그래도 연말이라 병원 미어터질테니 꼭 이번주중으로 가봐 (복복)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응 어쩌다보니 ㅎㅎㅎㅎㅎ 원래는 독백으로 부실 자리에 갔다놨다 할라 했는데 어쩐지 별로 쓰고 싶지 않아서 미루다보니까 응 이렇게 됏네 하하하 연성 다음으로 준비한 한방 알찼다! 뿌듯하다! (기습뽀) 가을 태풍? 오 이거 좋다 가을 태풍이 여름보다 쌀쌀하고 서늘하고 글차나 혜우는 춥고 성운이는 무섭고 딱 그 중간지점 될거 같아 응응 좋다 킵이다 절대 한다
>>213 성운이는 자기가 당한 일로 앙금을 쌓아뒀다가 보복을 가하는 성격은 아니에요. 적어도 친칠라는. 하지만 설표는 뒤끝이 아아아아아주 길어요(적대적 관계 한정). 그와 별개로, 언제고 3레벨이 되면 첫 번째 훈련에서 성운이를 괴롭혔었던 애들이 엘리트한테 딱걸려서 고생하고 있는데, 성운이가 나타나서 엘리트에게서 그 애들을 구해주는 훈련레스를 쓰기로 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근데 이걸 안쓰고 있었네?!
>>219 음음 글쿤 (메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거 생각해뒀다가 못 쓰는 경우 있지 이제라도 쓰자 (복복복) 흐음 내가 물어본 이유는 혜우가 나중에 저지먼트 사건사고 파일 정리하다 이 사실 알아서 직접 따끔한 복수를 해주려고 했는데 음 역으로 당한 맛이요? 아유 말해뭐해... (전신복합골절)
그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부실에서 저지먼트의 일을 하고 있었다. 한 학기 동안의 사건사고 보고서와 서버에 저장된 정보 간의 교차 확인과 첨삭을 하는 일이었다. 특히 이번 학기엔 블랙 크로우 탓에 자잘한 일이 많아서 서류의 양이 꽤 많았다. 오늘 내로 할당량을 채우려면 제법 바쁘게 확인해야 했다.
그러니 한눈 팔지 않고 부지런히 서류들을 정리하고 확인해가던 중- 한 장의 내용에 시선이 꽂혔다.
당시 2학년생 저지먼트 한 명이 휘말렸던 폭력 사건의 보고서...
"...흐음."
보고서에 적힌 이름들을 하나 하나 눈여겨 본 뒤 다음 것으로 넘겼다. 남은 서류를 처리하는 손이 조금 더 빨라졌다.
시간은 어느덧 술술 흘러가 하교할 시간이 되었다. 무사히 할당량을 마치고,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인사를 끝으로 부실을 나갔다.
시간이 딱, 교내 커리큘럼이 끝날 시간이었다.
인첨공에 들어올 때부터 연구소 소속이었으니, 학교에서 주관하는 커리큘럼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얼추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가 있을 수 있었다. 곧, 하교 시간과 함께 교내 커리큘럼이 끝나 학생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왔다.
나는 커리큘럼용 건물과 본교사로 넘어오는 그 사이- 계단참에 기대어 있었다. 그저 처음부터 거기에 서서 폰을 하고 있던 것처럼, 태연하게 자판을 두들기며 안 그래도 바쁜 사람 괴롭히고 있었다. 그러다 기억 속 이름이 적힌 명찰이 시야에 스윽 지나가자 살짝, 눈을 깜빡였다.
마치 손을 가볍게 쥐었다 펴는 듯이.
직후 요란한 비명소리와 함께 계단 몇 개를 우르르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짧았으니 기껏해야 서너단 삐끗한 정도일 터였다. 자연스럽게 그 계단 옆을 지나며 눈길을 주니, 발목을 삔 듯 엎어져 아우성을 치는 꼴사나운 모습이 보였다,
그 사람의 얼굴을 걷어찼던 발목이니 그 정도는 약과인 것을.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돌아서 그 자리를 떠났다. 가벼운 염좌이니, 기껏해야 일주일 앓고 나면 나을 것이었다.
방진마스크를 벗어 소매에 걸고, 옥상 난간에 몸을 비스듬히 걸치고 바깥을 바라본다. 밖은 여전히 15주년 행사로 왁자지껄하다. 프라모델 부품들을 도색하는 작업을 끝내고, 피부에 닿는 부분이 땀에 젖은 방진마스크가 여름 바람에 조금씩 흔들렸다.
"...부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나도 평범한 학창생활을 꿈꾸던 적이 하루이틀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기회를 스스로 내쳐버리고 말았지. 오로지 내 욕심과 본능에 매달려 허송세월을 보내고 살아왔다. 많은 이들의 기피대상이 되어, 폭력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심판의 시간은 어느날 한순간에 오는게 아니었다. 그저 내 모든 인생에 걸쳐진 것이지.
스마트폰을 꺼내 연락처를 훑어본다. 같은 저지먼트 부원들은 물론, 영화감상부 인원들도 있다. 다양한 인물들이 연락처에 있기는 하지만 굳이 같이 가자는 연락을 하지는 않는다. 나 말고도 같이 놀 사람이 있겠지. 그런 생각에 멈춰버리고 말았다. 혼자는 나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 사람 저 사람 찌르는 것도 싫고. 애초에 날 달갑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을테니까.
저마다 친구, 가족, 연인들을 대동하고. 혹은 그냥 자기 혼자서 행사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이들 보인다. 하지만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거람.
"...뭐, 그럴 만 하니까 그런거겠지."
휙, 하고 기대있던 난간을 떠밀듯 하며 멀어진다. 이제는 능력의 끄고 켜는게 제법 자유롭다. 이전과 같은 컨트롤 미스는 거의 사라진 것 같다. 그래 놓고도 여전히 여운이 남아 잠깐 서서 스마트폰을 만지작대다가, 자조하듯 피식 웃고선 주머니에 집어넣고 옥탑방 안으로 들어간다.
귀여운 것에, 인간은 거의 누구나 호감을 표시하게 되어 있다. 특히 어린 것들이 이리저리 어설프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쓰다듬는다거나 껴안는다거나 해주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 정도가 심해지면 그 감정 역시도 격해지는데, 꼬집고 깨물어주고 싶고 마구마구 와바박해버리고 괴롭혀보고 싶은 등 정반대선에 있는 감정의 색채에 빠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흔히, 귀여운 공격성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열여덟 살짜리 소년─ 혜우보다도 한 살 더 많은 나이를 가진 이것은 그 귀여운 공격성을 자극하는 데에 최적의 존재였다. 아담한 키에, 올망졸망한 이목구비, 가시지 않은 솜털, 길게 기른 새하얀 머리카락까지 흡사 조그만 설치류같은 모습. 그 귀여운 외양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다가가는 것을 꺼림칙하게 만드는 일컬을 수 없는 색의 눈이 있었으나, 그것마저도 혜우를 그 망막에 담을 때면 보라색의 꽃과 같은 색채로 풀어져버리고 만다. 가녀린 팔은, 이제 제법 턱걸이도 수십 개씩 하는 단련된 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혜우의 손에는 얼마나 쉽게 불쑥 끌려와버리는지. 거기에 혜우의 애정어린 괴롭힘-그 소년에게 너무도 생소하고 자극이 심한 착장을 포함한-까지 겹쳐져, 파르르 떨며 눈물까지 짓고 마는 것이다. 지금 시점의 혜우의 애정의 대상으로서는, 어찌 보면 최적이라 할 만하다.
덜컥 끌려온 성운은 혜우의 품 속에 저항도 못하고 폴싹 파묻혔다. 손끝에만 스미던 온기가, 옅은 숲속 안개 냄새와 함께 혜우의 품 안에 느릿하게 번진다. 대뜸 끌어안겨 눈을 깜박이며 혜우를 올려다보던 성운은, 시야의 가장자리로 방금까지 자신이 서 있던 자리를 다른 데에 신경이 팔린 이가 그대로 스쳐지나가 버린 것을 알아챈다. 그는 아직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는 눈으로 혜우를 올려다보고는 아직 눅눅한 눈길 그대로 눈웃음을 지어버린다.
모르지 않는다. 혜우가 건네는 애정이 일반적인 궤를 퍽 벗어나 있다는 것을. 이것이 괴롭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에는 그 괴로움 이상으로 선명한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고, 성운은 그 사랑받고 있다는 감각이 좋았다. 괴롭히지 않는 그냥의 애정도 좋았다. 뺨을 어루만져주는 손도 좋았다. 그래서 성운은, 이 온기는 그냥 그대로 혜우에게 기대어있는 편을 선택했다. 얼핏 들으면 자칫 잘못된 의미로 알아듣기 딱 좋은 어조의 상을 줘야겠네, 하는 혜우의 목소리에도, 혜우를 올려다보는 성운의 눈이 조금 어리벙벙해질 뿐 성운은 혜우의 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자신을 잡아당겨준 데에 고마워, 하려고 말을 떼려던 입을 합죽이처럼 쏙 다물었을 뿐. 성운은 살짝 겁먹은 기색으로 순순히 눈을 감았고, 혜우에게 얌전히 자신을 내맡겼다. 무언가 팔에 걸리고, 예기치 못한 감촉이 입술을 스쳐지나갈 때 “읏.” 하는 소리를 낼 뿐 성운은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성운은 자신의 팔목에 걸린 팔찌를 발견했다.
“이 팔찌······”
무색투명한 원석에 담긴 강착원반의 일부가 마치 은하수같이, 밤바다같은 빛의 원석 위에 알알이 비치고 있었다. 마치 그날, 어느 궤도에도 들지 못하고 떠돌던 자그만 별의 라그랑주점으로 문득 다가와준 하얀 달이 생각나는 팔찌였다. ─그리고 똑같은 것이, 혜우의 팔목에도 걸려있다. 성운은, 자신의 팔목에 걸린 팔찌와, 혜우의 손에 쥐인 팔찌를 바라보고는, 옅은 웃음을 지었다.
“그때 같은 팔찌네.”
그리고 성운은 눈물 맺힌 눈 그대로, 온 얼굴에 해사한 웃음을 지었다.
“고마워, 혜우야.”
그러고 보니 이 보석, 머리카락으로 만든 거였지─ 성운은 문득 자기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보았다. 그때, 머리 위에 높이 올려묶고도 허리까지 치렁치렁 늘어졌던 머리카락이 기억나서였다.
그러고 보니 이런 훈련레스도 있었네요. situplay>1597013082>307 성운이가 운전석에 있던 스킬아웃을 너무 쉽게 운전석에서 뽑아버리니까, 스킬아웃이 성운이 능력이 인핸스드 컨디션 계열인 줄 알고 너 장태진(태진의 이름만 듣고 얼굴은 모른다는 설정)이냐고 기겁하는 내용이었는데..
“「초상능력이 발생시키는 변칙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이론과 실험으로 규명이 가능한 과학 내에서, 뇌의 연산량을 단기간에 증폭시키는 약물이라면 필연적으로 이런 구조일 수밖에 없어. 뇌에 무리를 주거나, 취약한 구역을 만들지. 뇌에 허점을 만들 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이 약물은, 개발 과정에서 「초상능력이 발생시키는 변칙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일부러 그런 기작을 유지했거나 아니면 그런 작용을 증폭, 혹은 유도했겠지. 자신들이 의도하는 효과를 만들어내려고. 네가 전해준 정보를 종합해보면 그게 확실한 것 같다.”
“그런 현상 없이 안전하게 이것과 유사한 효과를 내려면, 초상능력의 도움이 필요해. AIM 매니퓰레이션 능력이 있는 능력자에게서 도움을 받거나, 혹은 리얼리티 매니퓰레이션 능력자가 충분한 능력계수로 연산해낸 결과물의 영향을 받아야 할 거다.”
“「해독약」 말이냐? 이건 독약을 마셨다기보단 끓는 물을 마셨다고 하는 게 더 적합하지. 독은 그 기작을 정지시키거나 막는 해독제를 만들 수 있지만, 화상은 한번 발생한 이상 돌이킬 수 없어. 마찬가지야. 치료 과정은 정립할 수 있어도, 하나 먹는다고 그것이 남긴 상처를 단숨에 깔끔하게 해독하는 약 같은 것은 만들기 쉽지 않을 거야.”
판이 터질 것은 눈에 훤했지만, 설마 300까지 갔을 줄이야! 갱신이에요! 다들 좋은 아침이에요!
>>312 능력 자체는 비밀이 아니에요! 비밀인 것은 커리큘럼과 초능력 연구 기술력 등등이지. 그렇기에 어느 정도 제한적으로 공개되는 것이기도 하고... 어차피 나갈 때 다 그 부분은 또 초능력으로 기억 자체에 제약을 걸어버리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답니다. 괜히 지금까지 기밀이 지켜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요!
갈 수 있는 곳은 제 3학구와 제 4학구 뿐이에요. 제 2학구와 제 1학구는 출입금지랍니다. 그러니까 제 3학구까지는 무난하게 올 수 있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막 이것저것 이야기하고 다니고 그러면... 숨어있는 특수부대가 나타날지도 모르죠! 그런 곳이에요!
"이거 QR들 전부 10점이야. 내가 시민이라는 증거로- 이 3장의 QR코드도 전부 걸게-"
여로가 자신이 찍었던 QR들을 모두 책상 위에 올리며 말했다. 그를 둘러싼 학생들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넌 뭘 걸 수 있어-?" "그, 그냥 게임인데 왜 QR을 걸어!!" "지금 살아있는 인원은 셋. 게임이 끝나지 않은 걸로 보면 살아있는 마피아는 1명이라는 소리인데... 최소한 *막고라 걸 거면, 자신의 목 정도는 기본, 부가적으로 다른 것들도 함께 걸 수 있으면 걸어야지 않겠어?" "뭐 이런..."
*막고라: 둘 중 한 쪽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행위. 보통 마피아게임에서 투표 시에 행한다.
