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금을 모티브로 하고있지만 잘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상황극판의 기본 규칙과 매너를 따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를 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상대를 지적할때에는 너무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15세 이용가이며 그 이상의 높은 수위나 드립은 일체 금지합니다. ※특별한 공지가 없다면 스토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 30분~8시쯤부터 진행합니다. 이벤트나 스토리가 없거나 미뤄지는 경우는 그 전에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이벤트 도중 반응레스가 필요한 경우 >>0 을 달고 레스를 달아주세요. ※계수를 깎을 수 있는 훈련레스는 1일 1회로, 개인이 정산해서 뱅크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훈련레스는 >>0을 달고 적어주세요! 소수점은 버립니다. ※7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 경우 동결, 14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경우 해당시트 하차됩니다. 설사 연플이나 우플 등이 있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존 모카고 시리즈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따라서 기존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있고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서도 똑같이 그 설정이 적용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R1과도 다른 스토리로 흘러갑니다. ※개인 이벤트는 일상 5회를 했다는 가정하에 챕터2부터 개방됩니다. 개인 이벤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사전에 웹박수를 이용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는 계수 10%, 참여하는 이에겐 5%를 제공합니다.
봤을까? 마주보고 앉으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리라는 랑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지금 스스로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길 없다. 모쪼록 이상한 얼굴만 아니면 좋겠지만 글쎄. 곧 상대의 눈은 바다 쪽을 향했지만 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린다. 아, 바보인가? 정신을 어디다가 놓고 다니는 거지? 일부러 저기에 넣어놓은 건데 그걸 그새 잊어버리다니. 리라는 조용히 숨을 가다듬고 코드를 짚어나간다. 일단 연주하자. 음악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바닷가에 딱 어울리는 노래네요, 그럼 시작~"
하자마자 한번 삐끗했다. 순간 어색하기 짝이 없는 정적이 흘렀다.
"...시, 실수예요! 아! 원래 안 이러는데! 이거 못 들은 거예요, 다시 다시!"
어깨 너머로 넘긴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나 있는 귀가 어두운 밤하늘 아래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새빨갛게 물들었다. 리라는 다시 목을 가다듬고 현을 튕긴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시작이고 흐름이다. 약간 긴장되어 있던 목소리는 곡이 진행될수록 부드럽게 풀리고 리듬을 탄다. 우쿨렐레로 향해 있던 시선은 곧 랑에게 다시 돌아갔다. 혀끝에서 구슬처럼 구르는 가사를 뱉을 때면 적당히 시원한 바닷바람도 조금 덥게 느껴지는 거 같다. 여름이 원래 다 그런 거지만.
너와 함께 걷고 싶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어 이 거리를 너와 함께 걷고 싶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어
바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 전활 걸어 뭐하고 있냐고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우쿨렐레 소리에 곁들여지는 파도 소리는 꽤 좋은 반주가 된다. 조금 전까지 저 파도에 잡아먹힐 뻔했던 걸 생각하면 너무 팔자 좋은 생각이지만, 어쨌거나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건 사실이다. 그림도 이 순간보다 예쁠 순 없을 거 같았다. 이윽고 음악이 마무리된다. 리라는 스스로 박수를 몇 번 치고 그대로 손바닥을 서로 맞댄 채 랑을 바라본다.
아무리 소년의 힘이 좋다고 해도, 사람을 무 뽑듯 쑥 하고 뽑는 경험은 없었다. 하지만 맹세컨대, 눈높이가 성운이 살짝 높아질 정도로 대롱대롱 들어 올렸던 건 소년의 고의가 아니었다. 주변의 성운보다 가벼운 사람이 무척 드물었기에 힘 조절을 실수했을 뿐이다. 성운의 다리가 흔들거린 게 묘하게 재밌어 보였다던가는 소년이 한 생각이 아니다. 소년의 오너가 한 생각이지.
"네에 맞아요. 성운 선배님."
모래를 말끔하게 털어내고 고맙다는 인사말에 방긋방긋 웃음을 내보인 소년은, 곧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도 알고 있다는 뜻으로 성운의 이름을 불렀다.
"자주 뵌 거 같은데 이렇게 대화하는 건 처음 같네요~"
하얀 소년은 자신의 머리를 뒤적이며 친근하고 가볍게 다가갈 수 있는 말들을 골랐다. 상대에게 불편을 주지 않도록 조심조심 말을 골라가며 하는 대화이기에, 아마 소년의 말은 다소 느긋하게 흐를 것이다.
바닷가에 어울리는 노래라며 시작되려던 연주는 잠시 멈췄다. 첫 음부터 조금 엇나갔다고 해야 하나. 연주자 본인도 그걸 알고 있는지 새빨게진 귀를 해선 실수라며 다시 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랑은 그런 리라의 얼굴을 보며 그러라는 듯 고갤 끄덕여 준다. 그러자 이어지는 연주는 아까는 정말 실수였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제대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조금 긴장한 것 같았던 목소리도 부드럽게 풀리며 연주와 어우러지기 시작하고, 틀리지 않기 위해 우쿨렐레에 두었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랑은 눈을 마주쳤다.
"응."
마음에 들어. 파도 소리와 함께 이어지던 우쿨렐레 소리가 멈추고, 곡이 끝났다는 걸 의미하는 리라의 박수 소리 후에 들여온 어땠냐는 질문. 랑은 리라를 빤히 쳐다보며 대답한 뒤에 무릎 위에 팔을 올려 턱을 괴었다.
"연주도 잘 하네."
노래는 잘 한다는 걸 기본적으로 밑에 깔아 두고, 연주 역시 잘 한다며 그리 덧붙이고 나서 괴지 않은 손의 검지 손가락을 쭉 펴는가 싶더니 리라의 이마를 콕 찔러보는 것이다.
"뭔진 몰라도... 무리하지 마라."
외상은 보이지 않고, 내복약으로 외상을 치유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이건 내상이거나... 아니면 정신적인 부분이겠지. 피곤해 죽을 것 같을 때 억지로 먹었던 것들을 떠올리면서(그것과 같지는 않겠지만) 랑은 리라에게 무심히 그런 말을 던진 뒤에 손을 내리며 고갤 다시 바다 쪽으로 돌렸다.
오늘 그는 여러모로 진이 많이 빠진 상태였다.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요 며칠간 계속되는 테러 행위 때문에 기어이 폭발한 탓이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자신의 전용 전류가 흐르는 삼단봉까지 들고서 모래밭을 저벅저벅 걷는 모습은 모 영화에 나오는 살인기계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눈에 초점이 없고, 생기도 없고, 그야말로 꾹 닫혀있는 입까지. 아마 누군가가 봤다면 정말로 살벌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찾아내고 발견했다면 강하게는 아니지만 전류 맛을 아주 쪼~금 보여주지 않았을까? 물론 잡힌 사람이 있는지의 여부는 은우와 당사자들끼리만 알 일이었다.
절대로 어제 수영을 하기 위해서 수영장에 다이빙을 했다가 꽃게 집게에 물린 것 때문에 이런 것은 아니라고 일단 은우는 스스로 정당화를 하면서, 펜션의 거실로 들어왔다.
"끄응...."
피곤해. 오늘 하루종일 이렇게 돌아다녀서 그런 것일까. 체력이 많이 빠진 것인지, 그는 커다란 소파에 드러누웠다. 에어컨도 시원하게 나와서 그런지, 바깥 더위와는 별천지가 바로 이 펜션 안에 있었다. TV를 켤까 했지만, 굳이 켜진 않으며 은우는 그 상태에서 마치 슬라임이라도 된것 마냥 흐물거리면서 몸을 뒹굴거렸다.
그러는 와중 문소리가 들리자 그는 고개만 살짝 올렸다. 제 동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그는 싱긋 웃으면서 손만 흔들면서 입을 열었다.
"안녕! 오늘 하루는 잘 쉬었어? 여기에 와서 에어컨 바람 좀 쐴래? 밖은 더웠을텐데. 아닌가? 아니면 말고. 하핫."
그대로 펜션의 개인실로 돌아가는 건 아쉬워서 혜성은 펜션에 잠깐 들어갔다가 바로 나와 걸음을 옮겼다. 첫날에 찾아낸 그 절벽에서 유유자적하게 물길따라 한참 떠 있다가 펜션으로 돌아간 건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다. 펜션 문을 열며 한손으로 얼굴에 맺힌 물을 쓸어 닦아내던 혜성은 잠깐 멈칫했다.
"있었네? 나가있을 줄 알았더니?"
은우의 인사에 혜성은 인사가 아닌 다른 말을 툭 내뱉었다. 얼굴 보기 힘들다 싶었더니 이러고 있을 줄은 몰랐다. 바닥에 늘러붙어있는 게 꼭 슬라임같다는 생각을 하며 챙겨나갔던 스포츠 타월로 몸의 물기를 닦고 나서야 은우가 누워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는 혜성이었다.
"일단 샤워만 좀 하고... 아, 애들이 모래 뒤집어 놨던데."
개인실로 향하다가 걸음을 멈추고 혜성은 은우에게 밖의 상황을 간략하게 전달했다. 자신이 당했던 퀵샌드를 떠올리고 있었는지 혜성의 표정은 묘했지만 곧 고개를 돌려서 동기를 바라볼 때의 표정은 굉장히 부드럽게 웃는 낯이었다.
"금방 나올게."
//모바일이 문제가 아니라 짧은 게 문제였고 (이마침) 다음턴에 나올거니 은우는 계속 뒹굴거려도 돼(??)
펜션은 좋았습니다. 이유는 시설보다 식량 종류도 많은데다 맛도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휴가를 끝내고 시설에 돌아가면 제가 과연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이번에도 저는 무심결에 주방 공간으로 향했는데 이미 계시던 누군가와 눈을 마주쳤습니다. 또 다른 저지먼트 분이시겠죠. 그렇지만 어쩐지 행동이 수상쩍으셔서 하마터면 스킬아웃씨가 나타난 줄 알고 적절한 대응을 취할 뻔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배제행동입니다.
"……"
저처럼 새로운 먹을 거리를 찾고 계셨던 걸까요. 마침 제 손에 들려있던 아직 뜯지 않은 빵이 있습니다. 그것을 상대분께 조심히 건넸습니다.
그 이름을 굳이 언급하진 않았지만, 아마 이곳에 있는 이들은 누구를 지칭하는지 대충 짐작했을 것이다. 축 늘어진채로 손에 쥐고 있는 삼단봉을 살며시 만지락거리던 은우는 자리에서 일어난 후에 다시 그걸 제 허리춤에 채웠다. 그리고 드러누운 자세를 천천히 일으켜세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방향은 조절해서 에어컨 바람이 정면으로 나오는 곳에 앉았고 그는 가만히 그 에어컨을 바라보다가 제 능력을 써서 살며시 그 차가운 공기를 압축시킨 후에 제 등에 쏘옥 집어넣었다. 등까지 절로 시원해지는 느낌이 상당히 기분 좋다고 느끼면서 그는 후우, 숨을 내뱉었다.
"알아. 그래서 잡으러 간 거야. 나 참. 첫날부터 지금까지 어찌나 시끌벅적한지. 내가 코뿔소들을 단체로 데려와버린 모양이야."
천천히 갔다오란느 말을 하면서 은우는 살며시 오른손만 천천히 흔들었다. 그러다가 자신은 자신대로 자리에서 잠시 일어나더니, 그는 부엌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서랍장을 연 후에, 오늘 아침에 구워서 만들어뒀던 딸기잼이 들어있는 코뿔소 쿠키를 접시에 여러개 담았다. 그리고는 다시 부엌으로 돌아왔고, 접시를 소파 앞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일단 하나. 음. 맛있네. 그렇게 생각하며 은우는 부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야말로 긴장을 풀고, 너무나 가볍고 허탈할 정도로 소탈한 모습 그 자체로 휴식을 만끽했다. 아마 혜성이가 돌아오면 고개만 살짝 돌려서 다시 손을 흔들어줬을 것이다.
우쿨렐레 소리는 불안으로 뛰는 심장을 효과적으로 가라앉혀 주었고, 시작부터 강하게 드러난 실수에도 큰 반응 않고 말없이 들어주다가 마음에 든다고 말해주는 랑의 목소리는 기껍다. 리라는 마주한 눈을 보며 활짝 웃었다. 노래하고 연주하는 사람에게 이보다 좋은 칭찬이 있을까.
"그렇죠? 옛날부터 꾸준히 했거든요. 그래도 좀 오랜만에 하는 거라 손 굳었을까 봐 걱정했는데, 언니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다~"
뭔가 또 조잘거리려고 시동을 걸던 입은 이마를 콕 찔러오는 손가락의 감촉을 느끼자 잠시 멈췄다. 눈동자가 이마의 손가락을 향했다가 팔을 타고 흘러가 다시 랑의 얼굴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표정을 유지할 수 없게 했다. 봤구나. 한순간 웃던 얼굴에 금이 갔다. 하지만 그게 딱히 부정적인 반응은 아니었던 거 같다. 랑의 말을 다 듣고 난 다음 손가락과 고개가 제자리로 돌아가면 우쿨렐레를 안은 채 랑에게 바짝 다가가 조금 전 했던 것처럼 어깨에 머리를 툭 기대려고 했을 테니까. 다만 이번에는 이마로 부딪혀와서 얼굴을 보기 어려운 각도라는 점이 달랐다.
"이상한 건 아니에요. 그냥 좀, 조금 그런 거고... 위험한 것도 아니고, 저지먼트 일이랑 일상생활 하는 데 지장도 없어요."
그새 물기가 조금 날아간 머리카락이 쏠린 고개 탓에 앞으로 흘러내린다. 리라는 그대로 말을 잇는다.
"당연하죠. 저 욕심 많아요. 무리도 안 하고 이것저것 할 거예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저 이상하게 보면 안 돼요. 아! 언니가 그럴 거 같다는 게 아니라, 안 그럴 거 같지만 그냥... 그냥 좀... 혹시라도 못미덥게 보일까 봐..."
