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금을 모티브로 하고있지만 잘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상황극판의 기본 규칙과 매너를 따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를 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상대를 지적할때에는 너무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15세 이용가이며 그 이상의 높은 수위나 드립은 일체 금지합니다. ※특별한 공지가 없다면 스토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 30분~8시쯤부터 진행합니다. 이벤트나 스토리가 없거나 미뤄지는 경우는 그 전에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이벤트 도중 반응레스가 필요한 경우 >>0 을 달고 레스를 달아주세요. ※계수를 깎을 수 있는 훈련레스는 1일 1회로, 개인이 정산해서 뱅크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훈련레스는 >>0을 달고 적어주세요! 소수점은 버립니다. ※7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 경우 동결, 14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경우 해당시트 하차됩니다. 설사 연플이나 우플 등이 있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존 모카고 시리즈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따라서 기존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있고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서도 똑같이 그 설정이 적용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R1과도 다른 스토리로 흘러갑니다. ※개인 이벤트는 일상 5회를 했다는 가정하에 챕터2부터 개방됩니다. 개인 이벤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사전에 웹박수를 이용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는 계수 10%, 참여하는 이에겐 5%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안에 있고, 얼마 전까지 레벨 0이었어요. 그런데다 키도 작고, 몸까지 약해서, 아이들에게 샌드백이나 축구공 꼴을 당하기 일쑤였어요. 그 처지를 벗어나려고 저도 죽도록 노력했어요. 그렇지만 꾸준한 노력 끝에 결실을 거두신 부장님과는 달리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어요. 솔직히, 저는 아직도 제가 이렇게 갑자기 3레벨이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요.”
“부장님의 지옥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지만, 저도 제 나름의 지옥에서 아득바득 살아가고 있어요.”
“그런 무거운 족쇄는커녕 당장 내일 맞아죽지나 않을까, 굶어죽지나 않을까, 이번 달에 식비로 낼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남았지, 다른 애들이 다 가져가고 남은 아르바이트 중에 안전한 아르바이트가 남아있을까, 일주일 정도 굶어야 되겠구나, 내가 입이 짧아서 다행이야··· 굳이 그런 번거로운 안전장치까지 시술받지 않더라도 이런 일을 당할 수도 있고 저런 일로 불행할 수도 어쩌면 죽을 수도 있는 생쥐같이 살다 보면, 당연히 누군가 의지할 사람을 찾기 마련이에요. 그리고 저는 저지먼트에서 나름의 구원을 받았어요. 나랑 선배님께 무언가를 동경하는 법과 길을 정하는 법을 배웠고, 혜성 선배님께 함께하는 법을 배웠고, 부부장님이 칼리를 배우라고 추천해주었고, 리라에게서 마음을 받는 법을, 아지에게서 마음을 주는 법을··· 부장님이 이끄는 이 저지먼트에서, 주변 사람들을 따라가는 법을 배웠어요. 그러니 그런 무언가를 받으면, 그 사람이 내게 해준 만큼 나 역시도 그 사람에게 뭔가 좋은 것들을 돌려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고, 그 사람이 무언가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면 괜찮아? 하고 물어보는 것도 보통이에요. 그게 제 어설픔 때문에 생각과 다르게 전해질 때가 많다는 점은 제 스스로도 유감이네요.”
“─부장님 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감히 함께라는 말까지 써 가면서 부장님이 생각하시는 미래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주제넘게 군 점에 대해서는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두 가지.”
“3학구의 가장 큰 문제인 블랙 크로우 토벌이 성공적으로 끝난 것은 맞아요. 하지만 모든 스킬아웃이 토벌된 것은 아니잖아요. 인첨공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것도 아니잖아요. 각각의 사람들이 가진 고민이 모두 끝난 것도 아니잖아요. 블랙 크로우를 치운 것은 큰 성공이지만, 하나의 큰 성공이죠. 혹시나 그 어떤 문제라도 부장님 혼자서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아직까지 갖고 계신 것은 아니겠지요. ─디스트로이어에게 당한 피해는, 멀쩡히 다 회복하신 것 같아 다행이에요. 그런 예기치 못한 일이 두 번은 없고, 세 번은 없을까요? 물론, 당연히 그런 일 따위 없이 이대로 모두가 평범한 학창생활을 보내는 게 가장 좋겠고, 저도 그러기를 바라지만,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함께 행복해지겠다는 말이 그 어떤 동정보다 더욱 큰 동정이라는 말에는, 이것만큼은 꼭 말씀드려야겠는데, 전혀 동의할 수 없어요.”
“그날 저를 포함해 저지먼트 부원들이 기꺼이 완장을 벗어던졌던 것도 동정심에 벗어던졌다고 말씀하시려는 건가요?”
“다른 부원들이 휘말리지 않기를 바라며 블랙 크로우의 아지트에 혼자 가려고 하셨던 부장님의 마음도, 다른 부원들에 대한 동정심인가요?”
“위험한, 어쩌면 능력 밖의 일에 무모하게 뛰어드는 것을 객기라고 부르시는 것은 괜찮지만 동정심이라고 부르는 것은 납득하지 못하겠어요. 언제부터 동정심이 목숨까지 요구하는 일이었나요?”
“그런 마음도 누가 갖느냐에 따라 쓸모있고 없고가 갈린다는 것은 알아요. 마음이 있어도 힘이 없는데 그게 어느 짝에 쓸모가 있겠어요. 부장님이 짊어진 짐 중에 가장 작은 것 하나도 쉬이 들어드리지 못할 만큼 약한 제가, 부장님의 잠깐 스쳐지나간 나쁜 안색에 부장님을 걱정한다고 그게 어느 짝에 쓸모있겠나요. 그렇지만 그건 객기죠. 결코 동정심이 아니에요. 부장님이, 존경하는 선배가 꿈꾸시는 행복에 고양이 손만큼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일 뿐이에요, 은우 선배. 디스트로이어를 상대로 선두로 돌입하실 때, 부디 몸 조심히 돌아오시라고 걱정해 드렸던 것처럼요.”
“그러니, 선배는 저한테 동정한다고 지적하시는 것이 아니라 객기부리지 말라고 야단치셔야 했어요.”
레비테이션. 텔레키네시스의 강화버전이라고 볼 수 있는 능력. 전형적인 염동력. 하지만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서 능력의 퀄리티는 천지차이가 된다. 이 염동력은 그저 밥을 더 편하게 먹게해주기만 하는 능력이 될 수도 있다. 출력량이 약하고 사용자의 응용력이 부족하다면 말이지. 하지만 출력량과 미세한 컨트롤 그리고 사용자의 응용력은 전자와는 비교할 수 없게 된다.
현재 출력량은 계수 1000 초반 수준. 레벨 4의 커트라인인 5000을 한참 넘어선 수준. 레벨 4 중에서도 출력량이 높은 편인 수준이었다. 하지만 응용력이 부족하다. 최근 캠핑에서 마찰을 이용해서 화염을 일으키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거는 우연히 찾아낸 방법. 발전하려면 우연에 의존하는 편법이 아닌, 스스로 방법을 찾아나서야 된다.
능력을 쓸 때 한양의 사고를 생각하자. 그것이 버릇이든 , 좋은 습관이든 말이지.
"..생각해보니깐.. 무언가를 잡을 때 항상 손으로 잡는다고 생각했네."
염동력은 형체가 없는 힘이다. 그러나 한양은 '원격에서 손으로 잡는다'라고 생각하여서 스스로 시야를 좁혀버렸다. 잡는 방법부터 이미 안 좋은 버릇이 있었다. 마치 당연하듯이 반복해온 버릇. 이제는 고쳐야 된다. 이걸 고침으로써 능력의 응용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과 하나를 잡아보려고 한다. 이번에는 손으로 잡는다고 생각 안 해. 손이 아닌.. 얇은 실의 형태. 사과의 가운데 부분만 실로 감듯이 잡아서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힘을 준다. 염동력의 범위를 줄였기에 위력이 더 집중된다.
성운이 하는 말을 조용히 들으며 은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아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는 알 수 있었다. 마치 작은 저항. 미안하다고 하지만, 정말로 미안하다고 느끼기보단, 이런 분위기게 약한 것이 아닐까하고 은우는 생각했다. 객기부리지 말라고 야단을 쳐야 했다. 그 말에 은우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거야말로 정말로 해서는 안되는 말이 아니던가. 그거야말로 이 작은 아이의 노력, 그리고 마음을 완전히 짓밟아버리는 것이 아니던가. 결국 말이라는 것은 이렇기에 어려운 법이었고, 사람의 생각이 다른 것은 이래서 힘든 법이었다.
"고개 들어."
꽤 침묵을 지키던 은우는, 낮은 목소리로 성운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화가 났냐고? 건방지다고 생각하냐고? 그럴 이유가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건방진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성운의 말에 모든 것을 동의할 순 없으나, 어느 정도 동감하는 것은 있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하게 잡고 싶은 것은 있었다.
"일단 너를 풀 죽게 한 것은 사과할게. 그리고 누가 더 힘들었냐...같은 것은 언급할 가치가 없으니까 그 관련으로도 말하지 않겠어. 당장 내 주변에서도, 2년 동안이나 쓸모없는 녀석 취급을 받으면서 죽어라 혼나야만 했던 동기가 있었고, 정말로 반 정도 시체처럼... 집 밖으로 제대로 나오지 않고, 정말로 시체처럼 지내던 이도 있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범죄행위에 철저하게 이용당했으면서... 이용당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이도 있고, 잔혹한 선택을 해야만 했고, 그 결과 소중한 이들을 모조리 잃어버린 이들도 있었어. 비교하자면 끝이 없겠지. 그러니까... 네 사정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진 않을게. ...하지만 힘들었겠네. 살아있어줘서 고마워."
딱 그 정도의 언급으로 은우는 일단 말을 잠시 끊었다. 그리고 그는 조용히 숨을 내뱉었다. 작게 혀를 차면서 그는 제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후우...숨을 내뱉었다.
"나는 네가 객기를 부린다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각오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내뱉는 것이 아니야. 특히... 동의없는 것에 대해서는 더더욱. 나와 세은이는 확실히 이런저런 일을 겪었어. 인첨공에 오기 전에도, 온 이후에도, 그리고 지금도. ...하지만 나도 세은이도 지금은 절망하지 않았고... 미래를 보고 있어. ...그러니까 그런 것을 각오라고 하면서, 은근슬쩍 끼우지 마. 각오가 없을 정도면... 나와 세은이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처럼 들리니까. ...그저, 부탁으로 충분해. 함께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각오는 의무이자 사명이지만, 부탁은 친구 사이에 나오는 거라고 난 생각해. 의무이자 사명은, 절대로 동등하지 않아. 나와 세은이가 행복해지길 바란다면, 행복해지세요. 정도로 충분해."
제 생각을 조금 더 밝히면서 은우는 다시 한 번 말을 끊고 조금 더 편하게 자리를 잡으려는 듯 하다가 눈을 다시 뜨고, 성운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나는 네 각오를 받지 않을 거야. ...나와 세은이의 행복이 너의 의무와 사명이 되는 것은 원하지 않으니까. 그 어떤 문제라도 내가 처리할 수 있다? 가능할리가. 그 정도로 자만하고 오만하게 살진 않아. 완장을 집어던졌을 때의 행동이 동정심에서만 나온다고 생각하냐고? 그건 사명이 아니라 순수하게 걱정했기에 가능한 거였지. 그 누구도 거기서, 나를 도와야만 한다고 사명감을 느낀 이는 없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거부하지 않았어."
말 그대로 거기에 책임감과 의무감을 느꼈다면, 그야말로 성운이 말한 각오라는 것을 이야기했다면...아마 은우는 똑같이 거부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누군가의 사명이 되는 것은 싫었다. 물론 억지일지도 모르지만, 자신이 바라는 것은... 그저 대등하게 대우받고, 대등하게 보이고 싶었을 뿐이었다. 족쇄를 차고 불쌍하고, 불행의 구덩이 속에 있는 에어버스터가 이날, 그저 오늘도 하루를 살아가는 부장 에어버스터로서.
허나 그 모든 것을 굳이 은우는 입에 담지 않았다. 스스로 말하기는 부끄러웠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희들을 동원할지는 별개야. 분하고 억울해? 그렇다면 더욱 강해져. 스스로가 하는 말이 잘못되었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잘못했다는 말이 아니라 당당하게 이야기해. 네가 맞아죽을 뻔 했는지, 밥을 굶어서 힘들었는지...그런 환경 따위는 지금 여기 어디에도 없어. 너 역시 저지먼트이고 코뿔소 완장을 차는 이라면, 분하면 분한대로 따지고, 고개 숙이지 말고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느낀다면 잘못했다고 하지 마. 주장을 펼쳤으면 그 주장을 꿋꿋하게 관철하고 스스로를 낮추지 마. 불합리한 것을 불시에 겪고 힘들면서도 내 정강이를 걷어차고 싶다고 말하면서 실제로 때린 그 애처럼 악이라도 품어."
말을 하면서도 이게 무슨 소리인건지. 그저 어이가 없다고 느끼면서 은우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내 피식 웃었다.
"...각오하지 말고, 그냥 부탁으로 충분해. 나는 부장이지만 너희들과 대등하게 있고 싶고, 설사 이런 몸이지만... 특별하게 보이고 싶진 않아. 그러니까... 은인이니까 뭘 갚는다는 생각보단... 나를 구원해주는 이들이기에 소중하다...정도의 소망으로 줄여줘. 아무도 너에게 그런 각오를 바라거나 요구하지 않을거야. 뭐, 일단은 나도 그래. 하아. 빨리 졸업해야지. 이런 선배. 정말 잔소리꾼에 이상한 말, 제멋대로라니까. 그 와중에 이기적이지."
이어 그는 쭈욱 두 팔을 뻗고 기지개를 켠 후에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뭐, 지금 한 말은 피차 비밀인 것으로 하자. 이후에 누가 이 관련으로 물어도 난 모르는 거야. 받아들이기 싫으면 받아들이지 않아도 상관없어. 하지만 나는 그럴 거야."
아, 맞아, 캡틴, 분명 읽은 것 같은데 아리송하게 헷갈리는 게 하나, 기억해낸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1. 플레이어 캐릭터가 5레벨에 도달하면 바로 퍼스트클래스로 간주되어 위크니스가 붙나요? 2. 위크니스는 퍼스트클래스 1명에 1명씩뿐인가요, 아니면 퍼스트클래스 1명에 여러 명의 위크니스를 만들 수도 있나요?