여로는 미소지으며 자신을 지목한 남학생을 바라봤다.
"난 네가 마피아라는 것에 내 목과 함께 이 QR코드 세 장 전부 걸게. 넌 뭐 걸래-?" ".... 그냥 나 달아라..."
남학생은 전의를 상실했다. 남학생이 처형되었고 승리는 마피아 진영의 것이 되었다. 성여로가 마피아였기 때문이지. 학생들이 너도나도 성여로가 꺼내 든 3장의 QR코드를 찍으려 했다. 3장 전부 -10점이라는 걸 눈치챘을 땐 이미 늦었다.
산책을 다니면서 보니, 높은 곳에 붙여둔 QR코드들도 제법 된다. 자신이야 때마침 높은 곳까지 뛰어오를 수 있는 능력이고 추락에 대한 리스크도 거의 없다시피 해서 이런 QR코드들을 수집하기 좋지만, 안전사고가 일어나기 딱 좋을 것 같은 위치에 있는 녀석들도 있어서 성운은 고심했다. 이걸 좀더 안전한 곳으로 옮겨놔야 되나. 일단 찍고 보자고 생각하고 성운은 코드를 찍었다.
태오는 안드로이드 하나가 갈피를 잃고 돌아다니는 걸 발견하자 손쉽게 붙잡고 정수리를 확인했다. 아하. 무슨 일인지 쉬이 가늠할 수 있다. 하도 바깥 사람들이 신기하다고 만지고 건드리고 하다 보니 센서가 안으로 함몰된 모양이다. 태오는 손으로 두어 번 건드리는 것으로 안드로이드의 센서를 원래대로 되돌리고 본래 부스로 돌아가는지 확인하고자 뒤를 밟았다.
자신의 손길에 이끌려오는 후배를 흘끗 곁눈질로 바라보곤 혜성은 작게 키득거린다. 학교가 아닌 곳이라 그런지 시시각각 변화하는 후배의 표정이 재미도 있고, 축제의 떠들썩한 분위기가 전염된 걸지도 모른다. 지금은 생각하고 있는 것, 생각해야하는 건 잠시 제쳐둬도 좋겠지. 인첨공의 뛰어난 과학력은 음료수를 빠르게 만들었고 줄은 금방금방 줄어드는 중이였다. 혜성은 넣었던 팜플렛으로 부채질을 하며 대답을 하는 후배를 바라본다
"오지랖이라도 내가 그렇게 느끼지 않으면 오지랖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미안한 것도 있지만 후배님한테 고맙기도 해."
솔직하게, 후배에게 이야기하며 장난스레 부채질하고 있던 팜플렛으로 혜성은 후배를 부채질해주기 시작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후배와 눈을 맞추고 있다가 이어지는 말에는 동그랗게 떴던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잠시 곧 눈을 가늘게 뜬다. 후배의 무표정하고 무뚝뚝한 게 변화하는 걸 보는 건 꽤 즐겁지만 저렇게 말하는 건 좀 다른 것이다. 인첨공의 뛰어난 과학력으로 주문은 직접 전달하는 게 아니라 메뉴판에서 원하는 메뉴를 터치하는 간단한 방식이었기 때문에 혜성은 일단 돌아온 차례에 음료를 고르며 입을 열었다.
"나는 한번도 후배님 싫어한 적 없어. 애초에 싫어하는 사람이랑 단둘이 놀러나오는 사람은 없잖아? 걱정하지마. 나는 후배님 꽤 좋아해."
일단 저지먼트들이라면 다 좋아하고 있었다. 친구사이도, 선후배 사이도. 사람이 사람에게 기본적인 호감을 가지는 건 당연한거니까. 대답을 한 혜성은 후배에게 메뉴를 고르라는 제스처를 해보이고 잠시 ID카드를 꺼내기 위해 잡고 있던 손을 놓으려했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리라의 말에 랑은 별 말 없이 자신 주변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스윽 훑었다. 지금까지 봐 왔던 리라의 모습만 가지고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달까. 대부분의 아이들과 잘 지내는 갓 같았는데.
물론 학교에서도 이리저리 시선이 쏠리는 걸 봤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는 생각했다. 더군다나 인첨공 바깥의 사람들도 오는 날 아닌가, 바깥에서 오는 사람들 중에서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리도 끼어 있을 확률이 있는가보다 하고 넘어가게 된다.
"찍은 거 있으면 달라고 하면 되지 않나."
농담이다. 가볍게 지나가는 투로 그리 이야기하곤 농담이라는 듯 붙잡은 리라의 손등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린다. 말은 이렇게 해도 허락하지 않은 사진이 갑자기 찍혀서 어디에 나돈다고 생각하면 그다지 유쾌하진 않으니까.
그보다는 지금 앞에 있는 사격 게임에 신경을 쓰기로 한다. 조금 망설이는 듯했던 리라가 주인의 도발(?)에 넘어가 총을 집어들고 과녁을 겨눠 5발이나 명중시켰다.
"잘 쏘네."
가만히 있는 과녁도 아니고 이리저리 불규칙절으로 움직이는 과녁을 5개나 맞추는 건 잘 쏘는 거 아닐까. 상품은 할인권인 모양, 사람에 따라서는 꼭 10개를 맞추는 것보다 다른 상품을 노릴 것 같은 그런 상품의 라인업을 확인하던 랑은 사실 별로 쏠 생각이 없었지만 한 발도 못 맞추는 게 아닌 이상 상품은 있으니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총을 집어들었다.
.dice 0 10. = 6
1개 - 알사탕 하나 2개 - 막대사탕 하나 3개 - 마감이 허접하고 못생긴 오리 인형 키링 4개 - 대나무를 힘껏 뜯어먹고 있는 화난 판다 인형 키링 5개 - 15주년 행사장 내부에서 쓸 수 있는 25퍼센트 할인권(1회) 6개 - 15주년 행사장 내부에서 쓸 수 있는 50퍼센트 할인권(1회) 7개 - 무선 이어폰(구형) 8개 - 폴라로이드 카메라 9개 - 인첨공 15주년 기념주화 10개 - 태블릿 pc
>>369 >>374 (랑주의 무릎 위 + 랑주와 금주의 쓰담복복에 행복한칠라 됨) 복통은, 이틀 전에 한번 난리난 뒤로는 이제 잠잠해요. 식단도 순한 것만 먹고 있고, 화요일 돼서 병원 열면 바로 가보려구요. 그때쯤 되면 혈액검사 결과도 나와있을 테니 한번 가볼 참이었으니까요 uu
여름의 햇볕은 소년만치 희고 한참은 열이 많다. 소년은 자신보다 눈높이가 높은 여로에게 그늘이 만들어지자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며, 잘 보이고 싶었다는 말에는 또 태연하게 대답했다. 입 발린 말이 아니며, 소년은 평소의 상대를 좋게 보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음, 응."
소년은 간결하게 대답했다. 돌핀 팬츠에 하얀 박스티. 한여름이니 소년은 납득할 수 있었다. 다만.. 소년은 여로의 옷자락을 잡고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렸다. 타인에 옷차림에 대해서는 크게 호불호가 없는 소년이었지만 조금은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다만 그것도 잠시였고, 허리에 옷도 감아주었고, 본인이 만족한다면 됐다 싶었는지, 그저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응."
여로의 권유에 소년은 거절하지 않았다. 내밀어진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입가에 묻은 하얀 아이스크림을 살짝 핥은 소년은 여로의 귀끝을 잠시, 잠시 보았다.
"...그런가."
하얀 눈이 깜빡거리며, 눈꺼풀 안으로 숨었다 드러났다.
"....아까 긴장했다고 했지."
문득, 소년이 입을 열었다.
"나도 그런 것 같아."
하얀 소년의 표정은 여전히 살짝 나른한 무표정이었고, 담담하고 고저없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로는, 소년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챌 것이었다.
조금 가라앉을 뻔 했던 기분이 랑의 농담에 다시 물 위로 끌어올려진다. 덕분에 리라는 손등을 두드리는 손가락을 노크 삼아 나쁜 기억의 문을 열고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가볍게 긍정하면 기분이 한결 산뜻해진다. 맞잡은 손이 따뜻하다.
그리고 다시 사격 게임으로 돌아와서. 솔직히 자신만만하게 도전했지만 정말로 이렇게 많이 맞출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난 몇 개월의 저지먼트 생활이 도움이 된 걸까? 주로 쓰는 클레이건과 물풍선 같은 무기들을 떠올려 보던 리라는 어쩐지 뿌듯해진다. 그리고 그 뿌듯함은 랑의 칭찬에 배가 된다.
"그렇죠?"
부작용으로 약간 오만(?)해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랑이 6발을 맞추자 잠깐의 부작용도 금세 사라진다. 대신 순수한 감탄이 빈 자리를 채웠다. 두 눈이 반짝인다.
"언니도 엄청 잘 쏜다!"
하나 차이이긴 해도 차이는 차이고, 원래 하나 차이는 큰 거다. 아무튼 그렇다.(?) 어쨌든 두 사람은 각각 25퍼센트와 50퍼센트 할인권을 얻게 되었다! 주인은 언제 쫄? 을 시전했냐는 듯 꽤 쿨하게 상품을 정산하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리라는 손에 들린 종이를 내려다본다. 바코드와 알파벳, 숫자가 섞인 일련번호 8자리가 함께 인쇄되어 있는 티켓을 뿌듯하게 바라보던 그는 이윽고 조금 전 그랬듯이 다시 랑의 손을 잡으려 한다. 잡혀주었다면 그대로 자리를 떴을 것이다. 다음 목적지를 위해서.
"할인권이라... 어떻게 보면 만점 상품보다 더 나은 것 같은데요? 이걸로 뭘 할까~"
의외의 수확에 꽤 신이 났는지 흥얼거리듯 말하며 티켓을 팔랑팔랑 흔들던 리라의 눈에 다른 곳이 꽂혔다.
"언니, 다음엔 저기 가 볼까요?"
다음 목적지는! .dice 1 2. = 2 1 초능력 점집 2 10~20년 이후 모습 사진 부스
사격 결과는 6발 명중, 5발을 명중시킨 리라의 상품까지 합하면 최대 75%의 할인권을 획득했다. 5발을 맞춘 것에 뿌듯해하던 리라의, 잘 쏜다는 말에 어깨를 으쓱인다. 이리저리 지맘대로 움직이는 과녁을 맞추는 건 운이 많이 작용하는 것 같긴 한데... 아무튼간에, 결과적으로 손에 들린 할인권을 쳐다보던 랑은 리라가 다시 자신을 손을 잡으려고 하자 순순히 잡혀주었다.
"글쎄, 사고 싶은 거 있으면 그거 사러 가면 되고."
일단 랑 자신은 어디에 쓸까 별 생각이 없었다. 사고 싶은 물건이라든가... 레벨 3인만큼 용돈으로는 충분한 수준의 지원금이 나오고 있었으니 터무니없이 비싼 것만 아니면 이 할인권과 조합했을 때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는 없을 것 같았다. 따로따로 쓰는 것보단 한 명이 다 쓰는 게 좋겠지.
"그럴까."
신이 난 듯 흥얼거리던 리라가 가리킨 곳은 10에서 20년 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뽑아준다는 기계가 있는 부스다. 어떤 방식으로 하는 걸까, 과학기술의 관점이라면 현재 모습이 어떻게 변할까를 예측하는 것에 가까우려나.
장난스럽게 웃는 소리.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도 아닌데, 무력하게 끌려갔으니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이래서는 앞장서 당신을 이끌겠다는 다짐은 이루지 못할 것 같다. 오지랖이라고 변명하듯 하였던 자신의 말에 돌아온 대답은 다정하고 부드럽기만 해서. 미안한 것도 있지만, 또 고맙다니. 이토록 이기적이고 제멋대로 구는 자신에게 고마울 것이 무엇이 있다고. 당신의 말은 저녁 땅거미를 밟으며 떠났을 때부터 이어지던 막연한 불안이 우스울 정도로, 또 그런 질문을 당신에게 한 것이 무안하고 부끄러울 만큼의 답이라. 금은 그런 마음을 감추려 당신과 계속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려 노력한다.
"..... 감사합니다. 싫어하시는데, 제게 맞춰주시는 건 아닌지 불안했습니다."
그런 말을 하며 금은 ID 카드를 꺼내는 당신의 긴 손가락을 바라본다. 자유로워진 제 손가락을 옴짝대다가는, 접으며 꽉 주먹을 쥔다. 그동안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던, 자신이 당신에게 어떤 인상을 주었는지에 대한 미묘한 걱정과 긴장이 사라지면서, 안도감이 밀려왔다. 당신 옆의 후배는 조금 어색한 듯한 온화한 미소를 띠며 당신을 바라봤다. 마음이 가벼워지자 이제야 온전히 활기 어린 축제의 분위기를 느끼며, 금은 음료를 선택하기 위해 메뉴를 살펴보았다.
"청포도 에이드로 할까 하는데... 선배는 어떤 걸 고르셨습니까?"
군데군데 뜨거운 햇빛을 막아줄 천막이 있겠지만, 퍼레이드를 구경하려면 더위에 한참을 서 있어야 할 것이라. 에이드 메뉴에서 청포도를 선택한 후배는 그렇게 물으며, 당신이 어떤 음료를 골랐는지 살폈다.
견물생심이라고 하지 않나, 별 생각이 없더라도 보다 보면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기 마련이다. 그 때 쓰면 되는 거지 뭐. 리라가 이끄는 대로 부스 안으로 들어가자 그다지 낯설지 않은 사진 기계가 보였다. 그래서 그런가 이게 정말 미래를 보여주는 걸까 하는 의심이 조금 피어오른달까.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찍어볼까요 라면서 ID카드를 태그해 비용을 지불한 리라를 보다가 화면을 쳐다본다.
"아무것도 안 된 거 같은데."
