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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 - 모용중원
(7.z2IlYEbM )
Mask
2023-12-05 (FIRE!) 02:37:30
빗나갔다. 당연하다. 소녀는 담담히 검을 내려친 자세 그대로 한 걸음 더 나아가며 두 번째 발자국을 대지에 찍어내렸다. 내려친 자세 그대로, 앞으로 쏠려버린 무게중심을 이용하야 상반신을 더욱 기울이되 팔은 몸으로 끌어당긴다. 그럼으로서 자연스레 검을 거두어들여 품에서 한 자루 살로 빚어낸다. "아니요, 부끄럽지 아니합니다. 길을 개척해낸 이가 만들어낸 武에 어찌 부끄러움을 가지겠습니까?" 소녀는 여상히도 대답한다. 그것은 담담한 시인. 이번만큼은 한 톨 가식도, 가면도 담지 않았다. 빛 바랬다고는 하나, 그 기저에 깔려있던 것은 다만 순수하고도 찬연하였던 아이의 동경이였어서. 그에 감히 거짓이나 허식 입에 담아둘 순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감히, 그래서는 아니 되었다. 소녀는 내디딘 두 번째 진각으로부터 힘을 끌어모았다. 몸을 웅크리는 듯 전신을 긴장시켜, 여인이기에 사내보다 약하나 더욱 탄력적인 몸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마치 팽팽히 당겨지는 시위처럼 검을 손 끝에다 걸었다. 이어지는 세 번째 발걸음. 허리, 어깨, 손목을 회전시키며 응축한 힘을 그 이상으로 풀어내었고, 팽팽하게 당겨졌던 시위는 다만 검이라는 살을 쏘아냈다.三才劍法 改,一念 검이 단 하나의 념을 품고서 점을 찍어내었다. 찍어내는 점의 종착지는 복부였다. 다만, 소녀는 그 뒤를 확인하지도 않고 앞으로 쏠리기만 한 무게중심을 내디딘 발걸음을 반 보 뒤로 물리면서 되찾고서는 검을 늘어뜨렸다.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했기에. 상대방이 당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었기에'. "다만, 저는 너무나도 미력하였고. 당장에 뻗을 손이 필요했습니다. 가장 빠른 길이라고 불릴 것은 늘 우직하게 나아갈 길이겠으나, 당장 눈 앞에서 신음하는 민초를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다만, 이 또한 진심이라. "설령, 샛길로 빠져 그 끝에서 벽 마주하야 멈춰버린다고 하더라도. 武라고는 이것 밖에 모르는 무인 나부랭이는, 감히 그 진의를 제멋대로 뒤틀었습니다." 순수는 죄악이다. 감당할 수 없는 재능은 저주다. 소녀는, 다만 뼈저리게도 그를 실감하기에.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당장의 힘에, 당장의······. 소녀의 두 눈은 너무나도 깨끗하게 세상을 바라보았고, 그 유리알처럼 투명한 시야에는 다만 고통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어리고도 어린 소녀의 마음으로는, 비극에 찢어지고 난도질 당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외면할 수 없었다. 소녀의 눈은 제 아무리 감춰두었던 고통조차도 꿰뚫어보았으니까. 소녀는 그를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그 모든 비극들은 날것 그대로서, 한 차례 걸러지는 것 없이 고스란히 '공감' 이라는 힘으로 제 삶이 되어버렸으니까. 하여서. 천진난만하게 행복에 겨워하던 저가, 순수하게 즐거워하던 저가, 저 누군가의 고통 위에서 희희낙락 하였다 생각하자면.용서해서도, 용납해서도, 무지하다 했더라도 그것은 천인공노할 죄악이다. 지금 당장에도 누군가는 배 곪아 죽어간다. 지금 당장에도 누군가는 눈 먼 칼날에 생이 다할테고, 지금 당장에도 누군가는 제 자식을 잃어 울부짖을테지.그것은 다만, 나의 탓이오리다. 단지, 능력이 없다고 해서, 출신이 비천하다고 해서, 집안이 썩 좋지 못 하다고 해서. 그리해서, 고통에 겨워하고 지옥을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도 참혹하지 않은가. 그 어린 싹들이 피어나기도 전에 죽고, 사랑을 속삭이던 이들이 눈물 속에서 죽음에 한탄하고, 작았으나 소중한 행복이 한 순간의 장난질에 송두리째 뜯겨져나가 절망하는. 그런 인생이 다만, 다만······.너무나도 안타까웠다. "당장의 무력이 필요했습니다. 당장에 민초들이 원망할 수 있을 누군가가 되기를 바랬습니다. 과분하게도 재능을 타고나 어찌 일류의 끄트머리에 닿았으나, 여전히 전 부족하고 세계는 너무나도 넓습니다." 일상화된 공포 앞에서는 죽음조차도 유희이리라. 이는, 거짓 한 점 없는 진실일지니. "저는 너무나도 두렵습니다. 제가 한 발자국이 실패할까, 품이 너무나도 작아 보듬어주지 못 할까. 저는 너무나도 두렵습니다." 만일, 가능하다면. "제 목숨 하나로 수 천의 삶을 구제할 수 있다면야···. 예에, 남는 장사지요." 그저, 그 뿐인 이야기였다. 소녀는, 잠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다 재차 자세를 취하였다.이상하게도, 한 꺼풀 벗겨져서. 속내 한 터럭을 뱉어내고 말았다. 한심하게도. 하지만, 이건 환상일테니 괜찮지 아니할까. 모르겠다. 소녀는 관성적으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나, 조금은 생동함이 있어 더 깊숙이 빠져들었다.다만, 그래. 꿈은 마음의 투영이여서, 싫은 좋든 순수하고도 올곧게 제 속마음을 내비쳤다. 가장 오래전에 품었던, 미쳐버리고도 남은 순진하고도 허황된 아이의 꿈을. 더 깊이,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