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에 누워 발을 유우가에게 내맡긴 채로 나른하게 대답했다. 사실 녹초가 된 건 맞는데, 진짜 나른한 건 맞는데.. 지금 마음을 다 놓아버리면 '으헤헤 간지러워!'하고 발차기가 나갈 것 같아서(...) 나른해 보이지만 사실 정신은 바짝 잡고 있다고 할까, 발차기 대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거나 움찔거리는 정도로 엄청 열심히 참고 있다고 할까... 아무튼 발에 신경을 집중해서 유우가가 꺼낸 말이 좀 늦게 이해가 됐다는 것이다.
"...에에— 그치만 온천 여행권은 유우가가 노력해서 받은 거잖아. 그런데 유우가는 안 가고 내가 마-사바나 사-미랑 같이 쓰기엔 좀 그런 걸. 역시 유우가랑 가야 한다니까!" "그리고 굳이 온천 안 가도 마-사바랑 사-미랑 나는 항상 돈독하다구. 아무튼 유우가랑 갈 거야!"
내가 양도받는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온천 여행권은 유우가의 노력 덕분에 손에 넣은 건데, 정작 유우가는 동네 스파나 간다니 절대 용납못해(?). 아무튼 갈 거야! 유우가랑 갈 거라고! 볼을 부풀리고 발을 바둥-거리려다 멈췄다. 역시 위험하니까....
"....아니면 나랑 가는 게 싫어서 그래? 그럼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하고 가도 되니까..."
물론 그건 그거대로 불만이긴 하지만, 그래도 모처럼의 온천이니까, 유우가는 갔으면 해... 그러니까 참을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하면서 발을 주무르는 유우가를 빤히 보았다. 불량 마장과 위닝 라이브를 고스란히 견디고 온 발은 아직 풀리지 않은 긴장과 추위로 뻣뻣한 상태. 그런 발을 마사지해주는 유우가의 손은 언제나처럼 크고 따뜻했다. 까딱하면 잠이 들어버릴 것 같이... ...아니, 평소엔 지쳐도 이렇게 졸리진 않았던 것 같은데.. 사바캔도 산마캔도.. 이와시캔도.. 뭐지 오늘은.... 진짜 지쳤나?
>>523 원더를 연기한 배우는 20대 초반 모델일것같은데수 대학은 안다니고 어릴때부터? 연예계에서 생활한? 원래도 날카로운 인상인데 이제 메이크업으로 좀더 사내다운 인상을 만들것같은데치. 연기에 도전한건 이번이 처음인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았다던가? 사석에서도 극중에서 등장하는 원더같은 인상 그대로라 이래저래 얘기가 나올 것 같기도 하고? 촬영장에서는 자주 커피라던가 먹을걸 바리바리 싸들고 다녀서 어린애들한테 나눠주고 다녀서 호평이라던가 격투기는 배우가 배운게 원더 설정에 반영된거라던가 하할 것 같은데수
누구 닮았는지 고집이 이렇게 센 거야? 끄응... 설득이 먹히질 않는다. 아니, 이건 일종의 시위인 거지. 난 이미 마음을 정했다는. 알고야 있었지만... 나는 발을 조물거리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난 말이지, 온천 가면 어차피 탕 따로 쓰고 담배나 피고 술이나 마시다가 퍼잘 거라고? 온천이 특별히 신기할 것도 없고, 너랑 장단을 맞춰주면서 놀기에는 몸이 안 따라주는 나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이런 이벤트성 있는 일은, 낙엽만 굴러도 웃는 너네 또래 애를 데려가는 게 맞다, 그런 생각이었던 거야. 베개 싸움도 하고 탁구도 치고, 우마무스메탕에서 물장구도 치고 그러면서 나이에 맞게 노는 거. 그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나는."
어차피 학교에서 지역 료칸과 계약해서 뿌리는 여행권이기도 하고, 시장에서 뽑기를 하다가 1등상에 당첨되는 녀석도 있곤 하니까 아무도 없진 않겠지만.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메이사 옆에 있고는 싶지만 너무 있어도 메이사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진 않으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런 각별한 이벤트를 나와의 추억으로 보내는 것도 그렇고. 그래도... ...그래도 이렇게 빤히 보는데 거기다 대고 직설적으로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말했지? 나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고를 봤다고. 그렇다고 중학생 때 또래들이랑 잘 지냈느냐 하면..."
