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서리가 내리고 츠나지의 하늘은 깊어지며, 밤하늘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수많은 별이 빛을 발하는 머나먼 심연 저편의 다른 우주까지 거리를 헤아릴 수도 있을 만큼... ▶ 주요 레이스: 일반 레이스(11/4), 산마캔(11/11)
【다랑어자리 유성군】 10/30 ~ 11/10 (situplay>1596993074>1)
「캠핑 시즌」의 듣기 좋은 변명일 수는 있지만, 츠나지에서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다랑어자리 유성군이 곧 시작됩니다. 별빛에 많은 관심을 지닌 사람이나 우마무스메라면 텐트와 망원경을 들고 한적한 공터로 향하지 않을 수 없겠죠. ▶ 유성우 진행: 11/4 ~ 11/5 【링크】
안카자카에서 츠나지까지 출근하는 것도 나름 출근 시간이라고 서둘러야 했었는데, 그럴 일이 없던데다가. 즐긴다곤 생각했지만 일거리이긴 했던 가족의 도시락 싸주는 일도 일단은 땡땡이고.
무엇보다 프리지아는 임시 판넬을 떼었다. 학교에서 제대로 된 지원금을 잔뜩 받아챙길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단 거다. ...메이사와 계속 지낼 수 있단 것도 좋고. 메이사 앞에서 너무 완벽한 인간인 체 하지 않아도 된다는 홀가분함도 있었고, 야나기하라와 싸워 얼굴은 좀 엉망이었다만 오히려 싸움박질 한 번 하고 나니까 시원하게 해소된 것도 있었다.
비록 얼굴 꼴은 좀 별로지만 표정이 좋고, 피부도 반들반들한 요즘. 나는 치과와 안과, 안경점을 갔다와선 학교 근처 벤치에 앉아 자축의 의미로 아사히 캔을 땄다.
아~ 극락 극락. 부우웅 울리는 휴대전화는 무시하고.
...언젠간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런 생활이 지속된다면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겠다. 그런 생각이 종종 든다.
하여튼. 내가 전보단 홀가분해졌다한들 해결해야 할 문제는 있었다. 가령 저 멀리 지나가는 모모카라던가.
어쩐다... 저 녀석의 표정은 꽤 안 좋아보였다. 나랑 다르게.
나는 옆의 자판기에서 캔 콜라 하나를 사서 모모카의 뒤로 소리없이 따라갔다가...
"모모카."
부르는 소리에 네가 고개를 돌리면, 차가운 콜라캔이 볼에 닿을 것이다. 난 가벼운 장난을 치고는 말했다.
"넌 왜 표정이 그 모양이야?"
나 때문이라는 생각은 못했다. 네, 저는 딸이랑 화해해서 엄청 기쁜 상태라서요, 좀 둔감했거든요.
더운 여름. 산들바람과 저 멀리서 들려오는 매미 울음 소리. 밀짚모자를 쓴 채 흰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의 미소. 맑게 흐르는 시냇물. 무성하게 자란 나무 그늘진 계곡. 체육복을 입은 채 뛰는 우마무스메. 수영장. 수영복과 꺄르륵 웃음소리. 쨍한 아스팔트의 열기. 더운 날. 바다. 야키소바. 그 모든 것들이 언제 그랬냐는듯 사무치게 추운 바람이 목덜미 사이로 스며들어오면, 한 여름밤의 꿈에서 깨듯 안개가 걷히고. 가을.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고 곧 앙상하게 마른 가지가 부러져 눈 위로 떨어지면, 겨울이 오리라. 숨을 내뱉는다. 짧게 눈을 깜빡이며, 스카쟌 앞섬을 당긴다. 춥다. 집에 들어갈까.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뒤를 돌아보면, 차가운 콜라캔이 뺨에 닿는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뭐, 하자는, 건데."
우리 어떻게 헤어졌는지 기억 안나는거야? 얼굴은 또 왜 그모양이고. 그런 눈빛으로 너를 바라보며.
모모카랑 마지막이 어땠는지 싹 잊고 말았다. 아니, 아니, 중요하지 않았단 게 아니라, 그 이후로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고요. 진짜로... 나 힘들었어. 물론 그 전에도 힘들어서 모모카한테 신경질을 확 내버리긴 했지만. 괜히 말 걸었나.