제대로 된 주어 없는 말이 두서없이 흘러나온다. 한번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쉰 다음에야 조금 더 정돈된 음성이 나왔다.
"언니도 무리하지 마요. 우리 전부 그만 무리하고 이것저것 해 볼 때도 됐죠. 앞으로도 더 많이. 여름이니까 댄스부실에서 공포영화 보기로 한 계획도 실행해야 하고, 15주년 행사인가 뭔가가 얼마나 대단한 행사이길래 안티스킬 인력도 쪽 빼갔었는지 가서 구경이라도 해봐야 하고."
눈만 살짝 굴려 하얀 물거품이 쓸려오고 쓸려가길 반복하는 걸 바라보던 리라는 살짝 고개를 틀어 다시 랑을 바라보았다.
누군가가 들어오자 흠칫하면서 도주각을 잡으려 하였으나, 이지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만두려 합니다. 같은 대분류군에 속해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 대분류군이 연산의 흔적을 읽어내면 도주가 불가능해질 거라 생각해서일까요? 레벨 제로라고 해서 방심하면 안되는 걸 알기 때문일까요..
"......안녕하세요" 일단은.. 인사를 하려 합니다만.. 급작스럽게 빵을 내밀어진 것을 내려다보지만 받지는 않으려 합니다. 자신이 빵을 내밀어질 정도로 이상하게 수색하고 있었던 걸까요?
"빵을.. 받기는 그렇습니다." "...조리할 것을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변명처럼 말이 나오는데요. 맞습니다. 변명입니다.
이경의 말마따나, 서로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대면해본 건 처음이다. 그럴 만한 일이 많긴 했다. 성운은 가볍게 넉살을 떨었다. 화제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기야 했다만, 그래도 둘 다 잘 끝났지 않은가. 이경도 이번 학기를 마무리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둘 만한 일이 있었으니, 적어도 최악의 학기말은 아니라 할 만했다. 성운은 이 후배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에 내심 놀랐으나, 자기도 이경과 딱히 통성명한 적이 없음에도 이경의 이름을 어떻게든 떠올려낼 수 있었으니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이경이 조깅 이야기를 꺼내자, 성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에 5일은 꾸준히 조깅하고 있어요. 체력이 중요한 일이니까요.”
기초 지구력을 길러두라는 한양과 칼리 강사의 조언에 따른 루틴이었다. 아무래도 현장 활동이 많은 일이고, 성운의 능력 역시도 일단 시야에 닿는 대상을 상대로 사용하는 것이라.
“아침에 달릴 때도 있고, 저녁에 달릴 때도 있어요. ─혼자 달리긴 심심해서 교내에 운동동아리를 찾아보는데, 인첨공 돌면서 조깅하는 동아리는 없는 것 같더라구요. 헬스부는 러닝머신을 쓰는 것 같고···”
나갔다가 들어왔다는 말에 혜성의 눈이 도록 굴러서 삼단봉으로 향한다. 여기까지 와서 부원들이 지나치게 날뛰지 않도록 해아만 하는 부장의 행동에 대해 감탄을 해야할지, 아니면 지나치게 하지 말라는 말을 해야할지 고민하던 혜성의 결론은 간단했다. 그냥 웃어버리기로 한 것이다. 그야 자신도 걸어가다가 함정인지 뭔지에 당해서 모래를 잔뜩 뒤집어썼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부장님은 놀러왔어도 힘들구나. 그래도 지금까지 고생했던 거 치고는 잘들 놀고 있잖아. 너무 잡지는 말아."
하지말라는 소리는 쏙 집어넣어버렸다. 저 말대로 부장인 은우가 직접 잡으러 다니지 않고 그냐 내버려뒀다간 어디로 갈지 모르는 후배들이 크게 일을 칠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내려진 결론을 말하고, 혜성은 은우의 인사에 가볍게 마주 손을 흔들어보인 뒤 모습을 감췄다. 샤워와 옷갈아입기를 마치고 챙겨온 약들을 챙겨먹은 뒤에 혜성은 밖으로 나왔다. 어울리지 못하는 건 자신 뿐 아닐까 하는 생각은 은우의 모습을 보자마자 그대로 가슴 한구석으로 밀어넣을 수 밖에 없었다.
"너무 편한 거 아니야? 부장님. 쿠키 나도 먹어도 되지?"
집에 있을 때보다 한결 얌전한 옷차림으로 나타난 혜성은 은우의 옆에 앉으며 접시 위에 있는 쿠키를 집어들었다.
"수영장에 들어갔는데 꽃게에게 찝힐 때 짜릿하더라. 첫 날의 무슨 파티? 아무튼 그것도 그렇고 말이지."
아. 물론 절대로 그런 일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야. 싱긋 웃어보이면서 은우는 쭈욱 기지개를 켰다. 이내 그의 시선이 자신의 발가락으로 향했다. 그래도 문어 먹물 공격은 안당한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듣자하니 오늘은 모래에 또 뭘 했다는 것 같던데. 내일은 또 무슨 일을 할런지. 내일은 반드시 둘을 잡아다가 어디 묶어두기라도 해야겠다고 은우는 굳게 다짐했다.
물론 자고 일어나면 그냥 적당히 넘겨버릴지도 모르는 일. 확실한 것은 지금 당장은 그런 느낌이었다.
"괜찮잖아. 여기 내 펜션인데. 내 섬이고. 지금은 저지먼트로 있는 거 아니야."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 지킬 것은 다 지키면서 편하게 있는 거 아니야?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그는 키득키득 웃었다. 이내 돌아온 혜성을 바라보면서 그는 쿠키를 먹어도 되냐는 물음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이내 접시를 살며시 옆으로 옮겨주기도 하면서 그는 코뿔소 쿠키 중 하나를 집어서 그 안의 딸기잼과 비스킷 특유의 식감을 천천히 즐겼다.
"...뭐, 그래도... 그런 큰 싸움이 있었던 후니까... 조금은 풀어줘도 되겠지만... 아무튼 너는 잘 쉬고 있어? 사실 제일 큰 목적은 우리 3학년 동기 애들... 한동안 힘들었을테니까 지금은 3학년의 압박 좀 놓고 쉬라고 같이 오자고 한 것이 큰데 말이야."
2번째 이유는... 후배들도 고생을 많이 했으니, 지금 당장은 저지먼트 업무와는 상관없이 놀만큼 놀라는 의미로.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째서 한참을 찾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식사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사람과 마주하면 대부분 도주를 택하는 수경입니다만.. 그래도 말리기에는 이미 뭔가를 찾은 이지가 내밀고 있었습니다.
"조리할 거리는.. 주방에 조금 있어서 그것도 괜찮습니다." 즉석 스파게티를 내민 것을 좋게 거절하려 시도합니다. 물론 수경이 냉장고에서 찾은 건 유부초밥 키트 한 봉과 계란 정도였지만. 이것만으로도 나름 뭐 할만하지 않을까요? 스파게티를 결심하고 준 것이라는 걸 아는 듯이 수경은...
"명부에서 본 적 있습니다. 이지 양이 드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즉석 스파게티를 가리킵니다. 먹는 걸 지켜볼 수 는 있지 않겠습니까?
옛날부터라... 그게 어느 정도의 과거인지는 모르지만 어쨌건 꾸준히 했다는 점에서 대단하다는 말을 해 본다. 어린 아이가 스스로 악기를 다루고 싶어서 꾸준히 했다면 충분히 대단하지 않은가. 그게 아니라 누군가가 시켜서 했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겠지만, 지금은 굳이 그런 말까지 꺼내고 싶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연주를 잘 들어 놓고 갑자기 '누가 시켜서 배웠냐'라는 질문을 하기는 좀 그렇지 않은가. 리라가 드문드문 꺼낸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어쩐지 그럴 것 같아서 더욱 그랬다.
"그러냐."
심드렁한 것처럼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런 목소리로. 어깨에 다시 한 번 기대온 리라 대신 바다에 시선을 둔 채 반응하던 랑은, 이어지는 리라의 말에 잠시 이렇다 할 대답이 없었다. 약이 없으면 저지먼트 일과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 수도 있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을 이상하게 보지 말아달라는, 못미덥게 보이는 걸 두려워하는 것 같은 말 때문일까.
"...그랬으면 좋겠네."
만약 그 약이 없을 때 무슨 일이 생기는 거라고 해도, 자신이 뭔가 해줄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도 든다. 내가 뭐라고. 그냥 넘어갔어야 했던 것을. 오지랖을 심하게 부린 건 아니었지만 무리하지 말라며 본 걸 티 내지 말았어야 했나 싶어졌다. 숨기고 싶은 비밀이 존재한다는 건 이상한 게 아니다. 무슨 이유든간에. 그런 생각을 하며, 리라가 하는 말들이 이뤄질 수 있을까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이뤄지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일어 그랬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만다.
무리하지 말라는 말에 그럴 수 없다고 대답했어야 했는데. 시간을 보내며 자꾸 다가오는 너에게 조금씩 누그러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면서도, 네가 더 깊숙한 곳에는 발을 딛지 않기를 바란다.
"말해봐."
살짝 고개를 든 리라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랑은 바다에, 아니면 그 저편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그리 이야기했다.
은우의 자신감 넘치는 말을 듣자마자 꺼낸 말이었다. 맞는 말이여도 이렇게 말하면 또 느낌이 다르단 말이야. 하고 덧붙히며 접시 위에서 집어든 쿠키를 반으로 쪼개던 혜성은 나직하게 웃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예전보다 한결 심적으로 변해보이는 은우의 모습이 나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으로 쪼갠 쿠키를 한번 더 반으로 쪼개며 혜성은 은우의 말을 들었다.
"나야...개인실을 만들어줘서 나름 잘 보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마."
딱 한입 크기로 쪼개진 쿠키를 입에 넣으며 대답하는 목소리는 어떤 흔들림 없이 안정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자신이 지금까지 있었던 상황에 크게 기여한 건 없다고 생각하는것과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쿠키를 씹자 딸기잼의 단맛이 적절하게 입안에서 어우러져서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너랑 다른 애들이 더 고생했잖아. 늦었지만 수고했어."
쿠키를 우물우물 씹으며 반으로 쪼개져 있는 쿠키를 다시 반으로 자르면서 혜성은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맛있는 것을 먹고 있고 약까지 챙겨먹은 이상 어지간하면 예민한 반응은 보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안심이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맛인 미트볼 와사비 스파게티를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요. 나중에 빵과 함께 먹을 생각에 왠지 기분이 들뜹니다.
"…아."
그런데 방금, 제 이름이 불린 것 같아서 조금 뒤늦게 반응했습니다. 명부에서… 기억해주고 계셨던 걸까요. 그렇다면 제쪽에서 기억하지 않는 것은 역시 실례가 되겠죠. 그러나 불행히도 저는 기억에 자신이 있는 편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저는 기억해내기 위해 실례가 되는 것도 감수하고서 상대분의 얼굴을 한참동안이나 빤히 직시하고 있었습니다.
"…임수경… 씨?"
그 끝에 저는 조금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기억에 일치하는 것 같은 이름을 말해보았습니다. 정확한 기억이었다면 좋겠습니다.
낮게, 바다에 가깝게 날며 하얀 모래사장, 푸른 바다와 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를 드론의 카메라로 담는다. 모든 촬영이 끝나면 드론을 다시 가방에 챙겨 넣고서 금은 물가로 다가가 발을 담근다. 파도가 밀려와 다리를 적시고, 첨벙첨벙 발을 굴려보나 역시 자신을 물과 잘 맞지 않다 느껴 금방 뭍으로 올라온다. 금세 지루해져 모래사장에 누워 젖은 달리를 말린다. 따뜻한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눈을 감고 있다 보면 작은 게가 다가와 다리를 올라타고 지나갈까. 간지럽거나 놀랄 법도 한데, 미동 없이 누워있던 금은 갑자기 모래사장이 뻘이라도 된 것처럼 자신의 몸을 빨아들이자 그제야 눈을 뜨며 상황을 살핀다. 이 어이없을 상황에 당한 것은 자신뿐만이 아닌 것 같은데. 한숨을 내쉬며 또 누군가의 장난일까, 빠져나오려 몸을 움직이나 그러기 힘들어서. 온몸이 압박되고 있는 상태에 약간 숨을 쉬기 곤란하며 답답하지만, 나쁘지는 않아서. 아무래도 좋겠다 다시 눈을 감았으니 갑작스레 들어올려지면 발이 닿지 않는 지면을 내려다보며 눈을 깜빡인다.
"....."
모래 속에 박혔다가, 이제는 또 공중을 날고 있다라. 다시 모래사장에 놓이면 절 꺼내준 게 누구일까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성운을 본다. 너일까, 고맙다는 듯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인사를 보낸다. 그러다 제 드론 가방도 모래사장에 빨려 들어갔다는 것을 알아서. 혀를 쯧 차며 이 장난을 친 사람을 잡으면 바짝 태워버리겠다는 생각을 하며 금은 모래를 파헤치며 드론 가방을 찾는다.
"하핫. 어때? 이래보여도 누릴 것은 많이 누리고 있거든. 이렇게라도 해야지. 안 그러면... 아마도 여기서 못 버틸걸. 나는."
아주 간접적으로 표현을 하긴 했으나, 그것을 알아들을지의 여부에 대해서 은우는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못 알아듣는다면 그것으로도 좋았다. 동기 중에서도 지금 옆에 있는 이 애는 특히나 이런 어두운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었으면 했으니까. 그녀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런 이야기에는 닿지 않고 지나갔으면 했을 뿐이었다. 물론 이제와서는 너무 늦어버렸지만.