돈을 먹은건가. 이런 디지털 방식으로도 돈을 먹을 수가 있나??? 어째 더 미심쩍은 것 같아서 눈을 가늘게 뜨고 카메라를 쳐다보던 랑은 잠깐 생각하는가 싶더니 기계의 옆부분을 손바닥으로 탕 쳤다.
.dice 1 3. = 3 1. 죄송합니다 제대로 해드릴게요 2. 반응이 없다 3. 설마...고장?
1일 경우 .dice 1 2. = 2 1. 지금과 비슷하나 약간 나이 든 모습 2.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찍힌 건 맞는데 아무것도 안 나오는...
하얀 소년은 아이스크림을 할짝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의 담담하지만 강력한 진실에 침몰한 여로를, 소년은 하얀 눈으로 가만히 보았다. 소년은 오늘 여로가, 평소보다 반응이 삐걱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아까 긴장된다고 하였고, 귀 끝을 곧잘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것에 문득, 소년이 깨닫는 것이다.
"..."
나를 좋아하는 구나. 정말로.
소년이 제게 내밀어진 손을 보고 손을 뻗다가 멈칫했다. 잠시 고민하듯 턱을 툭툭 치더니 장갑 끝 쪽을 물고 잡아 당겼다. 벗겨진 장갑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 넣은 뒤 하얀 맨손으로, 소년은 여로의 손을 맞잡았다. 여름의 열기는 하늘에서 바닥에서 모두 다가오고, 맞잡은 손은 열기를 나누지만 떨어질 생각은 없었다.
"...응.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자."
사격장이라던가, 다른 어떤 곳이든지 소년에게는 별 상관이 없었다. 어느 곳이든 의미가 담기지 않으려나... 하얀 소년은 조용히 생각했다.
"..아마..."
보라색, 잘 어울린다는 말에 소년은 감사인사를 하지 않았다. 고개 돌린 여로의 모습을 보며 느릿하게 흐르는 말을 건넬 뿐이었다.
"파란색도 잘 어울릴 거야."
소년은 오직 하얀 색이었으나 그는 아니었으니, 그 두 색 모두 소년에게 잘 어울리지 않을까. 여유로운 걸음에 소년의 머리가 살짝, 살랑 거린다.
대답 돌아오지 않는 기계에게 넋 빠진 채 말을 걸던 리라의 눈이 이윽고 가볍게 떨렸다. 이거... 내... 돈... 먹은 거야...? 지금...? 인첨공 기계가? 돈을 먹었다? 그게 말이 되나? 하다못해 기숙사 자판기도 돈을 먹은 적이 없는데 이런 큰 행사에 배치된 기계가 돈을 먹는다고? 수상한데. 누군가의 음모 아니야? 랑이 한번 탕 하고 쳤는데도 감감무소식인 기계를 멍한 얼굴로 바라보던 리라는 잠시 고민한다.
"......기계는... 때리면 고쳐진다는데..."
안됩니다. 이성적이고 문명인적인 방식으로 해결하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누가 그렇게 말하며 말리는 것보다 리라가 더 빨랐다. 컨버스화 신은 발이 기계 하단을 냅다 때린다. 쾅!
.dice 1 2. = 1 1 살았다 2 죽었어
1일 경우 조금 전 다이스의 값을 따른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찍힌 건 맞는데 아무것도 안 나오는...]
과연 그 둘도 이곳에 왔을지. 아니. 왔겠지. 필시 그렇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은우는 괜히 주변을 잠시 둘러봤다. 허나, 점점 차오르는 거리에서 아는 사람의 얼굴을 찾기는 쉽지 않은 법이었다. 아니면, 발견하고도 모르는 척 입을 다물었을지도 모른다. 애석하게도 괜히 아는 척해서, 지금 이 시간을 방해받고 싶진 않았으니까. 상대가 그런만큼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처럼의 휴일. 그리고 단 하루밖에 없는 휴일. 에어버스터로서 크게 눈에 띌 생각은 은우에겐 없었다. 괜히 머리를 염색했겠는가.
"솔직히 자원은 아니긴 하지만... 불렛은 자신이 자원한 것이 맞을걸? 저 애는 이전부터 무대에 오르거나 주목받는 것을 상당히 좋아했거든. 아이돌인만큼, 이런 자리에 함께 하게 되면... 자연히 인기가 오를테니 말이야. 물론 저 애가 퍼스트클래스라는 것을 아는 이는 별로 없지만. 아무튼 그래도 돈이라도 많이 받잖아? 내가 매달 받는 돈이 2천이 넘는데 할 것은 해야지."
어느 정도라면 자신도 협력은 해줄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며 그는 살며시 손가락으로 탁, 소리를 내며 저 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멈추게 만들었다. 이내 연기는 글자 형태로 올라오는 형태에서 일직선으로 쭉 올라가는 형태로 바뀌었다.
"아. 그거 말이야? 가위바위보에서 이겼어. 졌다면 내가 저기 올라갔었겠지. 하지만... 솔직히 저런 곳에 올라가고 싶진 않거든. 그래서 오판삼승제까지 해서 치열하게 했어. 진짜 간신히 아슬아슬하게 이겼지 뭐야. 저 위에 올라갔다면... 끔찍해."
다른 애들도 다 보는 거잖아. 으으.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어쨌든 퍼레이드는 쭉 이어지고 있었고, 그 뒤로 다른 쇼들도 벌어지고 있었다. 이를테면 초능력을 이용한 저글링이라던가, 공중에서 외발자전거를 타고 노는 이라던가, 인첨공 마스코트 초구리와 초순이라던가... 혹은 악단 연주대라던가. 꽤나 화려한 것의 연속임은 틀림없었다. 이내 바닥이 붕 떠올라 퍼레이드 차량은 물론이고 사람들까지 떠오르는 것은 장관이 아니었을까. 마치 바닥을 강제로 뜯어내서, 공중으로 올랐다가 내려가는 형태의 계단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고, 차량이 움직이는데도 중간에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저건 디스트로이어의 능력이야. ...솔직히 그다지 좋아하는 이는 아니지만, 지금은 적은 아니니까."
탕 소리 나게 쳤는데도 별 반응이 없는 기계, 고장난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옆에서 기계는 때리면 고쳐진다든데 같은 말을 하며 리라의 발이 기계를 쾅 하고 걷어찼다. 이 정도 세기면 고장이 날 거 같은데.
"켜졌다."
그러나 매가 약이라는 말이 옳았는지, 기계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듯 보였다. 돌아가지 않던 카메라의 타이머가 돌아가기 시작해서 랑은 리라의 손을 잡아당겨 카메라 앞쪽으로 데려온 뒤, 찍힐 때까지 렌즈를 쳐다보았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에서는 잠시 기다려 달라는 메시지가 떠오른다. 확실히 아까와는 다른 것이... 작동이 되는 모양이다. 그럼 무슨 결과가 나오려나. 미심쩍긴 해도 일단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가만히 화면을 쳐다보는데.
"?"
작업이 완료되었다며 보여준 사진은 텅 비어 있었다. 잠시 아무 것도 없는 사신을 보면서 뭘까 생각하던 랑은, 10~20년 후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라는 걸 생각하면서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새벽에 아마 답레 쓸거같긴 한데 그 이후에 일주일 정도 여행을 해서 답레사 늘어질 것 같은데 괜찮아? 내 마음은 솔직히 늘어지더라도 더 잇고싶긴한데 일상슬롯 하나를 차지한 게 되버리니까 미안해서 성운주랑 정하주의 마음에 따르고 싶어 일주일이 적은 시간도 아니니까 늘어지는게 힘들면 아쉽지만 막레를 가져올게
행사 기간 내내 밖으로 나오지 않겠다고 결심한 녀석이 투덜투덜거리면서, 프라모델 샵의 봉투를 들고 4학구를 걷고 있다. 단골 프라샵은 3학구에도 있지만 구태여 4학구에 온 것은 꽤나 심플한 사유였다. '재고 없음.'
어느 회사의 프라모델 도료는 자주 쓰임에도 불구하고 통의 내구성과 구조가 불량해서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넘어지고 쏟아지고 난리가 나곤 한다. 그렇게 다량을 사게 만드는 상술인건지는 몰라도, 상기한 이유로 재고가 굉장히 빨리 나가서 3학구의 단골 프라샵에서도 재고가 없었다는 것.
안그래도 지금 또 칠해야 하는 모델에 필요한 색상이다보니, 스트레스는 머리끝까지 닿을 정도였다.
그래서 결국 생소한 4학구까지 와서 그 도료 하나 사가지고 이러고 있다는 것이다. 날도 더워 죽겠는데! 어찌되었든 안그래도 덥고, 짜증나는 와중에... 누군가가 장태진의 등짝을 한대 짝- 하고 갈기는 상상도 못한 일까지 일어났다.
결국 인내심에 한계가 오고 말아서, 뒤를 홱 돌아보며 외친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채 확인도 하지 않고서
태진이 뒤를 홱 돌아본다면 하얀색 빵모자를 쓰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연한 분홍빛 단발머리 여자아이는 하얀색 이를 씨익 들어내면서 태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진은 그녀를 알지 알 수 없었으나 아라는 태진을 알고 있었다. 그야 라이벌인 목화고등학교 저지먼트의 부원이니까. 무엇보다 자신의 라이벌인 은우가 직접 이끌고 있으며, 동기이기도 했으니까. 이미 정보는 모두 파악해두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친한 것은 전혀 아니었으니까.
"이런 좋은 날에 뭐하는거야? 혼자서? 다른 이 하나 불러서 데이트를 하던지, 놀러가던지 해야지. 아. 혹시 약속으로 가는 중이야? 쏘리 쏘리. 아임 쏘리."
쏘리, 쏘리를 말하긴 하나, 표정이나 목소리는 전혀 미안해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오히려 키득키득 웃으면서 그녀는 다시 한 번 제대로 태진의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이야기했다.
"그래서 진짜 혼자서 뭐하고 있어? 코뿔소? 아. 혹시 이 웨이버님을 죽이려고 어슬렁거리고 있었던거야? 나는 에어버스터와는 달리 싸움은 피하지 않는데. 상대해줘?"
누구라도 봐주지 않는다. 토끼를 잡더라도 전력을 다해서 물어뜯는다. 그것이 바로 웨이버의 모토였다. 과연 무슨 대답을 할지 궁금했는지 그녀는 씨익 웃으면서 태진을 빤히 바라봤다.
타이머가 돌아가자 황당한 상황에 초 단위로 흐릿해지던 리라의 낯빛이 단번에 밝아졌다. 역시 옛날 사람들 말이 틀린 게 없다. 때리니까 바로 정신을 차리잖아! 역시 무력은 대단해!(?) 따위의, 저지먼트가 해도 되나 싶은 생각을 하던 리라는 랑이 그의 손을 잡아당기자 당겨지는 대로 끌려가 곁에 섰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카메라 렌즈보다는 랑에게 먼저 시선이 향해서, 한참 렌즈 대신 랑을 바라보던 리라는 찰칵 하는 소리가 들려온 다음에야 렌즈에 시선을 둔다. 아, 렌즈 안 본 상태로 찍혀버렸을 거 같은데. 이걸 어쩐다. 잠깐 기다려 달라는 메세지를 보며 눈동자가 가볍게 떨린다. 살면서 카메라 캐치 못 해 본 적은 오늘이 처음이다!
"어?"
그런데... 결과적으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작업이 완료되었다면서 보여준 사진은 텅 비어 있었다. 이게 뭐지? 무슨 의미지? 앞날이 깜깜하다고? 눈을 가늘게 뜨고 텅 빈 사진을 바라보던 리라는 이어진 랑의 발언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다.
"......아, 아닐걸요?"
농담인 걸 머리로는 알지만 꽤 당황한 듯하다.
"아... 아닐걸...? 아냐! 언니 미래는 창창해!"
한번 우겨본 다음 시선은 다시 기계에게 꽂혔다. 아까보다 조금 더 날카로워진 채로. 가만히 화면을 쏘아보던 리라는 문득 손을 들어 기계에게 가볍게 딱밤을 때렸다.
"네가 뭘 알아, 바보야!"
그리고 똑, 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나는 동시에 화면이 꺼진다. 다시 말하지만 딱밤만 때렸다.
"......어?"
몇 초의 정적 후, 여기저기 눌러보고 조심스럽게 두드려 본 다음에야 리라는 사태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랑 언니. 이거... 고장 난 거 같아요... 어떡하지...?"
아니지. 사실 이미 고장 나 있었던 거 아닌가? 정상적인 기계가 돈을 먹고 불량 사진을 뱉어놓을 리가 없지 않나! 하지만 마지막으로 때린 게 자신이다보니 시치미 뚝 떼고 기계 탓으로만 돌리기도 애매하게 됐다. 이걸 어쩌나.
나의 등짝을 겁없이 때린 사람은 연분홍 단발을 한, 척 봐도 예쁘장한 여학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그저 감으로 느껴지는 이 힘. 분명히 예사로운 인물이 아니다. 아니, 애초에 등짝을 칠 때의 자연스러운 힘과 팔뚝 등에 드러나는 힘줄과 근육.
그래. 분명히 단련을 한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나를 아는 눈치로 이것저것 말한다. 아니, 긁는다고 해야 할까. 이런 좋은 날에 왜 혼자냐니, 어쩌니. 지가 긁어놓고 멋대로 사과 같지도 않게 사과하고... 꽤 귀찮은 타입이 걸렸다. 거기다가 나는 이 사람을 잘 모른단 말이지. '웨이버'라는 이명을 굳이 밝히지 않았으면 중간에 말을 끊고 '누구시더라' 라고 물을 뻔 했다. 그러지 않아서 다행인가 싶기도 하고. 뭐 웨이버라고 해도... 정말 이름만 들어본 수준이었지만.
"...죽이고 싶은 놈들은 따로 있어."
이전까지 이어진 말에 그냥 침묵으로 대응하다가 죽이러 왔느냐, 하는 물음에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이렇게만 들으면 뭔가 굉장한 아치 에너미라도 있는 안티 히어로라도 되는 것 마냥 들리겠지만...
