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최대 12인이 제가 받을 수 있는 한계입니다. ※총 10개의 대사건이 모두 일어나면 완결됩니다. ※이 스레는 슬로우 스레로서, 매우 천천히 진행됩니다. 진행은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보통 오후 2시~4시 사이에 진행되며 길면 2시간 짧으면 1시간 반 진행되니 참고 바랍니다. ※진행 때에는 #을 달고 써주시면 됩니다. 진행레스가 좀 더 눈에 잘 띄기 위해서 색깔을 입히거나, 쉐도우를 넣는다거나 하는 행위도 모두 오케이입니다. 스레주가 지나치지 않을 수 있도록 이쁘게 꾸며주세요! ※유혈 묘사 등이 있사오니 주의 바랍니다. ※이 외에 미처 기억하지 못한 주의사항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스레주도 무협 잘 모릅니다...부담가지지 말고 츄라이츄라이~ ※기본적으로 우리는 참치어장 상황극판의 규칙을 적용하며, 이에 기속됩니다.
편안한 미소에 재하는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아이의 미소이나 어른의 미소이고, 부드럽다. 기쁨과 즐거움이 조그마한 얼굴에 오밀조밀 들어찬 것에 재하는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꼼질거리며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방금 전 엉엉 울었던 탓인지 웃음이 아직 쉬이 나오진 못했으나 희미한 호선 입가에 맴돈다.
"정파의 발흥일지니 어서 이 아우도 그 뒤를 잇고 싶을 따름이어요."
순수하고 기뻐하나 호승심이 느껴졌다. 재하는 저 호승심을 절정의 경지에 이르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경지라는 것을 막연히 두려워하던 자신도 스스로와 주변을 지키기 위해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으니. 이제 막 오르기 시작한 자신도 세상이 달라 보이는데, 각오를 다지고 먼저 도달한 당신은 지금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재하는 동경을 내비쳤으나 그마저도 오래 가지 못했다.
"……예?"
낯익은 이름이 앳된 목소리에 섞여 들렸지만, 그 의미는 한없이 낯설었다. 낮게 깔렸던 눈이 순간 고개와 함께 휙 치들렸다. 지금 뭐라고? 상공이, 마님과 함께 폐관에 들었다고? 높이 뜨인 풍성한 속눈썹 사이로 보석 같던 눈동자가 일렁였다. 처음 듣는 소리다. 천마님께 맹세하건데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 편지도 받아본 적이 없다. 남궁세가에 보낸 전서구도 다리가 꺾여 돌아왔는데 자신이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그러니까, 갑자기 남궁세가로 데려간 것도 모자라서 칼에 찔려 사경을 헤맨 자신을 첩이라는 이름의 목줄로 묶어놓고, 본인은 폐관에 들었다?
"……네에, 놀라게 해주고 싶사와요. 이 아우, 이렇게 보여도 그 파마전율이 드물게 친우라고 인정한 마두인 걸요."
재하는 수줍은 듯 소매로 입 부근을 가리며 아름다이 웃었다. 쿡쿡 흘리는 웃음에서 어서 놀라게 해주고 싶다는 듯했다. 지옥 그 자체처럼 활활 들끓는 속내는 달랐다마는. 재하에겐 자신의 감정과 반대되는 표정을 아주 자연스럽게 지을 수 있는 재주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재주가 통하니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재하는 당신에게 공손히 고개 숙였다.
"형, 외람되오나…… 이 재 모……. 기실 절정의 무위에 올라선 지 얼마 되지 못 하였답니다. 장난이라도 치고 싶으나 아원에게 짓눌릴까 참으로 걱정이오니, 그때 부끄럽지 아니하도록 혹 가르침을 주실 수 있겠사와요?"
선이 저 혼자 있다는 것은 아니였다. 다만, 선이 짓밟히기 쉬운 세상일 뿐. 이 세상을 저가 구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였다. 다만, 손 닿는데로 모두를 돕고 싶었던 것 뿐.
덕지덕지, 잡념과 집념이 붙은 검을. 누덕누덕, 망집과 고통이 붙은 검을.
소녀는 필사적으로 휘둘렀다. 그게 설령 약하디 약한 파도에 무너져버릴 사상누각이라고 해도, 소녀는 다만 필사적이였다.
소녀는 기억한다. 소녀는, 깊이 알고있다.
어느 화창하던 날, 먹을게 없어 굶주림에 끝내 숨결을 뱉지 못 했던 아이를. 어느 우중충한 날, 빗물 속에서 피 흘리며 죽어가면서도 필사적으로 제 피붙이를 지키던 여인을. 어느 쌀쌀하던 날, 추위에 몸서리를 치고 또 구타에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리던 사내를. 어느 날, 어느 날, 어느 날, 어느 날, 또 어느 날.
소녀의 눈은 이 세계의 일부만을 보았겠지. 그래, 그게 사실이겠지.
다만, 그 일부만으로도 소녀의 마음은 처참하게 망가져버렸다.
그 누구도, 그들의 이름을 알지 못 하였고. 그 누구도, 그 비극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 세상에는 비극이 너무나도 만연하여서, 한낱 죽음 따위는 안주거리에 불과했다.
