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최대 12인이 제가 받을 수 있는 한계입니다. ※총 10개의 대사건이 모두 일어나면 완결됩니다. ※이 스레는 슬로우 스레로서, 매우 천천히 진행됩니다. 진행은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보통 오후 2시~4시 사이에 진행되며 길면 2시간 짧으면 1시간 반 진행되니 참고 바랍니다. ※진행 때에는 #을 달고 써주시면 됩니다. 진행레스가 좀 더 눈에 잘 띄기 위해서 색깔을 입히거나, 쉐도우를 넣는다거나 하는 행위도 모두 오케이입니다. 스레주가 지나치지 않을 수 있도록 이쁘게 꾸며주세요! ※유혈 묘사 등이 있사오니 주의 바랍니다. ※이 외에 미처 기억하지 못한 주의사항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스레주도 무협 잘 모릅니다...부담가지지 말고 츄라이츄라이~ ※기본적으로 우리는 참치어장 상황극판의 규칙을 적용하며, 이에 기속됩니다.
선이 저 혼자 있다는 것은 아니였다. 다만, 선이 짓밟히기 쉬운 세상일 뿐. 이 세상을 저가 구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였다. 다만, 손 닿는데로 모두를 돕고 싶었던 것 뿐.
덕지덕지, 잡념과 집념이 붙은 검을. 누덕누덕, 망집과 고통이 붙은 검을.
소녀는 필사적으로 휘둘렀다. 그게 설령 약하디 약한 파도에 무너져버릴 사상누각이라고 해도, 소녀는 다만 필사적이였다.
소녀는 기억한다. 소녀는, 깊이 알고있다.
어느 화창하던 날, 먹을게 없어 굶주림에 끝내 숨결을 뱉지 못 했던 아이를. 어느 우중충한 날, 빗물 속에서 피 흘리며 죽어가면서도 필사적으로 제 피붙이를 지키던 여인을. 어느 쌀쌀하던 날, 추위에 몸서리를 치고 또 구타에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리던 사내를. 어느 날, 어느 날, 어느 날, 어느 날, 또 어느 날.
소녀의 눈은 이 세계의 일부만을 보았겠지. 그래, 그게 사실이겠지.
다만, 그 일부만으로도 소녀의 마음은 처참하게 망가져버렸다.
그 누구도, 그들의 이름을 알지 못 하였고. 그 누구도, 그 비극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 세상에는 비극이 너무나도 만연하여서, 한낱 죽음 따위는 안주거리에 불과했다.
마치 저 하늘에 별들이 너무 흐드러지게도 많아, 그 중 저만의 별 찾으려면 버거운 것처럼. 이 세상의 비극은 소낙비처럼 너무나도 많아, 그 누구도 하나하나 슬퍼해줄 수 없었다.
그러나, 소녀는, 그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래서, 소녀는 그들의 이름들을 일일히 새겼다. 그들의 마지막 한탄, 상념, 유언, 절규 그 모두를 담담하게 저란 그릇에 담아넣었다. 한 명의 묘지기처럼, 담담하지만 익숙해지는 일 없이 영혼에 깊이 그들을 새겨넣었다.
소녀는, 수 만의 죽음들을 마치 눈 앞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생생하고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들이 뱉어내었던 죽음을 무엇보다도 가까이서 받아내었다.
그렇기에, 소녀는 담담히 제 검으로 검을 받아냈다. 가볍게 부수어지는 누더기의 검. 끔찍한 통증. 생명이 쏟아져나오며, 몸 속에 있어야만 하는 기관들이 토해내지는 감각. 그러나, 소녀의 표정은 단 하나 바뀌는 점 없었다. 늘 그러했던 것처럼 미소를 머금으면서.
"그러나, 오만이라고 할지라도. 그 누구도 기억하지도, 슬퍼해주지도, 노력해주지도 않는 죽음이랄 것은···. 너무나도 슬프지 않겠습니까."
소녀는 흘러나오는 제 피를 검을 놓고서 두 손으로 받아내고서는, 다만 경건하게 땅에 흩뿌렸다.
────세상이 추락한다.
더욱 깊이, 또 깊숙이.
·
·
·
하늘이 붉게 타오른다. 천지사방이 화마로 가득하다. 땅은 어느덧 핏물로 잠겨버려서 질퍽한 적색의 늪이 되어버렸다. 그런 땅 위로 시체들이 묘비처럼 새워져있었다. 기억하는 모든 죽음들이 기록되어있었다. 사방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속삭임, 절규, 비명, 탄식. 수 만의 인물들의 모든 비극들과 한탄들이 울려퍼진다.
소녀는 떨어지려는 듯 너덜거리는 제 몸을 이끌고서, 제 부모의 시신을 끌어안으며 다시금 모셨다.
흘러넘치는 핏물들이, 도처에 너저분하게도 쓰러진 시체들이 적흑의 사슬이 되어 소녀를 옭아맨다. 그것은, 다만 질 필요조차도 없던 책임이었다.
"저라도, 기억하고자 합니다. 그런 쓸쓸하고도, 고독한 죽음들을."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하셔도, 하나만을 보는 천치라고 하셔도. 예, 좋습니다."
"다만, 저는 저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단지 태어났기에 그런 비극들을 겪고, 그 누구도 원망할 길 없이 다만 세상이 이 모양새라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소녀는 그들 모두를 기억한다. 소녀는, 그들이 느낀 감정을 동일하게 보전했다. 질 필요가 없었던 책임이라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라는 사슬들에는 일일히 그들의 이름들과 인생이 새겨져있었다.
