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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이상한 아이였다. 말을 걸어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질문을 해도 돌아오는 것은 끄덕임이나 절레절레. 귀염성도 없고, 붙임성도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항상 빛을 잃어있는 그 눈빛이라던가 어딘가 허하게 허공을 바라보는 모습이 신경이 쓰였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으니까, 이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싶었다. 행복이 뭔지 모르는 너에게, 행복이 무엇인지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 뒤로, 그 소년의 마음을 끈질기게 두드렸다. 놀러가자, 밥먹으러 가자, 학교 같이 가자....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것 까지, 그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인생의 행복이라는 것이 뭔지 차근차근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지금까지의 노력이 보답받기라도 하듯이. 그 아이의 입이 열렸다.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는 내 노력이 보답받아서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것이었는지 굉장히 듣기 좋았다. 한 번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니 그 뒤로는 재잘재잘. 내가 말하는 것에 빠짐없이 대답해주게 되었다. 난 그것이, 너무나 기분이 좋았어.
그 후로 우리는 훨씬 빠르게 가까워졌다. 다른 친구들을 보지 않을때도 그 아이와는 함께했고, 당연하다는 듯이 귀가 시간이 되면 서로의 교실 앞에서 기다리는게 일상이 되었다. 그 일상이 익숙해지고, 뭔가 '어라?' 하는 마음이 생길때 쯤. 계절은 겨울. 그 때에 그 아이가 고백했다. 마치 그 아이의 이름처럼, 추운 겨울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베어버리고 때아닌 봄을 가져다주는... 그런 고백이었다.
아니 그런데 어이도 없지. 무슨 고백을 그렇게 가볍게 해? 10살 먹은 아이도 그렇게는 고백 안하겠다. 골려줄 심산으로 나는 내일 답할 것이라고. 그렇게 말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어떻게 대답을 해줘야 그 아이의 얼굴을 새빨갛게 만들 수 있을까 기분좋은 생각을 하며 집으로 가고 있었는데. 어느 폐공장을 지날 때 쯤에 아무런 전조도 없이, 눈을 깜빡이는 순간에 어딘가 이상한 곳을 걷고 있었다.
-온전한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다시 정신을 차리니 제대로 된 생각이 불가능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머릿속에서 울려퍼지는 이상한 단어들의 나열이 생각을 방해했고, 또 끔찍한 충동들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몸을 내려다봤는데, 환각인지 아닌지 착각할 정도로 기괴하게 뒤틀려있었다. 아마 그쯤부터는 입에서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게 된것 같다.
또다시 암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지 모를 무렵에 시야가 돌아왔다. 그 시야에는.... 그래. 그 아이가 서있었다. 우는건지 놀란건지 모르는. 한 번도 본적 없던 표정을 지은 채로 그렇게 서있었다.
그때 못가서 미안하다고 해야하는데.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해야하는데. 이제... 같이 못있게 돼서 미안하다고 해야하는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입을 벌려도 성대가 사라진 듯이 아무런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지금 할 수 있는건 그저, 가만히 서서, 네가 칼을 뽑아드는걸 지켜보는 수 밖에 없었다. 끔삑하게도 피어오르는 충동을 억누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마음 속으로 전하는 사과는 전해질 수 있을까? 미안해. 괜히 심술 부려서. 미안해. 더 볼 수 없어서. 미안해. 네가 이런 일을 하게 만들어서. 그래도 미안한건 나 뿐이니까. 떠날 사람은 묻어두고, 이제는 마음 열고 웃으면서 살아. 행복하길 바래. 나 대신.
뭐, 왜, 뭐. 어쩌라고. 난 몰라. 아무 것도. 그런 감정을 가득 담아 그는 애써 강력하게 그녀의 눈을 회피했다. 아니. 애시당초 여로라면 모를까. 다른 이들과는 별 문제 없었잖아.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는 애써 합리화했다. 물론 여로에게 한 말도 후회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은 죽어도 패로 쓰지 않을 거니까. 패로 쓰인다는 것이 어디 좋은 말인가. 자신부터가 그런 것을 혐오하니 더더욱. 그러다가 그는 다시 살며시 앞을 바라보며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가만히 누군가를 떠올렸다.
"사이버 리얼리티. 라는 능력도 있어. 정말 신이나 다를바 없는 능력이지. 그 이외에는 글쎄. 2~3명 정도 알고 있긴 한데, 그 이상은 모르겠어. 솔직히.. 리얼리티 계열의 능력은 정말로 수가 적거든. 초기에는 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철저하게 감시 대상이었다고도 하니 말이야."
그렇다고 완전 무적은 아니긴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없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그는 넌지시 그렇게만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 능력이 누구의 능력인지, 어떤 능력인지에 대해서는 그는 굳이 설명하진 않았다. 물었어도 그런 능력이 있다 정도 정도로만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 대신 그가 전하고 싶은 것은 그녀의 능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계열인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물론 특별히 뭘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 정도의 위험성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 정도는 전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기에.
"어디까지나 베이킹은 취미의 영역이야. 하지만, 솔직히 졸업하고 대학교를 다니다가 그쪽 계열로 빠져볼까도 생각 중이야. 그럴려면 우선 카페라던가, 가게의 경영방식을 알아야 하니, 바로는 힘들고... 조금 일을 직접 하면서 배워야겠지만 말이야. 하지만 뭐가 되었건 취미 계열이 될테니까... 그다지 부담감은 없긴 해. 이미 평생을 사용할 돈은 있고... 아마 앞으로도 그 이상은 들어올테니까."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는 제 주머니에 있는 지갑을 손으로 톡톡 쳤다. 그러면서 그는 그녀의 표정을 가만히 살폈다. 이 후배는 자신이 알기로는 자신만큼 무리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렇기에 방금 전 물음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냐에 따라서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필요 이상으로 간섭할 생각은 없었다. 정말로 위험한 상황인데,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15주년 행사 말이지? 나는 기본적으로 차출이야. 다른 퍼스트클래스도 모두 말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일을 하는 것은 아니고... 하루 정도는 쉬어. 운 좋게 가위바위보를 해서 퍼레이드 당일날에 쉬게 되었는데..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어떻게 보낼지는 조금 고민 중이야. 세은이는 세은이대로 다른 친구들과 놀려고 하는 것 같고... 나는... 글쎄. 다른 퍼스트클래스들 놀리러 가볼까도 싶긴 하지만... 뭔가 무서운 이도 있단 말이지."
누구인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으며 그는 으으, 소리만 내면서 머리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어 그는 리라를 바라보면 살며시 이야기했다.
"그런고로 나로서는 동기들도, 후배들도 재밌게 그 날은 즐겼으면 좋겠는걸. 개인적인 감정은 있을지 몰라도... 기왕의 축제잖아? 3학구 문제로 고생했으니까 그 날 정도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고 푹 쉬어도 된다고 생각해. 적어도 난. 아. 참고로 내가 일을 한다고 저지먼트를 차출하거나 하진 않을 거니까 안심해. 하루 정도는... 너희가 해야 하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아직 고민 중이니까. 조만간에 소집할때 설명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