1.아니요. 퍼스트클래스는 레벨5보다 조금 더 윗단계에요. 굳이 말하면 5.5레벨? 그런 느낌인데.. 일단 구분으로는 레벨5로 규정이 되어있는 것 뿐이에요. 레벨6는 아니지만, 레벨5보다는 조금 더 강력한 그런 느낌이에요. 그렇기에 레벨5가 된다고 해서 퍼스트클래스가 되는 것은 아니며, 퍼스트클래스보다 강한 힘을 지닌다...그렇게 되진 않아요. 고로 일반적인 레벨5는 위크니스가 없어요.
>>172 아하, 설정집에서 아직까지 레벨 5는 7명뿐이라길래.. 레벨 5 이상을 달성한 것이 아직 일곱 명뿐이고 그 일곱 명이 전원 퍼스트클래스다, 라는 말씀이시죠. 대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질문이 하나 생겼는데, 이것도 어디까지나 호기심 본위 질문이지만, 위크니스를 굳이 능력자로 선정하는 이유가 있나요?
그리고 대답은 피곤하시면 주무시고 나서 해주셔도 되고, 답레도 빨리 나올 것 같지는 않으니 얼른 주무시길 바라요. 항상 스레 유지관리해주시는 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당신의 그런 말에 자신이 상황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해라고 하면? 당신의 그 말과 표정이 사실 내 탓이 아니었다고. 자신을 밀어내려 하는 말이 아니었다고. 침울했던 마음이 조금은 나아졌지만, 옅은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을 앞에 두고서 자신이 한, 고민은 들어줄 수 있다는 말은, 언젠가 그랬듯 너무나 무력할 말뿐이었다.
"그러니까.... 최근 일은 더 생각하지 마십시오. 생각해 봐야 좋지 않은 기억들뿐 아닙니까. 이제는 선배의 미래에 집중하셔야지요."
어른들은 모든 걸 방관하기만 했다. 고작 학생일 뿐인 우리가 모든 일들을 해결해야 했다. 그 방관의 폐해는 폭력으로, 우리는 그 피해자로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우둔한 무리들을 무찌른 지금에선, -우리가 겪은 것을 잊지 못하겠지만- 우리로 인하여 바뀐 앞으로의 미래만 생각하면 되는 것이라 금은 생각하고 있었다.
본교의 구원은 무엇입니까? 낮은 자와 높은 자 할 것 없이 그분의 품에서 평등한 삶을 쥘 권리가 있음을 알리는 겁니다. 그분의 낙원에서 만인이 평등해야만 합니다.
본교의 평등은 무엇입니까? 레벨의 격차로 고통 받는 자 없이 두루 화합함을 의미합니다.
본교의 화합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까? 누구도 다치지 않고 대화로 풀 수 있습니다. 평화를 외치는 시위와 각종 캠페인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인식을 바꿀 수 있으면 그것이 화합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열등생과 엘리트로 나뉠 권리는 없습니다. 모두 화합하여 어떠한 갈등도 없이 이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음을 알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시위도, 캠페인도 금지 되었으나 아직 희망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누구보다 소중하던 형제가 그렇게 죽어야만 했던 이유를 알리고 밝힐 수 있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였습니까? 그저 소중했던 가족이, 반쪽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에, 그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것이 죄입니까? 엘리트를 건드렸기 때문에 모든 열등생이 피해를 보는 것이 어째서 당연한 겁니까? 어째서 우리는 탄압되고, 연행되며, 커리큘럼에서 불이익을 받고 담당 연구원 연결마저 끊겨야 하는 겁니까?
희야는 소리를 높여 우는 형제자매를 보았다. 그리고 세상을 돌아보았다. 그분의 뜻을 부정하고 이상을 짓밟는 구더기들이 팽배하다. 희야의 반쪽을 손가락질 하고 뜯어먹어 통통히 살이 올라 꿈틀거리는 모습이 역하고, 서로를 잡아먹는 세상에 숨이 막혔을 때, 누군가 속삭였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였습니까?'
……본교의 교리는 무엇입니까? 낮은 자 높은 자 할 것 없이 그분의 낙원에서 만인이 평등함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행동은 구원의 초석이 되는 것입니다.
본교의 평등은 무엇입니까? 만인이 그분 아래에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겁니다.
본교의 구원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까? 우리가 초석이 되고 길잡이가 되어 그들을 낙원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희야는 소리를 높여 우는 학생의 영상을 보았다. 살려달라며, 잘못했다며 비는 낯익은 얼굴은 처참하게 일그러진다. 그리고 세상을 돌아보았다. 학교 이곳저곳에 숨겨져있던 학생을 발견하고 끔찍해하는 구더기들이 보였다. 이상한 일이다. 자신의 반쪽을 뜯어먹던 것들이 저건 뜯어먹지 않는다. 그러니 저것들이 어찌나 우스운 존재인가.
그렇기에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영광된 성전이자, 구원이며, 구원의 초석이 되는 무엇보다 기쁜 일입니다. 죽음 끝에 낙원이 있을 테니,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서면 안 됩니다…….
그러니 성자시여, 그분의 그릇과 어린 양을 위한 제물이 되어 부디 영광을 받드소서. 영원을 손에 쥐고 시간의 흐름을 멈추소서. 그렇게 영원불멸의 삶을 이어가시며, 끝내 모든 빛무리의 죄를 사하며 그 위에 오르소서. 당신만이 할 수 있습니다. 당신만이 우리를 이끌고 구원을 지휘할 수 있습니다…….
희야는 기쁜 얼굴로 길게 갈라져가는 자신의 몸을 보았다.
"정신 똑바로 차려!!"
희야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 제단에 누웠던 것 같은데, 어째서인자 병원이다. 병실 안은 꽁꽁 얼어붙었다. 조금만 숨을 쉬어도 새하얀 입김이 나오고, 기물이나 문, 창문이고 할 것 없이 모두 얼어붙어 손이라도 올렸다간 같이 얼어붙어 하나의 장식이 되어버릴 것처럼 냉기가 도사렸다. 다시금 목소리가 들렸다.
"심호흡 해."
희야는 눈을 천천히 굴렸다.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손이 새빨갛다 못해 끝이 보랏빛으로 물든 손에서 점차 시선을 올리니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뺨은 창백하고, 속눈썹은 새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금방이라도 얼어 죽을 것 같은 몰골의 태휘는 희야의 눈을 정확히 마주했다.
"다 괜찮아. 천천히 심호흡 해. 들이마시고, 내쉬어." "……." "그래. 그렇게. 다 괜찮아. 괜찮아……. 천천히 숨 쉬어. 계속. 잘 하고 있어."
품이 차갑다. 머리를 붙드는 큼직한 손이 벌벌 떨리는 게 느껴진다. 그제야 희야는 자신이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뽀얀 숨을 색색대며 내쉬던 희야는 더듬더듬 입을 떼었다.
"쓰다듬어줘."
희야는 품 속에 고개를 묻었다. 온통 구더기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멀미가 났다. 아찔한 여름병과 같은 세상이었다. 조금만 숨을 쉬어도 하루만큼 썩어가는 인간들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드디어 이것만큼은 인정할 수 있게 됐다. 지긋지긋하다. 호의에 가려진 악의가 너무나도 많은 세상이다.
"이번 테러는 네 잘못 아니야. 다 괜찮아. 진정하고 다시 자." "응."
당신 또한 이 호의 속에 악의를 숨기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그 사실을 쓴 물이 나올 때까지 억지로 곱씹다 결국 시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30 진짜 개웃겨 미치겠다 댄스배틀 ㅋ ㅋ 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경진이 가죽바지 입을 것 같아;
멘탈........ 처음부터 멘탈이 없었더라면...? < 저기요
>>238 맑눈광 못 된다고 해도 아직 우리 루트 많으니까~ 점차 성장하거나 비틀려가도 혜성이만의 길이 있다면 극락입니다요...👍😚 맞아맞아 나도 카카페에서 봤는데 딱 보자마자 어... 혜성이랑 성장 썰 풀던거 사악 지나감... 어어어...? 혜성아 땋머해줘 < 여기까지 옴
정말로 개인적인 망상이긴 하지만, 저 그런 장면 생각해본 적 있어요. 이런 전개가 있다는 것은 아니고..그냥 망상속 이야기.
결국 높으신 분의 욕망이 하늘 끝까지 치솟고 퍼스트클래스들의 인격이나 의지를 모두 제거하고 정말로 기계처럼, 병기처럼 만드는데 성공하고, 아주 못된 짓을 꾸미고 그것을 막기 위해서 목화고 저지먼트 아이들이 처들어가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딱 길목을 의지를 잃어버린 병기가 되어버린 에어버스터 (은우가 아님. 에어버스터임)가 가로막아서는데...
3학년 동기조 애들이 자기들이 막아보이겠다고 하면서 다른 애들을 먼저 어떻게든 보내고 이제 3학년 동기조들이 에어버스터를 상대하는 식으로 해서 5:1 전투를 하게 되는 그런 거.
하지만 보통 이런 장면은 꼭 인연이 있는 이들이 막아서고 싸우게 되고 그런다구! (끌려감)
>>293 일단 담당관에게 찾아가서 사유를 이야기하면서 외출 신청을 하는데, 여기서 며칠 검토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정말로 내보내도 되는지에 대해서 또 이런저런 회의를 여러가지를 하는데 보통 여기서 다 탈락하고, 어떻게 운이 좋아서 허가가 떨어지면 이제 폭탄을 장착시킨 후에, 감시관 2명을 동행시켜서 내보낸답니다.
그리고 예정된 시간내로 복귀하면 폭탄을 풀어주고, 만약 복귀하지 않거나, 멋대로 폭탄을 어떻게 운 좋게 풀거나, 혹은 밖에서 쓸데없는 짓을 하면 터트리거나 감시관 2명이 제압하거나, 경우에 따라선 헌터가 출동해서 디스트로이어와 1:1로 마주치게 되겠네요.
>>0 불합격이란 딱지가 붙은 우리들, 도망친 우리는 쓸모없는 존재. 톱니가 나갔으니 기계에 한 부분, 도구조차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인첨공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커리큘럼의 그 고통으로 다시 돌아갈 용기조차 없다. 안정적인 미래를 꿈꾸지 못한다면, 시궁창에서라도 비굴하게라도 살아갈 수밖에 없다.
큰 쥐. 준비 다 됐어.
쇠 파이프를 들고, 진입 준비를 마친 아이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한다. 금은 묵주에 입 맞춘다. 이럴 수밖에 없는 우리를 용서해 주시길.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들에게 신호를 준다. 굳게 닫힌 철문을 바라볼 적에, 불꽃이 인다.
*
이번에 연구소 측에서 준비한 타겟은 단단해 보이고, 두께가 상당한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제 능력의 폭발이 어디까지 파괴할 수 있을지 테스트를 해볼 생각인듯했다. 얇은 철판이라면 충분히 파괴할 수 있겠지만. 지금 이 타겟은 무리가 있지 않을까. 잊지 못하는 과거를 자꾸 꿈으로 꾸니, 제대로 잠 못 이룬 상태라. 심호흡하며 피로를 이겨내려 한다. 매섭게 타겟을 노려보면 불꽃이 인다. 큰 소리가 지나가면, 조금 그을렸을 뿐 멀쩡한 타겟을 보고서 당연하다는 생각을 한다. 관자놀이로부터 지끈거리는 통증에 손을 들어 두드러진 핏줄을 꾹 누른다.
>>377 거 조심해 그러다 얼굴에 폰 떨군ㄷ (털석) 발돋움 하냐고 성운이... 젠장... 친칠라인줄 알았는데 여우였나...
1 커피 잘 마시는 편! 산미가 적은 걸 즐기는데 원두로 치면 콜롬비아산이 취향이라네 2 별도로 공부하지 않아도 학교 성적이 중상위로 여유로운 편 3 그거... 바늘자국이 그냥 링거 자국 같으면 별 말 안 하는데 이제 막 크고 흉터고 그러면 뭐냐고 물어볼 것 (나중에 캡틴한테 물어보고 된다면 자국이랑 흉 없애주려 할걸)
>>383 이이익 이이 요망한 서성운 같으니 (부들부들) 막 뽀뽀 남발하면 랜덤하게 찐뽀 갈겨버리는 수가 있어 어!
산미가 있으면 혀가 시큼해져서 싫대 근데 이래놓고 레몬이나 라임 같은건 잘 먹음 얘 뭐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혜우도 공부를 안 하는 건 아니니까 그냥 같이하자 하고 도서관 데이트 해버리자 점자... 저기 아버님 갑작스럽지만 상견ㄹ 아아니 삼자대면 좀 하시죠 뭐 일상에서 직접 보면 조금 더 다른 반응 나올 거같긴 해
>>385 으으음 나아가는 과정이로구나 그 앞길을 모옷된 암부놈들과 높으신 분들이 더럽히면 안 되는데 (으르르릉)
부실에서 장난 아닌 장난을 쳐버리고 귀가한 집은 내가 문을 여는 순간 들린 경첩 소리와 문 닫히는 소리를 빼면 아무 소리도, 인기척도 없는 공간이었다.
혼자 살기엔 너무 큰 20평형 빌라. 그 삭막한 공간에 실내 슬리퍼도 없이 들어가 가구의 천을 걷지도 않은 거실을 그대로 지나쳤다.
유일하게 사람 사는 느낌이 나는 큰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다. 저 바닥 어디론가 밀려가는 크로스백을 멀거니 바라보다 침대로 가서 스르륵 엎어졌다.
털석.
아직도 새 것 냄새가 풀풀 나는 깃이불이 내 몸을 받쳤다. 푹신하고 포근하지만 전혀 안락하지 않은 그 이불 위로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해가 저물고 달이 뜰 때까지.
...... ...부우우웅- 부우우웅-
몇 시간이 지나, 저 멀리 희미한 진동 소리에 눈을 뜨자 온 세상이 캄캄했다. 막 왔을 때는 그래도 붉은 노을빛나마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어두워져서, 그래, 딱 내가 원한 시간이었다.
비틀비틀 일어나 가방을 찾고 폰을 꺼냈다. 반짝이는 화면에 뜬 번호를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전화는 끊고 메세지 몇 통으로 연락을 대신했다. 중간에 다시 전화가 왔지만 무시했다. 읽지 않은 연락이 반짝이는 폰을 외면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하늘하늘 가벼운 여름 교복에서 무광의 뻣뻣한 소재로 만들어진 테크웨어로 머리는 망을 씌운 뒤 가발을 썼다. 그걸로도 모자라 큼직한 빵모자에 가발을 모아 넣고 썼다. 얼굴엔 검은 마스크를 허리엔 크기가 다른 나이프 두 자루를 신발까지 발에 익은 워커를 신고서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건물 입구를 벗어나기 무섭게 등골이 쭈뼛해졌다.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다는 감각이 선명했다.