물론 상대는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아라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면서 오히려 의기양양하게 이야기했다. 이어 방금 태진이 한 말을 그녀는 조용히 곱씹었다. 그리고 휘파람을 휘유 부르면서 태진에게 이야기했다.
"누구를 죽이고 싶은데? 아. 이건 취조야. 그러니까... 나는 말이지. 이 15주년 행사의 경비를 맡은 몸이기도 해서, 이런 것은 그냥 넘길 수가 없거든. 아. 일단은 절차니까 말이야. 협조해주면 매우매우 고마울 것 같아."
물론 그녀도 태진이 정말로 누군가를 죽이려고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굳이 이렇게 묻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히 심심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마당에 이런 좋은 장...이 아니라 동갑을 만나게 되었으니 얼마나 행운이란 말인가. 럭키. 그렇게 속으로 키득키득 웃으면서 아라는 눈빛을 살며시 바꿨다. 마치 추궁하듯이, 혹은 캐내려는 듯이.
"지금부터 답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이 웨이버님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벌을 받게 될 거야. 그게 싫으면 나랑 잡담이나 떨어. 혼자인 외로운 코뿔소에게 이 웨이버님이 인생 상담이라도 해줄테니까. 음하하!"
자신이 민폐라는 것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하며, 아라는 그야말로 호탕하게 웃으면서 태진을 빤히 바라봤다.
여긴 아무리 바깥보다 20년은 빠른 도시라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신 기술과 상용화된 기술 사이엔 엄연한 구분이 있으니까. 그렇게 이야기하자, 어느새 금랑이가 가까이 왔다.
역이 금랑이 최고야. 늘 짜릿해. 털복숭이가 최고야. 이렇게 안아도 저항도 안해! 그리고 오히려 좋아해! 이게 쌍방 사랑이 아닐까?!
"아니에요! 괜찮아요!" 금랑이의 목을 꽉 껴안으며 말리는 한양선배에게 급하게 반대의견을 표출한다. 이렇게 뒹구는게 얼마나 좋은데 한양선배는 이런거 안하나? 금랑이가 엄청 달라붙는거 생각하면... 아니야, 한양선배가 이럴것같진 않긴 한데...? 뭐 아무튼.
"으에에"
바닥에 주저앉은채, 나와 금랑이를 떼는 한양선배를 무력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아 네! 뭐, 사소해요!" 그렇게 이야기하며 능력을 가볍게 응용해, 옷 안에서 물을 뭉쳐 팡 하고 퍼트려 강하게 턴다. 남은 털과 침들은 적당히 물로 씻어내고 말려낸다. 바닥에 축 늘어진 금랑이를 보고 다시한번 애호욕구가 마구 샘솟았지만, 아쿠아리움을 가야하니까. 겨우 참는다. 최고야. 우리집도 애완동물 하나만 키울까... 리라선배한테 하나 그려달라고할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생명윤리에 좀 어긋나려나...
"그래도, 천생연분같은데요?"
흑발과 금발, 날카로운 인상과 순한 인상같이 반대되는 면도 있지만, 거대한 체구라던가 꽤나 장난기가 생각보다 있다는점, 그리고 남을 위하고 자기 근처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점에선 둘이 똑 닮아있었다.
"단 2명을 제외하면 일단 기본적인 교류는 하고 있거든. 그나마 안 끼이는 2명은... 애초에 끼일 수 없어서 안 끼이는 것이기도 하고. 의외로 우리들의 사이가 그렇게 나쁘진 않아. 입장의 차이로 으르렁거릴 때는 있긴 하지만."
이를테면 블랙 크로우 사건 때가 그랬다. 만약 블랙 크로우의 리더가 디스트로이어의 위크니스가 아니었다면 디스트로이어는 애초에 개입을 하지 않았을테니까. 반대로 만약 블랙 크로우의 리더가 자신의 위크니스였다면? 그렇다면 은우 역시 비슷한 행동을 취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찌되었건 위크니스는 가장 소중한 존재이며, 동시에 생명이기도 했으니까.
"아니. 디스트로이어는 하지 않았어. 가위바위보를 한 것은 나와 아라 뿐이야. 이 참에 알아두면 좋을 것 같은데, 퍼스트클래스로서 얼굴과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나와 웨이버. 둘 뿐이야. 그러니까 디스트로이어는 굳이 저기에 올라갈 이유가 없지. 오히려 저기에 올라가면 저 깡패는 대체 누구길래 저기에 있는거야? 라는 말만 듣지 않았을까?"
차량 위에 올라가서 손을 흔들고 있는 디스트로이어라니. 참으로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며 그는 쿡쿡 소리를 내며 웃었다. 한편, 하늘에서 하얀색 레이저가 날아왔고, 이내 그 레이저들이 형태를 이루면서 여러 모양으로 바뀌는, 이른바 레이저 쇼가 시작되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은우는 회오리 감자를 먹으면서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저건 제 2위. 플레어. ...1위는 아마 여기에는 안 올 거야. 2위도 아마 오늘만 올 것 같고... 그러고 보니, 청윤이, 넌 퍼레이드가 끝나면 어쩔 참이니?"
일단 자신과 그녀 사이에 나온 말은 퍼레이드를 같이 본다였다. 그렇기에 시간도 퍼레이드에 맞춘 것이 아니었던가.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는지, 혹은 다른 이유인지 그는 그녀에게 그렇게 물었다.
"있지. 네가 왜 조무래기야? 너. 저지먼트지? 에어버스트의 동기지? 그리고 쭉 저지먼트 생활을 한 에이스지? 아. 혹시... 에어버스터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그런 거야? 그러니까 겉으로는 동료네. 친구네 하지만 속으로는 너는 날 이해할 수 없어. 흑흑. 퍼스트클래스가 뭘 알아! 이런 식으로 속 썩어가는 그런 부류?"
요즘 그런 거 유행하지 않는데 설마 아니지? 그런 의미를 가득 담은 의아함과 에이~ 설마~ 라는 눈빛이 동시에 태진을 향했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아주 등짝 스매싱을 더 날려줄 기세로 아라는 살며시 오른손 손바닥을 짝 펼친 후에 힘을 살며시 주었다. 물론 제대로 반격을 한다면 피할수는 있겠지만.
"그럼 된 거 아니야? 그 정도로 보기 싫고 죽이고 싶은 이들이 여기에는 없다는 것이 말이야. 그런 감정과는 거리를 멀리 하고 사는 것이 좋아."
이 누나가 보증하는데 그게 낫더라. 라고 말하면서 은근슬쩍 연상인척 이야기하는 모습이 어떻게 보면 상당히 얄밉지 않았을까. 일부러 보란듯이 그렇게 말을 하며 아라는 키득키득 웃음을 터트렸다.
"당연하잖아? 남이 사주는 아이스크림이 제일 맛있는 법이야. 그래서 코뿔소. 이런 좋은 날에 왜 혼자 있어? 아니면 차후에 만날 이라도 있어? 그것도 아니면 혼자 돌아다니는게 편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아라는 그렇게 질문했다. 물론 이런 축제를 혼자 다니지 말란 법은 없었기에 진심으로 의아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친근하게 생각하는 이에게 가볍게 물어보는 그런 것에 가까웠다. 혼자 돌아다니는 것이 좋다고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존중하고 고개를 끄덕일 생각이었다. 자신도 가끔은 혼자 돌아다니면서 놀긴 했으니까.
태오는 잠시 말을 골랐다. 애써 숨을 삼키면서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이런 얘기를 꺼낼 때 눈을 마주치면 오히려 상대도 괴로울 걸 안다. 색색거리던 숨 뒤로 흐흐 웃어버렸다. 믿기지 않던 탓이다. 당신을 만난 이후 보았던 그 광활함을 믿지 못하고, 받지 못하던 자신이 후회스럽던 탓이다.
"내 삶의 일부가 되어 남긴 획은……. 내가 본 그 어떤 전기 신호보다 아름다웠어……. 그게 얼마나 지복한 일인지… 알아주었으면 해요."
그리고 나의 전기 신호와 기동은 여기에서 막을 내리고 하나의 작품이 되어 전시되겠지. 당신이라는 획을 남기고. 태오는 눈을 채 감지 못했다.
일진이_특히_안_좋은_날_자캐의_반응은 : "삶이란 것이 좋을 리가 있나요."
하고 그냥 평상시랑 다름 없이 살아간다~
자캐는_자신의_감정에_얼마나_솔직한지_말해보자 : 일단은 그🙄 이렇게 보여도 희로애락 다 느끼는 사람이랍니다... 그게 희미할 뿐이지
#오늘의_자캐해시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977489 456 자캐의_몸싸움_방식 : 자신이 진다고 쳐도 오히려 상대 기분이 나쁠 대로 나쁠 만큼 구질구질하게. 분명 안경이 깨질 정도로 세게 때린 건 이쪽인데 정작 흙을 눈에 맞거나 머리채를 잡히든지, 발이 걸려 넘어지든지 해서 기분이 나쁘도록. 그리고 단 하나 예외가 있는데, '심지'에 불이 한 번 붙으면 뒤도 안 보고 주먹부터 후리곤 자기 속이 후련할 때까지 싸워. 상대든 남이든 제발 그만 싸우라고 뜯어말릴 때까지.
467 자캐의_이름에는_어떤_의미가_담겨_있는가 : 클 太에 까마귀 烏를 써서, 큰 까마귀. 태몽이 삼족오가 품에 날아드는 꿈이었거든. 삼오나 삼족이라고 짓기엔 좀 그렇잖아...? 여담이지만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 까마귀는 오명과 다르게 영리하고 효심이 깊으며 어쩌고...
299 자캐가_더_좋아하는_곳은_사람많은곳_vs_사람적은곳 : 사람 적은 곳 무조건 사람 적은 곳 사람 많으면 의도치 않게 마음의 소리가 무작위로 들어와서 멀미해... 그래서 지금 15주년 행사에 고통 씨~~게 받고 있대.
>>596 우와...낭만적! 그런데 그거 안드로이드에게 하는 거 아니죠? (끌려감) 맞아요! 태오도 사람이죠!! 와아... 태오의 스위치가 켜진 모습 보고 싶어요..(안됨) 무조건 사람 적은 곳... 그런데 15주년...행사...(흐릿) 그런데 태오야... 능력은 OFF할 수 있어. (옆눈)
"행사 한 번만 참여하고 가세요!" "괜찮, 습니다." "그러지 말고 룰렛만 돌리면 돼요! 운이 좋으면 디스트로이어 에디션 인첨팟도 드려요! 한 번도 안 나왔답니다~ 자~ 돌려돌려~" "괜찮다니까……!" "헉! 아쉽지만 에어버스터 키링 당첨이에요~ 자, QR코드도 같이 드릴게요~ 인첨공 분이시면 인첨스타그램에서 저희 팔로우 해주시면 더 많은 이벤트도 있으니까 참고해주세요~"
열등감을 가진 에이스라... 평소랑은 거리가 멀긴 하지만, 오늘은 미묘하게 그런 느낌이란 말이지.
"특별히 그런건 아냐. 그런 열등감은 솔직히 말해서 샹그릴라 사용자들이나 마찬가지인 마인드니까. 하지만 레벨3의 인핸스드 스트렝스 능력자와 퍼스트 클래스의 전투를 비교하면... 거진 주력전차 앞에 선 원시인 정도로밖에 내가 안 보이더라고."
직접 겪어보니 알 수 있었다. 뭘 어떻게 해도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갭. 그것이 퍼스트 클래스의 능력자들이다. 물론 은우가 날 손짓 하나로 찢어버린다거나 그런 짓을 할 리는 절대로 없다만... 힘이라는 건, 가진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고픈지와 상관 없이 남들에게 경외를 불러일으키고 마는 법이다. 귀찮은 일이지.
그러면서 날아드는 손바닥을 자연스레 스텝을 밟으며 몸을 젖혀 피한다. 이건 이제 자연 반사로구만...
이후 이어지는 고민, 죽이고 싶은 녀석들 등의 이야기에 그만 맥이 탁 풀려서 자리에 쪼그려 앉는다. 한숨을 내쉬고, 마치 '좀 들어봐' 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문을 연다. 쌓아뒀던 하소연을 그제서야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당연하다. 행사 시작하고서 처음으로 누군가랑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니까.
"아니, 솔직히 말해서 오늘 그냥 학교도 쉬는 김에 집에서 취미 활동이나 하려고 했거든. 뭐 행사 같이 다닐 사람도 없고 부르는 사람도 없고 무엇보다 이런거 즐기는 편도 아니고. 그래서 쌓인 프라모델이나 만들고 이제 칠하려고 했지. 그런데 아니 그 영길리 놈들이 자기들 요리 만큼이나 도료 담는 통을 못 만들었는지 통이 깨져서 다 굳어있는거야. 안그래도 그거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데, 3학구에 있는 단골 가게에선 이미 그 도료가 다 품절났고, 결국 이 날씨에 땀 뻘뻘 흘려대면서 4학구까지 와서 이러고 있다고. 내가 뭐 사람 많이 두들겨 패고 다니긴 했는데, 그렇다고 세상이 나한테 이러면 안되지!"
그라데이션으로 분노를 표출하고선 에이, 씨! 하는 추임새와 함께 머리를 감싸쥔다. 하여간 오늘은 되는 일이 없구만!
한양이 안티스킬에게 연락을 하려는 사이, 갑자기 주변의 풍경이 바뀌는 것이 그의 눈에도, 붙잡힌 이에게도 보였을 것이다. 마치 세상이 재창조되는 듯한 느낌. 모든 것이 0과 1로 바뀌고, 새로 구축되는 듯한 느낌. 그 와중에 눈을 뜨면, 잠시 모든 것이 녹색의 큐브 형태로 이뤄진 세상 같은 것이 보이는듯 했지만, 이내 모든 풍경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저벅저벅...