지금 이곳에 없는 제 외삼촌을 속으로 비난하며 은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건 나름대로 잘 보내고 있다는 그 말에 은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는 꽤나 안정적이긴 하지만, 과연 속은 어떨런지. 이곳에 오기 전의 일들만 해도 자신이 들은 것들이 어느 정도 있었고, 좋건 싫건 같은 반이기에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는 사이였다. 일단, 지금은 괜찮다고 판단하면 되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은우는 살며시 소파 등받이에 제 등을 받치면서 눈을 감았다. 등에 넣어둔 공기 압축 구체는 여전히 사라지는 일 없이, 그의 등에 붙어 천천히 위아래로 구르고 있었다.
"그렇게 따지자면...나는 애들 앞에서 꼴불견처럼 당해버렸는걸. 정신을 차리니까 병원이던데. 그러니까 고생은 너희가 더 했지. 너도 포함해서 말이야. ...고생했어."
뒤늦은 인사. 그것은 지금까지 꼭 해야만 했던 것을 미뤘던 것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안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는 그렇게 인사를 보냈다.
"있잖아. 너는 졸업하면 어쩔거야? 대학에 갈 거야? 아니면 취업을 할 거야? 뭐랄까. 우리 3학년이잖아. 슬슬 어떻게 할지를 정해야만 할 것 같지 않아? 한양이는 대학에 갈 것 같고, 태진이는...취업을 할 것 같고, 철현이는 대학에 가려고 공부하는 것 같고...너는 어떨지 아직 모르겠단 말이야. 참고로 난... 일단은 대학. 꼭 가고 싶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캠퍼스 생활이라는 거 한 번 해보고 싶어. MT라던가 그런 것들."
아마도 밖으로 꺼내는 이야기는 저지먼트로서의 업무, 혹은 3학구의 어둠 등 진지한 이야기가 아니라 소소한 일상 이야기에 가까웠을 것이다.
>>273 좀더 점잖게 구해내는 방법도 없지는 않을 것이나,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라. 단순히 몸무게를 가볍게 하는 것만으로 빠져나오게 할 수 있으면 좋지만, 한번 빨려들어간 물체가 퀵샌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건 무게도 무게이나 마찰력의 영향도 만만찮다. 그래서 중력감쇄보다는 역중력을 거는 게 더 효과적이다. 윤금이 마지막 조난자(?)였다.
성운은 같은 학년인지도 모르는 그녀의 손짓에 마주 손을 들며 웃어보였으나, 윤금이 다시 퀵샌드를 파헤치기 시작하자 성운은 윤금에게로 후다닥 달려내려갔다. 딱 봐도 뭔가 중요한 걸 찾는 것 같아서. 성운은 딱히 뭐라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으나, 역중력을 동원해 모래무더기를 들어내면서 윤금이 뭔가를 찾는 것을 도와주었다.
굳이 성을 붙여서 이지를 부른 것은.. 아무래도 성 쪽이 문제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려는 것이었겠지만. 본인 이름을 이상하게 기억하고 있던, 잊어버리던... 상관없기에 간접적인 것에서 그치는 거일 겁니다. 잊어버리면 괜찮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다가 역할이라는 말을 듣고는..
"역할...입니까?" 순간 멈칫합니다. 역할이라면 만든다는 것을 들은 것.다운 반응이라면 반응이기는 한데.
"푸딩 만드는 게 어려운 건 아니긴 합니다만.." 하고 싶지 않다.. 라면 강요하지.. 않으려 합니다. 라는 말을 하면서 조금 뒷걸음질을 해서 물러나려 하는 수경이네요. 물론 이지가 하는 생각을 들으면 그걸 넣으면 티가 나지 않겠습니까. 같은 말을 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수경은 독심술 초능력을 지니지 않았습니다.
그 시작이 어땠든 지금 대단하다는 말을 듣는 것 자체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어서 리라는 랑의 어깨에 이마를 기댄 그대로 웃음을 머금었다.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목소리 톤과 말투를 가만히 곱씹던 그는 잠시 눈을 감는다. 시각이 차단되면 소리가 더 예민하게 다가온다. 이를테면 바닷물이 철썩거리는 소리, 모래가 물에 끌려가는 소리, 바람 소리와 저 멀리에 있는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그리고 마주 앉아있는 사람의 숨소리 같은 것들. 조용하고 넓은 공간은 예민한 감각을 자극할 요소가 없어 안정이 빠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꼭꼭 숨겨오던 걸 들키게 된 데 비해 안정이 빨랐다. 스스로도 조금 의아할 정도로. 왜일까, 여행을 계획하면서 혹시 어쩌면 하고 미리 걱정했던 게 효과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단 한명에게만 들켜서 그런 걸까. 그것도 아니면.
리라는 감았던 눈을 뜬다. 약간 위쪽을 향한 눈동자에는 먼 곳을 보고 있는 랑의 옆얼굴만이 반사된다. 어딜 보고 있는 걸까. 물론 바닷가에 와서 바다를 보는 게 이상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랬으면 좋겠네, 하는 말은 어딘가 불확실한 구석이 있어서(물론 랑은 자주 그런 화법을 구사하곤 했으니 이상할 건 없었지만)평소 하듯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하는 건 왠지 내키지 않았다.
"뭐냐면~"
그래서 리라는 우쿨렐레를 잠시 옆에 내려놓고 몸을 옮긴다. 모래에 자국을 남기며 랑과 눈을 마주할 수 있는 각도로 자리를 다시 잡은 리라는, 랑이 그를 봐 주었다면 살짝 웃어보인 다음 조금 느리게 입을 열었을 것이다.
"15주년 행사요. 언니가 거길 갈 계획이 있는지 없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만약 갈 생각이 있다면 하루쯤은 저랑 같이 다녀 줄 수 있어요?"
느즈막한 것 치고 그 부탁이라는 건 평소에 하던 부탁이랑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같이 식사하자던가, 어디서 같이 놀자던가.
"그때 바쁘다면 어쩔 수 없지만~ 언니만 괜찮다면 그랬으면 좋겠어요. 물어보는 타이밍이 좀 이상하긴 했죠? 원래 지금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말 나온 김에 얘기하고 싶어져서."
바나나우유까지는 허락해주겠다며 아지는 팔짱을 끼는 것이다. 꼴사납게 반쯤 묻힌 주제에 화난 티라는 티는 다 내고 있다.
"그렇죠~ 기분이 안 좋을 때도 좋을 때도 바다는 잘 어울리지 않아요~?"
의외로 아지도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있는 법이었다. 기분전환하는 데에도, 텐션을 더욱 고양시키는 데에도 바다는 좋았다. 하긴 아지가 어디야 안 좋아하겠느냐마는... 동월을 끌어당기지만 넘어트릴 수는 없는 모양이다. 영문도 모르면서 아지는 성난 숨소리만 뿜는다.
"왜요~?"
회전컵에서 영혼과 육체가 아직 분리된 적이 없는 아지가 천진하게 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정말 순수한 표정이다. 그야말로 폭풍 전야같다.
"으에에에에엑~~~"
아지가 입을 떡 벌리고 파도를 목격한다. 반사적으로 움직이려고 하지만 어쩐지 몸이 평소보다 잘 가누어지지 않는 것도 같다. 동월을 쳐다보는 얼굴이 충격에 가득 차 있다. 워리 형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
.dice 1 3. = 3 1. 어푸풉! 그대로 파도를 들이받아 해초가 머리위에 올라앉아 있는 게 진짜 인어공주가 되었나 보다. 2. 겨우겨우 모래에서 빠져나와 비틀거리면서 도망쳤다! 그리고 OTL 포즈가 되어 숨을 몰아쉬고 있다 3. 모래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지만 동월의 다리를 붙잡고 있는 데는 성공했다. 물귀신이다!
그걸로 좋은 거냐는 말을 삼켰다. 그런거라도 없었더라면 못버틸거라는 말을 들은 이상, 물어볼 수 있을리가 없었다. 혜성은 쪼갠 쿠키를 입에 밀어넣고 천천히 턱을 움직이며 침묵을 지켰다. 저런 말을 들었는데 뭐라 말을 덧붙힐 수 있을리가. 게다가 자신도 레벨 3이 되고 약간의 지원금을 받고 있으니까, 지원금을 받았을 때 기쁘기는 커녕 지독한 혐오를 느꼈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기로 했다. 여기까지 와서 어둑한 이야기로 분위기를 망칠 필요 없다.
은우에 대한 사실이 밝혀졌을 때 은우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어둑한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게 옳겠지만. 에어컨이 가동하는 소리와 자신이 쿠키를 씹으며 다른 쿠키를 반으로 쪼개는 소리만 침묵을 건드렸다. 침묵이 숨막히지 않는 건 후배가 아니라 동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치면 나도 끝나자마자 병원에 입원하긴 했는데.. 네가 쓰러졌다고 해서 네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건 아니잖아?"
아, 이건 나도 해당사항이 되나. 하고 혜성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은 얼굴을 한 채, 실없는 농담을 꺼냈다. 감사인사에 대한 대꾸라고 쳐도 좋았다. 머리카락이 살랑살랑 흔들리는 기분좋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쿠키를 먹고 있던 혜성은 묻은 부스러기를 접시 위로 털어냈다.
"갑자기 진학 이야기를 꺼내는 거야? 3학년이니까 생각해야하는 건 맞지만 좀 당황스러운걸."
진학 이야기에 쿠키를 먹던 혜성의 손이 멈칫 하더니 곧 가지런히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놓으며 눈을 깜빡였다. 은우에게서 들은 3학년들의 생각은 예상대로인 것도 있었고 의외인 것도 있었다. 의외라고 생각한 건 은우의 대학 진학 이야기였다. 막연하게 얘는 진학이 아니라 취업으로 생각했는데. 그나저나 다들 생각하고 있구나. 나랑 다르게. 으응, 하는 앓는 소리를 내면서 가지런히 포개고 있던 손등 위에 턱을 괴며 혜성은 고개를 갸웃한다.
>>300 잔뜩 뽀다다담 쓰다듬고, 후배님 최고 칭찬하며 아껴주고 싶은데 금이가 그럴 성격이 안 된다는 게 슬프네요. 우으으으 😫
아무튼, >>285에 반응하자면, 다가와서 도와주는 것에 의아하게 바라볼까요. 살짝 눈가를 찌푸린 채 모래를 파헤치다가, 찾으면 잠깐 표정이 밝아질 테고. 그러면 도와준 성운이를 말끄라미 쳐다보다간, "이렇게 도와줄 필요는 없었을 텐데요. 일단 고맙습니다." 하고 악수라도 하자는 듯 손을 내밀겠네요. uvu.
기말고사.. 하얀 소년은 공부를 꾸준히 해두는 편인 인물이었으나 성적이 무척 좋은 쪽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저지먼트 활동과 궁술 연습에 신체 단련에 커리큘럼에 빵집 아르바이트를 까지 하고 있으니, 공부 시간이 충분치 못했다. 거기다 까마귀들이 난장판을 피우는 판이니.. 전부 잘 끝나서 다행이라는 마음은 강했지만, 아무래도 강행군 같은 스케쥴이기는 하였다. 양궁 대회? 평소처럼 하면 되는 것이므로 준비가 필요 없었기에 패스.
"그렇죠~ 제 친구들도 그걸 좀 알았으면 좋겠는데."
꾸준히 조깅을 하고 있다는 말에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진정하. 여로는 최근 줄넘기도 넘고 하는 것 같은데 진정하는 잡아 끌지 않으면 달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양궁부도 꾸준한 걸 보면 몸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왜 그럴까? 하얀 소년은 옅은 한숨을 내쉬고서 성운에게 생글생글 웃어보였다. 한숨부터 웃음까지, 꾸며내는 것이다만 아주 거짓말은 아니다.
"아~ 그렇다면."
최근 모집을 안 했던 것이 떠오른 소년은 게시판에 메모를 붙여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방긋방긋 성운을 향해 웃었다. 파티 가입을 권유하는 파티장의 모습이 보이는가? 정확하다.
"제가 개인적으로 저지먼트 조깅 파티 같은 걸 하고 있거든요? 저랑, 경진이랑, 여로랑 정하랑, 아지, 리라 선배에 낙조 선배도 계시고."
정확히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진 알 수 없었다. 자신은 보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녀라면 그녀 나름대로 열심히 했을 것이라고 은우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제 오늘 알던 사이도 아닐뿐더러, 이러니저러니 해도 할 때는 하는 이가 아니던가. 스스로는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어쨌건 그 관련으로 논쟁을 벌일 생각은 없었기에 그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조금 더 편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가 혜성을 살짝 바라보면서 그는 등받이 쪽을 콕콕 가리켰다. 자신처럼 조금 더 편하게 자리를 잡아도 상관없다는 듯이. 물론 어떻게 할지는 그녀의 자유였다.
"밖의 고3은 어떻게 생활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밖의 고3이라면 이런 이야기 하고 있지 않을까. 서로. 드라마나 인터넷 같은 거 보면, 대체로 다들 그런 이야기 나누는 것 같던데. 조금 애매했나?"
나름대로는 일상적인 것을 이야기해볼 생각이었지만 이건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하며 은우는 절로 팔짱을 끼고 음... 소리를 냈다. 이게 아니었나. 어렵네. 그렇게 생각하던 그는 그러다가 아무렴 어때. 라는 느낌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취업이라. 너는 취업이구나. 막연하면 어때. 아직 시간은 많은걸. 아무튼 그렇게 의외야?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해보고 싶거든. 캠퍼스 생활이라는 거 말이야. 뭔가 되게 재밌고 즐겁다고 하니 말이야. 물론 마냥 그런 것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지만..."
밤을 새는 과제 라이프? 버스 타는 조별 과제?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말하면서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가 이내 그는 다시 편안하게 이야기했다.
"정작, 이렇게 말하는 나도 그냥 그럴까 생각만 하는 거지. 명확하게 딱 계획을 잡진 않았어. 그냥 하고 싶으니까 가볼까! 정도인거지. 괜찮잖아. 한번밖에 안 사는 인생. 조금 즐긴다고 해도. 너는 그런 거 없어?"