마른 침, 조차 삼키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밝은 거리를 벗어났다. 시선은 따라오고 있었다. 환한 가로등과 몇몇 네온사인이 밝히는 번화가를 피해 어둠 속으로 파고들었다. 시선 역시 나와는 다른 루트로 내 뒤를 쫓았다.
3학구의 중심에서 점점 외곽으로, 바깥으로, 이윽고 스트레인지까지 시선 역시 나를 따라, 빛이 줄어들수록, 인적이 줄어들수록, 점점 가까워졌다.
한참을 미로와 같은 스트레인지를 이리저리 배회했다.
그러면서 더욱 깊고 깊으여 깊은 곳으로 시선을 유도했다. 아니, 어쩌면 내가 유도 당했을 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이 시간 가장 어두우며 깊다고 생각하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자 어둠 속에서 나이프 두 자루가 희게 반짝였다.
챙강!
"!!!"
소리 없이 달려들던 상대는 내가 막아낼 거라 예상하지 못 했는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고 있었다.
그래, 나도 내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지.
그 잠깐의 틈을 노려 달려들며 맞댄 나이프를 비스듬히 기울여, 쳐냄과 동시에 그 얼굴에 한 줄 그어주려 했다. 그러나 상대는 빠르게 뒤로 물러나 나를 살폈다.
나와 비슷한 체구, 가벼운 몸놀림, 같은 여자인 걸까.
그러던가 말던가 상관 없었다. 다음을 생각할 틈 따윈 주지 않고 달려들었다. 월의 가르침대로, 나이프를 너무 강하게 쥐지 않고, 눈에 띄는 빈틈을 전부 베어댔다.
그러나 나 역시 사정없이 베였다. 상대의 팔을 그으면 허벅지가 찔렸고 상대의 옆구리를 스치면 내 어깨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어디로 봐도 내가 압도적으로 불리했지만 그렇다고 물러나지 않았다.
물러나지 않고 상대를 밀고, 몰아붙이고, 끈질기게 달라붙은 끝에 내 나이프를 상대의 어깨에 찔러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의 나이프도 내게 꽂혔다. 내 손의 감각을 느낌과 동시에 목에서 뜨겁고 아찔한 감각이 느껴졌다.
"커헉!"
터져나오는 각혈을 참을 수 없어 내뱉었으나 그 피를 맞고 주춤한 상대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기까지 했다. 배려도 친절도 없이 더러운 골목 바닥에 상대를 깔아눕히고, 양 팔을 내 무릎으로 누르고, 그 위에서 나는 일갈했다. 쏟아지는 피와 함께-
"너, 그흑, 니놈들, 뭐 하는 놈들, 이야! 왜 나, 내가 아니, 커헉! 쿨럭... 내가 아니라, 희야를, 크흑..."
계속해서 흐르는 피 때문에 제대로 말을 못 하는게 그렇게 분할 수가. 그 분함을 무릎과 나이프 쥔 손에 힘으로 풀었으나 상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비명도 신음도 없이 나를 응시하다가 대뜸 그렇게 말했다.
내가 토악질을 해도 상대는 태연했다. 아니, 기계처럼 반응이 없었다. 단지 가만히 눈동자를 위로 향하고 멍한 표정을 잠깐, 저건 나도 아는 표정-
"커흑-!"
갑작스럽게 몸이 붕 뜨며 날아갔다. 뒤늦게 배에서 얼얼함이 느껴지니, 저 상대가 있는 힘껏 나를 걷어찼음을 깨달았다. 얼마나 세게 찼는지 막다른 골목 벽에 부딪혀 그대로 떨어진 후엔 머리부터 발끝까지 울리는 고통에 다시 일어설 수 없을 정도였다.
흐릿해진 시야로 상대가 일어나 걸어오는게 보였다. 이대로 끝나는 걸까. 그건 싫은데, 안 되는데, 이대로 끝나버리면, 내가, 이렇게 사라져버리면-
안 되는데.
정말 의식이 끊기기 직전이었다. 뇌를 쥐어짜 돌린 능력의 연산이 이어지는 순간 거짓말처럼 모든게 나았다. 목의 자상, 찔린 어깨, 벽에 부딪혀 망가진 모든 것들까지.
정말 일순간에 가벼워진 몸에 놀라 잠시 넋을 놓았더니 곧장 멱살이 잡혀 들어올려졌다. 나와 같은 체구에서 나오는 힘이라곤 상상하기 어려운 괴력에 당황과 혼란을 겪으며 어떻게든 벗어나려 발버둥 치려는 순간, 상대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나오는 목소리는 방금의 가녀린 소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런, 이런- 위기를 기회로, 라는 걸까. 아무래도 계수가 변동한 모양이야. 천혜우.]" "ㄴ...넌, 누구..." "[나? 하하. 너희, 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X까..." "[오, 깡도 좋지. 이런 상황에 참.]"
일방적인 대화 중에 갑자기 시야가 확 뒤틀렸다. 아까 내가 했던 것처럼 상대가 나를 바닥에 내던졌기에 강한 충격으로 잠시 숨 쉬기가 어려웠지만 이내 괜찮아졌다. 하지만 그걸 파악한 상태가 다시 달려들어 복부를 걷어차며 다리나 팔을 짓밟으며 말했다. 너무도 태연하게.
"[우리가 누구인가, 는 애석하게도 알려줄 생각이 없어. 아직은 말야. 그러나, 나는 아까 네가 뭐라고 하려 했는지 알 것 같더라. 왜 네가 아니라 안희야를, 2학구 데 마레의 학생을 습격했느냐, 그걸 물으려 했겠지?]"
친절하게도 거기서 멈추고 내 머리채를 잡아 들어올려준 덕에 회복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씨근거리기만 하는 나를 상대가 응시하며 웃었, 웃음소리를 냈다.
"[하하하! 나는 상확 파악 빠른 사람이 좋더라. 그래. 알려주지. 데 마레의 안희야를 습격한 건 우리가 아냐.]" "...뭐? 그, 럼 누가..." "[거기까진 조사하지 않아서 모르겠네. 다만 확실한 건, 안희야는, 며칠 전, 데 마레를 향한 테러에서 부상 당했어. 시시한 호버 택시 사고 따위가 아니라.]" "...그게, 무슨." "[믿기지 않는단 얼굴이군? 하지만 그게 사실이고 진실이야. 네 우려는 현실이었고, 너는 또 그들에게 속은 거라고. 천혜우.]"
털석.
머리채가 풀려 자유로워졌지만 나는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이루 말 할 수 없는 감정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회복해야 한다는 것도 잊고, 바닥에 널브러진 듯 앉은 나를 향해 잔인한 목소리가 고했다.
"[미련하고 불쌍한 천혜우. 그런 경험을 몇 번씩이나 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닥쳐..." "[하지만 사실 알고 있었지? 아, 예상은 하고 있었지? 네게 숨기는게 있다는 걸.]" "닥쳐..." "[너를 위한다면, 정녕 너를 생각해서라면, 다 말해줬어야 했는데, 말해주길 바랐는데,]" "그, 만..." "[하지만 그걸 네 입으로 말하지 못 하는 것도 참-]" "닥쳐!!!!!!!!!!!!!!!!!!!!!!!!!!!!!!!!!!!!!!!!!!!!!!!!!!!!!!!!!!!!!!!!!!!!!!!!!!!!!!!!" "[아하하하하하!!!]"
괴성을 지르며 다 낫지 않은 몸을 일으켜 상대에게 달려들었으나 발길질 한 번에 다시 뒤로 날아갔다. 벽에 부딪히고, 바닥에 떨어져 구르며, 몸보다 더한 무형의 고통에 몸부림쳤다.
"뭐가... 뭐가 나를 위하는 건데, 뭐가 나를 위해서야, 대체 뭐가..."
그런 내 곁으로 상대가 다가와 말했다.
"[그래. 세상 누구도 너를 알아주지 않고 네 바람 따위 들어주지 않아. 그래서 말인데, 천혜우, 우리와 함께 하는게 어때?]"
구겨진 얼굴을 들자, 환한 달빛을 뒤로 한 상대가 내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우정이니 의리니, 하물며 사랑이니 정 같은 걸로 치장한 관계가 얼마나 갈까. 그런 불안정한 것에 매달리지 말고 이 쪽으로 와. 철저하게 일과 돈으로만 엮인 이 바닥이야말로 네게 어울려.]" "철저하게..." "[그래. 철저하게, 오로지 너 만을 위해 살 수 있는 곳이야.]"
떨리는 푸른 눈동자가 상대를 응시했다. 내게 내민 손 역시 한참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올려 그 손 위에 올렸다. 상대가 떨리는 내 손을 잡고 일으켜 주는 순간,
푹-
"[...어라?]" "X 같은 소리, 그만, 하고 꺼져. 변태X끼야..."
일전 그들 중 하나가 내게 했던 것처럼 나이프를 그 배에 꽂아주었다. 그리고 그 위를 걷어차 뒤로 나자빠지게 하는 것, 까지가 내 최선이었다. 반동으로 같이 넘어져 숨을 몰아쉬는데 바닥에 누운 상대가 기분 나쁘게 웃었다.
"[프흐, 푸흐흐흐흐... 미련하면 멍청하다더니, 딱 그 짝이네. 뭐, 그래도 우리는 친절하니까, 생각할 시간을 주도록 하지.]" "미X 새X..." "[오, 그러지 말고, 잘 생각해보는게 좋아. 앞으로 누가, 몇 번을 더, 널 배신할 지, 모르는 일이잖아?]" "......" "[그 전까지는 계속 이렇게 봐야겠지만. 그럼 나는 여기까지. 복귀하렴. 피기.]"
뚝,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뒤 상대는 가뿐하게 일어나 어깨와 배에 꽂힌 나이프를 뽑더니 내 앞에 고이 놓아주고 떠났다. 그 전 상대가 그랬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렇게 사라졌다.
더러운 뒷골목에 남은 건 나 뿐이었다.
혼자 덩그러니 남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다가 문득 입술 새로 소리가 샜다. 허파에 바람이 들었다 빠지듯, 혹은 허탈한 듯...
"...흐흐, 흐, 하하, 하하하하하..."
만신창이가 된 몸에, 뼈 아픈 진실을 몇 개나 들었지만, 어쩐지 아프지도 않고 멍했다. 급기야 웃음까지 나서, 주저앉은 채 바닥을 짚고 웃었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그저 이 모든게 꿈이길 바라며...
타인의 눈으로 보는 스스로의 모습을 처음 접한 건 아니었지만 시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되는 과정을 생략하고 온전히 머릿속에서 상영되는 건 또 처음이라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이경이 보여준 과거의 파편은 유난히 인상적으로 재기록되었고 그건 그날 밤 꾸는 꿈에도 영향을 주게 됐다.
'와, 엄청 놀랐네! 리라야. 괜찮아?' '...안 괜찮아요! 이게 뭐야아아!" "놀랄 만 하지... 나도 무섭다. 너무 열심히 꾸미신 거 아닌 으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악!' '히이이익!'
학교 세트를 달리는 2인의 발자국 소리가 카메라에 담긴다. 뒤를 쫓는 스태프는 실감나게 공포스러운 분장을 하고 두 사람을 느릿하게 뒤쫓고 있다. 분장한 스태프에게 미션지를 받아야 하는 상황, 도망친 두 사람은 결국 다른 팀이 걸린 시간의 두 배를 더 투자하고서야 미션지를 받아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분위기만 조성하고 실제로는 안전하게 구성된 세트에서 비명과 웃음소리와 우는 소리와 허세를 곁들인 케미스트리를 뽑아냈던 건 어느새 나쁘지 않은 추억이 되었다. 얼마 뒤 최종 편집된 촬영분이 공식 계정에 업로드 되었을 때는 신들린 자막에 정신없이 웃으면서 볼 수도 있었으니까.
참 좋았던 시절이다. 친구이자 가족이자 동료인, 누구보다 가까웠던 우리의 기억은 들꽃 가득 피어난 꽃밭에 누워 숨을 들이켰을 때 느낀 것보다 더한 향기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다음날 리라는 이경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최이경 [이경 후배님~ 혹시 오늘 제 훈련 도와줄 수 있을까요?]
간단한 질문과 어쩌면 흔쾌했을 승낙. 리라는 이경이 도착하길 기다리며 스케치북을 펼쳤다.
그리고 이경이 약속된 장소에 도착했다면 얼굴 대신 과녁판을 달고 있는, 새의 몸을 한 무언가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저번에 같이 갔던 디저트 카페(물론, 쇼트케이크가 커피에 젖어 티라미수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썩 괜찮았다.)를 생각하며, 경사를 기념한다. 아지 얘가 센스 있는 선물을 고를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뭐 부모님이면 뭘 드려도 좋아하시겠지 라는 생각이 같이 든다.
그러고보니 주년 행사때 우리 엄마아빠도 오실텐데. 인첨공 구경... 뭐 시킬게 있나? 거의 8년동안 이제 3학구 근처는 다 돌아다닌거같은데... 왠만한 지역사람만큼 여기 주변 지리를 잘 알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래도 매년 한번밖에 못보니까 기분은 좋지만. 아 그러고보니 레벨 4 되고 나서 처음 보는건가?
가족 생각이 나 나도 모르게 포근한 미소가 지어진다.
그런 잡생각을 하는동안,아지는 내가 한 말을 듣고 뭔가 충격을 받은듯, 얼굴을 굳힌다.
"뭐어...능력은 어떻게 쓸지 잔머리를 굴리는게 좋으니까. 항상 다방면으로 알아보는게 좋아."
거의 굳다시피 한 표정으로 뭔가 곰곰~히 생각하는 아지를 보며 말을 덧붙인다. 하긴, 댄스 챌린지도 대단했지...뭔가 엄청난 기세로 춤을 추다가 거의 10분은 쓰러져있었으니까. 그땐 머리도 짧아서 쓰러져있을때 막 팔다리 가지고 장난도 치고 간지럼도 태우고 그랬는데.
"아, 이레 공예부였지?"
뭔가 희미...한 인상은 아니지만, 오히려 너무 우물쭈물해서 눈에 띄여버리는 한 소녀가 생각난다. 지켜줘야할것같은, 그런 소동물같은 녀석이니까... 이미지적으로는 꽤 잘맞는것같아.