붙잡혀있는 능력자의 두 손에는 어느 순간 녹색 수갑이 채워져있었고, 두 발에는 족쇄가 채워져있었다. 그리고 저 편에서 연한 회색빛 머리에 안경을 기고 있으며, 턱수염이 진할 뿐만이 아니라 실눈을 하고 있는 30대 정도의 남성이 걸어왔다.
"이 아저씨는 말이지. 이런 좋은 행사 날에 난동을 치우면 안된다고 생각해. 윤리 교율 받았잖니."
이내 붙잡힌 능력자의 주변에 녹색 큐브 같은 것이 솟아올랐고 그대로 능력자를 삼켰다. 그리고 머지 않아 보이는 것은 땅바닥에 널부러진 그 능력자를 닮은 인형이었다. 이어 사내는 그 인형을 주워든 후에,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도움 고마워. 저지먼트. 이 난동꾼은 이 아저씨가 데려갈게. 아. 이 아저씨 수상한 사람 아니야. 안티스킬이야. 순찰 도는 중이란다."
이어 그는 자신의 신분증. 즉, 안티스킬임을 확실하게 보여주며, 축제 재밌게 즐기라는 말과 함께 저 편으로 저벅저벅 이동했다.
사진이 찍히고 나서야 옮겨지는 리라의 시선을 보고 그렇게 이야기하던 랑은, 텅 빈 결과에 농담 삼아 건넨 말로 리라가 깜짝 놀라 돌아보자 눈썹을 으쓱했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10년 20년 뒤의 모습이 깔끔하게 찍혀 나온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될까 싶고... 이런 결과도 은근히 놀려먹으려고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리라 입장에서 그리 가볍게 받아들일 상황이 아니었는지 계속되는 부정과 함께 단언하듯 미래는 창창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결국 기계는 딱밤까지 맞는데...
"괜찮아, 미래라는 건 가능성이니까... 너무 많아서 못 골랐을지도."
리라를 진정시키려는 듯, 붙잡은 손의 손등을 엄지로 슬슬 문질러 주던 랑은 기계의 화면이 꺼져버리는가 싶더니 이후에는 어떠한 충격과 조작에도 무반응을 보이자 기계를 빤히 쳐다보았다.
"...고장 났으면 어쩔 수 없지, 이걸 우리가 고칠 수는 없으니까."
손을 붙잡은 채로, 나머지 한쪽 손을 자신의 입가에 가져다 대 입술을 엄지로 문지르던 랑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갑작스런 호객행위에 떠밀려간 그녀는 부스 앞에 있는 수상할만큼 수상한 그림을 보면서 입가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근심하는 표정, 아니면 진지하게 그것을 요모조모 뜯어보는듯한 그녀는 이내 사람의 예술적 행위는 언제나 존중받아야 한단 생각에 동그라미가 그려진 팻말을 들었고... 작은 털뭉치를 받아왔다?
"즈도 털이 많은데 이 친구는 더 많네여."
스트레스를 푸는 장난감처럼 보이는 그것은 제공자의 주소와 함께 QR코드가 태그에 같이 붙어있었다. 그녀와 똑 닮은 잿빛의 털뭉치는 구불구불 양같은 털로 이루어져서 마치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헤어볼마냥 느껴지기도 했을까?
"아니. 그건 뭐, 어쩔 수 없지. 우리들도 일단은 퍼스트클래스로 분류되는 이들인데, 아무리 그래도 레벨3의 힘과 동등하면 말이지. 그건 너무 슬프잖아. 우리들이 여기까지 오려고 얼마나 고생 고생, 노력, 노력, 피 토하는 노력을 했는데. ...강한 힘의 대가가 너무 가혹했으니... 그 정도 힘은 쓸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건 맞다는 듯이, 아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녀도 피 토하는 노력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부류였다. 아무리 그래도 레벨3 능력자와 동등한 힘을 다룬다고 한다면, 그건 너무나도 슬픈 것 아니겠냐는 듯이 그녀의 목소리는 상당히 진지했다.
"어쭈?"
이내 몸을 젖혀서 피하는 태진의 모습에 아라는 어쭈, 소리를 내면서 빤히 태진을 바라봤다. 하지만 굳이 뭔가를 더 하려고 하진 않았다. 제법이네. 빠르네. 운동 신경 좋네. 늑대였으면 좋겠는데. 라는 혼잣말을 작게 중얼중얼하면서 아라는 태진에 주목했다. 마치 그의 몸에 관심이 있다는 듯이, 정확히는 그의 근육 쪽이었지만.
한편 쭈그리고 앉는 태진의 모습에 아라 역시 몸을 낮췄다. 이어 들려오는 말에 아라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뭐라고 할지 궁금한 탓이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말에 아라는 두 눈이 동그래지더니 태진의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알지! 알지! 그럴 때 엄청 짜증나지!! 나도 말이야! 전에 립스틱 하나 사려고 백화점에 갔었는데... 아. 글쎄 다 매진이라는거야! 누군진 모르겠지만 한 녀석이 다 사갔대! 그래서 제 3학구의 다른 백화점도 뒤져봤는데 또 누가 다 사갔대! 으아! 낭군님에게 보여주려고 늘 바르는건데 없다니! 말이 안되잖아! 그래서 제 2학구까지 갔다왔다니까! 너. 되게 힘들겠구나! 고생이 많아! 고생이 많아! 응! 고생이 많아! 그런데 ...코뿔소야. 두들겨 패고 다녔다는 것은 나, 어떻게 해석해야 해?"
이내 그녀는 싱긋 웃으면서 태진의 두 어깨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리려고 했다. 머리를 감싸쥐던지 말던지 그건 자신이 알바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방금 태진이 말한 '두들겨 패고 다니긴 했는데'라는 부분이었다.
"우리 코뿔소 친구. 오늘 늑대 누나와 같이 월광고식 심문 받아보고 싶지 않으면 1분 기다려줄테니까 해명해볼래?"
"그것도 그렇지만, 퍼스트클래스는 누구보다 찬양받지만 누구보다도 고독해. 인기가 있어보이지만, 아무도 그 실체를 알려고 하지 않고, 찬양하지만 아무도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어. 그런 이들끼리 뭉치지 않으면 누가 뭉치겠어."
웨이버도, 에어버스터도 찬양받고 인기가 있으나 누구보다도 고독한 존재였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퍼스트클래스라는 것이 알려지면, 그만큼 인기가 솟아오릍테고 팬들이 늘어나고, 찬양받겠지만 그만큼 주변과 멀어지고, 고독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자신과 아라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그렇게 말하는 은우의 입가에 씁쓸함이 녹아있었다.
"뭘 생각했는지 물어도 될까? 참고로 저 레이저는 기본적으로 고온이고, 닿으면 소멸해. 조절은 하겠지만, 아무리 조절해도 최소 3도 화상은 각오해야할거야."
그만큼 뜨겁고 위험한 능력이라고 이야기를 하며 은우는 레이저를 눈으로 쫓았다. 그 플레어니까 조금의 실수도 없겠지만, 만일의 경우에는 어떻게든 막아야만 했으니까. 그럴 일이 있진 않겠지만, 가능성은 언제나 제로가 아니었다. 신기하다고 다가가거나 어떻게든 만지려고 하는 이들은 꼭 있기 마련이니까.
한편 제 물음에 청윤의 답이 들려오자 은우는 바로 앞을 지나고 있는 악단대 연주를 바라보다가 청윤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자신이랑 좀 더 돌아다니고 싶다라.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잠시 생각을 하던 은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나도 그럴까 싶었으니까. 아. 이렇게 되면 데이트가 되나? 그럼 데이트 신청할게. 사실 이렇게 말하지만, 경험이 없어서 어떻게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말이야."
거리가 상당히 먼 거리였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은우는 남아있는 회오리 감자를 입에 천천히 담았다. 그러다가 싱긋 웃으면서 청윤에게 말했다.
"다른 이들에겐 비밀로. 딱히 숨길 일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말이 나오는 것은 피곤하니 말이야. ...특히 동월이라던가 낙조가 알면 어떤 말들이 나올지 불안해."
특히 낙조. 나하고도 맞짱 데이트 해줘!! 이렇게 나올 것 같다고 생각하며 은우는 절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은우가 리라랑 이야기하면서 나왔던가, 캡틴이 언급하셨던가, 리얼리티 매니퓰레이션이 진짜 무서운 능력이라고 하면서 이름에 디지털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정확히 기억이 안 나요) 리얼리티 매니퓰레이션 계열 능력이 언급된 적이 있었죠. 저게 그 능력이려나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아라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일반인들에게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걸었다면 즉시 잡아서 '물은 답을 알고 있대' 24시간 체험 기회를 줄까 싶었지만 그것이 아니라고 하니, 아라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보다 사석에서도 암살 시도가 들어온다니. 여러모로 원한을 엄청 사는 것인지, 아니면 간댕이가 처부어서 상황 파악을 못하는 것인지.
흉터를 바라보면서 아라는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녀는 태진에게 이야기했다.
"그 정도의 일이 벌어진다면, 에어버스터에게 말하는 것이 어때? 아마 그 애가 전부 해결해줄걸? 강한 빽과 힘이 있잖아. 그걸 활용해야지. 활용하지 않고 뭐하는거야?"
어떻게 보면 조금 미련한 것 아니냐는 듯이 아라는 돌려서 이야기했다. 당장 뒤에 퍼스트클래스가 있는데, 건드리려고 하는 이들이나, 그런 빽이 있는데 활용하지 않고 혼자서 해결하려는 태진의 모습도 아라의 눈에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물론 자기 스타일이라면 자기 스타일이긴 하니 크게 뭐라고 할 순 없지만...
앗. 카메라 안 본 거 들켰네. 조금 부끄러워져서 리라는 시선을 멀리 둔다. 어쩌면 이어진 기계를 향한 딱밤 따위의 기행은 그런 감정에서 비롯된 과장된 행동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원래 사람은 뻘쭘하면 헛짓거리를 하지 않던가. 그 결과가 기기 고장이라는 건 꽤 처참했지만.
"그렇겠죠? 하긴 맞아, 미래는 애초에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휴...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찜찜하게 나올 건 뭐람~ 역시 원래 고장이 나 있었던 거야."
합리화인가요? 네. 랑이 손등을 문질러 주자 진정은 쉽게 되었지만 이미 눈 앞의 고성능 미래 예측 기기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아니, 무슨 기계가 이렇게 약해? 하다못해 학교의 불량 학생들도 딱밤 한 대로는 어림도 없는데!
"......부장님한테요?"
손가락을 튕기는 랑을 가만히 마주보던 리라의 표정이 순간 묘해졌다. 딱히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의중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반응도 아니었다. 이 자식, 솔깃했다. 이래도 되나? 하지만 말마따나 여기서 그들이 기계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능력을 쓴다곤 해도 이게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모르는 이상 제대로 고쳐질 리 만무하고, 수리비를 당장 지불할 능력도 없다. 그럼 어떡하겠는가. 결국 이게 모두에게 있어서 최선 아닐까? 동월과의 합동 장난질로 시말서를 그렇게 써 놓고 아직도 깨달은 바가 없는지 합리화가 일사천리다. 부장님, 죄송해요. 하지만!
"그럴까요?"
리라는 바지 주머니에서 포스트잇과 작은 볼펜을 꺼낸다. 그리고 꺼진 화면 위에 포스트잇을 붙인 후, 맞잡지 않은 한쪽 손으로 능숙하게 글씨를 휘갈겼다.
[기기 고장. 수리비 청구는 에어버스터에게.]
죄송합니다. 부장님. 반드시 갚을게요! 펜을 다시 주머니에 넣은 리라는 비장한 얼굴로 랑을 돌아본다.
"됐다. 언니. 우리 이제 얼른 도망가요! 빨리 빨리!"
그리고 모자를 푹 눌러쓴 다음 밖으로 발을 내딛는다. 랑이 함께 뛰어주었다면 부스에서 최대한 멀어질 때까지, 숨이 턱에 차기 직전까지 달려서 그나마 사람이 적고 조용한 곳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동월이야 그렇게 장난을 치니 어떤 장난을 치든 이상하지 않았고 낙조 같은 경우도 늘 은우 선배에게 싸움을 걸려고 한다는 얘기 정도는 들었었다. 같은 학년인 둘이라 잘 알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말하곤 마지막 남은 통감자 조각을 먹었다. 퍼레이드를 보면서 먹으니 금세 사라졌다.
"태양처럼이라. 비슷하다면 비슷해. 태양처럼 구현할 수도 있긴 하니까. 아. 그리고 괜찮을거야. 애초에 그런 부분은 또 조절을 하고 있을테고, 못 다가가게 막는 일도 있으니까."
겁없이 드론을 띄운다고 한다면, 드론이 파괴되는 것은 각오해야겠지만 어쩌겠는가. 그건 이제 플레어가 잘 피해줄 거라고 믿는 수밖에. 인첨공에서 2번째로 강한 능력자인만큼, 그 부분은 알아서 잘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은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플레어를 믿기로 했다. 별 일 없을 거라고.
"말했잖아. 너랑 보고 싶어서 불렀다고 말이야. 뭐, 그때는 그냥 단순히 네가 생각나서 부른 것 뿐이긴 하지만... 아무튼 좋아. 퍼레이드가 끝나면 우리는 우리대로 움직여보자. 아하하. 아무튼 고마워."
죽어도 말을 안 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 비밀로 해주겠다고 하니 그로서는 다행이었다. 사실 동월보다는 낙조가 좀 더 무서운 것이 사실이었다. 물론 싸우자고 하는 것에 응해줄 순 있지만 24시간 맞짱 데이트를 하자고 덤벼드는 것은 자신도 싫었으니까. 같이 놀러다니는 거라면 모를까. 24시간 싸우는 것은 자신도 피하고 싶었으니까. 안 그래도, 요즘 저지먼트 멤버들이 점점 강해지고 있으니 더더욱.
이어 그는 조금 남아있는 회오리 감자를 입에 넣은 후, 빈 꼬챙이만 손에 쥐었다. 나중에 쓰레기통에 버릴 생각이었다.