저지먼트는 휴양중! 이라는 명목 하에 은우의 섬으로 놀러 온 것도 벌써 며칠이 지났으려나? 한동안의 고생에서 놓여나면 사람이 조금은 흐트러질 법 하다고, 때아닌 코뿔소들의 난전(?)에 휘말린 그녀는 미술실의 흉상처럼 가슴 밑으론 전부 묻혀버린 채 저 멀리의 난장판을 마주하고 있었다.
"이거 완전 라이노 파티가 아니라 라이노 시빌워네여~"
마치 그 옛날 친구들끼리 단체로 하는 '소꿉놀이'라는 것처럼 특수부대와 레지스탕스로 편이 나뉘어 저마다의 기발한 공습을 하는 것을 지켜보던 그녀는 몸을 천천히 좌우로 움직이더니 삽을 들고 있던 한쪽 손을 빼내어 주변을 조금씩 삽삽 파내기 시작했다.
"...롸?"
그러면 조금씩 몸이 드러나야 할텐데... 어째 파도파도 그자리인 것이 개미지옥 같았을까?
"이이익..."
손에 힘을 잔뜩 주고서 삽으로 모래를 떠내는 속도가 빨라지더니 그제서야 다른 한쪽 팔도 자유로워졌을까?
"아아~ 인생이란 모래로 만들어진 카누 같아여~~"
이상한 내용을 가진 노래를 부르며 마치 노를 젓듯 모래를 크게크게 파내자 서서히 몸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다음이 고비였을까... 도무지 하반신은 나오질 않았으니...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흥겨운 가락과 함께 삽질을 계속 하던 그녀는 그때가 되어서야 뻗어져오는 도움의 손길에 삽질을 멈추고서 손잡이부분을 내밀어 끌려올라왔을까?
"하마터면 토끼모래구이가 될뻔했네여~"
부르르 몸을 털고서 다시금 주저앉은 그녀는 저 옆에 반쯤 묻혀있는 금속배트를 쥐고서 자기 앞 모래밭을 탁탁 두드렸다. 다행스럽게도 여기는 도로 빠지지 않는 모양이다.
라이노 시빌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쩌다 이렇게 됐지ㅋㅋㅋㅋㅋㅋㅋㅋ 동월아 우리 큰일났어 이거 섬에서 살아서 나갈 수 있나
>>332 내 누추한 눈으로(후략) 이런 걸 봐도 되나... 이런 걸 볼 수 있어도 되나 어디 루브르 같은 데에 23단으로 보호해놔야 할 거 같은데 눈 반짝이는거 너무 좋아 근데ㅋㅋㅋㅋㅋㅋㅋㅋ 저게 모래찜질 직전의 모습이구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 토끼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고 최고인데 잡히면 안될거같다 튈게
저는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상대분께 한 발짝 더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왜인지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왜일까요. 물론 푸딩을 만드는 것이 제게 부여되지 않은 역할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저지먼트 부원분인 이수경씨가 푸딩을, 아무래도 도저히 혼자서는 만드실 수 없다거나 하다 못해 품질을 감독할 사람이 한 명 정도는 더 필요한 상황에 처하고 계신거라면. 저는 얼마든지 그것을 도울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그야 푸딩… 맛있을 것 같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던 저는 돌연 어떤 사실을 떠올리고는 행동을 멈칫거렸습니다.
성운의 반응은 정말 하나 같이 걸작이었다. 물에 빠질 때에도, 빠져나와 놀래켰을 때에도, 자그마한 몸집의 동물- 가령 설치류가 깜짝 놀란 듯한 리액션이 나왔다.
"아하하!"
정말로, 얼마만에 그렇게 크게 소리 내었을까. 폭포 소리도 잠시 묻힐 만큼 경쾌하게 웃었다. 그리고 뻔뻔한 얼굴로 성운을 보았다.
신이 난 듯 웃는 나와 달리, 이 작은 선배는 잔뜩 울상을 하고 소리쳤다. 저를 속였다면서, 역시나 설치류들이 소리 지를 때처럼.
"딱히 속이진 않았는데- 그냥 조금 늦게 나온 것 뿐인데-"
그러거나 말거나 라는 듯이 뻔뻔함을 유지했다. 지금까지라면 또 물 속으로 끌려들어가거나 또 떨어지거나 할 지도 모르지만 처음부터 무서운 것도 아니었으니 해도 상관 없었다.
하지만 성운의 움직임은 물 속이 아닌 물가로 향했다. 억울해 죽겠다는 얼굴로 눈물까지 글썽였으면서, 이 이상은 못 하겠는 걸까. 말랑하고 따끈한 몸에 매달려 발이 닿는 수심에 다다를 때까지 그런 성운의 옆얼굴을 물끄러미 보고만 있었다.
물가로 가는 건 오래 걸릴 일도 아니었다.
어느새 발 밑이 닿고 한 발짝만 걸어도 허리 아래가 드러날 만큼 얕은 곳까지 오자 알아서 성운에게서 떨어져 일어섰다. 하얀 수영복과 젖은 몸 위로 반투명한 비치 가디건이 찰싹 달라붙어 있어서 가장자리를 잡고 슬쩍 떼어내자 이곳저곳 맺혀 있던 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럼에도 물이 뚝뚝 흐르는 옷이며 늘어진 머리카락을 잠시 만지작거리다가 중얼거렸다.
"...안 돌아가면 좋겠네- 시간이 이대로 멈춘다던지."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어줄 리 없었다. 시간은 흐르고 있고 언젠가는 인첨공으로 돌아가야 했다. 피식,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숨을 흘리고 물 속으로 다시 첨벙첨벙 들어갔다. 외롭게 둥둥 떠있던 튜브를 잡아 팔에 끼고서 물에 잠긴 채로 성운을 돌아보고 말했다.
"...." 한발짝 다가오면 한발짝 물러나고. 부엌의 끝까지 다가가면 못 피하다 못해 결국 도주를 택하겠지만.. 다행히도 푸딩 레시피를 묻는 이지입니다.
"...요리책에 따르면 계란과 우유와 생크림과 설탕과 바닐라와 젤라틴...을 데우고 섞고 굳히면 된다고 합니다." 순서에 따라 섞어야 한다고. 그냥 막섞으면 달달한 계란찜되는거 시간문제인데. 푸딩을 어떻게 만드는지 묻는 이지에게... 더 이상 물러나지 않으며 말하려 합니다. 역할 얘기는... 지금은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요?
"....만드는 게 싫지 않다면...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권유를 한번 더 하려 하면서 주방의 기물을 대충 봅니다.
정작. 수경은.. 간이나 시식평을 이지에게만 시킬 것 같지만요. 어쩌면 이걸 맡기는 게 역할이라면.. 좋은 인선일지도.
예상치 못하게 들어오는 은우의 말에 혜성은 눈을 깜빡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맞는 말인데. 분명히 맞는 말인데. 쿠키를 쪼개고 있던 혜성의 손이 은우의 어깨로 향하더니
"얄미우니까 한대만 때려도 돼?"
하는 말과 함께,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아프지 않게 은우의 어깨를 때린 혜성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보였다. 그 제스처는 편하게 기대라는 은우의 행동에 대한 대답임과 동시에 어이없음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밖의 고 3이라는 말을 들었을 땐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내리고 은우와 비슷하게 푹 기대긴 했지만 말이다. 천장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혜성은 가늘게 눈을 떴다. 밖에서 고 3은 어쨌더라. 제 오빠가 고 3을 어떻게 보냈는지 떠올려보다가 양무릎을 당겨서 팔로 감싼다. 얼마나 됐다고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기 때문에 한 행동이었다.
"밖에서 너만큼 돈이 있으면 진학은 꿈도 안꾼다는 건 알려줄 수 있어. 그정도 돈이면 밖에서 놀고 먹어도 충분하거든. 그리고 인터넷이랑 드라마는 비현실이야. 보통 고3이면 이렇게 논다는 생각 못해."
천장을 바라본 채팔로 무릎을 감싼 혜성이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곧 혜성은 약간의 장난기가 섞인 목소리로 물음을 던졌을 것이다.
"일단 연애부터 할 생각은 없어? 우리 부장님의 연애는 내가 졸업 전에 꼭 보고 싶단 말이야."
은우를 돌아보는 혜성의 새파란 눈동자가 장난기 섞인 목소리와 똑같은 장난기가 담겨있었다. 꼭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 평소와 같은 표정과 눈빛으로 돌아온 혜성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내 개인적인 생각때문에 그런거니까 네가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냥 난 지금을 버티는데 급급한 상태라서 더 멀리까지 생각하기엔 여유가 없거든."
우쿨렐레 소리도, 말소리도 멈춘 밤의 해변가는 자연스러운 소리로 가득 차 있지만 부산스럽지 않다. 이게 자연스럽다는 것 자체일까. 소리는 끊임 없으나 조용한 그런 장소에서, 자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리라가 몸을 움직여 자신이 보는 방향으로 오자 랑은 시선을 내려 자신을 보는 리라와 눈을 마주쳤다.
부탁을 하기 위해서일까. 그런 생각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듯 리라의 입에선 15주년 행사 때 하루 정도 같이 다니고 싶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말마따나 이 화제는 예상하기 어려운 흐름으로 튀어나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와서는 안 되는 말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문제는 그에 대해 자신이 대답을 해야 한다는 점이겠지.
"......"
평소처럼 그럴까, 하는 말도, 글쎄. 라는 말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는 리라의 눈을 마주보면, 몇 번이고 마주쳤던 얼굴이고 눈동자임에도 조금 다른 것 같은 느낌이다. 어떠한 예지나 예감, 능력으로 인한 감각 같은 게 아닌 자신이 나면서부터 가지고 있었을, 자라오면서 자연스럽게 갖춰졌을 그런 감각이 리라의 똑같은(엄밀히 말하자면 똑같은 건 아니지만) 얼굴을 보고서도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말을 해야 하는데, 랑은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에 더 이상 리라의 눈을 마주보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길쭉한 속눈썹이 내려앉는 눈꺼풀 따라 내려와 방금까지 드러나 있던 눈동자를 가렸다.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약속을 할 수 있을까.
"...노력해 볼게."
꺼낼 수 있는 최대한의 긍정이었다. 자신이 없다. 그렇다면 거절했어야 했다. 깨끗히 거절한다면... 지금까지의 너라면 잠깐 시무룩해지더라도 금방 털고 재잘거려 주겠지. 그게 옳았다는 걸 알면서도 랑은 그리 대답하고 말았다.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만족할 수 없는 최악의 대답. 평소에 확실하게 대답하는 편이 아닌, 그런 사람이었다고 해도 형편없는 대답이다.
관계가 끊기더라도 아무 일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남아 있어야, 계속 너는 밝은 곳에 서 있을 텐데. 그저 호기심으로 잠시 건너오더라도 다시 되돌아가는 그런 존재로 남아 있기를 바라면서도. 나 역시 그 곳에 머무르고 싶다는, 분에 넘치는 소망이 마음 한 켠에 뭉쳐져 있었던지라. 네가 내미는 손을 깨끗하게 쳐낼 수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덥썩 붙잡을 수도 없었다. 내밀던 손을 멈춘 채 오므린 손처럼, 지금 나는 네게 그런 대답을 하고 있었다.
책에 쓰여진 정보의 힘을 빌리는 것이군요. 과연 현명한 생각이라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요리는 사소한 정보의 차이로 결과물이 크게 뒤틀어지는 모양이었으니까요. 예를 들어 사과 푸딩에 와사비를 넣지 않았거나 적게 넣었다면 크게 탈이 나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죠.
"그럼, 저는… 무엇을 하면 될까요…?"
저는 최수경씨게 여쭤보며 푸딩을 본격적으로 만들 준비를 시작하려 했습니다. 먼저로는 아무래도 준비물일까요. 방금 언급되었던 재료나 기구를 준비해 놓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요리책이 아닌 것은 짐작으로 해야 합니다만..." 맛있다. 정도의 말만 하는 편인 수경으로써는 레시피 따내기? 못하는 게 당연합니다.
"....순서에 따라 재료를 넣고... 지시하는 행동을 하는 건 저입니다." 그러면 이지 양은....이라고 잠깐 뜸을 들이다가.
"혹시 넣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걸 가져와서 보여주신다거나 하고.." "맛이 제대로 된 것인지 봐주셨으면 합니다." 푸딩을 처음 만들었을 때에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수경은 그다지 미각적인 이점은 없다고 말하는 터라. 간 종류는 타인이 보는 게 더 좋다고 주장합니다.
"음..." 계란을 깨고, 설탕과 바닐라를 넣고 휘저은 뒤 우유를 데우고, 생크림과 함께 넣는 것이 수행됩니다. 이 단계가 끝나고 액체가 나온 상태에서 이지가 넣을 만한 걸 보려 하네요.
물론 아프지 않게 때리기야 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일부러 오버하듯이 그렇게 장난스럽게 이야기했다. 생각해보면 얘에게는 묘하게 맞는 것이 많았던 것 같은데. 등짝이라던가, 정강이라던가. 기분 탓이지? 이거? 그런 생각을 곰곰히 하지만 명확히 답이 나오진 않았다. 하기사 이 정도는 친구끼리 때릴 수도 있고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괜히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맞은 부분을 손으로 문질문질, 마치 보란듯이 문지르다가 그는 손을 내렸고 대신, 쿠키를 살며시 잡았다.
"그래? 그래도 괜찮잖아. 너나, 나나, 다른 애들이나 모두 보통 고3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여기서는 이게 보통 고3인 것으로 쳐도 괜찮지 않겠어?"