"뭔가, 너 능력 쓸때랑 아닐때랑 갭이 좀 크니까, 현장이 아니라 일상에서 쓰면 조금 놀랄수도 있겠는데?"
당장 나만해도, 표정이 아예 없어진, 싱글벙글이 아닌 아지에 익숙해질 때 까진 조금 시간이 걸렸으니까.
"...그치 해야지."
갑자기 들어오는 아지의 견제에, 갑작스레 할 말이 없어진다. 여로나 이경이 말했다면 '응~ 그래도 너네보다 성적 좋쥬?'같은 말로 반박했을텐데, 아지가 하니까 왜인지 할 말이 없어져... 납득이 되는 톤과 어투야... 정론이구나.
"응, 대충 그런느낌? 중요한건, 그게 실제로 안된다고 해도 스스로 된다고 믿게 만드는거지."
한번 몸이 믿기 시작하면, 그대로 능력은 따라가니까. 무슨 사이비같은소리냐! 싶을 수 있지만, 실제로 이게 초능력 개발의 제 1이론인 퍼스널 리얼리티 이론의 기반이다.
"후우...좀 힘드네, 고마워."
천천히걸어가지만, 에초에 운동 부족인 몸이 거친 산행을 버티기엔 역부족이였다. 슬슬 발목이 조금씩 당겨오니까. 무리가 오는건가? 싶지만, 아직 기분좋은 통증에 가깝다.
...누군가한테 물을 대접받는건 오랜만이네, 그것도 아는사람한테. 나쁘진 않은걸?
그렇게 생각하며 텀블러에 담긴 물을 능력으로 한방울 꺼내, 마치 우주비행사가 물을 마실때 처럼 공중에 띄워 한입에 들이킨다.
물론, 그러고 나서 아지 몰래 물을 다시 능력으로 채워넣었지만. 아지가 눈치 채려나? 배려를 무시하고싶지 않지만, 물을 함부로 쓰는것도 나쁘니까.
"고마워, 그런데 이날씨에 보온병...?"
텀블러의 뚜껑을 닫고, 아지의 백팩 안에 조심스레 넣으면서 가방 안을 확인한다, 정말 말 그대로 꽤나 큰 용량의 보온병과 이것저것 주전부리들이 들어있다. 어두워서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조금은 부끄럽지만, 휴가철에 술김에 내뱉은 말들을 생각한다. 얼굴이 화끈해 지는것같지만, 뭐어...어쩔 수 없지. 그래도 그것덕분에, 싫진 않다는걸 알았으니까, 앞으로 조금씩. 조금씩 친해지면 되는거겠지.
...근데 뭔가 갑자기 기분이 나쁜데? 등 뒤로 휙 돌아보며 혜우를 올려다본다.
흐으음....
"너 뭔가 이상한 생각 하지 않았어...?"
...뭐 딱히 의미가 안담긴 휘발적인 말이지만말야, 그치만. 뭔가 찝찝한기분이 살짝 들었어서, 갑자기. 미안 혜우야. 다시 뒤를 돌고
그렇게 말하며 커리큘럼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따로 소속 연구소가 있구나, 하긴. 능력이 특이하다보니까. R&D같은것도 많이 들어올것같네."
특히 화장이나 안티에이징쪽은 엄청, 엄청나게 돈이 된다고들 하니까.
"나도, 레벨 4되고 나선 컨택이 조금씩은 오는데 솔직히 학교에서 이것저것 요구하는것도 많고. 나름 학교 커리큘럼도 되게 좋은편이니까. 그냥 학교에서 하는편이거든. 그래서 사설 연구소 소속은 좀 신기하더라, 그러고 보니까 희야선배도 사설 연구소 출신이라고 했던것같은데? 아무튼, 너랑 희야선배 둘밖에 없지 않아? 저지먼트에서도."
하이드로 키네시스 담당 개발연구소에서 한번도 본적 없으니까. 들리는 소문에선 10대 연구소 소속이라는데, 참 부럽다~싶기도 하지만. 나같은 사람이 가기엔 조금 부담스러운. 어떻게 보면 주제넘은 연구소니까. 대단하다 싶을 뿐이야.
"아, 나왔어?! 나 자취방 잡기 직전까지만 해도 기숙사 살았었잖아! 나름 복도에서 볼때마다 인사했었는데!"
약간 의외네, 굳이 자취같은거 안찾아 볼것같은, 나름 주어진대로 살거같은 이미지였는데. 하긴 자취가 좋긴하지, 개인공간도 보장되고. 그런데 아무한테도 안알린건가? 아지나 이런애들이 말해줄법도 한데말야...
"아무튼, 그럼 집들이같은건 하나? 나중에 할 생각 있으면 불러, 맛있는거 싸들고 갈게!"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건 버스킹 관련 화제. 으으으...솔직히 들킬줄 몰랐는데. 약간 당황스럽다.
"뭐어... 딱히 숨기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는사람이 보는건 약간 부끄럽다고 해야하나... 선곡도 되게 내가 좋아하는 노래만 부르니까... 그래서 일부러 학교에서도 꽤 먼곳에서 했는데!"
오며가며 목화고 학생은 못본것같았는데...솔직히 복병이야. 아까 전 술김의 기억과 맞물려 수치심 게이지가 폭발 직전까지 올라온다. ...아니야. 진정하자 진정하. 차라리 혜우가 봐서 다행이야. 혼자 버스킹하는걸 이경이나 여로나 아지나 은우선배나 동월선배나 애린이가 봤으면...
퇴부 퇴학하고 자살했다 진짜.
"후우... 거기까지 가는 사람이 없을줄알았지. 아는사람만 아니면 딱히 부끄럽지도 않고. 그리고 그정도로 해서 숨기고 싶은 것도 아니니까. 그냥... 마음의 준비 문제려나?"
약간 만족스러운듯 미소를 살짝 짓는 혜우에게 볼멘소리를 한다. 어쩌다가 거기까지 간거람...저번에 반 애들한테 내 X튜브 채널 들킬뻔할때, 그리고 남이 찍은 내 영상이 알고리즘을 타서 인스X 동영상으로 내 피드에 다시 왔을때 이후의 최고 위기였어.
...그러고보니까, 안들킨게 용하네. 사실 다 아는데 모르는척 해주는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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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덕곡이나 귀여운 노래(고양이소리를 내봐 같은것)도 솔로버스킹엔 종종 부릅니다만, 목화고 애들한테 보여주는 연주 버스킹은 전부 완전 멋진 팝송, 혹은 한국 발라드 같은 노래라 들키는거에 대한 약간 반응차이가 있습니다!
6월이니까 어쩔 수 없나... 근데 미묘하게 찝찝한건 싫단말야. 잠깐. 지금 나라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당장 해보자...!
먼저, 찾는건, 노후화된 아파트, 옛날 아파트를 찾는다. 그러면, 하나씩 있거든. 대포...! 아니 굴뚝이...!
천천히 능력을 이용해 굴뚝 위로걸어 올라가자, 나름 높은...이 아니라 꽤 높은 위치다. 약간 무서운걸. 하지만, 이정도는 되어야지 제대로 공기를 쏠 수 있겠지.
아파트 단지내의 모든 물을, 오면서 천천히 뭉쳐뒀다. 먼저 이 물을 벽 안쪽에 얇게 펴발라 벽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세심하게 강화 해 준 뒤, 물덩어리를 굴뚝 안으로 집어넣고, 굴뚝 바닥에 지하와 연결된부분에 약 1미터정도의 두터운 물 벽을 씌운다. 밑에는 아마 배관같은게 있을테니까. 새심하게 관리해야지.
그리고 굴뚝 안으로, 준비해둔 물폭탄을 집어넣는다. 할건 간단. 내부의 물을 전부 입자형태로, 수증기로 만든다. 그 동시에 외벽에는 물의 막으로 강하게 안쪽을 압박해, 증발한 수증기의 압력이 높아지게 한다. 기압이 1기압, 2기압...3기압...솔직히 감이라서 얼마나 걸릴진 모르지만, 그리고 최대한 압축한 공기가 10cm의 두께의 물공을 빠져나가려고 할때. 바깥쪽 물까지 전부 증발시킨다.
벤치를 무의미하게 두드리던 혜성은 작게 중얼거리며 두드리고 있는 손가락을 멈췄다. 맞는 말이다. 최근까지 있던 일은 자신에게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좋은 기억이 아니라고 후배의 말대로 생각 안하고 넘어가도 좋은걸까. 그렇게 하면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고 있는 것도 정리될까.
그리고 정말로 이걸로 끝인걸까. 영화에선 이렇게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더 큰 위협이 닥치기 마련이라서 혜성은 후배의 말에 쉽게 동의를 구하기 힘들었다.
"-..응. 생각하지 않는 게 맞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힘이 들어간 자신의 손을 바라보자마자 후배에게 보여지지 않도록 힘을 얼른 빼고 눈을 하늘로 향한다. 생각하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건 알고 있었지만 자신을 생각해서 말해준 후배에게 솔직히 말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혜성은 최대한 부드러운 대답을 골랐다.
소년의 부탁도 들어주었으니, 소년도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맞았다. 무엇보다 그가 먼저 언제든 말해 달라던 것이었고.
하얀 소년이 흔쾌히 수락하고 도착한 약속 장소에서, 소년은 저절로 고개가 들어 올려졌다. 하늘을 빙빙 돌아다니는 새와 유사한 비행체는 사람의 흥미를 끌어내기 적합했기 때문이다. 얼굴에 과녁이 달려 있어서,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소년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언제나와 같이 어깨에 매고 있던 양궁 가방에서 활을 꺼내며 리라에게 방긋 웃어주었다.
"재밌어 보이네요! 리라 선배 아이디어 좋다~"
몇 마리의 과녁새. 소년은 일단, 종이 비행기를 접은 뒤 과녁새들이 날아다니는 하늘을 향해 날려 보냈다. 아무래도 높이 날지는 못했으나, 종이 비행기의 궤도를 하얀 눈에 명확히 담은 소년은 이후 큰 망설임 없이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블랙 크로우전 이후, 대회 상금과 모아둔 알바비 등등을 쏟아부어 새로 만든 활이 팽팽하게 당겨졌다가...
파각!
과녁새의 과녁을 박살 냈다.
"활로 새를 잡는 게 처음이라서 뭔가 두근거리기도 하고?"
파각! 파각! 유동적인 움직임이 신경 쓰이기는 하나 큰 문제는 아니었다. 새의 몸뚱아리도 아니고 과녁을 명중 시켜 떨구며 소년의 얼굴은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옛날 사냥꾼이 이랬을까요?"
아 그래도 중앙 맞추는 건 어렵네요~ 태연하게, 생글생글 곤란함도 없는 얼굴로. 마지막 한 마리의 과녁새를 떨구면서 소년은 손가락을 펼쳐 브이!를 그렸다.
>>0 “셔츠가 주름졌네요. 라는 이야기를 들었어.” “첫 직장에 취업하기 직전에 갔던 면접에서 들은거라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초로의 남자는 옥상의 난간에 기대어 도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그들의 위는 조금 투명해보이는 막이 쳐져 건물 밖으로 빗물을 흘려내고 있었다. 한숨이 섞인 말투로 자기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인상의 소녀를 향해 한탄하는 탓인지 듣는 입장인 소녀는 다소 굳어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때는 너무 긴장한 탓에 잠도 못 자고 그래서 다림질도 대충 하고 급하게 넥타이도 하고 집을 나서서 면접장으로 갔지.” “다행히 어느정도 여유있게 도착하긴 했는데 괜히 꼰대 같은 면접관을 만나버려서 그날 면접은 완전히 조졌지.”
“그렇게 주름이 심했어요?”
“글쎄. 아마도? 그냥 그 주름 얘기를 들은 이후로는 머리가 하얗게 변해버려서 면접 중의 일은 기억이 안 나거든. 급하게 뛰어간 탓에 다림질 한 곳이 풀린 걸지도 모르고, 어쩌면 나도 모르게 긴장해서 소매 근처를 쥐고 있던걸지도.”
남자의 말에 현서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봐왔던 이 남자는 빈틈없는 타입은 아니니까. 애초에 이렇게 실험체취급을 받고있는 보통 학생에게 자기 신세를 한탄할 정도니까. 사내 정치에서 밀려서 이런 변두리 연구소까지 밀려왔으니. 실력을 생각한다면 조만간 다시 돌아갈지도 모르는 남자였다.
“혹시 그 면접관이 쓸데없이 주름에 신경질적인 사람이었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러네. 그냥 그랬던 걸지도 모르겠어.” “아무튼 그 이후론 나도 조금 신경질 적이 되어버려서 셔츠에 주름이 생기지 않게 연구소의 내 책상에도 소형 스팀다리미도 구비해뒀고 매번 2시간 간격으로 와이셔츠를 갈아입게 되버렸지.”
“어쩐지 연구소에서 생활감이 느껴진다 싶었는데…”
“월세도 안 나가고 좋지.”
“솔직히 조금 추해보였어요.”
남자는 짜증난다는 듯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냈다. 인첨공의 바깥에서는 판매하지 않는 상당히 독한 냄새가 특징이었지만 남자도 소녀도 그런 것은 이제와서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싸구려 플라스틱 라이터는 가스를 다해 헛도는 것을 보고 소녀는 손가락을 들었다.
>>0 이전의 계획대로였다면 그녀에게 주어지는 훈련은 단순한 스케줄의 반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식구가 한명 더 늘었으니 변화가 조금씩 생겼고, 능력분류에 구애받지 않는 훈련들은 종종 함께하기도 했다. 가령 지금처럼 서로 대치하는 대련에 가까운 상황도 그런 훈련들 중 하나였을까?
[근데... 솔직히 이해는 가지만 불공평하다고도 느끼거든?] "어떤게 말임까?" [저번에 있었던 일들을 들어보자니... 스킬아웃들은 살상무기까지도 들고 다니는데 저지먼트는 기껏해야 진압용이나 비살상무기들만 들고다녀야 한다는거 말이거든. 능력이 받쳐준다면 별 문제는 없겠지만... 분명 저지먼트는 레벨 상관 없이 자격만 된다면 받는 편이라 들었거든?] "머, 의외루 그쪽 스킬아웃들이 예외일 수도 있겠지만여." [신체강화라던가, 별도의 방어 가능한 능력이 아닌 이상 우리도 총같은거 잘못 맞으면 골로 갈수도 있으니깐 권총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한 무장일텐데... 그것보다 더 엄청난 총들이 돌아다녀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거든.] "인첨공이라구 총이 없으란 법은 없잖슴까? 지키기 위해서든, 뺏기 위해서든... 머라두 딸랑딸랑 가지구 다녀야겠져." [그렇게 생각하니 또 납득이 가는거 같거든...]