마치 저 하늘에 별들이 너무 흐드러지게도 많아, 그 중 저만의 별 찾으려면 버거운 것처럼. 이 세상의 비극은 소낙비처럼 너무나도 많아, 그 누구도 하나하나 슬퍼해줄 수 없었다.
그러나, 소녀는, 그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래서, 소녀는 그들의 이름들을 일일히 새겼다. 그들의 마지막 한탄, 상념, 유언, 절규 그 모두를 담담하게 저란 그릇에 담아넣었다. 한 명의 묘지기처럼, 담담하지만 익숙해지는 일 없이 영혼에 깊이 그들을 새겨넣었다.
소녀는, 수 만의 죽음들을 마치 눈 앞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생생하고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들이 뱉어내었던 죽음을 무엇보다도 가까이서 받아내었다.
그렇기에, 소녀는 담담히 제 검으로 검을 받아냈다. 가볍게 부수어지는 누더기의 검. 끔찍한 통증. 생명이 쏟아져나오며, 몸 속에 있어야만 하는 기관들이 토해내지는 감각. 그러나, 소녀의 표정은 단 하나 바뀌는 점 없었다. 늘 그러했던 것처럼 미소를 머금으면서.
"그러나, 오만이라고 할지라도. 그 누구도 기억하지도, 슬퍼해주지도, 노력해주지도 않는 죽음이랄 것은···. 너무나도 슬프지 않겠습니까."
소녀는 흘러나오는 제 피를 검을 놓고서 두 손으로 받아내고서는, 다만 경건하게 땅에 흩뿌렸다.
────세상이 추락한다.
더욱 깊이, 또 깊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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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붉게 타오른다. 천지사방이 화마로 가득하다. 땅은 어느덧 핏물로 잠겨버려서 질퍽한 적색의 늪이 되어버렸다. 그런 땅 위로 시체들이 묘비처럼 새워져있었다. 기억하는 모든 죽음들이 기록되어있었다. 사방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속삭임, 절규, 비명, 탄식. 수 만의 인물들의 모든 비극들과 한탄들이 울려퍼진다.
소녀는 떨어지려는 듯 너덜거리는 제 몸을 이끌고서, 제 부모의 시신을 끌어안으며 다시금 모셨다.
흘러넘치는 핏물들이, 도처에 너저분하게도 쓰러진 시체들이 적흑의 사슬이 되어 소녀를 옭아맨다. 그것은, 다만 질 필요조차도 없던 책임이었다.
"저라도, 기억하고자 합니다. 그런 쓸쓸하고도, 고독한 죽음들을."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하셔도, 하나만을 보는 천치라고 하셔도. 예, 좋습니다."
"다만, 저는 저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단지 태어났기에 그런 비극들을 겪고, 그 누구도 원망할 길 없이 다만 세상이 이 모양새라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소녀는 그들 모두를 기억한다. 소녀는, 그들이 느낀 감정을 동일하게 보전했다. 질 필요가 없었던 책임이라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라는 사슬들에는 일일히 그들의 이름들과 인생이 새겨져있었다.
누군가는 제 자식에게 제 살점을 먹였다. 누군가는 단지 기형으로 태어나 불길하다는 취급을 받으며 쓸쓸하게 죽어갔다. 누군가는 겨울의 혹한 속에서 제 아이와 함께 얼어죽었다. 누군가는 자식을 무뢰배에게 잃고, 또 누군가는 부모를 잃고. 또 누군가는 제 목숨을 끊고, 또 누군가는 원치도 않은 살생을 저지르고. 또 누군가는 굶고, 또 누군가는 갈증에 허덕이고. 또 누군가는 채워지지 않을 공허함에 눈물을 흘리고, 또 누군가는 원하지도 않던 굴레에 부르짖고. 누군가는 편치 않은 가족을 위해 나섰다가 죽고, 또 누군가는 이용당하던 끝에 모질게 버려지고. 또 누군가는, 또 누군가는.
가장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라 할지라도, 각자가 각자만의 지옥에서 살아가건데.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당신조차도 한 꺼풀 벗어던지기 이전에는 지옥에서 살았음을 볼 수 있기에.
소녀는 다만 이 세상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소녀는, 묘지기였으며. 소녀는, 죄인이였기에.
다만, 타고나기를 너무나도 선한 소녀는 제 영혼을 깎아먹고 짓누르는, 질 필요도 없던 죄책감을 짊어졌다.
단 한 순간도, '그 날'에서 나아지지 못 한 채로.
그러나, 원망하지 않는다. 소녀가 겪은 비극들도, 소녀의 이런 고통도, 소녀의 이런 마음가짐도. 결국 세상에서는 흔하디 흔할 비극들 중 하나이기에. 소녀는 눈물 흘리지 아니한다. 소녀는 제 삶을 원망하지 아니한다. 소녀는 다만 버거워했고, 고통에 겨워했다.
다시금 말하건데.
감당할 수 없는 재능은 저주였다. 소녀의 눈은, 그 모든 비극들이 마치 '저의 일'처럼 느껴버릴 정도로. 아니, '저의 일'로 받아들이게 만들어서. 외면하고자, 외면할 수 없었다.
하늘은 소녀에게 오욕칠정을 보는 눈을 주었으나, 그 범람하는 것들로부터 저를 지킬 정신은 주지 않았다.
소녀는, 아이는, 제 울타리가 부숴져버린 그 날에서부터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