누군가는 제 자식에게 제 살점을 먹였다. 누군가는 단지 기형으로 태어나 불길하다는 취급을 받으며 쓸쓸하게 죽어갔다. 누군가는 겨울의 혹한 속에서 제 아이와 함께 얼어죽었다. 누군가는 자식을 무뢰배에게 잃고, 또 누군가는 부모를 잃고. 또 누군가는 제 목숨을 끊고, 또 누군가는 원치도 않은 살생을 저지르고. 또 누군가는 굶고, 또 누군가는 갈증에 허덕이고. 또 누군가는 채워지지 않을 공허함에 눈물을 흘리고, 또 누군가는 원하지도 않던 굴레에 부르짖고. 누군가는 편치 않은 가족을 위해 나섰다가 죽고, 또 누군가는 이용당하던 끝에 모질게 버려지고. 또 누군가는, 또 누군가는.
가장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라 할지라도, 각자가 각자만의 지옥에서 살아가건데.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당신조차도 한 꺼풀 벗어던지기 이전에는 지옥에서 살았음을 볼 수 있기에.
소녀는 다만 이 세상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소녀는, 묘지기였으며. 소녀는, 죄인이였기에.
다만, 타고나기를 너무나도 선한 소녀는 제 영혼을 깎아먹고 짓누르는, 질 필요도 없던 죄책감을 짊어졌다.
단 한 순간도, '그 날'에서 나아지지 못 한 채로.
그러나, 원망하지 않는다. 소녀가 겪은 비극들도, 소녀의 이런 고통도, 소녀의 이런 마음가짐도. 결국 세상에서는 흔하디 흔할 비극들 중 하나이기에. 소녀는 눈물 흘리지 아니한다. 소녀는 제 삶을 원망하지 아니한다. 소녀는 다만 버거워했고, 고통에 겨워했다.
다시금 말하건데.
감당할 수 없는 재능은 저주였다. 소녀의 눈은, 그 모든 비극들이 마치 '저의 일'처럼 느껴버릴 정도로. 아니, '저의 일'로 받아들이게 만들어서. 외면하고자, 외면할 수 없었다.
하늘은 소녀에게 오욕칠정을 보는 눈을 주었으나, 그 범람하는 것들로부터 저를 지킬 정신은 주지 않았다.
소녀는, 아이는, 제 울타리가 부숴져버린 그 날에서부터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 하였다.
가면 속의 모습은 당신이었다. 혹여나 사주를 받은 다른 살수가 아닐까 생각했으나, 생각해보면 그런 일개 살수가 남궁세가에 잠입할 수가 없었겠지. 그는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는 비정한 눈동자를 마주했다. 그 미모가 예전보다도 더없이 아름다워진 것에 그는 조금 놀란 눈치였던가. 사람이 피폐해지면 어떤 미인이라도 그 미가 쇠하기 마련이거늘, 제 정인의 미는 이전보다도 더 수려해져 또 다른 미를 뽐내고 있었다.
그러나 저러나, 제 정인은 자신을 죽일듯 노려보고 있었다.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노호성까지 터트리며, 살기보다도 더 진득한 감정을 내뿜고 있었다. 지금 이 세상에 눈 앞의 이보다 자신을 죽이고 싶어하는 이가 있을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그게 아닙니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을 때, 그는 입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뱉어내고는 나지막히 부정의 말 또한 뱉어내었다. 그러고선 재하의 말대로 검을 뽑았다. 그가 무엇 때문에 망설였는지 무색할 정도로 시원하게 검은 칼집에서 뽑혀나왔다.
그리고 잠시 검을 바라보던 그는 조용히 검 끝을 땅을 향했다.
"내가 당신을 그저 꽃으로 생각했기에 그리했을리가 없잖습니까, 공자. 그저 한가지. 흥이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명료하게 사실을 말하고는 잠시 숨을 골라내었다. 물론, 그 사실이 재하에게는 더없이 모욕으로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르는 일이거늘, 그는 그럼에도 태연했다. 그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머리 한구석에서는 이성이 제동을 걸면서도, 계속해서 입은 열리고 말은 튀어나왔다.
"이곳은 남궁세가 안이고,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많습니다 공자. 그런 와중에 제가 초식을 받아치려 기를 끌어올리면 제 기를 느끼고 사람들이 몰려들겠지요."
"...그럼 공자는 죽을 겁니다. 내가 아니라, 남궁세가의 무인들에게."
그는 제가 가지고 있던 칼을 떨어트렸다. 더이상 무장을 하고 있을 필요도 없다는듯이. 어차피 그가 뇌기를 끌어올리기만 해도 초절정의 고수들이, 어쩌면 화경인 제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올지도 모른다. 그럼 그 자신이 원하든 아니든, 그것은 상관 없다. 제 정인은 그가 뭐라 하기도 전에 무참히 살해당할 것이다.
"나는, 나는 그걸 볼 수 없습니다. 공자께서 다른 무림인의 손에 죽는 것은, 감히 볼 수 없었습니다. 공자의 죽음은 필히 내 것이어야만 하거늘."
"그러니 죽어야지요. 공자께서 죽음을 원하시고, 싸우고 싶어도 가슴뛰지 않으니, 어찌 공자를 향해 초식을 사용하겠습니까?"
가슴이 뛰질 않으니, 제 정인에 대한 살의마저 없는 상황에서 적당히 싸우다가 끝내라는 것인가. 아니, 그렇게는 못 한다. 설령 그가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곳에선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허락하질 않는다. 적어도 제 정인의 마땅한 파멸은, 그가 살아있는 한 그 자신의 손으로 이루어져야 하기에, 그는 싸울 의지조차 상실했다. 그렇기에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는 그것으로 납득했지만... 이걸 바라보는 제 정인이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글쎄다.
//Q. 즉? A. 차라리 아무도 없는 공터거나 전장이었음 빡세게 받아치다 동반자살하려 했을 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