인첨공은 넓은 세계와 비교한다면 아주 작은 땅이었고, 절대로 그 땅의 모습이 일반적일 순 없었다. 하지만...그럼에도 자신들에게는 이제 이게 세계의 전부였다. 무엇보다 초등학생때 이곳으로 온 은우와 세은이에게는 더더욱 이곳의 모습이 자신들의 상식을 구축하는 재료였으며,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물론 혜성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연애? 하핫. 글쎄. 적어도 올해 지금까지는 생각 자체를 해보질 않았는데... 연애라고 해도 말이지. 나 좋다는 이가 있어야 하는 거지. 그렇다고 아무하고나 하고 싶은 것은 절대로 아니고... 생각은 있고, 해보고 싶기도 하고..."
거기서 아주 잠시 긴 침묵을 은우는 보였다. 그 침묵 속에서 그는 코뿔소 쿠키를 천천히 한 입 베어물고 씹었다. 그리고 그는 피식 웃었다.
"설사 내가 좋다는 이가 있다고 쳐도, 그게 정말로 순수하게 날 좋아하는 것일지, 아니면... 에어버스터를 좋아하는 것일지... 그런 것을 생각해버릴 것 같은 내가 정말로 싫어. 아. 정말 싫네. 싫어."
마지막 부분은 별 감정이 섞이지 않은 추임세처럼 적당히 흘려보내면서 그는 가만히 혜성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대체 그게 무슨 생각인지는 굳이 묻지 않겠지만... 적당히 현실에 대해서 불평을 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나에겐 해도 돼. 아. 물론 현실에 대한 불평일진 모르겠지만...그냥 그런 거 있잖아? 대답 같은 거 바라지 않고, 그냥 일방적으로 말하고 시원해지는 그런 거 말이야. 적어도 나에겐 그래도 된다고. 딱히...무슨 해결책을 제시해주거나 조언을 하거나 할 생각은 없기도 하고..."
해달라면 해주겠지만, 그런 것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보이진 않아서. 그렇게 말을 덧붙이며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바람을 쐬면서 숨을 후우 내뱉었다.
"...아니면 아침 일찍 절벽에 올라가서 힘껏 허공에 외쳐봐. 그러다보면...속이 시원하더라. 난 가끔 그래. 학구장 대표 이 개XX야! 라던가 식으로 말이야."
블랙 크로우 토벌 주간과 기말고사가 겹쳤을 때는, 성운은 결국 염치불구하고 칼리 체육관에 통화하여 한 달 스케줄을 통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저지먼트 활동에 공부에, 심지어 성운은 그 동안 이사까지 하느라 바빴으니 말이다. 그 이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었고. 거의 대부분의 시설이 갖춰졌지만, 아직 빈 방에 가득 채워놓은 쓰레기들을 내다버려야 한다. 돌아가는 즉시 내다버릴 예정이다. 그러다, 이경이 내어놓는 전혀 뜻밖의 이야기에 성운은 눈을 땡그랗게 떴다. 조깅 소모임이 있었다고?
“어라, 저 그런 이야기 처음 들어요······.”
아지, 리라. 심지어 그 명단에 잘 아는 이름이 둘이나 있다. 아지야, 리라야, 그런 좋은 게 있는 줄 알면서 날 버린거니?
“저야, 끼워주시면 좋─가만, 낙조요?”
그때, 명단에서 봤다가 어라? 했던 그 이름이 다시 나왔다. 성운은 잠깐 주저하다가, 눈을 깜빡이더니, 이경에게 조심스레 되물어보았다. 낯선 지명과 함께.
저는 그 말에 조용히 냉장고로 다가가 비축되어 있는 생와사비 페이스트를 있는대로 가지고 들고왔습니다. 만들어질 푸딩에 와사비를 넣는 것. 그것이 이번의 저의 역할입니다. 아마도요. 하지만 비축되어 있다고는 하더라도 세 개를 찾는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이 중 둘은 제가 들고 왔던 것이니까요.
"……저어."
저는 그것들을, 현재 레시피를 수행하고 계시는 김수경씨의 눈 앞에 조심히 펼쳐 보여드렸습니다.
그녀의 침묵에 철현 또한 무어라 말하지 않는다. 이런 침묵에서 무엇인가를 유추할 정도로 똑똑하지도 않다. 즐겁냐는 말에 섣불리 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 시켜서? 하지만 누가? 적어도 자신이 아는 저지먼트 부원들은 남에게 이런 쓸 때 없는 부조리를 강조하지 않는다. 누군가 시키지 않았다면 즐겁지도 않은 일을 왜 하는 걸까? 하지 않는 게 더 힘들어서? 스스로 무엇인가 경계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등의 어려움이 있는 것일까?
"왜?"
빗나가면 안된다고 말하며 그녀의 억양이 조금 강해졌다. 철현은 그녀의 말에 다시 한번 왜라고 묻는다. 엄밀히 따지면 철현의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다. 총의 본 용도를 목표를 쏴서 맞추는 것이 맞으니까. 그러나 지금 그녀와의 문답을 하다보면 저절로 '왜?'라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빗나가면 안되는 이유가 단순히 목표를 맞추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 것 같았다.
"혹시 총을 쓰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거야?"
물론 총은 뛰어난 무기다. 그 역시 처음으로 부탁한 무기가 무거운 중기관단총이었으니까. 다른 이들 또한 어중간한 능력자보다 권총 한자루가 더욱 위협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이렇게 마음 편히 쉬는 날까지, 제압용 총을 가지고 다니지는 않는다.
랑이... 다시 읽어보았지만 타인의 삶에 깊게 엮이고 싶지 않은 것, 그리고 타인 역시 자신을 그저 스쳐 지나가가며 외면했으면 하길 바라는 것은 역시 '겨우살이'와 엮인 비설 때문이겠지요? 뭔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 같기도 하고, 고독을 받아들여야 한다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는게... 그러면서 마음 한 부분으로는 포기하지 못한 것 같으니.... 정말 불안해 보이네요...
긴 속눈썹이 드러나 있던 눈동자를 가리는 모양을 가만히 바라보는 리라는 시선이 더 이상 마주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뗄 줄 몰랐다. 무슨 대답이 돌아와도 괜찮다고 마음 먹은 것과 달리 돌아오는 말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박동한다. 선택권을 쥐여줬으면 상대의 선택에 온전히 따라야 하고, 그걸 뒤끝 없이 따를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한데 오늘은 전제부터가 틀려먹었다. 기대를 품고 뱉은 말은 적어도 부정이 아닌 답을 원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긴 침묵을 거쳐 꺼내진 말이 반갑게 느껴지고 마는 거다. 비록 불확실하더라도, 다소 애매하고 미리 계획하기도 불가능한 답변이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불확실한 노력은 노력이 아닌가, 명확함을 기대할 수 없는 약속은 약속이 아닌가. 지금은 이걸로 충분하다.
"좋아요!"
리라는 활짝 웃는다. 말버릇처럼 하던 정말, 이라는 확인조차 미뤄두는 건 말을 철회할 기회조차 주지 않겠다는 무언의 선언에 가까웠다.
"그때 시간 났으면 좋겠다. 행사가 정확히 어떻게 열리는지는 모르겠지만 건너건너 들은 내용만 보면 꽤 크게 하는 것 같더라고요. 하긴~ 이쪽에 지원해 줄 인력까지 죄다 몰아 썼으니까 그 정도는 해 줘야지. 그쵸?"
기대 반 환멸 반의 말을 던지는 목소리는 꽤 즐거운 거 같다. 리라는 랑의 속눈썹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손의 위치를 조금 옮겨 랑의 손끝을 가볍게 쥐어보려 한다.
"저도 노력할게요. 하루는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한 시간이니까 온전히 비워두려면 미리 해치워 버려야 할 일이 많겠죠. 힘내서 다 치우고 하루쯤은 온전히 비워놔야지~"
아직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았지만 상상하는 것 정도는 자유 아닌가. 어느새 표정은 한결 풀려있었다. 평소보다 더 편안한 얼굴로 리라는 웃는다. 소금기 섞인 밤공기에서 이른 여름 햇빛 냄새가 섞여 날아온다. 아침이 밝으려면 아직 한참 멀었는데 이상한 일이다. 모래를 헤집어서 숨어있던 게 튀어나오기라도 한 걸까. 하지만 그 이질적인 향기가 나쁘지 않아서 리라는 그저 숨을 한번 들이킨다. 바닷물 탓에 조금 얼었던 폐가 부드럽게 녹아내려 기능하기 시작한다.
>>487 uhu!!... 다행이에요. 상황이라. 역시 바다에 왔으니 바다 일상이 좋을 것 같은데, 아까의 소란의 범인을 찾는 것도 재밌을 거 같기도 하네요. "검도부. 아까 소란의 범인 못 봤습니까?" 하면서 우당탕탕 사건을 지켜보던 동월이에게 금이가 모래범벅으로 드론 가방을 든 채 말을 건다던가 하면서요.
애린의 삽 끝에 걸리는 모래의 무게가 뜬금없이 가벼워진 게 그때였다. 아니 가벼워지는 정도가 아니라, 숫제 흙들이 염동력으로 들려올라가기라도 하는 듯이 애린의 몸을 타고 「흘러올라」가고 있는가 싶더니, 애린 주변의 모래가 어느새 급속도로 비워져 움직이기 좋을 만한 구덩이가 되었다. 한양인가? 하고 보면, 서한양이라기엔 너무나도 키가 작고, 머리카락도 하얗고, 무엇보다 애린의 것과는 조금 다른 색을 하고 있는 보라색 눈동자가. 다른 세계에서 온 소동물 같은 똘망똘망한 눈을 한 조그만 게 애린이 내민 손잡이를 잡고는 읏차! 하고 끌어당겼다.
“괜찮아요?”
앞서 몇 명의 학생을 퀵샌드에서 빼내주느라 조금 지쳐 있는 무고한 구조자는, 가엾게도, 애린의 심상찮은 눈빛에서 잠시 뒤 자신이 곧 모래에 파묻히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야 일단 물어보는 게 맞으니까. 그리고 물어보면 안된다고 하면서 도망가면 못때리잖아?"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대꾸하는 목소리가 평이하다. 아니 장난스레 반응하는 은우와 똑같이 장난스럽다는 느낌이 담겨있었다. 한번 더 때릴 것처럼 손을 들다가 키득거리는 건 역시나 같이 지내온 동기들만 볼 수 있는 편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은우만큼은 아니여도 혜성또한 3학년들을 편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기도 했다. 쪼개둔 쿠키를 입안으로 넣은 혜성의 표정은 부드럽게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보통... 그래. 평범한 고 3일지도 모르겠네. 은우 네 말대로."
은우의 말대로라면 자신은 이미 이곳에서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인지하면 약으로 인해 차분히 가라앉아있던 감정이 다시 뾰족하게 가시를 세우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들, 오래 이곳에서 지낸 사람이 자신을 이해할 수 있을리 없기 때문에 혜성은 가시를 삼켰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말해도 이해받을 수 없는 자신의 어둑한 감정을 이 즐거운 한때에 내비칠 수 없음이 분명할테니까.
"할 생각이 있다고 했으니까 이상형 정도는 있겠지? 부장. 원래 이런 곳에 놀러오면 이런 이야기 하는거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혜성은 장난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연애야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왠지 저렇게 말하면 캐묻고 싶은 것이 19살 여자아이의 마음이지 않은가.
"그거 지금 인기 많다는 말을 돌려서 하는거지? 되게 재수없긴 한데 무슨 말인지 알것 같아서 재수없다는 말을 못하겠네. 아, 재수없다는 말을 해버렸다."
은우를 흘겨보던 혜성의 눈이 의도적으로 도로록 굴러갔다. 굴러간 혜성의 눈은 쿠키를 향해 떨어진다.
"나도 무슨 생각을 하는 중인지 몰라서 대나무 숲에 대고 말할 수가 없는데 어쩐다-"
말 끝에 혜성은 장난스레 웃음을 터트렸다. 친한 사이는 맞지만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을 수 없었다. 그런 것이다. 친하기 때문에 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거 에어버스터 욕설 논란이라고 적혀도 할 말 없겠다. 그래도 좀 나아졌으니까 괜찮아."
성운이 아침밥을 차릴 즈음, 경진은 그걸 돕겠다면서 주방에 제 몸을 구겨넣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성운이 아까 질문에 긍정하는 답을 했다면 어떻게…? 라고 하는듯한 표정이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돕는다 하더라도 사공이 많아지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 성운이 그걸 염려했다면 곧 설거지와 뒷정리만 도맡는 경진을 보고 한시름 놓았을 것이다. 혹시나 오순도순 요리듀오를 기대한 것이라면 미안할 일이지만…
그리 돕는 와중에 층계참이 훤히 보이는 자리에서 최대한 버팅기고 있는것이 성운에 눈에 들었을지는 모르겠다. 사람들이 깨 한둘씩 내려올 즈음엔 인영이 보일때마다 시선을 그쪽으로 굴리고, 신원 확인된 후엔 하던 일 마저 하려 신경을 끈다. 성운이 끓이던 국이 완성될적엔 경진이 이미 옆에 와선 한손 카운터 끝자락에 걸친채 삐딱하게 기대 서 있다.
“복수 좀 할게요.“
성운에게 그리 속삭이고선 숟가락 하나 가져와 펄펄 끓는 국을 퍼올렸을 것이다. 이쯤에서 경진이 국숟갈에 소금 잔뜩 풀어 먹는 사람 인상쓰게 할 장난을 치려는 것인가, 타당한 의문이 들 법 한데 경진은 그대로 숟갈 밑을 빈 손으로 받치고 등 돌려 마침 내려온 긴 백발(끄트머리는 실수로 잿물에 빠트린 양 회색끼 감도는)의 여성에게 말을 걸었을 것이다.
“리라 선배.“
표정 한번 투명하다. 무언가 반응을 기대하는듯 반짝이는 눈빛에 수상한 의도 다분한게 훤히 보인다. 먹어달라고 직접 말은 하진 않고, 대신 숟가락 든 손을 살짝 리라 쪽으로 들이밀었다. 당해줘도 국숟갈에 뭔짓 하지도 않아서 그냥 맛있을 테다.
