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최대 12인이 제가 받을 수 있는 한계입니다. ※총 10개의 대사건이 모두 일어나면 완결됩니다. ※이 스레는 슬로우 스레로서, 매우 천천히 진행됩니다. 진행은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보통 오후 2시~4시 사이에 진행되며 길면 2시간 짧으면 1시간 반 진행되니 참고 바랍니다. ※진행 때에는 #을 달고 써주시면 됩니다. 진행레스가 좀 더 눈에 잘 띄기 위해서 색깔을 입히거나, 쉐도우를 넣는다거나 하는 행위도 모두 오케이입니다. 스레주가 지나치지 않을 수 있도록 이쁘게 꾸며주세요! ※유혈 묘사 등이 있사오니 주의 바랍니다. ※이 외에 미처 기억하지 못한 주의사항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스레주도 무협 잘 모릅니다...부담가지지 말고 츄라이츄라이~ ※기본적으로 우리는 참치어장 상황극판의 규칙을 적용하며, 이에 기속됩니다.
루주는 여전히 공손한 태도로 당신을 훑었다. 당신이 돌아가면 할 일이 많다는 듯 여유롭기까지 했다. 가장 먼저 저것의 버릇을 다시 들여야겠다.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할 이야기도 생각해뒀고, 그 다음 주치의니 뭐니 하는 것보다 더 약 잘 발라줄 점소이 겸 감시역도 하나 붙이는 것 좋겠다. 나 노인이 바깥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도 해준다던데, 그 노친네에게 이참에 단단히 일러주어야지…….
"허억……!" "꺄아아악!" "치, 치안대! 치안대!!"
피가 흐르자 살금살금 구경을 나온 기녀들이 비명을 지르고, 기루 안은 난데없는 칼의 등장에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루주는 공포에 질려선 눈을 홉떴다. 살다살다 무림인들 행패 부리는 것 많이 봤지만 이런 놈이 있었나? 없었다! 내 손에 들어온 것이라니, 홀려도 단단히 홀린 것이 틀림 없다! 루주는 저도 모르게 목에 힘을 주곤 마른 침을 삼키며, 금방이라도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아 부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기 위해 주먹을 꽉 쥔 나머지 손이 새하얘졌다.
"이, 이런다고 해서 넘겨줄 것 같습니까! 치안대가 오면 가만 있지 않을 겝니다! 새파란 아이에게 홀려선 지금……!"
루주의 쩌렁쩌렁 울리던 목청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당신의 눈 마주하기가 무섭게 진심이구나 생각하며 입을 다물어버렸다. 품 안에서 상황을 파악하려는지, 아니면 같이 충격을 받았는지 멍하니 있던 재하는 느껴지는 힘에 고개를 천천히 올려 당신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풍등을 때리는 소리가 멀리서 울리는 것 같아, 재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뜨곤 소매로 입을 가렸다.
"이번에는 죽이는 쪽인가……."
당신을 보다 루주를 한 번 보고는, 물에 가라앉은 시체가 원성 뱉듯 먹먹하니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와 함께 향 내음이 더욱 진해졌다. 이제 보니 재하에게서 나는 향이었다. 아릿한 향내, 희미하게 머리카락에서 일렁이는 계화유의 향. 그마저도 흩어져 언제 그랬냐는 듯, 재하는 입술을 더듬더듬 떼었다.
그 기루에서 처음 제 정인을 만난 순간, 이미 그 아름다움에 홀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또 다른 이를 사랑하고, 함께 떨어지겠다 약속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는 씁쓸한 눈치로 재하를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모두 인생에 있어 제 정인만큼의 의미를 부여해주었던 사람이 그 외에는 없었던 까닭이기에...
...어쩌면 그는 정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재하야?"
생각에 잠기기도 잠시, 재하가 무언가 중얼거린 것에 놀란 눈치로 재하를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중요한 것을 놓친 느낌이었는데.
"그래.. 난 괜찮단다. 오히려 이러니 더 시원한 느낌이구나."