"천천히 둘러봐도 좋지 않을까? 10~20년...후의 모습을 예상해서 찍는 카메라도 있다는 것 같지만, 그건 난 싫어서. 내 미래의 모습을 굳이 보고 싶진 않거든. 그 이외에는 내가 알기로는 공기총을 쏘는 게임장이라던가, 상성을 확인해볼 수 있는 그런 곳이라던가, 5DX 영화라던가 기타 등등 많긴 할 거야. 거의 다 끝난 것 같지만, 아직 조금 더 남았으니 천천히 생각해봐."
자신도 생각해볼테니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그는 다시 앞을 바라봤다. 이제 사실상 거의 후미였다. 공중에 떠 있는 빙판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남성과 여성. 한 페어를 바라보면서 은우는 작게 감탄했다.
/다이스는 카메라 고장 났으니까 수리비를 내놓으세요. 라는 문자메시지의 타이밍! 아무래도 리라 조는 퍼레이드 시작 전에 저런 일들이 있었으니, 톡이 온다면 아마 지금 타이밍이 아닐까해서! 하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았나보네요. (옆눈)
268 자캐는_주변_사람들에게_어떤_사람이고_싶은가 “같이 있으면 편안한 사람, 아니면 무던한 사람─인데, 제가 사람 대하는 게 익숙지 않아서 뚝딱거릴 때가 많다 보니···.” “그러니까, 저기, 응, 소박하게 할게요. 있어도 없어도 상관없는데 없는 것보단 나은 사람.”
456 자캐의_몸싸움_방식 “학기 초부터 칼리 아르니스를 배우고 있고, 최근에는 펜칵 실랏에 흥미가 있어서 배우고 있어요.”
181 자캐의_첫사랑은_이루어졌는가 “어라─” “제 프라이버시는요?” “─조금 애매하네요. 그걸 사랑이라 불렀어야 할지, 아니면 그냥 막연한 동경이었을지···” “그 애매한 게 사랑이 아니었다고 하면··· 응, 이룬 게 아니라 이룸당했어요.” (소년은 얼굴을 붉히며 해사하게 웃었다. 보조개가 빨갛게 팬다.)
서성운의 오늘 풀 해시는 자캐가_딸기케이크의_딸기를_먹는_순서는 끝에서부터 천천히 잘라가면서 먹다가 딸기에 도달하면 딸기를 먹는 편이겠네요. 따로 가장 먼저 먹는다거나 나중에 먹는다거나 하지 않아요. +친한 사람이 딸기를 먹고 싶어하는 눈치면 양보해줄 수 있음
자캐와_2P자캐의_차이점 (이녀석 한 4P까지 있는데 일단 가장 먼저 나온 설표를 2P라고 해볼까) 일단 키가 40cm 차이나네요 이목구비 비율이 바뀌면서 훨씬 "성인이 될 준비를 해나가는 청소년" 다운 얼굴이 되면서 인상이 꽤 날카로워지고, 헤어스타일도 조금 더 삐죽삐죽해지는 느낌. 내면의 온화한 성격은 별로 바뀌지 않지만, 페르소나에 큰 변화가 생겨요. 지금의 성운이는 다정하고 애교있는 어린 아이라는 느낌이지만, 2P 성운이는 무뚝뚝하고 다소 틱틱대는 느낌이 되겠네요.
자캐의_다정함의_표현방식 가장 정석적인 다정함이라고 생각해요. 말을 걸어주고, 들어주고, 좋은 것을 나눠주고, 마음의 짐을 기꺼이 같이 들어주려고 하는. 다만 연약한 부분도 있어서 이 다정함이 냉정하게 거절당하면 조금 상처를 받기도 하겠네요.
돈을 먹으려고 했으니까. 인첨공 내에 있는 최첨단 기계가 돈을 먹으려고 했으니까. 중요하니 두번 말한다. 그러니 원래 고장이 나 있었을 확률이 높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리라의 말에 맞장구를 쳐 준다.
"응, 사정 설명은 나중에 해도 될 거 같지 않아?"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그랬다 하면 괜찮지 않을까. 일단 여기에 계속 있는 건 의미가 없다, 기계 고장과의 명확한 인과관계는 없다고 볼 수 있고. 그런 조금은 엉뚱하고 말도 안 되는 제안에 리라는 솔깃한 건지, 벌써 판단을 끝내고 포스트잇과 볼펜을 꺼내 꺼진 화면에 기기 고장을 알리는 글과 함께 수리비 청구를 에어버스터, 즉 은우에게 하면 된다는 말까지 써 놓았다. 대단한 행동력이라고 생각하다가, 비장한 표정으로 자신을 돌아본 리라가 얼른 도망가자며 손을 잡아끌자 얼결에 따라 나선다. 결국 여긴 사건 현장이 되어버렸군... 그럼 도망칠 수밖에(??)
"응."
리라의 말에 짧은 답과 함께 발 맞추어 달리다 보면 어느새 부스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얼마 지나서 멈춰 선 장소는 아까와 비교하면 훨씬 한적하고 조용한 장소, 조금 가빠진 숨을 고르며 마찬가지로 숨이 차는 것으로 보이는 리라를 내려다보았다.
"후... 여기쯤 오면 된 거 같은데, 땀 나겠네."
안 그래도 더운 날씨인데 전속력으로 달렸으니, 땀이 많지는 않은 편인 자신조차도 이마에 땀이 맺혔기 때문에 리라와 맞잡지 않은 손으로 빵모자를 잠시 벗어들고 이마의 땀을 훔친다.
"있거든. 그런 부류. 그리고... 최근에는, 우리 월광고 저지먼트에서도 흉흉한 말이 들려와서 말이야. 사실이 아니라면 좋겠는데, 사실이면...죽여버릴거야. 아니. 죽이는 것은 너무 갔고... 90%만 죽여버릴거야. 아. 자세한 것은 우리 쪽 이야기."
그 부분에 대한 조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에 자신이 아는 것이 사실이라면 반드시 가만히 두진 않을 거라고 말하며 아라는 제 주먹을 꽈악 쥐었다가 다시 펼쳤다.
한편, 적색투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아라는 흐응. 소리를 내면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적색투기라니. 결국 그 부분에서는 그녀는 크게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적색투기래. 이 쓰레기들은 대체 무슨 발상을 하고 다니는거야.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깔깔 웃던 그녀는 겨우 웃음을 멈추면서 태진에게 사과했다.
"미안. 미안. 아니. 하지만 너무 웃기잖아. 적색투기라니. 아. 그거, 너 혹시 이명 붙으면 그거로 해달라는 것이 어때? 적색투기 코뿔소. 뭔가 멋지지 않아?"
물론 진지하게가 아니라 살짝 놀리는 어투였다. 자신이라도 적색투기라는 이명이 붙으면 정말로 싫을 것 같았기에 더더욱. 애초에 그녀는 '웨이버'라는 자신의 이명도 그렇게 썩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머메이드' 같은 거 안되나. 라고 따져보긴 했지만 이미 정해진 이명은 바뀌지 않는다는 딱딱한 말을 들었던 순간을 떠올리며 아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코뿔소야. 너, 그거 에어버스터가 말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어?"
입장을 반대로 바꿔보라는 메시지를 아라는 태진에게 전했다. 만약 은우가 개인적인 일이니까 너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으면서 혼자서 어떻게 하겠다는 말을 하면 너는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냐는 메시지를 과연 태진이 어떻게 답할지는 아라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녀석은 그래. 알아서 할 일이야. 라고 할 것 같진 않아보였기에 그녀는 굳이 그렇게 이야기했다.
"퍼스트클래스이긴 하지만, 퍼스트클래스라 하지 말아줄래? 널 인정한 것은 웨이버가 아니라 월광고의 저지먼트 부장인 아라님이거든? 자! 따라해봐. 아라님. 인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3번 열창 실시!"
적색투기. 멋지잖아! 그렇게 따지듯이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 담겨있는 것은 짓궂음이었다. 키득키득. 그렇게 웃으면서 놀리는 것이 명백해보였을 것이다. 한편 태진의 대답에 아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혼자 처리하고 싶어한다면 그렇게 하게 둘 거라니. 절대로 그러지 않을 것 같은 기분 탓일까. 블랙 크로우 사건 때를 생각해보면 더욱 답이 나오는 일이었다. 그때, 이 녀석은 뭐라고 대답을 했을까. 지금과 똑같이? 아니면 전혀 달랐을까? 가만히 생각을 하며 아라는 빤히 태진을 바라봤다.
"이상하네. 난 1번밖에 안 들린 것 같은데? 2번 더 할래? 그리고... 장태진? 알아. 코뿔소야."
장난스럽게 말을 하는 모습은 꾸준히 이어졌으며, 자신의 소개. 장태진이라고 하는 그의 말에 아라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녀는 살며시 다리를 펼쳤다. 그리고 가방에서 지갑을 꺼낸 후에 그 안에서 '무료 구매권'을 한 장 꺼낸 후에 태진에게 휙 던졌다.
"이건 나와 이야기해준 답례야. 심심한데 심심풀이 정도는 되었어. 필요한 거 있다고 했으니까 그거로 사. 딱 한 품목은 공짜로 살 수 있을거야. 여기까지 왔으니까...이 정도 보상은 있어야지. 안 그래?"
인생은 불공평하지만, 거기엔 의외의 행운도 있기에 불공평하다고 하는 거야. 척, 오른손 검지로 태진을 가리키면서 씨익 웃으면서 아라는 말을 이었다.
맞다. 인첨공 내에 있는 최첨단 기계가 돈을 먹으려고 했다? 이상함을 넘어서 수상할 지경이다. 일부러 돈을 잡아먹으고 설계한 게 아닌가 싶을 만큼.(아니다. 너무 갔다.) 어쨌든 누가 맞장구를 쳐 주면 양심의 가책은 조금이나마 줄어들기 마련이다. 덕분에 리라는 가감없이 행동력을 발휘해 은우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도망쳐 버리는 뻔뻔한 짓을 실행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것밖에 방법이 없지 않나? 다시 말하지만 그들이 여기 머무른다고 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해결될 것도 없고, 랑의 말대로 사정 설명은 나중에 해도 괜찮을 거다. 그때 가서 설명할 수 있... 겠지? 1분이라도 해명할 시간을... 주지 않을까?
어째 물음표만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 같지만 당장 중요한 건 아니다. 이미 엎어진 물이고, 이제부터는 도망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건 꽤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부스가 보이지 않을 만큼 달려와서 숨을 고르던 리라는 빵모자를 벗어든 랑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웃는다.
"좋아요! 이만큼 오면 아마 누가 봤어도 못 따라오겠지. 아, 덥다~"
그렇게 말하며 마찬가지로 맞잡지 않은 손에 캡모자를 벗어들어 쥔 리라는 모자를 부채 삼아 흔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확실히 주요 시설들이 모인 곳과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조용하긴 참 조용하다. 어디 앉기 적당한 곳이...
"저기 앉을까요?"
꼼꼼히 공간을 훑던 리라의 눈에 우거진 초목 아래 위치한 낮은 담벼락 하나가 포착됐다. 적당히 넓은 벽돌은 잠깐 앉아서 쉬기에 불편함 없어 보인다.
"퍼레이드 시작 시간이 30분 정도 남았으니까 여기서 쉬다 가면 될 거 같아요. 아, 너무 웃기다... 좀 황당하긴 해도 재밌었어요. 사진기도 사격도! 언니는 어땠어요?"
다만 주변이 조용하다고 리라까지 조용해지는 건 아니라, 당장 둘밖에 없는 한적한 곳은 곧잘 재잘거리는 목소리로 채워진다.
"아직 퍼레이드도 안 봤는데 엄청 만족스러운 거 있죠. 15주년 기념 행사 끝나기 전에 이것저것 더 많이 보고 싶어졌어요."
동월은 잠시 기억을 뒤져보았지만, 애린이 '진짜' 부끄러워했던 적이 있었나 생각해보았다. 몇개의 기억이 떠올랐지만 그것은 지금과는 다른 상황이었고, 다른 하나의 기억은 자신을 놀리기 위함이었지 않았던가? 그래도 애린이 반짝이는 웃음을 지어보이자, 자신도 빙긋 웃는 것으로 대답했다.
" 그-런검다. "
그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을테다.
" ...? 호요. "
단지 따라한 것 뿐인데 애린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반대편으로 기울였다. 그게 무슨 반응이냐는 듯이, 동월도 다시 한 번 그 말을 따라하며 애린과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기울여보인다.
" 둘 다 거기서 거기 아니야? "
애린이 표정을 구기자 동월은 푸훗,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고추장이나 간장이나 다를게 뭐가 있겠냐만은... 매콤함의 차이인가? 아무튼 농담이라며 잡고있는 손을 가볍게 두어번 흔들려 했다.
" ...허? "
인사직이라는 말에 동월은 어이가 머리에서 튀어나간듯한 표정이 되었다. 아마 머리가 갑작스러운 아무말에 대화 내용을 따라가지 못한 탓일테다.
" 그럼 뭐, 맛있어보이는 것들을 전부 죽여버리면 되는 일이겠네. "
동월은 가끔 먹는다는 말을 과격하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었다. 아니, 꼭 먹는것에 한정되지는 않으려나? 많은 부분에서 과격한 표현이 튀어나가곤 했다. 뱅글이 안경을 벗는것에는, 이제야 벗는거냐며 웃음지었다.
" 그건 나도... 이 날씨에 따뜻한 음료수를 마시고싶진 않은걸. "
그가 아무리 서늘한 사람이라고 해도 '더위를 아예 안탄다' 라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서늘함은 사라지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는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한두명이라면 몰라도 많은 사람이 그의 서늘함을 노리고 달려든다면 꽤나 곤란할테니까.