먹을것 갖고 장난치면 선 넘는 것인데다 상대는 전직 아이돌이니 받은 음식에 괴상한게 섞여들어있던 경험도 없잖아 있으려니 싶어, 즐기자고 하는 짓에 속 긁기 싫어 소심해진 스케일의 복수다. 여기에 뭐 이상한 짓거리를 했나 업보삼아 상대도 똥줄이나 타보라는 심보로 리라를 가만 내려다봤다.
>>54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하지만 리라를 잡을 트랩이라고 설명했다면 허락 해줬을지도... 부쨩... 당한 게 많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경진이 어떻게 때려ㅋㅋㅋㅋㅋㅋㅠㅠㅠㅠㅠ 어느쪽으로 반응할지 고민 좀 해봐야지 개그맨의 의무를 다해서 최대한 웃기게 해드리겠습니다
침묵 이후에 간신히 꺼낸 말이 애매하기 짝이 없는, 긍정이라고는 볼 수 있으나 전긍정은 아닌. 그런 대답이었음에도 리라는 그걸로 충분하다는 듯 반응하고 있었다. 그래, 리라라면 그렇게 받아들여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랑은 따로 무슨 말을 덧붙일 틈도 없이 이어지는 언젠가에 대한 상상을 끊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손 끝에 무언가가 닿는 느낌이 나서야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리니 리라의 손이 자신의 손 끝을 쥐어가고 있었다. 손을 빼도 되었겠지만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아서 리라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던 랑은 여전히 조금은 답답한 가슴과 다르게 편안하게 풀어진 리라의 표정을 눈에 담으며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내쉬었다.
"...그랬으면 좋겠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본디 약속이란 미래에 대한 것, 누구도 미래를 확정지을 순 없다. 허나 이미 약속을 했으니,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법.
"조금만 더 있다가 들어갈까."
어느새 물기도 말라간다,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면 들어가서 미온수로 몸을 씻어내고 제대로 말려야 하니. 네 미소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며, 랑은 그 말과 함께 미소짓는 리라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듯 했다.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인데 거기서 이상형도 나오는거야?! 조건을 말하면 저지먼트 애들 중에서 아무나 하나 조합해서 만들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그거 기분 탓이야?!"
이런 곳에 놀러오면 이런 이야기를 할 수는 있지만, 그게 일방적인 방향이자 흐름이었던가? 반격을 해야 하나? 잠시 그렇게 생각을 했지만 지금의 혜성의 모습, 그리고 방금 전의 말들을 생각해보면 '지금은 생각할 겨를이 없어'. 정도의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그는 좀처럼 반격은 할 수 없었다. 절로 팔짱을 끼고 조금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그는 숨을 내뱉었다.
"이상형...이라고 해야할까. 뭐라고 해야할까. 아까도 말했지만 딱히 그런 것들을 신경 안 쓰고 살아왔거든. 특히나 올해는 더더욱 말이야. 3학구 문제로 머리가 아프고, 도저히 그런 쪽은 생각을 못했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3학구 문제가 해결되고 조금 마음에 여유를 찾고, 여기에 와서 특히나 좀 더 여유를 즐기면서 생각한 거지만..."
거기서 말을 잠시 아끼던 그는 이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조금 더 알고 싶은 이라면 있어. ...그쪽이 어떨진 모르겠지만. 뭐... 아주 사소하고 또 사소한 계기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지? 키득키득 웃는 그 모습은 너무나 태연해보였다. 정말로 조금은 부끄러워질법한 이야기를 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적당히 둘러댄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정말로 평범한건데, 은근히 분위기만 뭐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그건 오직 은우만 알 뿐이었다.
"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절대무적, 제 7위이자 완벽한 '에어버스터'지. 이런 곳에 왔다고 뒹굴거리는 내가 아니잖아. 그걸 인기가 있다고 해야하려나. 아니..뭐, 에어버스터도 나이긴 한데."
하지만 분명히 두 개는 다르다는 듯이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명확하게 설명을 할 순 없고, 말한다고 한들 배부른 소리라는 말이나 나올 정도로 이해를 못받을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굳이 그렇게 이야기했다.
"오. 이제 나중에 집에 가서 며칠 후에 인첨공 위키 같은 곳에 가서 에어버스터 검색해보면 되는 거야? 욕설 논란이 있는지 없는지. 하핫. 아무튼..나아졌다면 다행이긴 한데."
너무 무리는 말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은우는 살며시 티슈를 뽑아서 입가를 닦아냈다. 이 이상, 쿠키를 더 먹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558 캭캭이라니 동월이 경진이 머리 빡빡 밀어도 돼 왜냐하면 나 복수목록에 태닝하는 남캐 가슴팍에 조개껍데기 올려놓기 있거든 (동월이가 태닝 안하면 못함) ???????????????? 저기요 이런 설정을 지금 풀어준다고 동월이 왕따당했어?????????? 유일하던 친구 중 하나괴이로 사라졌다니 너무 기혹하잖아.......... (동월이 벅복복)
아이다. 생후 18년차를 맞이하고 있기는 하나, 그는 다른 동갑들을 앞으로 떠나보내고 어리고 유치한 그 마음 그대로 남아있다. 모든 이들이 행복하길 바라며, 마음아픈 일은 피하고 싶다. 자신이 조금 참고, 양보하고, 희생하는 한이 있다고 해도. 어느 지점에서 멈추어있는, 그렇게 조그만 선배다. 혜우의 안색을 조심스레 살펴보고는, 성운은 입을 삐죽였다.
“그걸 말하는 게 아니잖아요···”
진실과 거짓의 비율을 쉬이 따질 수 없는 혜우의 눈물을 보고 하는 말이었는데, 어차피 이제 와서 따지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뭐 됐지만요.” 속았다는 억하심정이 사라지고 나니, 그 자리를 혜우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하는 안도감이 대신 채웠기 때문이다. 그토록 순진한 사람이다. 성운은 물가를 향해 발을 찼다.
일단 피해로 따지자면 어쨌건 성운이 더 크다. 수영복용 트렁크가 따로 있는데, 돌핀팬츠며 나시티며 후드집업이며 성운이 지금 입고 있는 옷 중에는 딱히 수영용인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큰 피해라고 할 수도 없다. 갈아입을 옷이야 충분하고, 한번 씻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은 뒤에 세탁기 돌리면 될 문제니까. 성운은 꽁지머리 끈을 풀고 머리를 한번 쥐어짠 다음에, 혜우에게 물이 튀기지 않도록 돌아서서 머리를 탈탈 터는 것으로 피해 수습을 마치고 눅눅한 돌핀팬츠 주머니에 머리끈을 푹 찔러넣었다.
“그러게.”
그렇지만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언젠가는 이 곳이 질리는 순간이 오겠지. 시간이 흐르지 않더라도, 마음은 흘러가니까. 어떻게든 방랑은 계속되어야 하고, 길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래도, 이런 순간이 있기라도 한 게, 나는 기뻐요.”
그러니까 성운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다 혜우가 먼저 돌아가세요, 하고 말을 던지자, 성운은 쓴웃음을 지으며 펜션 쪽을 고갯짓해 보였다.
“돌아갈까 해도 말이죠─”
동월이 저항 끝에 라스트댄스를 피로하고 있는 것인지, 멀리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신성한 효과음과 함께 펜션 방향의 온 하늘을 리라제 불꽃놀이가 수놓고 있었던 것이다. 콘서트라도 하나 싶을 정도의 화려한 불빛이 밤하늘 한귀퉁이를 물들이고 있었다.
“저도 잠이 다 깨버렸고, 물장구를 좀 치던가, 최소한 저기가 아닌 다른 데서 쉬고 싶어요.”
별, 보러 갈래. 처음에도 그런 생각으로 나왔으니까. 인첨공에서 이런 별빛이 생생한 밤하늘은 보기 드물다.
능력을 이용한 테러 -장난을- 일삼는 당신, 멀리서 숨어 사건을 지켜보고 있거나 혹은 시치미를 뚝 떼고서 자신은 이번 일과 무관하다는 듯 태연하게 있거나, 둘 중 어느 쪽에 가까울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있을 당신의 시야에 장난에 당한 듯 모래투성이가 된 금이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었다. 밧줄처럼 땋은 머리카락에 어깨 아래로는 온통 모래가 묻어 있었으니, 손에 들린 회색의 가방 역시 모래투성이다. 분명 사건을 겪었는데도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듯 표정은 무표정한데, 시선은 계속 주변을 살피며 누군가를 찾는 것 같다. 느껴지는 분위기 역시 낮게 가라앉아 있었으니, 당신이 눈치가 빠르다면 범인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다 금은 당신과 눈이 마주치고, 금은 성큼성큼 당신에게 다가와 앞에 선다. 눈에서 빔이라도 쏠 기세로 당신을 바라보니, 으르렁거리는 듯한 음성으로 말한다.
"상관없습니다." 정말로 상관없습니다. 아마 이지가 먹으라고 줬어도 맵다.. 라고 말은 했겠지만 무겁지 않게 그냥 받아먹었을 거라고요..
"...별 건 아닙니다.." 감사인사에 눈을 슬쩍 피합니다. 그런 걸 받을 정도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데운 푸딩용액의 맛을 봐준 것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라고 생각하고는 푸딩이 완성되면 가져갈 거냐고 물어보려 합니다. 아무리 수경이 그냥 먹는다고 해도, 누가 와사비푸딩을 모르고 먹으면 힘들 거라는 건 학습을 통해서 알아요.
>>606 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 동월이 왜 태닝 안해 !!! 하긴 하얀 애들은 태닝하면 홍익인간 돼 (납득) 다른 복수 좋지 각오해라 동월이,,,,,, 엗 풀었었어?? 나 왜 못봤지 언제 풀었대 위키에 있나??? 글게 나 태그좀 해줄것이지 (본격 방구낀 놈이 성내는중) 아씌 노이즈좀 치워 !!!!!!!!!!!!!!!!!! 동월아 !!!!!!!!!!!!!!!!! (절규
계속되는 질문 세례 후 처음으로 내뱉는 동의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그녀의 본심으로 추정되는 무엇인가.
도움이 되어야한다는 말이 철현의 귀에 꽂혔다.
"?"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처음 이곳에 들어와서 자신의 능력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땐 레벨이 낮은 친구들을 자신의 힘으로 높은 레벨로 끌어올려주고자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생각한 이명이 '도우미'였다. 물론 도우미가 도움받는이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왜 도움이 되고 싶은거야?"
엄밀히 따지자면 저지먼트라는 존재 자체만으로 충분히 치안에 도움이 된다. 저지먼트를 건드리면 반드시 감당할 수 없는 보복이 찾아온다는 점을 제외해도 저지먼트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잘못된 행동을 억제해주니까. 하지만 이런 것을 말해봤자 그녀가 납득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적어도 그 스스로의 경험으로는 그랬다.
그랬으면 좋겠다, 는 말은 일종의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같이 하기를 소망하는 사람이 한쪽뿐이라면 필연적으로 슬퍼지기 마련. 그래서 상대방이 형태 잡힌 말로서 자신도 조금이나마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다고 해 주는 건 불안을 지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사람은 말하지 않으면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없으니까. 리라는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는 손길을 기분 좋게 받아들인다. 새하얀 머리카락은 아까보다 물기가 많이 사라져서 더 이상 미끄럽지 않고 조금은 부드러울 것이다. 붙잡은 손가락은 벗어나지 않았다. 조금 전의 반응을 보면 손을 빼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조금 의외다. 하지만 그래서 더 좋다. 예상치 못한 것들은 언제나 마음을 끄는 법이다.
"그래요, 슬슬 시간도 늦었고~ 씻고 푹 자야 내일도 재밌게 놀 수 있을 테니까!"
손을 놓지 않은 채 자세만 살짝 바꿔 조금 더 편하게 앉은 리라는 조금 더 어두워진 바다를 바라본다. 오늘 저기에서 명을 다 할 뻔했다는 걸 생각하면 무섭게 느껴질 법도 한데 왜인지 별다른 감상이 들지 않았다. 그대로 랑에게 다시 시선을 돌린 리라는 여전히 미소가 가시지 않은 낯으로 조용히 가사 없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경쾌하고 맑은 음정. 통통 튀는 것 같은 멜로디는 잔잔한 해변 위에서 효과적으로 퍼져나갔다.
제목 모를 노래가 끝나고도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나면, 두 사람이 앉아있던 자리를 시작으로 펜션 쪽을 향해 난 네 개의 발자국만이 고요히 남아 그들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걸 알릴 것이다.
아아, 오늘도 알찼다. 가담해준 아이들을 돌려보내고서(그들의 미래는 예측하지 못했다) 얌전히 쉬고있자니, 저 멀리서 누군가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모래투성이인걸로 봐서는 아마 저쪽에 있던 사람들 중 하나겠지. 가까이 오는 동안에 금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 ...? "
눈이 마주치자마자 돌연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잔뜩 화난듯이 으르렁거린다. 아무래도 모래찌개에 당한 것이 많이 분한 모양이었다.
" 검도부가 아니라 동월이긴 한데... " " 수상한 사람? "
아니 검도부가 맞긴 한데, 이름이라고 보기는 어렵잖아... 아무튼 슬프게도, '이 사건의 범인' 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기에 동월은 그것이 자신을 찾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녀는 가끔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효과음을 스스로 표현해내는 버릇이 있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면 별안간 삽에 걸리는 모래의 가벼움 때문일까? 정확히는 한삽 가득 퍼낸 그것의 가벼움뿐만 아니라 모래 자체가 마치 거슬러올라가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단 것이다.