적당히 거리를 벌리며 날아드는 다트를 막거나 튕겨내기도 하고, 도로 던지는 풍경은 일반적으로 보기엔 위협적인 상황이겠지만 이미 납탄이 빗발치는 곳을 여러번 경험한 둘에겐 그보단 비교적 안전하다는 것은 웃지 못할 해프닝일 것이다. 특히 그녀의 경우엔 아무리 스킬아웃이었고, 지금은 저지먼트라고 해도 그래봤자 이제 겨우 고등학생일 뿐인데, 그런 상황에 익숙해졌다는 자체가 블랙코미디에 가까울테니까.
"만약에 우리가 평범한 학생이었다믄 조금은 살만했을까여?" [난 지금도 평범한 학생이거든?] "......" [꺄악! 방금 위험했거든!! 완전 롱기누스 각도였거든!!] "옆구리에서 와인이라두 나와보라구 한거였슴다." [내가 아무리 과일같이 생겼대두 그건 좀 아니거든?! 종 자체가 틀리거든?! ...아무튼, 글쎄...? 오히려 이런 상황이 오면 대응을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 "호요?" [예를 들자면... 난 애초에 특기가 특기다보니 지금 상황이랑 별 다를게 없을 거구, 그건 너도 마찬가지거든. 게다가 사건사고에 휘말린다는 것 자체가 딱히 누굴 특정하고 일어나는건 생각보다 많지 않거든,] "아... 그러구보니 그렇네여." [웃픈이야기란건 알지만... 그런 위기상황에 대처할수 있다는건 나쁘지 않거든. 애초에 그런 일을 겪지 않는단 선택지가 더 낫겠지만...] "머, 사고란게 준비된 사람한테만 일어나겠슴까?" [그런거거든~ ...꺄악! 이번엔 반대쪽이거든!!] "까비아깝숑..."
아깝다는듯 눈을 굴리며 혀를 차는 그녀와 거반 울상인 표정으로 그런 그녀를 노려보는 여학생, 그리고,,,
그 날은 마침내 밀린 야근이 다 끝난 날이었다. 휴가를 간 것은 좋았으나 일거리가 쌓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마도 부장과 부부장에게는 한동안 일거리가 쌓여있었을 것이다. 한양은 모르겠으나 은우는 요 며칠간 새벽까지 계속해서 일했다. 그러다가 부실에서 자기도 하고, 혹은 늦게나마 집에 들어가기도 하고... 물론 어디까지나 금요일과 주말 한정이었다. 평일엔 수업을 들어야했으니 밤을 샐 순 없었으니까. 어쨌든 마침내 밀린 일을 다 마치며 은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끝났다!!"
지금 이 순간, 그의 눈동자에는 기쁨의 눈물이 주륵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아. 드디어 다 끝났어. 이제 다 끝났어. 난 이제 자유야. 도비...아니, 은우는 자유예요! 라고 이런저런 말을 외치는 것도 모두 지금 부실에는 아무도 없고, 한양만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핫. 부부장. 설마 아직도 일을 다 못 마친 것은 아니겠지? 부장은 이미 일을 다 끝내고 이제 쉴건데?"
그 말은 명백히 놀리기 위한 목적이 가득한 느낌이었다. 한양이는 어제 자유가 돼? 응? 응?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상당히 얄밉기 그지 없지 않았을까. 물론 한양에게 카운터를 먹을지도 모르나,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은우는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Q.혜성이에겐 왜 저런 텐션을 안 보여줬나요? A.애가 너무 힘들어해서 까불지 말라고 정강이 맞을 것 같아서요.
후덥지근한 공기는 일상적으로 풍기는 냄새조차 끈적거리고 불쾌하게 느껴지도록 만든다. 평화롭고 깔끔하게 정리된 공간에서도 그런데 하물며 너저분한 뒷골목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스트레인지 골목 어딘가, 마스크를 쓰고 후드를 뒤집어 쓴 남자는 바짓단에 묻은 검붉은 자국을 보며 혀를 쯧 하고 찼다. 얼굴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에 늘어진 스킬아웃 하나, 안색이 보랏빛으로 물들어 게거품을 물고 쓰러진 스킬아웃 하나. 그리고 얼굴이 부어오른 채 주저앉아서 터진 입술의 피를 문질러 닦고 있는 더 작은 체구의 스킬아웃 하나.
남자는 게거품을 문 사람의 손이 경련하는 것을 멈추자 그 손을 붙잡았다. 잠시 후, 의식 잃은 자의 죽어가던 얼굴색과 흐려져가던 호흡이 조금씩 원래대로 돌아오자 그는 곧바로 주머니에서 소독용 물티슈를 꺼내 손을 닦고 아스팔트에 누운 머리를 발로 툭 차서 모로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옆에서 부러진 코를 붙잡은 채 웅크려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는 자의 손등을 짓이겼다. 목이 막혀 비명도 나오지 않는 스킬아웃의 움찔거리는 동작이 잘 죽지 않는 벌레를 밟은 것처럼 불쾌하기 짝이 없어 밟은 발에 힘을 주면 우두둑. 하는 소리가 난다. 고통에 고통이 거듭되자 겨우 붙잡고 있던 의식도 기어이 떠나간 모양이다. 비로소 고요해진 골목에서 마지막으로 남자의 시선이 향한 곳은 작은 체구의 스킬아웃이었다.
"괜찮아?" '......당신 누구야? 방금 다 봤어. 왜 이런 데까지 들어와서 이래?' "두명이 하나 죽일 듯 패고 있는 걸 보고 지나칠 만큼 못돼먹진 않아서." '아니, 초능력자가 왜 스트레인지에 있냐고. 보아하니 스킬아웃도 아닌 거 같은데 그렇다고—'
안티스킬이나 저지먼트 같은 분위기도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려는 순간 눈이 마주쳤고, 그 순간 작은 스킬아웃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다시금 조용해진 공기를 만끽하다가 그림자에 가려진 얼굴을 찌푸린다. 빌어먹을 악취, 더러운 피 냄새. 빨리 여기를 벗어나고 싶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꼬르륵, 하는 소리가 침묵을 깼다.
"...배고프니?" '.......x발... 신경 꺼!'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작은 스킬아웃은 바닥을 구르는 비닐봉투를 들어올려 내용물을 확인한다. 재수 없게도, 조금 전 맞고 구른 탓에 음식들이 여기저기로 굴러간 데다가 뭉개지기까지 해서 성한 게 단 하나도 남지 않았다. 작게 욕설을 중얼거리며 머리를 쓸어올리는 스킬아웃을 바라보던 남자의 눈이 곧 신발 자국 찍힌 비닐봉투로 옮겨간다. 지나치게 많은 양의 음식. 혼자 먹을 건 아닌 것 같고. 뭉개진 음식들로 더럽혀진 바닥에 떨어진 시선이 유일하게 멀쩡한 크림빵 봉지에 꽂혔다. 그리고 그건 스킬아웃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손이 뻗어오는 것보다 남자의 발이 음식을 뭉개버리는 게 더 빨랐다.
'야! 뭐 하는 거야!' "땅에 떨어진 거 주워 먹는 거 아니다." '허! 참 나, 더럽게 배부른 충고 잘 들었습니다. 야. 무슨 참견인데? 네가 사 줄 거야?' "그렇다면?"
포장도 뜯지 않은 무선 이어폰 하나가 작은 스킬아웃의 눈 앞에 떨어졌다. 그 다음은 지폐 한 장, 두 장... 다섯 장. 경계심 가득한 눈이 새까만 남자를 노려본다.
'무슨 꿍꿍이야?' "바닥에 떨어진 걸 주워먹을 정도로 궁하면서 그런 게 중요해?" '동정하는 거야?' "그렇다면 안 받을 건가?"
높은 체고가 한순간 낮아져 눈을 마주친다. 후드 그림자에 가려진 얼굴은 식별할 수 없지만, 작은 스킬아웃은 한순간 불길한 검은색을 띈 뱀 같은 눈동자를 본 것만 같았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던데." '......원하는 게 뭐야?'
작은 스킬아웃은 깨달았다. 이건 우월감을 느끼기 위한 값싼 동정이나 싸구려 적선이 아니다. 이건 거래다. 그걸 깨달은 순간, 마스크 너머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박호수는 불 꺼진 방에 드러누워 휴대폰을 두드린다. 갤러리의 숨겨진 폴더를 열면 같은 얼굴을 한 여자아이의 얼굴이 수십개 수백개씩 저장되어 있다. 편안한 미소를 지은 그는 뒤로가기를 누른 다음 폴더 전체를 선택한다.
[이 폴더를 삭제하시겠습니까?] [네]
[휴지통을 비우시겠습니까? 휴지통의 파일은 30일 후 자동 삭제되며, 삭제 이후에는 복원이 불가능합니다.] [네]
아.아.아. 이런..젠장... 졸업하는 해에 부부장이라니.. 말년에도 업무를 하고 있다니!! 며칠 동안 운동도 못 했다니!!!!! 이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야. 성적이 떨어진 건 안 힘들어도, 계속 밤새면서 일하는 건 최악이라고! 봐봐.. 점점 늙어지는 내 피부..(멀쩡함) 주말에도 부장하고 같이 등교해서 일하는 심정을 너네들이 알아?!
"뭐요?!"
심영톤으로 외쳤다. 은우의 끝났다는 외침이 들리자, 벌떡 일어나면서 진짜로 끝냈는지 본다. 젠장..나보다 먼저 끝냈군. 마음 같아서는 염동력으로 은우의 파일들을 전부 삭제해버려서 리셋시키고 싶지만..아마 백업을 했을 거야. 저저저 깐족거리는 것 좀 봐봐.
"나도..나도 곧 끝나간다..나도 너처럼 일을 마치고 끝낼 거라고! 서한양 is fxxxin freedom!!"
사실 한양도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당연히 은우처럼 비슷한 패턴으로 등교해서 계속해서 일을 했으니깐. 다만 은우보다 속도가 조금 느렸을 뿐. 내년에는 사무직 부원 더 뽑아야 돼. 절대 짬때릴 부원을 찾는다는 의도가 아니야.
"하하! 나도 끝냈다! 잠시만..잠시만.."
갑자기 꺼져버린 노트북. 배터리가 방전됐다.
"크아아아아악-!!!!!!!"
노트북 앞에서 무릎 꿇은 채로 포효하는 서한양. 그러게 충전하면서 하지 그랬어. 근데 뭐 한양이 할 법한 실수인지라..
나구나! 체육관도 있고 운동장도 있을걸? 학교 꽤 큰 걸로 안다! 커리큘럼실이 체육관처럼 쓰일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러면 체육관에서 할까! 셔틀런 같은 거 할 수도 있고... 평행봉 같은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상황은 같이 훈련하는 걸로 일정이 잡혀서 체육관 일부를 쓰는 걸로 어때?
>>773 아니 수경주 자꾸 이런거 올려주면 세계제일예술가 밖에 못 돼(?) 링크 열다가 아름다워서 심장 떨어질 뻔 했네 아 너무 예뻐 최고야... 늘 색깔 예쁘게 올려줘서 좋다 눈이 즐거워 헤헤 헤헤헤헤 헤헤 고마운거야 복복~~ 근데ㅋㅋㅋㅋㅋ 네컷 마지막 저건 어떻게 하다가 실수한거야 소품 만지다가 소품만 찍혔나?
“저는─ 꽤 많은 시간을 그렇게 보냈거든요. 제 욕심 때문에 많은 것이 잘못됐던 적이 있으니까요. 다 내 잘못이야. 내가 다 망쳤어. 나는 이래도 싸. 나는 아무것도 못할 거야, 나 하나 발버둥쳐 봐야 뭐가 바뀌겠어··· 정말로, 질릴 정도로요······.”
이 소년이 생애에서 얼마나 많은 실패를 겪어봤는지 명확히 말할 수 있지는 않다. 그러나 비율로 따지면, 은우보다 더 많은 실패를 겪어봤을 것이다. 은우는 어떻게든 없는 시간까지 쥐어짜가며 커리큘럼에 전력투구한 끝에 결국 인첨공에서 가장 강한 일곱 명 안에 들어가지 않았는가. 이 소년의 절박함이 은우의 그것보다 열등했는가? 그것을 정확히 따질 수는 없을 것이다. 따질 필요도 없다. 누가 더 힘들었느냐 같은 것을 따지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그러나 이 소년이 은우만큼 견뎌낼 수 없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모든 것에 실패하고, 절망 속에 버려져 있었으니.
“제가 굳이 각오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그것 때문이에요.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려면 그게 필요했으니까, 전 거기에 익숙해져 있었거든요··· 내 잘못을 만회하고 싶어. 되돌리진 못하더라도 고치고 싶어. 다시 시작하고 싶어. 나를 되찾고 싶어, 무언가 해내고 싶어, 무언가 바꾸고 싶어······ 도망치기 싫어.”
그리고, 원래라면 시선을 비실비실 피하면서 다른 아이들을 피해다니며 괴롭힘당하는 약소자의 삶을 살고 있었어야 할 소년은 저지먼트 부원 중 한 명이 되어 지금 은우의 앞에 서 있다.
“부장님께서는 제 각오가 독선이 될 것을 염려해주셨고, 앞으로는 주의하겠지만··· 제가 어째서 각오라는 말을 썼는지 여쭈어보셨으니, 이게 제가 왜 하고 많은 다른 말들 중에 각오라는 말을 썼는가에 대한 이유에요.”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앞에 놓인 것들에서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완장을 받아들였고, 그때 완장을 내려놓았으며, 저지먼트를 떠나지 않고, 계속 저지먼트로 남아있고자 한다. 그것은 「해내야만 한다」는 마음은 맞았으나, 사명감이니, 의무감이니 하는 것이 아니었다. 좀더 정확히는 「해내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자신의 삶을 되찾고자 하는 열망. 그러나 은우의 지적은 합당한 것이었다. 굳은 의지는 자칫 독선이 될 우려가 있었고, 열망 역시도 그 중 하나였다. 너무 많은 것들을 「열망의 대상」의 범주에 포함시키게 될 수도 있으니까.