잠시, 턱 아래에서 본능적으로 망설인다. 이게 맞나. 말해도 되나.
"그건 아니었어. 난 천재였거든. 진짜로, 히또미미 중에서 달리기 천재였다고. 그래서 코치랑 맨날 붙어다녔지. 그땐 좋았어, 식단 관리는 좀 빡세게 해도 아닐 때는 고기도 사주고, 누나랑 싸워서 집에 들어가기 싫을 땐 재워주기도 하고... 그땐 그게 좋았다고." 물론, 나와 코치는 메이사와 나랑은 좀 다르긴 했다. 천천히 시선을 끌어올려 메이사를 바라본다.
"근데 아니더라고. 난 그 때 좀 더 또래랑 지내야 했어. 멍청하고 바보같이 놀고, 어른이랑 놀면서 '나는 남들과는 다르다' 그런 기분에 취해있으면 안 됐어. 그 때 좀 더 실수도 하고 싸우고 추억도 만들면서 살았어야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아닌 거야."
내가 모르던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몰랐던 유우가의 과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그치만... 솔직히 말하자면 난 이미 충분히 멍청하고 바보같이 놀고 실수도 하고 추억도 한가득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동안 츠나지에서 꼬꼬꼬가 하고 다닌 짓을 알면 유우가 놀래서 기절하는 거 아냐...? 아니 생각이 잠시 다른 곳으로 샜다. 아무튼, 유우가가 어떤 의미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 것 같아.
"....알았어. 마-사바도 같이 갈게..." "생각해보니까 마구로 기념 부상 중에 온천 여행권있었으니까.. 마-사바도 다른 애 한 명 데려오면 되겠네."
그러니까, 사실 100% 마음에 드는 제안은 아니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상대가 마-사바인 점도 한 몫했다. 아마 다른 상대였다면.. 음, 더 많은 고민을 필요로 했겠네.
"그러니까... 약속했어, 꼭 가는 거야?"
온천은 요양에도 좋을 테니까.. 분명 유우가의 무릎에도 잘 들을 거야. 그렇겠지. 그 말은 꿀꺽 삼켜둔 채로, 더듬더듬 손을 뻗었다. 새끼손가락만 펴서.
눈치를 살피는 듯한 유우가를 보면서 히죽 웃었다. 뭐 내 발이니까 상관없지 않나? 마사지 전에 닦기도 했고... 아무튼 손가락도 걸고 도장도 찍었다. 이걸로 온천 이야기는 얼추 마무리가 되었네. 이제 신경 쓸 일은 끝난 건가. 슬쩍 눈을 감으려다가 들려온 질문에, 그 생각은 쑥 들어가버렸다만.
"...음, 뭐어..."
마-사바라면 아마 '히또미미의 달리기 따위 우마무스메님께서 신경 쓸 정도의 일이 아니다.'라고 대답했을라나. 온천에 같이 가야한다는 말이 나와서 그런지 문득 마-사바부터 떠올랐다. 하지만 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서..
츠나페스에서 들었던 무릎이 안 좋다는 말. 그리고 지금 들은 달리기 천재였다는 말. 달리기와 다리가 안 좋다는 말은 불길한 조합이라서. 뭐 흔히 말하듯 [무릎에 화살을 맞아서 그만...]은 아닐 거 아냐. 아무튼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그런 전개가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러면 그걸 내가 먼저 물어보는 건 어쩌면 상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조심스러운 생각 반. 나머지 반은... 과거의 유우가가 어떤 사람이었든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느낌 반 정도? 이건 반은 아니고 한 30% 정도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우가 쪽에서 먼저 '안 물어보네?'라는 말이 나왔다는 건, 물어봐주길 바란다는 걸까... 으으, 생각이 많아서 복잡해.. 안 그래도 머리가 안 돌아가는데 지금...
"...물어봐도 돼?"
그래서 꼬리에 꼬리를 물던 생각이 내린 결론은-사실 결론이라고 하기도 애매한게, 생각하다 지쳐서 그냥 에라 모르겠다 식으로, 결국 물어봐도 되냐는 물음과 그 뒤에 이어지는 순수한 궁금증들이 나온 거지만.
"그럼 유우가도 달리기 했던거지? 천재라고 할 정도면 엄청 잘 뛰었겠네. 레이스도 나갔어? 아, 히또미미는 레이스가 아니라 다르게 부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