아무튼 그렇게 느릿하게 걷던 와중에, 무언가 이질감을 느낀 동월은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 ...? "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서, 주변을 빙 둘러보기 시작했을 것이다. 살아님기 위해선 위화감을 알아차리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월의 경우엔 감이 좋은 것이지만, 그럼에도 덕분에 위기를 여럿 넘겨왔으니. 다만 이번에 느낀 위화감은, 괴이 같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느낀 것이라는게 좀 다른 느낌일까? 불청객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자리에서 멈춘 채로, 위화감이 사라지기 전까지 서있었을 것이다.
최이경의 오늘 풀 해시는 식사를_대접_받아_먹는데_양이_많다면_자캐는 -양이 많다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 먹으면 되는데 왜 그런 것을 걱정하지? -다만 먹는 속도가 빠른 것은 아닌지라 식사시간은 길어진다. 다행히 식어도 잘 먹는다
자캐의_평상복_스타일 -하얀 테크웨어(한복 스타일). -그 외에는 흰색을 베이스로 검은색이나 보라색, 푸른색 등등이 포인트로 들어간 복장을 주로 입고 있다 -티셔츠보다는 와이셔츠 선호.
자캐가_질색하는_것은 -모두가 생각하는 건 있겠지만 항상 그걸로 우려먹는 것도 좀 그러니까 다른 걸 고르자면 '무지개색 셔츠'() -누군가 너 너무 하얀 것만 입는다고 사온 것을 보고 질색했다고 한?다? -누군가가 누굴까는 나도 몰루. 정하나 동월이나 경진이 중 하나 아닐까
Secret[I LOVE YOU]태오 : ㅋ ㅋ ㅋ ㅋ ㅋㅋ ㅋㅋ "우습네요……. 덧없는 감정을 내가 당신에게 가질 줄 누가 알았을까요. 혹시 이런 나를 증오하나요, 혹은 저주하나요? 내가 당신과 이어질 일따위 없다면서…… 부정하고 나를 미워할까요. 그럴수록 나는 좋아요. 덧없게 해줘요. 내가 너를 포기할 수 있게……. 그걸로도 나는 만족해요. 서로 구질구질한 건 싫잖아요. 미우면 거절하고, 나는 납득하고."
(한계돌파시)
"그런데……. 죽일 듯 노려보면서 어째서 머리로는 나만 생각하고 있어요? 깎아내려줘, 더 싫어하고 증오해줘……. 나는 당신이 좋아하는 모든 걸 알고 있으니, 그 좋아하던 것마저 당신이 진저리 나도록 싫어하였으면 해. 내가 살아있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도록."
어둠 속에서 쳐다보는 두 눈. 가늘게 휘어지는 모션, 사랑을 속삭이기 보다는 저주에 가까운.
"라이벌인 목화고등학교의 기본적인 데이터는 미리 다 파악해두고 있지. 그리고 내가 조금 더 우위라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야! 음하하!"
에어버스터는 7위, 난 6위. 내가 더 위! 이렇게 말하는 모습은 참으로 단순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지. 아니면 분위기에 맞춰서 말하는 것일지. 어느쪽이건 적어도 지금 아라는 상당히 호탕하게 웃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편, 자신이 던진 구매권을 손가락으로 잡는 것에 아라는 오, 소리를 내면서 태진을 가만히 바라봤다.
"있지. 혹시 늑대가 될 생각은 없니? 코뿔소보다 말이야. 그리고 난폭해도 돼. 늑대니까. 나는."
이 정도 패기는 보여야 하는 법이야. 그렇게 말을 하는 모습이 보통 뻔뻔한 것이 아니었다. 뒤이은 말에 아라는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별 일은 없지 않을까? 지금 여기에 퍼스트클래스가 몇명이나 있다고 생각해? 너네 부장인 에어버스터도 여기 어딘가에 있어. 어쨌든... 다음에는 친구 초대해서 놀러오고 그래봐. 이럴 때 같이 놀고 그러는 거지. ...그 에어버스터도 혼자는 아닌 것 같던데."
누구인진 모르겠지만 퍼레이드 차량 위에서 제대로 보이더라. 키득키득. 그렇게 말을 하면서 아라는 슬슬 가보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럼 이 웨이버님은 다른 곳도 둘러봐야 해서 이만! 자! 즐겁게 놀고, 갖고 싶은 거 다 가져라! 코뿔소야!"
기어이 또 코뿔소라고 부르며, 아라는 어디론가 뛰어가듯 사라졌다. 정말로 폭풍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싫어하는데 맞춰주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는 대답에 혜성은 후배의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자신에게 먼저 퍼레이드를 권유할 정도면 자신에게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호감은 가지고 있을텐데, 어째서 싫어할거라고 생각하고 있던걸까. 혹시 자신이 그렇게 비춰졌다는 건 아니겠지? 가만히 후배를 응시하며 하고 있던 생각들은 음료수를 사기 위해 줄을 선 사랑들을 보고 제쳐두기로 했다.
"같이 부활동을 하는 후배를 싫어할 이유가 있었던가... 걱정하지마. 나한테 미움받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꽤 오랜시간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혜성은 ID카드를 찾아 꺼내고 나서야 미약하게 쓴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사실 누군가를 싫어해본 적 없고, 자신은 좋아해주는 사람을 싫어하는 건 자신으로선 할 수 없는 일이라. 떠들썩한 축제의 열기와 다르게 혜성의 마음은 복잡하게 술렁거렸다. 생각이 많으면 이래서 문제라니까.
"난 블루레몬 에이드 골랐는데, 이따가 바꿔서 먹어볼래?"
후배가 고른 청포도 에이드 옆에 이미 찍혀있는 블루레몬 에이드를 가리키고 ID카드를 집어넣어 계산을 마친 혜성은 음료가 나오는 시간을 기다리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빵모자를 벗어든 자신을 보며 소리 내어 웃는 리라를 보곤 머리라도 눌렸나 싶어 빵모자를 든 채 머리를 만지작거린다. 모자를 쓰고 다녔으니 어느 정도는 눌렸겠지, 모자를 쓰고 나온 이상 모자를 벗고 다닐 생각은 접어야 했지만 지금은 더운데다가 땀이 났으니 어쩔 수 없다. 리라 역시도 모자를 벗고 부채 삼아 흔들고 있으니...
"그러자."
그러던 와중 리라가 가리킨 낮은 담벼락을 보고 랑은 고갤 끄덕였다. 그 담벼락 뒤에 있는 나무 덕에 담벼락 쪽에는 그늘이 져 있어서 햇빛 아래보다 훨씬 서늘한 상태였다. 담벼락에 앉아서 땀을 식히고 있자니, 방금 전 있었던 일들이 너무 웃기고 재미있었다면서 자신의 의견을 물어오는 목소리가 들려서 랑은 리라를 쳐다보았다.
"나도 재밌었어."
재미가 없었다는 건 거짓말이 되고,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도 거짓말이니 랑은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처음에 나올 때만 해도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다 생각했었는데,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이런저런 일들은 재미있었다.
"응, 나도."
15주년 행사라. 인첨공에 좋은 기억이 많진 않지만, 어쨌든 자신이 이 곳에 있고, 인첨공이라는 장소가 있었기 때문이 이런 시간도 보낼 수 있는 것 아닌가. 어차피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질 것 같긴 하지만 좀처럼 쉽지 않았던 때에 이런 시간을 보내는 건 정신 건강에도 좋았다. 랑 자신은 명확히 알지는 못하겠지만. 리라에게 향했던 시선을 저 너머 사람들이 모여 있는 멀리로 옮길 즈음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끼며 랑은 입을 열었다.
15주년 기념행사에서 qr코드를 찍는 행사가 있습니다...에서 기인한 어둠의 qr코드를 배포하는 이들이 있다는 신고가 몇 건 들어왔습니다. 이건 실제로도 공유자전거나 킥보드에 가짜qr붙이는 걸로 문제될 수도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저지먼트 중 시간이 되는 이들이 가짜 qr분류용 핸드폰을 지급 받아 간단한 순찰 및 체포를 위해....같은 배경설명이 있고 나서.
"가짜 qr을 배포하는 집단이..." 스킬아웃이 아니라는 점은 딱히 이상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하청으로 스킬아웃을 슬쩍 부려먹는다고는 하지만. 체포된 스킬아웃 집단의 자백으로 인해 저지먼트 중 시간이 되는 이들이 체포를 위해 나서기로 했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수경이라고 합니다.." 태오를 향해 인사를 하는 수경입니다. 그리고 간단하게 전달받은 사안을 건네주려 합니다...
"조직이.. 3군데에 아지트를 두고 있는데 보스가 어디에 있을지 확실치는 않다고 해요." 3학구와 4학구에 각각 1개씩. 그리고 스킬아웃의 본거지에 가깝게 1개라고 말하며 지도를 장갑을 낀 손으로 짚으려 합니다.
>>0 축제. 원래 축제란 행복하고 활기차고 재밌는 것이다. 그런데... 그 축제 중에서도 마지막 날에. 그것도 가장 즐거워야 할 공연 시간에 테러 예고장이 날아왔다? 안될 말씀.
아마 테러범은 '너희들의 행복을 없애주마' 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을테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예고장을 날린 만큼 자신들도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을 생각해봤을지 의문이다. 아마 동월이었다면 그런 예고장따위 보낼 필요도 없이 모두가 행복할 시간에 테러를 저질렀겠지. 그랬다면 대처하기가 굉장히 힘들었을테다. 그렇다면 테러범들은 바보라서 예고장을 보낸 것일까? 흠...
그게 아니라면 가능성이 몇가지 있다. 첫째. 자신들을 과시하고 싶어하기에. 가장 단순한 이유지만, 부장의 추측을 들어보면 그림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림자들이 자신들을 과시하고 싶어한다? 글쎄...
둘째. 불렛의 공연을 차단하기 위해. 테러 예고장에 겁을 집어먹고 불렛이 숨기를 기대했다? 어이없는 이야기다. 그림자라면 불렛이 아이돌 겸 퍼스트클래스라는 것을 알고 있을테다. 맞서면 맞섰지, 그럼 엄청난 공연을 '테러가 무서워서' 라는 이유를 대가며 피할 사람은 아니라는 것 쯤 알고 있을 것이다.
셋째. 싸움을 위해. 가장 좋지 않은 가능성이지만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이유기도 하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릴 공연날이기에, 굳이 그때를 선정하여 테러를 예고한다고 하면... 불렛은 공연을 미루거나 중지할 수 없다. 따라서 예고장을 받은 불렛은 공연중임에도 긴장을 늦추지 않을테고, 싸움이 벌어진다면 불렛은 모든 힘을 동원하여 싸울 수 있게 된다. 그림자들도 바보는 아닐 것이라, 아마 불렛이 제3세력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도 가능성에 넣어두었을테다. 그렇다면 공연중이라는 리스크를 짊어진 불렛을 '죽이지 않고' 엄청난 싸움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다만 '불렛을 죽이지 않는다' 라는 선택을 한거나,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최대의 피해를 낸다' 라는 선택을 하지 않은 이유는 어째서일까. 불렛이 퍼스트 클래스이기에 죽으면 큰 손실이라서? 서로가 만전의 싸움을 벌여 피해가 크더라도, 그것이 '단지 그림자의 탓 만은 아니다. 퍼스트 클래스도 큰 피해를 냈다' 라는 식으로 여론전을 펼칠 셈인건가.....
모자 탓에 약간 헝클어진 머리도 그늘 아래 앉아있으면서 간간히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자연스럽게 빗어넘겨지며 처음보다 자연스러운 상태가 된다. 리라는 그가 던지는 말들에 긍정해주는 랑의 목소리를 들으며 만족스럽게 웃는다. 다행이다. 함께한 시간이 재미없지 않아서. 객관적으로 자신이 같이 다니기 부담스러운 존재인 것 정도는 안다. 쓸데없이 시선이 몰리고, 말이 많아 시끄럽고, 그런 요소들은 타인으로 하여금 피로를 느끼게 만들기 충분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의 랑은 꽤 인내심이 있었던 거 같다. 요란한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데도 그와 어울려 주고 있지 않은가. 그게 참 고맙다.
그렇지만 이런 질문은 사실 좀 의외다. 그의 이름 석 자가 불리는 것을 듣고 리라의 눈동자는 곧장 랑에게 고정된다. 이런 걸 물어볼 줄은 몰랐는데. 아니, 정말 몰랐나.
"왜 언니랑 오고 싶었냐고요?"
여기서 왜일 것 같아요? 같은 소릴 하면 안 되겠지. 사실 별로 어려운 질문은 아니다. 이유는 명백하고 단순했기 때문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혀가 굳은 것처럼 바로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 답은 언니가 이미 알고 있는 거 같은데."
그래서 또 이런 소리나 뱉어놓고 마는 거다. 리라는 잠시 숨을 골랐다. 후덥지근한 여름 바람이 폐 속을 채운다. 정말 덥다. 여름이 더운 건 당연하지만 이렇게나 더울 일인가. 그늘에 있는데도 피부가 익는 것 같아서, 뇌에 습기가 차는 것 같아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사실 랑의 질문은 별로 답변하기 어렵지 않았다. 언제나 이유는 명백하고 단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걸 이렇게만 말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보통 내가 그렇게 좋냐고 물어보는 건 상대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을 때 하는 말 아닌가요? 그래서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음, 아니다. 그때 했던 말은 기억 못 할 수도 있겠구나."
평소처럼 청산유수 흐르는 목소리임은 변함없지만 어딘가 묘하다는 것쯤은 마주앉은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을거다. 단정하고 장난스러워 보이는 말투 뒤에 낮은 떨림이 성대부터 우러나와 혀끝에서 날카롭게 튕긴다.
"언니랑 같이 있는 게 제일 좋으니까 그랬죠. 함께 있으면 즐겁고, 그 반대면 신경 쓰이고. 기왕이면 같이 오래오래 시간 보내고 싶고, 좋은 게 있으면 먼저 나누고 싶고... 자주 대화하다 보니 알고 싶고 모르는 게 있으면 궁금해지고, 그렇게 자주 생각하게 되니까 자연스레 걱정도 되고."