“한 명의 저지먼트로서 내 의지를 관철하고 싶다고. 더 이상 겁쟁이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더 이상 그럴 수밖에 없지, 하고 씹어삼키며 살고 싶지 않다고. 그래서, 그것은 의무감이 아님에도 각오였어요. 이제서야 말씀드릴게요. 저는 그런 생각으로 그때 완장을 내려놓았어요. 그러니까, 부장님이 말씀하신 그 악이라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부장님께서 무엇을 걱정해주셨는지는 알고, 저도 부장님께서 해주신 조언을 잊지 않을 거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각오를 조금 고칠 수는 있어도, 버리지는 않을 거에요. 그게 저를 적어도 여기까지는 오게 해줬고─ 저는 앞으로 더 나아가고 싶으니까요. 적어도, 더 이상 그런 시시콜콜한 데에까지 일일이 각오를 할 필요가 없을 때까지요.”
>>773 오ㅋㅋㅋㅋㅋㅋㅋㅋ 뭐야!! 색감 좋다! ㅋㅋㅋㅋ혼자서 뭔가 만지작대다가 이리 된걸까 아니면 스티커 넣는다든가 하다가 잘못 넣었나? 그래서 결국 따로 찍은거까지 완벽한데ㅋㅋㅋㅋㅋㅋ 나머지 셋이 다시 찍으라고 닦달했을 것 같은 느낌이 있는걸... 게다가 옷을 갈아입어야 탈출 가능한 괴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쁜 그림 고마워!
뭔가 엄청나게 분발하더니 갑자기 절망하는 한양을 바라보며 은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러니까 지금 꺼져서 절망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가만히 바라보다가 바로 충전기를 꽂아서 충전을 시키려고 했다. 노트북의 특성상 바로 저렇게 꺼진다고 해서 다 날아가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요즘 문서파일 등은 일정시간마다 자동 백업이 되기 마련. 그러니까 바로 이렇게 꽂으면 해결될 일이라고 일단 은우는 판단했다.
"오버하지 않아도 돼. 이렇게 바로 충전하면 날아가진 않을테니까. 노트북의 장점이 그런 거잖아. 뭐... 운이 나쁘면 다 날아갔겠지만 말이야."
그러니까 안심해. 그렇게 피식 웃으면서 은우는 한양의 어깨를 조용히 토닥였다. 키득키득 웃는 것은 덤이었다. 그리고 그는 바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는지, 근처에 있는 안마 의자에 간 후에, 사용기록서에 자신의 이름을 실었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제대로 안마를 받아보겠다는 듯이 전원을 켰고 안마를 받았다. 아. 내가 산 거지만 너무 좋아.
"어차피 전원이 켜질 정도로 충전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잖아. 우리 잡담이라도 하자. 그러고 보니 너... 15주년에는 갈거야? 퍼레이드...꽤 화려하게 준비한다고 하던데."
이건 그냥 개인적인 호기심이었다. 물론 저 부부장은 그런 거 볼 시간에 운동을 하거나 집에서 뒹굴거릴 것 같은 이미지가 있었지만 혹시 모르는 것 아니겠는가. 재밌는 답이 나오길 바라면서 그는 한양을 바라보면서 으어...좋다. 라는 소리를 하면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오늘의 커리큘럼은 신체 단련이다. 평소처럼 숨이 찰 때까지 뛰고, 다음 날 아플 정도로 근육을 쓰는 그런 것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랑은 이런 훈련을 싫어하지 않았다. 어쨌든 강해지는 게 목적이고 그러기 위해선 충분한 휴식이 동반되어야 하는데 이 커리큘럼에는 충분한 휴식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인도적인, 초능력을 발달시키는 게 아니라 단순히 건강을 관리하는 류의 계획은 좋다, 적당히 몸에 열이 오르고 심장 박동 수가 올라가면 건강해지는 느낌도 들고.
"어디로 가라고?"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른 모양이다. 평소대로라면 이 커리큘럼실에 준비된 기구를 가지고 단련을 했을 텐데, 오늘은 장소가 바뀌었다고 한다. 바뀐 장소는 체육관, 체육관이라곤 해도 꽤 큰 데다가 동시에 여럿이 나눠 쓰더라도 문제가 없을 정도니 이상하진 않다. 그보다 궁금한 건 어째서 갑자기 장소가 바뀌었냐는 것이기에, 랑은 연구원에게 이유를 물었다.
"항상 혼자 했잖아? 가끔은 다른 사람이랑 같이 훈련하는 것도 좋을 거 같아서." "그 말은 이미 상대가 정해졌다는 이야긴가?"
"응 맞아. 게다가 너 저지먼트 활동 중이라며, 그러면 협력은 필수지. 이런 걸로 평소에 합도 맞춰보고 하는 거야." "저지먼트 부원이로군."
연구원은 고갤 끄덕이며 랑에게 락커 키를 쥐어주었다.
"이게 네가 오늘 쓸 락커야, 금방 따라갈테니까 환복하고 기다리고 있어." "알겠다."
저지먼트 부원이 함께 훈련을 한다, 누굴까 하는 궁금증을 뒤로 하고 랑은 키를 손에 쥐고, 갈아입을 옷이 담긴 가방을 맨 채 체육관으로 향했다. 체육관 입구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이미 준비를 마치고 실내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나랑 불행 배틀 뜨고 싶은 거 아니면, 다시는 내 앞에서, 다 네 탓이니 뭐니, 그런 말 하지 마. 네 욕심이 뭔진 모르겠고 묻지도 않을 거지만 그런 것은 대체로 자기가 비하할 때 많이 쓰는 표현이더라. 네가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면, 절대로 너의 책임은 없어. 어린아이에게 그 따위 책임을 묻게 한 어른의 잘못이지."
눈앞에서 들려오는 말에 대해서 은우는 딱 잘라서 이야기했다. 눈앞의 애가 어떤 인생을 살았고, 어떤 불행한 일을 겪었는지는 알지 못했고 솔직히 말하자면 알 생각도 없었다. 남의 힘든 과거를 들어서 뭘 하겠는가. 지금 자신들이 살아가는 것은 지금 바로 현실이고, 과거를 굳이 알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무엇보다 그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몰라도 이 아이가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면, 그건 절대로 이 아이의 잘못이 아니었다. 이 아이를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이가 잘못이고, 죄의 근원이었다. 그래봐야 고등학교 2학년. 그 이전의 일이라면 최소 초등학교나 그 이하일 가능성도 있었다. 중학생일 수도 있겠지만 어찌되었건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닌한, 그게 왜 이 아이의 잘못이겠는가. 은우는 적어도 그에 대한 의견은 확고하게 고수했다.
"멋진 후배구나. 그래. 네 생각은 잘 들었어. 하지만 그 '각오'라는 것에 잡아먹히진 마. 네가 말한 그 '각오'야말로 어떻게 보면 가장 위험하니까. 혼자일땐 무엇보다 강하게 해주고 든든한 마음일지도 모르나 누군가가 옆에 있다면 그건, 절대적으로 모든 것을 파괴시켜버릴지도 모르는 것이거든. ...뭐, 덕분에 난 겁쟁이가 되었지만 말이야."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 은우는 피식 웃어보였다. 아마 물었어도 굳이 이야기를 하거나 하진 않았을 것이고 오른쪽 검지를 제 입술에 갖다대며 쉿- 소리를 냈을 것이다. 말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표현이었다.
"있지. 그런데 난 그렇게 맞는 것도 제법 즐겁더라. ....말해두는데 맞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야. 그냥 오늘도 나는 저지먼트에서 함께 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야. 뭐, 때로는 역으로 차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닌데 그랬대간 또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어서... 어쨌든, 너무 각오에 먹히진 말고 가볍게 저지먼트 생활을 해도 괜찮아. 지금은... 평화롭잖아."
그럼 평화를 즐겨야지.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가면 힘 빠져. 적어도 1년은 더 해야지. 안 그래? 그렇게 말을 이어가면서 그는 끄응 소리를 내면서 혜우가 있는 곳을 잠시 바라봤다. 아무런 말 없이 가만히 바라보던 그는 피식 웃으면서 성운이에게 말했다.
"혜우 좀 안으로 데려가서 방에 눕게 해 줘. 여기보다는 방이 낫겠지. 그리고... 오늘 한 이야기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알았지?"
이어 그는 바깥 바람이라도 쐬려는 듯, 입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려고 했다. 아마 붙잡지 않으면 그대로 나가려고 하지 않았을까.
"...다시한번 말해두지만, 부끄러운건 선곡이니까. 버스킹 하는거 자체를 숨길 생각은 없어."
아무래도 혼자 있다보면...조금 기분에 타서 내 취향의 j-pop이나, 발랄한 노래같은걸 부르니까. 아는사람 앞에선 절대로 안부를만한, 노래방에도 안부를만한 그런노래.
"버스킹 하는것 자체를 숨길 생각은 없어, 그냥... 내 취향이 그렇다보니까, 일코용 플레이리스트를 짜면 될 뿐이지. 그쪽도 나름 잘치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며 짧게 한소절 노래를 부른다.
"난 오직~ 그대사랑하는 마음에, 밤하늘을 날아서 그대 잠든 모습 바라보다가 입 맞추고 날아오고파♪"
"어때, 들을만 하지?"
"그건 그렇고, 여름방학땐 정말...정말 충격이였어, 물론 좋은의미로. 얼마나 된거야 연주한지? 엄청 능숙하게 치던데? 아니, 첼로니까 켠다고 해야하나?"
그렇게 말하며 혜우의 인상을 정리한다. 그때 첫 라이브는, 정말...좋은의미로 충격이였으니까. 아무도 안찾아올만한 폭포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들릴땐,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였어. 물론 습기는 악기에 안좋으니까, 악기 주변에 스며드는 물은 전부 건조시켜뒀지만.
그렇게 이것저것 이야기 하다보니, 어느새 허름한, 하지만 색온도가 낮은 조명이 따스하고 정겨운 분위기를 내는 가게 앞에 도착했다. 가게는 여기저기 아기자기한 소품과, 일본어로 적힌 포스터, 생맥주와 각 하이볼이라고 적힌 간판따위가 여기저기 붙어있어, 토속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저 절망스런 표정을 짓고, 은우를 보며 괴성을 지를 뿐이었다. 뭐 하냐는 은우의 질문에 말이지. 진압을 주로 하는 부원 출신이라서 그런가? 아직 서류업무를 완벽하게 하지는 못한다. 현재는 꽤 능숙해졌지만, 다른 행정부원들에 비하면 부족했다. 아마 한양이 날린 파일을 보면 "이거 가지고 오바 떨었어?"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한양의 입장에서는 나름 심혈을 기울이며 작성한 것이었다.
한양의 아버지와 비슷한 시련이었던 것이다. 소위부터 대위까지 특임대에서 주로 몸이 힘든 일만 주구장창 하다가 특임중대장까지 마치고 한 대대의 지원과장 보직을 맡았는데, 서류업무에 매우 서툴렀다. 중위 시절에 정작장교나 지원장교 등의 행정업무가 많은 참모직을 장기복무를 희망하는 다른 동기들에게 다 양보하느라 참모를 안 했었다고 한다. 당시 간부들도 없어서 혼자 인사,군수,재정,동원을 맡아서 했는데, 결혼만 안 했으면 전역했다고 했었다. 대대의 2인자인 정작과장한테 털리는 게 일상이었다고.
"그..그렇겠지? 노트북이 나를 배신할 리가 없을 거야. 제발..살아있어라..."
괴성을 지르다가 기력이 떨어졌는지, 축 늘어진 한양. 은우의 말을 듣고 다시 고개를 든다. 그래. 이대로 허무하게 날아갈 리는 없다. 생각해보니깐 30분마다 자동저장 되는 기능도 있었잖아? 안마의자로 가는 은우를 보며 속으로 아쉬워했다. 나도 쓰려고 했는데. 좀 이따가 써야지.
"15주년? 이건 가야지. 자세한 계획은 없어. 일단 가보려고! 퍼레이드도 봐야지. 15주년이니깐. 또 언제 그런 걸 볼 지 모르잖아?"
간다. 가긴 가는데 자세한 계획은 없다. 한양은 15주년 얘기가 나오자, 무언가 생각이 난 듯 말을 이어간다.
"15주년 하니깐 생각난 건데..전에 부실에서 불ㄹ..불리? 아! 불렛!! 너도 알지? 연보라씨. 그 분이 왔어. 너랑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 목화고 저지먼트에게 15주년 퍼레이드 때 경호를 부탁하러 왔대. 협박편지가 왔다고 하던데. 그런데 이건 내가 어떻게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서, 너한테 말만 전해주겠다고 했어."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훈련이 잡혔다. 예나 지금이나 그의 능력은 혼자 있을 때보다 다인이 있을 때 더 빛을 발하고, 리라 또한 그렇게 활용되는 걸 기꺼워했기에 공식적으로 일정이 잡히지 않아도 알아서 부원들이나 친구들을 붙잡고 이것저것 했었지만 이렇게 공식적으로 뭔가가 잡힌 건 거의 처음이어서 조금은 들뜨기도, 생소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훈련 내용도 평소와는 달랐다. 리라가 주로 하는 커리큘럼은 초능력 계발을 중점으로 한 드로잉 수업과 창의력 발달을 목적으로 한 각종 매체 관람, 이론 공부 정도였다. 이미 댄스부와 저지먼트 활동을 하고 있으니 없는 시간에 굳이 체력단련까지 끼울 필요가 없다는 게 담당 연구원의 견해였고, 리라 또한 어느정도 동의했기에 지금까지 그들의 커리큘럼 루틴은 일정한 틀 안에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걸 계획하셨어요?" "최근에 체크한 신체 상태 기억 안 납니까."
대꾸 없이 입을 다물어버리는 리라를 보던 연구원은 한숨을 푹 내쉰 다음 락커 키를 건넨다.
"이리라 학생한테는 좋은 거 아닌가요? 남이랑 노는 거 좋아하잖아요. 물론 이건 노는 게 아니라 훈련이지만." "뭐~ 그건 맞죠! 감사합니다! 세상 사람들! 우리 연구원님이 달라졌어요!"
리라는 그렇게 외치고 먼저 커리큘럼실을 뛰쳐나왔다. 뒤에서 뭐라고 하는 것 같긴 한데, 몰라! 안 들려! 알아서 오시겠지!
그렇게 운동에 필요한 용품을 챙기고 체육관 입구에 도착하면 아직은 아무도 없다. 누굴까? 저지먼트 부원이라는 말은 들었는데 자세한 설명은 못 들었지 아마. 어떤 낯익은 얼굴이 도착할까 싶어 주위를 둘러보면 2분도 채 되지 않아서 누군가가 이리로 다가오는 것이 눈에 보인다. 리라처럼 가방을 매고, 락커 키(로 추정되는 것)를 손에 쥐고, 체육관으로 걸어오는 저지먼트 사람.