"호헤~"
중력을 거스르다못해 연어가 되어버린 모래들은 어느새 구덩이처럼 패여 충분히 나올수 있는 만큼의 공간을 주었고, 그녀는 그 구조행동의 당사자가 앞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도 능력일까? 뭔가를 떠오르게 하는 한양의 능력과는 다른 느낌에 그녀는 눈 앞의 인물이 언젠가 본적이 있던 '작은 선배'라는걸 생각해내는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비드한 감정표현(성운은 서브컬쳐에 익숙지 않다)에 성운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으나, 이내 애린의 어딘가 뒤틀린 말에 성운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 눈을 깜빡이더니,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중에 떠 있던 모래들은 애린이 묻혀있던 구덩이로 소르르 흘러내려 구멍을 메웠다. 의미심장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 애린의 사고회로가 안전한 방향이 아니라는 건 알겠다!
“아뇨, 모래찜질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성운은 그 대신, 아까 혜성에게 주고 자신도 마실까 해서 두어 캔 집어왔던 밀○스 캔 하나를 애린에게 내밀었다.
“누워있을 거면 시원하고 그늘진 데가 좋을 것 같은데요···.” 하며, 고개를 기울이며 웃는다.
그래도 일단 풀어달라고 하면 풀어주긴 하겠지만... 보라가 은우를 졸졸 따라다닌 것은 사실이긴 한데 그건 순수한 애정이라기보다는, 세은이에 대한 걱정이 컸기 때문이에요. 보라는 인첨공에 처음 들어올때부터 레벨5 판정을 받은 천재 중의 천재이고... 당연히 은우와 세은이를 중학생때 봤을 때부터 이미 위크니스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고... 당시 보라의 생각에는 퍼스트클래스로 오를만한 이가 있다면 아마도 은우일 거라고 확신을 했기 때문에 감시겸...
하지만 그러다보니까 친해졌고, 그 와중에 같은 중학교였던 아라와도 친해지고.. 그러다가 은우에게 호감도 좀 가지기도 했지만, 딱 그 무렵에 은우가 퍼스트클래스로 각성했고, 높으신 분이 호출했고...은우가 한창 힘들어했고... 그리고 세은이도 반쯤 좀비가 되어버려서... (옆눈) 세은이를 위로하다 보니까 은우는 이미 졸업했고, 자신도 그 이상 뭘 더하는 것은 할 짓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뭐 그랬다는 비하인드 스토리.
하지만 그럼에도 보라는 그때의 감정의 파편 같은 것을 자신의 몸 어딘가에 남겨뒀지요. 무엇인지는 여러분들이 알아서 맞추는 것으로!
이름을 밝히는 당신의 대답에 금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 끝을 흐린다. 그 이유는 당신의 얼굴과 그 이름이 매칭이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었다. 인상을 쓰는 것 같기도 하니, 무언갈 떠올리는 듯 잠깐 말이 없던 금은 그냥 고개만 끄덕인다. 동월. 검도부. 당장은 기억하겠지만, 이후에는 어떨지 모를 이름을 다시 속으로 왼다.
"하, 누가 모래사장에 아주 재밌는 장난을 쳐서요. 덕분에 옷 안까지 모래투성이에, 드론 가방까지 빠졌지 뭡니까."
하면서 들고 있는 드론 가방의 지퍼를 열면 우수수 모래가 떨어진다. 열어 보인 가방 안에는 드론과 그 조종기, 배터리로 보이는 것이 들어있는데, 그 역시도 모래가 가득 껴있으니 고장이 났을지도 모르는 모습인 것이다. 이를 꽉 깨물고서 화를 참으려는 듯 한숨을 내쉬는 금은 가방을 내려놓고서, 드론을 꺼내 흔들며 배터리 장착부, 모터 사이 끼었을지 모르는 모래를 털어낸다.
자신의 이름을 외워주는 상대에게 이름을 불러준다. 저신이 이름을 외우고 있다는 것을 알면 상대도 외워주지 않을까- 하는 작은 믿음 때문이라나. 애초에 저지먼트 부원들의 이름은 전부 외우고 있기도 했고.
" 아, 어, 으흠~ "
저런. 모래사장에 장난을 치다니. 가방 속에 모래가 잔뜩 들어가서 드론까지? 그거 잘못하면 드론 사이사이에 낀 모래들이 오작동을 야기해서 드론이 고장날수도 있는데그거 나잖아!?!????!! 마음속으로 경악한 동월은, 이내 얼굴에 빙긋 웃음을 띄웠다. 최대한 무해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일종의 장치였다. 다행히도 동월은 표정연기를 잘 하는 편이었다. 가끔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만 그래도 표정연기 정도라면 그것은 커버될 것이다.
>>650 동월이 인권 어따 버려두고 씹뜯맛즐히래 ㅋ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 (동월이 공주옷 입혀주고 쓰담어줌) 장푸딩 미치겠네 우리의 악연은 푸딩부터 시작한것인가 (세은아 미안) 이!!!!!!!!!!!!! 왜 난 다 놓친거야!!!!!!!!!!!!!!!!!!!!!!!!! 언제 풀엇ㄴ지 힌트라도 주면….
>>801 하 미치겠다 당장 동월이를 데리고 대한민국 사나이의 소울푸드 홍차와 마카롱을 먹여야만.. 동월이 니 멘탈 내가 케어해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젠장 맞는말인데 안 좋아질수도 있잖아 아직 휴가는 길고 이 둘은 남고딩이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 힌트 가슴 깊이 품고 나중에 독백 더 나오면 날조해서 짐작해볼게 그때가 오면 내 지능에 박수갈채 플리즈
“그래······.” “과정이 끝난 지 얼마 된 것 같지도 않은데, 오랜만에 보는 것 같구나.” “밥은 잘 먹고 있니?” “친구들이랑은 잘 지내고?” “지내는 건 어렵지 않니? 네가 기숙사를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래. 다행이다.” “성운아. 이것 하나는 알아줬으면 한다.” “이건 모두 널 위한 거야.” “어려운 일은, 어른들에게 맡기렴.”
"...맛.." 달콤하고. 부드럽고. 입 안을 감싸안는 듯한 맛들. 상상만 해도 좋은 일이라고 사람들은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그게 와사비푸딩이라고 해도 다를 건 없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대분류의 부원인데다가. 무언가를 먹으라고 하는.. 안될까요. 라는 부탁을 하는 이지를 보았을 때.. 무언가가 플래시백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들었어요.
"...먹는 건.. 안돼요." 입을 장갑을 낀 두 손으로 막고 뒷걸음질치는 수경입니다. 금방이라도 입 안에서 신맛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정된 거 이외를 먹으면... 안 그래도 창백한 얼굴이 체한 것처럼 더 창백해집니다.
"...이지 양의 문제는 아닙니다.." 겨우 내뱉은 말과 함께 수경은 주방을 도주하듯 나가려 시도합니다. 텔레포트를 할 생각도 못한 것 같습니다.
>>737 귀여워(귀여워) (복복복복복복복복담쓰담쓰담쓰담쓰담쓰담쓰담쓰담쓰) 왜냐믄... 츤데레가 되려면 확정적 점순이 루트를 타야 하는데... 지금껏 그쪽 루트로 간 사람은... 류화였을 때 금주밖에 읎서. 비밀루트는 안좋은 거라서 비밀루트애오. :3 하지만 어떻게 하면 얀데레보다도 더한 상황이 연출될지는 점례가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떠올려보면 어렴풋이 알게 될것...
>>818 으부부부부부븝 (과격한 쓰담으로 인해 털 속에 파묻힘!!!) 오오.... 점순이 -> 츤데레(나쁜거) or 좋은거 이런 식으로 되는건가... 🤔🤔🤔 점순이를 보고나서가 두가지 루트로 갈릴 줄이야... 안좋은 거라니 궁금하긴 한데 알면 다칠것 같아요... (덜덜) 음... (진짜 어렴풋이라서 말을 못하겠다) (하지만 그쪽 타지 않게 조심하도록 하자) (덜덜덜) 오늘 점례 이야기에 계속 호달달 떨게 되는건 기분텃인가요... (옆눈)
당신에게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면 금은 잠깐 의아해한다. 자신이 당신에게 이름을 말했던가, 아니, 같은 저지먼트 부원이니 언젠가 소개하며 밝혔던 것 같기도 하며 생각에 잠기니, 같은 2학년이라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어떻게 상대는 자신을 기억하는데, 자신은 상대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미안할 법도 하다만. 아무렇지 않은 듯. 눈을 깜빡이며 금은 당신의 그런 반응에 고개를 슬쩍 기울인다. 표정만큼은 당신은 이번 사건과 무관한 사람인 것처럼 구는 것인데. 말을 더듬기 시작한 것은 매우 수상한 것이었다. 마치 변명을 하려고 하는 사람 특유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말을 더듬는 거라 생각한 금은 당신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상체를 살짝 앞으로 내민다. 그러며 노려보듯 눈을 가늘게 뜨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한 듯 보였다.
"왜 말을 더듬습니까. 동월?"
당신의 눈동자를 뚫어져라 바라보면, 숨은 본심을 알 수 있을 것 마냥. 푸른 눈동자를 크게 뜬 채 금은 당신과 시선을 맞춘 채 묻는다.
"동월이 말했다고 하지 않을 테니까. 뭔가 본 것이 있거나 아는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죠."
모래찜질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 말에 그녀의 시선에서 떠다니던 빛무리들이 조금은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하긴, 그 사단 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진 몰라도(자신처럼 모래구덩이에 빠진 사람이라도 도왔던 건지) 슬쩍 봐도 피곤해보이는 인상이니... 그녀는 혀를 살짝 빼물면서 뚱한 표정을 짓다가 곧 내밀어지는 음료 한캔을 얼떨결에 받아들고선 당신을 바라보았다.
깜박깜박, 눈이 몇번 감겼다 뜨여지면서 퇴색되지 않은 빛이 조금씩 번져갔을까?
"헤에~ 음지바른 곳임까~ 그런건 즈가 전문이져."
'시원하고 그늘진 곳 = 음지' 라는 기묘한 발상에 따라 그녀는 비어있는 한손에 삽과 금속배트를 들고선 주변을 살피다 한곳으로 향했다.
펜션의 발코니에 홀로 앉아 피디피 군을 해부 및 청소해주고 있습니다. 피디피 군은 생물이 아니라 저의 주무장 권총을 의미합니다. 저의 파트너와 다름 없는 존재이기에 존중하는 의미로 이렇게 불러주고 있습니다. 근데 오늘은 그런 피디피 군이 기구하게도 모래범벅이 되어있었습니다. 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현재 저의 머리카락에는 모래들과 조개껍질들이 마구잡이로 붙어있는 상태입니다.
동월 선배님 주관 하에 이루어진 [모래찌개] 작전이 후퇴 계획에서 틀어져, 특수부대에 합류하고 있던 저 외의 1인이 희생당하는 일이 되고말았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무서운 얼굴의 은우 부장님이 오셔서 저를 퀵샌드에 그대로 꽂으시는데 그걸 도저히 막을 수단이 없었습니다. 정말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로 끝나서 다행입니다. 주축은 리라와 동월 선배님이십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그 부대의 말단 역할일 뿐이었으니까요. 저의 대역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제가 도움이 되었을까요? …그랬다면 좋겠습니다.
펜션 안쪽에서는 라면을 취식하고 계십니다. 아래의 수영장 방향에서는 혜우님의 첼로 연주를 주축으로 저지먼트분들이 놀고 계십니다. 제가 앉은 테이블의 상단에는 와사비 푸딩이 출렁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피디피 군의 총열까지 닦아주고 나서 그것을 포크로 잘라 한 입 넣었습니다.
동월의 혼신의 연기(?)는 먹히지 않았고, 잔뜩 의심을 사버리게 되었다. 금은 어째서 말을 더듬느냐고, 가까이 다가와 크게 뜬 눈을 동월과 맞추었다. 동월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한다. 여기서 다른 사람의 이름을 팔면? 당장은 안전할테다. 도망갈 시간을 충분히 벌 수 있겠지.
하지난 그래서야 특수부대를 조직한 의미가 사라지지 않는가. 우리의 의리는 세계 제이이이일.... 을 외치고는 싶지만 얘 너무 무서운데. 금의 푸른 시선이 똑바로 동월의 하얀 시선을 향하자, 동월은 스리슬쩍 눈동자를 옆으로 돌렸다.
" 어... 그러니까, 그게... "
다시 한 번 분기점. 아무래도 금은 '동월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라는 의심을 하는 모양이다. '동월이 이 짓을 주선했다' 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모양.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한 번 빠져나갈 기회가
.....에라- 모르겠다-
" 으이익, 내가 했어! 내가 이 작전의 총사령관이다!!! "
결국 못참고 질러버렸다. 자신의 처분이 어떻게 될지 두렵지만, 그렇다고 동료를 팔 수는 없었던 것이다! 동 월. 그는 이 시대 최고의 낭만가...
>>860 후후후... 털뭉치는 위대하다... 모든 것을 흡수할 것이다... 마치 커다란 주댕이를 가지고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분홍색 덩어리처럼... (죤) 선의적이랄까... 때려달라면 때려는 주지? 🤔🤔 하지만 때리고서 얘 멘탈은 책임 못집니다. (?)(본인이 때리고 본인이 상처받는 편) 혹시 또 아나! 들이박다보면 새로운 루트가 생길지도! 그게 바로 여럿이서 즐기는 상판의 묘미일지니!