보통 이런 걸 두고 좋아한다 라고 하죠. 그런데 그저 좋아하는 거라면 이런 느낌이 들까. 리라는 문득 더운 공기를 들이마신 폐가 아파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뭐 그런 거예요. 언니는 이미 알잖아요, 제가 언니를 정말 좋아한다는 거."
리라는 가만히 랑을 바라본다. 묻고 싶다. 당신의 폐는 아프지 않냐고. 사실 좋아한다는 말로는 조금 부족한데 그건 아느냐고. "음~ 아무튼. 이런 질문을 받게 되니까 저도 좀 궁금해지는데요? 언니는 왜 제가 억지 부리는 거 받아줬어요?"
확실히,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에도 한번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때에는 확실하게 대답하지 않았으니, 비겁하다면 비겁하겠지만 거절의 기미가 보였다고 느꼈다면 다른 누군가와 약속을 잡고도 남았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말이 안 된 다는 것쯤 안다. 자신이 명백한 거절의 의사를 내비치지 않았으므로 다른 약속을 잡는 건 어려웠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자신이 봐 왔던 이리라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아이는 확실하지 않다고 해서 바로 대안을 찾아 나서는 성격은 아니니까. 오늘 아침 걸려온 전화만 떠올려도 그러했다.
그렇기에 묻고 싶었다. 그 때와는 다르게 오늘 확실히 너와 함께 페스티벌을 구경하겠다고 대답한 만큼. 너 역시도 확실한 답을 들려주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의 흐름을 탄 것이다. 좋아한다는 말은 계속해서 들었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이란 쓸데 없이 섬세하고 자세해서, 좋아한다는 말로 전부 표현할 수가 없다. 무엇으로써 좋아한다. 그런 말이 왜 생겼을까. 억양이 존재하지 않는 문자만으로는 전달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응, 알아."
네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자신과 있는 게 가장 좋다고, 함께 있으면 즐겁고, 그렇지 않으면 신경이 쓰이고, 할 수 있다면 오래오래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고, 좋은 것을 먼저 나누고 싶고, 많은 걸 알고 싶고, 모르는 게 있으면 궁금하고, 자주 생각이 들고, 걱정도 되고. 분명 리라가 느끼는 감정이고, 리라가 느끼는 것들임에도 랑은 하나같이 자신에게 물었을 때 하나도 부정할 만한 게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가만히 자신에게 꽂히는 시선을 느낀 건지, 아니면 단순히 우연인지 랑은 시선을 돌리다가 리라와 눈을 마주쳤다.
"네가 좋아서."
단 한 가지도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면서, 여전히 과거를 돌아보며 살아가는 존재에게 현재란 과거의 연장선일 뿐이다. 현재는 또 다시 과거가 된다. 과거를 돌아보기에 급급한 존재는 현재는 물론이거니와 미래를 볼 여유가 없다. 시간이 흘러 키가 크고 손아귀와 팔 다리의 힘이 억세졌음에도 여전히 화상 자국이 그 자리에 있듯,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들 투성이다. 과거란 그런 것이다.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를 노려보며 살아가는 존재는 변하지 않는다. 변하기 위해서는 그 시선부터 돌려야 한다.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변해가는 것들을 바라보게 해야 하며, 그 중 하나가 자신임을 자각하게 해야 한다. 과거로부터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지만, 자신이 과거 그 자체가 되는 것은 막을 수 있다.
멀어지는 태양만큼, 과거는 검게 변한다. 색을 잃고 어두운 암실에서 한 줄기 옅은 빛에 의지해 보듯이. 허나 세상은 무채색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으며, 인간은 현재를 살아가지 과거를 걷지 않는다. 그렇기에 과거에 파묻혔음에도 그 안에서는 항상 아우성치는 것이다. 빛으로 나아가자. 미래를 바라보자.
현재를 살아가자, 라고. 이미 과거에 먹힌 인간은 스스로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나약하다.
"난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사람이야."
그렇기 때문에 빛이 비추는 세상을 갈망하면서도, 너무 눈부신 빛이 두려워 움츠러드는 것이다. 자신과 닿은 빛이 꺼질까 두려워서.
수상한 QR코드가 떠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이번 행사에 연동되는 이벤트 앱이라며 다운받게끔 유도하고, 개인정보를 탈취하는 수법이라. 태오는 해당 QR코드의 식별을 위해 위조된 신상 정보가 담긴 단말기를 손에 쥐고 어플을 클릭해보았다. 어떤 수법인지 한 번에 알겠다. 뒷골목에서도 자주 써먹는 것들이라 그런지, 이젠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상하관계는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요. 느릿하게 덧붙이고는 흘러내린 옷깃을 여몄다. 마침 시간도 있겠다, 체포를 위해 자원한 인원 중 하나인 당신은 태오 또한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다. 같은 목화 고등학교 저지먼트인데다, 이번 년도에 새로 들어온 신입이기도 한 레벨 4의 인물. 레벨 3과 4가 한 번에 나선다니 다행인 상황이다마는 혹시 모를 일이다. 태오는 사안을 받고 면밀히 훑었다.
"아하……. 쉽지 않은 일이네요……."
지도를 하나하나 짚는 손길을 따라 태오는 시선을 연신 굴렸다.
"지금 행사가 진행 중이니…… 사람들이 많은 4학구에서 싸움을 피하려 들 수도 있겠지만요……. 안전을 생각하면 본거지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아마 그렇겠지. 적진에 아예 포진하여 인첨공의 이미지를 생각해서 잡을 테면 잡아보라 하거나, 아니면 안전하게 스킬아웃과 연합하거나. 3학구도 있을 것 같다마는, 이쪽은 근거를 잘 모르겠다. 태오는 손가락을 들어 지도 중앙을 톡 건드리려 했다.
"후배님은 어디를 의심하고 있을까요……? 어디든 괜찮으니, 일단 그곳으로 향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일단 3학년들이 모두 대학에 가는 것은 아니니깐. 근데 그걸 떠나서 서로서로가 결이 너무 달랐다. 좋게 말하자면 개성이 다들 뚜렷하다는 거지. 다들 같이 살기에는..상성이 안 맞을 느낌이라고 할까?
"이렇게 발달된 인첨공에서도 또 최신기술이면..놀랍긴 하지."
생각해보면 이 기술들도 바깥사회에서 사용될 기술들이다. 혹시.. 인첨공이 정말 실험장이 맞다는 생각이 한 번 더 들긴 든다. 저 기술들의 시행착오를 여기서 발견하고 고친 다음에 밖으로 나가는 거잖아. 그런데 여기서 그만 발전했으면 좋겠어. 너무 발전했다가는 월E에서 나오는 사람들처럼 될 거 같아. 한양이는 괜찮다는 정하의 말과 실망에도 금랑이를 떼어낸다. 계속 이러고 있다가는 아쿠아리움에 못 가. 한양은 금랑이와 그렇게 거칠게 뒹구지는 않았다. 금랑이를 싫어해서는 절대 아니었다. 이어서 정하는 본인의 능력으로 침과 털들을 씻어낸 뒤에 말리기 시작한다. 본인도 말리고 금랑이도 말리면서 말이지.
"에이..뭐..천생연분까지야.."
털이 다 말라서 평소의 모습대로 돌아온 금랑이. 서한양은 축 늘어진 금랑이의 허리를 잡아 흔들면서 일어나게 한다. 천생연분이라.. 그런 것 치고는 천생연분 같은 만남은 아니어서 말이야. 내가 강아지를 키우려고 직접 찾아가서 분양을 받은 거니깐.
"이제 가자."
한양은 금랑이의 목줄을 자신의 허리에 묶고, 로봇은 집으로 돌려보낸다. 이어서 여기서 1분 거리 정도 되는 아쿠아리움을 가리키며 발걸음을 향한다.
다시금 웃긴 했지만, 애린의 뚱한 표정을 짓자 왜 그러냐는 듯이 조금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물었을 것이다.
" 어려지고 싶어서 그런거 아니거든... "
어른이 되고 싶다거나 하는 마음은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어려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저 현실에 충실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그나저나 애린이 선배라....
" 선배님? "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하고서, 이내 장난스러운 웃음이 걸렸다.
" 비슷하긴 하지. 난 문제 해결을 '썬다' 라고 표현하긴 하지만. "
그거나 그거나. 과격한 표현이라는 것은 다르지 않을지도. 하지만 먹는것에 '썬다' 라고 표현하면 뭔가 그냥 먹기 좋은 크기로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에... 조금 더 직설적인 표현을 쓰게 된 것이다.
" 음, 확실히 넌 정점이라는 느낌이 있지. " " 내가 닿은 사람들 중에서는 네가 아마 제일 따뜻할거다. "
닿은 사람이라 해봤자 얼마나 있겠냐만은... 부모님을 포함하더라도 열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만큼 적을테다.
그나저나... 뭔가 이상한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 경계 레벨을 좀 올렸다고 생각했건만. 애린에게 위화감이 좀 드는 느낌이라고 설명하려던 찰나에 누군가가 애린을 붙들었다. ...단지 붙들었다는 표현을 하는게 실례될 만큼, 애린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꽉 잡혀있었다.
새하얀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
" 실례합니다만, "
어딘가 풍겨오는 위험한 느낌에, 동월은 잡고있는 손을 당겨 반동으로 빠르게 애린과 가까이 움직였고, 품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든다. 상대방은 애린의 뒤를 잡고있기에, 이대로 배후로 이동하는 도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고 판단. 정면에서 애린을 끌어안듯이 밀착한 후에, 키가 작은 상대를 언제든 내리찍을 수 있도록 휴대폰을 쥐고서 상대방의 얼굴 가까이에 겨누려 했다. 능력을 사용해서 찍어내린다면 꽤나 아픈 꼴을 당할테지.
아, 붉다. 맞잡은 손의 온도와, 여름 태양보다 붉을 듯한 여로의 얼굴에 소년은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의 얼굴도 지금 조금 정도는 붉을까.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먹은 소년이 갸웃거렸다. 아마 하얀 얼굴에는 별로 변화가 없을 것이다. 자신의 표정에 대해 잘 아는 소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아무런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저 붉은 얼굴이 꽤 나쁘지 않았다는, 새삼 짓궂은 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축제니까... 같이 찾아보자."
제 휴대폰에 매달린 종이학 모양의 스트랩을 떠올리고, 소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로는 머리가 기니까.. 하고, 잠시 그 쪽으로 향했던 생각은 여로가 부스로 이끄는 것에 멈췄다. 아까 말했던 사격장이겠지. 하얀 소년은 아마 활이 아니라 총을 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을 하였다.
"..내기 할까. 지는 사람이....."
살짝, 걸음을 빨리 하고 발 뒤꿈치를 들어 여로의 귓가에 말을 건 것은 그 이후였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다니고 그만큼 소음도 많았으며, 소년의 목소리는 대체로 조곤조곤한 편이었으므로 올바르게 전하고 싶어서 아주 가까이, 붙었다.
"이긴 사람 소원 들어주는 거로."
소곤소곤, 그렇게. 간지르듯.
"...참고로, 나 총은 잘 못 쏴."
그냥 네 소원을 들어주고 싶어서 그래. 거기까지 말하고 소년은 발 뒤꿈치를 바닥에 붙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주 태연하지만 조금, 흔들린 걸음걸이로.
네가 좋아서, 라는 말에 리라는 한순간 말을 잃었다. 그로서는 참 드문 일이다. 멈춘 뇌와 굳어버린 혓바닥은 평소처럼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기능할 수 없다. 얼굴 근육이 단단히 뭉쳐서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리라는 마주친 랑의 눈을 가만히 바라본다. 검은 눈동자는 깊고 어두워서 어디가 끝인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궁금해지고 마는 것이다. 알고 싶고 신경쓰이고 궁금하고 걱정되고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면 그건 뭘까. 리라는 랑의 말을 가만히 듣다가 말라붙은 입을 겨우 움직인다.
"당연하지."
가슴부터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기분이다. 맞잡은 손도 몸을 감싼 공기도 모두 뜨겁다. 하지만 그렇게 괴로운지는 잘 모르겠다. 파도처럼 몰아치는 감정으로 인한 신체적 통증은 분명히 느껴지고 있지만 괴롭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미안할 정도로 기꺼웠다.
"솔직히 별로 상상하고 싶은 일은 아니네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겠죠. 그럼 막연하게 언제가 됐든 사라지지 말아 달라고 하는 건 어려운 요구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만약에, 만에 하나라도 언니가 사라지면 제가 무조건 찾으러 갈게요. 그건 괜찮죠? 랑 언니도 제가 좋다고 했으니까 이 정도는 봐줘야 해요."
사라진다, 라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모른다. 감정은 이만큼 커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리라는 여전히 랑에 대해 아는 게 적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그가 랑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실 중 객관적으로 버겁거나 마땅히 지탄받을 만한 진실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 말을 하지 않을 자신은 없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기 위해서 법원에 선 여신은 눈을 가리고 있다. 하지만 리라는 공평함을 수호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의 눈은 트여 있고 손에 들린 저울은 한없이 비뚤게 기울어질 것이다. 말하자면 그런 거다. 나 랑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어떻든 리라는 이미 궤도 위에 섰고 그림자 드리운 길을 기꺼이 달릴 거라고. 그래서 눈 앞의 이 사람을 혼자 사라지도록 놓을 일도 없을 거라고.
"근데 물어볼 게 있어요. 이제야 하는 얘긴데, 사실 좋아한다는 말로는 좀 부족한 거 같거든요."
리라는 맞잡은 손에 힘을 준다.
"좀 이상한 질문인데, 언니도 폐가 아파요? 아니면 심장? 뭐가 됐든 가슴께가 아파요? 두근거리기도 해요? 만약 그러면... 그렇다면요, 언니의 '좋아해' 가 정말 나랑 같은 '좋아해' 면."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린다. 표정이 관리되고 있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추한 얼굴을 하고 너절하게 매달리는 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게 있다. 리라는 랑에게 조금 더 가까이 붙어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