"랑 언니!"
반가운 얼굴이다. 리라는 손을 머리 위로 흔들며 밝게 웃는다.
"언니였구나! 안녕! 잘 지냈어요?"
그리고 랑이 다가오면 그제서야 체육관 문을 열었을 것이다. 문고리를 잡은 상태로 비켜선 리라는 랑이 먼저 들어가라고 말하는 것처럼 손으로 안쪽을 가리킨다.
"어지간하면 살아있을걸? 그렇게 운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운명을 저주하고 하루 더 야근해. 혼.자.서."
일부러 혼자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은우는 키득키득, 웃음소리를 참지도 않았다. 아마 1~2학년이 보면 대체 저건 누구인가요? 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게 은우인 것을 어쩌겠는가. 가능하면 후배들에게는 이런 모습을 쭉 숨기고 싶지만, 과연 얼마나 숨길 수 있을런지. 자신의 자제심이 최대한 일을 하길 바라며 은우는 피식 웃었다. 이내 어깨가 꾸욱 압박이 되자 그는 절로 숨을 후우, 내뱉었다.
"그렇구나. 딱히 같이 가고 싶은 이는 없다는 의미지?"
의외로 우리 저지먼트. 청춘력이 부족하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은우는 괜히 자신의 다리만 천천히 흔들었다. 같이 가고 싶은 이가 있다고 한다면 이것저것 캐물었겠지만, 없다고 하니 그는 딱 그 정도에서 이야기를 멈췄다.
이어 보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은우는 음,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 애 말이지? 응. 일단은 알고 있어. 전에 4학구에 갈 일이 있어서 갔다가 잠깐 만났거든. 그때 나에게도 말하긴 했는데... 그래도 알려줘서 고마워. 일단... 4학구 저지먼트는 대체적으로 협력성이 상당히 부족한 것이 흠이라서... 아마 이쪽으로 온 것 같긴 한데... 뭐, 그 부분은 나중에 또 다 모여서 이야기를 해볼게."
물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는 이기에 받아들이고 싶었으나 일방적으로 정할 순 없는 일이었다. 역시 당사자를 데리고 오고, 부실에 부원들을 다 모아놓고 결정을 하게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조용히 안마를 즐겼다.
"너 정도면 너 좋다고 따라다니는 이들도 많을텐데, 이틈에 한번 누구랑 시간이라도 보내면서 좋은 인연 만들어보는 것이 어때?"
나는 따라오는 이가 있어도 대부분 떡고물이라서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것은 자신에게 날아올 공격을 미리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situplay>1597029236>840 아 녹색빤짝이 정장이여야지 좋은데(안됨) 나서려는 후배들을 설득하는 건 한양이랑 태진이가 할테니....이혜성은 여전히 머뭇거리는 후배들 등 밀어주면서 걱정말고 가, 적어도 후배님들보다 3학년들이 쟬 더 잘 알거든 한 뒤에 은우 보면서 "진짜 자신없다. 좀 봐줘." 하지 않을까
>>843 체육관 입구에는 이미 도착한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저 사람이 오늘 같이 훈련을 할 사람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뭐든 확실한 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알아볼 수 있게 된 익숙한 얼굴과, 자신을 보며 흔드는 손을 보고 익숙한 목소리까지 듣고 나면 아, 같이 훈련하기로 한 게 리라구나 하고 생각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분명 정확한 답을 듣기 전이었음에도 리라를 보면서 느껴지는 건 그러했다.
"안녕, 그럭저럭."
랑 역시 가볍게 손을 까딱여 주고 나서 리라기 열어 준 체육관 문을 보다가 피식 웃으며 체육관 안으로 들어선다. 레이디 퍼스트라고 하면서 누군가 먼저 들어가기엔 둘 다 레이디 아닌가 싶지만.
"오늘 같이 훈련하기로 한 저지먼트 부원이 있다던데, 너였구나."
그렇게 체육관 안으로 들어오고 나서야 오늘 같이 훈련하기로 한 게 리라였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래 놓고 아니라는 답이 돌아오면 웃길 거 같지만. 어쨌건, 리라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듯 서 있다가 들어오는 걸 보고 나면 나란히 서서 락커룸 쪽으로 걸어가며 말을 이어갈 것이다.
수경의 오늘 풀 해시는 자캐를_처음_짤_때_그렸던_장면이나_문장 그들이 저희를 해어화로 보고 있다는 걸 알아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닮기 위해 푸른 계열로 염색했던 것을 다른 색으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다른 이들은 언제까지고 염색을 풀라고 했습니다. 결국엔 이미지를 맞추기 위한 것 뿐이었습니다.
무서운_영화를_볼_때_자캐는 픽션보다 현실이 두려운 일이라서.. 덤덤하게 볼것 같네요.
자캐한테서_나는_향 세르주루텐 라 휘드 베를랑을 이미지로 잡고 있어요. 대신 조금 연하게.
"꾸짖을 갈!!!!! 싫어!!! 최은우와 서한양은 애초에 한 몸인 것을!!! 떠나지 말지어다--!! 봐봐!! 키도 똑같잖아!"
류애린에 빙의해서 꾸짖을 갈을 외치는 한양. 나중에는 진실의 방울(?)까지 쓸 기세이다. 생각해보니깐 원래 은우보다 눈에 띄게 키가 작았던 한양이지만, 어느덧 은우의 키와 같아졌다. 항상 은우를 살짝 올려다보다가, 이제는 올려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근데 진짜 날라가면 안 되는데. 진짜진짜 안 되는데. 저지먼트 생활 힘들다고 면담을 신청해도, 그 면담을 주로 하는 게 나잖아. 나 자신과의 대화를 해야 되는 건가?
"음..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이라..없지는 않아. 너는 모를 수도 있겠다. 저지먼트 애들보다 더 친한 애들이 있거든. 나 포함해서 4명끼리 몰려다녀. 걔네들끼리 다닐 거 같은데."
한양은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건가? 평소 교내에서 친하게 지내는 덤앤더머들이랑 같이 가겠다고 하는 한양이었다.
"아, 너도 혼자서 결정한 사안은 아니구나. 4학구 저지먼트는 그런 점이 있었군..내 선에서 컷 안 해서 다행이다. 나중에 보라씨 보면 사과해야겠어. 갑자기 와서 너랑 친한 사이라고 해서, 의심했거든. 그래서 보라씨가 내가 경계한다고 느꼈나봐. 아, 물론 이상한 얘기는 안 했어. 나는 중간관리자라 내가 결정할 수 없다. 은우에게 말하겠다. 이런 말만 했으어. 괜히 내 사족을 붙이면..그..어..뭐라 표현하지? 꼬일 수도 있으니깐. "
그리고 다음 은우의 말에 방금 질문의 의도를 이해한 한양.
"아, 그래? 그렇게 봐줘서 고맙네. 근데 내가 눈치가 없는 건가? 나는 못 느끼겠네. 그래도 그..여자하고 남자의 시선은 조금 다를 수도 있자네. 남자 시선에서는.. 오우 쓋.. 저 형님 멋있어..! 반면 여자의 시선에서는..아..왜 저래..이럴 수도 있으니깐. 여튼 그렇게 봐줘서 고맙다, 하핫."
의외로 적극적인 부정은 하지 않는 한양. 그냥 칭찬받아서 순진하게 좋아하고 있을 뿐이었다.
"음..떡고물이라..그런 애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고백으로 혼내줄게. 이 괘씸한 녀석들."
"아닌데? 내가 더 큰데? 나 공중에서 3cm는 떠있을 수도 있는데? 우와. 싫어! 너랑 한 몸인거. 다른 인연 찾아서 떠나가라. 훠이훠이. 물러가라. 이 사악한 한양 귀신아!"
끔찍한 소리를 하지 말라는 듯, 그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정색했다. 하지만 장난이라는 듯이 이내 키득키득 거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양과는 2년 이상 이러고 있으니 이제는 안 이러는 것이 더 이상할 지경이 아니겠는가. 키득키득 웃으면서 그는 그 분위기를 즐겼다. 후배들에겐 나름 분위기를 잡으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그로서는 상당히 편안했다. 역시 동기가 최고야. 그런 말을 중얼거리기도 하면서.
"에이. 재미없게. 하지만 뭐 됐어. 어쨌건 즐겁게 지니면 그걸로 오케이지."
바로 은우는 한양에 대해서 뭘 뜯어내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지금 상태로 봤을 때, 물어봐야 아무런 것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그는 가만히 생각을 하면서 한양을 바라봤다. 하지만 역시 저지먼트 내에서 저 애를 동경하거나 마음에 품은 애. 한 명은 있을 것 같은데. 내 착각이려나.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면서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이내 허벅지가 압박되자 다시 한 번 숨을 약하게, 후우 내뱉었다.
"사과 안해도 돼. 아마 처음부터 그다지 신경도 안 썼을테니까. 뭐... 그래도 사과하겠다면 다음에 한 번 데리고 올테니까 그때 사과해. 아마 별 신경도 안 썼다고 할 거야. 진짜로. 그리고 어때? 하핫. 인기 아이돌과 아는 이 은우님의 위엄이. 뭐, 그렇다고 해도 다른 아이돌들은 잘 모르지만 말이야."
그 와중에 한양의 입에서 남자는 멋지게 보지만 여자는 왜 저래..이럴지도 모른다는 소리에 그는 피식 웃었다. 거기에 대해서는 그는 굳이 무슨 말을 하지 않았다. 괜히 여기서 자신이 더 무슨 말을 했다간 바람을 불어넣는 것밖에 되지 않을테니까. 그의 인연은 그가 알아서 하는 일. 자신이 간섭하는 것은 여기까지로 만 하며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오. 그래? 그럼 한양이는 일단 못해도 1000명에게 고백하고 다니는 카사노바가 되는 거야?"
그 정도로 많을텐데?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그는 팔짱을 끼고 장난스럽게 피식 웃어보였다. 이어 그는 눈을 다시 감으면서 이야기했다.
"됐어. 고백으로 혼내주는 것은 네가 좋아하는 애로 해. 아무리 그래도 나 때문에 고백으로 혼내주기 하는 것은 장난이라도 뭔가 미안해서 싫어."
아, 웃었다! 웃기기를 성공한 리라의 자신감이 올랐다. 말장난이 성공한 게 나름 뿌듯했는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리라는 기다리는 랑을 뒤따라 얼른 체육관으로 발을 들였다. 정규 수업의 체육 시간에도, 댄스부 일로도 와 본 적 있지만 새삼 넓구나 싶다.
"네, 저예요! 저도 언니랑 할 줄은 몰랐는데~ 잘 됐다!"
락커룸 쪽으로 걸어가는 걸음이 가벼운 반면 가방을 든 반대쪽 손에는 손잡이 달린 큼지막한 스피커가 들려 있었다. 아마 이걸로 오늘 할 체력 훈련 종목 중 하나는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체육 시간에 스피커를 쓸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체력 단련으로 한가롭게 음악 줄넘기를 할 것도 아니고, 평가용 안무 연습을 할 것도 아니라면... 답은 정해져 있지.
"확실히는 못 들었는데, 스피커 주신 걸 보면 셔틀런은 아마 확실히 할 거 같아요. 그리고... 음~ 우리가 어디서 하지. 아! 저쪽인가? 평행봉이랑 매트 있는 곳."
매트면 뭘까. 매트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건 무궁무진하니까 쉽게 예상 가지 않는다. 단순 스트레칭 용? 아니면 다른 거?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걷다 보면 어느새 락커룸 문 앞이다. 리라는 스피커를 밖에 내려둔 다음 락커룸 안으로 들어선다.
"저 체력 훈련은 처음 해봐요. 다른 사람이랑 정식으로 해 보는 것도 처음이고~ 언니는 평소에도 이런 거 자주 했어요?"
성운은 침묵했다. 은우의 과거에 대해서 속속들이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불행 배틀을 할 마음도 없고, 하게 되더라도 성운이 지게 될 것이다. 퍼스트클래스에 도달한 이의 복잡한 심경을 범인이 어떻게 함부로 이해하겠는가. 다만, 성운의 과오는 네 탓이 아니다, 네 책임은 없다 같은 말로 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 뿐이다.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으로 진학할 때, 겨우 아버지가 보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인첨공에 제 발로 들어오는 것으로 가족을 산산이 부수어뜨려 버린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성운이었으니. 성운의 죄의식은 그 어떤 합당한 말로도, 지적으로도, 위로로도 쉬이 걷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딱히 불행 배틀 같은 건 할 생각 없어서, 성운은 이제 입을 다물었다. 내가 이런 마음을 갖고 있기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라고 말했으나, 성운의 말은 또 잘못된 방향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밀쳐버리고 말았다. 성운은 속으로 자기 자신에게 면박을 줬다.
‘서성운, 넌 그냥··· 좀 닥쳐. 네가 아가리 열 때마다 상황이 한 계단씩 더 악화되고 있잖아.’
입을 다물고 있어도 무언가 답이 생기지는 않는다. 일단 여기까지는 왔다. 그러나 여기에서부턴 또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각오는 다른 이들을 다치게 할 뿐이다. 다른 이들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러면서도 부담없이 같이 갈 수 있는 그런 다른 마음가짐─ 성운은 또다시, 길을 잃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소년에게 있어 새로운 좌절은 아니었다. 길 잃고 헤매는 일이라면 익숙하다. 길이라면 진작에, 4년 전 딱 이맘때쯤 인첨공에 처음으로 들어왔을 때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잃었다. 다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 발생한 새로운 문제일 뿐이다. 아직 어설프고 서투르지만, 다른 이들과 이렇게 부딪히고 설교받으면서 조금씩조금씩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 중의 하나다.
“되게 사이좋게 지내시는 분인가 봐요.”
성운은 얼굴에 웃음을 걸면서, 너스레를 떠는 은우에게 장단을 맞추어주었다. 평화─ 그래, 지금은 평화롭다. 각오 같은 것은 필요할 때나 꺼내들고, 지금은 내려두자. 무표정한 얼굴로 잠깐 딴생각을 하던 성운은 은우가 말을 걸어오자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혜우에게로 고개를 돌려 혜우를 바라보았다. 잠깐 혜우를 빤히 바라보다가, 성운은 천연덕스럽게 웃는 얼굴로 바깥 바람을 쐬러 나가려는 은우의 뒷모습에 대고 말 한 마디를 건넸다.