그 루주가 아이에게 했던 짓을 떠올리면, 오히려 루주에게 아이를 넘겨주었다면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겠지. 아이를 지켰고, 분노의 대상을 베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외의 것은 전부 부수적인 것.
"일단 자리를 피해야겠구나. 나를 꽉 붙잡고 있으렴."
그는 재하를 안은 손에 힘을 주고는 풍령보의 구결을 읊으며 걸음을 떼었다. 바람을 밟고 뛰어올라 다른 이들이 찾지 못하는, 사람 없는 한적한 곳으로 치안대를 피해 달리기 시작했다.
거칠게 팔을 내치며 의견을 피력하기도 잠시, 그르륵, 피 끓는 소리가 들렸다. 목을 베였으니 소란은 한층 더 커졌고, 개중엔 슬쩍 문 열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나 구경하다 질겁을 하며 다시 문 닫아버리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루주라는 존재가, 과거를 온통 집어삼켜 현재까지 영향을 끼친 그 무엇보다 견고하고 공포스럽던 악몽이 한낱 구경거리가 되어버렸다. 재하는 그 모습을 눈에 담았다. 루주가 마지막으로 소리 높일 적 피가 튀었으나 누구도 눈을 가려주지 않았고, 닦아주지 않았다. 그저 씁쓸한 눈치의 당신을 마주보다, 대답 없이 눈을 먼저 피할 뿐이었다.
"……하지만, 치안대는 무서운 거랬어요……. 저, 저 같은 거 때문에, 죄, 죄송해요."
재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자리를 피한다는 말에 혼란스러운 듯한 눈치였다. 아, 이상하다. 분명 오늘 처음 만난 당신인데 어째서 나의 이름을 알까, 어째서 나를 도울까, 어째서 내게 온정을 줄까. 지금껏 이런 적은 없었다. 지금껏 이런 적이 없는데. 재하는 하지 못할 말을 꾹 삼키고 품에 안겼다. 멀리서 털썩 소리와 비명소리가 높아지나 그마저도 멀어져만 간다. 바람결에 머리카락이 넘실거리자 계화유 향이 짙어졌으나, 그보다 더 기이한 것은 사라질 기미 없는 향 내음이었다. 매캐하고, 누군가의 정신을 흐리게 만들기 좋은 향의 냄새는─
"형."
재하에게서 나고 있었다. 재하는 당신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눈 부근에 튄 루주의 핏방울이 바람 때문인지, 중력을 이기지 못한 것인지 뺨을 타고 긴 줄기를 그어내며 흘러내린지 오래였다. 울지 않고 있음에도 황망하게 당신을 응시하는 만고의 수심 담아낸 눈동자 탓에 붉은 혈루가 흐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재하는 당신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더듬지도 않고 명료히 입을 벌렸다.
"저희 이제 어디로 가는 거예요?"
다만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도 모르거니와, 실로 끔찍한 장면을 보았다는 듯.
그는 스스로가 무서워하는 것이 많지 않은줄 알고 있었다. 큰 착각이었지만. 그깟 치안대보다도 더 무서운 일이, 방금 일어날 뻔 해서, 아직까지도 손이 떨리는 느낌인데.
재하를 품에 안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설령 마교 전부와 싸운다고 하더라도 두렵지 않은데, 죽음보다도 더 두려운게 있었다. 그는 어렴풋이 알고 있던 것을 이번 기회에 절실히 느꼈다. 진정 두려운 것은 죽음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삶이라는 것을. 그러니 더더욱, 제 것을 포기할 수 없어졌던가.
"글쎄."
재하의 물음에 답한 것은 무책임한 답이었다. 설령 이곳에서 제 집이 있는 안휘까지 갈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 하더라도 꿈 속의 남궁세가가 저를 반겨줄지는 의문이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해야할지, 도무지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품 안의 아이를 계속 쥐고있다는 안도감 뿐.
"일단 조용한 곳으로 가야겠구나. 사람들 눈을 피해서.."
숲속에 숨으면 일단 당장에는 안전하겠지. 그리 생각한 그는 재하가 살던 도시를 벗어나려 하였다.