애린 : 오... (골골월월 옆에 쪼그려앉음)(뒤적뒤적)(무언가 메모) 그대로 허그당하기 싫다믄 일어나여~ (협박?)(담쓰담쓰)
>>861 털, 더 많은 털! 점례처럼 털뭉치가 되는 거야! (?) 부비적 기여어~~~ (뽀요뽀요뽀요뽀요)
>>884 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치만 털뭉치쪽이 포근하니까 이게 더 좋은겁니다~~~ (털 안쪽으로 숨기) 때리고서 본인이 상처라니... 근데 뭐 때려달라고 할 일이 있을까요? 괴이에서 정신 차릴라고 때려달라는거 아니고서야... 🤔🤔 호오. 그런거군! 그렇다면 앞으로 점례와의 일상에서 자중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랬던것 같지만)
어릴 적에 미래의 자신은 이렇게 더럽고 추운 곳이 아니라, 온전히 깨끗하고 따뜻한 온기로 가득한 곳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길거리 생활은 혹독하다. 꿈꾸고, 기원하던 삶을 찾아 인첨공으로 몸을 던진 이들 중에는 막상 겪은 인첨공의 생활이 상상과 달라 도망쳐 나오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 이들은 고통이나, 치욕을 이기지 못해 도시의 후미진 곳으로 숨어들었다. 세상의 잔혹과 비참을 일찍 경험한 채, 어른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하루를 버티기 위해 뭉친 아이들은 그룹을 이루고, 그는 곧 자신들의 구역을 선언하기에 이르었다. 뒷골목에는 그런 아이들이 많았으므로 서로 부딪치며 싸우며 눈알을 도려내겠다는 등, 욕설이 멈추지 않았다. 그러니 다른 그룹에 얻어 맞고 구역을 빼앗긴 채 쫓겨나거나, 아니면 안티스킬에 잡혀가는 아이들도 볼 수 있었다. 당연히 금 역시 다른 아이들과 함께 몰려다녔다. 금이 속했던 그룹의 이름은 쥐새끼들로, 다른 그룹과 싸워서 이길 힘도 없는 것들이 뭉쳐 다니며 쥐새끼들처럼 잡힐 듯 말 듯. 도망 다니며 몰래몰래 도둑질을 하고 다니는 탓에 남들이 붙여준 이름이었다. 모두들 그 이름을 마음에 들어 했으니, 곧 그룹의 정식 명칭이 되었다. 그룹에는 서로 비슷한 아이들끼리 모여 있었고, 하루를 버티기 위한 목표에 힘을 합쳤으니 유대감이 강했다. 인생에서 각자 하나씩 불만을 가지고 도망쳐 나온 아이들끼리 모여있다는 것은 서로에게 위안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어떻게 할 거야?그룹에서 제일 발이 빠른 아이가 금이에게 물었다. 금은 쥐새끼들에 중간에 합류했으나, 도망쳐 나올 당시에 챙겨 나온 드론 덕분에 쉽게 도둑질할 장소와 접근 방법을 찾고, 미리 위험을 살필 수 있었기에 어느새 그룹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글쎄요. 늘 그렇듯 도둑질이나 해야겠죠. 우리가 돈을 구하는 방법이야 소매치기 아니면 도둑질 밖에 더 있겠어요?
금이 답하면 아이들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스킬아웃이라 불리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이란 그 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면. 내장을 도려내는 것 같은 고통을 이겨내거나, 죽어야만 이 지옥을 벗어 날 수 있을 것이었으니까. 금은 스트레인지라 불리는 이 쓰레기장 너머, 과학과 기술의 세계, 이곳과는 전혀 다른 질서로 이어진 학원 학구 쪽을 바라보았다. 환상적이나, 생각과 달리 섬뜩하리만큼 끔찍한 곳. 금 역시 희망을 찾아왔으나, 현실에 실망하며 자포자기한 채 이곳까지 다다른 채였다. 이렇게 될 걸 알았으면, 차라리 인첨공에 들어오지 말 걸 그랬어. 인첨공 밖에서는 그래도 이렇게 도둑질하는 삶은 살지 않았을 텐데.
푸근한 웃음으로 자신을 맞아주는 수녀님들, 신부님. 요안나, 요안나, 나의 두 번째 이름으로 불러주던 그들. 마음에 들지 않은 세례명이었지만, 자신을 버렸던 부모가 지어 남겼던 이름보다는 나았던 그 세례명. 내가 슬플 때면 왜 그러냐며 물어오던 그들의 걱정을 알아차리고서, 고개를 저으며 어린아이 특유의 웃음을 지어 보이면 안심하며 웃던 그들의 모습. 그런 그들의 눈에 들기 위해 미사 때마다 기도에 열심이었던 자신을 떠올리면 금은 쓴웃음만 나왔다.
희야는 느릿하게 눈을 들어 올렸다. 태휘의 손에 쥐여진 것은 권총이었다. 듣자 하니 안티스킬은 하나씩 들고 다닌다더라. 희야는 태휘가 이따금 훈련을 위해 권총을 꺼내는 순간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악연은 한 번이면 족한데 어느 순간 나타나선 데 마레에 지나치게 쉽게 섞여버려 주변과 화합하거니와, 그로 하여금 사사건건 간섭하는 존재가 총까지 가지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통제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진짜 데 마레에 경호 명령으로 온 거예요?" "그럼 거짓말이겠냐." "왜 하필 데 마레예요?" "무슨 뜻이야, 그거." "지금껏 대원을 개인 경호 목적으로 연구소로 보낸 적은 없을 거 아니에요. 레벨 3이니 당연하다고도 볼 수 있는데 희야가 그만큼 대단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태휘는 그런 희야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상부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겠냐. 토달고 쪼이기 보다는 내 월급이 더 중요하지." "……." "왜, 너희들처럼 불순분자? 배교자? 뭐더라. 아무튼 그런 거 암살이라도 하라고 할까 그래? 막 언젠가 총 겨누고 그러니까 날 믿지 말았어야지~ 하고 악당 시늉이라도 낼 사람은 아니다, 나."
희야는 손을 뻗었다. 권총을 쥔 손을 끌어당겨 단숨에 제 이마에 댄 희야는 시선을 올렸다. 지정된 사용자의 뇌파를 인식하여 오발 사고를 원천으로 차단하는 첨단 안전장치가 걸린 덕분에 마음대로 격발할 수는 없겠지만, 어찌 되었든 위험한 일인 건 마찬가지였다.
"애새끼가 진짜, 야, 뭐하자는 거야!" "우리는 암살따윈 하지 않았어요. 적어도 당신들처럼 윗선이 존재하기에 치졸하게 상황을 보며 개입하는 박쥐는 아니었거든." "놔라, 안 놔?" "그러니까 언제든." 희야는 천천히 총신의 위치를 내리더니 제 입에 쑤셔박듯 잇새로 총구를 물었다. "너는 명령이 내려오면 누구든 쏴죽일 수 있다는 거지. 박쥐 새끼들이 그렇듯이. 결국 당신은 사람이기 전 군인이잖아."
태휘는 거칠게 앓는 소리를 냈다.
"내가 미친다. 너 또 뭐가 문제라고 애가 돌았냐. 오늘은 또 누가 대가리를 쳤는데 그래!" "농담이에요." 희야는 잇새에 문 총구를 슥 혀로 밀어내며 고개를 돌렸다. 마침 안드로이드 하나가 지나치고 있었다.
"그리고 말해두는 건데요."
주변의 온도가 낮아지더니 희야의 손에는 어느새 희멀건 권총이 들려있다. 눈덩이로 만든 것이기에 생각만큼 정교하지는 않지만 주변에 둥실둥실 떠오른 얼음 탄환을 보니 쏘는 시늉 정도는 낼 수 있었다. 희야는 순식간에 얼음 총을 겨누더니 방아쇠를 겨누는 시늉을 했다. 얼음 탄환 하나가 안드로이드의 머리를 정확히 관통하고, 스파크를 일으키며 쓰러진다. 냉각수 통이 터져 바닥을 적시고 꿈틀거리던 움직임이 멈춰도 얼음으로 된 탄환은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 탄창까지 비울 적 희야는 고개를 들었다.
"우리는 배교자를 발견하면 이렇게 했어요. 쓸모가 없으면 폐기해야지, 뭐하러 기회를 주다가 조용히 처리할 거라 믿나요." "너 말이다." "응." "내 목적이 문제가 아니고, 안티스킬이 어디까지 알고있나 떠보려고 지금 이러는 거지."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러나 그 선택이라는 것이 언제나 그 주인의 편인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에는 더 약삭빠르고 더 교활하고 더 잔인한 이들에게 내몰려, 선택을 빼앗기거나, 어느 쪽이든 나쁜 선택만을 강요당하는 잔인한 악수강요의 순간이 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포함한 그 모든 선택의 끝에, 혜우가 도착한 곳은 여기였다. 사이키 쿠스오의 재난, 아니, 천혜우의 재난이다. 누구라서 감히 부정할까. 그러나 혜우는 그만두지 않고 이 자리까지 걸어왔다. 그 역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아직 혜우의 앞에는 길이 펼쳐져 있다. 원래 혜우가 누렸어야 하는 것보다 더 험난한 가시밭길이고, 마땅한 선택지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고, 어쩌다 보니 혜우가 원하던 것보다 좀 탐탁찮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과 함께 걷게 됐지만, 혜우는 아직 멈추지 않고 있다. 이 터널의 끝이 무너진 막장일지 반대쪽 출구일지 확인하는 것을 포기할 이유가 아직 없지 않은가.
아닌 게 아니라 조그맣고 무해해보이는 주제에 성깔은 있는 게 설치류같긴 하다. 혜우는 아직 모르는 사실이지만 주제에 제법 번듯한 굴도 있다. ······쓸데없이 귀도 밝은 것 같다. 조그맣게 톡, 재난에 시달린 시름 한 마디가, 폭포 속으로 사라졌어야 할 그 한 마디가 메아리가 되어온다. 그 원래 목소리만큼이나 나직이. “─하지만 그런걸요.” 탐탁찮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과 함께 걷게 되었을 때의 폐단이다. 고개를 돌리면, 성운은 얄미울 정도로 시치미를 뚝 떼고는 톡 엉뚱한 말을 꺼내어온다.
“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해요.”
성운 스스로도 이렇다- 하고 딱 잘라 정해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그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어떤 표시였다. 적어도 우리 둘 중에서 당신이 내게 우리는 친구냐고 묻거든, 나는 당신에게 그렇다고 할 수 있노라고.
“원래는 별이 잔뜩 뜬 밤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인첨공 시내에선 별이 거의 안 보이니까 그 대신 노을을 보곤 했지만······. 오늘은 모처럼 별바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성운星雲. 참 그 이름에 걸맞는 취미다. 튜브가 수풀 속으로 툭 내려앉는 소리를 뒤로하고 혜우가 손을 내뻗어오자, 성운은 거리낌없이 혜우의 손을 마주잡았다. 그 새하얀 실루엣에 비해 여기저기 생긴 지 얼마 안 된 굳은살이 만져지긴 했으나, 그렇게 물 속에서 난리를 쳤음에도 그 온도를 잃지 않았다. 성운은 “저기!” 하고 손가락을 뻗었다. 강이 굽이돌아 바다로 쏟아져내려가는 옆의 축대에,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한 원두막이 하나 보였다. 혜우가 발을 뻗기를 기다려, 성운은 혜우의 손을 가볍게 잡아끈다.
(톰과제리 톰이 입 떡 벌리니까 이빨 와그르르르 쏟아지는 장면 가지고 오고 싶은데 gif라 못가져오고 애초에 그 장면이 정확히 어느 에피소드에서 나왔는지 기억안나서 원통함) 와 한쪽은 비참하고 한쪽은 팽팽하고 와 우와 우와 으아악 으아아악 낡은 고무줄이 빡세게 잡아당겨지면 끊겨요 아아아아악
하아아... 스트레인지가 슬럼가라고 했지... 진짜 딱 그 느낌이 여실하게 느껴지는 독백이었어. 거기다 가장 낮은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마주한 아이들의 심정이 여기까지 느껴지는 것 같고...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하면서도, 학원 도시를 향해 시선 던지는 것에 많은 의미가 있어 보이니까 착잡한데 와중에 자신의 세례명 떠올리며 인첨공 밖에서도 바라던 삶을 추구하던 모습이(인첨공 와서도 못 받은 것이 중요 포인트임) 맛있고 착잡한데 하 진짜 맛있고 하...🥺 이런 감성 못 참아...!!!!! 금이 이야기 더 풀어줄 거라 믿어...🥺🥺🥺 넘 무리 말구 푹 자구!!!
저지먼트 대 스킬아웃. 저지먼트 대 스킬아웃 대 그림자. 저지먼트 대 스킬아웃 대 그림자 대 안티스킬. 저지먼트 대 스킬아웃 대 그림자 대 안티스킬 대 데 마레. 어쩌면 저지먼트 대 스킬아웃 대 그림자 대 안티스킬 대 데 마레 대 교단......... 사람은 둘, 파벌은 다섯 아니면 여섯. 두렵도다, 다가올 날이 두렵도다...
>>974 어린 나이에 교주하는 건 이유가 다 있다... 뭐 그래도 안햐씨도 사람이니까 교주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갈기면(희야: 희야보고 지금 독재정권이라고 한 거예요?) 끝이고 응
아무튼 태휘를 넘어서서 안티스킬도 의심한대. 샹그릴라 때도 안 움직이던 애들이 냅다 데 마레에? 그것도 위크니스 알았을 적에 마레에 통보하지 않는다고 협의해서 지금까지 숨겨온 부분을 봐서는 얘네가 마레를 건드려 좋을 이유 없는데...? 뭐 사고치는 거 수습하려고 하나? 윗대가리들이 2배로 의심스러움
지금 인첨공이 얼마나 기형적인 사회인지 생각하면, 윗대가리들을 의심하지 않는 게 이상하죠. 평범한 소시민인 성운이도 전부터 높으신 분들을 탐탁찮아하던 차에 위크니스 이야기까지 듣고, 3위인 디스트로이어가 3학구 사태에 개입하고 있는 정황이 명백한데 이렇다 할 만한 움직임을 안 보이는 것도 그렇고요... 캡틴과 나눈 이야기에 따르면 윗분들이 3학구에 샹그릴라 돌리고 있는 게 블랙크로우의 위크니스라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거든요. 솔직히 챕 3~4쯤 가서 그림자도 사실 윗분들 찜찜한일 도맡아하는 전담창구 비슷한 거였다 같은 게 풀려도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 않을까요.. (깊은불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