“─저기, 혜우뿐만 아니라 다른 여성 부원들도 여자 방에 들어가기가 좀 그래서 다 소파에 눕혀뒀는데, 걔들도 다 방에 뉘어줄게요. 다른 애들이 뭐라 그러면 부장님 이름 대도 되죠?”
"어디 걔 뿐일까? 동기들은 다 소중해. 하다 못해 일을 안하고 자꾸 다른 이에게 미루거나 나에게 대신 해달라고 가져오는 그 녀석도 포함해서 말이야. 솔직히 너희들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너희들보다 훨씬 더 말이지. ...그 애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진 별개지만."
이번 일로 인해서 자신에게 실망을 했건, 위크니스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서 배신감을 느꼈건, 알게 모르게 자신을 이해할 수 없어서 거리감을 두게 되었건,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럼 그걸로 된 것 아니겠는가. 자신이 스토킹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알아달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그 애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이렇게 있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지.'
아마도 그건 다른 3학년들에게는 계속 말하지 않을 작은 비밀이었다. 제 속으로만 품은 소중한 감정을 가슴 속에 꾸욱 눌러담으면서 그는 키득키득 웃음을 터트렸다.
"펜션 주인이 시켰다고 해. 억울하면 나에게 따지러 오라고도 하고. 방에 안 들어가서 자는 것이 잘못이야."
그 와중에 착하네. 자신은 혜우만 지시했는데. 물론 그게 온전히 선한 마음으로만 나오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는 약간의 짓궂음을 덧붙였다.
"그 대신에, 맨 처음 옮기는 것은 혜우로 해. ...이유는 별 거 없고, 내 눈에 가장 먼저 띄었으니까."
이후는 알아서 하는 것으로 하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온전히 밖으로 나가버렸다. 폭포에 가서 머리 좀 식히다가 돌아오겠다고 이야기만 남기고서.
"에잇..그래..너가 더 커라. 치사한 자식. 내가 나중에 교사 되면 제자들한테 썰을 풀거야. 인첨공 퍼클 에어로버스터. 키로 이기겠다고 능력을 썼다!! 하핫!! 안 물러간다!! 만약 훗날에 드래곤볼의 오지터처럼 둘이서 퓨전을 하는 기술이 생기잖아. 난 당장 너부터랑 퓨전할거야. 최은우 플러스 서한양 해서 '최한우'로 말이지!!"
나중에 퓨전포즈부터 연습해라. 낄낄. 염동력도 쓰고 바람도 쓰는 최한우를 기대하마. 근데 퓨전 조건이 두 사람의 전투력이나 기가 비슷해야 되는데? 레벨 5에 오를 이유가 하나 생겼군.
"얼마나 즐거운데!!! 얼마 전에는 캠핑에서 불이 없어서 내가 불을 만들었는데, 먹을 음식이 보니깐 육사시미였던 개꿀잼 일화도 있다고!"
아, 저 편안한 자세. 내가 하고 싶은데. 저것이 먼저 일을 끝낸 자의 여유인 것인가. 은우 다 끝나면 바로 내가 해야지. 파일 날라가면? 에이..내일 하지 뭐. 왜 내가 노력파 이미지로 인식되는 건지 이해를 못 하는구마잉.
"아, 그래? 다행이네. 나는 너랑 진짜로 아는 사이인 거 알고나서 내심 미안했거든. 신경 안 써서 다행이네. 그래도 사과는 하는 게 예의니깐 ...해야겠어. 아이돌이랑 아는 사이인지는 꿈에도 몰랐다. 막..그...어? 고위급 정치인이나 기업회장들이면 몰라도."
내심 불렛에게 미안해지는 한양이었다. 불렛의 입장에서는 나름 딱딱하지 않게 다가온 것일 텐데, 의심부터 하고 봤으니깐.
"뭐..뭣?! 1000명?! 그렇게 많아? 너 얼마나 피곤한 삶을 살았던 거냐."
와..1000명.. 기가 막히네. 내가 대화해본 여성이 지금까지 백 명도 안 될 텐데.. 부럽다는 건 아닌데..대단하긴 하다.
"웃기지 마! 누가 너와 퓨전을 하겠다는거야?! 애초에 난 누구랑 합체하고 싶은 마음 없어! 아주 그냥 손가락 각도를 바꿔서 평생 이상하게 만들어주마."
물론 그렇게 되면 자신도 이상해지지만, 어차피 같이 죽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그런 억지를 부리면서 그는 정말로 싫다는 듯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정말로 하겠다고 나타난다면 아무리 저 녀석이라도 날려버려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정말로 굳건하게 마음을 먹었다. 금나큼 합체하기는 싫다는 듯이.
"...뭐야. 그거. 바보들의 행진이야?"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그는 이어 한양의 말에 그렇게 대답했다. 대체 어떻게 해야 불을 피우는데 먹을 음식이 육사시미인건데? 그 정도는 기본적으로 체크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에라.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이내 목 마사지를 받으면서 피로가 풀리는 것을 마음껏 만끽했다. 좋아. 내일은 조금 더 많이 돌아다닐 수 있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들려오는 말에 키득키득 웃었다.
"연줄이 있어서 말이지. 뭐, 그런 이들도 알긴 아는데... 굳이 친하게 지내고 싶진 않아. 필요하다면 일정한 관계는 유지하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대단하지? 그런데 아마 그보다 더 많을걸? 떡고물 주워먹겠다고 다가오는 이들. 퍼스트클래스라는 것이 그런 거야. ...다가오는 이는 맣지만, 정말로 친해지고 싶어서 오는 이는 거의 없어. 대부분이 떡고물을 주워먹고,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자고 오는 거지."
그렇게 말하는 은우는 살며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눈을 조용히 감으면서 아무런 말 없이 안마를 즐기다가 은우는 한양을 바라보면서 낄낄거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안한다니까. 그리고 혼내는 것은 네가 좋아하는 이로 해. 응원해줄테니까."
어디까지나 상대가 만들어지면.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그는 적당히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끊으려는 듯, 말을 뚝 그쳤다.
자신은 타인을 위로할 줄 모르는 사람이고, 이 말이 당신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금은 자신의 근처에 있을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가만 지켜볼 만큼 무심하지 못했다. 그러니 당신이 좋지 않은 기억에 얽매여 악몽과 괴로움에서 현재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했다. 불안한 생각은 불길한 예감으로 끊임없이 이어질 것임으로, 망각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 더 나은 기억으로 옅어지고 흐려지기를 바랬다.
"쉽진 않겠지만요. 언제든지 힘든 것이 있다면 이야기해 주십시오. 말했듯, 얼마든지 들어드릴 수 있으니까요."
고민을 해결해 주겠다는, 그런 확실하지 못한 답은 하지 않은 채. 후배는 당신을 건너다보며 아주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순간 떠오르고 사라지던 이전의 미소와 달리 길게 오랫동안 남는 미소였다. 그때 역시 혼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는 답에는 후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기억을 되짚어보면 동월의 장난으로 모래사장에 빠졌을 때, 당신도 근처에 있었던 것 같아서. 후배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당신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묻는다.
"그러면... 이제 선배의 이야기도 해주시지요. 그래도 바다 구경은 하셨을 텐데. 해변의 풍경은, 하늘은 어떠셨습니까?"
여담인데 어제의 썰에서 이어서... 어떻게 은우를 때려눕혀서 은우가 겨우 제정신을 차렸는데... 패배한 퍼스트클래스는 필요없다면서, 높으신 분이 다른 것들을 투입해서 은우를 제거하려고 할 때 3학년 동기조들이 모여서, 이번엔 우리가 지킨다고 선언하는 그런 것도..저는 맛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흑흑. 3학년 동기조...인연..너무 좋다..나는... 이런 관계 너무 좋다..(끌려감)(버려짐)
>>883 언제나처럼 밝고 쾌활하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신과 함께 락커룸으로 걸어가는 리라가 잘 됐다는 말을 해 오자 랑은 동의하듯 고갤 끄덕였다. 널찍한 체육관 한켠, 환복할 수 있게 준비되어 있는 락커룸으로 들어가기 전에 리라가 들고 있는 스피커를 보고 셔틀런을 할 것 같다는 말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쪽 맞는 거 같네."
그리곤 리라가 확인한 쪽, 평행봉과 매트가 있는 장소를 보며 그리 대답한 랑은 락커룸 안에 들어서서 락커 키를 이용해 오늘 배정받은 락커의 문을 열었다. 정기적으로 청소하고 있는 모양인지 깔끔한 내부를 보다가 겉옷을 벗으며 체력 훈련이 처음이라는 리라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도 다른 사람이랑 하는 건 처음이다."
대강 오늘 뭘 할지 정도는 예측이 된다. 매트가 있는 걸 보면 평행봉에서 균형을 잡거나... 뜀틀을 가져와서 뛰거나 하겠지. 셔틀런으로 체력 훈련을 하고 나머지는 몸을 얼마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목적일 것이다.
"그런데... 커리큘럼에 체력 훈련이 없었다는 말이냐?"
다른 사람이었다면 먼저 환복하고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환복을 했겠지만, 이미 몸에 뭐가 있는지 리라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랑은 별로 거리낌 없이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니까... 품이 큰 스카잔을 입고 있기 때문에 평소에는 가려져 있던 골격과 근육, 그리고 화상자국과 관통상으로 얻은 흉터에 아랑곳하지 않고 운동복으로 갈아입는 것이다.
힘든 게 있다면 이야기 해달라는 말은 은우에게서도 들었다. 들어줄 수 있다는 말과 똑같지 않지만 그것과 흡사한 말을 듣기도 했다. 자신이 먼저 이야기의 물꼬를 트기 시작하면 들어줄 사람들이 많다는 것또한, 혜성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로 알고 있는 것들을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상황이다. 혜성은 그런 상황이었다.
말을 하면 해결될 수 있지만 자신이 그 말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게 분명하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 자신도 모르게 벤치를 쥐고 있던 손에서 힘을 풀고 혜성은 양손을 깍지 껴 맞잡는다. 멀거니 하늘을 바라보는 새파란 눈동자는 한치도 깜빡이지 않았다.
"말만 들어도 든든하니 나중에 힘든 일 있으면 이야기할게. 지금은-.. 아직 못할 것 같지만."
다정함이 담겨있는 대답이었고, 자신을 바라보는 후배의 시선을 느꼈지만 혜성은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야 한구석에 흐릿하게 보이는 후배의 얼굴에 미소가 걸려있는 것 같다고 혜성은 생각했다.
"좋았지. 오랜만에 푹 쉴 수 있는 시간이었잖아? 해변은 매일 떠들썩 했던 것 같았지만."
정말 생각하지도 못한 상태로 모래 사장에 고꾸라졌을 땐 이성이 끊어지는 느낌을 처음으로 받았지만 그것도 이제는 적당히 후배의 장난으로 인한 해프닝으로 넘길 수 있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대답할 수 있었다.
"내가 볼 땐 체크를 안한 너도 책임이 있어. 보통은 뭘 준비하기 전에 확인부터 하잖아."
그것보다 먹고 싶다. 육사시미. 지금 가서 바로 먹으러 갈까. 사서 세은이와 먹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그는 가만히 머리를 굴렸다. 이런저런 요리를 만들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사시미나 회 종류는 만들지 못했다. 애초에 그런 것을 하려면 정말로 전문적으로 배워야한다고 들은 것 같기에 더더욱. 물론 그런 것까지 만들고 싶진 않았기에 그는 곧 생각을 멈췄다.
"됐어. 익숙해.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라고 하니 말이야. 더 잘 해 줄 것은 없어. 지금으로 충분해. 하핫."
그것은 절대로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자신은 지금 이대로도 괜찮았으니까. 단순히 그 뿐이었다. 뭘 더 바라겠는가. 이렇게나 자신을 생각해주는 동기가 있는데. 미안. 후배들. 그래도 역시 난 동기들이 조금 더 편해. 이곳에는 없는 후배들에게 그는 조용히 가슴 속 사과를 보냈다. 물론 그렇다고 후배들이 불편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아무나 만난다면 내가 화를 낼 것 같은데. 아무튼 너라면 그런 것은 잘 할테니까. 나? 상위권. 퍼스트클래스의 체면이 있지. ...뭐, 솔직히는 괜히 떨어지면 또 이런저런 말이 나올 것 같아서 그런 거지만 말이야. 일단 대학 가려고 생각 중이기도 하고... 그건 그렇고 중.위.권?"
건수를 잡았다는 듯이 그는 막 안마가 끝난 안마의자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한양을 바라보면서 특유의 포즈를 취하면서 놀리듯이 이야기했다.
락커룸 안은 깔끔했고 락커 내부도 크게 다를 것 없었다. 여름인 만큼 양쪽으로 땋아내린 긴 머리는 뒷목을 드러내서 더위를 피하기에도 무리 없어 보였고, 하복으로 바뀐 교복은 춘추복보다 훨씬 가벼우니 환복하기도 간편하다. 락커 문이 열리는 소리, 천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환복하던 리라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돌렸다.
"언니도 처음이구나~ 뭔가 좋은데요? 첫 합동 체력훈련 파트너라!"
시야 닿는 곳에는 익숙한 모습이 있다. 골격이나 근육은 평소 붙어서 놀 때 이따금 존재를 느낄 수 있었지만 처음 만났을 때 봤던 흉터는 오랜만인데, 어쨌거나 사람 몸을 빤히 바라보는 건 실례니까 시선을 적당히 분산시키면서 말을...
"네, 연구원님이 저는 댄스부 활동도 하고 저지먼트 활동도 하니까 좀 더 능력 계발 위주로 하자고 하셔서... 요."
말을 이었는데, 자연스럽게 흘러가던 시선이 한 곳에 멈춘다. 옆구리에 남아있는 흉터는 화상 자국과 모양이 다르고 무엇보다 이전에 그가 본 적 없는 것이다. 물론 그 사이에 다쳤을 수 있다. 그들이 지난 봄 동안 무엇을 해 왔는지를 생각하면 이상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언니, 거기 언제 다쳤어요?"
그렇게만 생각하고 넘기기에는 흉터가 크다. 저 위치에 저 정도의 흉터라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셔츠 단추를 풀다 말고 랑이 서 있는 쪽으로 조금 다가간 리라는 무심코 손을 뻗으려다가 멈칫한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랑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거 뭐예요? 전에 봤을 땐 이런 거 없었던 것 같은데."
이 위치에 이런 상처라면, 혜우 후배님 같은 사람이 곁에서 즉각 대처를 해 주지 않는 이상 제대로 된 병원에 가야 한다. 그리고 인첨공의 제대로 된 의료기술은 이런 식의 흉터를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궁금하다. 이게 어쩌다 생긴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