하지만 저 상처입은 들개같은 얼굴 좀 보라고. 저걸 어떻게 가만 냅두냐? 가만 냅두면 선생 실격이야. ...내가 친구로서는 절교당했을 수도 있지만, 선생과 학생으로서는 아직 말 걸 수 있지 않느냐고, 세이프지 않냐며 변명하면서 애써 태연한 척 말을 걸었다.
"...기분 안 좋아보이길래. 좀 풀어보라고."
나는 남들과 화해해본 적이 많이 없다. 예전부터 달리기에만 줄창 매달렸고, 그냥 좀 친한 척하면 어물쩡 해결되는 경우도 많았고, 안 되면 도망쳤으니까. 가족들끼리야 냉전이다가도 별 거 아닌 거로 풋 웃고 기분 좀 풀리는 법이고. 난 그래서 최대한 친한 척을 하고 있었다.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사건의 발단조차 누구를 탓 할수 없는, 서로간의 질척한 감정들이 한데 뒤엉켜 일어난 일이었으니. 메이사는 널 좋아한다. 쉽게 눈치 챌 수 있는 일이었지만 나는 그걸 몰랐다. 나는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야 너는 나와 장난치듯 즐거운 첫 만남을 가졌고, 부둣가에서 내게 도와달라고 말했으며, 옥상에서 너의 상처를 이야기하며 내게 도움의 손길을 되갚아주었으니까. 그래서 너를 돕고자 했다. 네가 바라지 않는 일련의 사건들로 네가 괴로워하는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네게 적극적으로 손길을 내밀었다. 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네게 그런 식으로 접근했으면 안된다는 것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네가 어떤 사람인지를 더 알아가며 네 상처를 보듬듯 이야기 했어야 했는데, 충격 요법같은걸 쓰며 접근했다는게. 마치 정신과 의사라도 된 마냥 굴면서, 너를 다 아는 듯 굴면서, 네게 수치를 안겨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투었다. 그리고 메이사에게도, 친구라고 믿었기에. 그 아이가 널 좋아하는 줄 몰랐기에 너와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그 사실이 얼마나 그 아이를 괴롭혔을까. 직접 깨닫고 나서야 가슴이 아파왔다. 그 아이가 내게 박은 비수는 날이 서있지 않은 가품이니, 결국 내 가슴을 이토록 아프게 하는것은 나 자신의 추악한 행동 때문이리라. 짙게 얽힌 우리의 관계속에서 나는, 지금 길을 잃었다. 알고있다. 전부 내가 잘못했다는 것 쯤은. 그러나 어째서, 그러나 어째서, 나는...
받아들이기 어려울까.
왜 나한테 친근한 척 말을 거는거야. 우리 그때, 옷가게에서 빠져나와 헤어진 이후로 처음 만나는거잖아. 나도 많이 힘들었어. 너를 도와주기 위해서, 나는. 아니다. 전부 변명일 뿐. 그렇지만, 네가 얘기했었지. 어쩌면 너와 나는 평생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거라고. 그래, 네가 맞아. 나는 널 이해할 수 없어. 왜 내게 친근하게 말을 거는거야. 왜 갑자기 기분을 풀라는거야. 왜 내가 네 기분을 풀어줘야 하는건데. 왜 갑자기 뺨에 차가운 콜라를 대는거야. 왜 그렇게, 친한 척 갑자기 다가오는거야. 누구보다도 무정하게 나를 내쳤으면서. 내 호의를 짓밟고, 내 편을 들어주지 않겠노라고, 매정하게 날 비난했으면서. 전해지지 않을 말들이 마음 속에 맴돈다. 나는 또 이제야 깨닫는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했지. 나도 그래. 알 수가 없어. 나의 마음도, 너의 마음도.
"많이, 아프겠네. 병원은 가 봤고?"
쓸쓸하다. 우리는 서로의 앞에 서 있지만, 누구보다도 멀리 떨어져있는 것 같다. 이 세상에 혼자 남는다면 이런 표정을 짓고 있겠지. 그렇지 않아? 그야 너와 나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테니까. 그 사실이 내 가슴을 이토록 아프게 해.