재하는 당신의 품에서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따뜻하다. 당신의 심장 소리가 어떤지 듣고 싶다. 피가 빠르게 돌기 때문에 심장 박동도 요란하겠지. 쿵쿵거리는 소리가 익숙하다. 금방이라도 당신이 제 머리를 부여잡고 탄성에 가까운 웃음을 쏟아내며 욕망을 드러낼 것 같았다. 자신이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지 속삭일 것 같았고, 그렇게 추락할 것 같았다. 지금의 당신은 멋진 형일 뿐인데 우스울 따름이다.
"으응……."
재하는 당신의 품에서 소매로 입가를 가렸다. 물 속의 언어처럼 먹먹하던 것이, 이제는 당신의 귀에도 선명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가봤자 떠나버릴 거면서. 입을 움직이지 않고 있음에도 소리는 계속해서 울렸다. 내면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싶었다.
"조용한 곳……?"
그렇게 두고 잊을 거면서. 이곳을 떠나서 어디로 갈까, 안휘? 그리하여 목을 베고자 하나? 루주 죽였던 것처럼? 아무리 너절한 망상이라 한들 내 안의 당신이 갈수록 잔악해지는구나. 향에 취하는 모양인 듯싶다. 어서 깨어야 하는데…… 뜻 모를 소리가 울리고 재하는 천천히 얼굴을 덮어 가렸다. 언뜻 보기엔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형, 저, 저요, 무서워요."
왜 뜻대로 되질 않는 거야. 지금껏 잘 그래왔잖아.
"이, 이렇게 멀리, 나가본 적이 없어요."
이젠 선명히 느껴지리라. 이는 연기다. 열연이었고, 귀기로웁되 삶 그 자체였다. 재하는 당신의 품에서 가늘게 떨었다.
당신은 태산같은 존재인데. 쿵쿵거리는 심장의 박동음이 시끄럽게 울린다. 그리고 그 소리를 가만히 듣던 고개를 떼어 당신을 마주했다. 두려움에 수긍하고 멈췄다기 보다는 깨달음을 얻은 듯한 당신의 모습에, 재하는 천천히 소매로 가렸던 입가를 드러냈다. 두렵다며 떨던 목소리와는 달리 아이 얼굴이라기엔 지나치게 딱딱한 무표정이었다. 아이의 모습으로 곱게 빚은 듯한 밀랍 인형과도 같이, 세상 만사가 질린다는 듯한 눈길이 당신을 향했다.
"……형."
아니, 나의 망상아. 재하는 조그마한 손을 뻗었다. 당신의 뺨을 쓸어주려는 듯 고사리손을 뻗던 것이 일순 멈춘다. 잠에서 깨어야 할 시간이라니? 화사한 봄날임에도 겨울 바람이 매섭게 몰아쳤다. 멀리서 풍령 딸랑거리는 소리 들려오고 아릿한 향 내음은 계화유에 섞인다. 재하는 돌처럼 굳어선 당신을 믿지 못하겠단 눈길로 쳐다보았다.
"……그래."
그리고 마침내 당신의 품에 안긴 것은 어린 외형이되 더는 어리지 않았다. 아이의 몸이되 현세의 정신이었다. 아니, 어른이되 아이의 몸집인가? 아니, 그 어떤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재하는 담담하게 당신을 마주할 뿐이었다.
"이젠 이런 모습으로도 나타나는구나.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어."
눈동자에는 절절한 사랑도, 그리움도 없다. 체념만이 가득하다. 당신을 어쩌면 그리움의 대상이었으나 체념까지 보게 되는 헛된 희망의 원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더 나아가 꿈자리 망상의 대상으로. 재하는 기어이 울음도 웃음도 아닌 표정을 지었다.
"이럴 때마다 꿈에서 깨려고 몇 번이고 당신을 해쳤는데, 이번에는 어떤 끔찍한 욕망을 마주하게 될까. 현실의 당신은 날…… 길들이고자 새장에 가둔 뒤 본인은 잊고 홀연히 사라질 것인데, 어째서 내가 깨어나 숨을 쉬며 부질없는 삶을 이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