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어기 마츠시타 씨. 부탁이 있는데," 로 시작된 터무니 없는 일에 관해 린은 잠시 회상을 시작했다. 한 사흘 전이었나 자주 가던 카페의 알바생이 상당히 곤란해 보이는 얼굴로 저를 불렀었다. 신한국에 온지도 오랜시간이 지났으니 나름 안면을 터 평ㄱ소 이런저런 잡담을 하던 사이라 무슨 일인가 싶어 '말씀하시어요' 라고 대수롭지 않게 반응한 것이 화근이었다. 평범한 비각성자가 제 아무리 곤란해봤자 집 앞에 몬스터가 출몰했다 그 정도일 것이라 여겼던 제 탓이었다.
"그,그게 마츠시타 씨 나름 꽤 눈에 띠는 편이기도 하고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서. 보상은 원하는 대로 드릴테니까 제에발-." 그래도 그렇지 그 돈에 홀랑 넘어가는게 아니었는데. 속으로 이를 갈면서 린은 알바생의 말로는 그녀(알바)의 친척이 운영한다고 한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득 약이 오른 속내와 다르게 얼굴은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수줍은 소녀 혹은 사회초년생 같은, 수줍음을 그려내었다. 자신의 프로의식에 자부심이 있는 편이지만 너무 잘 하는 것도 안 좋을 때가 있다는 씁슬한 상념이 잠시 스쳤다.
"헤어밴드랑 앞치마랑 여기 복장도 있고 마츠시타 양은 마도 일본 출신이니까 좀 더 익숙하려나요. 같이 잘 해내봐요!" 역시 알바가 손을 싹싹 빌어도 넘어가는게 아니었다. 실은 보수에 홀랑 혹해서 넘어갔다는 것은 비밀로 하고서 이 쪽으로 꽤 경력이 있는듯 보이는 사장의 오랜 지인이라는 다른 메이드의 지시에 따라 복장을 갈아입고 홀에 나간 순간이었다.
'개구리...?' 미리 팜플렛으로 전달받기는 하였지만 실제로 보니 황망하기 이를데가 없어 잠시 쳐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맹해보이는 개구리 탈의 인물도 우르르 나오는 메이드들에 정신이 없어보였지만, 만일 자신이 다른 사람들처럼 일반인이었다면 지금 주변의 여자아이들이 그렇듯이 잠시 수근거리는 실례를 저질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나저나 왠지 맹해보이는게 이상하게 익숙한데. 뭐, 의미없는 기시감이려나.
그렇게 단정하게 정리한 검은 머리에 흰 헤어밴드를 두르고 검은 치마에 하얀 앞치마를 두른, 전형적인 현대식 메이드 복을 입은 린은 알렌(in 개구리 인형)을 유유히 스쳐지나갔다. 이런 이벤트는 대치동보다는 홍대에 많다고 들었는데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 마케팅 방식도 달라졌나 보다.
자, 하나 둘 셋! "어세오세요 주인님!"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생긋 웃는 얼굴로 공손히 손을 모아 인사를 한다. 레벨 50대가 넘어가는 의념각성자를 이런 식으로 부려먹다니...잔뜩 0이 붙은 gp뭉치를 생각하며 린은 열심히 머리를 식혔다. //2
맹하게, 마치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정지 동작을 하고 있던 개구리 탈에게 무어라 말을 건네는 사장의 모습도 힐끗 쳐다보다가 별스럽지 않게 넘기고서 주문이 들어오고 린은 일을 시작했다. 와 저 사람 비보잉 끝내준다. 그런 말도 들린것 같았지만 지금 린의 머릿속은 오로지 반짝거리는 gp의 향연으로만 가득 차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과거 아가씨였던 나시네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 이런 가?혹한 상황을 버틸수가 없어서였다.
"저희 오므라이스 주문했는데 마법의 주문 해주세요!" 메이드 카페이니 당연히 여성의 비율보다는 남성손님의 비율이 좀 더 높았다. 마침 근처가 학원가이니 호기심과 기대에 가득차 오픈런을 한 남고생 무리가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앗 잠시만요. 자아- 오이시쿠 나~레 오이시쿠 나~레 모에모에 큥~!" '좋아, 결심했어요. 보수를 받고 알바생분을 신의 곁으로 잠시 보내드리겠어요.' 상체를 살짝 내밀어 열심히 하트 모양으로 케챱을 뿌리고 한 쪽 손을 들고 손가락으로 작은 하트를 또 그린다. 다른 손을 들어 하트를 그린 후 윙크를 하며 양 손으로 하트를 내밀어 오므라이스에 주문을 뿌리듯 가까이 한다. 아는 이중 이 곳을 아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는 확?신만이 불행 속의 소소한 위로였다. 이미 이 꼴을 제일 들키기 싫은 사람이 봤다는 건 꿈에도 모르는 그녀였다. 남고생들이 좋아서 서로 괜히 밀치며 장난을 치든 말든 이미 린의 관심 밖이었다.
"맛있게 드세요 주인님❤" gp 수 많이 쌓인 gp...gp의 산이 제단 위에...수치스러워.
"와!" 마침 밖에서 환호성이 터치고 의념각성자가 아닐까 잠시 의심이 들 정도로 정교한 동작을 선보이고 있는 사장의 취향이 의심되는 복장의 개구리 인형을 바라보았다. 오고 가던 메이드들도 신기했는지 잠시 일을 하다 멈추어 가며 구경을 하고 있었다. //3
다른 사람들이 개구리 인형의 화려한 동작에 집중할 때 린은 다른 부분에 집중하고 있었다. '분명 순간적으로 무게중심을 잃은 것 같았는데.' 일반인이라면 몰라도 준가디언~가디언 급의 전력인 린의 눈에는 분명 비보잉을 추던 사람이 뛰어난 실력에 어울리지 않게 잠시 실수하여 넘어질 뻔했다는 것이 보였다. 게다가 이를 재빠르게 수습하는 일련의 과정까지도.
'절대 일반인의 동작은 아니야.' 사장이 은퇴 후 이런 저런 독특한 소일거리를 즐겨하는 자산가라는 말을 들었으니 의념각성자를 고용했을지도 모르겠다는 결론까지 낸 린은 잠시 안쓰러운 눈길로 개구리 탈을 쳐다보았다. 그녀와 같은 처지에 처한 어느 의념각성자가 또 있는 모양이었다. 와중에도 그녀는 개구리 인형이 절대로 아는 사람일것이라는 생각은 하나도 않고 있었다.
"저기, 저희도 주문할게요" 생각에 팔려있던 차에 떠들고 있던 남고생 뒤의 테이블에서 경쾌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와 다소곳한 걸음걸이로 이동하여 밝으면서도 적당히 얌전하게도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부르셨나요 주인님." 친한 사람들끼리 놀러왔는지 남자 몇에 여자 몇이 섞인 테이블에 서로 무언가를 논의하다 이내 놓인 메뉴판을 손으로 가리킨다. 그 손끝을 따라 시선을 이동시키고 읽음과 동시에 여자가 말한다. "같이 카드게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어차피 할 수 밖에 없는데 권유하는 식으로 물어보는 의도는 무엇일까. 당연히 사회적인 의례에 따라 예의를 지키는 것임을 알면서도 괜히 성질을 속으로 부리면서 "어머, 그럼요~" 라 어느새 직업정신 따라 자연스럽게 베인 태도로 답하고 있었다.
"풀 하우스입니다. 주인님" 뻔뻔하게 의념각성자 치트를 써서 얼마 지나지 않아 태연하게 이겼다. 에에, 주위에서 아쉽다는 감상을 담은 탄성이 울리고 있었지만 비즈니스 미소를 장착한 냉혹한 자본주의의 메이드는 또 다시 다른 주문을 받으러 바삐 이동했다. 방금 전에 카드게임 제대로 된 내기였으면 쏠쏠하게 가져가는 건데 그런 생각을 하며 창 가까이 지나가다 동지 의식이 느껴지는 개구리 인형을 바라보았다. 창가 주변의 사람들은 물론 밖에 인파가 몰려 구경하는 것을 보고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지나간다. 이상하게 왠지 모르게 기시감이 든단 말이지. 여전히 이 기시감의 근원은 모른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